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침묵하면 비극은 반복된다, 4.3 70주년 사진전 ‘소리 없는 기억’-민중의 소리
[전시]우리가 침묵하면 비극은 반복된다, 4.3 70주년 사진전 ‘소리 없는 기억’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7-12-27 00:00:47
수정 2017-12-27 00:00:47
이 기사는 73번 공유됐습니다
이시우_큰곶검흘굴
이시우_큰곶검흘굴ⓒ제주4.3평화재단 제공
벌써 70년이 지났다. 죽음의 그림자가 제주를 휩쓸었지만, 사람들은 침묵했다. 나에게도 그 그림자가 닥쳐올까 눈을 감았다. 그렇게 우리가 입을 닫고 눈을 감으면서 공포와 비극은 모습을 달리하며 노근리 학살 등 수많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1980년 광주 학살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7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모두가 침묵했지만 진실을 가릴 순 없었다. 7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알리려는 피해자들의 투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4.3 70주년 사진전 ‘소리 없는 기억’은 우리의 침묵 속에서 죽어간 이들과 진실을 알리려는 피해자들의 투쟁 등을 전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2명이 89점의 사진에 담아낸 기록이다. 4.3평화재단은 이번 사진전을 기획하기 위해 동아시아 민주평화인권 네트워크 MOU 협약을 맺고 있는 5?18기념재단,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노근리평화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사진작가를 추천받아 그 가운데 12명을 초대했다.
김기삼_침묵
김기삼_침묵ⓒ제주4.3평화재단 제공
김흥구_동자석
김흥구_동자석ⓒ제주4.3평화재단 제공
이시우 사진가는 제주 4.3 당시 남로당 구좌면당의 아지트였던 제주시 구좌읍 큰곶검흘굴을 찍은 사진을 통해 제주4.3특별법에서도 제외된 남로당 희생자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이전에 정통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란은 정통정부를 전제로 한다. 즉 정통정부수립이전엔 반란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4.3은 남로당이 주도했다할지라도 반란이 될 수 없다. 당시 남로당은 정부수립의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세력일 뿐 반란세력일 순 없는 것이다. 그들 역시 제헌주체인 주권인민으로서, 헌법전문에 명시된 ‘대한국민’ 이다. 정부수립 후 포용했어야할 경쟁세력을 배제함으로써 4.3은 반란사건임을 강요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제정된 4․3특별법. 그러나 2001년 헌재는 4.3희생자 중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 위배되는 자들을 제외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은 4.3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는 소급입법의 오류이다. 에드가 알란 포우는 말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기본적인 것을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헌재는 기본적인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4.3특별법하에서 다시 배제되는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제주남로당 구좌면당의 아지트로 쓰였다던 큰곶검흘굴. 주권인민의 흔적들은 말한다. 여기에 사람이 있었다!”
이밖에 소개(疏開)된 마을의 말없는 증언자 퐁낭(팽나무), 꽃다운 청년과 순박한 이웃들이 희생자가 되고 집단 매장된 사실에 대해 묵언으로 묻는 초상화, 국가 폭력에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의 말없는 투쟁 등을 담아낸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사진전은 내년 3월23일까지 열리며 전시 관련 문의는 제주4.3평화재단 공원관리팀 (064-723-4349)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