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와 유엔사해체-백진현 이시우 2006/05/06 601
http://www.mnd.go.kr/군비통제 18집 1995
南北韓 平和體制 構築方向
白 珍 鉉*
*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Ⅰ. 문제의 제기
제네바 합의 타결에 따른 미․북관계의 개선과 함께 최근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이후 대미평화협정(peace treaty), 평화보장체계(peace ensuring mechanism), 새로운 평화체계(new peace arrangement) 등의 용어를 혼용하고 있으나 평화보장체계나 새로운 평화체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평화제안이 미국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은 어제오늘에 제기된 문제는 아니며, 이미 지난 20여 년 동안 간헐적으로 터져 나와 그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해묵은 정전협정 대체 논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과거의 주장과 차이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은 대체로 일과성 선전적, 선언적 차원의 주장에 불과했으나 최근의 움직임은 보다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이후 한반도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해 와 북한 외교부는 지난 4월 28일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화해를 이룩하며ꡒ조선반도ꡓ에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 정전기구를 대신하는 평화보장체계를 세우는 문제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의하면 오늘 ꡒ조선정전협정ꡓ은 미국의 부당한 처사로 ꡒ조선반도ꡓ에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으로 되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사실상 주인 없는 기구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ꡒ조선반도에서 무력증강이나 전쟁재발도 막고 정세를 안정시키며 공고한 평화와 안전을 실제적으로 믿음직하게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을 미국에 제기한다ꡓ고 했다. 같은 날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비서장회의에서 북한은 판문점에 상주하고 있는 북한측 군정위 관계자들과 중립국 감시위원회(중감위) 북한측 초청국인 폴란드 대표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북한측은 그러나 현존 휴정협정은 대체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준수하겠으며, 현재 운용되는 판문점내 양측 공동일직장교간 등 양측 군사당국간 직통전화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5월 24일 북한은 軍停委를 대신하는 새로운 협상기구로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개설했다고 유엔군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판문점 대표부의 북한측 책임연락군관은 최근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판문점 대표부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1994년 12월 15일 북한은 군정위의 중국 인민지원군 대표를 철수시켰으며, 1995년 2월 28일에는 중감위의 폴란드 대표단마저 철수시켜 정전기구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또 1995년 5월 3일자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명의의 성명을 통해 중감위 사무실을 폐쇄, 유엔군측 군정위 및 중감위 요원들의 공동경비구역 출입금지 등의 일방적 조치를 취하고 ꡒ만약 미국이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불응할 때는ꡐ추가조치ꡑ를 강구하겠다ꡓ고 하였다. 뒤이어 6월 22일 북한은 군정위 공동 일직장교간 접촉에서 ꡒ1995년 6월 25일 기해 정전협정과 주한 유엔군사령부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정전협정을 파기시키겠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할 것ꡓ이라고 했으나 이 통보는 이행되지 않았다.
현재 군정위를 비롯한 정전체제는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한반도 분단을 관리하는 유일한 기구가 기능 마비됨에 따라 적지 않은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절박감도 대두되고 있다.
둘째, 과거의 대미평화협정체결 주장은 이를 성사시킬 만한 수단이 없어 대체로 공허한 선전공세에 지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핵문제 해결과 평화협정체결을 연계시킴으로써 과거와는 달리 그들 나름대로의 성사수단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가령 북한은 핵문제 타결을 위한 미․북 고위급회담에서 수차례 미․북간 평화협정 체결을 핵문제와 연계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덕민, 대북 핵협상의 전말, 1995, pp. 76~77.
1995년 5월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된 경수로 회담에서는 예상과는 달리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으나 향후 제네바 합의를 이행해 감에 있어 적절한 시기에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북한은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의 경수로 공급협정이 난항을 겪을 경우 미국과의 쌍무회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며, 이 회담에서 미국에 대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동복, ꡒ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협상전략ꡓ, 국방군사연구소 군사사 세미나 : 한국의 정전체제 유지와 평화체제 구축방안, 1995. 10. 10, p. 78.
이러한 두 가지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은 지난 20여 동안 그들의 대남 정책의 중추를 이루었던 대미평화협정체결을 성사시키기 위해 앞으로 총공세를 펴 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의 효과적인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하겠다. 특히 북한이 한반도의 유일한 분단관리기구인 정전협정체제를 無用化, 無實化하고 있어 위기관리 차원에서도 이를 방치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문제는 적절히 대응치 못할 경우 한․미관계에 또 하나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
이러한 다소 수세적인 차원의 문제제기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측면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서냉전의 종식으로 지난 수년간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도 서서히 와해되고 있다. 한국과 과거 적대국인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로 냉전구조의 한 축은 이미 무너졌으며, 제네바 합의의 타결로 미․북관계 및 일․북관계의 개선 조짐도 나타나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는 완연히 해빙무드에 접어들고 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핵이라는 군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미․북한간 관계정상화 등 정치적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어 합의가 원만히 이행될 경우 미․북관계의 개선도 점차 본격화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한반도 주변의 냉전적 구조의 붕괴는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완전히 종결하고 새로운 평화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반도 내의 사정을 살펴보면 남북한간에는 여전히 대화는 단절된 채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의 군사적 대결구조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북한이 하나의 조선정책을 포기하고 남북한 평화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북한은 핵협상을 계기로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이러한 “聯美反南ꡓ 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한반도 내외정세의 이중성은 과연 지금이 한반도 정전체제 전환문제를 제기하기에 적절한 시점인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정세를 고려할 때는 긍정적인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나 남북한 관계의 현실을 본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남북한 양측의 기본시각을 비교하고, 특히 남북한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주요문제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비교분석은 남북한 양측 중 어느 일방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측 입장의 진정한 의도를 가늠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걸림돌과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밝혀 보기 위한 것이다. 글머리에 특히 강조해 두고자 하는 것은 현재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평화협정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며, 따라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정전협정의 대체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간의 문제이며 기본합의서의 정신에 따라 여건이 성숙되면 평화협정은 남북한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북한 양측이 똑같이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 실제 의미와 내용은 전혀 다른 셈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근본 의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란 이러한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대미평화협정체결 주장과 관련된 논의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구축을 위한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 논의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고 있어 평화체제 논의에는 항상 적지 않은 혼선이 뒤따른다. 과거의 예를 볼 때, 평화협정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상황 또는 맥락(context)에서 대두되어 왔다. 첫째는 남북대화에 진전이 있어 남북관계를 휴전협정이라는 낡은 틀로 규제하는 것이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이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고 남북고위급회담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1991년에 대두되었던 휴정협정 대체 논의가 이러한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협정 논의가 대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당연하다고 하겠다. 둘째는 북한이 대미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꺼낼 때마다 우리 사회-정부 및 여론-에서는 반사적, 습관적으로 평화체제 논의가 대두된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은 ꡒ미국과의 평화협정ꡓ을 주장하는 데 대해 우리는 ꡒ남북한간의 평화협정ꡓ 주장으로 대응하여 평화협정이라는 명칭 외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소모적인 논의에 그치게 된다. 또 이러한 논의는 자칫하면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에 판을 벌여 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적지 않은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자세가 요망된다.
Ⅱ. 정전체제 대체에 관한 남북한의 기본입장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에 관한 남북한의 시각은 매우 대조적이다. 특히 정전체제 대체 논의의 주체, 현 정전협정 및 정전기구와 유엔사의 역할, 그리고 정전협정 대체방식 및 시기 등에 관하여 남북한은 거의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체 논의의 주체(당사자), 정전협정의 역할, 대체방식 및 시기 등 세 가지 핵심문제에 관한 남북한 양측의 입장을 비교 검토하면 아래와 같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남북한 양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통일원, 북한의 ꡒ평화협정ꡓ 제의관련 자료집, 1994. 12. 참조.
1. 당사자 문제
한반도 정전체제의 대체와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한 당사자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기본시각이다. 남북한은 한국 전쟁의 교전당사자로 한국전쟁을 매듭짓는 평화체제의 구축은 의당 남북한간에 논의되어야 하며, 또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결국 남북한 관계이며 이 문제는 남북한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 당사자 해결의 원칙은 이미 기본합의서와 화해부속합의서에도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 즉, 기본합의서 제5조는 ꡒ남과 북ꡓ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규정했으며, 화해부속합의서 역시 마찬가지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화해부속합의서, 제18조 및 19조.
한편, 북한은 1960년대에는 남북한간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미․북한간 평화협정체결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1974년 3월 25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美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부터 제기되어 온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1973년 1월의 베트남 평화회복에 관한 미국과 北베트남 간의 파리협정의 체결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자는 미국, 북한, 중국인데 중국인민지원군은 이미 북한에서 철수했으므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1984년 이후에는 남북한간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미국․북한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소위 3자회담 방식을 주장해 왔으며 지금도 이러한 도시(formula)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술하듯이 북한은 현재도 남북한 불가침 협정, 미․북한 평화협정 도식에 집착하고 있다. 최근(1994. 9. 9) 북한 외교부 대변인 담화는 남북한간에는 이미 불가침합의서가 채택되었기 때문에 미․북한간 평화협정만 체결될 경우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정전협정 및 정전기구의 역할
정전협정과 정전기구의 역할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 역시 상반된다. 한국은 정전협정과 정전기구가 비록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을 관리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군정위는 지난 40여 년 간 적대 쌍방 간의 유일한 고정적인 의사소통의 채널로서 우발적인 사건의 악화를 막고 오해의 소지를 방지하여 적대행위의 재발을 막는 위기관리체제로서 나름대로의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본합의서는 새로운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규정했으며, 기본합의서 제5조
화해부속합의서도 같은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화해부속합의서 제20조는 ꡒ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성실히 준수한다ꡓ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정전협정은 미국의 계속되는 협정 위반으로 인해 마비되었으며 쓸모 없는 장치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측 주장에 의하면 따라서 군정위는 유명무실해졌으며, 정전협정은 ꡒ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ꡓ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정책의 산물로 판명된 공허한 정전기구로는 무력증강이나 전쟁재발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냉전시대의 전형적 유산인 정전협정체제를 즉각 종결짓고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장애가 되므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전협정을 미․북간의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정전체제 전환에 대한 접근방법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한국의 기본시각은 한반도 평화란 협정이나 조약의 체결로 즉각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장기간에 걸쳐 실질적, 단계적, 점진적으로 해결될 문제라는 시각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은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보다는 평화체제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즉, 한반도의 평화정착의 핵심은 협정의 체결(treaty-making)이 아니라 체제의 구축(regime-formation)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체제구축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협정의 체결과 같은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 양측간 평화의지의 확인, 군사적․정치적 신뢰구축, 군비통제, 교류협력 등과 같은 실질적 평화의 구축이라는 점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이나 여타 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평화체제 구축과정의 한 단계이며, 특히 실질적 평화가 어느 정도 구축 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저절로 실질적인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실질적 평화에 대한 상대방의 분명한 의지가 확인되기도 전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안보의식의 이완을 초래하여 오히려 한반도 안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남북한간의 실질적 평화구축보다는 미․북간의 평화협정의 체결을 강조하고 있다. 즉, 미․북간에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과거의 대결과 불신의 관계로부터 벗어나서 화해와 상호신뢰의 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평화보장체계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여 그들의 종래의 입장에 전술적 수정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의하면 지금 당장 미․북 평화협정의 체결이 어렵다면, 중간단계의 잠정조치로 미․북간 평화보장체계를 우선 수립하자는 것이며, 또 이러한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위한 미․북 장성급 접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북간 평화보장체계가 기존의 평화협정과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국 카네기 재단의 셀리고 해리슨은 북한이 그들의 ꡒ새로운 평화체계ꡓ주장에 대해 진전된 내용을 밝혔다고 하여 주목을 끈 바 있다. 〈중앙일보〉 1995. 9. 28. 자 참조. 이에 의하면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당장 실현될 수 없다면 평화협정에 이르는 중간단계로 미․북 장성급 접촉을 통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새로운 평화체계가 수립될 경우 기본합의서에 따른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할 용의가 있다는 점과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되더라도 주한미군 주둔을 양해하겠다는 점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은 1995년 4월 이후ꡒ평화보장체계ꡓ 내지 ꡒ새로운 평화체계ꡓ라는 표현을 평화협정과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평화보장체계와 남북군사공동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미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가령, 1994년 5월 6일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ꡒ북남 사이에 불가침을 기본으로 하는 합의서가 채택되고 그에 따라 북남군사공동위원회가 조직된 조건에서 새로운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되면 그 이행을 보완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보장 문제도 완전히 풀리 수 있게 될 것ꡓ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에서도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명시했으나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또 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평화보장체계나 평화협정의 체결이 주한미군 철수문제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부각하려한 것 같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Ⅲ. 남북한 기본입장의 평가 : 당사자 문제
1. 문제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에 관한 남북한의 입장을 대체논의의 당사자, 정전협정의 역할, 체제전환에 대한 접근방법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비교, 검토해 보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북한은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거의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입장 차이의 핵심에는 역시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가 있다. 특히 대체 논의의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때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논의의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모색하는 데 가장 우선 규명되어야 할 문제는 정전협정의 당사자 문제, 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의 당사자 문제가 될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은 한반도 정전체제의 대체와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한 당사자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이 문제는 미․북한간에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관행상 정전협정의 당사자와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평화체제문제는 한국과 논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정전협정 당사자 여부가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과연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로 모아진다. 한국의 당사자 자격을 배제하는 북한 주장의 근거는 명확치 않으나 우선 정전협정에 나타난 서명자가 UN군 사령관인 美 육군대장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사령관 金日成,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彭德懷로 되어 있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UN군의 대부분이 미군이었고 미국이 UN군 사령관을 임명하는 등 실질적 교전국이었으므로, 他方 교전국인 북한, 중국과 함께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군은 이미 북한에서 철수하였으므로 미국과 북한만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남아 있고, 따라서 정전협정을 대신할 평화협정은 미․북한간에 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4년 5월 6일 북한 외교부 대변인 ꡒ공화국 정부가 이번에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미국에 제기한 것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실제적 당사자도 미국이고 현실적으로 남조선에서 군사통수권을 쥐고 있는 것도 바로 미국이라는 ꡒ법률적 및 현실적ꡓ 조건을 고려한 데 있다. 남조선 당국자들은 조선정전협정 체결시 그것을 한사코 반대하였고, 또 실제상 남조선에서 완전한 군사통수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조건에서 평화협상에 참여할 아무런 권능이나 자격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ꡓ라고 하여 미․북간 협상을 주장하는 근거로 첫째, 정전협정의 서명자, 둘째, 군사통수권 행사문제, 셋째, 정전협정체결에 한국이 반대하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 조선중앙통신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 1994. 5. 6.
이러한 북한의 주장이 과연 법리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타당성이 있는가?
2. 北韓主張의 檢討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전혀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법리적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주장은 조약당사자(party)와 서명자(signatory)의 개념을 혼동한 데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 조약당사자란 ꡒ조약에 의해 구속을 받게 되는 국가ꡓ를 의미하는 반면, 조약서명자는 ꡒ이러한 당사자를 대표하여 조약을 서명하는 사람ꡓ으로, 두 개념은 우선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또 조약당사자와 조약서명자의 국적은 전혀 별개의 사항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UN군 사령관 클라크와 조선인민군 사령관 金日成 및 중국지원군 사령관 彭德懷가 각각 어느 국가를 대표하여 이 협정을 서명했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보통 정전협정이란 군사적 사항에 국한되는 협정으로, 交戰者가 협정의 당사자가 되며, 교전 쌍방의 군사령관이 교전자를 대표하여 체결하는 것이 통례이다. 한국전의 교전당사자는 한국과 UN 안보리 결의 83(1950. 6. 27) 및 84(1950. 7. 7)에 의해 참전한 16개국이 일방이 되고, 북한과 중국이 적대 진영을 이루었다. 한편 적대 쌍방의 작전지휘체계는 상이한 양상을 띠었다. 우선 UN 안보리 결의 84는 한국을 돕고자 참전한 16개국을 지휘할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를 구성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그 사령관을 임명케 해 지휘체계를 통일시켰다. 또 한국은 1950년 7월 14일의 이승만 대통령의 서한을 통해 작전지휘권을 UN군 사령부에 위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보낸 서한은 다음과 같다. ꡒIn view of the common military effort of the United Nations on behalf of the Republic of Korea, in which all military forces……of all the United Nations fighting in or near Korea have been placed under your operational command and in which you have been designated Supreme Commander, United Nations Forces, I am happy to assign to you command and authority over all land, sea and air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during the period of the continuation of present state of hostilities……ꡓ
이에 따라 UN군 사령관은 한국과 참전 16개국을 지휘했고, 정전협정도 이들 국가들을 대표하여 교섭, 서명했던 것이다. 이러한 단일 지휘체계를 감안하면, 정전협정에는 UN군 사령관만이 서명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연합군을 구성한 경우, 정전협정은 연합군 사령관이 관련국을 대표하여 서명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 경우 협정은 모든 관련국에 적용된다. 가령,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9월 3일, 연합군 총사령관인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은 미․영 등 연합군을 대표하여 이태리 사령관 Badoglio와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으며(시실리 정전협정), 이는 물론 모든 연합국에 적용되었다. 또 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11월 11일, 연합군 총사령관인 프랑스의 Foch장군은 1차대전 참전 연합국을 대표하여 독일 대표와 정전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국가관행에 관해서는 Oppenheim, International Law: Disputes, War and Neutrality, Vol. Ⅱ, p. 549이하 참조.
한편, 북한 및 중국은 별도의 단일 지휘체계를 구성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전협정에도 동시에 참여, 서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전협정은 엄격히 말해 한국과 참전 16개국이 일방 당사자가 되고 북한과 중국이 타방 당사자가 된다고 하겠다.
둘째, 역사적․정치적 측면에서도 북한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정전회담 기간중 한국이 정전협정에 대해 거의 회담 막바지까지 반대의 입장을 취했으며, 또 회담 기간중 사실상 미국 주도의 회담 진행으로부터 상당히 소외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직접 적용될 한국의 궁극적인 동의 없이는 협정은 체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협정체결(1953년 7월 27일) 직전에 급파된 미 대통령 특사 월터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국무성 東아시아 담당 차관보와 이승만 대통령 간의 2주일 여에 걸친 협상 끝에 韓美相互防衛條約 체결, 미국의 장기적 군사 및 경제 원조, 한국군 증강 등의 주요현안이 타결되자, 한국은 그 동안의 반대를 철회하고 정전협정 체결에 동의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1952~1954), Vol. XV(Korea), Part 2 참조
협상 직후 발표된 1953년 7월 11일의 이승만 대통령과 특사 로버트슨의 공동성명에는 이러한 취지가 잘 반영되어 있다. ꡒDuring the past two weeks we have had many frank and cordial exchanges of views…… and have gone far toward achieving mutual understanding of the troubled questions which have arisen in connection with arrangements for an armistice, the exchange of prisoners, and the forthcoming political conference. These discussions have cemented our determination to continue and extend in the post-armistice period the close collaboration for our common objectives……ꡓ, US Department of State Bulletin, 20 July 1953, pp. 72~73. B. H. Lew, Peace and Unification in Korea and International Law, 1986, p. 23으로부터 재인용.
정전회담 기간중 한국이 취한 협정 체결 반대 입장은 정전협정의 당사자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항이며, 특히 협상을 염두에 둔 정치적 제스처와 협정에 대해 구속 동의(consent to be bound)의 부여를 거부하는 법적 태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만약 한국이 당사자가 아니라면 협정 체결에 한국의 동의를 얻어내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한국의 동의 취득을 위한 최종 순간까지의 노력이 한국의 당사자 자격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협정 체결에 대한 한국의 동의 여부는 당시 미국뿐 아니라 교전 상대국이었던 북한에도 최대의 관심사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이 정전협정에 서명을 거부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전협정은 원래 군사령관이 서명하게 되어 있는 군사적 성격의 협정이며, 따라서 의당 유엔군 사령관이 참전국 및 한국을 대표하여 서명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셋째, 정전협정 체결 후의 追後慣行(subsequent practice)을 검토해 볼 때도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1953년 7월 27일 협정 체결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전협정은 남북한 관계를 규율하는 유일한 법적 문서로 남북한에 직접 적용되어 왔다. 정전협정은 전문에 이 협정의 적용대상이 ꡒ한국(Korea)에서의 교전쌍방ꡓ임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교전 당사자로 이 협정의 적용대상임이 협정 상에 분명히 규정된 셈이다. 조약법 원칙상 조약은 당사국이 아닌 제3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예외적으로 제3국이 ꡐ명시적ꡑ으로 동의하는 경우 제3국이 조약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정전협정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이 정전협정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바로 한국이 협정의 당사자라는 것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라는 것은 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38년 간 협정상의 의무에 따라 협정을 이행해 온 사실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한국이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 협정에 구속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북한이 지금까지 한국의 정전협정 위반을 항의한 경우가 수없이 많은데 북한이 주장하는 유엔군측 협정 위반건수는 812,999건에 달한다. 국방정보본부, 군사정전위원회 편람, 2집, p. 486.
이는 한국이 협정 당사자로 협정에 구속되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한국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협정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自家撞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전협정 체결 후 개최되었던 정치회의에 한국이 참가했었다는 사실도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임을 입증해 주는 근거가 된다. 정전협정 제60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의를 정전 후 3개월 내에 소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정치회의는 정전 후 최종적 평화를 타결하기 위한 강화회의 또는 평화회의(peace conference)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1954년 4월 26일부터 개최된 ꡒ제네바회의ꡓ에 한국은 참전 16개국과 함께 교전 당사자로 참가했으며 한국의 참가에 아무런 반대도 없었다. 제네바 정치회의에 관해서는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1952~1954), Vol. XVI(The Geneva Conference)참조.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면 정전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논의하는 정치회의의 당사자 자격도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며, 따라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은 미․북한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법적․역사적․정치적 측면에서 전혀 정당성이 없는 것이며 정전협정의 이행과 관련된 관행과도 맞지 않는다. 보통 정전협정이란 교전국이 당사자가 되며, 군사령관이 교전국을 대표, 협정에 서명하는 것이 관행이다. 또 연합군을 구성한 경우,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연합국을 대표하여 서명하게 된다. 한국은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한 교전당사자이며, 현재도 정전협정에 직접 구속받으며 협정을 이행, 준수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법적․역사적․정치적 측면에서나 또 정전협정 체결 이후의 관행의 측면에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하나의 선전적 주장(propaganda)에 지나지 않는다. 정전협정은 엄격히 볼 때 남북한, 참전 16개국 및 중국이 당사자이나, 역시 가장 주요한 당사자는 남북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은 의당 남북한간에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3. 北韓의 意圖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은 한․미관계에 분열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북한의 의도는 주한미군 철수라기보다는 대내 선전용 정치공세라는 견해도 있다. 즉, 북한은 한국전쟁은 그들과 미국과의 전쟁이며 한국군은 미국의 ꡒ괴뢰군ꡓ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전해 왔기 때문에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북한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는 선전용 정치공세 이상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사실 그 동안 유엔사령부(UNC) 해체, 휴전협정의 미․북한간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주한외국군 철수를 하나로 묶어서 일괄적으로 주장해 왔다. 즉,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유엔사령부란 창설부터 유엔과 무관한 불법적인 국내문제 간섭 도구에 불과하며,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이란 사실은 유엔의 모자를 쓴 미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을 종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유엔의 모자를 쓰고 있는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한국전쟁과는 별개로 1953년 韓․美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주둔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유엔사령부 해체나 휴전협정의 전환과 연계될 문제는 아니다. 또 韓․美 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이 합법적인 주권의 행사로 체결한 방어적 성격의 군사동맹으로 제3국이 이에 대해 개입할 권리가 없다.
이러한 북한은 그들의 대남적화통일 실현의 최대의 걸림돌을 韓․美 군사동맹이라고 보고, 이러한 동맹관계를 와해시키는 것은 대남 정책 및 대외정책의 최대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은 이러한 북한의 정책목표를 평화라는 수식어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은 1973년 1월에 체결된 베트남 평화회복에 관한 미국과 北베트남(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간 파리협정의 접근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협정은 외국군 철수 등 군사적 문제는 협정을 통해 즉각 해결한 반면, 정치적 문제는 南베트남과 인민해방전선(남베트남 과도혁명정부) 등 당사자간에 해결하도록 남겨 두었다. 이러한 접근방법 때문에 파리협정 가운데 지켜진 것이라고는 결과적으로 협정체결 후 60일내 외국군의 완전철수를 규정한 조항뿐이었던 셈이다. Article 5, Agree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 27 January 1973.
또 파리협정 직후 유엔 사무총장은 협정의 내용을 인정하고 전쟁종결을 보아하는 국제회의를 소집했고 南․北 베트남, 인민해방전선, 미국, 프랑스, 중국, 폴란드,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이 참석, 협정을 보장하는 의정서를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삼중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사이공은 결국 파리평화협정 체결 2년여 후인 1975년 4월 함락되었던 것이다.
물론 1970년대 초 베트남의 상황과 오늘의 한반도 상황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아직도 이러한 전략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의 對한반도 인식과 대남 전략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특히 북한은 핵협상 과정에서 그들의 대남 전략의 근간인 대미평화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공세를 편 바 있으며 제네바 회담 직전인 1995년 9월 9일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ꡒ조․미회담에서 평화협정체결문제를 토의하고 합의를 보는 것은 현 시기의 가장 당면하고 절박한 문제의 하나ꡓ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이 담화는 남북한 사이에는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가 이미 채택되어 있음을 상기하고 미국과 평화보장체계까지 수립된다면 그것은 한반도에서 가장 공고하고 철저한 평화보장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될 것이라고 하여 북한이 여전히 남북한간 불가침협정, 미․북한간 평화협정의 도식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외교부 대변인 담화발표(‘94. 9. 9)
앞으로 경수로 제공문제가 난항을 겪을 경우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그 동안 소위 핵카드를 무기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엄청난 집착을 보여 왔다. 북한에 있어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북한체제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고 서방의 경제지원 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이보다는 대미관계개선의 공세적인 측면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즉, 북한에 있어 대미관계개선이란 그들의 대남 정책 실현의 최대 걸림돌인 한․미 동맹관계에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및 대남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목표이다.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또는 평화보장체계 수립 주장은 바로 이러한 대미관계개선의 공세적 측면을 실현하는 수단의 성격을 지닌다.
4. 대응방향
북한의 대미평화협정공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韓美結束의 강화에 있다. 韓․美 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이라는 기존의 원칙을 최근에도 이미 수차례 확인하는 등 북한의 평화 입장 공세에 대해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정부도 북한이 평화협정 문제를 꺼낼 때마다 습관적, 반사적으로 새로운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북한 주장에 판을 벌여 주는 모양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의가 훤히 내다보이는 대미평화협정이나 평화보장체계 제안에 대해 왈가왈부하여 미련을 남기거나 불필요한 오판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단호히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러한 문제가 미․북회담에서 의제로 포함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의 군정위 철수와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에 대해서는 이러한 행위가 정전협정(61항 및 62항)과 남북기본합의서(제5조)와 남북화해 부속합의서(제19조 및 20조) 위반임을 엄중히 항의하고 그 준수를 촉구해야 한다. 정전협정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평화협정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정부는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움직임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하거나 성급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최근 정전체제가 사실상 기능 마비된 상황에서 분단관리 차원에서도 무언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합리적 사고에 익숙한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안에 급급하여 잘못된 선책을 해서는 안 된다. 지난 40여 년 간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온 것은 한․미 양국의 억지력이지 정전협정과 정전기구 그 자체는 아니다. 사실 그 동안 군정위는 유엔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黃源卓 소장으로 교체한 1991년 3월 이후 단 한 번의 본회의도 열리자 않아 실질적으로 기능을 상실해 왔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까지는 이를 준수하고 판문점 내에 설치된 군사직통전화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혀 정전체제를 즉각 와해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의도는 아님을 시사했다. 결국 북한의 최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난 4년여 동안의 상황과 별로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최선의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초조해 하거나 성급한 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교란책과 문제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국내 일부 여론 때문에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제안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이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기본합의서에 천명한 것처럼 남북한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가장 상식적이고 당연하며, 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Ⅳ.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 전환방식
1. 평화체제 구축 논의의 두 가지 허상(myths)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적지 않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대체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방안제시에 앞서 다음 두 가지 점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은 “평화에 대한 의지”의 문제이지 정전체제를 여하히 평화체제로 전환시킬 것인지의 “방안”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대미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한 북한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구축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적절한 평화체제 전환방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결코 방안이 부적절해서가 아니라 의사 내지 의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상대의 의지 부재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묘안(magic formula)을 찾는 것은 허상을 쫓는 데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둘째는 그 동안의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지나치게 정전협정 대체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마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식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방안을 다루기에 앞서 먼저 휴전협상과 휴전체제,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등의 용어에 대해 간략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Krasner는 레짐 또는 체제를 국제관계의 주어진 한 영역에서 행위자(actor)의 기대가 합치되는 명시적․묵시적 원칙, 규범, 의사결정절차 등의 총합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Keohane과 Nye도 마찬가지로 레짐을 “행위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규범, 규칙 및 절차의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장치(arrangement)”라고 정의했다. 레짐은 법적 규범이나 규칙이 중심을 이루나 이 밖에도 묵시적 행위규범 및 절차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하겠다. Krasner나 Keohane의 견해를 빌려 본다면, 휴전체제나 평화체제란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보다는 포괄적인 개념이 분명하다. 한반도의 휴전체제는 1953년의 휴전협정을 바탕으로 지난 40 여 년 간 유지되어 온 체제로, 그 주요 특징은 군사정전기구 외의 남북한간 공식적 대화채널의 부재, 신뢰의 결여, 정치적․군사적 대결구조, 군비경쟁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행위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규범, 규칙 및 절차에 네트워크”가 결핍되어 있어 불안정하고 긴장된 체제인 셈이다. 이에 반해 평화체제란 행위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규범, 규칙 및 절차 등의 네트워크를 구축, 평화를 보장하는 안정된 체제를 의미하며, 이러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은 평화협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실 북한식 문건주의(또는 문건채택 위주의 접근방식)에 적지 않게 영향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문건주의식(또는 형식주의적) 접근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과거의 예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실질적 평화의 구축 여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전협정이 존재한다고 해서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 정전협정을 폐기 또는 대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論理의 顚倒이다. 실질적인 평화가 구축되면, 또 그러한 평화에 대한 진정한 합의가 형성되면 정전협정은 사실상 저절로 용도 폐기될 것이다. 그러한 합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을 폐기하거나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허상을 쫓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대북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평화체제 구축의 상대방인 북한이 아직도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물가로 데려올 수는 있으나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 남북한은 이미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채택,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이를 이행하기만 하면 남북한은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이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한․미관계의 분열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구조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술하는 한반도 평화구축방안은 북한의 평화공존 의지가 어느 정도 확인된 후에야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논의의 주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현실적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필요하다. 동서냉전의 종식으로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도 서서히 와해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4강간의 대결구조도 해소되었고, 한국과 소련, 중국의 관계정상화로 한반도 냉전구조의 한 축도 이미 무너졌다. 이와 함께 제네바 합의의 타결로 미․북관계 및 일․북관계 개선도 가시화되고 있어 한반도 주변정세는 분명히 해빙무드로 접어들고 있다. 비록 남북한 긴장과 대결구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나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의 붕괴는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완전히 종결짓고 새로운 평화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당면하여 한국정부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관한 기존정책을 재검토해 보고 상황 변화에 적합한 대처방안을 새로이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전체제 전환문제가 대두되는 현실적인 상황이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 정부도 남북한만을 당사자로 하는 평화체제 논의를 계속 고집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 경우 남북한 당사자 원칙과 현실의 상황변화를 적절히 감안한 새로운 방식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가. 당사자 원칙의 재검토
당사자 해결 원칙은 냉전체제의 와해에 따라 한반도 분단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냉전체제의 구조적 특성은 진영간의 적대적 대결과 진영내 국가 간의 자동적 결속으로, 분단시부터 냉전구조에 편입되어 왔던 남북한은 이러한 질서에 수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와해로 한반도에 대한 냉전적 고리가 풀리고 그 결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6공화국 정부는 남북한 당사자 원칙 하에 소위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를 꾀하였다. 물론 당사자 원칙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명분상 의당 추구되어야 할 원칙이며 법리적인 면에서도 타당하다. 특히 냉전시대 한반도의 운명이 당사자의 손을 떠나 좌우되고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냉전 종식에 따른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당사자 해결 원칙이 대두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또 이 원칙은 한반도의 궁극적인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 주변국들의 개입이나 관여를 차단하고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 해결 원칙은 우선 당사자간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합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사자 원칙의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없으며, 결과적으로 평화체제 구축논의의 시작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당사자 원칙은 평화체제 전환시까지 정전협정을 고수한다는 입장과 연결되는데, 최근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동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입장의 설득력이 다소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화체제 전환과 정전협정 고수라는 두 입장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를 현실적으로 찾기 어려우며, 설혹 있다고 해도(가령, 판문점 관할권의 한국 인수, 유엔사 해체 등) 기존 입장보다 더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남북한 당사자 원칙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변화를 적절히 감안하여 기존 원칙의 취지는 유지하면서 상황에 부합하는 유연한 대응책을 새로이 모색할 것인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 방식의 변화를 모색할 경우, 기존 원칙의 취지(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외세 간섭의 배제), 실현 가능성(북한 주장과의 타협 가능성), 실효성(평화보장력), 법리적 타당성(정전협정의 대체라는 점에서 당사자 문제 등에 관한 법리적 제약이 있음) 등의 사항을 적절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 접근방식 옵션
이러한 기준에 근거, 평화체제 전환방식은 평화체제 전환과 국제지지(또는 보장)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방식(2+2 방식, 2+4방식, 2+UN 방식 등)과 동시 해결하는 방식(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20자회담 등)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1)분리접근 방식
남북한간에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평화협정 체결 등)하고 이를 관련국들이 추인(endorse), 지지(support) 내지 보장(guarantee)하는 방식이다. 추인 내지 지지국이 어느 국가냐에 따라 2+2(남북한+미․중), 2+4(남북한+미․중․러․일), 2+유엔(남북한+유엔지지) 등의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분리접근 방식은 남북한 당사자 원칙이 사실상 지켜진다는 점에서 명분상의 장점은 있으나, 당사자 원칙의 문제점인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어려움이 상존한다. 세부 방안에 관해서는 2+4 방식은 실효성 면에서는 바람직할 수 있으나 법리적 타당성이 약한 면이 있다. 2+유엔 방식은 한반도 문제를 지나치게 국제화하는 면이 있고 실효성, 법리적 타당성 면에서도 문제점이 있다. 2+2 방식은 러․일을 소외한다는 정치적 부담은 있으나 법리적으로 합당하고 절차가 비교적 간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동시해결 방식
남북한과 관련국이 대등한 당사자로 참여하여 평화체제 전환과 국제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참여국에 따라 3자회담(남북한 및 미국), 4자회담(남북한․미․중), 6자회담(남북한․미․중․러․일), 20자회담(1954년 제네바 회담 방식; 남북한․참전 16개국․중․러) 등이 있을 수 있다. 동시해결 방식은 당사자 원칙의 취지가 다소 손상되는 것은 사실이나 실현 가능성은 분리접근 방식보다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세부 방안과 관련 3자회담은 북한 주장을 감안할 때, 상당히 실현 가능성은 있으나 회담이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이원화되어 결국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주장이 우회적으로 실현될 위험이 있으며, 중국의 배제에 따른 정치적 부담, 법리적 어려움도 적지 않다. 6자회담이나 20자회담은 2+4, 2+유엔 등의 방식과 유사한 문제점을 지닌다. 이에 비해 4자회담은 실현가능성, 법리적 타당성, 절차적 간편성 등의 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미 양국은 1977년 휴전당사자 4자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통일원, 북한의 평화협정제의관련 자료집, 1993. p. 189. 또 1979년 7월 1일 카터 미 대통령 방한시 발표된 한․미 공동성명에서 남북한 및 미국의 고위당국대표회의의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같은 책, p. 191.
(3) 평 가
당사자 원칙을 한반도 평화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한 당사자간에만 논의되어야 한다고 지나치게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련국의 적절한 역할과 협조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또 한국정부는 관련국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상기 평화체제 논의 주체에 관한 옵션을 당사자 원칙의 취지 유지, 실현 가능성, 실효성, 법리적 타당성 등의 면에서 평가해 볼 때 2+2(남북한+미․중)방식이나, 남북한과 미․중이 동시에 참여하는 4자회담 방식이 현시점에서는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3. 대체협정
가. 전통적 평화협정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해 전쟁을 종결하는 방식은 국제법의 가장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제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평화협정은 전쟁의 원인과 책임의 규명, 이에 따른 배상 또는 보상, 전범처리 내지 사면 등을 통해 전쟁을 완전히 종결하고 우호관계를 회복한다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인 평화협정은 보통 적대관계 및 전쟁상태의 종결과 평화상태로의 회복(general peace clause), 전쟁 책임조항(war guilt), 정치적․영토 관련 조항, 이와 관련한 사항들로는 상호 불가침 및 무력행사의 포기, 경계선의 상호존중,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영토문제의 처리, 전범처리 등이 포함된다.
경제적․재정적 조항, 관련사항으로는 전후 배상․보상 문제, 전쟁발발 이전의 계약 내지 협정이행 문제 등이 있다.
보장조항 관련사항으로는 비무장 의무 내지 지대 설치, 군비통제, 국제평화유지군 배치, 국제보장 등이 있다.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평화협정은 승전국과 패전국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을 전제로 승전국이 패전국에 대해 부과하는 형식(불평등조약)으로 체결되어 왔다. 따라서 2차대전 이후의 대부분의 전쟁에서처럼 승전국과 패전국이 확연히 구별되지 않고, 따라서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 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통적 평화협정 방식을 적용시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평화협정을 통한 전쟁종결 방식은 이미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퇴조하고 있는 경향이다. Quincy Wright, “How Hostilities Have Ended: Peace Treaties and Alternatives”,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Science, Vol. 392(1970), pp. 51~61.
그 결과 전쟁을 종결하는 방식은 평화협정 체결 외에도 다양한 방식, 즉 국교회복, 일방선언과 묵시적 수락, 공동선언 등이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굳이 평화협정이라는 형식의 협정을 맺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도 협정에 담겨져야 할 내용은 협정이 추진되는 배경이나 상황, 협정 추진의 당사자 등의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일률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유형의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대체협정의 기본방향 및 주요 내용
한반도 현실을 감안할 때, 전쟁상태는 사실상 종료되었으며 또 남북한간에 전쟁 책임이나 보상․배상 문제를 다루거나 타결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장 당면한 문제는 남북한간에 실질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므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협정의 기본 취지도 전쟁종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남북한관계의 개선 내지 정상화라는 정치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즉 대체협정은 과거의 처리문제보다는 향후의 평화정착과 이를 위한 제도적․운용적 틀의 마련이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대체협정의 핵심은 남북한관계 정상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관계 정상화는 새로이 규정하기보다는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재수용하고 합의서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기본합의서는 평화상태에 걸맞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라는 점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항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대체협정의 주요내용으로는 다음 사항을 상정할 수 있다.
―평화의지의 확인
―평화관리기구 설치
―경계선 문제
―통행 및 통신 문제
―구체적 시한을 설정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통일조항(한반도 통일의 당사자 자주적 해결원칙 천명)
―기본합의서 내용 수용
―여타 관련사항(유엔사 문제 등)
Ⅴ. 유엔군 사령부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문제
1. 문제점
정전체제 대체와 관련하여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유엔군 사령부 해체문제가 있다. 유엔군 사령부(UNC)는 정전협정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정전협정 제17항은 동 협정의 조항과 동 협정의 조항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동 협정에 서명한 자와 그의 후임 사령관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UNC사령관은 우리측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을 준수, 집행하는 책임을 지며, 또 군사정전위원회(MAC)의 우리측 대표를 임명한다. 북한은 1954년 제네바회의 이래, UNC는 창설부터 UN과 무관한 불법적인 국내문제 간섭 도구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1978년 UNCURK 해체 이후 UNC 해체에 총력을 기울여, 1975년 11월 18일의 UN총회에서 UNC 해체 및 UN 깃발하의 주한 외국군 철수를 주장하는 결의 Resolution 3390 A/B(XXX)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on 18 November 1975.
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에 대한 우리측의 기본 입장은 1970년대 초반까지는 UNC의 계속 유지였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는 정전협정 체제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UNC를 대체할 기관이 마련된다면 이를 해체할 용의가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서방측이 제안하여 채택되었던 1975년 11월 18일의 UN총회 결의 3390(A)는 이러한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UNC 해체문제는 다음 세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첫째는 UNC의 해체와 정전협정과의 관계이다. 즉, UNC가 해체되면 정전협정 체제는 종료되던가, 아니면 UNC의 해체는 정전협정의 존속 또는 이행과는 무관한가의 문제이다. 둘째는 UNC의 해체가 군사적․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의 문제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적절한 해체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UNC 해체문제는 주한 외국군 철수문제와 연계되어 주장해 왔으므로 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그 동안 북한은 UNC 해체, 주한 외국군 철수, 정전협정의 미․북한간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하나로 묶어서 일괄적으로 주장해왔다. 따라서 이러한 제반 사항이 과연 연계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아니면 별개의 이슈인지 분명히 밝히고, 체계적인 입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2. UNC의 役割
UNC는 1950년 7월 7일 UN 안보리 결의 84에 의해 한국전 참전 16개국을 총괄하는 통합 사령부로 설립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작전지휘권 이양에 따라 한국군에 대해서도 작전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설립 당시의 명칭은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였으나 그 이후에는 주로 유엔군 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앞서 보았듯이 UNC 사령관은 참전 16개국 및 한국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을 서명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측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의 준수․책임을 지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체결로 UNC 산하의 참전 16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군은 모두 철수했다. 한편 한국과 미국은 1953년 10월 1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에 따라 미군은 현재까지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 발발시 UN안보리 결의에 근거해서 UN군의 일환으로 참전했던 미군과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근거해 현재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법적으로 전혀 별개이며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UNC 산하에는 더 이상 실질적인 전투병력은 없는 실정이며 현재 약 300명 이하의 소수만이 UNC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령부의 간부, 연락장교단, 행정병, 의장병 등으로 인적 구성은 주로 주한미군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정전과 함께 UNC의 군사적 기능이 사실상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UNC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정전협정이 유엔군 사령부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작성된 것이며, 또 UNC 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준수․집행에 관한 우리측 책임자인 만큼, 정전협정 체제의 이행을 위해서는 UNC의 유지가 필요했다. 둘째, 최소한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가 발족될 때까지 UNC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지휘체계를 연결시켜 주는 법적 매개역할을 하였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유엔군으로서의 미군과 그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미군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때문에 그 동안 이 두 개념 사이에 많은 혼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주한미군의 성격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과 주한미군 사이의 작전지휘체계는 새로이 규정되지 않고, 대한 주한미군 사령관을 유엔군 사령관으로 겸임 발령하고, 1950년 7월 14일의 한국군으로부터 유엔군으로의 작전권 이양합의를 정전협정 체결 후까지 유효하도록 연장시키는 편법으로 해결해 왔던 것이다. 작전권 이양에 관한 7월 14일의 이승만 대통령의 서한 중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지휘권을 이양한다는 구절에 따라 정전에도 불구하고 전쟁상태는 지속되므로 한국군은 UNC 산하에 남게 되었다. 이러한 합의는 1955년 한․미간의 ‘군사 및 경제 원조에 관한 합의 의사록’의 제2항에 “유엔군 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한국군은 ‘우엔司’의 작전 지휘 하에 둔다.”라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1978년 11월의 한․미연합사가 발족되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작전 지휘 관계가 명확히 되므로 UNC는 더 이상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매개역할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정전협정의 집행기관으로서의 기능만을 해왔다.
3. UNC 解體와 關聯問題
가. UNC의 解體와 休戰協定의 存續與否
정전협정상 UNC는 협정의 준수․집행을 책임지는 주체이므로 UNC의 해체는 정전협정 이행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 61항은 적대 쌍방 사령관의 합의가 있는 경우, 협정의 수정과 증보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측 대표가 현재의 UNC 기능을 승계할 새로운 대표기관에 합의하면 UNC는 해체될 수 있으며, 협정 이행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구체적․기술적 방법으로는 UNC 사령관과 북측 사령관이 이러한 취지의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 col)를 채택, 정전협정에 첨부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구체적 대체기관은 양측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나 우리측의 입장은 한반도 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 원칙에 따라 한․미연합사와 같은 한․미 대표기관보다는 한국군 단독의 대표기관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UNC가 해체된다고 해서 정전협정이 자동적으로 실효하거나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조약의 경우, 통상 조약의 일방 당사자가 소멸하면 조약은 종료된다. 그러나 이 경우 UNC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앞서 지적한 바처럼 남북한, 참전 16개국 및 중국이며, UNC는 우리측을 대표하여 협정의 준수․집행을 책임지는 하나의 행정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존속과 UNC의 해체는 법적으로는 별개에 문제이다. 다만 UNC의 해체는 정전협정의 이행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의 수정에 해당되므로, 이의 대체기관에 대해서는 양측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나. UNC 解體의 安保波及效果: 日本內 基地使用權 問題
일본은 1951년 9월에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과 그에 따른 애치슨․요시다 교환공문을 통해, 한국에 있어서의 UN의 행동을 지원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에 참가하는 군대에 대해 시설 및 역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의무는 한국으로부터 UN군이 철수하는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종료하게 되어 있다. Article 24, Agreement regarding the Status of the United Nations Forces in Japan, 19 Feb. 1954.
따라서 UNC가 해체 될 경우 UN군의 일본내 기지 사용권 등이 소멸, 우리의 군사적 안보 구도에 입힐 우려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현재 일본은 위의 교환공문에 근거, 일본 내의 6개의 주요 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만약 UNC가 해체될 경우, 미․일간에 기지 사용권에 대해 새로이 합의해야 할 상황이다. 이와 같이 UNC 해체문제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구도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사전에 미․일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일본내 기지 사용권 문제를 제외하면 UNC의 해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우리의 군사안보 체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기지 사용권은 이를 사용할 UN군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나, 이 협정이 상정하는 UN군은 사실상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무력사태가 재발할 경우, UNC가 형식상 존재한다고 해서 UN군의 자동적 재참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 경우 UN군이 개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의의 채택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주일미군의 경우, UNC의 존재와 상관없이 한반도의 유사시 한국으로 출동하고자 한다면 1960년 1월 체결된 미․일 신안보조약과 그에 따른 허터․기시 교환공문에 의해 절차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부터 출동하는 군대도 일본 내의 시설 및 역무를 제공받는 데 문제가 없다 국가 간의 안보 협력은 상호방위나 협력에 대한 정치적 의지의 存否가 관건이며 기술적인 협정이나 조약의 存否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안보체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한․미 안보동맹을 주축으로 하고 있으며 UN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일본내 기지 사용권과 관련된 문제만 해결된다면 UNC의 형식적 존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실익은 별로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다. UNC 解體와 駐韓美軍 撤收
북한은 UNC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 주둔하고 있으며, UNC와는 무관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의 합법적인 주권의 행사로 체결된 방어적 성격의 군사동맹으로, 제3국은 이에 대해 개입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주한미군 문제는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있어 핵심주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된 마당에 주한미군의 존재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해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주한미군 문제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하는 시각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에 대한 억지력에 관한 충분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이 많으며 동북아 안정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한․미군사관계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나 향후 상당기간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전체제 대체와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는 분리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4. 평 가
UNC는 유엔 안보리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안보리의 결의에 의해서만 해체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해체 주장에도 불구하고 안보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는 해체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UNC 해체에는 한국과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동의가 결정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UNC 해체문제는 우리측이 충분한 정치적 재량과 여유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하겠다. UNC의 해체가 정전협정의 파기를 의미한다든가, 정전협정 일방 당사자의 소멸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한국 및 참전 16개국이며, UNC는 이들 당사자를 대표하여 협정의 준수를 책임지는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UNC 해체문제는 UNC를 승계, 軍停委에서 우리측을 대표할 대체기관만 합의되면, 정전협정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별도 처리 가능한 문제이다. UNC는 현재 더 이상 군사적 의미는 없으며, 명목상 우리측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의 준수․집행을 책임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일본내 기지 사용권 문제가 사전에 원만히 해결된다는 가정 하에 이 문제는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안보체제의 핵심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며, 이에 따라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UNC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UNC의 해체문제는 주한미군의 철수와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문제로 이의 연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Ⅳ. 맺음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적지 않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으며 다양한 전환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방안 제시에 앞서 두 가지 사항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은 평화에 대한 의지의 문제이지 정전체제를 여하히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인지의 방안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대미평화협정을 고집하는 한, 북한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 구축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아무리 적절한 평화체제 전환방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둘째, 평화체제 전환의 핵심은 실질적 평화의 구축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남북한간 군사적 대결구조를 그대로 둔 채 평화협정만 체결하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따라서 평화체제 구축의 진정한 기준은 남북한간 정치적․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사적 대결구조의 완화 내지 해소를 통한 평화 의지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 전망은 단기적으로 밝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미관계를 분열시키고 궁극적으로 한․미군사동맹관계를 와해시키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강하므로 한국이 기존 정책에 수정을 가하는 등, 유연하게 대응한다고 해도 평화체제 구축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한반도 주변의 탈냉전 추세를 감안하여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보다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하는 등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당사자 원칙의 취지, 실현 가능성, 실효성 및 남북한․미국․중국이 순차적 또는 동시에 참여하는 2+2 방식이나 4자회담을 고려해 볼 만 하며, 이러한 회담이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한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평화체제 전환의 핵심은 실질적 평화의 구축이며, 특히 군사적 대결구조의 완화 등과 같은 실질 조치가 선행된 후에 정전협정의 대체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현재의 군사적 대결구조를 해소하고 남북한관계를 실질적인 평화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들이 정전협정 대체협상의 주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방안을 제안하는 시점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제네바 합의의 이행상황을 면밀히 평가, 한국형 경수로의 제공이 본격화되는 등 합의 이행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간 후에 새로운 제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위장된 평화공세에 대해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공동의 입장을 견지하고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분단 40여 년 간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온 것은 한․미 양국의 억지력이지 정전협정과 정전기구 그 자체는 아니다. 마비된 정전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한․미 양국의 억지력에 손을 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또 미국의 의도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의혹도 자제되어야 한다. 이는 자칫하면 한․미간에 불신과 갈등을 유발, 궁극적으로 자기 완성적 예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확고한 한․미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