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를 위하여: 유엔사관할권 – 계간 통일코리아 2022겨울호
‘유엔사’관할권
사진가 이시우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이 있고 난 뒤 남북교류는 봇물 터지는 듯했다. 그런데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려할 때마다 ‘유엔사’가 결사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저지하기 시작했다. ‘유엔사’는 자신들이 비무장지대관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군사분계선 통과승인은 군사정전위의 권한이다. ‘유엔사령관’은 남측비무장지대 출입승인권만 있다. 그러나 군정위는 1994년 인민군의 일방적인 탈퇴로 무력화되었다. 즉 군정위가 없으므로 군사분계선 통과를 승인할 권한자가 없다. 따라서 남북당국이 합의하면 군사분계선통과는 별개의 승인절차가 필요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사’는 비무장지대출입승인을 불허하여 군사분계선까지 갈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유엔사’의 관할권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첫째, ‘유엔사’가 비무장지대관할권을 주장하는 역사는 정전협정이전 1950년 10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38선을 돌파한 뒤로부터 일주일 뒤인 1950년 10월 7일 유엔총회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언커크)의 창설을 결의했다. 이 결의는 북측에 대한 군사점령통치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총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결의는 유엔헌장을 위반한 것이었다. 헌장 제12조 1항은 안보리가 “어떤 분쟁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부여된 기능을 행사하고 있는” 동안 총회가 그러한 분쟁이나 사태에 대해서 “어떤 권고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안보리가 이미 한국의 무력충돌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총회는 헌장을 위반한 것이다.
이 결의에는 언커크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임시위원회가 ‘유엔사령부’와 협의하고 조언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레이크석세스에서 결성된 언커크창설준비위원회는 10월 12일 언커크가 이 지역의 행정을 ‘고려하게 될 때’까지 점령된 지역의 통치권을 ‘유엔사’에 임시로 위임하는 내부결정을 했다. ‘고려할 때까지’란 유엔총회에서 명시한 ‘도착할 때까지’로 해석될 수 있었다. 따라서 언커크가 서울에 도착한 11월 26일에 ‘유엔사’에 위임된 점령통치권은 종료되어 언커크로 환수된 것이다. 그러나 그 ‘임시’가 1954년 38선 이북지역 행정권이양 때 부활했고, 1963년 대성동마을에 대한 행정권논의에서 재등장했고, 2000년 남북관리구역합의 때 다시 부활하여 오늘까지 ‘유엔사’의 관할권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38이북지역에 대한 점령자지위를 위임한 언커크준비위원회 결정은 성립요건의 결여로 부존재함은 물론이고 설령 그 존재를 인정한다해도 효력요건을 다하여 1950년 11월 26일 소멸되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위임권자인 언커크마저 1973년에 해체되었다.
둘째, 1953년 정전협정을 ‘유엔사’관할권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정전협정서명자인 ‘유엔사’와는 별개로 한국군,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정전협정의 법적지위가 존재하는지 의심된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정전협정의 서명자가 아니다. 또 정전협정은 한국에서 비준‧발효되지도 않았다. 한국의 어떤 법률도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조문이 없다. 그 결과 정전협정에 의한 피해가 발생해도 대법원은 물론 헌재에서조차 법적구제를 받을 길이 없다. 이처럼 정전협정은 한국의 헌법과 법률밖에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정전협정의 법적지위는 부존재 한다.
그럼에도 일부학자는 1950년 7월 14일 이승만이 국군통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했고 이양된 통수권에는 정전협정체결권도 포함된다는 논리를 끌어온다. 그러나 1950년 7월 14일 이양은 전란을 맞은 위급한 시기란 점을 감안해도 당시 헌법적 절차를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어 조약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다.
첫째, 국무회의 의결과 국무위원의 부서(副署)가 없다. 당시 헌법은 군사적 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해 반드시 국무회의의결을 거쳐야 하며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副署)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둘째, 오해와 착오이다. 당사자의 동의로 조약이 체결되었다 할지라도 조약체결기관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진정한 동의로 보지 않는다. 이승만의 서한에서는 국군통수권(command authority)을 이양한다고 했으나 무초의 답신에서는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 authority)을 이양 받는 것으로 했다. 또한 이승만은 유엔군총사령관(Supreme Commander United Nations Forces)에게 이양한다고 했는데 무초의 서신에서는 육군원수(General of the Army)맥아더가 이양을 받는다고 했다. 당사자명칭의 오류이다. 여기서 누가 당사자라는 논쟁은 중요치 않다.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결국 서로 다른 내용을 합의한 것이다. 즉 동의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군통수권이양사실이 의심되므로 이에 근거한 정전협정서명자로서 한국의 법지위의 존재 역시 의심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엔사’ 스스로 점령자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4년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유엔사’의 한국정부로의 행정권이양시 ‘유엔사령관’이 이승만에게 보낸 공한에서 ‘유엔사’는 38선이북-군사분계선이남사이의 지역을 ‘유엔사의 군사점령아래(under military occupation by the UNC)’에 있다고 통보했다. Text of my letter to President Rhee. From Tokyo CINCUNC To Secretary of State No:C-69271, Aug 10, 1954 (Army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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