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가 이시우와 함께한 오키나와 평화기행 – 강신천님의 글, 오마이뉴스, 통일뉴스
평화운동가 이시우와 함께한 오키나와 평화기행
4일간의 오키나와 평화기행
18.06.28 14:14l최종 업데이트 18.06.28 14:15l
강신천(mumu)
남·북·미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 오키나와의 활동가들의 초청을 받은 이시우씨의 집회 연설 및 강의에 동행하기 위해서 나는 함민복 시인과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이시우씨는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에서 강의하였고 후텐마기지건설반대집회와 6.23평화시민집회에서 연설하였다. 또한 카데나기지 철수집회와 헤노코기지 건설반대연좌농성에도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고 일일이 통역하며 세심하게 안내한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한 3박4일의 일정을 소개한다. – 기자 말
가데나기지는 철수하라!
카데나기지 앞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신호대기 중이던 미군들을 향해 미군은 필요 없다고 소리치고 있다.
▲ 카데나기지 앞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신호대기 중이던 미군들을 향해 미군은 필요 없다고 소리치고 있다.
ⓒ 강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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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스피커와 피켓을 챙긴 나가미네 부부를 따라 집회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카데나기지 정문 앞에 모여들었다. “집회는 두 시간동안 진행되는데 경우에 따라 약 20명부터 100여 명이 참여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의 의지와 계획에 의해 참여합니다. 이상한 것은 집회가 있는 날에는 들어가는 차만 보이고 나오는 차는 없어요. 아마 미군들이 우리 집회를 의식하는 것 같아요.” 머리와 수염이 백발인 노인이 우리에게 설명했다. 오늘은 30여 명의 참여자들이 확성기와 깃발, 손 피켓을 들고 출근 중인 미군 병사를 향해 소리쳤다. “WE DON’T NEED!” 집회에 참석한 우리도 열심히 따라 외쳤다. “CLOSE KADENA BASE!”
정문 앞에는 경비원들이 시위대를 주시하며 교통을 통제하였고 바닥을 따라 노란 라인이 그어져 있었는데 시위대는 그 라인을 넘어서지 않았다. 나는 사진기를 들고 라인을 슬쩍 넘어 다녔다. 그럴 때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비요원이 나를 제지하며 ‘옐로 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가미네씨는 그의 집에서 열린 저녁 환영모임에서 “오키나와에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혁명(촛불혁명)이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2006년 퇴임하고 고향인 오키나와에 정착하게 된 부부는 시민들과 협의하여 금요일 아침 미군의 출근시간에 맞춰 열리는 카데나기지 철수를 위한 집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집회는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카데나기지는 대형 폭격기는 물론 F-15, F-22스텔스를 포함한 전투기와 수송기 등이 수시로 이착륙하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지다. 잔디가 곱게 깔리고 쾌적해 보여 마치 잘 정돈된 공원처럼 보이는 이곳이 사실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가득한 장소다. “이 마을의 부지 중 83%가 미군기지입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나머지 17%의 작은 지역에 살고 있지요. 이곳 지하에는 아마 아시아에서 가장 큰 탄약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통역을 하는 평화 활동가인 오키모토 히로시(沖本裕司)씨는 커다란 기지 한쪽에 밀집된 기형적인 형태의 마을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헤노코로 확장 이전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 헤노코로 확장 이전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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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강정마을 ‘헤노코’
헤노코로 이전하는 미 군사기지건설비용 100%를 일본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후텐마기지를 확장하려는 진짜 의지의 실체는 미군보다 오히려 일본군인지 모릅니다.” 헤노코의 캠프 슈와브 정문 앞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미군기지반대농성캠프가 있다. 길을 따라 하얀 천막을 치고 후텐마를 방문하는 전 세계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중심이다.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요. 2014년 군용기가 국제대학건물에 추락하는 등 많은 민원이 발생하자 기지를 옮기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전이 아니라 철수하라고 요구합니다. 시민의 70%가 넘어요” 그들이 옮기려는 기지인 헤노코는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듀공’이 서식하는 곳이며 오키나와의 산호초가 매우 다양하게 자라는 곳이다.
연설에 나선 이시우씨는 “평화 만들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평화 지키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기에 평화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평화를 강화시키기 위해 실천하다 보면 밖의 평화를 위해 싸우느라 내 안의 평화가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는 것은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알게 된 것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즐기는 것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체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평화를 즐기는 자는 무적입니다. 우리가 그런 내공을 가질 때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라며 투쟁의 승리를 기원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헤노코기지의 거대한 방파제 근처에는 공사크레인이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해상시위를 하고 돌아 온 시민들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기지건설 반대 헤노코 캠프에서 기지건설의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던 활동가는 미군보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기지 확장을 더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우리가 방문한 날도 헤노코기지의 거대한 방파제 근처에는 공사크레인이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해상시위를 하고 돌아 온 시민들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기지건설 반대 헤노코 캠프에서 기지건설의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던 활동가는 미군보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기지 확장을 더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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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시설 공사가 진행 중인 헤노코 캠프에 방문한 순간 제주의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건설 당시 정부는 민군복합항이라고 주장하며 건설하였지만 현재 민간인을 통제하고 있는 강정해군기지 앞에도 헤노코캠프와 같은 ‘강정마을캠프’가 있다. 헤노코 바다엔 새로 조성한 방파제가 하얗고 길게 늘어져 있다. 천막엔 그 동안 싸워 왔던 기록들이 전시되었지만 에메랄드빛으로 가득한 바다를 가로지른 방조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국제대학강의
‘이시우초청강의’는 의제를 발표하고 발표가 끝날 때마다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오키나와 방문의 주요 이유였던 이시우의 강의 의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근래에 일어난 매우 중요한 새로운 흐름을 핵을 보유한 김정은의 의도에 의한 것일 수 있으며 이를 ‘공격적 평화주의’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공격적 평화주의는 아직까지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행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트럼프라는 정치 이단아가 나타나 갑자기 일어난 실수가 아니고 “미국 중심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던 힘의 균형이 조금씩 약화되는 과정이며 트럼프로 대변되는 자국의 이익에 민감한 정부가 들어선 미국이 취한 중요한 변화”라고 말한다.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3국 정상(김정은·트럼프·문재인)의 협상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유라고 말한다. 평화를 위해서 핵을 만들었다는 김정은의 태도를 읽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시선이라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주장하는 유엔사령부의 실체가 유엔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모순투성이의 억지 주장일 따름이며 사실은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미국 패권주의의 불편하고 부끄러운 모습일 따름이라고 말하였다. “유엔의 어느 자료에도 유엔이 한반도전쟁에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했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사령관이던 맥아더에 의해 유엔군사령부라고 명명되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한다.
강의를 들은 참가자들은 집중했고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질문이 이어졌다. 유엔사령부가 “맥아더 사령관의 셀프작품”이라는 말이 통역될 때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격적 평화주의’로 표현된 생소한 이론이 잘 진행되어 한반도의 전쟁이 종결되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오키나와의 군비확장문제도 멈추기를 기대한다며 이렇게 극적 반전이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오히려 부러워했다. 오키나와는 500년 동안 류큐왕국으로 있었고 줄곧 한반도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1872년 일본의 작은 현으로 재편될 때부터 일본의 작은 섬이 되었다.
오키나와 국제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시우 씨.(오른쪽에서 두 번 째)
▲ 오키나와 국제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시우 씨.(오른쪽에서 두 번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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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 국제 반전 오키나와 집회
2018년 6월 23일 아베총리는 오키나와 평화공원추모식에 참여하였다. 그가 지나가는 길엔 경찰이 일렬로 서 있었다. 많은 경찰들 사이로 깃발을 들고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민단체들은 아베수상의 참배는 물론이고 그의 오키나와 방문 자체를 반대했다. “아베는 미국의 편에 서서 오키나와를 기만하는 이중적이고 비겁한 정치인이에요. 그가 정말 아시아의 평화를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베수상을 태운 차량들은 철통 경비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건너편에서 격렬하게 경찰과 대치하던 다카하시 토시오(高橋年南)씨, 도미야마 마사히로(豊見山雅裕)씨와 함께 오키나와평화집회에 참석하는 버스에 올랐다.
혼백의 탑 광장에서 사람들은 나무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조용한 노래, 조용한 연설 그리고 조용한 집회는 세 시간가량 이어졌다. 집을 설계하다 이제는 평화를 설계한다는 건축가, 50년을 시민사회를 위해 헌신한 일명 레지스탕스 목사 부부, 폴란드에서 유학 온 유학생, 조선인 교포4세, 한국전과 월남전과 오키나와 전쟁을 모두 경험한 늙은 미군도 집회에 참석하였다. 연설에 나선 이시우씨는 “김정은 위원장은 핵을 폐기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말하며 “핵을 평화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한 남북미 관계를 비롯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관계속에서의 일본의 입장과 평화운동의 과제를 평화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국제반전오키나와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사진가 이시우 씨와 통역중인 평화 활동가 오오무라(大村)씨.
▲ 국제반전오키나와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사진가 이시우 씨와 통역중인 평화 활동가 오오무라(大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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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마지막 하루를 문학평론가인 아키라(玉代勢 章)씨 집에서 지냈다. 나하시에 있는 오래된 작은 집이다. 아키라 씨는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혼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와 소통하였다. 그는 한국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김원일씨의 작품 ‘어둠의 혼’을 스스로 번역해 읽으며 받은 감동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저주하고, 나는 아버지 죽음보다 배고픈 것이 더 서럽고,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어요.” 남북대결을 핑계로 만들어 낸 민중의 비극적 풍경이다. 이 잔인한 풍경을 설명하던 그는 울고 말았다. “울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울어요.”
우라소에 성을 방문한 일행. 맨 왼쪽부터 타마요세 아키라 씨.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이시우. 함민복.
▲ 우라소에 성을 방문한 일행. 맨 왼쪽부터 타마요세 아키라 씨.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이시우.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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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일어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민중을 억압하던 거대권력의 실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회복 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하였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삶을 폐허로 만든 이데올로기의 벽도 그저 몇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으면 사라질지 모른다. 국가를 움직이는 거대한 폭력이 사실 작은 기만에서 시작된 것이며 동족을 가르는 비극을 만든 공포의 실체가 우리와 동일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사실 앞에 서 있다. 오랫동안 미군과 일본정부 즉 제국주의와 맞서 싸워 온 오키나와 사람들도 다만 “우리가 사는 방식을 존중해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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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에도 다른 제목의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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