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정태욱 이시우 2013/06/01 851

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

정태욱 (기사입력: 2007/07/01 21:29)

I.들어가는 말

한강하구 평화 배띄우기 행사는 2005년부터 시작되어 올 해로 벌써 세 번 째이며, 어느덧 한반도 평화 운동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주지하듯이, 한반도는 분단 반세기를 지나, 다시 전쟁의 고비를 넘고, 현재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등 정부 차원에서 남북 화해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민간차원에서도 사회․문화․경제 분야에서의 교류가 증대되어, 적대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으며, 마침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은 접경지대의 변화는 한반도 평화 진전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 하구 그리고 서해 5도 수역이 적대와 단절이 아니라 평화와 소통의 지대로 바뀌는 것은 평화체제의 가시적 증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비무장지대가 일부 개방되어 남북관리구역으로 설정되어 남북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었으며,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두 차례의 안타까운 교전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군사적 신뢰조치와 서해 경계선 및 공동어로구역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한강하구에서는 바로 평화배띄우기 운동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한강하구에서의 평화배띄우기 행사가 다른 접경지대에서의 평화노력과 다른 점을 찾아 본다면, 그것은 첫째 정부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평화운동이라는 점, 둘째 우리 휴전체제가, 단지 전쟁의 일시 중단이 아니라 평화의 상태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는 점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해방 후 38선이 민족을 서로 다른 이역(異域)으로 격리시키는 분단선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이후 휴전체제가 분단과 적대를 반세기 이상 연장시키리라고 예상하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분단은 그저 일시적인 것이며, 또 비록 전쟁까지 치루었지만, 통일은 곧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라는 점에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정전협정도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회담으로 이행할 것을 예정한 것이다(정전협정 제4조 제60항). 즉 휴전체제는 한반도 평화회복을 휴전이지, 적대와 분단을 고착화하는 휴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가 비무장지대와 달리 민간에게 개방되어 일종의 ‘평화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는 조강(祖江)이라고 불리듯, 한반도의 육해(陸海)를 소통케하는, 남과 북에 모두 소중한 뱃길이었던 것이다. ‘평화를 위한 휴전’이라면 그런 한강하구를 군사 통제구역으로 만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전쟁 이후 남북의 적대와 불신은 오히려 깊어졌으며, 휴전체제는 평화상태가 아니라 전쟁상태로 간주되었고, 적대와 통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강하구도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군사 통제구역이 되어 뱃길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한강하구가 정전협정 상 금지구역이 아니라 개방구역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 평화의 규범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는가는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할 것이다. 평화배띄우기 행사는 바로 그것을 실증해 주는 자리가 아닌가 한다.

다만, 한강하구는 휴전체제의 접속수역이니만큼, 민간에 개방되어 있다고 하여도 일정한 규제절차가 있을 수 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며, 실제로 정전협정과 그 후속합의서는 한강하구의 항행에 있어 군사정전위원회의 등록절차를 따르게 하고, 선박 항행에 관한 사항들을 상호 통보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제는 한강하구에서의 민용 선박의 운항이 자칫 적대행위를 유발할 가능성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할 것이나, 그것은 다시 평화와 자유를 저해하는 규제가 될 수 있음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주최 측에서 필자에게 발제를 부탁한 것도 바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법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시피하다. 오히려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루고 있는 이시우 선생이 그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은 천착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는 법학자의 일인으로 이시우 선생에게 한편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생각하며, 오늘 비록 부족하나마 그 문제에 대한 하나의 시론을 구성해 보고자 한다. 글의 순서는 정전협정의 성격, 휴전체제에서의 유엔사의 관할권의 범위, 정전협정에서의 한강하구의 성격과 유엔사의 선박등록절차의 문제, 그리고 끝으로 유엔사(UNC)의 문제 등으로 이어진다.

II.정전협정의 성격

한국 전쟁을 마감하는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 전쟁을 종료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적대행위를 중단시키는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여기서 먼저 약간의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전쟁 발발 후, 적대행위를 중단하거나 전쟁을 종료하는 법적 용어 또는 형식은 크게 정화(cease-fire), 정전(cease-fire 혹은 truce), 휴전(armistice), 평화 조약(peace treaty)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적대행위의 중단, 일시적이지만 전체적인 적대행위의 중단, 지속적이면서 전체적인 적대행위의 중단(혹은 전쟁의 종료), 끝으로 평화관계의 회복 혹은 수립이라는 순차적 단계들에 대응하는 것이다.(註: truce라는 용어는 특히 유엔의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전의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정진석, 294쪽).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정전협정은, 그 용어는 ‘정전’으로 되어 있지만, 그 성격은 ‘휴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휴전협상 과정에서 북한 측이 본격적인 휴전을 하기 전에 먼저 사실상의 정전(de facto cease-fire)을 하자고 제안하였을 때, 유엔군 측은 그것을 거부하였고, 결국 법적으로 완전한 휴전의 합의에 이르렀다는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방증된다(Bailey, 78쪽). 그러면 어째서 그 용어가 휴전이 아니라 정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의문점으로 남는데, 이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고전적인 국제법에서는 정전과 휴전의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1907년의 헤이그 육전(陸戰)법규에서 사용된 armistice라는 용어는 정전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며, 북한의 국제법 사전 역시 armistice를 정전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불분명성은 어쩌면 20세기 전반기까지도,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한 국가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았고, 그에 따라 정전과 휴전을 세밀하게 구분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로 문제되는 것은 단지 armistice의 용어상의 논란(이하 이를 ‘휴전’이라고 쓴다. 다만, 우리 1953년의 정전협정은 고유명사이므로 그대로 쓰기로 한다.)이 아니라, 그 법적 효과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의 휴전체제가 단지 적대행위의 중단에 그치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의 종료를 뜻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전자라면 그 적대행위의 중단은 잠정적인 것이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전시법이 지배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고, 후자라면 그 적대행위 중단은 전쟁의 종료이며 따라서 기본적으로 평시법이 지배하는 상태로 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국제법의 이론에서 휴전협정은 전쟁의 중단에 불과하며, 전쟁을 종료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오펜하임; 이한기, 824쪽). 그러나 현대의 국제법의 유력한 흐름은 휴전협정을 전쟁 종료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쪽이다. 즉 휴전체제에서는 불완전하지만 평화의 상태(dissociative peace)라고 본다(스토운, 딘스타인). 이러한 흐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새롭게 나타난 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이후 중동전쟁 등을 거치면서 이제 거의 확립된 국제법적 관행이라고 평가된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도 그 대표적인 예로 이해되고 있다(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Dinstein, 42-47쪽 참조).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전쟁을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전쟁을 할 권리’를 부정하는 추세에 있다고 할 때,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휴전이라면, 이제 더 이상 전시법이 지배하는 전쟁상태는 아니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특히 한국전쟁과 같이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반 세기 이상 지속된 상황에서 전시법 체제를 지속시키는 것은 많은 곤란과 부당함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현재의 정전협정만으로 평화상태가 되었고, 따라서 별도의 평화협정이 필요 없다는 주장으로 오해되어서는 곤란하다. 휴전협정을 전쟁의 종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평화의 회복은 아니다. 그리고 휴전협정 자체의 성격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어, 예컨대 언제라도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음을 감안할 때, 평화협정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특히 북미 간의 정치․군사적 긴장상태를 생각하면 평화협정의 시급성과 절실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아울러 우리 정전협정 자체도 그 부칙에서 다른 평화협정으로써만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음을 명시해 놓고 있다는 점(정전협정 제5조 부칙 제62항)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b>III.유엔사의 관할권

국제법상 한 국가의 관할권은 영토에 대한 영유권(dominium; 소유권적 개념)을 바탕으로 입법, 사법, 행정을 포괄하는 통치권(imperium)을 뜻하는 것이지만, 유엔사의 관할권은 그러한 국가의 관할권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엔사의 본질이 미국 중심의 참전 16개국의 통합사령부라고 하여도(註: 유엔사의 본질에 대하여는 후술함), 유엔사의 관할권이 그 국가들의 관할권의 ‘역외 확장’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즉 유엔사의 관할권은 휴전체제에 특수한 상황에서 국제법상 인정되는 특수한 권한일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 정부가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이양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군사적 차원의 관할권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휴전체제 하에서라도 유엔사가 일종의 ‘점령군’이라는 사실 그리고 유엔사가 국제법상 휴전체제의 유지 및 관리의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법상 점령도 여러 종류이다. 우리의 정전협정을 전쟁을 종료시키는 휴전으로 볼 경우, 그 유엔사의 점령은 전시점령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한국과의 합의에 의하여 평화협정으로 이행하기 전까지 휴전체제를 관리하는 ‘우호적 점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이한기, 749쪽 참조). 그에 따라 유엔사의 관할권은 오직 전쟁의 재발을 막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것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휴전체제를 전시법에 의한 질서로 보는가 평시법에 의한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 유엔사의 관할권의 성격과 범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전협정과 국내법이 경합하는 경우, 그 적용의 순위에 대하여는 정전협정이 우선한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국내법에 대한 국제법의 우선성이라기보다, 통상적인 상황에 대한 예외적인 상황의 우선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전협정에 의한 휴전체제가 전쟁을 종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할 때, 정전협정의 우선성은 그 규정상 명확한 경우로만 한정되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휴전체제라는 이유로 유엔사의 관할권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예컨대 제주해협에서 북한 상선이 무해통항을 시도한 것을 두고, 그것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전시법에 따라서 정선 및 나포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의 평화적 휴전체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註: 이에 관해서는 Stephen Kong의 논문 참조. 한편 이스라엘-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 간의 휴전협정에서 수에즈 운하의 무해통항을 방해할 수 없다는 유엔의 유권해석에 대하여는 Kong, 383쪽 참조.)

마찬가지로 우리의 휴전체제가 전쟁을 종료시키는 것이라면, 정전협정이 적용되는 경우에도, 그것이 군사적 적대행위와 관계된 것이 아닌 한, 유엔사의 관할권은 제한과 통제가 아니라 조정과 협조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컨대 비무장지대의 일부 지역을 개방하여 남북의 관리구역으로 설정하였다면, 그 지역에서 유엔사가 다시 그 사전 승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註: 이에 대하여는 후술하도록 한다.). 또한 오늘 주제인 한강하구의 경우, 비무장지대와 달리 정전협정 상 원래 민간에 개방되어 있다고 할 때, 그에 관한 유엔사의 권한은 비무장지대에서의 허가권과 같이 해석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유엔사의 관할권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일방 당사자인 유엔사는 한반도 휴전체제의 유지와 관리, 즉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정전협정 서언)를 보장하기 위한 일반적인 관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반도가 전시상황이 될 경우, 그 관할권은 전 한반도에 미치게 되지만, 평상시의 경우라면 그 관할권의 지역적 적용 범위는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수역 그리고 서해 5도 연안으로 국한되며(말하자면, 이러한 접경지역은 ‘평시’에도 ‘무력충돌 방지의 군사적 필요’가 인정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지역에서의 관할권의 내용적 범위도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필요’의 정도에 따라, 비무장지대의 경우 그 출입과 왕래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허하지만, 한강 수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민간 항행에 개방하고 있으며, 서해 5도 수역의 경우 그 섬들의 연안 수역(예컨대 3해리)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해상봉쇄를 하지 않는 쪽으로 나타나는 등 차등적 구조로 되어 있다. 이하에서는 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 보고자한다.

IV.정전협정 상 한강하구의 지위 – 비무장지대 및 서해5도 수역과의 비교

1.정전협정의 규정

주지하듯이,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은 육상에서만 존재한다.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섬들에 대한 쌍방 관할권(군사적 통제)만 명백히 하였다. 육지와 해수의 경계인 한강하구에 대하여는 경계선을 두지 않고 쌍방의 민용선박의 항해를 허용하였다.

*정전협정 제1조의 제1항 내지 제3항(육상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1.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線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
2. 군사분계선의 위치는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바와 같다.
3. 비무장지대는 첨부한 지면에 표시한 북방 경계선 및 남방 경계선으로써 이를 확정한다.

*정전협정 제1조의 제5항(한강하구와 민용 선박에 개방)

5. 한강 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용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부분의 한강하구의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규정한다. 각방 민용선박이 항행함에 있어서 자기측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유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정전협정 제2조의 제13항의 ㄴ목(서해 5도의 관할권)

ㄴ.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10일 이내에 상대방은 한국에 있어서의 후방과 연해도서 및 해면으로부터 그들의 모든 군사역량 보급물자 및 장비를 철거한다. … 상기한 연해도서라는 용어는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할 때에 비록 일방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1950년 6월 24일에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도서중에서 백령도(북위 37도 58분, 동경 124도 40분), 대청도(북위 37도 50분, 동경 124도 42분), 소청도(북위 37도 46분, 동경 124도 46분), 연평도(북위 37도 38분, 동경 125도 40분) 및 우도(북위 37도 36분, 동경 125도 58분)의 도서군들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것을 제외한 기타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둔다. 한국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도서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 둔다.

이상의 접경지역, 즉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5도 수역들에 대한 정전협정의 규정과 유엔사의 관할권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무장지대의 경우에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정전협정 제1조 제1항)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과 왕래 자체를 금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한강수역의 경우에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고, 다만, 그 “항행규칙을 규정하는”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으며(정전협정 제1조 제5항),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고, 다만,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만을 획정하고(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정전협정에서의 한강하구에 대한 유엔사의 관할권은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해상의 서해 5도 수역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비무장지대와 서해 5도 수역의 문제를 먼저 검토․비교함으로써 한강하구의 성격과 그에 대한 유엔사의 권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2.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와 육상의 군사분계선은 원칙적으로 출입과 통과가 불허되는 지역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현재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금강산 육로 관광과 개성공단의 방문은 이미 일상화되었고, 금년 5월 비록 시험운행이었지만, 남북 철도의 왕래도 있었다. 남북 단절 반세기의 역사에서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며, 그것은 다시 휴전체제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즉 그러한 변화는 정전협정의 변경을 수반하였던 것이다. 북한군과 유엔사는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해 정전협정을 수정하는 후속합의서를 체결하고, 비무장 지대의 일부 구역의 관리권을 남과 북에 이양하였다. 그것이 제29․30차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9차 정전협정 후속 합의서(2000. 11. 17)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 합의서>

1.쌍방은 정전협정에 따라 서울-신의주 간 철도와 문산-개성 간 도로(제30차 정전협정 후속합의서<2002. 9. 12.>는 동해선에 대한 것인데, 저진-온정리 간 철도와 송헌리-고성 간 도로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 후속합의서와 완전히 동일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가 통과하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일부구역을 개방하여 그 구역을 남과 북의 관리구역으로 한다.
2.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의 일부구역 개방과 관련된 기술 및 실무적인 문제들과 남과 북의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군사적인 문제들을 정전협정에 따라 남과 북의 군대들 사이에 협의처리 하도록 한다.
3.본 합의서는 장성급 회담에서 비준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한 정전협정의 수정에 따라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의 통행을 위한 군사보장합의서들을 채택하였다. <동해지구 서해지구 남북간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2002. 9. 17. 제6차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타결)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1.남북 관리구역의 설정, 2.지뢰제거(해제) 작업, 3.철도와 도로의 연결작업, 4.접촉 및 통신, 5.작업장경비 및 안전보장, 6.합의서 효력발생과 폐기 및 수정, 보충에 대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일이 진행되는 가운데 지뢰제거 작업과 관련하여 논란이 불거졌는데, 유엔사 측은 임시도로 연결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은 정전협정의 적용대상이므로 인원의 출입에 대하여 유엔사의 승인을 받으라는 요구를 하였고, 그에 맞서 북한 측은 남북 군사보장합의서에 따라 남측에게만 통보하면 족하다는 입장을 주장하였다.

사전 승인에 대한 유엔사의 주장은 정전협정의 기본 원칙이긴 하나,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에서 비무장지대를 일부 개방하여 그곳을 남북의 관리구역으로 하였고, 남북의 군사보장합의서가 지뢰제거의 문제 또한 포함한 것이라고 할 때, 새삼스레 정전협정의 조항을 거론하며 별도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비무장지대의 일부구역을 개방하여 관리권을 넘겼다면, 그 왕래에서 군사적 적대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유엔사의 관할권이 사전(事前)에 발동될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한 군으로부터의 사후(事後) 보고라면 모를까, ‘사전’ 승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비무장지대를 일부 개방하여 그 부분은 남북의 관리구역으로 정한 정전협정 후속합의서를 무로 돌리는 처사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에 맞서 남북 도로 철도 연결에 있어 유엔사의 ‘관할권’을 아예 부정한 북한의 주장 또한 과잉된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관할권은 휴전체제 자체의 유지에 대한 권한으로서, 일부구역을 남과 북의 관리구역으로 한다고 한 것만으로 (전쟁재발 방지라는) 휴전체제의 관할권 자체를 이양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유엔사는 해체되어야 할 비법(非法)적 존재라는 평소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문제는 후에 논급하도록 하겠다.

그러한 논란에 대하여 남한 측은 중재안을 내었는데, 그것은 유엔사의 ‘월선 승인권’을 인정하면서도, 통행과 관련한 상호 통보 절차는 ‘남북 간에 실시’하는 간소화 절차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판문점에서의 출입에 관한 절차를 준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남측이 유엔사에 통보형식의 승인을 거쳐 군사분계선 통행인원의 명단 등을 북측에 직접 통보하자는 것이다. 유엔사는 그 ‘승인’의 명분을 취한 것이고, 북한은 남북 사이에 직접 실시한다는 실질을 중시한 것이라고 해석된다(통일부,「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 해설자료」참조).

그러나 형식적이나마, 유엔사가 ‘사전승인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비무장지대를 일부 개방하여 남북관리구역으로 한 합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었다. 북한 측과 유엔사는 이미 새로운 합의서로서 비무장지대의 일부를 개방하였다고 할 때, 유엔사의 관할권의 내용 또한 기존의 비무장지대와 그 개방구역 사이에 차이를 보여야 마땅할 것이며, 정전협정 상의 ‘특정의 허가’를 그 후속합의서에 남북 관리구역으로 정한 곳에서까지 적용하려 드는 것은 과욕이 아닐 수 없다. 유엔사의 관할권과 ‘사전’ 승인권은 같은 개념이 아닌 것이다.

3.서해 5도 수역과 북방한계선(NLL)

서해 5도 수역에 대하여 정전협정은 육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은 경계선을 정하지 않았고,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완충 구역도 설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한강하구와 같이 민간의 선박 항행에 대하여 공동으로 개방한다는 규정도 없다. 다만, 그 수역의 섬들이 쌍방 어느 쪽 군사통제 하에 놓이는지, 즉 섬들 및 그 섬들의 연안(3해리로 볼 수 있음)에 대한 관할권만 정하였을 뿐이다.

해상의 군사분계선을 정하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는 북한 측과 유엔군 간에 합의를 보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상분계선을 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자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으나, 필자로서는 오히려 후자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정전협정이 전쟁의 중단이 아니라 전쟁의 종료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착상에 따른 것이다. 즉 전쟁이 종료하여 해상의 전투가 더 이상 없다고 한다면, 남과 북의 해상경계선은 곧 영해의 획정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영해의 획정은 남과 북 사이에 합의하거나 논의할 문제이지 유엔사가 나설 일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정전협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해상의 구역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해상봉쇄를 금지하는 일이었다. 즉 해상의 구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해수의 이용을 쌍방 모두에게 보장하는 일이 정전협정의 주된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정전협정 제2조 제15항은 “본 정전협정은 적대 중의 일체 해상 군사역량에 적용되며 이러한 해상 군사역량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며 한국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하자.

하지만 주지하듯이, 서해 5도 수역에서 남과 북은 쌍방의 ‘영해’(혹은 관할수역)에 관한 합의나 협상이 없었다. 남한의 경우 헌법 자체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듯이, 그 문제는 아예 금기시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해가 획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전협정에서의 해상 경계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면, 서해 5도 수역의 이용은 국제 해양법의 원리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형평(equitable solution)에 따라 공평한 방식으로 남북의 관할수역이 나누어지거나 혹은 공동이용의 수역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서해 5도 수역에서 그것이 “육지에 인접한 해면”이 아닌 이상, 그리고 군사적 적대행위가 아니라면, 유엔사가 관할권을 주장할 일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유엔사가 정전협정 직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하여 북한에 통보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서해상의 해상경계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그 북방한계선을 우리의 영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정전협정이나 국제해양법에 비추어 볼 때, 모두 그릇된 얘기이다. 북방한계선을 유엔군 사령관인 클라크가 그은 것은 맞지만, 그것은 해상경계선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고, 단지 남측의 군사 작전의 북방한계를 설정하기 위한 내부적인 통제선일 따름이다. 유엔사는 해상분계선을 (북한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을 권리도 없을뿐더러, 그럴 의도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북방한계선을 우리 남한 측이 군사분계선이라고 강변하는 셈인데, 이는 유엔사조차 동의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그저 혼자만의 억지 주장에 불과한 것이고, 만약 그것을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남북의 영역적 경계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국제해양법의 원리에 맞지 않는 횡포에 가까운 주장일 뿐이다.

(註: 1999년 서해교전이 발생하였을 때, 리영희 선생은 북방한계선이 애초에 군사분계선의 의도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을 저지하기 위한 통제선이었으며, 또 그것이 이후 군사분계선으로 고착되었다는 주장도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바가 있다. 한편 그러한 관점에 서 있는 우리 국제법학의 글로서는 이장희의 것을 들 수 있다. 한편 국제해양법의 관점에서 북방한계선이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는 Van Dyke/Valencia/Garmendia를 참고할 수 있다. 여기서 제시된 몇몇 원칙들을 소개해 보면, 영해 획정을 위한 등거리의 원칙에 있어 섬은 육지에 비하여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관계된 해안선의 상대적 길이에 따른 비례성이 감안되어야 한다, 지리적 요인을 중시하며, 비지리적인 요인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고려될 뿐이다, 공해로의 진출이나 경제적 이익에 관하여 일방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쌍방은 각기 일정한 수역을 할당받아야만 한다는 것 등이다.)

한편, 북한은 남한의 NLL에 맞서 1977년 50해리 작전수역 그리고 1999년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를 연장한 서해 해상경계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방적인 주장일 뿐 정전협정이나 국제법적 근거를 갖춘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1999년과 2002년의 서해교전의 참변은 이에 관한 무지와 배타성에서 연유한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방한계선을 그은 것은 유엔사지만, 그것을 해상군사분계선으로 만든 것은 결국 남한 측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 서해의 해상경계선 혹은 영해를 획정하는 것도 결국 남북이 할 일이다. 북방한계선은 원래 단지 남측의 내부에서의 효력밖에 없는 것이므로, 남과 북이 서해에서의 경계선 혹은 공동이용에 대하여 합의를 한다면, 북방한계선의 효력은 저절로 소멸되거가 희석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전협정이 관할할 문제가 아니라 남과 북이 평시의 법에 의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물론 이 경우 군사적인 도발이나 무력 충돌이 빚어진다면 이는 휴전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며, 평화와 전쟁재발방지를 맡고 있는 유엔사가 개입할 필요와 권한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이상 그 수역의 관할권 자체는 남과 북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첨언하면, 이미 말한대로,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의 무해통항에 대하여 이를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와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그릇된 논리라고 할 것이다.

사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해상경계선에 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남북 해운합의서가 체결되고, 서해 5도 연안에서의 군사적 신뢰조치와 공동어로수역 및 해상경계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는데, 이는 모두 정전협정를 저해할 일이 없는 것이다. 즉, 비무장지대의 일부구역을 개방하는 경우에는 북한 측과 유엔사간에 정전협정을 수정하는 후속합의서의 마련이 필요하였지만, 서해 5도 수역 기타 해운에서의 협력의 경우에는 그러한 합의서, 즉 유엔사의 선행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4.한강하구
1)휴전체제와 한강하구

반복하지만, 한강하구의 법적 지위는 비무장지대와 서해5도 수역의 중간 쯤에 놓여 있다. 즉 한강하구는 유엔사의 허가권에 의하여 엄격히 통제되는 곳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해5도 수역(섬들의 연안이 아닌)과 같이 전적으로 남북의 자유로운 협상에 맡겨져 있는 곳도 아니다. 한강하구는 원칙적으로 남북의 민간항행에 개방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가 정하도록 되어 있고, 남측의 경우 선박의 등록절차 등은 유엔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와는 달리 정전협정상 원칙적으로 민용 선박에 개방되어 있다. 이는 앞서 얘기한 대로, 우리의 휴전체제가 전쟁의 종료를 뜻한다는 차원에서 한강 수역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정전을 평화체제로 바꾸는 정치회담이 실패하였듯이, 한강하구에도 평화는 도래하지 못하였고, 이후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와 같이 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어 왔으며, 실제로 쌍방 간의 적대행위가 빈번하기도 하였다. 그 사례들(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항의된 예들)을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한강하구 순찰선박에 대한 총격사건 항의(제159차 군정위, 1962. 11. 21.), 한강하구 순찰대 피습사건 항의(제256차 군정위, 1967. 10. 12.),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 항의(제173차 군정위, 1968. 7. 13.), 임진강 및 강화도 무장 공비와 간첩 침투 항의(제321차 군정위, 1971. 9. 1.), 김포반도마을 무장공비 침투 항의(군정위 322차, 1971. 9. 21.), 한강하구 침투 무장공비 사건 항의(제400차 군정위, 1980. 4. 3.), 임진강(현수교) 침투 무장공비 사건 항의(제406차 군정위, 1981. 7. 17.)

그러나 한강하구가 이렇듯 군사적 통제구역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유엔사 관할권의 행사의 결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적인 통제상태와 법적인 통제구역은 구분되어야 한다. 한강하구가 법적으로 통제구역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정전협정상의 통제가 아니라 남한의 국내법적 통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군사시설보호법 상의 민통선, 그리고 국방부가 제정한 선박조업안전규칙 등에 의한 어로한계선이 그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법적 통제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제될 수 있으며, 거기에 유엔사가 개입할 일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한강하구의 항행규칙

비무장지대에서 일부구역 개방하는 경우 정전협정을 수정하는 별도의 후속합의서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한강하구의 경우는 정전협정 자체에서 이미 민간에 개방되어 있으므로 그와 같은 후속합의서는 필요 없다. 하지만, 한강하구는 군사적 접촉선과 밀접하므로 민간의 운항에도 일정한 규제절차를 요구하게 되었고, 북한 측과 유엔사는 한강하구 민간 개방을 규율하는 구체적인 후속합의서를 채택하여 항행규칙을 설정하였다.

제8차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인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 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1953. 10. 3. 제22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비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쌍방은 정전협정에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한강 하구 수역의 비무장화를 승인한다.
4.정전협정 중 군사분계선을 확정함에 관한 규정과 사민(私民)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을 제외하고 비무장지대에 적용되는 모든 규정은 한강 하구 수역에도 적용된다.
6.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는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
9.적대 쌍방 사령관은 자기 측의 선박 등록에 적용할 규칙을 규정한다.
10.한강 하구 수역의 선박은 다음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ㄱ.선박의 내용과 특성을 명기한 등록증을 휴대한다.
ㄴ.군사정전위원회, 공동감시소조 및 민사행정경찰의 조사와 수색에 복종한다.
ㄷ.조사 받을 때, 선박과 선주의 국적, 선주의 이름, 출발과 목적항, 선장, 선원 및 승객의 이름, 적재 화물에 대하여 밝힌다.
ㄹ.자기 국기 혹은 국적기를 뚜렷하게 한다.
ㅁ.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 없이는 어떤 군사장비도 설치하지 못한다.
ㅂ.타방의 통제수역과 강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타방의 경계선으로부터 백미터 이내에 접근하지 못한다.
ㅅ.상대방의 선박과 연락이나 통신을 하지 못한다.
ㅇ.상대방의 선박과 인원과 화물, 장비를 양도하거나 교환하지 못한다.
ㅈ.야간에는 항행이나 활동을 하지 못한다.

3)한강하구 민간항행 사례

위와 같이 정전협정 후속합의서로서 민용선박의 항행규칙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의 항행은 별도의 합의조치가 없이도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쳐 민용 선박이 운항을 한 바도 있다. 한강평화배띄우기 행사는 그 중요한 일례이다. 그러나 그러한 운항이 정전협정과 무관한 것은 아니고 앞서 본 항행규칙에 따르는 것이었음은 또한 당연한 사실이다. 이하에서는 현재까지 군사정전위원회 편람의 기록에 따라 한강하구에서의 통행 혹은 출입의 사례들을 소개해 본다.(여기에는 2006년의 평화배띄우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례1 - 자유로 건설용 골재채취선 진출입(1990. 11. - 1991. 11.)>

*골재채취선 중립지역 진입: 준설/예인선 등 8척에 인원 28명이 승선 10일 간에 걸쳐 교동도로부터 한강하구 중립지역을 경유 오두산 전방으로 이동(예인선 2척은 임무완료 후 철수)
*골재채취선 중립지역 철수: 준설/예인선 등 6척과 인권 31명이 5일 간에 걸쳐 오두산 전방으로부터 한강하구 중립수역 경유 교동도로 이동
*한강하구 중립지역 항해 간 3회 좌초, 예인선 1척 침몰, 진입/철수 기간 연장(장기간 지연에 대한 북측 강력한 항의)

정전협정 상의 조치: 민용선박 중립지역 출입 사실 및 관련 자료 대북 통보, 군정위 특별조사반 요원 승선

<사례2 - 한강 하구에 표류하던 황소 구하기(1997. 1. 17.)>

홍수로 한강하구 중립지역을 표류하다 유도에 표착한 황소 1마리를 육지로 이송, 해병대 제2사단 인원 24명 고무보트 7인승 4척,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출입

정전협정 상의 조치: 군정위 비서장 대북 통지문 발송(출입 일시, 인원, 장비 등)

<사례3 - 한강 하구에 유입된 염소 회수(1999. 2. 18.)>

원인미상으로 한강 하구 중립 수역 납섬에 유입된 서검도 주민 소유 염소 10마리를 회수, 해병대 제2사단 인원 34명 투입

정전협정 상의 조치: 미실시

<사례4 - 좌초 준설선 예인(1999. 8. 28. - 8. 29.)>

집중호우로 파주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 일대에서 한강하구 중립지역인 북측 관산포 일대로 표착한 준설선을 최초의 표류 지점으로 예인함, 예인선 2척, 인원 18명(군정위 8명, 선원/작업원 4명) 투입.

정전협정 상의 조치: 참모장교급회의, 제10차 장성급회의, 비서장급회의

<사례5 - 거북선 이동(2005. 11. 7 - 11. 11.)>

경남 통영시와 서울시 간의 협의 하에 한강에 정박, 전시 중이던 거북선을 한강하구 중립지역을 경유하여 한산대첩 전적지 해상으로 이동.
수로조사선 2척과 인원 10명(조사선원 5, 군정위 3. 해병대 2사단 2명) 투입하여 수로조사 실시
거북선 1척, 수로조사선 2척, 인원 22명(예인선 5, 군정위 11, 거북선원 4, 해병대 2사단 2)을 투입하여 한강 하구 중립 수역을 경유하여 염하수로 항행.

정전협정 상의 조치: 군정위 선박 등록 및 등록증 북측에 통보, 수로조사 및 거북선 이동 일정 관련 대북통지문 발송.

4)유엔사의 ‘허가권’ 혹은 ‘등록절차’의 성격

이상에서 본 바처럼 한강하구는 민간에 개방되어 있지만, 유엔사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전협정 후속합의서로서 그에 관한 항행규칙을 마련해 두고 있고, 그 집행과 감독은 군사정전위원회 그리고 남측에서는 유엔사의 몫이 된다. 그리하여 한강하구를 항행하고자 하는 선박은 그 규칙에 따라 유엔사에서 소정의 등록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한 등록절차를 밟지 않은 경우, 민용 선박이라도 그 항행은 금지될 수 있다. 즉 그에 대하여 유엔사는 불허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집행(한국군에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와 같은 유엔사의 권한은 민간 항행에 대한 ‘허가’를 뜻하는 것인지, 즉 비무장지대의 출입에 관하여 정전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정한 허가’와 같은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강수역은 비무장지대와 그 법적 지위가 다른 만큼 그 허가와 등록의 성격도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일상적인 의미에서, 그 양자 모두 ‘허가’라고 얘기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법적인 성격마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에서의 허가는 통행의 권리를 근거짓는 수권행위라고 할 수 있다면, 한강하구에서의 등록절차는 항행의 권리를 수권하는 행위가 아니라 권리의 존부를 확인하는 절차적 요건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즉 항행의 권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등록에 따라 실행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유엔사는 신청자들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통항을 허용하여야 하며,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종의 기속(羈束)행위인 것이다. 한강하구에서의 유엔사의 ‘허가권’은 비무장지대에서의 ‘특정한 허가’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행정법학의 구분을 원용하면, 비무장지대의 출입은 허가 사항이고, 한강하구의 항행은 확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비무장지대의 출입 허가가 건축 허가에 해당한다면, 한강하구의 등록절차는 건축물의 준공검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한강하구가 휴전에 관한 국제법의 적용지역이라고 하여도, 민용 선박의 항행이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같이) 일반적으로 금지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정전에 대한 국제법 일반의 원칙에서도 그렇고(註: 앞서 본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휴전협정에서의 수에즈 운하의 항행에 관한 유엔의 유권해석 참조.), 무엇보다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를 민간에게 개방하는 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강하구에서의 민간 항행은 일반적으로 허용된 것이며, 다만, 이후의 적대행위와 위험성을 감안하여 그 허용성이 제한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적대행위와 위험성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것은 의무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아울러 2006년 제1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그리고 2007년 제13차 경추위에서는 “남과 북은 한강하구 골재채취 사업을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는데 따라 협의 추진하기로 한다.”고 합의하였는데, 여기서의 군사적 보장조치도 원칙적으로 남과 북의 합의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군사정전위를 통한 쌍방의 보고, 그리고 유엔사의 등록절차까지 간소화하기 위한 절차를 만들 필요도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는 역시 또 하나의 정전협정 후속합의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후속합의서는 단지 절차적 문제에 관한 것일 뿐이지, 그러한 합의서가 없다고 하여 비무장지대의 경우와 같이 민용선박의 항행이 금지되는 것은 아님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덧붙일 말은, 한강하구가 민용선박의 항행에 이미 개방되어 있다고 하여도, 그 지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용어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된 한에 있어서, 한강하구에는 국내법만이 아니라 정전에 관한 국제법도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강 하구는 무력 충돌의 위험성이 큰 곳이며, 이후 적대행위가 빈발하였다고 할 때, 정전협정에서 한강 하구를 민간에 개방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 자체를 배제한다는 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본 정전협정에 대한 후속합의서의 규정도 그와 같은 이해를 뒷받침한다. 그 후속합의서는 정전협정과 같은 효력을 가진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강 하구 수역의 비무장화를 승인”한 것은 쌍방 사령관이며, “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는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밑줄은 필자)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고 하여 정전협정의 우선성을 명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법상의 조약법의 원리에 따르면, 어떤 조약이 다른 조약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력이 있다고 할 때에는 후자의 조약이 우선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이는 그 합의서의 문면상으로도 명확해 보인다.

다만, 거듭 말하지만, 그 유엔사의 관할권은 비무장지대와 같이 ‘사전 승인권’을 포함하는 것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적대행위와 군사적 충돌과 무관한 이상, 한강하구의 민간 이용에 대한 유엔사의 등록절차는 결코 고권적(高權的) 명령행위가 아니라, 다만 민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인하는 협력적 확인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V.‘유엔사(UNC: United Nations Command)’의 성격

추가적으로 유엔사의 법적 성격에 대하여 첨언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참전국의 군대를 ‘유엔군’으로 부르고 그 사령부를 ‘유엔군사령부’라고 칭하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조심해야 한다. 첫째로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은 비록 정전협정에는 명기되어 있지만, 그것은 유엔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엔 안보리는 다만, 참전국들이 유엔의 깃발을 사용할 것을 허용하였을 뿐이며, 그 이름도 미국 중심의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에 불과하였다(실제로 Bailey 같은 이는 그의 저서에서 유엔사가 아니라 통합사령부라는 용어로 일관하고 있다.). 둘째로,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은 비록 유엔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것이 진짜 ‘유엔의 군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유엔군’은 유엔의 보조기관으로서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단지 유엔의 지지를 받는 참전국들의 연합군에 불과한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유엔군’이 유엔 안보리의 강제집행을 수행하는 일종의 국제경찰 역을 담당한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남침에 대하여 남한을 돕는 일종의 ‘집단적 자위권’으로서 참전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지만, 그 어떤 경우이든 ‘유엔군’이 ‘유엔의 군대’, 즉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보다 자세한 설명은 정태욱 참조). 이에 대하여 국내의 많은 학자들은 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의 지지를 받는 군대’와 ‘유엔의 군대’를 혼동한 것이거나, 아니면 유엔사 해체의 북한 주장에 맞서 유엔사를 유엔의 기관으로 승격시켜 놓으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유엔사가 유엔의 기관이 아니라고 하여 유엔사 자체가 불법적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16개국의 참전이 불법이 아닌 이상, 유엔사가 휴전체제의 유지와 관리의 주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유엔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참전국의 연합사령부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남한의 군대도 유엔사의 구성부분이다. 그렇다면 남한 군 장성이 군정위의 유엔사 측의 수석대표로 된다고 하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남북의 군사회담도 그 자체로 휴전체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군사정전위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컨대 비무장지대에서 일부구역을 개방하여 남북의 관리구역으로 하였다면, 그 경우 유엔사의 관할권은 단지 유엔사와 남한 군 사이의 내부적인 통제와 보고의 관계에 국한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강하구에서 요청되는 선박등록절차에 대한 임무 또한 우리 군의 의지에 따라 유엔사로부터 위임받아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하여 첨언하면, 유엔사가 참전국들의 연합군, 그리하여 지금은 그저 한미연합군에 불과한 것으로서, 군사적으로는 한미연합사의 한 부분이며, 다만, 정전협정에 따라서 휴전체제의 유지와 관리의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할 때, 한미연합사로부터 우리 군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온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유엔사로부터도 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로부터의 작통권 환수절차 중에 유엔사로부터의 작통권 환수도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미연합사로부터 작통권을 환수해 오면 한미연합사는 자연히 해체되게 된다. 마찬가지로 유엔사로부터 작통권을 환수해 오면 유엔사 또한 자연히 해체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엔사를 유엔의 기관이라고 한다면, 그 해체에 유엔 안보리 등의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대로 유엔사는 한미연합군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그 해체도 결국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유엔에 관계된다면, 그것은 단지 보고의무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유엔사가 해체된다고 하여 현재의 휴전체제가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휴전체제의 관리를 군사정전위원회가 아니라 남북미의 3자 공동군사위원회(장성급 회담)가 꾸려가게 될 뿐이다.

VI.맺음말

비무장지대는 일부 개방되어 남북 교류와 소통의 장이 되었고, 한강하구는 원래 개방되어 있었던 곳으로서 이제 남북이 평화적 이용에 나서고 있다. 한강하구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허가권을 비무장지대에서의 그것과 같이 볼 수는 없다. 유엔사의 등록절차는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가 아니라, 단지 자유의 행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휴전체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절차라고 할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거나 유엔사가 해체되기 전에 한강하구에서의 유엔사의 관할권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 관할권을 마치 전시(戰時)의 통치권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비무장지대의 경우와 같이 고권적(高權的) 사전허가권과 같이 생각하는 것 또한 착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은 평화의 회복을 위한 휴전체제의 본질을 훼손할 수도 있다.

한편 유엔사를 한미의 연합군 체제라고 할 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의 태도 및 그에 관한 국내법적 문제라고 할 것이다. 우리 군의 평화에의 의지와 그를 위한 국내법적 개선조치들이 요망된다. 그러한 발전이 있다면, 유엔사는 ‘허가권’ 주장과 같은 과욕을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엔사의 권한은 휴전체제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의 관계가 발전되면 저절로 약화될 것이다. 평화배띄우기 운동으로 한강 하구에서 평화가 진작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증진될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유엔사를 직접 상대하여 논란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 서해교전에서도 보듯이, 어쩌면 유엔사보다 우리 군이 더욱 무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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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아주대 교수이다.
* 위의 글은, {7.27 한강하구 평화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가 6월 20일에 개최한 토론회(주제; 한강하구의 평화정착과 생태‧평화적 발전전략)에서 필자가 발제자로서 발표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