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전 이시우 2003/12/28 196

전자전(EW)

http://www.dapis.go.kr/journal/200202/j118.html

지금까지는 가해력인 화력이 적의 전력을 격파, 멸살 내지 무력화하는 수단(전력)이었다. 요컨대 작전·전투는 화력에 의해 적의 인원, 장비, 시설에 손해를 주어(살상, 파괴) 추중하는데 있다.

 그런데 현대전에서는 전자전 능력이 화력의 발휘 내지 적 전력의 무력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것을 멋지게 입증한 것이 걸프전쟁이다.

 이제 전자전 능력은 현대 군의 중요한 작전·전투기능(전력)의 일부로 다시 보아야 한다.

 전자전(EW:electronic warfare)은 아측이 전자파(대역 `帶域’)를 통신연락, 감시, 제어(목표의 표정, 사격제원의 산정, 무기의 유도 등)에 활용하는 한편 적의 전자파 이용을 방해하는 전술, 기술, 장비라고 서방 제국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우리 육군군사술어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자전을 정의하고 있다.

 `전자파 에너지의 사용과 관련된 군사활동으로서 적의 효과적인 전자파 사용을 거부 또는 약화시키는 한편 아군의 전자파 사용을 보강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하며 그 기능상 전자전 지원책, 잔자방해책, 전자방해 방어책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일본 자위대 교범용어에서는 전자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적의 통신전자활동을 탐지, 역이용하거나 또는 그 효과를 저하, 또는 무효화시키는 동시에 아측의 통신전자활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행하는 작전·전투를 전자전(EW)이라고 한다.

 이처럼 오늘날에는 전자전을 작전·전투의 유력한 일부로 수용하고 있다. 전자전을 다시 요약하면전자파(전파)의 이용과 그 방어대책에 관한 전술·기술이다.

 전자전은 기능에 의해 통신전자정보활동(ESM), 공격적 전자전(ECM) 및 방어적 전자전(ECCM)으로 구분된다.

 ESM=electronic-warfare support measures. 적의 통신전자활동을 수색, 수신 및 표정(標定)하는 것에 의해 정보자료를 수집하여 이것을 처리하고 배포하는 기능.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s. 적의 정보, 경계, 지휘, 통제, 유도, 항법 등을 위한 통신전자활동에 대하여 방해, 기만 등을 행하여 그 효과를 저하 또는 무효화하는 기능을 말한다.

 ECCM=electronic counter-counter measures. 적이 행하는 통신전자정보활동(ESM), 또는 공격적 전자전(ECM)에서 아측의 통신전자활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기능을 말한다.

 19세기에 유·무선통신의 실용화와 동반하여 이것을 방해, 또는 역이용하는 반면에 이에 대한 대책기능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1853~56년의 러시아, 터키전쟁 때 러시아군의 기병은 영국군의 후방으로 잠입하여 유선통신 케이블에 전화기를 연결시켜 도청했는데, 이것은 초기의 통신전자정보활동(ESM)이었다.

 한편 영국군은 케이블을 고무액에 넣어 합성도료를발라 굳혀서 쉽게 벗길 수 없도록 했다. 이 조치는 초기의 방어적 전자전(ECCM)에 틀림이 없었다.

 1904~1905년의 러일전쟁을 서방 제국에서는 본격적인 공격전 전자전(ECM)이 시작된 시기로 보고 있다. 즉 1904년 3월 8일, 일본 해군은 순양함 2척을 가지고 여순항내의 러시아 함대에 포화를 퍼부었다. 이를 위해 함대를 잘 볼 수 있는 해상에 사격관측용의 구축함을 배치하고 무선통신으로 목표정보를 먼 바다쪽의 순양함대에 전하는 사격시스템을 취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군의 통신대는 무선전신기를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전파를 내어 일본 해군의 사격지휘 정보통신을 방해했다. 이 전파로 일본 함대는 작전을 중단하고 철수를 하게 되었다.

 공격적 전자전(ECM), 특히 전파방해는 제1차 대전에 있어서 무선통신을 방해하는 관용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또 제2차 대전의 유럽전장에서는 항공기의 항법방해와 레이더의 기능저하 내지 무력화를 겨냥한 전자전을 많이 사용했다. 1940년의 봄과 여름에 걸쳐 영국군은 전선 곳곳에 함정용의 라디오비콘을 배치하여 독일 공군기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했다.

 1942년부터 연합국 공군은 독일 영내로의 항공작전을 강화했지만 우수한 독일의 방공조직 저항에 부딪쳐 출격할 때마다 상당수의 폭격기를 잃었다. 그리하여 1943년 7월 24일 밤의 함부르크를 폭격할 때에는 독일군의 레이더를 무력화할 수 있는 석박(錫箔)의 가는 띠(帶)를 처음으로 살포하여 적은 피해로 다대한 전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석박의 가는 띠(레이더 파장의 2분의 1에 상당하는 길이)는 수개월 동안 유효하였으나, 독일군은 레이더 파장을 변경·이동·고정물체를 분별하는 도플러 효과의 이용 등 각종의 대항책(ECCM)을 만들어 내었다.

 1960년 3월에 국부군(대만)의 F-86 전투기는 적외선(IR) 호밍 AAM 사이드 와인더를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하여 중국군의 MIG-17을 격추시켰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베트남전쟁의 전훈 등을 참고하여 적외선을 내어 호밍을 흡수하는 발룬이나 플레어(flare)가 실용화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시카의 개량을 위한 기술연구,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의 군은 C4I 시스템, 미사일 등의 성능발휘를 위해 전자파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유효한 ECM, ECCM가 있어서 처음으로 현대군의 전력이 활성화되고 있다. 1991년 1월~2월의 데자트 스톰은 화력과 함께 전자전의 중요성을 실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