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미학2008/08/31

대전평화여성회 소식지에 보낸글입니다.

눈물

어느 겨울인가 나는 지하철 창가에 서서 눈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눈은 창문에 닿는 순간 물이 되었다. 눈물이었다. 차가운 세상이 따뜻한 온기를 만났을 때 흘러내리는 것이 눈물이란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작업실 오는 길에 연잎에 맺힌 이슬을 본다. 여린 온기를 지닌 연잎과 차갑던 대기가 부등켜안는 순간 대기는 연잎의 넓이만큼 이슬이 된다.
차이와 차별과 불평등한 세상은 제가슴을 열어 끌어안지 않고서는 소통되고, 평등해질 방법이 없다. 상품교환의 결과 가격이 탄생하듯 이들 소통의 결과가 눈물이고, 이슬이요, 안개다.
세상을 가슴 열어 끌어안고자 할 때 주체는 물을 흘린다. 손가슴이 낯선 삽자루를 끌어안았을 때 손에선 물집이 잡히고 터져 물이 흐른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지켜보며 끌어안는 눈가슴에선 눈물이 흐른다. 칼과 총마저 끌어안고자 가슴을 여는 순간엔 핏물이 흐른다.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세상의 중심도 아픈 곳이라면 그 아픔을 피하지 않고 끌어안고자 하는 평화의 가슴들엔 언제나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이슬과 눈물은 저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비추는 것으로 자기 일생을 마친다. 고정된 존재의 표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관계의 표상으로만 드러나는 것이다.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손에 닿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이슬과 눈물은 소유를 통해 존재의 영역으로 고정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낯설다. 신파가 아니라면 눈물은 언제나 낯선 것이다.

강이 대지의 투쟁을 끌어안고 흐르는 눈물이듯, 바다가 육지의 갈등을 제 가슴에 모두 담아 일렁이는 큰 눈물이듯, 눈물은 차이와, 갈등과 모순을 끌어안음으로서 평화가 된다.

대지와 대기가 부등켜 안을 때 안개가 피어오른다. 바다와 대기가 부등켜 안을 때 안개가 낀다. 안개는 작고도 거대한 눈물이다. 산에서 피어오른 안개는 산을 가린다. 바다에서 피어오른 안개는 바다를 가린다. 안개는 만들어낸 주체조차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항상 낯선 것이다. 전쟁학에서 말하는 전쟁터의 ‘불확실성의 안개’란 비유와 더불어 안개가 우리에게 던지는 표상은 영원한 낯설음이다. 안개는 차이와 차별과 불평등의 존재를 가리고 가슴 열어 끌어안으므로서 생겨난 제 스스로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재배열한다. 그럼으로서 안개는 결국 하나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주고 사라진다. 차이지고 평등치 않은 것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만큼 생겨나고 사라지는 안개는 이슬처럼 언제나 낯설다.

평화하는 자는 세상의 아픔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자이다. 그럼으로서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세우는 자이다. 아픔을 끌어안음으로 아픔에 존재하는 결을 만들어내고 찾아내는 자이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아픔을 끌어안고자 할수록 평화하는 자는 눈물 흘린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소유하거나 보관할 수도 없지만 눈물은 진실로 아픔을 끌어안은 결과이다. 눈물이 눈물 흘린자의 눈앞을 가리듯, 안개가 저를 만들어낸 풍경을 가리듯 아픔의 포옹이 가져올 새로운 결의 발견은 예상한대로만 되지 않는 낯선 것이다. 그 낯설음 앞에 또한 겸허한 자가 평화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