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 선택, 파쿠비우스냐 레닌이냐- 민중의소리 기고글

항쟁의 선택, 파쿠비우스냐 레닌이냐

이시우 사진가

발행 2016-11-09 11:36:36

수정 2016-11-09 11: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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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이 시작되었다. 범상치 않은 공기가 전국을 배회한다. 집회・시위란 법적용어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항쟁이란 역사적용어가 심장에서 박동치기 시작했다. 항쟁이란 낡은 공권력의 시각으로 보면 질서파괴적 시위, 폭력시위로 구분되는 불법행위이다. 기본권의 제약을 감수하고라도 개인 간에 생기는 분쟁을 조정・강제하기 위해 권력을 위임한 것이 공권력이다. 그러나 그 위임을 철회하고 공권력을 국민의 손에 환수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세우고자 함이 항쟁의 본질이다. 항쟁은 권력을 주인이 환수하는 역사의 시간에 호출되는 용어인 것이다. 그리하여 항쟁의 근본문제는 권력이다.

항쟁의 양

항쟁은 시간적측면에서 보면, 민중의 힘이 위임된 공권력을 넘어서는 순간 시작되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순간 완성된다. 항쟁의 법질서적 형식인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일정한 물리적 힘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언론・출판의 경우와 다르다. 따라서 항쟁의 척도는 힘이다.

힘을 정치적으로 번역하면 지배력이다. 나는 ‘order’라는 단어에서 항쟁의 발전단계의 탁월한 유비를 발견한다. ‘order’는 ‘요청’, ‘명령’, ‘질서’등 여러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 말을 힘, 즉 지배력의 발전단계에 따라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요청’은 기존의 법질서의 틀에서 위임된 권력에게 소극적 힘을 행사하는 단계이다. ‘명령’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위임된 권력자로부터 권력을 환수하는 적극적 지배를 행사하는 단계이다. ‘질서’는 권력의 환수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권력이 요구하는 체제를 내면화시키는 단계이다. 질서란 외형적인 강제가 없이도 권력이 행사되는 내면화된 권력이다. 새로운 질서를 창출함으로써 항쟁의 목적은 완수된다. 이를 ORDER1(요청), ORDER2(명령), ORDER3(질서)라고 명명하자. 작년부터 시작된 민중총궐기는 1년간 ORDER1(요청)단계였다. 그러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1월 12일 정오까지 박근혜하야를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함으로써 ORDER2(명령)단계에 들어섰다.

항쟁을 공간적 측면에서 보면 ‘법적공간의 변경’을 의미한다. ORDER1(요청)은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ORDER2(명령)은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을 변경, 극복한다. ORDER3(질서)는 새로운 법적공간을 창조한다.

작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차벽은 조선일보-광화문네거리-세종대왕상-경복궁 앞에 4중저지선을 형성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29일에는 경복궁에, 11월 5일에는 세종대왕상과 경복궁에만 차벽을 설치하여 저지선의 절반이 후퇴했다. 시민들은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광화문광장이 열림으로써 벅찬 해방감과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광화문저지선은 물론이고 경복궁저지선도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청와대 주변의 원천봉쇄작전은 경찰청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실이 지휘한다. 경호실장은 재량에 따라 경호구역을 설정하도록 되어있고 경호대책위원회에 포함된 경찰청이 업무분장에 따라 대통령경호작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집시법에 따르면 청와대 100m밖에서는 모든 집회가 가능하다. 청운동사무소가 집회의 마지노선이 되는 이유다. 경호구역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이 분명함에도 법률에 구체적 근거없이 경호실장이 상황에 따라, 그것도 비밀로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에서 로켓포 등 군사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이상 공간상으로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사직로-율곡로까지 경호구역을 설정하여 집회시위는 물론 통행조차 막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법적 테두리에서 진행되는 항쟁의 1단계(ORDER1)은 경호구역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청와대 100미터(청운동사무소)앞에 서는 것이다. 물론 기자회견이라면 청와대 앞도 합법이다. 항쟁의 2단계(ORDER2)는 이를테면 100미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은 대통령하야이지 대통령테러가 아니므로 대통령 경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호실은 청와대내부에서만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청와대 광장이 국민의 힘에 의해 열린다면 공간적 의미에서 항쟁의 2단계인 것이다. 항쟁의 3단계(ORDER3)에 이르면 청와대는 위임된 권력의 은폐된 독재적 공간에서 국민다수의 민주적 공간으로 변경될 것이다.

항쟁의 질

항쟁의 양적 발전은 질적 발전을 수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항쟁을 질적측면에서 보면 ‘주체성’의 발전문제이다. 주체(Subject)란 단어는 Sub(아래에)-ject(던져지다)란 합성어이다. 발아래 던져진 존재란 뜻에서 근대이전, 이 단어는 ‘피조물’, ‘하인’이란 뜻으로 통용되었다. 남의 강제에 의해 던져진 수동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근대를 전후하여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주체’, ‘주인’, ‘주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남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민중의 삶 속에 자기를 던지는 존재는 이미 주인이다. 던져진다는 형식은 동일하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경우 비약이 일어난다. ‘목숨을 건 비약’이다. 절벽에서 나뭇가지를 놓을 수 있는 자야말로 대장부라는 백범의 비유가 이에 적절하다. 주체성은 준비보다 결단이며, 수기(修己)보다 치인(治人)이다. 항쟁지도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11월 12일 정오까지 박근혜의 하야를 명령했다. 이로서 항쟁은 1단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박근혜가 하야하면 항쟁은 바로 3단계로 진입하며, 하야하지 않으면 낡은 법질서의 집행자인 공권력을 강제・지배하는 2단계로 돌입한다. 박근혜에게 명령을 통첩한 이상 이제 주체는 ‘요청자’에서 ‘명령자’로 지위가 바뀌었다. ‘명령자’로서 혹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로서 국민은 새로운 주체로 질적 변화를 이룬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겐 가슴 벅찬 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역사적인 항쟁의 순간,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결국 민중은 두가지 테제의 선택 앞에 놓여지고, 항쟁의 질이 결정된다. 하나는 자유주의의 길이며, 또 하나는 진보주의의 길이다.

자유주의정치의 귀감이 된 것은 파쿠비우스테제이다. 알프스산맥을 넘은 한니발부대의 공격에 직면한 도시 카푸아에서는 항쟁이 일어났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원로원 귀족들을 처단하라는 요구가 들끓었다. 파멸적위기를 직감한 군주 파쿠비우스는 노련한 정치적지략을 발휘한다. 우선 원로원귀족들을 찾아가 당신들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하라고 한다. 원로원은 그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화난 군중들 앞으로 나아가 당신들이 원한다면 귀족들을 모조리 처형하겠다. 대신 국정공백이 있으면 안되니 당신들 중에 귀족들을 대신할 지도자들을 뽑아달라고 한다. 원로원 처단에는 한 목소리였던 민중들은 막상 지도자를 뽑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자 누구는 이래서 안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된다고 하며 분열되어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분열과 혼란이 극에 달할 때쯤 파쿠비우스가 나서 중재안을 냈다. 여러분이 당장 지도자를 뽑지 못하니 우선 기존의 원로원을 유지하며 위기를 수습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민중들은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파쿠비우스를 따랐다. 마키아벨리가 <로마사강의>에 소개한 일화이다.

준비되지 않은 군중을 통치하는 방법으로, 파멸적 위기를 조화의 기회로 승화시키는 정치의 기술로, 마키아벨리는 파쿠비우스테제를 제시했다. 이는 민중을 지배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지배엘리트를 위한 테제이다.

이것을 뒤집은 진보주의정치의 귀감은 레닌테제이다. 1917년 2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을 때 파쿠비우스테제의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 혁명을 일으킨 노동자민중들이 의회가 있는 타브리다궁으로 몰려가 우리를 통치해달라고 의원들에게 청원한 것이다. 그 결과 민중이 아닌 의회권력에 의해 임시정부가 꾸려졌다. 이 같은 상황은 6월까지 지속되었다. 6월초 정국수습을 위해 처음 열린 전러시아소비에트대회에서 임시정부의 지도자는 “현재 러시아에 권력을 넘겨받아 ‘우리가 당신들을 대신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당이 과연 있는가”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조용해진 대회장 한가운데서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에도 모든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레닌이었다. 당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혁명 후 전시공산주의의 실패과정을 떠올리면 완벽한 집권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러시아혁명은 성공했고, 역사상 최초로 지배를 받기만 하던 민중이 지배세력이 되었다. 레닌은 민중의 주체성의 본질이 준비와 경륜보다 결단에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파쿠비우스테제는 민중의 준비 안 된 상태를 전제한다. 그러나 전제한다는 것은 민중이 영원히 준비될 수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지프스를 만드는 것이다. 파쿠비우스주의자들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민 여러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여러분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 달라.’

11월 12일 박근혜 하야를 명령한 국민에게, 정치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답하겠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다음과 같이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권력은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에 맡겨달라”

그러고 보니 이번 주의 시작인 11월 7일은 100년 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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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사진가는?

이시우 사진가는 보통의 사진가와 작업 방식이 다르다. 그는 사진 촬영하기 전에 먼저 당대의 지식수준을 독파할 정도의 공부를 한다. 비무장지대, 지뢰, 한강하구, 미군, 제주 4.3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해온 이시우 작가는 그 결과물로 <민통선 평화기행>, <한강하구>, <유엔군사령부>와 같은 저서를 펴냈다. 이 책들은 어지간한 박사논문에 뒤지지 않을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주제로 사진 촬영 준비할 때는 <자본론> 통신강의를 2년간 들으며 이론공부를 했다.

분단과 반공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을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유라시아체계를 화두 삼아 공부하는 이 작가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미군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독일의 미군부대와 러시아, 베트남, 유고의 역사와 지도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 2007년, 미군을 주제로 한 사진 때문에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이시우 작가는 1심에서 무죄로 석방된다. 이후 작가는 국가보안법의 뿌리를 찾아 제주4.3을 주제로 사진작업에 몰입했는데,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은 이 시기의 연구 작업과 기행의 기록물이다. 비무장지대 지뢰밭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찍은 <지뢰꽃>(1997) 사진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한 이 시우 작가는 말한다. “창작을 함에 있어 감옥에 가거나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창작의 순간에는, 그 모든 각오와 노력을 홀연히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초연해야 한다.”

저서

<사진시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1999)
<민통선 평화기행>(2003)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한강하구>(2008)
(2013)

사진전
<한국의 대인지뢰 피해자들>(1999,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초대사진전)
<눈 위에 핀 꽃>(2010, 대전시립미술관 분단미술전)
<한강하구>(2010, 공간 415)
<主體寫象>(2012, 아트스페이스풀)

수상
박종철인권상(2007) 사월혁명상(2008) 늦봄통일상(2010)

출처 – 도서출판 말

http://www.vop.co.kr/A000010866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