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모 모셔오기’에 매달린 국방부 이시우 2010/11/15 133
‘미 항모 모셔오기’에 매달린 국방부, ‘수교 이래 최악의 한중관계’ 초래
<창간 10주년 초점③> 북중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미 연합훈련
2010년 11월 01일 (월) 14:41:13 김종대 tongil@tongilnews.com
김종대 (D&D FOCUS 편집장)
▲ 2008년 10월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참가차 부산항에 입항한 조지워싱턴호.[자료사진-통일뉴스]
조지워싱턴호와 태풍
태풍 ‘말로’의 북상으로 우리나라 서남 해역에 긴장이 감돌던 지난 9월 5일은 일요일이었다. 합동참모본부는 긴급히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튿날인 6일부터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서해에서의 한미연합훈련이 연기되었음을 알렸다. 한미는 양국의 구축함과 잠수함, 해상초계기와 병력 1,7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한 잠수함 추적 훈련과 자유공방전을 서해에서 실시할 계획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명확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기자들은 “정부가 천안함 출구전략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부지런히 휴대폰을 눌러댔다. 그러나 태풍은 제주도에 조차 상륙하지 않은 채 6일 남해를 거쳐 8일 아침에는 동해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합참의 발표와 거의 동시에 미 7함대 사령관 존 버드 제독은 “현재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국내 언론이 아닌 외신에서 흘러나오는 동안 한미는 각기 조지워싱턴호의 행보에 대해 모종의 혼선을 겪고 있었다. 미국은 서해로 들어온다고 하고 한국은 그것을 부인하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미국은 태풍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여기에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은 한국 정부가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구실로 태풍이 거론되었다는 점이다.
미7함대 소속 조지워싱턴 원자력 항공모함은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비행갑판 길이가 360m, 폭은 92m, 면적이 축구장 3배 크기인 1만8211㎡다. 돛대까지의 높이가 20층 빌딩과 맞먹는 81m다. 이 항공모함에는 미 해군의 최신예 슈퍼호넷(F/A-18E/F) 및 호넷(F/A-18A/C) 전폭기와 조기경보기 ‘호크아이2000’(E-2C) 등 6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있다. 항공모함 내에는 방송국, 우체국, 체육관, 병원, 정비공장, 세탁공장 등이 들어선 작은 도시의 기능까지 보유한다. 실제로 이 항공모함이 소비하는 1일 전력량이 부산시와 거의 맞먹는다. 한 번 출동하기 위해 시동 거는데 1억불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국이 원한다고 함부로 오는 전력이 아니다.
여기에다가 미사일 요격 기능까지 보유한 이지스함을 항모전단으로 보유한 조지워싱턴호가 만일 서해로 들어올 경우, 중국이 직면할 안보위협은 심각해진다. 중국의 모든 연안도시들이 토마호크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되고 1시간 이내에 전투기들이 중국의 핵심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군사적 상황이 전개된다. 산술적으로는 토마호크 탑재 전투기는 전투반경 2,346km 내에 하루에만 150회, 600톤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호넷 전투기와 1,200km 밖의 목표를 타격하는 토마호크를 발사하는 잠수함이 항모전단에 배치되어 있다. 중국으로서는 폭발하는 화산 위에 올라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에 중국은 이 연합훈련에 격렬히 반발하며 대응훈련을 천명하는 등 ‘냉전식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과의 긴장고조를 불사하고 서해로 들어오겠다고 하고, 한국은 이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불과 2달 전과 비교할 때 이해할 수 없는 반전이었다.
입장이 뒤바뀐 내막
정부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5월 말에 미국은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서해상에서의 대규모 훈련에 부정적이었다. 미국은 5월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을 향해 ‘단호한 조치’를 발표한 이후에도 “항공모함은 1년 스케줄이 다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이를 변경하여 한반도에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우리 국방부에 통보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6월 4일 싱가포르에서 세계 각국 약 400명의 외교·안보 관련 정부인사 및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는 제9차 샹그릴라 대화. 이 자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서해에 미 항공모함을 비롯한 지원전력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게이츠 장관의 답변은 한마디로 “안 된다”였다. 이 사실이 마침 이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러 싱가포르에 와 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이 대통령이 게이츠 장관에게 “만나자”고 전갈을 넣어 6월 6일에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항모의 파견을 거듭 요청하였으나 게이츠 장관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한편 미국의 시선은 온통 6월 9일로 예정된 ‘대이란 제재 결의안’ 통과 여부에 쏠려 있었다. 9일, 미국의 이란 제재 결의안은 중국의 협조로 무난하게 안보리를 통과했다. 미 측은 거듭 중국이 반발하는 항모 파견의 어려움을 전해왔다. 아울러 미국이 보유한 11개의 항모전단 중 한국에 출동시킬 전력이 없다는 재정적인 어려움도 전달되었다. 이에 이미 서해 연합훈련을 발표한 한국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항공모함 모셔오기’를 위해 대미 외교력이 총동원되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한국 측 장군들이 아침저녁으로 미군 장성을 접촉하여 끈질긴 설득에 나섰고 펜타곤에도 연일 협조요청을 하는 등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행태가 연일 계속되었다.
6월 26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토론토에서 만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항모의 파견을 강력히 요청했고 오바마는 이를 수락했다. 한국의 끈질긴 요청으로 수차례 진통을 거쳐 7월에 조지워싱턴호가 동해에 들어오는 것으로 절충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게이츠 장관은 본인이 이미 한국에 “불가”를 통보했는데도 태평양사령부와 미7함대사령관이 한국으로 항모를 파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격분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게이츠 장관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합의는 7월 초에 한국군 부대의 아프간 본대 파병이 임박했던 것이 크게 주효했다. 한국의 ‘항공모함 모셔오기’ 못지않게 미국은 아프간에 ‘한국군 부대 모셔오기’에 몰입해 있었던 것이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한 셈이다.
7월에 조지워싱턴호가 참여한 동해에서의 훈련 양상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과 중국 자극이라는 부담을 회피하려는 미국의 의도대로 ‘미국 주도-한국지원’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평시에 연안방어를 완전히 책임지고 있는 한국 해군의 대미 의존성이 드러나고 미국 주도의 군사훈련이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확산되었다. 이러한 군사에서의 종속은 한국이 요구하는 연안방어의 충족이라는 목표를 초월하여 미중 간의 전략적 패권경쟁에 한국이 흡수될 수밖에 없는 군사적 경로로 이어진다. 이 경우 한국은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흡수될 개연성이 부쩍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이 훈련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결국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해역을 방어하면서 강화된 한미동맹으로 북한을 경고한다는 목표 자체를 초월하는 동북아의 신냉전적 질서에 직면하는 상황이란 아직은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 정부의 입장을 신중하게 지켜보던 중국이 발끈하고 나선 이유는 미국을 앞세우려는 한국 정부의 태도였다. 천안함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던 신중한 태도가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뀐 것이다. 중국은 올해 안에 미국의 해상세력에 대응하여 항공모함 건조를 서두르고 있고 대함 탄도미사일(ASBM)을 실전배치하여 미 항공모함의 자유로운 기동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형 구축함, 프리깃함, 원자력 잠수함, 재래식 잠수함 건조로 나아가는 중국의 해상 위협에 한국도 심각하게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미국의 해양세력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대중 강경모드 출현
8월이 되면서 미국의 분위기에 예기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신중하던 대중국 행보가 갑자기 강경한 분위기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8월 9일에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이 “미국은 서해상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전의 신중한 행보와 크게 비교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멀린의 이 발언이 나올 무렵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의 국방부 출입 기자단과의 간담회가 돌연 취소되었다. 본토로부터 ‘함구령’을 받은 월터 샤프가 갑자기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미 본토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이 연일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중요한 태도 변화를 담고 있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의회에서 공화당의 정치공세에 비세를 느낀 민주당 정권은 다분히 보수층에 영합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멀린 의장의 ‘중국 때리기’였다. 이 당시 조지워싱턴호는 한국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남중국해로 내려가 베트남과 연합훈련을 하면서 중국의 신경을 은근히 거슬리던 중이었다.
한편 미국을 앞세웠다가 중국과의 외교가 험악해지는 상황을 직감한 청와대는 이제부터 거꾸로 미국의 핵심전력이 서해로 들어오는데 신중한 모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미 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온다고 했을 때 한국정부가 “오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언제는 모셔오느라고 발을 동동 구르던 정부가 이제 와서 말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던 중에 국내 일부 언론에 “미 항공모함이 9월에 서해로 들어온다”는 뉴스가 터진 것은 우리 정부에 당혹스러운 소식이었다. 서둘러 국방부가 나서서 “결정된 바도 없고 미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사실도 없다”며 진화했다. 훈련이 임박한 시점에 서해에 항모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 골몰하던 터에 태풍의 북상 소식은 한국정부에 복음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온다는 것은 오보로 판명이 났고 우리 정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의 중국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부쩍 많아졌다. “91년 수교 이래 현재 한중 관계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청와대가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는 천안함 사건 처리의 목표가 중국을 자극하는 상황으로 지나치게 확장되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 사정에 밝은 한 기업인은 최근 기자에게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분위기”라며 우리 정부의 경솔한 ‘미국 편승하기’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차 원자바오 총리가 5월 말에 제주도를 방문할 당시만 해도 중국 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을 경청하고 사건 처리에 일견 협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기조가 7월 동해 훈련을 거쳐 8월 말에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할 당시까지도 그런대로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계속 서해 연합훈련을 강조하고 미 측이 8월에 연일 항공모함의 서해 훈련 강행의지를 표출하자 중국 정부는 “한미가 천안함 사건을 중국을 압박하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나아갔다. 특히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제사회의 협조보다는 미국에 의존하고 미국을 앞세우는 태도를 보이는데 대해 극도의 불쾌감을 갖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속사정과 달리 미 국방부는 연합훈련이 취소된 직후인 9월 9일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서해훈련에 참가시키겠다는 계획에 변함이 없다”며 거듭 훈련 참가 의지를 재확인했다.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른 공해상에서의 훈련과 마찬가지로 조지워싱턴호는 서해에서 작전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번 서해훈련은 공해상에서 실시될 것이며 미국은 모든 공해상에서 작전을 수행할 권리가 있다”고 한 달 전의 마이클 멀린 의장과 똑같은 발언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10월 중순에 게이츠 장관은 “한국 서해로 항공모함을 보낸다”고 김태영 장관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완곡하게 이를 거절했다. G20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불러들인 항공모함을 총력을 다해 막아내는 이 기이한 광경은 한국 외교의 총체적 실패요, 정부가 그토록 외치던 한미동맹에서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저버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항모의 서해전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만일 G20이 끝나고 항모가 들어오는 날, 우리 외교에는 일대 도전과 시련이 예고되어 있다. 임박한 파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