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부닥치는 미국과 유엔 이시우 2005/08/23 257

http://www.ifins.org/pages/kison-hhlee%20publications68.htm

사사건건 부닥치는 미국과 유엔

이흥환(KISON 선임 편집위원)

쓰나미가 휩쓴 남아시아 대재앙의 현장이 졸지에 국제 정치판이 되어버렸다. 사망자 숫자가 15만 명을 훌쩍 넘어선 대비극의 현장 소식을 전하는 외신 속에는 구호 작업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엔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도 섞여 있다.

‘어제 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구호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선에서 유엔과 미군 사이의 알력이 노출됐다. 유엔은 쓰나미의 최대 피해 지역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주 반다 아체 시에 군용기로 구호품을 싣고 온 미국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반가와하는 기색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gt;가 지난 1월7일 전한 기사의 첫머리 부분이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유엔은 또 도움의 손길이 가장 절실한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계속 구호용 군용 헬리콥터를 띄우기로 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한편 미국 관리들은 기자회견에서 반다 아체 공항에 유엔 사람들이 갬?보이지 않는다고 유엔을 비난한다.

미국의 한 관리는 "한번 둘러봐라. 누가 현장에 있고 누가 현장에 없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유엔)은 시가지 안에 본부도 설치했고 차량도 운영하고 있으나, 식량은 내오지 않고 있다. 응급실을 설치해 놓은 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유엔 협조관인 마이클 엘름퀴스트는 미국 측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고 한다. "그들의 대답은 인도네시아 당국을 거치라는 것이었다." 엘름퀴스트는 유엔이 재난에 너무 늦게 대처했다는 비난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 미처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미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헬리콥터가 현지에 투입되어 있긴 하나, 우리는 군용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장비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호 작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국과 상의를 했으면 했다"라고 말한다.'

현장 소식을 전한 이 보도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의미 축소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긴박한 상황 때문에 미국과 유엔 사이에 협조 체제가 미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1월6일의 한 현장 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재난 구호 작업이 펼쳐진 지 이미 한 달이 되어가고 있지만 남아시아 어느 지역에서도 미국과 유엔이 상호 긴밀한 협조 하에 구호 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은 단 한 건도 들려오지 않는다. 미국과 유엔 사이에 긴급 구호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탓이 아니다. 미국과 유엔 사이의 갈라질 대로 갈라진 틈이 재난 현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도권 다툼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고질병이고, 치유되기를 기다리느니 둘 사이에 얼마나 불신의 골이 깊은지 들여다보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를 불치병이다.

사사건건 부닥치는 미국과 유엔

미국은 지금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사임 압력을 가하면서 이라크의 '석유-식량 프로그램' 스캔들로 아난의 목줄을 조이고 있는 중이다.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유엔이 이라크로 하여금 제한적으로 석유를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석유 수출 대금으로 식량 등 인도적인 목적의 물품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일종의 이라크-유엔 간 무역 협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악용해 유엔이 계약자에게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사담 후세인에게 수십억 달러의 현금과 무기를 쥐어주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이 리베이트 부패 스캔들은 이라크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유엔의 베논 세반과, 코피 아난의 아들인 코조 아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우파 언론들이 두 사람을 부패 인물로 낙인 찍어 사정없이 두드려대면서 코피 아난의 사임을 주장해 오고 있다. 여기까지가 스캔들의 겉모습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진행시킨 유엔 661 위원회 회의에 가장 참석을 많이 했고, 위원회의 계약 연기나 취소 등 사실상 위원회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미국 부대사인 제임스 커닝햄이었다는 점에서 석유-식량 프로그램의 리베이트 스캔들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이미 훤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미국은 아무 책임이 없으며 특정인의 부패로 몰고 간 우파 언론의 일방적인 공격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어버린 것은 <뉴욕 타임즈>였다. 지난해 12월5일자에서 <뉴욕 타임즈>는 ‘이라크는 미국과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이 수 년 동안 이미 알고 있었던 협정을 통해 불법 자금을 축적해 오고 있었다. . . . 유엔은 이 불법을 막을 힘이 없었으며, 결국 이 스캔들의 책임은 안보리 회원국들에게 있다’고 입바른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코피 아난을 겨냥한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스캔들’이라는 것은 유엔에 대한 미 우파의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 공격이라는 평이 나왔고, 유엔 사무총장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안보리의 다른 회원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었다.

미국과 유엔이 부닥친 것은 이뿐이 아니다. 사사건건 미국은 유엔을 공격했다. 지난해 7월 중순 미국이 유엔의 2005년 에이즈 기금 10억 달러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도 좋은 사례이다. 미국은 국제 에이즈 퇴치 5년 계획을 위해 이미 15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놓고 있다는 것이 백악관의 즉답이었다.

‘유엔에 10억 달러를 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백악관 담당자의 이 단호한 거절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대 유엔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2년 전에는 미국이 에이즈 회의에 230명을 파견했었으나 올해는 고작 50명뿐이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미국이 자체적으로 마련했다는 에이즈 기금도 사실 알고 보면 미 제약 회사 약품 구입비를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해댄다. 에이즈 약품이 반드시 미 식품의약청(FDA)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어야 하며 그런 절차를 거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에이즈 기금이 아니라 미 제약회사를 위한 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미국의 유엔 불신은 국제 안보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라크 전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제기구 유엔은 미국이 발휘하는 힘의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유엔 안보리의 참패였다. 미 터프츠 대학 국제법 교수인 마이클 글레논(Michael Glennon)은 <포린 어페어스> 2003년 5/6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국제 안보 체제 종말의 서장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문제를 유엔 총회로 가져가 무장 해제를 하지 않은 바그다드에 대해 행동을 취할 것을 유엔에 요구했던 2002년 9월12일에 이미 열렸다고 봐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글레논 교수의 이 글은 <월간중앙> 2003년 6월호에 실려 있음). 부시가 유엔 안보리와 함께 움직이겠다고는 했으나 유엔이 협조에 실패할 경우 혼자 행동할 것임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결국 한 달 후 미국은 유엔 안보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미 의회가 부시 대통령에게 유엔의 승인 없이도 이라크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글레논 교수는 같은 글에서 ‘유엔 안보리가 제 기능을 못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문제는 제2의 걸프전이 아니라 유엔이 기능을 할 수 없는 국제 역학 관계가 일찌감치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미국의 일극화 체제가 부상하면서 무력 사용에 대한 다른 태도와 문화적인 충돌 등이 돌출되었고, 유엔 안보리의 신뢰도는 점차 부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 일극화 체제는 유엔 안보리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도 국제 질서가 유일 초강대국 체제로 재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노골적으로 미국을 견제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일극화된 세계를 수용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다극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유이다’ – 프랑스 베드랭 외무장관(1988년)

‘유일 강대국이 홀로 지배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든 항상 위험하고 반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 프랑스 쟈크 시락 대통령(1990년)

’1945년 이후 유럽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개별 국가의 패권적 야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런 입장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 독일 피셔 외무장관(2000년)

중국이나 러시아도 유럽의 이런 입장과 다르지 않다. 결국 이 나라들이 지댈 언덕은 유엔이다.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 문제를 다룰 때 솔직한 심정을 밝힌 바 있다. “협상 전 과정을 통해 프랑스는 안보리의 역할과 권위를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의 주 유엔 대사의 발언이었다.

미국의 유엔 탈퇴, 시간 문제?

미국은 그러나 국제 체제를 달가와하지 않는다. 국제 기구 규약이든 국제 조약이든 초국가 형태의 간섭은 받기 싫다는 것이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이런 입장은 한층 더 노골화되었고 실제 정책에 깊숙이 반영되고 있다. 9 11이 부채질을 했음을 물론이다.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에 나타난 부시 행정부의 선제 공격 독트린은,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국 방어를 위해서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유엔 헌장 5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우파 보수 논객인 조지 윌(George Will)은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 외교정책을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유엔의 영향을 최소화시킴으로써 미국의 주권과 행동의 자유를 보존하고,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 개입의 가능성을 확보해 둔다. 군사 행동의 효율성만을 감안한 타협의 산물인 평화유지 작전에는 개입하지 않으며, ‘정권 수립’이라는 비보수적 행동 안에 깃들어 있는 정치적 오만을 경계한다.’ 보수주의의 이 원칙에도 분명히 밝혀져 있듯이 유엔과의 대립은 이미 부시 행정부 출범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신보수주의자들(Neocons)이 키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네오콘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 견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전 세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네오콘의 한 사람인 맥스 부트(Max Boot)는 지난 해 초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2004년 1/2월호)에 네오콘이 유엔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밝힌 바 있다. ‘네오콘을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의 이 글에서 맥스 부트는 ‘네오콘이 다자주의를 반대하는 주장은 틀린 말’이라면서 네오콘의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네오콘은 무조건 다자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네오콘은 동맹국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 다자간의 조화라는 명분만 좇아 (유엔 같이) 다자 기구가 미국의 행동에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지뢰 협약 같이) 아주 그릇된 국제 합의에 가입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세를 경계할 뿐이다. 일방주의가 뜻하는 바가 뭐든지 혼자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라면 네오콘의 주장은 일방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네오콘은 다른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유엔을 아주 회의적으로 바라다본다. 유엔이 반미주의의 온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타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유엔이 미 국익을 위할 때에는 유엔과 상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필자를 포함해) 일부 네오콘은 심지어 다른 동맹국들을 이라크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유엔이 이라크에서 일부 주권을 행사하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보수주의든 신보수주의든, 일방주의든 동반주의든 미국의 일극화 체제가 미국이 지향하는 국제 질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똑같다. 이런 입장에 조금 더 힘이 실리면 미국의 유엔 탈퇴 주장이 나오게 된다. 지난해 12월30일 <워싱턴 타임즈> 컬럼니스트인 어네스트 리프에버(Ernest Lefever)가 ‘코피 아난을 잊어라(Forget Annan)’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린 결론도 미국의 유엔 탈퇴이다. ‘유엔은 약속만 무성하게 해놓고 한 일은 별로 없다. 이제는 미국이 유지비의 25% 보조하고 있는 유엔 시스템에서 탈퇴하는 것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조금 더 들어보자.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등 유엔 기관이 인도적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번거롭기만 한 유엔 관료주의가 없었더라면 훨씬 더 일을 잘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유엔 그 자체, 특히 유엔 안보리이다. 지금 해외에서 일고 있는 반미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난 225년 동안 세계의 정의와 자유 수호를 위한 일등 공신의 역할을 다해 왔다. 이제는 미국이 유엔에서 탈퇴하는 것을 고려할 때이다.’

미국과 유엔의 대결 구도(US vs. UN)는 이제 흔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 National Anxiety Center의 창립자 알란 카루바(Alan Caruba)라는 사람이 쓴 ‘유엔 대 미국(The United Nations Versus The United States)’이라는 글(http://anxietycenter.com)이 화제가 되는 것만 봐도 미국 일극 체제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 국민 전체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힘들겠으나 유엔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있다. 일부만 소개한다.

- 유엔은 환경 프로그램을 통해 천연 자원을 개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를 전복시키려 든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환경(sustainable environment)’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인 소유권을 공격하겠다는 공산주의 개념이다.

- 유엔은 모든 금융 거래와 모든 국가의 조세 정책을 통제하는 권한을 확보하려 든다.

-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총기 소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 유엔의 국제형사재판권은 어떤 미국인도 기소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헌법으로도 미국 시민을 보호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유엔은 전 세계의 시민들로 하여금 국제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하려고 든다.

알란 카루바가 보는 유엔은 전체주의의 화신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이다. 그가 내린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의 유엔 탈퇴이다. 미국을 노예로 만들려는 기구에 돈을 대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KISON

<월간중앙> 200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