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5029′ 격상론은 군사적 모험주의 이시우 2008/09/15 415

‘작계 5029′ 격상론은 군사적 모험주의
북한 반발, 중국 개입 고려 안 한 ‘전쟁 불사론’

최재천 (cjc1013)

▲ 조나단 그리너트 미 7함대 사령관의 인터뷰를 게재한 2005년 4월 17일 자 미 군사전문지 <성조>지.
ⓒ <성조> 그리너트

북한, ‘붕괴 임박론’으로 이해할 것

2005년 4월, 한미 간에는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이하 작계) 5029′로 격상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협상이 있었다. 잠시 그때로 되돌아가 보자.

그리너트 미 7함대 사령관은 2005년 4월 17일(현지시각) 미 군사전문지 <성조>지와 한 인터뷰에서 “만일 북한 체제가 붕괴한다면 상당히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북한이 붕괴하거나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미 7함대는 북한에 투입돼 질서 회복을 돕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같은 날 “(작계 5029는)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위험한 전쟁 계획”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했다.

‘작계’의 근본 목적은 무엇일까. 통일이다. 어떤 방식의 통일? 어느 정도 위험이 따르더라도 ‘군사적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괴롭고 한없는 인내가 필요하더라도 북한과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인가. 당연히 우리 헌법은 평화통일을 예정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작계 격상에 대한 논의가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 최소한의 고찰이 필요하다. 더구나 지금 북한은 심각한 고뇌에 빠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북측의 반응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붕괴 임박론’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은 곧 ‘유고’이고, 이는 북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고 생각할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즉각 전 군에 비상경계령을 선포했다. 북한 붕괴 임박론은 북한 쪽으로서는 ‘북침 공포’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치명적으로 경색됐다.

둘째,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동작전과 공동개입은 실질적으로 흡수통일을 의미한다. 흡수통일의 전제는 대북 적대다. 이는 북한체제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서 출발한다. 역시 북한으로서는 ‘북침 공포’요, 최소한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작계 격상 논의에는 이런 ‘이해’가 결여돼 있다. ‘비핵개방 3000′이 내포하고 있는 냉전 논리, 통미봉북 논리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자기가 한 말 뒤집은 뉴라이트들

▲ 9월 11일 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조선일보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 유고 사태 때 군사적 대응 계획인 ‘개념계획 5029′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이제는 이를 ‘작전계획’으로 격상하고 실질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다.” – 9월 11일 자 <조선일보> 사설

이런 요구는 ‘개념계획’이 ‘작전계획’으로 격상되기만 하면 북한의 급변사태는 얼마든지 수습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바탕이 된다. 한미 공동의 군사작전 계획만 마련되면 북한의 급변사태는 언제라도 회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통일은 ‘우리의 주도’로 ‘우리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 보수진영의 주된 생각인 것 같다.

이 생각의 전제에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먼저 뉴라이트 싱크넷 소속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의 글을 보자.

“이제까지 정부는 이것을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이러한 해석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 김일영,<북한붕괴 시 한국군의 역할 및 한계>

다음으로 북한민주화포럼 이동복 상임대표의 글이다.

“유엔 총회 결의도 대한민국을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가 실시된 지역에 수립된 유일합법정부’라는 것으로 그러한 총선거가 실시되지 못한 북한 지역에서의 합법정부에 관하여 공란으로 남겨두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 이동복 교수 홈페이지(2004년 7월 26일)

이들에 의해 ‘좌파(?)’로 지칭되는 리영희 교수가 1970년대부터 주장했던 학설과 꼭 같다. 이분들의 논리로 보자면 ‘남침’이 아닌, ‘전면전’이 아닌, 단순한 ‘급변사태’ 혹은 ‘위기상황’의 경우에 대한민국이 혹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공동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을까?

더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대처하기 위한 상호방위만을 규정한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이 공동으로 개입할 근거는 무엇인가. 헌법 아래 법률과 조약과 국제법규가 존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곧 법이다. 작전계획은 당연히 그 아래다. 급변사태 시 개입을 예정하는 ‘작계 5029′는 미국판 ‘테러와의 전쟁’ 논리에서 출발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갖는 핵심은 예방이요, 개입이요, 적극적 선제공격이다.

이미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 강요했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수정 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 한다. 마치 ‘비핵개방 3000′으로 지난 2년 전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노선’으로 되돌아가려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뉴라이트들에게는 미래란 없다. 오로지 과거만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차라리 이동복 대표의 발언은 솔직하다. “(작계 5029를 손질하는 데 따른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에 대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9월 12일 평화방송) 개념계획에서 작전계획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탁월한(?) 군사적 모험주의로 평가돼야 마땅하다.

‘평화적’인 독일 통일의 교훈은 무엇인가

▲ 한반도는 지금 정전 혹은 휴전 상태이다. 국경선이 아니라 휴전선이다. 잠시 포성의 연기가 멈춰 있을 뿐이다. 사진은 한미연합 연안상륙훈련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방적 선제공격’에 필수적인 ‘임박성’의 개념조차 국제법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는 북한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지역에 급변사태 발생시 ‘작계 5029′에 따라 ‘예방적 차원’에서의 군사개입이 한·미 연합사령부 공동이어야 하는지, 한국 단독이어야 하는지는 결국은 주권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필자의 글, “작계 5029가 주권문제인 이유 -NSC ‘안이한 현실인식‘이 한미 갈등 원인제공”(2005년 4월 21일 자 <오마이뉴스>)

그렇다. 근본적으로 ‘주권’ 문제다. 북한영토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북한의 주권 포기 혹은 주권 양도에 대한 합의다. 동서독의 통일방식이 그러했다. 북한은 차마 수용하기 어렵겠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해상관자적 위치에 있는 미국과 중국의 동의, 일본과 러시아의 묵인, UN의 이해와 결의 정도가 요구되는 안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되는 수준의, 지나치게 미국에 경사되는, 한국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주도하는 흡수통일을 쉽게 이해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희망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 한미관계의 틀을 벗어나는, 양국의 전략적 동맹에 어긋나는 한반도의 통일은 쉽게 양해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독일 통일의 경험은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왜 처음에 반대하던 프랑스와 영국이 동의하게 됐는지, 그리고 끝내는 러시아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주변국인 폴란드가 끝내 양해해 주었는지.

더구나 한국과 미국 간에는 한미군사동맹 태세에 대한 변환논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LPP협정이 그렇고, 용산기지이전협정이 그렇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그러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면 각기 독자적인 작전권과 작전계획을 갖게 되고 필요한 목적범위 내에서 상호 협의를 통해 전략과 행동수준을 결정한다.

전시작전통제권도 환수되는 마당에 ‘평시와 전시의 중간단계’라 할 수 있는 급변사태 시 공동작전계획 수립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끼칠 영향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가. 한미군사동맹의 역할 재조정이라는 큰 흐름에 어긋나는 측면은 없을까.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한반도는 지금 정전 혹은 휴전 상태이다. 국경선이 아니라 휴전선이다. 잠시 포성의 연기가 멈춰 있을 뿐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한쪽은 미국이요, 다른 한쪽은 북한과 중국이다.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개입 시 정전의 종결로 해석하고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적 여지는 나름대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외교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지난 11일 미국의 <폭스 뉴스>는 “미국이 북한의 불안정한 정세에 대해 중국과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외교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중국과 어떤 수준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가.

액션 플랜 공개적으로 떠들어도 되나?

대내외적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대응방안 혹은 ‘액션플랜’을 가지지 않은 정부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 ‘액션플랜’을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떠드는 나라도 없다.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이 났다. 북한은 오로지 ‘공포에 기반한 방어적 기제’만이 작동 중인 초위험사회다. 그래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좋은 안타를 치기 위해서는 공을 쫓아가선 안 된다. 공을 내 앞에 끌어다 놓고 때려야 한다. 타격에 있어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타격의 일반원칙이다.

한반도 문제가 갖는 국제적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핵 6자회담이 필요하다. 북핵 6자회담의 한 로드맵은 남북한 간의 평화협정까지도 예상해 뒀다. 북핵문제 해결을 넘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냉전적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남북문제의 우리 문제화가 필요하다.

물론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위상을 바탕으로 때로는 균형자로, 때로는 이해상관 촉진자로서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중요한 과제였다. 그 점에서 참여정부는 어설픈 논리로 접근하다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지금 어떤 자세로 어떤 비전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남북문제가 갖는 위험성을 인플레이션시키는 데 급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철학과 비전의 문제다. 철학과 비전의 부재가 행동의 부재를 낳고 있다. 악순환이다.

2008.09.14 11:14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