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를 위하여: 작은 연방 – 계간 통일코리아 2022겨울호
작은 연방
사진가 이시우
비무장지대평화지대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정권의 성격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제안되어 왔다. 필자는 평화지대의 미래상을 작은 연방으로 규정하고 낮은 단계연방으로 가는 과도기 단계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작은 연합 – 공동행정권
9.19남북군사합의서가 정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 한강하구의 남북공동이용수역, 서해의 평화수역을 통칭하여 아래에서는 편의상 ‘평화구역’이라고 하자. 비무장지대 내 평화지대의 위치를 사천강이 임진강에 합수되는 파주시 장단면주위에 설치하면 경의선과 한강하구, 나아가 서해가 단절없이 연결되어 하나의 평화구역으로 통합된다. 육지-강-바다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평화구역이 가능해진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은 공동경비구역이 공동경제구역으로 바뀐 것을 가정한다. 평화구역이든 공동경제구역이든 ‘유엔사’관할권을 국방부로 환수하거나 전환한 단계에서 가능해진다. 9.19남북군사합의서가 이행되면 평화구역관리기구가 요구되므로 남북공동행정관리위원회를 설립하여 남북의 행정권을 위임할 것이다. 작은 구역에서 남북연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를 작은 연합이라고 해보자.
이 드라마는 이곳에서 범죄가 발생하자 남북 각각의 경찰을 투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의 사법권은 행정에 가깝다. 드라마에서는 남북의 경찰이 지휘권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남북연합제도가 첫 번째 직면하게 되는 한계이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직전단계에서 대두된 고민도 바로 이 사법문제였다. 북 영토에 남한경찰이 투입되긴 어려우므로 가능한 것은 공단내 법질서유지대, 자율방범대 정도이다.
9.19군사합의서에서 이 정도 단계의 합의가 이루어진 곳은 서해의 시범공동어로수역이다. 남북이 공동순찰대를 운영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합의서는 평화구역에 대해 출입·체류·거주 3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시범공동어로구역은 출입만이 아니라 최대5일간의 체류까지 허용하고 있다. 만약 어로구역 내에 바지선등을 이용한 남북공동파시가 만들어지면 장기체류는 거주로 발전할 수 있다. 거주는 지번, 등기가 요구되므로 체류와는 질적으로 다른 관할권이 요구된다. 바다의 사례를 따라 육지와 강에서도 남북공동경찰대가 설립‧운영된다면 평화구역내 남북국민의 실정에 맞는 규범이 발전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독립적인 입법권을 요구하게 된다.
국가연합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유로화를 출범시켰다. 유로화는 유럽연합의 위력을 세계에 보여줬지만 그리스 등 빈국의 부가 독일 등 부국으로 이전되는 유럽연합 내 내부식민지 구조를 만들었고 결국 그리스재정위기를 촉발시켰다. 독일이 그리스를 도와야하는 것이 당위임에도, 또 돕고 싶었다 해도, 국가라는 벽에 막혀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그럼에도 그리스가 구제금융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의 연방적 대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3년 유럽연합 출범직후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를 중심으로 유럽헌법논쟁이 불붙었다. 유럽헌법이란 유럽연합이 유럽연방이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2004년 유럽헌법조약이 만들어져 각국별로 비준동의를 묻는 투표가 벌어졌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일부국가의 부결로 일단 보류되었지만 유럽연합은 유럽연방으로의 길에 들어섰다. 연합단계에서 연방이 준비될 때 그 이행이 순조로울 수 있음을 유럽연합은 보여준다.
작은 연방 – 공동입법권
평화구역내 남북주민사이의 합의와 조정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들도 양 정부측의 입장변화에 따라 한 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 남북연합단계에서 민간의 자율성이 극대화되고 책임규칙과 재산권규칙이 조화롭게 운영된다 해도 남북이 가진 근본적인 균열은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평화구역은 남북의 최상만이 아니라 최악도 포함하고 있는 공동체일 것을 가정하는 것이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남북전체가 언젠가 겪을 일을 평화구역은 미리 겪을 것이다.
평화구역이 양측정부로부터 입법권을 위임받아 공동입법권, 즉 작은 의회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연방단계로 들어서는 핵심이다. 입법권의 위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라는 입헌적결정이 필요하다. 예산도 본질적으로는 법률적 성격을 갖기에 입법권 위임의 범위에 포함된다. 그러면 평화구역의 재정자립도도 높아질 것이다.
남북연합단계에서의 평화구역 남북공동관리위원장은 남측의 통일부장관과 북측의 조평통위원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연방단계에 들어서면 평화구역은 남북헌법에 의해 평화특별자치도나 평화특별자치시로 자립성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남측은 제주‧강원특별자치도가 있고 북측도 신의주특별행정구가 있다. 신의주특별행정구는 이미 입법권을 가지고 있고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독자적인 입법권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에 이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인천특별자치시가 만들어진다면 접경지역지방정부는 작은 연방으로 가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된다.
평화특별자치도에는 남북공동의회에 제한적입법권이 부여되고 양 정부의 장관대신 한 명의 도지사나 시장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도지사나 시장은 남북거주민들의 직접선거로 뽑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통일헌법제정, 외교, 국방 등을 제외한 고도의 관할권이 평화특별자치도에 위임됨으로서 평화구역내 시민사회의 공론장 마련, 공통된 정치문화‧합리적 제도의 마련이 내부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으로 축적됨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자부심으로, 애국심으로 표현될 것이다. 평화특별자치도의 번영과 자부심은 남북국민들에게 연방에 대한 관심과 희망적 형상을 제시할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남북군사통합이다. 국군과 인민군이 공통의 교리를 합의하고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하여 공동군사연습을 해야 한다. 연방군의 군통수권자인 연방대통령의 관할변경지시에 의해 국군과 인민군은 연방군에 편입되어야 한다. 만약 남측출신 연방대통령이 인민군에게 연방군에 편재‧배속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인민군이 명령에 불복할 수 있다. 혹은 연방헌법의 허술한 틈을 이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을 우선 적용하는 방법으로 연방대통령의 지시를 회피할 수 있다. 북측출신 연방대통령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연방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내면화해야 한다. 이런 실정을 예상하면 가까운 시기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연합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도 없다. 따라서 남북전체의 낮은 단계연방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연방을 연습하고, 검증할 수 있는 중간단계가 설정되어야한다. 그것이 작은 연방이다. 남북영토의 일부이면서 육지-강-바다를 포괄하여 지정학적 여건을 충족하고 있는 평화구역은 작은 연방을 설립할 최적지이다.
글3 작은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