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유엔사’가 남북교류 막고 있다. 경기국제평화센터출범기념토론회-민중의소리
“실체 없는 ‘유엔사’가 남북교류 막고 있다”
경기도 ‘국제평화토론회’ 개최…“DMZ 평화적 활용 위해 ‘유엔사’ 문제해결 돼야”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1-01-16 17:19:06
수정 2021-01-16 17: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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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판교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경기 국제 평화센터 출범 기념 제 1회 국제평화토론회 2부 DMZ의 평화적 활용과 지방정부의 역할 토론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와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2021.01.15
15일 오후 판교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경기 국제 평화센터 출범 기념 제 1회 국제평화토론회 2부 DMZ의 평화적 활용과 지방정부의 역할 토론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와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2021.01.15ⓒ경기도 제공
최근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도라산역 집무실 설치를 불허하는 등 남북교류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유엔사령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유엔사’가 유엔헌장 등에 근거하지 않는 실체 없는 기관”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15일 오후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 글로벌R&D센터에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활용과 유엔사 관할권 문제’라는 주제 하에 열린 ‘제1회 국제 평화토론회’에서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토론이 진행됐다.
경기국제평화센터 출범을 기념해 열린 이번 토론회는 유엔사의 지위를 짚어보는 첫번째 세션과 DMZ의 평화적 활용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모색하는 두번째 세션으로 진행됐다.
첫번째 세션에는 이시우 사진작가가 주제발표를 맡고, 천시몬 코리안폴리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원식 민중의소리 국제관계 전문기자, 김동석 미주한인 유권자연대 대표,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두번째 세션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주제발표로,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영운 김포분단체험학교 대표, 박상진 부산외대 교수, 치사카 준 일본 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이 토론을 진행했다.
“근거 없는 ‘유엔사’ 재활성화…종전 후에도 주둔 하려는 목적”
‘유엔사 지위에 관한 현황과 쟁점’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이시우 사진작가는 “결론부터 말하면 유엔사의 법적 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유엔사는 유엔의 기관이란 측면에서도 성립요건이 결여돼 있고, 미국통합사령부란 측면에서도 법적 성립요건이 결여된다”고 지적했다.
평화운동가로 유엔사 해체 활동을 해온 이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각국의 조치를 ‘권고’했을 뿐이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권고’는 정치적 선언일 뿐 법적 지위는 없다”면서 “참전국의 조치는 각국의 조치일 뿐, 유엔의 조치로 인한 유엔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참전은 “무력공격의 격퇴와 그 지역에서의 국제평화 및 안전의 회복을 위해 대한민국에 대해 필요한 원조를 할 것을 회원국에 권고한다”는 안보리 결의 84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유엔헌장은 ‘권고’와 ‘조치’를 구분하고 있는데, ‘권고’는 군사적 행동이 아닌 평화적 수단만을 권고할 수 있으며 무력사용을 위해서는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즉, 한국전쟁의 참전은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국의 조치이며, 이에 따라 ‘유엔사’도 유엔의 조치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작가는 또 “유엔사 명칭 또한 당시 안보리 결의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미국이 주장한 명칭은 ‘미국통합사령부’”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법적 조치 없이 지금까지 유엔사라고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는 1966년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성에 보낸 전문에서도 ‘유엔사령부라는 문구는 어떤 유엔결의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혀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또 1994년 유엔사무국 법률과는 ‘유엔법률백서’에서 유엔사란 명칭이 “잘못된 이름”(misnomer)이라고 명시했다.
‘유엔사’라는 이름은 유엔결의에 따른 ‘미국통합사령부’의 첫 보고서에서 ‘유엔사령부를 창설했다’면서 첫 등장했다. ‘유엔사’라는 이름에는 미국의 법 절차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 작가는 보고 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 참전을 ‘전쟁이 아닌 경찰행위’로 규정했는데, 공식적인 선전포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통합사령부’라는 이름을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유엔사의 ‘미국통합사령부로서의 지위’도 근거가 없다는 지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작가는 유엔사의 유엔기 사용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엔기 사용 허가는 안보리의 월권이었다”면서 “유엔헌장에 따르면 유엔기의 사용권한은 오직 사무총장에게만 있다. 그런데 사무총장 위임도 없이 안보리가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93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 Ghali) 유엔사무총장은 판문점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유엔사에 유엔기를 게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 작가는 정전협정 주체로서의 유엔사의 지위도 정전협정 자체의 형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는 만큼, 그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이 같은 여러 문제에도 미국이 유엔사를 재활성화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종전 후에도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려는 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시몬 코리안폴리시 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유엔사의 재활성화는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인 봉쇄정책의 틀에서 보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봉쇄하는 동시에 동맹인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또 미국이 미래에 있을 한국전쟁의 종식 이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준비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천 연구원은 “남북교류협력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남북관계의 퇴행과 혼란이 지속되는 근본 원인은 유엔군사령부의 노골적인 방해 때문”이라며 “이는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자국의 국제정치적 이해를 추구한 것으로, 한반도의 장기분단을 자국 이익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원식 기자도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에도) 유엔사를 단지 정전협정 준수만을 위해 계속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발상은 그 의도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면서 “전작권을 다시 한국에 넘겨주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이를 철회해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프레임과 모양새를 만들어 놓겠다는 미국의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정부가 나서 DMZ 내 권한 등 실질적인 부분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정전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엔사의 DMZ 일대 관할권 등 권한을 국방부가 포괄적으로 이양받을 수 있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고는 남북교류가 근본적으로 제약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엔사가 가진 여러가지 문제에도 당장 유엔사를 해체하기 어려운 만큼 실질적인 외교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성우 경기도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엔군 사령부의 문제는 국제법의 문제이기 이전에 힘의 현실의 문제”라며 “남북한이 무력충돌과 군사적 긴장을 억제하고 평화적인 교류와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 외교를 우선 대안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MZ 문제, 중앙정부가 다 할 순 없어…지방정부에 힘 실어줘야”
‘DMZ의 평화적 활용과 지방정부의 역할’라는 주제로 진행된 두번째 세션에서는 ‘국제관계 상 쉽게 나설 수 없는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제발표를 맡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DMZ 문제는 국제 관계 때문에 중앙정부가 풀기 어렵다”면서 “그런데 현재 제도는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DMZ와 남북교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독일 통일 전 동·서독이 1972년 기본조약의 부속의정서인 접경지역지원법을 통해 접경 지역을 지원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중앙정부 간이 아닌 지방정부를 통해 조금씩 접근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했다.
15일 오후 판교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경기 국제 평화센터 출범 기념 제 1회 국제평화토론회 2부 DMZ의 평화적 활용과 지방정부의 역할 토론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토론을 하고 있다. 2021. 1. 15
15일 오후 판교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경기 국제 평화센터 출범 기념 제 1회 국제평화토론회 2부 DMZ의 평화적 활용과 지방정부의 역할 토론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토론을 하고 있다. 2021. 1. 15ⓒ경기도 제공
이어진 토론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도 “미국이나 유엔 제재의 틀을 벗어나 남북이 자주적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는 시대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일을 중앙정부가 다 할 수는 없다”면서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민감한 시기에도 남북교류의 맥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지방정부가 남북교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동의했다.
이 부지사는 “특히 경기도와 같은 접경지역 지방정부는 주체적으로 북한과 교류하며 제 역할을 해야 하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지사는 최근 도라산역 집무실 설치가 유엔사에 의해 불허된 것에 대해서는 “우리 땅에, 그 관할 지자체인 경기도마저 군사 목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사무집기를 설치하는 것조차 유엔사의 허락 없이 하지 못한다는 것이 엄혹한 현실”이라며 “유엔사가 DMZ의 평화적 활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유엔사의 존재와 모순되는 것이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지사는 “경기도는 통일부, 국방부, 다른 지방정부와 협력해 군사적 성격의 극히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우리 정부의 통지만으로 통행이 가능한 신고제 방식으로 운영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치사카 준 일본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이 영상을 통해 참석해 유엔사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일본 내에서 진행되는 주권 침해 사례와 이에 대항해 벌어지고 있는 시민운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념사를 통해 “한반도 통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라면서 “경기도가 어떻게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인지, 공식적인 업무 공간도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재의 현실 등 문제를 해결하고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평화·번영의 길을 향해 가야할 때”라고 남북교류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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