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통제권 상실과정과 한국군의 탈주권화 이시우 2008/09/12 326
작전통제권 상실과정과 한국군의 탈주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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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통제권 상실 과정과 한국군의 탈주권화*
강정구·박기학·고영대
1. 머리말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민주화되고 이성화되었지만 미국, 북한, 안보에 관한 사안만큼은 아직도 민주화 이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영역에 관한 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가 과제가 아니라 ‘민주화 이전의 민주화’가 아직도 화급한 과제이다. 곧, 미국·북한·안보에 관한 많은 사안은 참이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서술도 국가보안법과 냉전-색깔몰이에 의해 제약을 받고 금기시되고 있다. 참 역사와 보편주의는 실종되고 미국·북한·안보 예외주의라는 냉전성역이 판치는 반이성과 야만의 족쇄에 갇혀 있는 게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같이 이들 세 영역이 혼재되어 있는 사안일수록 이런 반이성과 ‘친북반미’라는 냉전-색깔몰이는 더욱 기승을 부려 상승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동맹’으로서의 미국과 ‘안보위협 대상’으로서의 북한이 연계되면서 안보영역이 핵심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이양한 사례는 미국의 괴뢰 국가에 불과한 이라크 정부와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국가수반에게 지워진 제1의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에게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right to life)을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국가수반이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생명권을 외세에게 맡기는 바와 진배없다. 이런 점에서 작전통제권 환수는 단순한 군사기술이나 전력 수준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권에 관한 문제다.
이 글은 전시작전권이 핵심적인 국가주권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강압과 불법으로 점철된 작전지휘권(통제권) 상실 과정을 파헤친다. 또한 작전통제권 상실로 인한 한국군의 탈주권화와 기형화를 그 구체적 표현인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들추어내어 ‘국가 없는 국가’로서의 한국이라는 국가의 주권피탈 형상을 보여줄 것이다. 동시에 환수불가론의 허구성을 밝혀 즉각 환수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한미가 합의하면서 당면한 과제는 환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기만적 환수를 막고 환수의 주권적 의의를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이에 맞춘 새로운 ‘한미연합지휘체계’, 더 나아가 한·미·일·호주를 함께 묶는 ‘광역연합지휘체계’를 추진하여 동북아패권을 굳히려는 미국의 군사팽창주의 전략 때문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국민여론의 비판이 없다면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반환 때처럼 하나마나한 것이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은 기만적 반환의 구체적 실상과 그 비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 작전통제권의 군사주권적 의미를 누누이 강조함으로써 작전통제권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환수의 문제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2. 작전통제권과 국가주권
1) 작전통제권은 군사주권의 핵심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통수권은 군정권과 군령권을 포괄하는 것이지만 군령권이 그 핵심을 이룬다. 군령권은 군사력을 운용하는 용병기능으로서 작전지휘권이 그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군정권은 군사력을 건설, 유지, 관리하는 양병기능으로서 국방정책의 수립, 국방관계법령의 제정, 개정 및 시행, 자원의 획득배분과 관리, 작전지원 등에 관한 권한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군정권은 전투와 관련한 군사 활동의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가장 넓은 개념인 지휘권은 군정 범주의 행정지휘권과 군수지원, 군령 범주의 작전지휘권으로 나뉜다. 작전지휘권은 행정지휘권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지휘권 가운데 행정과 군수가 제외된 권한이다.
작전통제권은 작전지휘권 가운데 부대편성, 부대훈련, 군기가 제외된 개념으로, 작전지휘권보다는 좁은 개념이나 작전지휘권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작전통제권이 빠진 지휘권이란 알맹이가 빠진 형식적 권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전통제권은 군사주권의 핵심이고 상징이다.
작전통제권이 국가주권에 속한다는 것은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때 국방부와 합참이 밝힌 바다. 국방부는 “한국군은 정전 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함으로써……실로 44년 만에 국가주권의 중요한 일부인 정전 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독자적인 작전지휘체계를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국방일보≫, 1994.12.1.)고 자평했다. 또 합참은 ‘주권행사 차원에서 특히 의미 있는 변화’의 구체적 예로서 “한국 함대가 제3국과의 군사교류를 하거나 해양자원 및 어로보호 활동을 위해 연합사의 작전구역을 이탈할 시 별도의 협조절차가 필요 없게 되었으며, 아울러 제3국의 항공기나 함정이 적법한 절차 없이 우리 영역을 침범할 시도 합참에서 독자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합참≫, 1995년 1월호)고 말했다.
국방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결정을 내린 뒤에 “작전통제(OPCON: Operational Control)는 특정임무나 과업수행을 위해 설정된 지휘관계를 의미하며, 작전통제권은 해당 부대에 대해 임무를 부여하고 지시를 할 수 있는, 작전지휘의 핵심적 권한이다”(국방부, 2006: 17)라고 밝혀 작전통제권이 국가주권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주권의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주권을 회복하는 것으로 봐야 하며……, 오히려 현재의 상태는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규정한 헌법정신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국군 통수권의 핵심 사항이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국방부, 2006: 17).
결론적으로 작전통제권 상실은 주권상실이며, 이를 되찾는 것은 주권회복이고 주권의 기형화를 바로잡아 ‘국가 있는 국가’로 가는 정상화의 길이다.
2) 유례없는 작전통제권 상실
김달중의 지적처럼 현 지구촌에서 한국처럼 작전통제권을 전적으로 외세에 넘겨준 채 지속적으로 군사주권을 상실한 나라는 미국의 피점령국인 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외에는 없다.
어떠한 나라도 자국군의 지휘권을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이양해준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역시 40여 개의 국가와 군사동맹관계 혹은 실질적 군사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나 그들 중 어느 한 나라의 지휘권을 전적으로 이양 받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김달중 외, 1988: 178).
이런 국가주권 훼손 현상을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에서는 작전통제권 이양이 예외 사항이 아니라 나토(NATO) 심지어는 미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나토군의 지휘체제는 통합사령부 형태이고 최고사령관을 미군이 맡고 있다는 점에서 대미 예속 지휘형태의 하나이다. 하지만 나토의 경우 개별 회원국은 나토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는 등 한미연합지휘체제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나토의 의사 결정은 전원 합의제며, 회원국은 이사회 또는 다른 산하 위원회에서 각자 자신의 결정에 대해 완전한 주권과 책임을 갖는다. 1967년 12월 채택된 「동맹의 장래 임무에 관한 하멜 보고서(Hamel Report on The Future Tasks of The Alliance)」도 “주권국가인 회원국은 자신의 정책을 집단적 결정에 종속시킬 의무가 없다”고 썼다(모리하라 키미도시, 2000: 89).
또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전면적으로 미국에 이양한 것과는 달리 나토 회원국들은 각자가 전면적인 지휘권(full command)을 가진 상태하에서, 정치적으로 합의된 작전에 대해, 배속된 군대에 한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나토 전략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리고 전략사령부 예하 각 사령부의 사령관은 부대를 파견한 나라의 군인, 가령 영국이나 독일 장성 등이 맡도록 함으로써 자율권을 존중해주고 있다.
특수한 상황에서 미군이 외국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미국 대통령 지령 25호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상실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증거로 드는 것 또한 왜곡이다. 미국 대통령 지령 25호는 “특정 군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군을 외국군 사령관의 작전통제하에 두는 것도 지휘통일을 보장하고 군사적인 성과를 극대화하는 이유라면 때로는 유리하거나 현명한 것이다”(국방대학교 합동참모대학, 2003: 78)라고 명시했다. 미국이 자국 군을 외국군의 작전통제하에 둘 수도 있다는 것은 특정한 군사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특정한 작전에 한해서, 거기에 참가하는 미군 부대에 대해서 고려해볼 수 있다는 뜻이지 한국의 경우처럼 모든 한국군에 대해서 항상적으로 작전통제권을 이양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 합참 교범은 “미국 대통령은 미군 전력에 대한 지휘권을 보유하며, 결코 이를 양도할 수 없다. 기본적인 경우에 한해서, 대통령은 안보회의에 의해 권한이 부여된 특정 유엔작전을 위한 합법적인 유엔사령관의 작전통제하에 있는 미군 전력에 대한 적절한 지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국방대학교 합동참모대학, 2003: 77~78). 미 합참 교범은 미군이 외국군의 작전통제를 받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 특정의 유엔작전에 한하며, 이 경우도 한국처럼 작전통제권을 이양하는 것이 아니다. 합참 교범은 미군이 다국적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가는 경우라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의 지휘권이 우선한다는 것, 또 다국적군의 작전통제가 미군의 독자적인 방어 권리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 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다국적군의 작전통제란 미군에게 있어서는 극히 제한적이고 형식적임을 알 수 있다.
3. 강압과 불법으로 점철된 작전지휘권 상실 과정
1) 강압에 의한 이승만의 작전지휘권 이양(1950.7.1.)
우리나라의 작전지휘권 행사는 공식적인 정부출범과 더불어 곧장 발효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500여 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기고 철수한 1949년 6월 말 이후부터였다. 정부출범 열흘 만인 1948년 8월 24일 체결된 ‘대한민국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 간에 체결된 과도기에 시행될 잠정적 군사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에 의해 작전지휘권은 미군정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협정 제2조는 “주한미군사령관은 공동안전에 부합된다고 간주될 때에 점진적으로 가급적 속히 전 경찰, 해안경비대 및 현존하는 국방경비대로서 된 대한민국 국방군의 지휘책임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양하기를 동의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은 동 국방군지휘책임을 인수하기로 동의한다”로, 또 “미군철수의 완료시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은 공동안전을 위해 또는 대한민국 국방군의 조직, 훈련 및 장비를 용역케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대한민국 국방군(국방경비대, 해안경비대 및 비상지역에 주둔하는 국립경찰파견대를 포함함)에 대한 전면적인 작전상의 통제를 행사하는 권한을 보유한 것으로 합의한다”고 약정했다(송기춘, 2006). 이로써 미군이 철수하는 시점까지 대한민국은 ‘국가 없는 국가’였다.
미군철수 후 약 1년 동안 한국 정부가 행사했던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은 1950년 7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일체의 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이양하는 공한을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발송하고, 7월 18일 맥아더가 이에 관한 답신을 보냄으로써 공식적으로 미국에 이양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점을 주목한다.
첫째, 알려진 것과 달리 이승만 대통령의 작전지휘권 이양은 한국 측이 제안하고 미국 측이 수락하는 자발적 이양이 아니라 미국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 이양일도 1950년 7월 8일이었다. 1950년 6월 29일, 6·25전쟁의 현황 파악 차 한국에 온 맥아더는 미군 투입의 전제조건으로 작전지휘권 이양을 요구했고, 이승만은 미국의 강요에 따라 1950년 7월 1일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맥아더 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미국 통제하의 통합사령부(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를 구성하기로 한 유엔결의가 있기 전인 7월 1일, 미군을 남한에 파견했고, 7월 8일에는 대전협정을 통해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장악했다(사단법인 대한민국헌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