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의 이야기 덫에 걸린 반쪽이의 ‘DMZ짝사랑’2004/12/02
이시우는 사색을 통해 정리된 것을 실천에 옮긴다. 자기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자기 발로 목적지를 향한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직 ’독창‘이다.
예의 낮은 목소리 탓일까?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은 흘려 듣고있다. (사진=이시우)
이시우의 이야기 덫에 걸린 반쪽이의 ‘DMZ짝사랑’…
반쪽이> 이시우의 獨唱 그리고 絶唱
일요일 새벽 2시, 이시우를 만나러 강화도로 가며 떠오른
‘DMZ짝사랑’
이시우는 왜 낮은 목소리로 거푸 ‘신호’를 전하는가?,
그에게 이 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장터이기 때문이다. 원치않은 전쟁이 멈추어 섰을 뿐이다. 50여 년 세월은 사람들의 귓전에서 포성을 멀리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오감의 작동은 멈추어 서지 않았다. 그의 감각세포가 남보다 예민한, 생물학적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현장’을 많이 만져온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는 직관으로 늘 깨어있다. 또 그 직관을 뒤잇는 확인작업으로 그의 수족은 늘 분주하다.
이시우 사진작품의 공간공포 속으로…
지난 1년 여 동안 여러번 그의 사진을 접하면서 설핏 공간공포를 느꼈다. 새벽안개 내리는 강화도 바닷가의 바이올릿공간의 공포, 팥죽색 녹이 슨 철마 주변 들녘에 깔린 녹색공간의 공포, 철새 몇 마리의 자유비행을 무심한 양 점점이 찍어 담은 비무장지대 파란색 하늘의 공포를…
그러나 이시우와 대화 하면서, 그가 담아낸 비무장지대라는 영구할 것만 같은 부동적 실존의 절대공간 속을 서두르지 않고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 절대공간 속에 켜켜이 쌓아올리며 장치해 놓은 이야기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 그의 사진작품 속의 공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 공간엔 해리포터보다, 반지의 제왕보다 더한 판타지와 어드벤쳐로 꽉 채워져 있음을 느낀다.
요즘들어 틈만 나면 자유로를 타고 거슬러 올라간다. DMZ를 짝사랑하게 된 반쪽이의 ‘로맨스그레이’, 못말리는 늦바람을 불러 일으킨 현장사람 가운데 한 명이 이시우다.
새벽 5시, 출발 전 짧은 덕담과 거친 수채화
“길을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겠지요…”
그가 보따리를 꾸리기 전인 6월 19일(토) 아침, 그의 편지를 읽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핸드폰이 없다. 오늘 아니면 그가 날리는 비둘기의 입만 쳐다보아야할 터. 서영준 화백에게 전화를 했다.
“홀로 떠나는 그에게 막걸리 한 사발과 안주로 덕담을 건네고파”. “날자와 독존이를 데리고 가지요”. 빗길을 달려간 일요일 새벽, 이시우의 집 앞마당엔 무릎까지 자란 들풀이 어둠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그의 얼굴은 여느때보다도 더 평온하고 맑아보였다. 차를 따르는 그의 머리 너머로 까만 먹구름이 일렁이는게 보였다. 태풍 얘기를 꺼내다가 걱정 투의 말은 목구멍으로 되넘겨버렸다.
“몸이 좋아 보이네요” “네, 그리고 집을 봐줄 사람도 구했어요. 책도 읽고 공부하기는 좋거든요” 그는 긴 시간 동안 집을 비울때면 집을 봐줄 사람을 찾곤한다. 그의 서가엔 통일 관련 서적 외에도 역사, 미학, 노동, 시집과 각종 자료들이 빼곡하다.
“이 선생, 왜 하필 강화도로 들어왔어요?(필자는 파주를 통일의 앞마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이 앞으로 중요한 지역이 될 것 같아서요” 그는 앞으로 전개될 통일생태계에서 강화도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회벽이 떨어져 나간 천정을 올려다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요즘 사진 찍는 일에 더하여 공부와 사색에 열심이다. 지금은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통일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준비할 시기이다.
이시우는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끝자락 쯤에 있다. 그는 미래세대인 통일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 부여잡을 동앗줄을 잇기위해 매듭을 만들고 있다. 공부와 사색을 통해 그 일을 게으름없이 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듯하지만 오지인 이곳에 또아리를 튼 것이리라.
“낡았지만 강화도 전통 가옥으로 백년이 넘었나봐요” 그의 집 본채는 경기, 충청, 평안도의 전통적인 농가에서 볼 수 있는 용마루가 기역자로 꺽인 곱은자집(평안도:꺽은집)으로 안방-대청-건넌방이 일자형으로 잇대어 있고 부엌이 안방에 붙어있다.
특이한 것은 건넌방에도 따로 군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그 아궁이 위에는 대청을 잇댄 한 자 높이의 층이 진 쪽마루가 붙어 있다.
사람이 누으면 딱히 좋은 이 격자 유리창이 있는 쪽마루에서 오래전 이집의 주인은 집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들녘의 곡식이 자라는 것을 내다보며 오수를 즐겼음직 하다.
이시우는 이 한 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서예를 익히고 있었다.
화선지엔 ‘UN司 解体를 위한 명상걷기‘란 예서체의 글이 여럿 보였다. 그가 떠날 때 입고 있었던 하얀 반팔 상의에 쓰여진 글도 그가 쓴 것이리라. 그는 사색을 통해 정리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며 자기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자기 발로 목적지를 향한다. 그래서인가. 이시우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직 ’독창‘이다. 예의 낮은 목소리 탓일까?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은 흘려 듣는다.
그러나 이번 그의 獨行은 獨尊이 아니다. “몇일동안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역시 반대보다 더한 것은 무관심이다. 나는 절대 무엇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거나 준비없이 추진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일은 왠지 급하다.” ‘유엔사 해체’ 문제의 절박함을 인식한 그와 세상과는 아직 비전도 물질이 상존하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전도체가 되기로한 이시우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좀 주무시다 가세요” 비오는 새벽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새벽길을 달려온 나그네에게 집을 나서며 던지는 배려다.
성큼 첫걸음을 떼어놓는 그의 높다란 배낭 위에 안녕을 살포시 얹어 놓았다.
집주인을 떠나 보낸 무릎 높이로 자란 앞마당의 들풀이 종아리에 처억 감겨온다.
(글=반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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