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지뢰회견-오마이뉴스 이시우 2003/01/26 354
“내다리 앗아간 지뢰, 미군이 심었다”
[현장취재] 주한미군 대인지뢰 민간인 피해 심각
권박효원 기자 10zzung@ohmynews.com
▲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덕준씨.
ⓒ2003 권박효원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 거주하는 이덕준(85세)씨는 33년 전 미군부대 부근에서 소나 말에게 먹일 건초를 모으는 마초 작업을 하던 중 매설되어있는 지뢰를 밟았다. 이덕준씨는 이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파편이 박힌 왼쪽 발은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이씨는 “아직도 가끔씩 잘린 부분이 찌릿찌릿한데 그런 날에는 밤에 잠도 잘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의족을 한 채 걸어다닐 수는 있지만 오래 걷는 것은 무리다. 이씨는 “당한 사람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어디를 가도 앉았다 갈 데만 찾는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사고 당시 이덕준씨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생계에 대한 걱정. 작업을 지시한 관리자는 치료비를 부담했지만 이후 생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씨도 이에 대해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작업 중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 일체 항의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쓴 데다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6남매 자녀를 둔 이씨는 “성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죽으려고 했다”며 “자식들 길러 출가시키는 동안 고생한 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덕준씨는 “그 때 사고를 낸 지뢰는 미군이 설치한 게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지뢰에 ‘USA’라고 쓰인 데다 당시는 한국군이 묻은 지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사고가 나기 10여 년 전 미군부대 내 식당에서 일하면서 미군들이 사고지점 부근에 지뢰를 매설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 조만손씨는 목발을 사용하지 않으면 걷지 못한다.
ⓒ2003 권박효원
같은 동네 조만순(71세)씨도 1965년 미군부대 내에서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다가 지뢰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민간인 접근을 막기 위해 지뢰 근처에 설치해 둔 철조망은 이미 쓰러져 풀숲에 파묻혀 있었고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미군 측 경고도 없었다.
사고가 나자 한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던 미군들이 급히 헬기를 동원해 조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조씨는 부평에 위치한 미군병원에 입원해 미군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씨 역시 보상은 받지 못했다. “직접 매설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사고지점 근처에 한국군 부대는 없었다”는 것이 조씨의 설명이었다.
조만순씨는 “치료해준 것만 해도 다행인데 생계까지 어떻게 말하겠냐”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밥 한끼로 이틀을 끓여먹으면서 내가 날품팔이해서 겨우 먹고살았다”고 말을 거들었다. “보상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씨는 “당당히 (요구)해야지”라고 답했지만 “뭘 알아야 하지. 누가 얘기해주겠냐”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 공식입장 “지뢰피해자 없다”
미국도 한국도 외면한 피해자들
두 사람은 “(미군이 심어놓은 대인지뢰로 인한 피해자가) 이 동네에서만도 5~6명에 이른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이하 KCBL)는 “적어도 21개 지역에서 100여명의 미군 대인지뢰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조재국 KCBL 집행위원장은 “지뢰사고는 대부분은 미군 쪽 대인지뢰인 ‘M14′지뢰 때문에 일어난다. 한국군 쪽 대인지뢰 ‘KM14′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 피해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대인지뢰대책회의 회원들.
ⓒ2003 권박효원
KCBL은 15일 오전 11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의 한반도 내 대인지뢰 매설과 그 피해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발목이나 다리를 절단했으며, 지뢰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망자도 20명에 이른다.
총 100여명의 피해자 중 70여명이 민간인. 이들은 대부분 논에서 일을 하거나 낚시를 하다가, 혹은 나무를 베다가 지뢰를 밟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열매를 따먹거나 나물을 캐다가 지뢰를 밟은 경우도 있다. 강원도 양구군 오유리에 사는 박춘영씨 가족은 93년 마을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지뢰를 밟아 온 가족이 발목 절단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조사발표는 지난 97년 “한국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어떠한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는다”던 이성주 당시 외교통상부 수석대표의 발언과는 정면 대치되는 것이다.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 초안을 채택하는 오슬로 국제회의에 참석한 이 수석대표는 “과거 50년 동안 안전하게 대인지뢰를 사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대인지뢰 사용이 금지되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오히려 대인지뢰금지조약의 정당성을 위태롭게 할 지도 모른다”고 발언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지뢰사용 금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 서명을 거부한다. 대신 지뢰문제 해결을 위해 매년 1억 달러를 투입해 지뢰제거와 지뢰피해자 구원을 위한 인도적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베트남 등 27개국에서 피해자 보상 및 치료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한국은 지원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인지뢰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대인지뢰대책회의 실태조사팀 이시우씨가 대인지뢰 매설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2003 권박효원
미군에게 지뢰매설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우지 않는 현행 SOFA도 문제로 지적된다. SOFA 3조 1항은 “미국이 시설과 구역 내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규정하고 있어 지뢰 매설이나 각종 무기 설치를 사실상 허가하고 있다. 4조 1, 2항은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며, 이를 대신한 보상 의무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미군의 대인지뢰 매설과 방치는 ‘합법적’인 셈이다.
피해자들은 한국정부로부터의 피해배상도 받기 어렵다. 국가배상 시효가 3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다 소송 절차가 까다로워 전방 민통선 부근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대부분 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 KCBL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셈”이라며 “특별법을 만들어 시효없이 포괄적으로 피해자를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사결과는 최소한의 것 불과하다”
국제회의 보고 및 집단소송 추진
KCBL의 이번 같은 조사결과는 ‘최소한의 것’이다. 미군 지뢰매설지도 등 관련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각종 사료와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외교부, 주한미군 등에 사실 관계 확인 요청을 했으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주한미군은 KCBL이 유엔에 보고한 자료집 내용을 발송할 정도도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조 위원장은 “철저한 조사를 거친 뒤의 피해 규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KBCL 측은 성명서를 통해 미국 측에 대해 한반도 매설 대인지뢰 정보 이양, 지뢰제거 비용과 지술 제공, 피해자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했다. 한국정부 측에게도 대인지뢰 매설 실태 및 피해자에 대한 조사, SOFA 개정 등을 촉구했다.
KBCL은 “이러한 내용을 이미 국방부 측에 보냈으나 이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KBCL은 조사결과를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본부(ICBL)와 UN,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국 회의 등에 보낼 예정이다. 또한 피해자들을 모아 미국 및 한국정부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2003/01/16 오전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