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갖힌 나라-유엔군사령부서평 <녹색평론> 2013년 9월(132호)
http://cafe.daum.net/sdhan2007/Fqmh/97?q=%C0%AF%BF%A3%B1%BA%BB%E7%B7%C9%BA%CE%20%C0%CC%BD%C3%BF%EC
한겨레신문 한승동기자께서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덫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 2013/09/05 05:52 http://blog.hani.co.kr/sdhan/64564
한국 주둔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유엔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유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시우의 <유엔군사령부>(들녘)는 다시한번 명확하게 깨우쳤다. 이 사실 자체는 어쩌면 새로운 게 아닐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 책 내용 중에도 들어 있지만, 심지어 유엔사의 이름으로 수도 서울 한복판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사 간부조차 그 사실을 몰랐을 정도니까. 2004년 4월23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장교클럽에서 마크 민튼 당시 주한 미국 부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씨는 미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는 유엔사는 미군이지 유엔군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석했던 유엔사 겸 연합사 공보실 부실장(중령)이 발끈하고 끼어들어 “유엔사는 유엔의 군대다. 사실을 정확히 알고 질문하라”며 항변했다. 이씨가 당신이야말로 확인해 보고 얘기하라고 하자 그는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알아 본 뒤 돌아오더니 이씨가 옳았다며 사과했다.
<유엔군사령부>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유엔의 이름 아래 다국적군이 전면적으로 개입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이었다. 하지만 유엔 역사에서 ‘유엔의 군사력은 유엔군사참모위원회에서 지휘하도록 한다’는 유엔 헌장 규정에 따라 조직된 유엔군사령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 다국적군을 동원하고 지휘한 것은 미군이었으며, 미국의 패권주의가 관철된 당시의 파병으로 유엔은 창설정신에서 멀어졌고 불구가 됐다.
미 합참의장이 지휘하는 유엔군사령관직을 미군이 맡고 있는 유엔사는 이름만 유엔군이지 실은 미군이다. 한국전쟁 발발 뒤 여러 경로로 참전했던 나라들도 모두 발을 뺐고 실제로 남아 있는 군대도 미국군대뿐이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유엔사든 미군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그들이 우리를 지켜준다는거지.” 어쩌면 진짜 문제는 이 대목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좋다, 유엔군이 아니라 미군이라 치자. 그렇다면 미군은 과연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인가? 그들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예전 일제 침략군이 주둔했던 서울 한복판 용산땅을 차지하고 있는가? 그들은 정말로 남의 나라 자유와 행복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인가? 미군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인가, 우리를 지금처럼 만들어 놓고 있는 한반도와 그 주변 상황인가? ‘지켜준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누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켜준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 ‘우리’는 누구인가?
이 문제는 우리의 국가가 누구를 위한 국가인지와 관련해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예컨대 해방 이후 미국의 후원 아래 남쪽을 장악한 친일파들이 사수하려 한 국가와 그들의 탄압을 받았거나 그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반일저항세력이 추구한 국가, 그들을 놓고 미국이 선택한 국가는 서로 알맹이가 전혀 다른 국가일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미군이 지켜 준 것은 자기 민족 해방을 위해 혈족의 가산과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제에 저항한 세력이 아니라 그들과 거의 정반대편에 있던 세력이었다. 그럴 경우 미군이 남의 나라에 들어와 지키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성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걸 불온시하는 세력은 이런 질문 자체를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 기성질서가 제공하는 이익을 향유해 온 그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현실이 최선이요 유일한 것이라고 간주하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유엔군사령부>에는 도쿄 인근의 요코다 미 공군기지와 해군사령부기지, 규슈 북서쪽 나가사키현의 사세보 미 해군기지, 오키나와 후텐마 미 해병대기지, 역시 오키나와 가데나의 미 태평양 최대 공군기지 등 7개 주요 주일 미군기지들을 주한 유엔사의 후방기지로 규정한 1951년 7월의 ‘요시다(당시 일본총리 요시다 시게루)-애치슨(당시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 교환공문’, 그리고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내용을 재확인한 1960년 교환공문이 나온다. 이씨에 따르면 거기에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엔사에 편제된 일본의 7개 후방기지는 90일 안에 철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주한 유엔사가 없어지면 주일 미군기지의 핵심부분이 3개월 내에 철수해야 한다는 얘기란다.
물론 그 동안 상황도 바뀌고, 미국과 일본은 그런 약점을 메우기 위해 1990년대 후반 유사법제니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등을 만들어 미군의 영속적인 일본 주둔을 보장하는 장치들을 마련했다고 이씨는 말한다. 하지만 그 장치라는 것도 살펴 보면 대부분 한반도와 그 주변의 긴급상황, 비상사태를 상정한 것들이다. 만일 한반도가 긴급상황, 비상사태를 상정해야 할 안보 위험지대가 아니라면 유사법제도 가이드라인도 필요 없다. 그렇게 되면 냉전이 붕괴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대북 억지력을 존립근거로 삼고 있는 주한 유엔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주한 유엔사가 없어지면 주일 미군기지 자체의 존립근거도 흔들린다. 미-일 동맹의 축인 주일 미군이 흔들리면 미-일 동맹 자체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전체가 흔들린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그게 논리적 귀결이다.
찰머스 존슨은 <제국의 슬픔>(The Sorrows of Empire)에서 2001년 9월 현재까지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가 적어도 725개나 된다고 했다. 이건 미국 국방부가 공표한 공식 자료에 나와 있는 수치다. 그런데 조차지나 비공식 협정 기타 여러가지 위장막으로 가려져 있는 기지들도 많고, 공표 이후에도 기지는 계속 늘어났으므로 실제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찰머스 존슨은 썼다. 존슨은 미국이란 나라는 이들 기지를 토대로 한 ‘군사기지 제국’이며, 주한 미군사령관이나 주일 미군사령관 같은 세계 각 지역 파견 미군 사령관들은 사실상 옛 로마제국의 총독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세계 곳곳의 미군 기지들은 호스트 국가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며, 배속된 미군들은 그 지역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숙소와 각종 편의시설과 생활자료를 제공받고 골프와 스키 등 고급 레저활동을 보장받으며, 자녀들에겐 그 지역보다 월등한 교육시설이 제공된다. 각종 이권을 매개로 지역 유력자들과 어울리고 결탁하면서 이익을 공유하는 그들은 그 지역의 또 다른 지배그룹, 특권그룹으로 군림한다. 주한 미군기지와 주일 미군기지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 내 미군기지들과 더불어 군사기지 제국 미국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 기지와 호스트국 또는 지역 유력자들의 결탁, 전 지구를 뒤덮다시피 한 이런 관계나 조직들이 군사기지 제국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핵심장치다.
앞서 얘기한 얘기를 뒤집어 생각하면,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주일 미군기지들이 존속하고, 미-일 동맹과 그들간에 체결한 유사법제니 방위협력지침 따위가 유지되고, 기왕의 미국 동아시아전략이 계속 유효하려면 한반도는 계속 안보 위험지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한반도가 안보위험 지대로 남아 있으려면 북이 계속 악당 노릇을 해야 한다. 만일 북이 악당이 아니라면 미국의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전략의 전제가 거의 다 허물어진다. 남북이 서로 자유왕래하고, 투자를 허용하고 군축을 진행하면서 전쟁위험을 최소화하고 남북통합 쪽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 모든 게 흔들리고 미국과 일본은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당연히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위험 상황을 계속 조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와 있는 것인가? <유엔군사령부>는 그런 상상력에 불을 붙인다. 이런 생각이 황당한가. 황당할지 모르지만 전혀 황당하지 않다. 모든 동아시아 기성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와 그 주변 상황, 그 현실이야말로 실로 황당하기 짝이없는 단순한 구조, 비열할 정도의 부도덕한 가정 위에 조립되고,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최대 희생자는 한반도인들, 이 기막힌 분단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나라 안팎의 기득권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남북한 서민들이다.
자신들의 일상적 삶을 규정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정면으로 질문조차 하기 어렵다. 왜 이렇게 돼 있는지, 이게 옳은 건지를 정색을 하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 아닌 저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다만 이견을 제시하거나 뭔가 잘못됐다고 발설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바로 그 순간 종북주의자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 매국노, 스파이로 간주당할 수 있다. 북을 더는 악당으로 놔 두지 말고 비악당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보자고 얘기하는 순간 당신은 북을 이롭게 하고 ‘퍼주기’를 하고 결과적으로 북의 핵무장을 도왔다는 비난과 함께 북으로 가서 살라는 협박에 시달리게 될지 모른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용공행위자나 친북행위자로 간주돼 국가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 공작 차원의 조직적 감시·사찰 대상이 될 수 있고 여차하면 사법적 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이 아닌 온·오프 매체 차원의 담론 영역에서는 이미 그런 일은 현실이고 일상다반사가 돼 있다. 어느날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에 벌떼같이 달라 붙은 댓글들. 비난하고 협박하고 조롱하고 욕하는 그 댓글들이 아무리 수준이하의 유치한 것들일지라도 조직적 동원냄새를 풍기는 그 수많은 댓글들에 대해 대범할 수 있는 대한민국 시민이 얼마나 될까.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그 댓글쟁이들 뒤에 국가의 중추기관이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북이 적대세력으로 존속하는 한 유엔사가 과연 우리에게 득인지 손인지, 유엔사가 과연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지 따져서는 안 되는 걸까? 유엔사를 문제삼는 모든 행위는 북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 유엔사가 어떤 존재이든, 무슨 짓을 하든 북쪽의 동족에게 손해를 입히고 타격을 가하는 행위는 모두 선인가? 앞서 얘기한 단순논리를 여기에 적용하면, 북이 악으로 존재하는 한 유엔사라는 이름을 단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거꾸로 미군의 한반도 주둔, 나아가 동아시아 미군기지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 북은 계속 악당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북을 적대세력이 아닌 비적대세력, 우호세력이나 공존상대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자체를 불온시할까? 왜 북을 바꾸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종북이 되고 퍼주기가 되고 철없는 감상적 민족주의자로 의심받아야 할까?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유엔군사령부>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앞서 용산 미군기지 장교클럽에서 나왔다는 얘기는 이씨가 전한 것이지만, 유엔사의 실체는 그가 말한 그대로다. 2013년, 그러니까 올해 7월11일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에서 전인범(55, 육사 37기, 육군 소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유엔사는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며, 정치·군사적인 지휘통제에서 유엔과는 무관하다. 유엔사의 존치문제는 유엔 안보리로부터 유엔군사령관의 임명과 지휘권을 요청받은 미국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 그런 사실이 공표됐다는데, 그 뒤 유엔도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부트로스 갈리 총장이 미국 눈에 미운털이 박혀 웬만하면 다 하는 연임도 하지 못하고 단임으로 쫓겨난 데는 그의 그런 정치적 성향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1975년에는 유엔 총회가 유엔사 해체 결의까지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주둔 중인 유엔사의 존치문제를 왜 미국정부가 판단해야 한다고 한국군 고위장교가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주한 유엔사가 유엔 조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유엔사는 1950년 7월7일, 그러니까 6·25전쟁 발발 10여일 뒤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S-1588)로 창설 결정이 내려졌고, 그해 7월24일 주일 미군을 모태로 일본 도쿄에 유엔군사령부가 만들어진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57년 7월 서울 용산으로 사령부를 이전했다.
그런데 <유엔군사령부>의 지은이 이씨에 따르면, 전인범 소장이 미국정부가 안보리로부터 임명과 지휘권을 요청받았다고 얘기한 유엔군사령관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엔군사령부를 탄생시켰다는 1950년 7월7일 안보리 결의가 설치하도록 요청한 것은 유엔군사령부가 아니라 통합사령부였고, 그것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군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치르기 위한 미국의 통합사령부였다. 안보리 결의에 분명히 안보리 요청에 따른 미국의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 of United States in response to the UN Security Council)로 못박아 놨다. 1950년 7월24일의 미 합참 합동전략조사위원회(JSSC)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7월7일자 안보리 결의에 따르면, 유엔 산하에 통합사령부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개별적으로 통합사령부와 유엔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관계도 명기하지 않았다. 안보리는 사령관을 지정할 의무가 없고, 보고서를 받을 것으로 상정된 것은 사령관이 아니라 미국 정부다. 유엔 안보리와 맥아더 장군으로 이어지는 어떤 지휘계통도 결코 설치되지 않았으며, 통신회선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유엔기구와도 설치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조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유엔군사령부라는 명칭도 그때까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유엔군사령부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7월25일 미국이 안보리에 제출한 1차 보고서가 나온 지 20여 일이 지난 8월17일에 나온 2차 보고서다. 이씨에 따르면 2차 보고서에서 1차 보고서에 명기돼 있던 통합군사령부라는 명칭이 “유엔군사령부로 슬쩍 바꿔치기” 돼 있다. “또한 통합군사령부 앞에 미국 정부 소속을 의미하는 단어(USG)도 사라졌다. 누가 봐도 미국이 아닌 유엔의 사령부라는 느낌이 드는 이 보고서가 공식문서로 지정되면서 미국은 통합군사령부를 유엔군사령부로 교묘히 명칭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 2차 보고서 이래로 지금까지 미국은 통합군사령부가 아니라 유엔군사령부라는 명칭을 줄곧 사용하고 있다. 이는 유엔이라는 이름이 미군이라는 명칭을 쓰는데 따르는 여러가지 부담을 완화하거나 제거해 주는 효과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든 정의나 공의의 이름 아래 감춰진 대외 개입과 자국 국가이익 추구 의도가 가능한 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미국으로선 자국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정의나 자유 등 세계의 보편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모양새를 갖추는 게 유리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자국군대에 의도적으로 유엔이라는 명칭을 ‘도용’해 붙임으로써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혐의가 짙다는 게 이씨 생각이다. 물론 유엔이 정의와 선 그 자체는 아니다. 미국이 이렇게 유엔을 이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국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그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예컨대, 베트남이 일본 패전으로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자 옛 점령국이던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무력개입했다. 그때 유엔은 이를 의제로 삼지도 않았다. 미국이 프랑스 뒤를 이어 베트남전쟁개 깊숙이 개입했을 때도, 미국이 안보리 결의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그 전 칠레와 니카라과 등 중남미에 개입해서 민간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독재자들을 지원했을 때도 유엔은 정식으로 문제삼은 적이 없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의 그런 근원적 문제도 따로 짚는다.
이씨는 또 1950년 7월에 한국군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넘어간 게,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이를 자발적으로 이양한 결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강정구 교수 등도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한국전쟁 비화(Korea, The Untold Story of The War)>를 쓴 조지프 굴든에 따르면, 당시 주한 미 대사 무초가 서울을 탈출해 대전에 가 있던 이승만에게 6월28일 찾아가 정식으로 한국군에 대한 통수권을 내 놓으라고 반협박조로 요구했다. 이는 미국이 권좌에 앉혀준 이승만이 애초 약속한 것과는 달리 무초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야반도주하듯 서울을 허겁지겁 빠져나가 남쪽으로 피신한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그런 이승만의 국군통수권 행사를 믿고 있다가는 낭패볼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작심하고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이승만은 그런 약점 때문에 무초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유엔 이름을 단 미군은 국군 작전통제권까지 장악했다. 1950년 10월7일 유엔 총회 결의 이후에는 북한을 점령할 경우 한국이 아니라 유엔군이 점령과 통치의 주체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10월7일이면 미군과 한국군이 인천 상륙작전과 9월28 서울 수복에 이어 38선을 넘어 북진을 본격화한 시점이다. 미국은 그때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미군의 북진 길을 터 놓고는 북을 점령할 경우 한국이 아니라 유엔군의 이름으로 그 지역을 통치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씨는 따라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거나 북체제가 붕괴할 경우 북 지역 통치주체는 한국 대통령이나 통일부장관이 아니라 유엔사령관, 즉 주한 미군 사령관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는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한 헌법규정과도 충돌하는 것이지만, 그때의 유엔 결의가 여전히 유효한데다, 전시작전통제권 또한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고, 한 차례 연기해서 2015년 돌려받기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을 지금 한국 집권세력 중추를 비롯한 보수주류 지배세력들이 한사코 돌려받아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사, 아니 미군의 주장에 누가 아니라고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겠는가. 제기한들 유력 언론매체들을 저들이 다 장악하고 있는 터에 그것이 공론화될 턱이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이씨는 유엔사가 언제든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1978년 유엔사 해체에 대비해 창설된 이후 전시작전통제권을 지니고 있는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 결의나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당장 전쟁상태를 선포하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관직을 겸임해야만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설사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더라도 미국은 유엔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휘구조를 바꿈으로써 여전히 유효한 1950년 10월7일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새로운 결의 없이 언제든 북한과 전쟁을 벌일 권한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이씨는 얘기한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당시 빌 클린턴 정부는 실제로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도 없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북을 공격하는 시나리오를 구체화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가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랬다면 모든 전쟁 지휘 통제권을 미군이 쥐었을 것이다. 1950년대 상황 그대로.
이씨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렇게 해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유엔사의 작전통제권 아래 주한 미군과 한국군뿐만 아니라 주일 미군까지 한국전쟁에 동원된다는 것, 그리고, 일본 자위대까지 한반도 전쟁에 자동 개입할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요코스카와 가데나 등 일본 내 주요 미군기지들은 주한 유엔사 후방지원 기지들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그 주일 미군기지들이 풀 가동된다. 전시 등 한반도와 그 주변 유사사태 때 주일 미군기지들이 풀 가동되면 일본 내의 항만과 도로 비행장 기타 지자체 주요 시설들이 모조리 미군 후방지원 명목으로 역시 풀 가동된다. 미군은 언제든 그런 시설들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유사법제와 신가이드라인(미일 방위협력지팀)이니 미일 물품·용역 상호제공협정(ACSA) 같은 부속협정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1951년의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6·25때 이미 일본인 소해정 부대가 한반도에 파병돼 기뢰제거 작업에 동원됐지만, 미군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면 일본 전체가 풀 가동되고 당연히 일본 자위대가 그 가동체제의 핵심에 놓이게 된다. 지금의 헌법 재해석으로도 그게 가능하다고 아베 등 일본 우익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좀더 매끄럽고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바꾸고 미일 동맹상의 집단적 자위권(동맹국인 미국이 전쟁을 벌일 때 함께 전쟁을 벌일 권리)을 마음대로 발동시킬 수 있도록 헌법 제9조의 군사력 보유와 전쟁권 포기 규정을 제거해 버리려는 게 일본 우익들이 지금 총력을 쏟고 있는 개헌공작이다. 중의원·참의원은 이미 다 장악해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거의 다가갔는데, 국민여론은 그들이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많은 국민들이 개헌 찬성 쪽으로 넘어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헌법 제9조 개정 또는 폐지에는 반대가 만만찮고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아직도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슬쩍 바꿔버리자고 자민당과 보수우익 내부에서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속내의 일단이 드러난 게 아소 다로 전 총리, 지금의 재무상 겸 부총리가 바이마르 헌법을 ‘나치식’으로 슬쩍 바꿔버린 독일방식대로 가자고 한 얘기다.
아소 다로는 일제시대 조선사람 1만명 이상을 강제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규슈의 탄광재벌 아소 탄광 직계 후손이다. 두뇌와 도덕성 수준이 야쿠자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이는 그가 일본 보수정계의 큰 손이 된 것과 조선사람들을 착취해 쌓아올린 아소 탄광재벌 돈줄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는 일본 패전 뒤 점령국 미국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 그들의 냉전적 반공정책에 편승해 자신들이 끌고 간 재일동포와 한국(조선)을 거의 빨갱이 폭력조직 수준으로 폄훼하면서 가해자 일본을 오히려 피해자로 뒤집은 일련의 범죄행위를 자행했고, 오키나와 등 주일 미군기지를 제공받은 미국은 그를 두둔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국이 전승국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요시다의 농간이었고 미국 냉전주의자들은 그런 그를 두둔했다. 지금의 독도문제도 거기서 파생된 것이다. 그가 무슨 망언을 해도 미국이 눈감아주는 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걸 믿고 아소가 ‘나치’운운 했다가 혼쭐이 났다. 나치는 유럽의 모순과 연결돼 있고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피해 당사자다. 주변 아시아인들에겐 거만하고 기고만장한 아소도 유럽과 유대계가 비난하고 나서자 재빨리 머리를 숙였다. 최근에는 미국 역시 아베와 아소의 이런 일탈적 극우언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들의 언행이 중국과 한국을 자극해 미국이 의도하는 한-미-일 삼각동맹, 한국을 미-일동맹 하부체제로 통합하는 작업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과거사로 인한 국민감정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군사동맹을 직접 체결할 순 없지만, 미국을 축으로 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통해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갖추고 있다. 한반도에 유사사태가 발생한다면 일본 우익들은 내심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50년 전쟁과 그로 말미암은 한반도 전례없는 참극이 패전 뒤 고통 속에 시들어가던 일본 우익들에겐 하늘이 도운 절호의 기회(나치 식으로 개헌하자고 한 아소 다로가 1998년 북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환호작약하며 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천우신조’였다. 일본 우익은 북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천하대란이라도 난 듯 소동을 벌이면서 일련의 유사법제 제정과 개헌 여론 조장에 활용했다.)였듯이, 새로운 한반도 전쟁을 일본 우익들은 일본경제를 재건하고 미국과 합작해서 급속히 커가는 중국을 다시 거꾸러뜨리고 자신들이 동아시아 패자였던 과거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일본 우파의 시대착오적인 작태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저들 각료의 잇따른 망언대로 한반도의 ‘민도’도 형편없을지 모르겠지만, 저들의 사고 수준이나 도덕성에 비해서는 그래도 훨씬 나아 보인다.
만일 남과 북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그만두고 평화롭게 접근한다면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독일이 이미 20년 전 완수한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다져나가 전쟁위기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경제와 문화적 통합 쪽으로 나아가면 주한 유엔사의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주한 유엔사 존립근거가 없어지면,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규정이 아니더라도 주일 미군을 유지할 근거도 명분도 사라진다. 그래도 중국이라는 위협이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북한이라는 만만한 위협세력(또는 위협이 된다고 우겨도 되는 존재)이 없어졌는데도 지금처럼 주한 미군과 오키나와 기지 등 주일 미군 기지들을 중국의 바로 코 앞에서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겐 명분도 없고, 너무나 부담스럽다. 그것은 대놓고 중국과 적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고, 미일동맹체제하에서 여차하면 일본편을 들어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미국으로선 그런 위험부담을 스스로 끌어안을 이유가 없다. 미국은 중국이 자신의 패권을 위협할 정도의 도전자로 급속히 등장하는 걸 경계하고 견제하려 하겠지만 한편으론 중국을 자기 패권구조 속에 편입시켜 협력자로 만듦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미리 포기할 이유가 없다. 견제와 협력, 봉쇄와 제휴라는 양면전략은 앞으로도 미국의 대중국정책에선 버릴 수 없는 카드로 남을 것이다. 미일동맹도 당분간 지켜내야 할 주요 카드이긴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더 큰 전략적 이해라는 카드를 쉽게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추세는 어차피 일본의 급격한 축소와 중국의 급격한 팽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 다소간의 부침은 있겠지만 이 장기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경제규모로나 정치적 영향력에서 일본은 중국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긴 동아시아 역사에서 ‘정상’이었다. 근대 100년의 일본 흥기는 이례적인 단기현상이었다. 지금 그 ‘정상’으로 동아시아 역사가 회귀하고 있다. 일본 우파들의 이른바 ‘우경화’는 그것을 저지하고 근대 100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초조와 불안과 과대 및 피해망상이 뒤섞인 실현 불가능한 몸짓일 수 있다.
비록 미국 역시 기울고 있다고는 해도,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위해 중국과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역사는 지금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때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게 당분간 유용한, 안전하고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상대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아니라 북한이라는 약자다. 미국이 주한 미군 나아가 주일 미군기지들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지역적 안보 위협 요소들이 필요하다면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존재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게다가 그 남쪽에는 북을 불구대천으로 여기는 잘 훈련된 동족이 미국의 작업을 지원해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본 우익도 영토분쟁을 에워싸고 중국과 서로 어르렁대긴 하겠지만, 개헌과 재무장을 위해서는 적어도 당분간 부담스런 중국과의 정면충돌보다는 북을 이용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 침탈 때 먼저 조선을 이용해 먹었듯이. 따라서 그들에게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지금 체제, 그로 인한 모든 비용과 위험부담을 자신들이 아니라 약자인 한반도 남북한에게 몽땅 전가하면서 언제든 필요한 위기상황을 조성할 수 있는 지금의 한반도 분단체제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일 수 있다. 중국도 친미·친일 세력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할지도 모를 한반도 통일이 안겨줄 위험부담을 감수하느니 지금의 분단체제를 더 선호할 것이다. 우리 내부의 분단 기득권세력은 이런 상황에 철저히 적응해 있다.이런 주변 대국들의 전략에 의해 규정되고 좌우되는 분단체제를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그들은 불온시한다. 우리는 지금 그로 인한 분단 악순환의 덫에 갇혀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그 공과를 냉정하게 따져야겠지만, 그들 정권 때의 6·15남북공동선언이나 10·4합의는그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획기적인 시도였고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 지금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혐의와 함께 정치적 흥정물로 전락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도 6·15남북공동선언이나 10·4합의가 살아 있다면 아예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바로 그래서 거기에 반대하는 세력들로선 그것을 그대로 놔 둘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반세기를 넘긴 한반도 분단체제가 결정적인 전환기에 돌입하려는 순간, 이명박 정권이 그것을 모조리 부정해버림으로써 그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
<정세현의 통일토크>(서해문집)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인용한 한국은행 자료는 북 주민의 1인당 소득을 1000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그런데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러시아 등의 전문가들은 그 절반인 500달러 정도로 본단다. 이를 기준으로 시산한 2010년 1인당 소득격차는 남의 2만 달러 대 500달러, 즉 북은 남의 40분의 1. 실질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3만달러가 훨씬 넘는 남과 북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여기에 남북 인구가 2 대 1이니까, 소득격차를 40 대 1로 봐도 남북간 소득총량은 무려 80 대 1의 격차다. 국방비만 보면 남의 2013년 전체예산이 약 340조원, 그 중에서 국방예산은 약 10%, 약 330억달러. 이에 비해 북한은 국가 전체 예산이 60~70억달러로 남쪽 국방예산의 5분의 1 정도. 전체예산의 절반(50%)을 국방비에 쏟아붓는다 해도 30~35억달러밖에 안 된다. 남북 군사예산 격차는 10 대 1.
이런 엄청난 격차에다 뒤에는 한-미동맹이 버티고 있고 그 뒤에는 또 미-일동맹이 버티고 있는데도, 남쪽 국방 수뇌들과 보수정객들은 2015년으로 한 번 연기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마저 또 반대하고 있다.대당 1~2억달러 하는 전폭기 수십대, 구입 총액이 북의 1년 국방예산을 능가하는 무기를 일거에 사들일 수 있는 나라가.
북과의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왜 남쪽만 비판하고 북은 비판하지 않느냐며 대북정책 비판자들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자들의 편집증적인 북=절대악 관념 집착은 반복적 세뇌로 인한 병리학적 트라우마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북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하고 나쁜 체제인지 욕하는 게 아니라(그건 새삼 그렇게 기를 쓰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 북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다. 편집증적인 반북세력은 그 사실을 잊고 있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거듭 얘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북이 나쁘다는 걸 입증하는 게 아니라(그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북을 바꿔서 이 사악한 분단 악순환구조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북을 끊임없이 욕해대면서 분단구조를 바꾸려는 모든 실질적인 노력을 그 시초부터 방해하고 거부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분단해소가 아니라 분단유지인가?
어쨌든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안겨주기 위해 기를 쓰는 자들의 불가사의한 행태는 군사력 차원에서만 따져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뒤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찰머스 존슨이 얘기한 ‘군사기지 제국’. 파병지역 지배 엘리트들, 기득권자들과 결탁한 군사기지 제국의 존속을 위한 핵심고리로서의 주둔군. 호스트국 지배엘리트, 기득권자들의 세세년년 복락과 권력을 보장해 주는 마법의 열쇠. 우리로 치면 유엔사라는 이름의 미군, 그것을 이땅에 영원무궁토록 붙들어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한 책략 또는 정치적 기획 같은 것? <유엔군사령부>는 그런 상상력을 자극한다.
**<녹색평론> 2013년 9-10월(132호)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