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와서-김희정 2006/03/24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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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와서 | 낙서장 2005/10/21 19:50

1박 2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왔다.

유나 난 후 10년만에 처음으로 혼자 밤을 지내는 여행을 해보는 것 같다.

수요일 아침비행기로 떠나 목요일 밤 비행기로 왔으니 꼬박 이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 좋았다. 그러나 생각했던것 만큼 좋지는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도서전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일 끝나고 잠깐 주빈국 전시장 쪽에 가 봤는데 여러개 동시에 진행되는 행사들 중에서 금속 활자 전시랑 해인사 직지심경에 관한 영상 등이 볼만했다. (독일어 방송이라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화면이 아름답고 정보도 잘 담은 것 같았다) 호텔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만난 독일 청년이 도서전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이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나라 아니냐며 아는척 해서 상당히 으쓱했다. 이번 도서전 주빈국 참여로 적어도 독일 내에서는 한국 문화가 좀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독일 사람들이 한국 문학과 작가들에 대해 갖는 관심이 커서 놀랬다. 고은 선생같은 분들에게서 사인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는 모습도 봤고, 이번에 같이 일한 창비 부스에 붙어있는 황석영 선생 사진 보고 ‘저분 어디서 만날 수 있냐’ 고 묻는 독일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도서전을 통해서 책 수출입 계약은 그다지 많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어 장벽이라고나 할까.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어린이 책을 실제 비중보다 더 많이 내세운 느낌이었다. 어린이 책들은 비교적 번역도 용이하고 보기에 화려하며 설사 번역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보면 대강 어떤 책인지 알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실제 그냥 부스에 찾아와서 저작권 구입을 목적으로 책을 보는 출판업자들은 별로 보이지않았다. 그래도 이런 행사를 한번 치루고 나면 인지도와 친밀감이 높아져서 숫자로 얼른 계산이 되지 않는 이익이 장기간에 걸쳐서 생기겠지…

나는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사진을 곁들인 에세이집을 낸 이시우씨라는 평화운동가의 슬라이드 강연회 통역을 맡았다.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왜 대단한 작가진을 갖추고 있는 창비에서 한번 주어진 강연회 기회를 이분에게 주었을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만나고 나니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민통선, 비무장지대, 대인지뢰, 유엔사문제, 평화협정 문제 등에 큰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일해온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지금 한반도에 있는 유엔사령부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해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유엔사이며, 1975년엔가 유엔 총회에서 해체 결의가 있었는데도 미국에서 이를 집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유엔사 작전권이 유엔에 있지 않고 미합참의장한테 있다는 것. 그리고 기술적으로 이 유엔사가 한반도에서 오늘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유엔이나 미국 의회, 한국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전혀 불법이 아니라는 점 (섬뜩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기술적으로 53년엔가 미일간에 교환된 문서때문에 유엔사가 부르면 자위대까지도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세계전쟁 아닌가…

알면 알수록…

그건 그렇고 난 12년만에 처음으로 통역부스에 들어가서 동시통역을 했다. 한국에 두 번 가서 살때마다 통역을 조금씩 하긴 했지만 대부분 순차였고, 영국에 있을때는 오로지 번역만 했었다. 무척 긴장이 됐었는데 생각보다 그런데로 잘 넘어갔다. 창비하고 이시우씨가 통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인지 미리 자료를 충분히 제공해 줘서 준비를 많이 해간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단 한가지 처음에 작가를 소개하는데 책 공식 제목을 영어로 알아두지 않는 실수때문에 버벅거렸다. 으… 책 소개 강연회인데 책 제목을 알아놓지 않다니… 이런 실수가… 등잔밑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서 어느덧 끝날 때가 되어 있었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요즘 계속 하는 생각인데 업종을 바꿔야할 것 같다. 허리가 아파서 번역도 이제 오래 못하겠고 통역도 별로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나혼자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고, 어딜 가나 내 머리 속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전문기술을 가지고 싶어서 택한 분야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점때문에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잘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잠깐 윤활유 노릇을 하고 흔적없이 나와야 하는 것이 이제 싫다. 옛날에는 그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 답답하고 싫었었는데…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거… 그거겠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어처구니 없게… 아무것도 없다. 흠…

영윤이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뭐든지 할수 있는 나이’ 뭐 이런 글이 있더군. 클릭해봤더니 결론은 내 나이면 뭐든 못할게 없는 나이라더구만.

뭘 다시 시작해야 보람도 있고 모두에게 유익하고 돈도 벌고… 그럴 수 있을까. 내 나이에…

그건 그렇고 이번에 만난 (길, 전철, 택시… 박람회장 등등) 독일 사람들은 참 친절한 것 같았다. 독일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까 아님 내가 운이 좋았을까. 참 인상이 좋은 도시였다. 역시 난 매연과 높은 빌딩이 가득한 도시가 적성에 맞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