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52 전략 폭격기 이시우 2003/12/28 246

B-52 전략 폭격기

http://www.dapis.go.kr/journal/200108/j132.html

미공군의 전략폭격기 B-29는 제2차 대전말에 일본의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비행기로 유명하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에도 전략폭격기로서 많은 활약을 한 바 있었다. 그러니까 이 폭격기는 원자폭탄 독점시대에 있어서 미 공군의 주력 전략폭격기로서 많은 활약을 한 바 있었다.

 그후 미 공군은 1948년에는 폭탄 5톤을 적재하고 8,000㎞의 행동반경을 가진 B-36폭격기를 제작했으며, 다음 해인 1949년 3월에는 최후의 피스톤 엔진을 단 B-50 폭격기가 등장했다. 이 폭격기는 B-29를 개조하여 만든 공중 급유기로부터 4회의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세계 최초로 무착륙 세계 일주비행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1년에 제트엔진 6기를 장비하고 최대 9톤의 폭탄을 탑재하는 B-47이 최초로 등장하였고, 이 폭격기는 1965년에 퇴역할 때까지 미 전략공군의 주역으로 미국의 대량보복전략 수행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흔히 하늘의 요새라고 하는 미 공군의 B-52 전략폭격기가 1952년 4월 제1호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30여년 동안 이 폭격기는 미 전략공군의 주력기로서 군림해 온 장거리 중(重)폭격기이다.

 원거리 항속력과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이 B-52 폭격기는 미국의 핵전력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과 더불어 핵억제력의 하나로 그 역할을 담당해 왔을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대지 목표를 폭격하는 전술적 임무에도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 폭격기이다.

 B-52 폭격기는 1955년 6월, 양산형인 B-52B가 대륙간 고공침투 핵폭탄탑재 전략폭격기로 제작되어 미 전략공군에 취역한 이후 1962년 6월까지 B-52A형에서 H형까지 모구 744대가 생산되었으나 그간 기체의 수명연장과 방어 요구조건의 변화에 따라 능력향상을 위해 개량을 거듭해 왔다.

 이 가운데 B-52A, B, E, F형까지는 1954년에서 58년 사이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미 현역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B-52D, G, H의 세 가지 기종만이 미전략공군의 주력기로 활약하고 있다.

 B-52D 폭격기는 1956년 6월에 4발의 수소폭탄을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든 장거리 폭격기였으나 월남전에 투입하기 위해 핵폭탄 대신에 재래식 폭탄을 적재하게끔 개조하여 450㎏급 폭탄 37발과 340㎏급 폭탄 51발을 동시에 적재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된 340㎏급 폭탄의 위력은 지름 15~20m, 깊이 5~7m 크기의 폭탄구를 만들 정도였다. 특히 융단폭격의 경우 30대가 출격하여 투하하는 폭탄의 양은 평균 500톤에 달하며 이로 인해 파괴되는 지역의 넓이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000m와 1,000m에 달하는 것이다. 월남전 기간에 B-52의 출격수는 76,000회이고 투하된 폭탄만도 무려 155만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한국전쟁 기간중에 투하된 63만톤의 2.5배에 해당되는 양이었다.

 B-52D의 항속거리는 9,900㎞이고 최대속도는 마하 0.95로 현재 30여대가 미 전략공군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던 B-52도 월남전에서 월맹의 대공미사일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노이, 하이퐁 폭격시에는 17대가 격추 당했으며 특히 MIG-25와 같은 소련의 고공요격기와 SA-2 등 각종 현대식 대공미사일이 출현하기에 이르자 종전의 B-52가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하고 목표 상공에 도달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 공군에서는 B-52의 능력향상을 위해 B-52G형을 F형으로 개량하여 날개 속에 연료탱크를 추가함으로써 공중급유를 받지 않고도 1만2천㎞를 날 수 있도록 항속거리를 연장시켰고, B-52H형은 효율적인 터보팬 엔진으로 교환하여 연료소비를 감소하고 항속거리를 증가시켜 1962년 1월에는 공중급여 없이 2만㎞를 무착륙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무장면에 있어서도 종래의 핵폭탄 대신에 장거리 공중발사 순항미사일(ALCM)이나 단거리 공격미사일(SRAM)을 적재하도록 개량하여 기체내부에 8기, 외부에 12기 총 20기를 운반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더하여 미 공군은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전자능력을 강화했다. 즉 전자광학 관측장치, 전방관측 레이다, 자동지형추적 레이다 등 새로운 비행제어장치들을 장비시켜 저고도 침투능력을 향상시키기에 이르렀다. 특히 1977년 말에는 저고도 핵폭탄 투하장치를 시험한 결과 지상 46m에서 폭탄을 투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공침투 속도가 마하 0.95라는 결함은 여전히 시정하지 못하였다. 그러하여 미 공군은 B-52와 대체하기 위해 70년대 전반에 이를러 F-111 전투폭격기의 전략폭격기형인 FB-111A를 개발했다.

 FB-111A 폭격기는 초음속 가변익 폭격기로 최대 1만7천㎏의 핵폭탄과 미사일을 적재하고 고고도에서 마하 2.5의 속도로 4,700㎞를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나 저고도에서는 속도가 마하 0.85이고 항속거리도 2,200㎞밖에 되지 않아 FB-111 폭격기도 역시 B-52의 후계기가 아닌 보조기로 전락되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B-52가 제작된 지 30년이 넘도록 후계기를 내지 못한 미 공군은 1964년에 B-52의 후계기로 유인 공격체계를 계획하고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국방성에 의해 기각되었다가 1969년에 이르러 비로소 B-52의 후계문제가 매듭지어져 재개발하기로 결정된 것이 비로 초저공 초음속 폭격기인 B-1 전략폭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