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종식후 나토 이시우 2006/05/06 673
국방부 군비통제 29집 2001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
― NATO와 EU를 중심으로 ―
인 성 환(국방부 정책기획국)
《 차 례 》
Ⅰ. 서 론
Ⅱ.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특징
Ⅲ.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변화
IV. 유럽안보의 문제점
V. 전 망
Ⅰ. 서 론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
군비통제 논단
우리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유럽에 대하여 美․日․中․러 등 주변국과 같은 비중으로 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많이 충돌하는 국제사회의 성격상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상호신뢰를 기초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오히려 갈등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깝게는 우리와 일본이 그렇고, 멀게는 터키와 그리스가 그러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약간 다르나 영국-프랑스-독일도 과거에는 그러한 관계였다. 바꾸어 말하면 지리적으로 遠거리라 함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민감한 사안을 접할 기회가 그 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하며 때문에 유럽은 적어도 우리와 적대관계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은 南北관계와 우리의 對주변국관계에 있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다. 2001년 2월에 영국이 南北韓 관계자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南北관계를 비롯한 東北亞정세에 관한 세미나가 2001년 2월 12일부터 15일까지 영국 외무성 산하 연구기관인 Wilton Park 주최로 南北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바 있다.
5월에는 스웨덴 총리가 EU 의장 자격으로 南北韓을 동시에 방문하였으며, 독일 또한 금년 후반기에 南北韓 외교국방 관계자를 초청하여 독일통일의 경험을 전수하고자 세미나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유럽은 南北관계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유럽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南北관계뿐만 아니라 민감한 사안과 관련하여 美‧日‧中‧러 등 對주변국 관계에도 건설적 역할이 가능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 및 東北亞 안보와 관련하여 우리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韓美 안보동맹 체제의 보완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유럽은 우리의 방산분야 발전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산분야에서 우리의 對美의존도가 높으며, 이는 우리가 미국과의 무기체계 도입을 위한 협상時,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英․佛․獨․伊 등 유럽 주요국가들은 우수한 방산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기체계 판매時 이들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우리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럽국가들과의 공동생산‧기술이전‧절충교역 등을 잘 활용한다면, 이를 통해 기술을 축적하여 제3국에 再수출도 가능하므로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럽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유럽은 우리에게 南北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美․日․中․러 등 東北亞 주변국의 군사력을 고려해 볼 때, 우리 나라는 완전한 의미에서 독자적으로 우리 안보를 확보할 능력이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하고자 노력할 필요도 없다. 유럽은 과거 냉전을 극복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와 東北亞지역의 냉전해체를 위한 교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미사일방어(MD) 등과 관련한 유럽-미국-러시아의 협력과 갈등관계는 우리와 對주변국 관계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글의 목적은 냉전종식 이후 변화하는 안보상황하에서 유럽국가들의 대처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분석함으로써, 향후 南北관계 개선 등 한반도에서의 안보상황이 변화할 경우 예상되는 미국의 對韓정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한된 지면을 고려하여 이 글의 범위를 냉전종식 이후 NATO와 EU로 한정하고자 한다. 먼저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특징을 알아보고, 이후 냉전종식 이후 시기를 미국의 독주期와 유럽의 자각期로 나누고, 이 같이 변화하는 안보환경하에서 미국과 유럽의 대응, 즉 NATO의 전략개념의 변화와 기구 확대, EU의 「공동외교안보정책」(CFSP :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과 「신속대응軍」(Rapid Reaction Forces) 창설을 포함한 「유럽독자방위체제」(ESDP : European Security and Defence Policy) 수립 시도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이와 관련한 現유럽안보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향후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특징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가장 큰 특징은 대규모 전쟁가능성은 감소하였으나 소규모 민족분쟁 가능성은 증대하였다는 것이다. 냉전기간 동안 유럽은 東北亞와 함께 민주주의-공산주의가 대결한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미국의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도 유럽과 東北亞에서의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John Spanier, American Foreign Policy Since World War II, (Washington : Congressional Quarterly Inc, 1992), pp. 31-36.
그러나 9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독일 통일․WTO 해체․소련 붕괴 등이 일어나면서 민주주의-공산주의라는 대립구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유럽은 全面戰의 위협에서는 해방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발칸지역에서는 민족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보스니아 內戰과 코소보 사태가 그 대표적 예이며 현재에도 마케도니아에서는 政府軍과 反軍이 대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舊유고연방은 1991년과 1992년에 걸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新유고연방, 마케도니아 등 5개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舊유고연방 지역에는 각 공화국에 따라 6개 인종( 세르비아人, 슬로베니아人, 크로아티아人, 마케도니아人, 보스니아人, 알바니아人), 4개 언어(세르비아語, 슬로베니아語, 크로아티아語, 마케도니아語), 3개 종교(그리스정교, 천주교, 회교)가 混在되어 있어 현재도 유럽에서 분쟁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東北亞가 아직도 대규모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역임을 고려할 때, 유럽內에서 대규모 전쟁의 위협이 감소하였다는 것은 東北亞와 함께 대표적인 냉전지역이었던 유럽 안보의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다른 특징으로는 미국 중심의 단극화(unipolarity) 체제 성립과 이에 대한 유럽국가와 러시아의 다극화(multipolarity) 체제 시도 노력으로 인해 안보상황이 한층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냉전기간 중 유럽안보는 NATO와 WTO로 대표되던 이념대결에 의한 양극화(bipolarity)라는 단순한 구도였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主敵의 소멸로 미국과 西유럽의 상호 전략적 의존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으며 그 결과 미국과 西유럽의 관계도 변화하게 되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가지며 유럽국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요구하게 되었다. 미국은 유럽국가가 유럽방위에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유럽국가 입장에서 불필요한 MD를 추진하기도 하는 등 주요 안보사안에 대해 유럽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위협의 소멸로 미국의 군사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유럽국가들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아직까지 많은 제한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이 같은 이유는 유럽에서 소규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유럽국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NATO가 여전히 유럽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NATO의 실질적 대주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즉 전략적 상호의존성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이 다소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유럽국가들의 부족한 안보방위능력에 기인한다. 이 같은 이유로 유럽국가들은 유럽 신속대응軍 창설을 포함하여 유럽독자방위체제(ESDP)를 수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유럽국가들의 불만이 검증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유럽국가들에게는 필요성이 낮은 「미사일방어」(MD : Missile Defense)를 무리하게 추진하고자 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러시아의 위협은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이 결과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의 주요 위협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민주화된 러시아의 안정은 유럽의 안보에 도움이 되었다. 만약 러시아가 내부불안으로 인하여 전제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회귀한다면 이는 유럽안보에 큰 불안요소가 될 것이다. 때문에 러시아의 안정이 필요하며 유럽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內에서 유럽이 러시아를 도와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근에는 미국의 MD 추진에 대해 러시아가 유럽과의 공동대처를 제의하기도 하는 등 냉전종식 이후 미국-유럽-러시아의 관계는 냉전기간 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2001년 2월 20일 NATO 사무총장 로버트슨(Robertson : 코소보 공습당시 영국 국방장관)의 러시아 방문時,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예프(Serguiev)는 미국의 MD(당시는 NMD) 추진에 대한 대응책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공동미사일방위망 구축을 제안하는 지침서를 로버트슨에게 전달한 바 있다. The Times, February 21, 2001.
Ⅲ.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의 변화
1. 미국의 독주기
냉전종식 이후 변화하는 유럽의 안보환경에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TO였다. 원래 NATO는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유럽에서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자 했던 西유럽국가들의 현실적 이익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합치되어 창설되었다. 1948년 3월 유럽에서는 영국‧프랑스‧베네룩스 3국이 외부의 정치적‧군사적 위협에 대비하여 공동방위체제에 합의하는 브뤼셀 조약(Brussels Treaty)을 체결하였다. 한편 미국은 체코 군사쿠데타(1948.2), 베를린 봉쇄(1948.6)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과 협력이 필요하여 1948년 12월 브뤼셀 조약에 서명한 유럽 5개국 및 캐나다와 집단 방어동맹기구 창설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였고, 1949년 4월 4일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아이슬랜드, 영국, 이태리, 캐나다, 포르투갈, 프랑스 등 12개국이 참가하여 NATO를 창설하였다.
그런데 1991년 WTO가 해체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NATO는 기본 목표를 상실하며 존재이유 자체에 의문이 생기게 되는 등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NATO는 미국과 유럽 회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합치됨에 따라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다. 즉 미국은 유럽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NATO가 계속 필요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50년간 유례가 없는 평화를 구가하던 유럽국가들 또한 지속적인 유럽의 안정을 위해 NATO가 필요하였다. 미국은 냉전종식 이후에도 유럽에서의 지속적인 영향력 유지를 위해 미군을 철수하거나 NATO를 해체할 생각이 없었다. Christopher Layne, “US Hegemony and the Perpetuation of NATO”,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Vol 23 No 3 (September 2000), p. 67.
이렇게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이해관계가 합치됨에 따라 WTO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NATO 정상들은 1991년 11월 로마에 모여, 냉전종식에 따른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평화와 안보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Peace and Cooperation)과 「전략개념」 (Strategic Concept)을 채택하였다. 이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NATO를 집단방어동맹 뿐만 아니라 대화와 협력에 기초한 汎유럽안보기구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NATO 전략에 있어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감소시키고, NATO軍 규모의 축소와 준비태세비율을 완화시킬 것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이와 같이 로마정상회의를 통하여 미국과 유럽회원국은 냉전종식 이후에도 NATO의 필요성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찾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NATO가 西유럽만이 아닌 汎유럽안보기구임을 표방하여 오히려 나토확대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NATO Handbook, (Brussels : Office of Information and Press, 1999), p. 27.
그러나 이와 같은 NATO 조직內의 개편과는 달리, NATO 조직外의 문제들 즉 NATO 확대를 추진하는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먼저 東유럽국가들과 기존 NATO 회원국과는 군사력 수준, 전술, 무기체계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당장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데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NATO 확대를 어렵게 한 것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유럽대륙內에서 NATO와의 완충지대와 발트海로부터 흑海‧지중海에 이르는 러시아의 해양창구 상실에 대한 우려, 그리고 유럽內에서 러시아의 안보적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NATO 확대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1994년 1월 브뤼셀에서 NATO 회원국 정상들은 「평화를 위한 동반자」(PfP : Partnership for Peace) 계획을 채택하였다. PfP는 NATO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완화하고, 조속히 NATO에 가입하고자 하는 東유럽 국가들에게 NATO 가입 지연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며, 아울러 東유럽 국가들에게 NATO의 전술과 무기체계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중적 효과를 얻기 위해 고안 되었다. PfP에는 최초 러시아를 포함한 中‧東유럽 27개국이 가입하였다. 이후 핀란드‧스웨덴이 추가로 가입(1994.5)하고 폴란드‧체코‧헝가리가 NATO 가입에 따라 탈퇴(1999.3) 함으로써 현재는 26개국이 가입 중이다.
이에 따라 PfP 회원국들은 위기관리․평화유지․재난구조 등 분야에서 NATO 활동에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결국 PFP로 인해 NATO는 汎유럽안보기구로서 영향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당초 목적인 NATO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약화시키고 東유럽 국가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는 이중적 효과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NATO는 1997년 7월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NATO 가입을 신청한 東유럽 11개국中 폴란드․헝가리․체크를 1차 확대 회원국으로 선정하고, 2년 후인 1999년 3월에 東유럽국가 중 최초로 이들 세 나라를 NATO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NATO의 발 빠른 행보에 비해 유럽국가들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유럽공동체」(EC : European Community)를 통해 경제통합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치․외교적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사안에 대해 유럽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냉전 종식이후 유럽 新질서 확립 과정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제 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외교력을 갖기 위해서는 주요사안에 대해 유럽국가들의 공동대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內에서 형성되었다.
그 결과 1991년 12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에서 유럽국가들은 「마스트리히 조약」(Maastricht Treaty)에 합의하고 同 조약이 2년 뒤 효력을 발휘하게됨에 따라 1993년 11월에 「유럽연합」(EU : European Union)이 출범하게 되었다. 유럽통합의 사상적 시초는 쌩 삐에르(Saint Pierre)의 「영구평화론」, 쌩 시몬(Saint Simon)의 「유럽사회의 재조직에 관하여」, 칸트(Kant)의 「영구평화론」등이라 할 수 있으나 이들 모두 이상론 수준에 머물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1946년 9월에 영국수상 처칠이 ‘유럽합중국 건설’의 필요성을 제창한 바 있으며, 1950년 5월에 프랑스 外相 슈망(Schuman)이 유럽의 항구적 평화 기반을 조성하고자 獨‧佛間 분쟁원인인 석탄과 철강의 생산과 판매를 공동으로 관리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2년 8월 프랑스‧독일‧이태리‧베네룩스 3국이 참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1957년 3월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창설, 1967년 7월에는 EU의 前身이라 할 수 있는 유럽공동체(EC)가 창설되었다.
EU는 기존 EC의 기능 外에 「경제통화연맹」(European Monetary Union)이 추가된 경제협력, 「내무․사법협력」(JHA: Cooperation in the field of Justice and Home Affairs), 「공동외교안보정책」(CFSP :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을 중심으로 하는 「3柱 체제」(Three Pillar Structure)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CFSP는 주요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유럽국가가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유럽 정치 통합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공동외교안보정책은 EU 공동가치와 이익의 통합, 회원국의 독립수호, EU 안보역량 강화, UN 헌장에 기초한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 국제협력 증진, 민주화‧법치주의‧인권‧자유 등 국제적 가치 증진 등을 목표로 한다. Common Foreign & Security Policy, EU 인터넷 게재문(2001년 3월 27일), http://europa. eu.int/comm/external_relations /cfsp/intro/index.htm.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은 보스니아 사태와 같은 지역內 소규모 분쟁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보스니아 사태는 舊유고연방에서 발생하였으나, 발칸 지역의 역사적․민족적 분쟁이 갖는 잠재적 폭발력으로 인하여 舊유고연방 뿐만 아니라 유럽전체 안보에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1995년 9월 「데이톤 협정」(Dayton Treaty)으로 보스니아 사태가 해결되었으나, 同 사태로 인해 유럽국가들은 자신들의 무기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발칸지역의 내부적 문제들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현재까지 유럽의 안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유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유럽국가들은 CFSP에 대한 논의를 더욱 강화한 결과 1991년 11월에 체결한 마스트리히 조약을 개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97년 6월 「암스테르담 조약」(Amsterdam Treaty)이 새롭게 체결되었다. 암스테르담 조약에 의거, 「유럽연합 이사회 사무총장」(Council Secretary General)이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High Representative for CFSP 또는 Mr. CFSP) 초대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에는 前NATO 사무총장인 스페인의 솔라나(Solana)가 1999년 10월에 임명되었다.
라는 직함으로 EU를 대외적으로 대표하게 되었으며, 「정책기획 및 조기경보기구」(Policy Planning and Early Warning Unit)가 창설되어 Mr. CFSP의 책임하에 잠재적 위기상황에 대한 감시와 분석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同 조약은 EU의 안보방위목표를 「피터스버그임무」(Petersberg tasks) 피터스버그임무란 인도주의적 구조‧평화유지‧위기관리임무 등을 의미하며 이 같은 명칭은 1992년 6월에 西유럽 연합(WEU)의 외무‧국방장관이 同 기구의 가이드라인을 독일의 피터스버그에서 설정한데서 유래하였다.
로 한정하고 이를 위해 향후 적절한 시기에 「西유럽 연합」(West European Union)을 EU에 흡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같이 同 조약은 마스트리히 조약의 체결로 시작된 CFSP를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기반을 제공하였다.
1998년 12월에는 프랑스의 생 말로(St Malo)에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총리가 회담을 갖고, 유럽 독자적인 군사능력 보유의 필요성에 합의하였다. 프랑스는 60년대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가 불편해진 이후 지속적으로 유럽의 독자성을 강조해왔지만, 영국은 그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TO와의 협력을 강조하며 유럽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때문에 영국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ESDP 수립을 위한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ESDP 수립을 위한 보다 큰 계기는 코소보 사태가 마련하게 된다. 코소보 사태 이전에도 유럽의 안보방위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유럽안보방위체」(European Security Defence Identity)가 1994년 브뤼셀 NATO 정상회담 이후 추진되고 있으나, 이는 NATO가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럽국가가 주도하는 「유럽독자방위체제」(European Security Defence Policy) 수립과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여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2. 유럽의 자각기
1999년 3월에 발생한 코소보 공습은 냉전종식 이후 유럽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코소보 사태 이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NATO가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면, 이후에는 EU가 유럽의 독자적 안보방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ESDP를 신속하게 추진하게 된다.
코소보 사태 발생 한달 뒤 워싱턴에서 NATO의 정상들은 1991년 로마정상회의 이후 안보상황 변화에 따른 NATO의 역할과 기능의 再정립 필요성에 합의하고 「워싱턴 정상회의 선언」(Washington Summit Communiqué)과 1991년에 합의한 전략개념을 강화한 「新전략개념」(The updated Strategic Concept)을 발표하였다. 同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NATO의 임무를 집단방어동맹 뿐만 아니라 효과적 분쟁예방 및 적극적 위기관리로 확대하여 회원국들이 침략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도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상황에 NATO가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同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한편으로는 러시아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1997년 7월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폴란드‧헝가리‧체크를 신규회원국으로 가입시킴으로써 NATO 확대를 위한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음과 동시에 지속적인 NATO 확대의지를 강조하였다. The Reader’s Guide to the NATO Summit in Washington, (Brussels : Office of Information and Press, 1999), pp. 11-23.
워싱턴 정상회의의 합의에 기초하여 현재 NATO는 코소보 지역에서 UN의 위임을 받아 非NATO 국가들과 함께 평화유지활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금년 초 마케도니아에서 政府軍과 反軍間에 분쟁 발생時에도 「코소보평화유지軍」(KFOR) KFOR는 UN 결의안 1244호에 의거 1999년 6월부터 코소보 지역에서 활동하고있으며, 약 30여개국 5만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작전지휘는 나토軍 남부사령부(AFSOUTH)가 수행하고있다.
이 코소보 완충지대에서 마케도니아로 유입되는 反軍에 대한 통로를 신속히 봉쇄하는 등 회원국 外의 지역 안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있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는 NATO보다는 EU 회원국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同 사태를 통하여 유럽국가들은 첩보‧정찰, 지휘‧통신, 대규모 병력 투사 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에 대한 자각을 하게되었다. 또한 인명손실을 우려하여 지상軍 투입을 주저하는 미국을 보며, 미국이 유럽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우려와 유럽의 안보를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EU 회원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NATO 개입 불가時 유럽의 독자적인 위기 대응능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同年 6월 쾰른에서 EU 정상들은 지역內 위기관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EU가 군사력을 보유할 것에 합의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정치안보위원회」(Political and Security Committee)․「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군사참모부」(Military Staff) 등 군사기구 설치의 필요성에 합의함으로써 ESDP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본방향을 제시하였다.
同年 12월 헬싱키 정상회의는 ESDP 수립을 위한 기념비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同 정상회의에서 EU 정상들은 쾰른 정상회의에서의 합의 결과를 기초로 ESDP 수립에 관한 의장국보고서를 채택하였다. 同 보고서는 CFSP를 지원하기 위하여 EU가 독자적인 의사결정능력과 이 결정에 의한 군사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보유할 것에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2003년까지 NATO가 개입하지 않는 분쟁지역에 60일 이내에 전개하여 1년 이상 임무 수행이 가능한 5~6만으로 구성된 「신속대응軍」(Rapid Reaction Forces)을 창설한다는 「주요목표」 (headline goal)를 설정하고, 아울러 지휘통제, 첩보수집, 전략수송분야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집단능력목표」(collective capability goal)를 설정하였다. 이와 같이 同 보고서는 ESDP에 대한 획기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ESDP 추진은 급류를 타게되었다.
2000년 3월에 EU는 NATO를 모델로 EU內에 정치안보위원회․군사위원회․군사참모부를 임시군사기구 정치안보위원회는 각국 대표(대사급)로 구성되어 군사위원회에 전략지침을 하달하고 군사기구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실시한다. 군사위원회는 각국 군사대표(국방참모총장 또는 합참의장)로 구성되어 정치안보위원회에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조언 및 건의를 실시하고 군사참모부에 군사지침을 하달한다. 군사참모부는 현역 및 민간군사전문가로 구성되어 군사위원회의 지침을 실행하는 등 실질적으로 신속대응軍을 운용한다.
로 설치하였고, 11월에는 브뤼셀에서 국방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신속대응軍 창설을 위해 각 회원국이 제공할 수 있는 병력과 장비 규모에 관하여 토의를 실시하여 병력 약 6만6천명, 전투기 약 400대, 함정 약 100척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올해 1월과 4월에는 정치안보위원회와 군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지위변경 하였으며 군사참모부도 금년 전반기 중으로 상설기구로 변경할 예정이다. 2001년 3월26일 군사위원회 회의에서 독일의 Rainer Schuwirth 중장이 군사참모부 초대 의장으로 임명되었고, 4월9일 이사회에서 핀란드의 Gustav Hagglund 대장이 군사위원회 초대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같이 코소보 사태이후 EU는 독자적인 안보방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ESDP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同 계획추진에 대한 미국의 거센 반발에 밀려 2000년 6월 훼이라 정상회의와 동년 12월 니스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EU는 신속대응軍을 NATO의 지휘권 아래 두기로 합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하여 현재에도 회원국간에 異見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같은 異見은 EU가 ESDP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ESDP에 관한 세부내용은 Wim Van Eekelen, “Building European Defence : NATO’s ESDI and European Union’s ESDP”, (April 18, 2000), NATO Parliamentary Assembly Committee Report 참조
Ⅳ. 유럽안보의 문제점
1. NATO 관련 문제
첫째 NATO의 역할 변화와 新전략개념에 관한 문제이다. 로마에서 워싱턴까지 냉전종식 이후 NATO 정상회의의 주요관심사는 NATO를 냉전종식 이후에도 필요한 기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회원국들은 NATO의 역할을 집단방어동맹 外에 위기관리 등을 포함한 汎유럽안보기구로 확대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東유럽 및 지중해 국가와의 협력까지 강조하게되었다. NATO의 코소보 공습은 이러한 NATO 역할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NATO의 역할이 필요함을 再확인하였다. 그런데 코소보 공습은 보편적 인권이 개별국가의 주권에 우선할 수 있다는 「뉴 인터내셔널리즘」(New Internationalism)에 기초하여 UN의 사전승인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보편적 인권이 개별국가의 주권에 우선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더욱이 UN의 사전 승인 없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실시한 것에 대해 러시아를 포함한 일부 국가들이 NATO를 강하게 비난하였다.
한편 보편적 인권의 기준에 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90년대 미국이 대규모로 개입한 대표적 분쟁은 걸프戰과 코소보 공습이었다. 두 사태 개입에 대한 미국 군사개입의 실질적 이유는 인권보다는 쿠웨이트의 석유와 코소보가 갖는 유럽안보에서의 중요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반면 르완다와 시에라리온 등 內戰이 빈번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의 대처는 쿠웨이트와 코소보에서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다르게 소극적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적 개입을 했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었으며, 러시아와 중국 등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말하는 보편적 인권의 이중적 기준에 대해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對美 불신은 對NATO 불신으로 연결되어 유럽안보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불신이 미국의 무리한 MD 추진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둘째, NATO 확대에 관한 문제이다. 현재 러시아가 NATO 확대를 반대하고 있는데, 회원국간에 확대에 관한 異見이 존재하며, 확대에 따라 기구의 효율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NATO 확대에 가장 큰 장애요소가 러시아라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러시아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NATO 확대에 불안감을 느끼며 적극 반대하고 있다. 더욱이 코소보 사태와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NATO의 적극적 군사개입 의지는 기존의 NATO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불안감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바, 이러한 불안감은 러시아가 중국 등 反NATO 국가들과 연대를 시도하여 新냉전적 국제질서를 유발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NATO 확대에 관하여 회원국간에도 異見이 존재하고 있다. 美國은 NATO 확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NATO 확대를 추진하고있으며, 유럽회원국 중에서는 독일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內 영향력 유지 및 확대를 위해, 독일은 러시아와의 완충지대 확보 및 中‧東유럽에서 영향력 증대를 위해 NATO 확대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편 영국‧프랑스 등은 표면적으로는 NATO 확대에 따른 기구의 결집성과 효율성 저하를 이유로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나, 내면적으로는 中‧東유럽內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증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NATO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경우 기구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PfP를 통해 약 5년간이나 NATO 가입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9년 3월에 새로이 가입한 폴란드‧헝가리‧체크 등이 기존 회원국에 비해 전투력 격차가 크다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현재에도 NATO가 이들 신규회원국의 軍 현대화를 위해 지원을 하고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무리한 기구의 확대는 회원국간의 군사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NATO의 기능저하를 유발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NATO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경우, 회원국간의 전력차이 보다 NATO의 의사결정체계에 더욱 큰 효율성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NATO內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는 「북대서양위원회」(North Atlantic Council)인데, 同 위원회에서 각 회원국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각국의 입장을 피력하는 데 있어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이에 대한 결정은 회원국간의 합의(common consent)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최초 12개국으로 출발하여 이미 19개국의 회원국을 보유한 NATO가 군사적 행동 등 주요사안을 신속하게 결정하기란 그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현재 가입을 희망하는 東유럽국가들이 모두 NATO에 가입할 경우 회원국의 수는 약 30개국에 이를 전망이며, 이 경우 주요사안에 대한 신속한 결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인구 비례에 따라 투표수를 결정하는 「가중다수결제」(Qualified Majority Vote)를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현재에도 NATO의 실질적 대주주인 미국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가 되어 유럽 회원국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 현재 미국의 인구는 약 2억7천만 명으로 유럽의 주요국가인 영국‧프랑스‧독일‧이태리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으므로, NATO가 가중다수결제를 도입시 NATO內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게 된다. 세계각국편람, (서울 : 국가정보원, 2000), p. 364.
기존회원국과 신규회원국과의 군사력 차이는 시간이 감에 따라 해결이 가능하지만 의사결정과 관련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으므로 NATO가 지속적으로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이다.
2. EU 관련 문제
첫째 EU 자체 문제이다. ESDP 추진과 관련하여 회원국간에 입장차이가 크며, 이러한 입장차이가 해결되더라도 현재 EU는 ESDP를 추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ESDP 수립을 위해서는 병력과 장비 등 충분한 하드웨어와 독자적 군사전략‧의사결정능력 등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나, 현재 EU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먼저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EU는 신속대응軍의 개입 목적과 범위를 한정하고, 군사기구를 창설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으나, ESDP를 추진함에 있어서 회원국간의 입장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영국과 유럽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프랑스와의 입장차이가 크다.
영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ESDP 수립이 NATO의 틀 안에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창설될 신속대응軍이 NATO와 다른 이중적 조직으로 발전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2000년 12월 EU 니스 정상회의에서 EU가 신속대응軍을 NATO의 지휘권 아래 두기로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신속대응軍이 NATO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국과 프랑스의 입장차이는 신속대응軍 창설을 포함한 ESDP 추진 外에도 비교적 많은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영국은 역사적․국민정서상으로 유럽통합에 소극적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은, 유럽의 정치․군사적 통합이 계속될 경우, 영국이 유럽의 주변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유럽에서 영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왔다. 특히 유럽 단일통화가 EU 회원국의 통화를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경우, 뉴욕․도쿄와 함께 세계금융시장의 한 축을 이루던 런던의 기능이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현재에도 유럽 단일통화 참여에 소극적이다. 현재 유로貨 참여 희망국은 영국, 덴마크, 스웨덴을 제외한 12개국이다. 유로 화폐와 동전은 2001년 1월부터 회원국의 화폐와 함께 사용될 예정이며, 3월부터는 유로貨에 참여하는 회원국의 화폐가 모두 사라지고 유로貨만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프랑스는 영국을 제쳐 두고 독일과 유럽통합을 강력히 추진해오며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프랑스의 태도는 영국이 유럽통합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한 결과였다고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지도층은 아직도 앵글로색슨系의 후손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영국은 안보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美‧英관계는 美‧佛 또는 美․獨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프랑스는 독일을 선택하여 유럽통합을 추진하였고, ESDP를 추진함에 있어서 신속대응軍이 NATO와는 다른 독립된 군사조직으로 발전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프랑스는 신속대응軍의 운용과 관련하여 유럽의 독자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특히 2001년 3월 28일에는 켈쉬(Kelche) 합참의장이 London’s Daily Telegraphy와 회견에서 신속대응軍이 NATO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는 NATO內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Guardian, March 29, 2001.
그러나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신속대응軍의 독자성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유럽의 정치적 통합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독일통일 이후 中․東유럽을 중심으로 독일의 영향력이 날로 강화되자 EU의 확대와 더욱 강력한 정치적 통합이 독일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에 기초한 것이다. 슈뢰더 독일 수상은 2001년 4월 29일 사민당 전국 집행부 회의를 위해 제출된 당 정책초안에서 EU 집행위원회를 유럽정부로 전환하고 15개 EU 회원국 정부각료들로 제2입법부를 창설하자고 주장하였다.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April 30, 2001.
이와 같이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주요사안에 따라 큰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어, 신속대응軍 창설 外에 향후 ESDP 수립과 관련하여 나타나게 될 이들 세 나라의 견해차이가 쉽게 좁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설사 이들 세 나라가 합의에 이르더라도 EU는 하드웨어적 측면에서도 극복해야할 문제가 있다. ESDP 수립의 핵심인 신속대응軍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병력 外에 첩보․정찰, 지휘․통신, 대규모 병력 투사 능력 분야의 보강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000년 EU 회원국의 국방비 총액은 1,325억 달러로 미국 국방비 2,775억 달러의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냉전이 종식된 현재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EU 회원국들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The Military Balance 2000-2001, (London : IISS).
둘째 EU와 미국간의 문제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EU의 現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군사작전을 실시하더라도 EU는 당분간 NATO 자산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에 同 군사작전의 성공을 위해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나 미국은 EU의 ESDP 추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은 유럽국가가 유럽의 안보를 위해 보다 많은 역할을 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이 과정에서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추진한 것이 「유럽안보방위체」(ESDI : European Security and Defence Identity)였다. ESDI는 西유럽연합이 군사작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NATO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작전의 기획과 수행과정을 지원하며, 기타 필요한 자산과 지휘체계를 제공하되, 작전수행은 西유럽연합이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으로 NATO의 틀 속에서 유럽회원국의 안보방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에 따라 ESDI는 1994년 1월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거론이 된 후, 1996년 6월 베를린 외무장관회의에서 회원국간에 구체적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1999년 4월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 再확인되었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이후 EU가 ESDP를 본격 추진하게 되자 미국은 ESDI와 달리 NATO의 틀 속이 아닌 EU의 독자적 안보방위능력의 향상을 추진하는 ESDP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美국무장관이던 Albright는 NATO와 유럽간의 분리(Decoupling), NATO 조직과의 중복(Duplication), NATO내 非EU 회원국들에 대한 차별(Discrimination)의 가능성을 이유로 ESDP 수립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미국은 ESDP 수립을 위한 움직임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ESDP 추진으로 NATO의 기능이 약화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ESDP는 어디까지나 NATO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내세우는 NATO 기능 약화에 대한 우려는 표면적 이유이며, 실질적 이유는 ESDP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저하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은 냉전초기 케난(Kennan)이 설계한 Containment로부터, 70년대 detente, 80년대 Containment의 복귀, 90년대 Engagement and Enlargement로 용어는 바뀌었으나 그 기본방향은 지역패권국가의 성장을 억제하고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는 것은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특히 미국이 70년대 시도한 detente도 진정한 東西화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에 대한 핵 우위상실과 베트남戰의 패배에 따라 더 이상 Containment 정책을 실시할 수 없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 변형된 Containment로 보는 것이 바른 견해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ESDP에 대한 미국의 반대도 이에 기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Detente 추진배경은 Raymond L. Garthoff, Detente and Confrontation, (Washington DC : The Brookings Institution, 1994), pp. 28-39. 참조
따라서 향후 EU가 NATO 자산을 이용하여 군사작전을 실시할 경우 미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EU 작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며 이는 미국-유럽間 잠재적 갈등요인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NATO 자산사용을 위해 EU는 미국 外의 다른 NATO 회원국의 승인도 구해야 하는데 이중 EU 가입과 관련하여 불만이 있는 터키가 EU의 NATO 자산 사용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기타 非EU-NATO 회원국들도 EU 신속대응軍에 참가는 가능하나 의사결정에는 참여가 불가하다는 EU의 결정에 대해 내심 불쾌한 입장이어서 이 또한 EU가 ESDP를 추진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Ⅴ. 전 망
냉전종식 이후 NATO는 적극적․공세적 汎유럽안보기구로의 변신을 위해 新전략개념을 채택하고 기구확대를 추진하여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적응해왔다. 현재까지 미국이 NATO 확대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고, 東유럽국가들의 NATO 가입에 대한 열망도 매우 강하며,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러시아의 특별한 대응책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당분간 NATO 확대는 점진적‧지속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ESDP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ESDI, 新전략개념, PfP 등과 함께 NATO 확대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NATO 확대가 지속될 경우 의사결정체계 등 기구의 효율적 운영에 문제점이 예상되며, 현재까지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는 점을 고려해 볼 때 NATO의 지속적인 확대만이 유럽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 판단된다. 또한 국제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NATO에 대해 러시아․중국 등 非서방권 국가들은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미국의 힘에 밀려 러시아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을 보유한 군사대국이며, 러시아가 NATO에 대항할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경우 NATO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며 이 것은 유럽안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항구적인 유럽의 안정을 위해 NATO는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러시아와의 대화와 협력에 진지하게 임하여 NATO-러시아間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ESDP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ESDP는 유럽국가간의 입장 차이, 군사력 건설에 막대한 자금 및 장시간 소요, 미국의 반대 등 많은 장애요소가 존재하고 있어 이를 추진하는데는 적지 않은 제한이 있을 것이다. 즉 EU가 NATO의 자산을 사용하여 군사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EU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향후 ESDP는 미국의 영향력이 위협받지 않으면서 EU 회원국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는 범위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즉 현재 NATO의 틀 안에서 유럽의 자율성이 일정 부분 확대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며 결국 이는 변형된 ESDI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냉전종식 이후 NATO와 EU를 중심으로 한 유럽안보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그 변화의 중심에는 유럽도 러시아도 아닌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즉 냉전종식 이후 NATO가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안보에 적응을 시도한 것이나 EU가 ESDP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신속대응軍을 NATO의 틀 속에 묶어둔 것 모두가 미국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결국 브레진스키가 말한 바와 같이 ‘세계 일등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 세계전략의 구체적 표현인 것이다.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김명섭(역), (서울: 삼인, 2000).
그러므로 향후 南北관계의 실질적 개선 등 한반도에서의 안보상황이 변화할 경우에도 미국의 對韓전략은 이와 같은 세계일등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韓‧美관계도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때문에 유럽에서 현재 진행중인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우리는 이를 면밀히 분석하여 향후 對美관계에서 적절히 활용하여 우리의 안보를 더욱 굳건히 해야할 것이다.
자 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