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과 주한유엔사령부(UNC) 이시우 2013/06/01 879

평화협정과 주한유엔사령부(UNC)

정태욱 (기사입력: 2007/05/11 11:25)

1. 평화협정의 논의의 경과

2006년 미국의 중간선거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이 되었다. 2006년 11월 18일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마침내 한반도 평화협정이 가시권 안에 들어 온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논의는 정전협정에 이미 명시가 되어 있으나,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 이후 그에 관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미국과 중국은 관계정상화를 이루었고, 냉전이 끝나면서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하는 등 한반도 전쟁의 적대관계가 하나 둘 청산되어 가고, 남북 사이에도 1991년 기본합의서의 채택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때, 한반도는 전쟁상태에서 평화체제로 점진적으로 이행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북미 관계만은 지지부진하며, 오히려 새로운 전쟁위기마저 고조되기도 하였다.

물론 북미 평화협상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과 함께 1992년 북미 간에서도 전쟁 후 최초의 고위급회담이 성사되고, 이후 1993년 북미 뉴욕공동성명으로부터 1994년 제네바합의 그리고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등 그 적대관계 청산에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그러한 성과들이 거의 무위로 돌아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의 흐름이 좌초될 위험도 겪었으나, 결국 6자회담이라는 새로운 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재론되었다.

2005년 제4차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금년 그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 합의에서 “초기조치가 이행되는 대로 6자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확인하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방안 모색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신속하게 개최”하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갖는다.”고 하였다.

이제 당장의 현안인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의 문제, 즉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폐쇄조치가 이행될 것으로 기대되며, 그 이후 6개국의 장관급회담 등에 이어 남북미중의 한반도 평화포럼이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2. 평화협정의 쟁점 – 유엔사

그 동안 평화협정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모든 관련당사국들이 인정하면서도 협정 체결의 당사자에 대하여 크게 엇갈린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에서 제네바합의의 틀에서 이미 남북미중의 4자회담이 있어 왔고,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에서도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한 바 있으며,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마주 앉아 한반도 종전에 서명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으므로 이제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평화협정의 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평화협정의 조건, 형식, 내용, 절차 등에서 여러 가지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인데, 특히 주한미군의 문제는 그 가운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한 것도 주한미군의 철수를 관건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반대로 미국과 남한이 그에 반대하며 남북 평화협정을 고집한 것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제네바 정치회담 이후 최초로 열린 1992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김용순 대표는 주한미군의 문제에 대하여 유연한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이후에도 ‘일정 기간’ 미군주둔을 용인한다는 북한의 입장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달된 바 있다. 반면에 미국과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한 상호 조율에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최근에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의 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을 축소하게 되고, 그에 따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제 남북미 간에 주한미군의 문제에 대하여도 상호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단계에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이 또한 합의점을 찾기란 쉬운 문제는 아니고, 여러 논란이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문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한반도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기존의 유엔사는 당연히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고, 또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하여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우리 군이 유엔사로부터도 독립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와 다른 견해들이 존재하고 있음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임 바월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2006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한반도에서의 주한 미 지상군의 역할이 줄어들고 공군과 해군의 비중은 늘어나며, 유엔사는 유사시 다국적 연합군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주한미군 재편 방향을 밝혔다. 벨 사령관은 유엔사를 다국적 연합군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자신의 발언은 ‘전시우발상황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유엔사의 인력을 보강시키려는 의미’라고 해명하였지만, 이러한 발언은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가 한국군의 전작권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이상현, 242쪽)

유엔사의 존속은 단지 바월 벨 사령관 개인의 착상만은 아닌 것 같다. 전임 사령관 리언 라포트도 2005년의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전쟁 참전국들의 역할을 확대하고 유엔사 본부에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면서 “회원국들 역시 미국의 이 같은 제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조선일보, 2005년 3월 19일; 황원탁, 176쪽) 뿐만 아니라 미 상원은 200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1221조에서 “유엔사 구성 국가들이 한국 주둔 군사력을 증가시킬 경우 주한미군의 군사적, 정치적 필요조건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평가”도 포함시키도록 한 바도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2006-07-04 07:04 송고)

이에 대하여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하였던 황원탁은 “장차 한미연합사의 존속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군 당국에서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여 다국적군을 지휘할 수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존속을 고려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하면서, 유엔사의 존속은 “유사시 유엔의 추가적인 결의가 없이도 유엔군을 재편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주일기지를 계속 활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면서, 유엔사를 정전협정 대체 이후 한반도 평화보장기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황원탁, 171-177쪽)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하여 강력 반발하고 있다. 북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은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다국적연합군 기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 이행될 경우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다국적연합무력기구로 확대․재편하려는 것은 유엔군의 간판을 이용해 미군의 남조선 강점을 합리화하고 영구화하려는 구실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연합뉴스 2006-04-27 17:23 송고) 또 북한 노동신문은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국제법상 존재할 수 없는 불법적인 기구라며, 미국이 오히려 유엔사의 확대강화를 노리는 까닭은 “남조선 당국을 군사적으로 더욱 걷어쥐고 존재명분이 없는 유엔사를 다국적 연합기구로 전환해 동북아 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구실을 마련하려는데 있다”고 비판했다.(연합뉴스 2006-04-05 11:51 송고)

한미 간에 전시 작전통제권의 반환이 합의되고 그에 따라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것이 기정사실화되었으며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이 준비되는 시점에서 유엔사의 존속과 유엔사를 통한 전작권의 행사가 운위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곧 한반도 평화협정에 반대하거나 혹은 그에 대한 준비가 아직 덜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비판과 우려가 고조되자 마침내 주한 미군사령부는 지난 1월 “유엔군사령관은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이양되면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공식 밝혔다. 주한미군은 ‘유엔사의 미래에 대한 주한미군사령부의 입장’ 자료를 통해 “유엔군사령부에 대한 세부적인 변경사항은 더 작업을 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엔군사령관은 작통권 이양 이후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07-01-23 11:55 송고) 우리 정부도 그에 대처하기 위하여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유엔군사령관 겸 연합사령관이 행사해왔던 작통권의 책임도 해제된다는 내용의 한미 약정서나 공동성명을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007-01-23 11:55 송고)

이리하여 ‘유엔사의 작통권 행사를 통한 사실상의 휴전체제의 존속’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불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러한 제안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며, 언제라도 다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협정에서 유엔사의 문제는 선결적 과제가 된 셈이 아닌가 한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자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전쟁을 위해 조직된 유엔사는 해체되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엔사의 해체가 반드시 미군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기존의 유엔사가 해체되어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관리할 공동기구는 필요할 것이며,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동맹도 북중 원조조약 및 동맹관계와 함께 존속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주한미군의 철수는 단계적 사고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평화협정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는 유엔의 보조기관으로서 유엔안보리의 결의가 있지 않으면 해체될 수 없다고 하거나, 현재의 유엔사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역할만을 변경하여 한반도 평화체제의 감시기구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평화협정에 모순되거나 혹은 평화협정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으로 현재 평화협정의 논의 과정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명확한 정리가 요망된다고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전쟁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참전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개입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3. 한국전쟁의 성격

한국전쟁이 국제적 전쟁이냐 아니면 단순한 내전이냐에 대하여는 학계에 커다란 논란이 있다. 그 구별은 법학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를 단순한 내전으로 보면 유엔의 강제조치의 정당화는 좀 더 어렵게 되는 것이고, 국가 간의 전쟁 혹은 국제적인 침공이라고 한다면 유엔의 강제조치의 정당화는 좀 더 수월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가능성은 유엔헌장 제7장의 강제조치의 대상으로 말하는 ‘평화에의 위협’, ‘평화의 파괴’ 혹은 ‘침략행위’를 국가 간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으로 이해할 때 더욱 강화된다. 실제로 한국전쟁에 대한 미군의 참전에 대하여 내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유엔 헌장은 침해의 주체를 국가로 규정하지는 않았고, 그 행위가 국제법 위반임을 명시하지도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특히 냉전 이후 유엔안보리의 관행은 인도적 간섭 등 여러 차원에서 일국의 문제임에도 평화의 위협 혹은 평화의 파괴로 인정하는 관행을 쌓아 오고 있다. 사실 단순히 내란이라고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이를 ‘국제적 평화에의 위협’이나 ‘국제적 평화의 파괴’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주 어색한 해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북한의 남침을 단순한 내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미 남한과 북한은 별도의 정부가 구성되어 있었고, 외세의 영향이 있었다고 하여도 국가이념과 질서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체제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으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국제적인 냉전의 대립을 반영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북한의 침공을 단순한 내전을 넘어서 남한 정부에 대한 무력공격이자 국제적인 평화의 교란이라고 보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요컨대 적어도 유엔의 강제조치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내전인가 국제적인 전쟁인가는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할 것이며, 단지 북한의 남침이 정당한 행위였는가 아닌가, 즉 그것이 정말 평화를 해치는 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었는가가 문제일 따름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침공을 사회주의 혁명전쟁으로 정당화하거나 혹은 제주 4․3사건과 같은 학살의 책임을 묻는 인도적 간섭이나 해방전쟁으로 정당화 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북이 이미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의해 강제되는 혁명이나 해방 혹은 인도적 간섭은 모두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유엔의 개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4. ‘유엔군’ 참전에 관한 안보리 결의의 의미

북한의 남침을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를 해치는 것으로 보아 유엔의 강제조치가 정당하게 발동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유엔군’의 참전을 권고한 유엔 결의의 의미 그리고 그에 따른 군사적 조치의 합법성 여부에 대하여 다툼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식의 유엔군이 되기 위해서는 유엔 헌장 제43조의 규정에 따랐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파견국은 유엔과 특별협정을 맺고 자국의 군대를 유엔 안보리 하에 배속시켜야 하며, 안보리의 군사참모위원회가 작동하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의 유엔군은 그러한 군대가 아니었다. 사실 (평화유지활동이 아닌) 유엔의 강제조치에서 지금까지 그와 같은 특별협정을 통한 유엔군이 설치되거나 운용된 적은 없다.

그리고 한국전 참전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결의도 어떤 구속력이 있는 명령이나 수권은 아니었다. 1950년 6월 27일의 결의에서는 회원국들에게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역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국에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유엔군사령부의 설치에 대한 7월 7일의 결의에서도 “한국에 파견되는 그들의 군대를 미국정부 하의 통일사령부 산하에 둘 것을 권고하고 미국에 대해 이들 군대의 사령관을 지명할 것을 요청하고 북한군에 대항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통일사령부가 그 재량에 따라 여러 참가국의 기들과 더불어 유엔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을 뿐이다. 즉 유엔안보리의 구속력이 있는 권한행사는 오직 오직 유엔기 사용의 허가(authorize)에 해당할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권고(recommend)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의 군대는 ‘유엔군’이라고 하지만, 원래 유엔이 예정한 유엔군은 아니라고 할 것이며, 이에 관하여 큰 이견은 없다고 생각된다.(Dinstein, 276-7쪽; Gray, 199쪽)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비전형적인 무력개입에 대하여 안보리가 결의할 수 있는지, 그러한 결의의 성격은 무엇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한 편에서는 그것은 안보리의 권한을 넘는 것이며, 그러한 결의는 유엔헌장에 반하는 불법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무력행사는 가급적 제한되고 또 가능한 조심스럽게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안보리의 강제조치의 권한은 배타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안보리가 그 권한을 ‘정식의 유엔군’이 아닌 각국의 군대에게 그렇게 쉽게 맡기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혹은 위험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북한의 남침이 국제적인 평화에 반하는 부당한 침략이었다면, 그에 대한 안보리의 개입은 기본적으로 유엔헌장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보리가 정식의 유엔군을 통하여 강제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면, 그 대신 회원국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도록 명하는 것도 안보리의 권한에 포함된 것으로 보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김대순, 917쪽) 안보리는 한국전 이외에도 1966년 로디지아의 독립선언과 관련하여 영국에게 ‘필요한 경우 무력사용’을 허가하였으며(안보리 결의 678), 1992년 소말리아의 재난과 학살에 대하여도 사무총장과 회원국들에게 “인도적 구호활동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는(안보리 결의 794) 등 정식의 유엔군이 아니지만, 헌장 42조에 따른 무력사용을 허가해 오고 있다.

또한 한국전 개입과 가장 유사한 사례로 꼽히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서도 유엔안보리는 결의 678에서 회원국들에게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authorize)하며”, “전항에 의거하여 단행되는 행동에 대해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에 따라 역시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이 참전한 바 있다. 이 결의도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안보리가 그 강제력의 권한을 무책임하고 부당하게 위임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이라크의 침략을 격퇴에 대한 유엔의 지지라는 차원에서는 그 정당성을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안보리의 강제조치로서의 무력행사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면, 한국전에서의 16개 참전국의 개입도 유엔 안보리의 강제조치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하여 국내의 많은 학자들이 지지를 표하고 있다.(제성호(A), 15쪽: 김명기, 52-62쪽). 하지만,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앞의 사례들과 달리 유엔안보리가 무력사용을 명하지 않고 단지 권고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미국은 무력사용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있기 전에 이미 참전을 시작하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렇게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유엔사를 유엔의 군대로, 유엔사의 행위를 유엔의 경찰행위로 평가하는 고(故) 배재식 교수도, “정치적 군사적 요소가 집행의 제 조건을 결정함에 이르러서는 그 성격이 점차 상실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국제연합은 확실히 그 최초의 군사행동에 제재하는 관념을 도입했으나 그 성격을 보유하기는 지극히 곤란하였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부언하고 있다.(52쪽)

나아가 그것이 안보리의 수권에 의한 강제조치라고 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도(김대순은 참전 16개국의 행동을 유엔 헌장 제51조에 의거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로 보거나 아니면 안보리의 수권에 의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920쪽), 그 안보리의 수권은 표적이 된 국가(target state)에 대하여만 구속력이 있으며, 무력사용을 수권받은 국가들에 대하여는 단지 하나의 권고가 될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를 과연 유엔 안보리의 조치로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전쟁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결의는 유엔 헌장 제39조 내지 제42조의 강제조치의 틀에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그래도 경찰행동으로서의 강제조치를 고수하려는 이들은 유엔 헌장을 넘어서 국제연맹 시절에 제재 여부를 각국의 재량에 맡기는 관행을 원용하든가(이한기, 62-3쪽), 유엔의 헌장 틀을 고수하되 경찰행동으로서의 강제조치성을 부인하고 헌장 제51조에 기한 각국의 집단적 자위(정당방위)를 확인해 주는 해석(Dinstein, 276-7쪽; Simma, 제42조 주석 제7절 및 제22절)이 제시되고 있다.

이 양자는 참전 16개국을 유엔의 기관으로 보지 않고, 또 그들의 행위를 유엔의 안보리의 강제조치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으며, 그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 해석인지 단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된다. 또 그 구분의 실익이 없다는 입장도 있다(Gray, 200쪽). 그러나 필자로서는 유엔의 체제를 그 이전의 국제연맹의 관행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며, 또 단지 안보리의 권고만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무력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안보리의 결의는 헌장 제7장에 대한 언급이 없이 북한의 침공에 대하여 정당방위의 규정에서 사용하는 무력공격(armed attack)이라는 용어를 썼으며, 실제로 미국은 안보리의 무력사용에 대한 권고결의가 있기 전에 이미 참전을 단행하였음을 생각할 때, 후자의 해석(즉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지지)이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유엔헌장 제51조는 각국에 대하여 ‘무력공격(armed attack)’을 받을 경우 자위(정당방위)를 위한 전쟁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유엔의 결의와 관계없는 각국의 고유한 권리가 된다. 그리고 그 자위권은 피해당사국만이 아니라 제3국도 (마치 국내 형법의 타인을 위한 정당방위와 같이) 집단적 자위의 권리를 보유하는 것이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은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남한을 위한 집단적 자위권행사를 위한 다국적군으로 볼 수 있으며, 유엔 결의는 그러한 회원국들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유엔의 이름으로 승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안보리의 결의는 유엔의 고유한 집단적 안보조치와는 무관한 각국의 집단적 정당방위의 국제적 합법성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당방위를 위한 전쟁이 원래 각국의 고유한 권리이며, 유엔 헌장 상 각국 그리고 집단적인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다고 할 때, 유엔 안보리가 그에 대하여 승인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며,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유엔군’의 참전이 유엔의 경찰행동으로서의 강제조치인가 혹은 집단적 정당방위로서의 전쟁인가의 구분의 실익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이는 특히 ‘유엔군’이 북한군을 38선 혹은 그 너머 일정한 선까지 격퇴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북한 전 영토의 점령을 시도한 것에 대한 법적 평가의 문제와 결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일종의 경찰행동으로 본다면 침략자 북한에 대한 제재와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의 회복을 위하여 북한 전영토의 점령이 정당화될 수도 있는 반면에, 정당방위를 위한 전쟁으로 본다면 그 반격행위는 방어의 비례성과 필요성의 원리에 따라야 하므로 북한의 점령은 아무래도 과잉된 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5. ‘유엔군’의 성격

앞서 안보리의 결의에 대한 해석에서 살펴보았듯이, 유엔사가 정식의 유엔군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유엔 헌장 제43조에 따른 안보리 산하의 군대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그것을 유엔의 기관으로 말하는 것은 엄밀성이 결여된 것이다. 유엔의 지지를 받는 군대와 유엔의 정식 군대는 구분되어야 한다. 앞서 보았듯이 한반도에서의 무력사용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비록 유엔의 경찰행동으로서의 강제조치에 해당하고, 나아가 구속적 결의라고까지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유엔의 지지를 받는 참전국의 군대일 뿐이며 유엔의 군대는 아닌 것이다.(이미 언급하였듯이, 참전 16개국의 행위를 안보리의 수권에 의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는 김대순도 그 군대의 성격에 대하여는 개별 국가들의 군대였지 유엔의 군대는 아니었다고 본다; 920쪽) 하물며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안보리의 결의는 구속적 결의가 아니라 단지 권고적 결의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것이 유엔 헌장 제7장의 강제조치와 무관한 국제연맹 이래의 관습법적 전쟁행위거나, 나아가 그것이 유엔의 경찰행동으로서의 강제조치가 아니라 단지 집단적 정당방위에 지지를 표명하는 결의라고 한다면, 그 ‘유엔군’은 결코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참전 16개국은 유엔군이며 그 통합사령부는 유엔의 산하 기관으로서 그 법적 주체는 유엔 자신이라는 견해가 널리 유포되어 있으며, 다수의 국제법학자들도 또한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김명기는 다른 유엔 평화유지군의 사례들을 언급하며, “국제연합군사령부도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또 안전보장이사회의 임무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설립된 것이므로 헌장 제29조의 보조기관에 해당된다. 물론 상기[다른 평화유지군의 사례들] 제 국제연합군의 사령관은 사무총장에 의해 임명되거나 사무총장이 담당했으나,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은 미국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그것은 보조기관인 국제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한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즉 국제 연합군 총사령관의 임명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미국에 위임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국제연합의 대리인으로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임명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90쪽)

강병근은 “유엔통합군은 유엔헌장 제7장에 따른 강제조치의 일환으로서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해서 설치되었고, 그 성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설치한 보조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208쪽)고 말하고, 유엔사의 해체를 권유한 1975년의 유엔총회의 결의에 대하여 “[이러한 기관]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서 해체되는 것이고, 유엔총회의 결의로서 해체시킬 수 없다”(219쪽)고 말하고 있다.

제성호는 유엔사를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볼 수 없는 근거를 소개하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엔사를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냉전시대 초기에 특히 유엔헌장 제7장의 군사적 강제조치가 제대로 발동되지 않은 시점에 미국 주도로 유엔사가 설치되고 운영되게 된 사정 때문에 유엔의 경비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 특수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엔사가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설치됐고, 유엔기 사용권을 위임받았으며, 지난 반세기 이상,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유엔안보리에 보고하는 등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는 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제성호(B), 264쪽)

국제기구 및 유엔의 연구자인 박치영도 “유엔군 사령부는 통합사령부로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치된 보조기관이다.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거해서 유엔군 사령부가 설치되었다. 유엔군 사령부는 유엔을 대신해서 전쟁수행책임을 맡았다. 미국은 1953년 휴전협정의 이행에 관한 유엔군 사령부의 보고서를 안전보장 이사회에 제출해 오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유엔군 사령부의 폐기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301쪽)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아무리 유엔군에 대한 안보리의 결의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그 군대를 ‘유엔군(United Nations Force)’로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며, 필자가 본 바로는 이러한 입장이 지배적이다.

최철영은 유엔사는 “유엔군이라기보다 유엔의 결의에 의하여 합법성이 확보된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318쪽)라고 하였다.

박현석은 유엔사를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볼 수 없는 이유로서, “첫째,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4호의 문언상 국제연합군 사령부를 보조기관으로 예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결의의 제3항에서는 이전의 두 결의, 즉 1950년 6월 25일자 결의 제82호와 6월 27일자 결의 제83호에 따라 군사력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들에게 그러한 군사력 기타 원조를 ‘통합 사령부(a unified command)’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하고, 제4항에서는 미국에 대하여 그 사령관을 지명하도록 ‘요청’했으며, 제5항에서는 그 통합 사령부에게 참전국 국기와 아울러 UN기의 사용을 ‘허가(authorize)’하고, 제6항에서는 미국에 대하여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안전보장이사회는 1950년 6월 27일자 결의 제83호에서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하도록 UN회원국들에게 권고한 바 있으므로, 결의 제84호에서 안전보장이사회는 그러한 원조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안전보장이사회가 통합 사령부에게 UN기의 사용을 허가하기는 했지만 보고는 통합 사령부가 아니라 회원국인 미국에게 요청한 점으로 보아, 군사력 기타의 원조를 제공한 것은 UN자체가 아니라 회원국들인 것이다. 둘째, UN자신은 국제연합군 사령부, 즉 통합 사령부를 안전보장이사회의 보조기관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라고 얘기하면서 만약 “한국 정부가 이 점에 관한 UN의 공식적인 태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UN 사무국에 문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박현석, 92쪽 및 각주 13)

김선표는 “유엔사는 비록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설립되기는 하였으나, 유엔헌장 제29조에 따라 안보리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기관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즉 유엔사는 유엔의 평화유지활동과는 달리 유엔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1950년 이후 지금까지 동 기구가 유엔 연감에 유엔의 보조기관으로서 등재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안보리 등 유엔기관이 유엔사를 유엔의 보조기관으로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들이 그 이유이다.”(98쪽)라고 하고, 나아가 1994년 유엔사무총장의 주유엔 북한 대사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는 유엔안보리의 산하기관이 아니며, 어떠한 유엔기구도 주한유엔군사령부의 해체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음을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편 그 원문은 셀리그 해리슨에 의하여도 확인되는데, 당시 부트로스-갈리 유엔사무총장은 1950년 7월 7일 결의에 대하여 “병력과 기타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그러한 병력과 기타 지원을 미국 주도의 통합군 사령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데 안보리의 역할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안보리의 통제를 받는 보조기구로서 통합사령부를 설립하지 못하고 미국 주도의 사령부 설립을 권고한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통합사령부의 해체는 유엔의 어떠한 기구의 책임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다.”(셀리그 해리슨, 266쪽)

고(故) 이한기 교수는 일찍이 “7월 7일의 결의에 의하여 대한민국을 원조하는 군대는 유엔의 결의에 입각하고 유엔의 목적을 위하여 유엔기 밑에서 행동하는 것임으로 정히 유엔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군대는 직접적으로 유엔의 지휘 하에 서지 않았다. 유엔의 지휘라고는 간접적 정치적 지도에 불과하며 실제적 지휘는 오직 미국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지고 그 명령에만 복종하는 미국 지휘관에 의해서만 행사되었다…. 통일사령부이든 또는 유엔군사령부이든 간에 그것은 헌장 제29조에 계획된 방법대로 창설되지 않았으므로 유엔의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고, 나아가 파병 국들은 유엔과 협정을 맺은 것이 아니라 미국과 협정을 맺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리하여 통일사령부의 자격에서 미국은 작전수행상 다수의 국제약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미국-스웨덴 간 ‘재한유엔작전에 있어서의 스웨덴 적십자야전병원의 참가에 관한 협정’, 또는 ‘남아연방군의 재한유엔작전참가에 관한 미 정부와 남아연방정부 간의 협정’등은 미국이 ‘재한유엔군의 집행기관’의 자격으로 체결한 것이었다.”(61쪽)

박흥순은 “유엔결의문이 유엔군사령부설치, 미국지휘관 임명, 그리고 유엔기의 사용을 승인함으로써 지휘계통은 공식적으로 유엔사령관으로부터 안보리와 유엔사무총장으로 이어졌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실제로 군사작전의 수행은 미국 군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을 거쳐 미국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 아래 이루어졌다. 형식적으로는 군사작전수행에 관하여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안보리에 대한 매 2주마다 공식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맥아더 사령관의 보고서는 미국 정부로 먼저 보내졌고, 그곳에서 검토와 수정을 거쳐 안보리와 사무총장에게 보고되었다.”고 하고(36쪽), “결국 한국전의 유엔개입은 대부분의 군사적 부담을 자원하고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기를 원한 미국이 주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박흥순은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국제지원군 창설과 한국전의 수행을 감독할 위원회의 창설을 미국에 제안하였으나 미국이 이를 거절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36쪽, 각주 43),

이상의 논의를 다시 정리하면 유엔사는 유엔의 기관이 아니며 유엔의 취지에 따르는 일종의 다국적군이라고 보아야 한다. 참전 16개국이 유엔의 강제조치를 수행하는 군대가 아니라 집단적 정당방위를 수행하는 군대라고 할 경우 이는 유엔의 수권과는 무관하며 따라서 유엔군이 아님은 자명한 것이며, 설사 유엔의 수권에 의한 강제조치라고 할 때에도 그것이 유엔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헌장 43조에 따라 특별협정을 맺고 유엔에 배속된 군대이거나, 아니면 당사국이 스스로 임시로 자국의 군대를 유엔에 배속시키는 것이어야 할 텐데, 우리의 유엔사는 유엔의 지휘를 받은 바가 전혀 없으며, 그 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이 임면하는 미군 장성이며, 유엔은 오직 깃발의 사용권만 허용하였을 뿐 어떤 지휘와 책임도 지지 않고, 비용부담도 전혀 없다고 할 때, 그것을 유엔의 기관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6. 맺음말 및 관련문제

유엔사는 유엔의 지지를 받는(집단적 강제조치이든 아니면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이든) 다국적군, 즉 미군 중심의 다국적군으로 봄이 옳다. 그리고 현재 미국을 제외한 참전 15개국이 모두 철수하였다고 할 때, ‘유엔군’의 실체는 ‘한미연합군’일 뿐이다. 따라서 ‘유엔사’의 운명은 오로지 미군과 한국군의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이지,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엔사의 조속한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속한 수립을 권고한 1975년 11월 18일의 유엔총회의 결의도 결국 관계당사국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된 문제로서 유엔사를 한미연합군으로 볼 경우,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유엔이라는 얘기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고,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남쪽 당사자가 한국과 미국이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유엔사가 한미의 연합군이라고 할 때, 한미는 평화협정을 체결함에 있어, 아니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이라도 얼마든지 유엔사를 해체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 평화협정과 구분하여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방식이 얘기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선행적 평화협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비록 본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엔사는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다국적군을 종전선언 후까지 지속시킬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유엔사를 해체하게 되면 당장 정전관리의 담당자가 사라지므로 남북미 공동군사위원회 등에 의한 보충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엔사를 유지시키며 다만 그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안도 나오고 있으나 이는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유엔사가 존속되면서 과거의 유엔사의 성격이 남게 되고 이것이 정전관리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을 수 있으며, 또 유엔사가 결국 한미연합군이며 그 성격변화는 결국 한미의 결단에 달린 문제라고 할 때, 유엔사를 해체하고 그냥 남북미 3자의 공동군사위원회로 바꾸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그리고 상징적으로도 훨씬 나을 것이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될지라도 유엔사를 다국적군으로 재편하여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얘기는 유엔사의 본질이 다국적군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그럴듯한 얘기이지만, 유엔사가 곧 한미연합군이라고 할 때, 한미연합사라는 다국적군의 모체에서 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옴에도 불구하고 유엔사의 작전통제권 하에 계속 남게 된다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 군이 한미연합사로부터 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게 되면, 이는 곧 유엔사로부터도 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작전통제권의 환수가 예정된 2012년 이전에 한반도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유엔사가 먼저 해체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평화협정에서 미군 문제와 유엔사의 문제가 다 다루어져야 할 것이지만, 논리적인 순서와 시간적인 순서에 있어서는 당연히 유엔사 해체의 문제가 앞서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은 비록 ‘유엔군’으로서 이 땅에 진주하였다고 하지만, 1954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하여 또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 방위조약은 물론 한국전쟁에서 연유한 것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체결되었으며, 그 주적이 북한이라고 하더라도 예컨대 일본의 재침의 위협 또한 감안되었음을 생각할 때, 평화협정 단계에서 화급히 처리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유엔사 문제는 평화협정과 더불어 해결되어야 할 것이며, 주한미군의 문제는 북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통일과 더불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유엔사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평화협정의 체결 없이 현재의 휴전상태를 평화상태로 기정사실화하고 관계당사국의 수교와 같은 관계정상화로 평화체제를 만들어간다거나, 혹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정전협정의 대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게 될 수 있고 정전협정이 존속하는 한 유엔사의 역할도 살아있게 되는 것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반은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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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아주대학 교수이다.
* {평화‧통일 연구소}{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5월 9일 주최한「한반도 평화체제 토론회(주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전망과 과제)」에서 필자가 토론자로서 발표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