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인천시인터넷신문 i-View 2020.3.11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발간일 2020.03.11 (수) 14:11
강화에 둥지튼 평화운동가 이시우 작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에 작업실을 둔 사진작가 이시우, 그에게는 평화운동가, 국제문제전문가, 저술가, 통일운동가라는 여러 명칭이 따라다닌다. ‘자신의 본업은 사진 작가’라고 잘라 말하는 이시우 작가를 기자는 평화운동 사진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일명 ‘똑딱이 사진 작가’ 로 알려진 그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미국에서 전시됐고 국내 유명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만큼 사진작가로서 위치도 확고하다.
그가 수상한 박종철인권상(2007), 사월혁명상(2008), 늦봄통일상(2010) 등은 그가 단순한 사진작가가 아닌, 인권 통일 평화운동가임을 말해준다.
▲평화운동가 이시우 작가 사진 백화현
현장이 바꾼 그의 삶
이시우 작가는 196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과 중고등 학교 시절을 보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사진이 너무 재미있어서 신구전문대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수석을 할 만큼 사진에 대한 애착도 깊었다. 그런 그의 삶과 철학을 바꾼 것은 1987년 6월 항쟁과 현장에서 만난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그가 무료로 사진을 가르치던 곳에서 과제로 내 준 숙제에 구두닦이를 했던 한 청년이 벽에 박힌 대못을 찍어왔다. 그가 사진의 의미를 묻자 ‘왕초가 걷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가슴에 억울함이 쌓여 구두통을 걸어뒀던 벽의 대못을 찍었다‘는 설명에 사진에 대한 철학과 피사체애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가난한 자신이 사진을 찍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해 카메라를 놓은 채 청계 피복노조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93년 그가 지지하던 민중 후보가 패배하자 그와 함께했던 이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좌절한 그는 무작정 자신을 이끈 지인과 철원을 여행한다. 다시는 카메라를 잡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가 어느 순간 지인의 카메라를 빼앗아 셔터를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다시 카메라를 잡은 그는 혼자 민통선 기행을 시작하며 민통선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철원 이평리의 김씨 할아버지가 죽었다던 지뢰 밭을 찾아갔을 때 들꽃 한 송이가 지뢰에 기대 피어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민통선 사람들과 분단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민통선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매번 출입증이 필요했고 통금 시간을 지켜야 했다. 상처가 많은 민통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카메라를 들고 군사접경 지역을 어슬렁거린다는 이유로 수시로 군사령부에 불려가 취조를 받기도 했다.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의 조디 윌리엄스를 알게 되면서 대인지뢰의 위험성과 피해 사례를 알리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DMZ 근처에서 주로 작업하던 그는 2007년 주한미군 시설과 훈련 상황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됐었다. 그는 단식과 창작 활동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2008년 무죄를 받고 2011년 대법원에서 완전히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서울에서 살던 그는 2000년 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에 폐업한 민박집을 빌려 작업실을 만들고 가족과 이사했다. 비무장지대와 정전협정 활동을 하면서 한강하구가 자리한 강화도의 중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한강하구를 평화지대로 만들면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국방부와 유엔사를 찾아가 정전협정 1조 5항 ‘한강하구는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조항에 따라 ‘서해배띄우기’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설명하고 합법적인 행사 허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강화 더리미
철저한 이론에 바탕을 둔 사진작가
이시우 작가는 금강산 미학 강의나 생태 평화강연을 하며 피사체를 카메라로 담기 전에 철저하고 꼼꼼하게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제가 현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부입니다. 자본과 권력, 정치와 경제를 통일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에 대해 몇 년째 공부중입니다. 국제 정치와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한반도의 평화 문제니까요.”
사진 임근재
그에게 사진 작업은 세상의 가장 아픈 곳과 함께 하는 것,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픈 곳을 직시하고 함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다. 세상의 중심도 아픈 곳이다. 아픈 곳에 서는 것은 세상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바로 그 아픈 곳으로 이끄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고 ‘사진 뿐만 아니라 예술은 지식의 완성’ 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진정한 평화운동가가 아닐까?
*이시우 작가는 손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www.leesiwoo.net’
참고 : <민통선 평화기행> (창비),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도서출판 말)
이명옥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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