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우라늄탄과 이시우-한겨레21 이시우 2013/06/01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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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우라늄탄과 이시우
미군기지에 묻혀 있다고 고발한 뒤 여러 가지 죄목으로 구속 수감된 평화운동가, 무죄 판결받아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주한 미군이 한국 내 기지에 다량 비축하고 있다는 열화우라늄탄 원료인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이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문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 주한미군이 보유한 열화우라늄탄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던 평화운동가 이시우씨(가운데)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진/한겨레 김명진 기자)
정치에 따라 유해했다가 무해했다가
열화우라늄 유해론은 그것이 중금속이라는 것, 그리고 방사성 물질이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천연 우라늄에는 우라늄238과 우라늄235 등이 포함돼 있는데, 핵무기나 핵발전에 이용되는 핵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라늄235다. 천연 우라늄의 우라늄235 함유율은 0.7% 정도, 이를 농축하고 남은 우라늄의 우라늄235 함유율은 0.2% 정도로 떨어진다. 이 농축되고 남은 찌꺼기가 열화우라늄이다. 그러니까 열화우라늄에는 우라늄238과 235가 각각 99.8%, 0.2% 비율로 들어 있고 이 수치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을 정도의 우라늄234도 0.001% 정도 들어 있는데, 그 방사능 비율은 각각 83.7%, 1.1%, 15.2%라고 한다. 열화우라늄은 납과 텅스텐을 능가하는 강력한 밀도 때문에 철갑탄이나 전차포탄, 장갑 재료 등의 무기로 활용된다. 강력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열화우라늄탄은 금속을 뚫을 때 폭발하면서 다량의 방사능 함유 미세 분진들을 대기에 흩뿌린다.
국제적으로 훨씬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열화우라늄탄 사용에 따른 방사성 피폭 피해. 백혈병 등 암을 비롯한 건강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나 나토(NATO)군이 걸프전이나 코소보 사태 때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이 이른바 ‘걸프증후군’ ‘발칸증후군’을 야기했다는 보도들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천 등지에서 훈련 때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미국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 방재환경대책실도 “열화우라늄의 독성은 우리 주변의 바닷물이나 모래 중에 존재하는 우라늄과 같거나 그보다 더 적다”고 2002년에 발표했다. 그래서 유해론은 ‘우라늄’이라는 말이 들어간 데 따른 알레르기적 반응으로, 오해일 뿐이라는 주장이 널리 유포돼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동물실험을 통해 열화우라늄에 발암성이 있다(방사능 때문인지 중금속 독성 때문인지는 확증되진 않았다)는 발표가 있었고, 법적인 규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유해 물질로 취급되고 있다. 문제의 증후군에 시달리는 해외 파병 미군들의 보상소송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도 어린이가 열화우라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미국은 1958년부터 뉴욕주 주도 올버니 인근에서 가동돼온 열화우라늄 무기제조 공장 조업을 1982년에 중단시키고 84년에는 아주 폐쇄해버렸다. 그 공장 종업원과 인근 주민들은 암 등의 건강 피해를 호소해왔는데, 최근 조사에서 조사 대상 전 종업원 5명 모두가, 인근 주민 18명 중 4명이 열화우라늄 양성 반응을 나타냈고 그 지역 열화우라늄 잔유량은 기준치를 넘는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해 12월5일 유엔 제62차 총회는 ‘열화우라늄을 포함한 무기·포탄 사용의 영향에 관한 결의’를 찬성 136, 반대 5, 기권 36, 투표 불참 15표로 통과시켰다. 결의는 열화우라늄 무기 사용이 인체나 환경에 끼칠 잠재적 유해성을 고려한다고 전문에 명기한 뒤 사무총장 이름으로 가맹국과 관련 국제기구에 대해 열화우라늄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차기 총회에서 열화우라늄 문제를 의제로 다루도록 했다. 마침내 유엔이 열화우라늄 무기에 문제가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체코, 이스라엘 5개국뿐이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은 그렇다 치고, 나토에 들어가 최근 미국에 미사일방어(MD)용 레이더 기지를 제공한 체코의 행보도 이해할 수 있다. 역시 나토 가맹국인 네덜란드에선 이 때문에 정치적 소동이 일어났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찬성했고 일본도 찬성했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인도, 파키스탄까지 찬성했다. 한국은 기권했고 북한은 찬성했다.(http://www.nodu-hiroshima.org, <세카이> 2008년 2월호)
미국친우봉사회가 확보한 자료가 근거
2005년 말에 평화운동가 이시우씨가 수원 미군기지에 136만여 발, 청주기지에 93만여 발, 오산기지에 47만여 발 등 모두 276만여 발의 열화우라늄탄이 저장돼 있다며, 이는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 보유 33만 발의 8배가 넘는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주한 미군이 수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을 관리 부실로 분실하기까지 했고, 탄약고 내의 습기로 인한 부식 때문에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근거로 삼은 것은 194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퀘이커교도 사회활동단체 미국친우봉사회가 2003년 미 태평양사령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 이 땅에서는 정보 공개는커녕 접근조차 위험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전히 자기 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이씨는 줄곧 당국의 감시와 미행을 받아오다 지난해 초 마침내 기억하기도 어려운 갖가지 죄목으로 구속 수감됐고, 1년간의 고초 끝에 징역 10년·자격정지 10년이 구형됐다. 하지만 지난 1월31일 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재판장 한양석)는 그에게 덮어씌워진 국가보안법, 해군기지법, 군사시설보호법, 군용항공기지법 등 온갖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몽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씨의 승리요, 사법 사상 기념할 만한 쾌거였다. 이씨가 열화우라늄탄을 보관하고 있다며 찍은 유엔사 경비대대 캠프 보니파스 탄약고의 사진과 관련된 혐의도 무죄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자명해졌다.
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그러고도 이 나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