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인터뷰-통일뉴스 이시우 2005/07/17 275
http://www.tongilnews.com/article.asp?mainflag=Y&menuid=101000&articleid=57289
<인터뷰>“祖江은 배가 뜨기를 기다린다”
박성준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준비위원장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2005-07-16 오후 4:21:09
정전협정일인 이달 27일 한강하구에서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다. 비무장지대로만 알고 있던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가 띄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평화의 배는 유엔사의 ‘협조’를 얻어 한강하구 어로한계선을 지나 ‘남북의 경계선’ 가까이까지 항해할 예정이다. 분단의 금기를 뚫는 이 행사를 위해 분주한 박성준(비폭력평화물결 대표/성공회대 겸임교수)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준비위원장을 지난 13일 비폭력평화물결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준비위원장은 ‘한강하구의 뱃길을 연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강(조강)은 배가 뜨기를 기다리고 배는 뜨고 싶어 한다”며 이번 행사의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밝혔다. – 편집자 주
▶비폭력평화물결 사무실에서 박성준(왼쪽)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준비위원
장을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한강하구에 배 띄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통일뉴스 : 이달 27일에 한강하구에서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한다. 이 행사의 취지는?
■ 박성준 : 정전협정이 된지 벌써 반세기가 넘었는데 이 기간동안에 정전협정 상에는 민간선박의 항해가 가능하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걸 모르고 망각하고 스스로 금기를 씌어서 배가 항해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한 금기를 이제 우리가 벗어던지고 우리들의 평화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서 한강하구를 평화의 삶을 위한 젖줄로서 다시 회복하는 그런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우선 정신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기는 식으로 우리는 마치 한강하구를 항해가 불가능한 휴전선이나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인 것처럼 스스로 오해를 해 갖고 금기를 정해 놓고 그 금기에 복종해 왔다. 이제 이런 비자율성을 벗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다시금 자기 정립을 해야겠다는 그런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과거에는 물량이동이 빈번했던 수역이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다. 이루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이 개풍군으로 해서 강화로 다리가 놓여진다고 하면, 즉 개풍군하고 강화 사이에 다리가 놓여지면 그것이 초지대교로 바로 연결되고 그러면 인천으로 연결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개성에서 인천공항까지 한 시간 거리가 된다. 그러면 이 일대가 물류 중심지대가 되고 이 지역은 남북간 아주 중요한 경제협력의 장이 된다.
게다가 이번 행사에는 김포와 인천광역시가 참가하고 강화군이 아주 적극적이고 특히 강화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예컨대 고양과 김포에 사는 시민들이 서울에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 수상택시나 고속정을 타고 출퇴근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 철조망으로 죽 막혀 있는데 철조망이 제거된다면 어린아이들이 강에 내려가서 생태체험을 하는 둥 여러 가지 생활에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 수 있는 휴양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 ‘한강하구’라 함은 정확히 어느 지역인가?
■ 한강하구라 함은, 내 자신도 얼마 전까지 잘 몰랐다. 알고 보니까 김포, 강화를 거쳐서 서해바다에 이르면 오두산 통일전망대라고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해서 서해바다로 가는데, 한강하구라 하면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그 언저리부터 시작해서 서해로 이르는 수역을 말한다.
▶박성준 준비위원장은 정전협정문을 펼치며 ‘한강하구’와 ‘유엔사’ 문제 등을 일일이
설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통상 한강하구는 군사분계선이나 비무장지대로서 일반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알고 있다. 어째서 가능한가? 법적인 증거가 있는가?
■ 이 한강하구란 정전협정문 상의 용어이기도 한다. 정전협정 상에는 ‘한강하구’를 영문으로 “The waters of the Han River Estuary”라고 되어 있다. 정전협정 1조5항을 보면 이 한강하구는 양측의 그러니까 남측과 북측의 ‘시빌 쉬핑’(civil shipping)에 오픈(open)한다, ‘민간항해에 개방한다’고 되어있다. 이러한 조항에 근거해서 한강하구가 민간선박의 항해가 가능한 수역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한강하구의 옛 이름은 ‘조강’(祖江)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올라가면 모형지도가 게시돼 있다. 모형지도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서 하나의 강으로 흘러가는 수역을 그려놓고 또 그 가운데에 선을 그려놓고 ‘군사분계선’이라고 써 놓았다. 이는 오기(誤記)이다. 정전협정 상으로 군사분계선은 비무장지대의 중간선인데 그것은 콩으로 유명한 장단 일대에서 끝난다.
남이든 북이든 생활과 활동을 하기 위해서 배를 움직여야 하지 않은가? 어민들은 어로활동을 해야 하니까 배가 왕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을 고려해서 정전협정을 맺을 때 이 영역만은 배가 항해할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지 않은 걸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영토의 일부이고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한강하구는 과거에 ‘조강’(祖江)이라고 불렀다. 어버이 조(祖)자, 조상 조자를 썼다. 그러니까 조상이 되는 강, 어머니 강, 모든 강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강,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모든 강들보다도 으뜸이 되는 강 등 그런 의미까지 내포된 것으로서 우리들 생활의 동력이 되고 터전이 된다.
이 조강을 따라서 과거에는 배들이 무수하게 물자를 싣고 왕래를 했다고 한다. 마포나루, 압구정, 송파까지 쌍돛배가 항해를 했다. 쌍돛배란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그런 큰 배다. 그런 쌍돛배가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수역이다.
□ 한강하구를 항해한다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령부에서 제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유엔사에서는 어떻게 나오나?
■ 유엔사라 할 때 군사정전위원회인데, 군사정전위는 남쪽과 북쪽이 있다. 북쪽 당사자는 인민군이고 남쪽 당사자는 유엔사이다. 한강하구와 관련해서는 정전협정문에 어떻게 돼 있는가가 중요하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정전협정 1조5항에는 ‘한강하구는 민간선박의 항해에 개방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장하는 부속합의서가 있다. 부속합의서를 보면 배에 관해서는 쌍측 군사정전위, 남측으로 보면 유엔사령관이 남측 배에 대해 규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선박에 관해서는 유엔사의 협조를 받고자 한다.
□ 유엔사가 협조한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
■ 유엔사하고는 실무적인 접촉을 마친 상태이다. 실무적인 접촉이기에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유엔사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항행규칙을 정한 정전협정 부속합의서를 보면 우리가 항해를 하겠다고 유엔사에 알리면 유엔사에서는 오케이(ok)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한강하구 수역에 민간선박이 항해하는 것을 허가하고 안하고 하는 그런 권한이 유엔사에 있는 건 아니고, 다만 어떤 선박이냐 이런 것에 대해서 유엔사가 규정할 수는 있다는 것일 뿐이다.
“항해자체가 유엔사 허가사항은 아니다”
항행규칙이 타당하고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사에서 노(no)라고 할 수는 없다. 항해자체가 허가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해가 허가가 아니고 항해를 위해 협조를 얻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허가를 얻어야 할지 모르지만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허가를 받는 게 아니다.
□ 유엔사의 협조란 일종의 안전문젠가?
■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어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사에서는 정전협정문에 따라서 항해하려는 배의 종류나 성능, 엔진이나 크기 등 이런 것들을 기재해야 하는 양식을 보내왔다.
우리는 항해에 필요한 내용을 양식에 다 채워서 유엔사에 알렸다. 유엔사에서는 우리나라의 국방부나 통일부에 문서를 보내서 한강하구 항해 절차를 거치겠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한강하구에 민간선박이 항해할 수 있다면 군용선박도 가능한가?
■ 정전협정문에 의하면 한강하구 지역은 비무장화한다고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인 항해는 불가능하다. 물론 양안, 그러니까 육지는 가능하다. 양측의 영토니까. 그러나 강 자체는, 강이라고 할 때 정전협정문에 보면 만조가 됐을 때 육지와 강이 만나는 선을 경계로 해서 육지는 각 양측이 자기들이 관할하겠지만, 강 그 자체, 즉 워터즈(waters) 자체는 민간선박에 한해 개방한다고 되어있다.
▶“북측에 행사참여 요청하겠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그런데 이곳은 비무장이다. 무장이 들어갈 수 없다. 군용선박은 항해가 불가능하고 민간선박의 경우 아까 말한 대로 유엔사에서 선박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을 했기에 유엔사 재가를 얻는 게 필요하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뱃길이 막혀있었기 때문에 사구(砂丘)가 형성돼 있다. 모래산이 형성돼 있고 개펄이 형성돼 있고 암초가 있고 해서 지금 항로가 돼 있지 않다.
옛날에 있었던 물길을 따라 조선시대 때도 큰 배들이 늘 지나다녔다. 그런데 배가 물 속에 들어가는 높이가 있지 않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해 준설(浚渫)하는 기관도 있었다. 말하자면 조강을 관리하는 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50년 넘게 항해를 안했기 때문에 실제로 항로가 막혀있어 우리가 배를 띄운다하더라도 과연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 누구도 항로를 모른다. 그리고 간만의 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오전 9시 반에 출항에서 12시 반에 회항하지 않으면 오후 3시쯤 되면 완전히 썰물이다. 그러면 배는 그 위에 얹혀버리게 된다. 만조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안개가 낀다든지 기상이 나쁘다든지 예상 못한 일이 일어나면 항해에는 지극히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일반 배들이 쉽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 조강수역에 대해서 준설이나 여러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자면 유엔사나 군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이러한 운동의 선구적인 출발을 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 한강하구에 군용선박은 불가능한데 민간선박은 가능하다고 했다. 외국선박 중에 민간선박은 괜찮은가?
■ 시빌 쉬핑(civil shipping)이라 되어있다, 민간에 한해 가능하다. 국적은 안 나와 있다. 아, 근데 ‘양측’의 민간선박이라 되어 있다. ‘양측’이란 남측과 북측을 뜻하는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지만 정전협정문에 의하면 외국선박은 일단 제외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 한강하구 뱃길이 열린다면 앞으로 한반도 평화상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외국의 평화단체 배들도 들어올 수 있지 않은가?
■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 있다. 법이라는 것은 항상 기본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지만 또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우리가 그런 길을 열어나가야겠다.
“북측에 행사참여 요청하겠다”
□ 그렇다면 지금 남쪽에서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하는 것과 똑같이 한강하구 절반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서도 할 수 있지 않나?
■ 정전협정 상에 ‘민간선박에 한해 항해를 개방한다’고 되어있다. 이 조항은 남과 북에 공히 대등하게 적용되는 조항이라고 본다.
□ 그러면 이번 행사를 위해 북쪽에 함께 하자고 제안해도 되지 않은가?
■ 이번 행사에 남측 민화협이 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지난 12일 개성에서 협의차 남측 민화협이 북측 민화협을 만났을 때 그 메시지를 갖고 갔다. 앞으로 북측에 우리의 행사를 알리고 북도 참여해 달라는 요청문을 적절한 채널로 적절한 시기에 하기를 바라고 있다.
□ 이번 항해가 정전협정 이후 최초의 시도인가? 전에 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 이번에 확인된 바로는 1992년에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배가 뜬 경우가 한 번 있다고 한다. 우리는 1992년으로 알고 있는데 유엔사에서는 1990년이라고 한다. 우리는 자유로 공사 때로 이해하고 있는데 유엔사에서는 통일대교 공사 때로 알고 있다. 우리는 1992년 자유로 공사 때 바지선이 뜬 걸로 알고 있다. 1992년 바지선 띄울 때 당시 유엔사 특별고문이었던 이문항 씨가 유엔사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그때 수해가 나서 공사해 놓은 도로가 유실됐을 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임진강 바닥의 모래를 채취해서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모래 채취를 위해 바지선이 거기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그럴 때도 유엔사의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례 이후 한번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한강하구에 그러한 배가 이미 항해를 한 경험을 하고서도 그 의미를 추구하지 못하고 망각한 것을, 한강하구가 정전협정 상 비무장지대가 아니고 군사분계선도 아니다 라는 사실을, 이 문제제기를 이미 리영희 선생이 최초로 했다. 리영희 선생이 1999년에 쓴 ‘반세기의 신화’라는 책에서 ‘북방한계선 진실, 알고 주장하자’라는 글에서 “한강하구에는 군사분계선이 없고 비무장지대도 아니다”고 이미 얘기했다.
그런데 전문적인 학자들이 거의 상식에 가까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실천적으로 제기하면서 운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사진작가 이시우 씨다. 그는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강화에서 일본 오끼나와까지 1달 이상 걸리는 육체적으로 몹시 고되고 고독한 평화걷기 명상을 홀로 실천했다.
이번에 평화의 배 띄우기도 이시우 씨의 제안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우리가 전문가들의 참여를 얻으면서 대중적인 차원에서 한강의 뱃길을 복원하는 이런 범국민적인 캠페인으로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 계속 궁금한 것은 한강하구와 서해5도가 왜 다른가 하는 점이다. 서해5도는 정전협정 상 유엔사의 통제가 인정된 곳이다. 그런데 이곳 한강하구는 왜 제외되는가?
■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번 상상을 해봤다. 우리나라는 분단상황이고 남과 북은 ‘국가 대 국가’라기보다는 ‘특수관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엔에 가입해 있고 분명히 서로 다른 통치주체가 있다. 그러기에 비유컨대 국제법상의 두 개의 통치주체가, 말하자면 통치주체와 통치주체 사이의 계선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강일 때 이 강은 아마도 국제법상 ‘공유하천’이 될 것이다.
▶박 준비위원장은 평화의 상상을 펼쳐야 한다면서 “조강에 배가 다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역설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두 나라 사이의 공유하천. 이런 공유하천을 어떻게 서로 사이좋게 사용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게끔 활용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내꺼다”하면서 이쪽에서 저쪽 배를 막고 저쪽에서 이쪽 배를 막고 하면 거기에 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일어나고 할텐데 그러면 안된다. 생활에 지장이 있다. 이러한 공유하천에 대한 국제법상의 규정이 있을 것이라 본다.
정전협정 상에 이 한강하구 수역을 비무장지대나 군사분계선에 포함시키지 않고 이것을 민간선박 항해에 개방해 놓은 규정은 이러한 국제법적인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그와 유사한 형태의 공유하천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런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이 공유하천, 양쪽에 다 필요한 생활에 중요한 물길이자 뱃길인데 이를 복원하고 부활시키는 게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다.
“김포나 고양시민이 고속정 타고 서울 오는 게 꿈이 아니다”
□ 앞에서도 잠깐 나왔지만 정전협정 전에는 이곳 한강하구 뱃길을 따라 선박들이 지나갔다고 했다. 어떤 선박들이 지나갔나. 그때의 풍경은?
■ 거기에 관한 정확한 건 없지만 18세기 조선시대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에 보면 쌍돛배가 압구정, 송파까지도 그려져 있다. 이를 보아 그 시대에 이미 이 조강은 물류가 아주 빈번하게 오간 뱃길로 사용됐다고 본다.
그리고 강화 배가 조기나 소금을 싣고 선단을 이뤄 밀물 때 움직여 어느 지점에 가서 썰물이 되면 거기서 기다렸다가 다시 밀물이 되면 들어가는, 이런 방식으로 마포나루까지 선단이 빈번히 왕래를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나서 막힐 때까지야 사람들이 얼마나 강에서 헤엄치고 물고기 잡고 어로작업을 했겠는가. 또 아이들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놀고 관광의 명소이자 유람선도 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외국의 배도 여기를 통해 서울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는 한강의 미래다’, ‘과거의 조강이 우리들의 미래다’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한강의 옛 모습을 복원하고 그것을 미래지향적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 이번에 평화의 배를 띄워서 한강하구에 뱃길이 뚫린다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는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 될 것 같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첫째 ‘한강하구의 뱃길을 연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둘째는 분명히 정전협정 상으로도 민간선박 항해가 가능한 이 수역을 지금까지 우리가 망각하고 우리의 오해 때문이든 무지 때문이든 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금기를 씌어서 비자율적으로 맹종했다고나 할까, 그러한 비자율성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율적인 인간으로 일어서는 하나의 계기로 되는 것이 이번 뱃길 복원 캠페인의 또 하나의 의미이다.
□ 한강하구 뱃길이 복원된다면 지금 분단된 남과 북이, 그 분단조차도 뚫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실제로 개성공단과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이 복원된다고 해도 유엔사의 지휘와 단속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강하구 쪽은 비무장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열려있다. 이번에 뱃길이 열린다면 한강하구가 민간선박 항해가 가능한 지역임이 증명된다. 우리가 유엔사와 군의 협조를 받아 뱃길이 열린다면 이를 증명하는 게 되기 때문에 그 길을 이어서 많은 민간선박들이 항해를 시도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바닥을 준설하고 뱃길을 복원해야 한다.
김포대교부터 수중보가 있다. 지금은 턱이 있어 배가 못 다닌다. 여러 사정 때문에 설치했다고 보는데 그걸 해소하면 김포나 고양시민들이 고속정을 타고 서울에 온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수상택시도 사실 꿈이 아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히 이 조강에 배가 다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실현된다.
□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를 띄우기 위한 행사에는 어떤 단체가 참여하나?
■ ‘2005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그 하부단위로서 인천지역, 강화지역, 김포지역, 고양지역, 서울지역준비위원회가 있다. 파주지역은 준비중이다. 3인의 공동준비위원장이 있고 나는 그중에 한 사람이고, 공동집행위원장 3인이 있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평화단체 ‘비폭력평화물결’은 준비위 사무국을 맡고 있고, 이시우 씨가 ‘비폭력평화물결’의 운영위원이고 평화감시팀장이다. 그래서 이시우 씨의 이런 아이디어를 우리가 받아서 이 캠페인을 제안한 것이다.
“어로한계선 넘어 남북의 경계선까지 갈 것이다”
□ 준비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특히 지자체는 어땠나?
■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몇몇 분을 접촉했을 때는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셨고 ‘과연 이게 되겠는가, 아마 어려울 것이다’고 쉽게 단정을 내렸다. 근데 지금 인천광역시 등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몇몇 기업들 우리은행, 한국전력, 토지공사, 현대아산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을 만들었던 리빙아트의 협조를 얻어냈다.
▶박성준 준비위원장은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강은 배가 뜨기를 기다린
다. 배는 뜨고 싶다”며 시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지자체에서도 참가하고 있어 인천시장, 강화군수, 김포시장 등이 승선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강화군에서는 뱃길 복원이 강화주민의 숙원사업이라고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삼보해운 선박회사에서 선박을 제공했고, 포털사이트 파란닷컴(paran.com) ‘팡팡나라’에서 네티즌이 온라인 상에서 참여할 수 있다. 많은 지원과 협조를 받아냈다.
□ 배에는 몇 명이 탈 수 있나. 그리고 행사는?
■ 원래는 자동차가 50대 타고 사람이 300명 탈 수 있는 큰 배다. 그런데 차는 안 싣고 사람만 300명 탈 예정이다. 구명조끼가 300개라서 정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승선하겠다는 사람이 많아 각 지역마다 할당하고 있다. 상당한 경쟁률이다. 의미있는 인사들이 승선할 수 있도록 조절하겠다.
행사의 경우 선상에서 행사가 있고, 배가 귀항한 이후 축하 행사가 있다. 그리고 배가 떠난 이후 그 배를 못 탄 사람들이 다른 배를 타고 보문사를 방문한다.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 그중에는 청소년들의 많을 텐데 그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승선은 아무래도 대학생 이상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안전을 위해 태우지 않는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 항해 코스는?
■ 처음에는 월미도에서 배를 띄울까 하며 여러 상상을 펼쳤다. 항해 코스는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가 떠서 어로한계선 쪽을 향해 한강하구 방향으로 쭉 갈 것이다. 처음에 어로한계선과 만날 텐데 평상시에는 그 이상을 갈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로한계선을 넘어 ‘항해가 가능한 수역’을 따라서, 거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수심이 깊은 곳을 찾아서, 어디까지 가냐면 남북의 경계선까지 갈 것이다. 경계선을 따라 그 위로 가는 것은 항해길이 개척돼 있지 않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전 9시 반에 떠나 12시 반에 귀항하는 세 시간의 항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외포리로 다시 돌아온다.
“강(조강)은 배가 뜨기를 기다린다. 배는 뜨고 싶다”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행사를 준비하면서 국민들에게 특별히 알리고 싶은 것은?
■ 지금은 ‘조강을 평화의 바다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해서 7월27일 정전협정일을 기점으로 해서 이러한 행사를 하지만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한강을 평화의 강으로’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그러면 한강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고 한반도를 상징하기도 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상징하는 평화의 강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 비록 한강이 여기에 있지만 한강이 아닌 섬진강, 낙동강, 금강에서 배를 띄우면서도 우린 한강에 ‘평화의 배’를 띄운다는 그런 컨셉을 가지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한강하구의 존재, 한강하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싶다. 한강은 우리의 강이고 우리의 땅이다. 정전협정에 의해서도 항해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는 이 뱃길을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열어야 한다.
강(조강)은 배가 뜨기를 기다린다. 배는 뜨고 싶다고 한다. 우리들에게는 이 강을 우리들 생활의 아주 중요한 젖줄로 회복할 의무와 희망이 있다.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려운 고비 때마다 국민들이 지원해 주시고 함께 반드시 조강의 과거가,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되는 그날까지 힘을 합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