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탱고(서울)-초벌번역 이시우 2006/03/28 953

* 지도는 탱고로 알려진 장소입니다. 아래의 내용으로는 용산인것 같지만 다른 문서(작전계획9518)에는 춘천 2군사령부로 나타납니다. 기지개념이 아니라 지휘소이기 때문에 수시로 바귀는 것이 가능 할것입니다.

CP Tango / Command Post Tango
3731N 12659E

CP Tango / Command Post Tango
3731N 12659E

Command Post (CP) TANGO is the primary warfighting headquarters for the Korean theater.
지휘소( CP ) TANGO는 한국이라는 장에서 주요한 전쟁 본부입니다.

The Joint Staff, DISA, and DA directed PM(*참고) DCATS Product Manager DSCS Terminals to replace the four existing AN/TSC-86 terminals located at Landstuhl GE, Ft Detrick MD, Torii Station Okinawa, and CP Tango Korea.
4개의 AN/TSC-86 공항들(terminals)을 제거(대체?)하는 PM DCATS Product Manager DSCS Terminals 의 지휘를 받는 합동참모(Joint Staff), DISA(?), 그리고 DA(?)는 Landstuhl GE, Ft Detrick MD, Torii Station Okinawa, and CP Tango Korea에 위치하고 있다.

*PM
Periodic Maintenance정기정비
Preventive Maintenance예방정비
Program Memorandum계획각서
Provost Marshal헌병대장
Pulse Modulation펄스변조

The new terminal will use existing HT/MT equipment and components, which eliminates costs for establishing a logistics system to support the terminal.
새로운 단말기는 HT(Hand Talkie:휴대용 무전기)/MT(Measurement Ton
:용적톤)시설과 , 구성요소-이러한 요소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공항을 유지하기 위한 병참시스템이 필요하다-를 구축(existing?)하는데 이용될 것이다.

The system was built and has successfully completed acceptance, and DISA(Defense Information Systems Agency미국방성정보체계국) Certification testing at TYAD.
이 시스템은 만들어졌고 성공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TYAD에서 DISA(Defense Information Systems Agency미국방성정보체계국)의 인증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The AN/TSC-86B terminal is a fixed configuration and installed at CP Tango Korea.
The AN/TSC-86B 단말기는 그 외형을 갖추게 되었으며 CP Tango Korea에 설치되었다.

For the Eighth US Army command staff, being able to communicate using Video Teleconferencing
미8군단사령관에 의해서만(for∼staff) 사람들은 화상회의(Video Tele Conference-VTC)를 사용한 통신을 이용할 수 있다.

[VTC] in a timely manner from separate strategic locations is critical to the prompt execution of EUSA operations as well as the operation of military units scattered throughout US Forces Korea.
분리된 전략상의 위치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통신을 가능케하는) 화상회의는 미8군의 작전(한국전체에 흩어져있는 군부대들의 작전)의 신속한 집행을 위해서는 적절치 않다.

The northern hub, based at CP Tango controls and distributes!
CP Tango에 기지를 둔 북쪽의 중심은 VTC 슬라이드들과 작전지시를 지휘하고 그것들을 CP OSCAR에 화상회의를 제공하는 캠프 워커에 기지를 둔 남쪽 중심에 지속적으로 보낸다.

With up to 15 VTC sites on the Korean peninsula, it is vital that the operators have the VTC equipment operational for every scheduled and unscheduled brief that might arise.

한반도에 있는 15개의 VTC(화상회의) Sites 위로 그것들은 생생하게 전달된다(it is vital?)-오퍼레이터들은 화상회의 장비를 계획되었든 아니든 모든 순간 최단시간안에 작동시킨다.

The FASTBACK system that was replaced in Korea is reflective of the typical legacy mw systems used by the US Army to support worldwide long haul communication requirements. The FASTBACK system (seven individual links) provided a secure reliable means of transmitting bulk data collected along the Demilitarized Zone to command groups located in the southern part of the country. The equipment (i.e., radios and multiplexers) supporting the FASTBACK system had been in operation for over fifteen years, utilizing technology that was over twenty years old. The FASTBACK system consisted of an AN/FRC-162 radio and AN/FCC-97 multiplexer. In the late 1990s it was replaced by a high speed (155 Mbps) SONET digital microwave radio that utilize the digital data multiplexer (DDM)-2000 OC3 multiplexer. The Digital Microwave Upgrade DMU Phase I is a good example of what occurs when the link bandwidth is increased (8 DS1s to 84 DS1s (three 45 Mbps DS3)) with high speed SONET digital microwave and interface requirements to existing older, low speed mw technology. The Yongsan to Madison, Osan to Madison, and Camp Humphreys to Madison FASTBACK links were replaced during Phase I with the Harris MegaStar 2000 SONET radio. The remaining FASTBACK mw links between Madison and Kamaksan, Kangwhado, and Songnam, and Kamaksan and Yawolsan, were replaced during DMU Phase III. In conjunction with the DMU, the digital patch and access systems (DPAS) at Yongsan, Osan, and Camp Humphreys were upgraded to support up to three DS3s each.

* 과거 미군이 발행한 지도에 따르면 탱고의 위치는 수원아래 오산지역 정도위치에 있었던 적도 있었고, 성남정도의 위치에 있었던 적도 있었던것으로 나타난다. 현재의 자료에 의하면 용산에 위치해 있는 듯 하다.

라이스가 방문한 연합사 극비벙커 ‘탱고(TANGO)’
[조선일보 2005.03.22 05:55:17]

[장일현 기자]핵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는 한·미 연합군 사령부의 극비 벙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박2일의 짧은 방한 기간 중, 첫 일정으로 한·미연합사령부 지휘통제소 벙커인 ‘탱고(TANGO)’에 들르자, “그 곳이 어떤 곳이길래”라며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19일 오후 서울공항에 내리자 마자 헬기를 타고 탱고로 이동, 이날부터 일주일간 실시하고 있는 ‘한·미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한미 양국의 군 장병을 위로했다. RSOI 연습은 유사시 한반도 외부에 있는 미군 병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한반도로 이동시키는 연례 훈련이다.
한강 이남의 ○○산에 있는 탱고는 전쟁 발발시 한미연합사령관(미군 대장)을 비롯한 한미 양국군 지휘관들이 전쟁을 총 지휘하는 곳. 최첨단 군사 시설과 방어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1970년대 초 만들어진 이래 규모를 확대하고 시설을 개선한 이 곳은 수천평 규모로 회의실, 식당, 의무실과 발전 및 상하수도 시설 등 전쟁 기간 군 관계자들이 자급자족하며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무실 간 이동은 소형 전기배터리 차량을 이용한다. 특히, 핵 공격을 받아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화강암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생물·화학 무기에도 버틸 수 있게 돼 있다.
탱고의 심장부는 지휘관들이 전장(戰場) 상황을 대형화면을 통해 한눈에 살펴보면서 작전회의를 할 수 있는 전쟁룸(war room). 이 곳에 설치된 대형화면은 극장에 있는 스크린과 비슷한 크기로 적군의 규모 및 공격방향, 속도 등 적군에 대한 정보와 아군의 병력·대응태세 등 전장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지휘관들은 필요할 경우 한반도 수백㎞ 상공에 떠 있는 첩보 위성과 20㎞ 고공을 비행하는 U-2 정찰기가 찍은 사진을 곧바로 대형 화면을 통해 받아 볼 수 있다. 또 미국 본토의 정앙정보부(CIA)와 국방성 정보국(DIA)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볼 수도 있다.
탱고 내에는 또, ‘스키프(SC IP)’라는 최첨단 정보시설이 있는데, 이 곳에는 한국군 고위관계자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은 탱고 이외에도 서울 용산기지에 ‘CC서울’과 한반도 남부 지역에 ‘오스카’라는 지하 벙커를 갖고 있으며, 한국군도 B-1, B-2 등 지휘소 벙커를 운용하고 있다.

(장일현기자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47&article_id=0000061606§ion_id=100&menu_id=100

한미연합사가 발간한 <한미연합 C4I체계 소개>에 따르면, 캠벨사령관의 한국군 C4I 사용 제한 발언은 한미당국 간 1999년 2월 26일에 비밀리에 체결한 한미연합 C4I체계에 관한 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IA의 핵심내용은 한미 간 C4I운용유지비용 분담비율을 한국과 미국이 15:85의 비율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C4I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이 협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뒤집으려는 이 협약이 미국의 강요로 체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미양국은 C4I운용 비용분담 비공개 협상을 1997년 9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무려 17개월에 걸쳐 18차례나 벌였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1998년 독수리연습 때 한국군에 대한 한미연합 C4I체제 지원을 중단하면서까지 우리 정부를 협박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이런 요구에 대하여 우리 정부답지 않게(?) 왜 이렇게 완강히 버텼을까? 여기에 곡절이 없을 리 없다.
1987년 한미양국은 한미연합 C4I체계 구축과 관련한 양해각서(MOA)를 맺는다. 그 내용은 한국측은 연합전력증강사업(CDIP)의 일환으로 탱고 지휘소를 건설하고 미국측은 C4I체계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측은 지휘소 건설비를 부담하고, 미국측은 장비와 운용비를 부담하여 1991년 7월부터 한미연합 C4I를 운용해왔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각서에 따라 자신들이 부담해왔던 C4I운용비 부담을 새로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에 반발하다가, 미국의 강압에 못 이겨 운용비 15%를 부담하는 IA를 어쩔 수 없이 체결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