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CIA를 몰아내라 이시우 2009/09/24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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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CIA를 몰아내라”
한겨레21 | 입력 2005.12.13 09:12

[한겨레] 스웨덴·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도 ‘관타나모’같은 비밀감옥 운영 의혹

테러 용의자로 잘못 찍히면 변호사와 가족과도 차단당한 채 고문 취조 당해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유럽인권협회의 알바로 로블 고문은 최근 < 르 몽드 > 지에 자신의 목격담을 폭로해, 미 중앙정보국(CIA)의 불법적인 비밀감옥 운영이 코소보에서도 자행됐음을 확인해줬다. 2002년 자신이 코소보의 본스틸 기지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 설치된 ‘작은 규모의 관타나모’를 목격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군사감옥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작은 목조건물들로 건물마다 15∼20명의 중동 사람들이 수감돼 있”고 “모두 관타나모 기지의 군사교도소의 수감자들처럼 황색의 복장을 하고서 어떤 이는 코란을 읽고 있었다”고 말했다.

로블 고문이 직접 목격한 감옥에서 수개월간 수감됐다 석방된 이라크인 2명과 유럽인 1명은 유럽의 한 인권단체를 통해 2002년 2월에 이미 비밀감옥의 실상을 폭로한 바 있다.

“자살폭탄공격 도왔다고 자백하라”

이들은 코소보의 자코바 지역에서 무슬림 교도들을 위해 구호활동을 벌이던 무슬림 활동가였다. 2001년 12월14일, 코소보평화유지군은 미군 헬기의 지원을 받아 턱수염을 기른 무슬림 활동가 3명을 연행해갔다. 그들이 일하던 단체는 코소보의 유엔행정청에 공식 등록된 구호단체로서 자신들이 체포당한 이유를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병사들은 폭행만 가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병사들에 의해 팔 다리가 묶이고 눈이 가린 채 어딘가로 실려갔다. 그들이 불법적으로 납치돼 간 곳은 발칸에서 가장 큰 본스틸 미군기지였다. 각자 작은 목조감옥에 수용됐는데 캠프의 수칙에 따르고 자살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한 뒤 취조가 시작됐다. 38일간에 걸쳐 고문과 취조를 했는데, 이들에게 2000년 9월에 미국 구축함 콜(Cole)호의 자살폭탄 공격을 도왔다고 자백하라는 강요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자인서에 서명하지 않고 버티다가 석방됐다.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한 미군들의 가혹한 고문 사례는 지금도 계속 폭로되고 있다. 2003년 7월에 수감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다 석방된 2명의 이라크인이 11월15일 < abc > TV에 출연해 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폭로했다. “나를 체포할 때 미군들은 아무런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고 이에 항의하자 폭행을 가했다”고 말했다. 미군들은 사담 후세인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면서 계속 폭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군의 폭행으로 한 사람은 이가 부러졌고 다른 이는 어깨가 빠지는 중상을 입었다. 또 “미군들이 총구를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소리에 모두 놀라 기절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울기도 했다. 병사들은 이 모습을 보고 복장이 터져라 웃음을 터뜨렸다”고 회상했다.

이 두 사람과 함께 석방된 다른 6명의 이라크인은 현재 미국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미 국방장관 럼즈펠드를 미국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가혹행위의 책임자로 고소해놓은 상태다.

CIA가 테러리스트로 지목해 체포되면 바로 비밀감옥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용의자들은 한 번도 재판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감옥에 보내진 경우가 없다. 비밀감옥은 ‘검은 지대’나 ‘굴락’(스탈린 시대의 시베리아 감옥)으로 불려진다. 비밀감옥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그 실상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인권단체들에 의해 대체로 드러났다.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나 타이에 세워진 비밀기지에는 가장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테러 용의자들이 수용돼 있고 그외에는 예멘이나 요르단, 이집트에 분산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폴란드나 루마니아, 코소보에서도 비밀감옥이 운영돼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스페인에도 CIA의 비밀감옥 운영이나 테러 용의자들의 이송에 협력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악몽을 선물하는 ‘검은 지대’

지금 유럽에서는 CIA의 범법 행위를 연일 비난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의 범법 행위에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이탈리아 정부는 22명의 CIA 요원을 체포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스페인 정부는 CIA가 스페인의 공항을 테러 용의자 호송을 위해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도 독일 국적의 테러 용의자 1명이 CIA 요원에게 납치돼 아프가니스탄의 감옥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고문을 동반한 취조를 5개월 이상이나 받은 뒤 석방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도 CIA가 테러 용의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자국의 공항을 불법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 밖에 CIA가 운영하는 비밀감옥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폴란드나 루마니아는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을 두려워하는 외교적 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밀감옥의 존재는 그곳에서 석방된 테러 용의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국제사면위원회(AI)가 인터뷰한 3명의 예멘인이 폭로한 비밀감옥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과 대화하지 않았고, 온몸과 얼굴을 완전히 검은 옷으로 가린 채 손짓으로만 명령했다. 또 24시간 전등불이 켜져 있어 낮인지 밤인지는 감방으로 들어오는 식사를 통해서만 추측할 수 있었다. 바깥 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돼 수용되는데, 감옥 내부에는 빛이 전혀 들어올 수 없게 했고 지하감방도 만들어놓았다. 그곳에서 비가 오는지 해가 떴는지,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른 채 몇 년을 보냈다”고 수감생활을 회상했다.

일반적으로 비밀감옥에 수용되는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거나 중동 출신으로 알카에다 조직과 연관됐다는 의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세계 어디에 살고 있든 간에 그 나라 이민국 직원들의 방문을 받고서 여권과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뒤 다음날 압수당한 물품을 찾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 이민국에 가서는 체포당한다. 그 뒤 이들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눈이 가려지고 손발이 묶인 채 비행기에 실려 다른 나라로 이송되는데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서는 고문과 취조를 받고 다시 다른 나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이른바 ‘검은 지대’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몇 년을 지내다 석방된 뒤 본국으로 송환돼 다시 수감되든지 아니면 계속 비밀감옥에서 지내야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됐다 석방된 한 아프가니스탄 사람에 따르면 20% 정도만 범죄자들이고 나머지는 자신처럼 운이 없이 체포됐다 재판도 없이 수감생활을 수년이나 해온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CIA에 의해 체포돼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은 모든 법적 권리가 박탈당한다. 변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과도 연락할 수 없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인다. 가족들은 갑자기 사라진 이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대부분 찾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CIA의 불법 납치와 구금으로 사라진 사람의 수와 국적, 신원조차도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기지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송된 포로들만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재판을 받은 사례는 없다. 몇 명이 비밀스럽게 석방됐지만 이들도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고 석방된 뒤에는 본국의 감옥으로 이송돼 수감생활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상은 여전히 비밀에 붙여졌다. 각국의 정부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함부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긴 행렬이 국제인권단체들의 문 앞에 늘어서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인권단체의 비판이나 호소에는 아예 귀를 막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분노

한편, 관타나모수용소나 비밀감옥에 구속된 수감자들이 대거 석방될 경우,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대규모 보상청구 소송이 한꺼번에 터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앞으로도 인권유린 문제는 계속 미국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 nbc > TV에 출연해 부시 정부의 비밀감옥 운영과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이 전세계의 비밀감옥에서 포로들을 계속 고문할 수 있다니 없다니 하는 논쟁 자체에 기가 막힌다”면서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현재 부시 정부의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집권정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부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발의한 고문금지 법안에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한 100명의 상원의원 중 90명의 상원의원이 서명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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