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전략폭격기 이시우 2003/12/28 249

B-1 전략폭격기

http://www.dapis.go.kr/journal/200109/j77.html

이제 폭격기는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발달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실제적인 문제로서 본격적인 핵전쟁 등을 고려할 때 공격력의 주체가 미사일이 되리라는 것은 누가 생각해 봐도 명백하다. 현재 정식 폭격기부대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4개국 정도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전략 핵공격력의 주체를 탄도미사일로 옮겼지만 위에서 열거한 4개국은 신형 미사일을 만드는 것보다 폭격기를 유지하는 쪽이 경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이유는 유인폭격기를 사용하면 미사일에 없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공격을 개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판단이 작용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전략폭격기의 존재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내세워 여전히 B-1을 생산하고 차세대 폭격기인 ATB를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련도 미국에 대항하여 신형기를 개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배치되는 숫자는 얼마되지 않으며 점차 상징적인 존재로 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틀림이 없다.

 별항에서 설명한 B-52기의 후계기로 생산된 B-1 폭격기는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태어난 항공기였다. 미 공군은 1949년 3월에 B-52기를 발주한 지 1년도 되기 전에 B-58 초음속 폭격기 개발에 착수하여 1959년부터 실전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이 B-58은 속도에만 치중한 나머지 항속거리나 무장탑재 능력이 빈약하여 1970년에 선배인 B-52 보다 먼저 퇴역해야 하는 불운을 맞았다.

 여기서 미 공군은 B-52의 후계기로 B-70 폭격기를 개발하였다. 이 B-70 폭격기의 길이는 56.4m에 너비 32m, 중량은 240톤이나 되는 거인기지만 고공에서는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초고속 고공폭격기였다. 그런데 이무렵 세계는 대륙간탄도탄을 중심으로 한 미사일 시대로 돌입하고 있었다. 즉 소련이 1950년 후반에 ICBM(대륙간 탄도탄)용 미사일 추진체를 사용하여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리는데 성공하자 미국에서는 이에 자극을 받아 소위 미사일 폭격기 논쟁이 생겼다.

 이때 미국에서는 ICBM 아틀라스와 타이탄을 개발 중에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재정부담을 안고 제작하는 B-70이 과연 소련의 발전된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B-70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요격기가 소련에는 아직 없었으나 방공 미사일 분야에 있어서는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실정에 있었으므로 고고도로 비행하면 레이더에 탐지되기 쉽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B-70 폭격기 개발문제를 둘러싸고 일대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 공군은 B-70의 생산을 중단하고 초저공을 초음속으로 적의 방공 레이더망을 돌파하고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폭겨기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69년말에 개발하게 된 것이 B-1 폭격기이다.

 당초 B-1 폭격기 개발계획은 최초 7대의 원형기를 제작하고 1978년까지 250대를 생산하여 실전에 배치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에따라 B-1 원형기 제1호기는 계획대로 1974년 10월에 완성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은 폭격기 1대 당의 가격이 당초의 추정가격인 2,400만달러 보다 2.5배나 높은 6,100만달러로 급등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미 의회에서는 원형기 7대 중 4대만을 제작하기로 하였고, 또한 당시의 카터 대통령은 순항 미사일이 급속도로 발달되고 있는 이때 폭격기가 적의 위험한 방공망을 돌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B-1의 생산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1979년에 제2차 전략무기회담(SALTⅡ)에서 소련이 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의 사정을 2,500㎞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던 것이다.

 1977년 카터 대통령이 B-1기의 생산을 중단시킨 이유의 하나가 이 당시 다이니믹스사가 개발한 수중발사 순항미사일과 보잉사가 개발한 사정 2,700㎞의 순항미사일을 시험한 결과 그 성능이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1대당 6,000만달러나 하는 B-1 폭격기 대신에 이미 보유하고 있는 B-52나 FB-111 폭격기를 개조하여 순항미사일을 탑재시키면 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소련측에서 제안한대로 순항미사일의 사정을 제한할 경우 적의 목표를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폭격기가 적의 방공망까지 접근하여 미사일을 발사해야만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적의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항공기가 필요하였다.

 이에 대해 또다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B-1 폭격기의 생산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B-1 폭격기의 출현이 난산이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B-1 폭격기는 FB-111 전폭기의 기체를 원형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길이가 B-52의 3분의 2 정도인 45m이고 2㎞의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을 할 수 있는 가변익 폭격기이다. 이 폭격기는 고공에서 마하 2.2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지상 300m의 저공에서도 초음속으로 날 수 있는 초고속 초저공 침투 전략폭격기인 것이다. 또한 적의 레이더망 돌파와 핵폭발 상황에서도 투입될 것을 고려하여 적의 레이더의 전파반사를 최소화하고 핵폭발시 발생하는 압력 및 방사선 등의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가 되어 있다.

 무장탑재량은 B-52 보다 적으나 B-52의 2배에 해당되는 약 34톤의 폭탄을 적재할 수가 있고, 단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할 경우에는 B-52의 3배가 되는 24발을 장비할 수 있다. 이 단거리 미사일은 단거리라고 하나 사정이 최대 150㎞나 되고 저공에서도 56㎞로 비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메가톤급의 핵탄두를 가지는 가공할 미사일이다.

 미 공군은 폭격기를 88년까지 100대를 생산하여 실전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