순백의 평화주의자 이시우 선생을 기억하며 2009/01/21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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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평화주의자 이시우 선생을 기억하며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간 사진작가 이시우

이동권 기자

하늘에서 본 지구(Earth from Above)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Yann Arthus)’가 지난해 한국의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기사를 봤다. 군사기밀 보호법 때문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었지만, 유엔사군정위 비서장은 그를 헬기에 태워 한국 사진작가들에게 한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고공촬영에 직접 나섰다. 그 당시 모든 언론들은 ‘얀’의 사진이 대단한 것처럼 말을 아끼지 않았지만, 기자는 이 땅이 도대체 누구 땅일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반면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작업을 해왔던 사진작가 이시우 선생의 사진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이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위험을 감지하고 끌어안는 예술가의 혼으로 한 시대는 위기를 예감하고 준비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이 이 시대의 위기를 예고하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의 간절한 호소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 어느 누구도 사진작가 ‘얀’과 ‘이시우’의 차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참으로 통렬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시우 작가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이시우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비무장지대에 평화의 배를 띄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이 선생은 해가 지고 밤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하자 서둘러 밥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반찬으로 내온 마늘장과 김치에 허겁지겁 밥을 먹던 기자에게 그는 “반찬이 없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식사를 마친 뒤 밥그릇에 따뜻한 물을 붓고 음식 찌꺼기를 씻어내는 듯 빙빙 돌려가며 물을 마셨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고귀해보였는지 모른다. 그는 소박하고 온유했으며, 그가 왜 ‘순백의 평화주의자’로 불리우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강화도에서 일본 오끼나와까지 걸었다. 한국과 일본의 미군 주둔지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특히 그의 사진 작품 ‘비무장지대’, ‘대인지뢰’, ‘끊긴 철길’ 등을 보면 한 인간의 바람이 모두 평화에 머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시우 선생의 성품은 느릿느릿하고 깊었다. 고민도 많고,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샅샅이 둘러보고 신중하게 판단한 뒤 결심이 서면 꼭 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몰두라는 단어가 기묘하게 들릴지 모르나, 더할 나위 없이 마음씨가 곱고 정숙하면서도 한가지 일에 빠지면 놀라운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다. 아울러 문학, 미술, 음악 등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고집이 센 편인데, 그는 그러면서도 다정함과 겸손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도 있고, 일하는 면에서는 지나치게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시우 선생에게 있어 사진은 사색의 도구라고 한다. 사진을 통해 마음을 담고, 자신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그는 9.11사건 이후부터 미군문제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군데도 빠짐없이 미군기지를 모두 둘러봤다. 그러면서 의구심이 들었고, 유엔사 문제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하게 됐다. 그가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

“내 사진작업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치열하게, 보이지 않게, 일하는 분들 많이 있는데,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안착하기를 바라는 사진작가 이시우 선생의 진정성은 공안당국에 의해 무참히 훼손됐다. 그는 평화운동가들조차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유엔군사령부 문제를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 인물. 하지만 공안당국은 그의 노력과 염원을 격려해주지 못할 망정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감옥에 가둬버렸고, 예술에 대한 무지를 과감하게 커밍아웃해 버렸다. 예술인의 창작세계가 공익에 위반되지 않는다면, 국가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기본. 하지만 이들은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는 낯 간지러운 죄목을 들이대며 한 예술인의 세계관과 작가의 예술성마저 짓밟아버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선생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필름 2천통이 수사과정 중에 압수되어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빼앗긴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처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661회 목요집회를 갖고 국가기밀누설죄 등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 씨에 대한 석방을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기자

공안당국은 이시우 선생이 제기한 유엔사 해체 문제가 북이 주장해온 선전선동에 동조해 이로움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 선생은 “유엔사 문제는 보수진영과 일본의 평화애호세력까지, 연대를 넘어선 연합을 구성할 수 있는 의제이며 유엔차원의 국제적운동”이라면서 “유엔사 문제는 객관적 사실이며, 그것은 북에도 이롭지만, 남에도 이롭고, 세계 모두에 이롭다”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전국의 미군기지를 촬영한 사진작품에 대해 군사기밀유출이라는 혐의를 덧붙었다. 특히 경찰이 가장 집요하게 캐묻는 사진 중의 하나가 강화고려산 미군통신시설이었다.

“이 사진을 찍기까지 대상에 대해 수집가능한 모든 정보를 확보하고 그 연관과 실체를 연구했으며 정보전쟁의 수단으로서의 전자파와 또다른 파동으로서의 평화를 상징할 빛의 극적 대비를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헛걸음을 하고 기다리며 인내하던 끝에 즐탁동시의 순간을 만났고, 원하던 사진을 얻었습니다. 제가 이 사진에 적용한 개념은 ‘전파의 기교도 빛의 장엄만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을 소재로 평화를 말하고자 하는 저의 역설적인 사진방법을 나름대로 구현하는데 성공한 것 같고 제가 보기에 흡족했습니다. 고려산 미군통신시설은 ‘국가기밀이기에 촬영해선 안 된다’가 아니라 그것은 ‘창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창작을 통해 기밀보호보다 더 큰 가치를 국가는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헌법의 취지에 맞습니다. 창작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관점도 문제지만, 기밀의 테두리에 씌워 탄압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아울러 핵무기를 비롯한 화확무기 표식문제 등의 사진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할 권리에 속하는 사진들이었다. 이 무기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테두리에만 숨길 일이 아니다. 또 그것이 기밀이라고 해도 모두 합법적인 경로를 거쳐 획득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를 문제로 삼을 수 없다. 그가 공안당국에 잡혀가면서 “이러한 사실은 제게 취재를 허용한 당사자들이 더 잘 아는 문제”라고 강하게 성토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그를 국가보안법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손발을 잘라 버렸고, 작품의 주제를 설정하고 창작하는 예술가의 영혼마저도 가둬 버렸다.

이시우 선생의 건강이 걱정된다. 긴 단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가슴은 오죽이나 타겠는가. 그러나 이 선생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장소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면서 “역사의 ‘결’, 평화와 통일의 ‘결’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의 요구에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계속 싸워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렇다. 이시우 선생은 ‘순백의 평화주의자’가 분명하다.

2007년05월14일 ⓒ민중의소리 이동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