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모래바람과 첨단무기 이시우 2005/09/21 326
흙먼지.모래바람과 첨단무기
전투장비의 전장 적응성 평가는 대단히 까다롭다. 냉전 이후 전장이 다변화하면서부터 그 조건들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극지의 극한 조건에서부터 열대 우림 지역의 고온다습함과 사막의 황막함을 모두 견뎌내야 하는 조건들을 부과하고 있다.
6 ·25전쟁 중반기쯤 장진호 부근까지 진격했던 미 해병대는 중공군의 반격 압력 하에서 혹독한 겨울작전을 치러야 했다. 그때 미 해병대 M -1 소총의 가스활대는 윤활유가 굳고 수분으로 결빙,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기관총의 실탄과 소총탄이 한계치를 넘는 저온으로 파열되는 현상이 속출해 큰 애로를 겪었다.
이러한 악전고투의 상황을 돌파코자 지원나온 전투기들의 폭탄걸이가 결빙, 폭탄을 투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온도 ·습도의 문제가 냉전 때까지의 전장 마찰 요인이었다면 오늘날 냉전 후기의 전장환경에서는 흙먼지 ·모래 바람이 결정적인 전장 마찰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쟁이 동서 대결에서 벗어나 문명권의 단층지대로 전이되었기 때문에 전장이 우림 ·동토에서 사막 ·황무지로 옮겨졌다.
지난 1월 아프가니스탄 공격전의 뒷수습 과정에 있던 미 해병대 CH-53 헬기 한 대가 추락했을 때 그것이 탈레반 잔당이나 저항군의 대공사격에 의한 것으로 속단, 소탕작전을 강화함으로써 생각지 않은 민간인 사상 사건이 속출해 미국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다.
그러나 헬기가 대공사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흙먼지에 의해 엔진이 작동을 중지하고 회전익 축이 손상, 추락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 것은 8월초에 이르러서였다.
CH-53 헬기가 흙먼지 ·모래 바람 때문에 제대로 작동치 못함으로써 작전은 물론 정치적으로 심각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9년 11월 3000여 명의 폭도에 의해 이란의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억류된 52명의 직원들을 구출하고자 특공대원을 싣고 출동한 C-130 수송기 12대, CH-53 헬기 8대가 이란 중부고원 평원지대에서 황무지의 바람과 항공기 후류로 흙먼지 ·모래 바람 때문에 혹은 기계고장으로 추락하고 수송기 ·헬기가 충돌, 8명의 특수부대원(후에 델타포스로 알려짐)만 희생된 채 작전을 포기하고 철수한 사건이 있었다.
이사건은 그 이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엔테베 공항 기습작전과 크게 대비돼 미 행정부가 작전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질책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상작전 장비도 혹독한 시험을 거쳤다. M -1 에이브러햄스 전차는 종래 전차의 특성을 크게 뛰어넘는 신개념의 기술들을 응용한 최신예 전차였다.
장갑방법, 포의 구경과 특성, 조준장치, 환기장치 등이 크게 진보한 것은 물론 가장 큰 변화는 엔진이었다.
통상의 전차는 디젤 엔진이나 가솔린 엔진으로 구동했는데 M-1은 가스 터빈 엔진을 장착, 추력 대 중량비를 크게 향상시켜 기동순발력을 높였고 차체를 높거나 크지 않게 함으로써 피탄 가능성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1500마력의 괴력을 내는 가스 터빈 엔진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 종래의 전차에 비해 엄청난 양의 연료 소모가 문제가 되었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스 터빈 엔진이 요구하는 대량의 공기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전투 지역의 연기 ·파편 등은 보통의 엔진에도 좋지 않은데 공기 소모가 훨씬 큰 가스 터빈 엔진에는 치명적으로 불리한 이물질(FOD:외부 이물질에 의한 손상)이 되었다.
M -1을 중동의 사막지대에 배치하기 전 전투현장 적응시험 도중 확인된 흙먼지 ·모래 바람에 의한 엔진 블레이드(압축기의 날개들)의 손상은 전차의 형상까지 재설계하게 했다.
즉 가스 터빈 엔진의 큰 장점은 가볍고 부피가 작다는 것이었는데 공기 필터를 재설계, 장착해야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장점이 훼손된 것이다.
미군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유사한 수준의 정교한 장비를 운용코자 했던 영국군 역시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다. 주력 전차 중의 하나인 챌린저 2가 걸프 지역에서 실시한 훈련 중 사막에 투입된 지 불과 수 시간만에 엔진이 흙먼지에 막혀 정지했다. 장갑차 ·자주포도 비슷한 처지에 빠져 수리 부품의 소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신형 자동소총의 동작이 원활치 않아 보완작업이 필요해 의회에서까지 심각성을 논의케 했고, 링스 헬기의 회전익들은 설계 기준인 500시간에 턱없이 못 미치는 27시간 만에 교체해야 하는 우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보병의 전투화 ·전투복도 고온과 흙먼지 ·모래 바람에 견디지 못해 영국군의 사막작전 능력 전반이 감사 대상으로 되어 있다.
흙먼지 ·모래 바람은 시계를 막아 판단과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고 마찰에 의한 마모를 일으켜 장비의 수명을 짧게 하고 쉽게 고장나거나 파손되게 한다. 또한 유체의 흐름을 방해, 시스템을 폐색시켜 제 기능을 못하게 한다.
유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흙먼지는 필터를 사용해 걸러내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지만 유속을 낮추게 하거나 압력을 변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어 근본적인 설계를 재고케 하기도 한다. 표면에 흠집을 내게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표면에 코팅하는 방법(탄소증착법 등)으로 극복코자 하나 엄청난 비용의 증가가 큰 약점이다.
〈공군사관학교 교수 권재상 대령 holdon@unitel.co.kr〉
http://www.militaryreview.com/CS/mrboard/bbs.php3?db=gen46&inc=read&no=119&page=14&search=&search_p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