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육참총장강연-장교의 도2003/10/15 318

육군참모총장 정신교육
03.4.12.(토) / 육본 영관급 이상 대상 -

○ 公과 私의 구분
본인이 총장으로 임명되자, 많은 간부들이 “신임 총장은 골프를 치지 않으며 오로지 업무에만 몰두하므로 앞으로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간부들의 골프는 끝났다, 매일 야근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들었다.
이는 간부들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여 다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골프는 일과 후 여가선용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개인 사생활의 한 부분이지 부대 업무가 아니다. 따라서 골프를 치고 싶은 사람은 치고 치기 싫은 사람은 안치면 되는 것일 뿐 내가 안 친다고 여러분들이 안치는 것은 장교답지 못한 비겁한 행위다.
장교는 자유 혼을 가진 자유인이어야 한다. 골프를 치는 것은 국익을 헤치는 것도 아니고 장교로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 돈 가지고 개인의 자유시간을 투자해 여가를 즐긴 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권한은 없다. 앞으로 총장이 골프를 안친다고 눈치봐가면서 자기 스스로 안쳐놓고 뒤에서 총장을 탓하는 육군장교가 있다면 장교답지 못한 장교다.
총장과 여러분의 골프는 아무 상관없으니 절대 연관짓지 말기 바란다. 다만 총장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지 여러분 개인시간을 통제하자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 직업으로서 군 장교의 이중성 : 복무 + 직업
오늘 이런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은, 본인이 여러분에게 총장으 로서가 아니라 여러분보다 먼저 군인의 길을 걸은 선배장교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다. 여러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총장이 어떤 길을,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 생활에 이런 삶도 있다는 의미에서 여러분들에게 참고적으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에 모인 장교들 중에 아마 강제적으로 끌려와서 장교 계급장을 달고 군 생활하는 장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 선택한 길이며, 스스로 선택한 길에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비록 힘들지만 부여된 책임의 완수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 군인의 명예다.
여기서 장교의 도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장교로서 여러분의 직업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희생을 전제로 복무하는 군인이라는 관점에서의 자기 희생적 명예가 요구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분도 가장이며 직업인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러한 직업적 속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군대는, 여기 000명이 교육에 참석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장교는 지금 총장이 얘기하는 그러한 양면성을 충족하는 자랑스럽고 아주 떳떳하고 훌륭한 장교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소수 인원이 잘못돼서 장교단 전체가 매도당하는 현실이다.
본인이 총장으로 부임하기 이전에 어떤 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의 말씀이 “요즘 군에서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는데 몇 천 만원이 든다는데 사실입니까” 라고 물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분과 2시간을 싸운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군 장교 집단만큼 건강하고, 깨끗하고, 정직하며, 명예로운 집단은 없다고 본인은 확신한다.
현역에 있을 때 군에 대해서 불평했던 장교들도, 전역 후 6개월이 안돼서 다시 찾아왔을 때 “그래도 군만큼 깨끗한 집단은 없더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으로 본다.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고 밤잠을 안자면서 부여된 과업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땀흘려서 투자하는 노력만큼의 정당한 명예와 대우를 받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보기 바란다.
금전적인 대가는 나라의 경제와 관련된 사안이라서 우리가 주도적인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명예는 우리 스스로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현재 장교로서의 긍지심에 합당한 그러한 명예를 누리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여러분 자신들도 아마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 군 장교의 바른 가치관 확립
군장교단 스스로 명예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치관의 이중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갓길 주행을 예로 들면, 만약 내가 갓길을 주행하면 그건 부득이 바쁜 일이 있어서 할 수 없이 하는 거고, 내가 정상주행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갓길을 주행하면 서슴없이 욕설이 튀어나올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오폐수 무단 방류를 고발하는 내용이 방영되었는데, 나쁜 짓 하는 현장에서 기자가 출동하여 마이크를 대면 아주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하는데 자기는 조금밖에 안 했으므로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얘기함. 대다수의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그런 면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러분들은 평상시 임무수행에 충실한 군인들이다. 평소 자기 할 일밖에 몰랐던 그러한 정직하고 명예스러운 군인들은 밖에 나가서는 불필요하게 자기의 사연을 하소연하거나 청탁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반대로, 평상시에 임무를 등한시하고 군에서 나가야 될 사람들은 열심히 밖에 나가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돌아다닌다.
내 자식 공부 못하면 나는 화가 나서 종아리를 때려도, 부인이 자식에게 꾸중을 하면 화가 나 결국은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내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도 나는 그 자식을 때리고 나무랄 망정 심지어 내 부인이 나무라는 것조차도 듣기 싫어한다. 왜냐면 내 자식을 그 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군을 사랑하는 장교들은 절대 밖에 나가서 군을 매도하지 않는다. 장교다운 장교는 밖에 나가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면 그 내용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긍지와 자존심에 상처를 받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진급은 여러분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여러분들 부하들이 시켜주는 것이지, 결코 상급자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승부욕에 집착된 그러한 삶이 반드시 승리하느냐? 나는 이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 총장의 개인적인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하려고 한다.
본인이 강원도에서 거의 15년을 근무했다. 소령 때부터 대령 때까지는 경기도 안에 발을 들여놔 본 일이 없으며 그러다 보니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장군으로 진급해서 장군진급심사위원으로서 진급심사를 하는데, 본인은 평상시에 만나는 장교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야 되는데 대상 장교들 대부분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스스로 의문이 생겼다. 분명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많이 알고 있나 싶어서 곰곰이 따져 보니, 직접 같이 근무를 했거나 만났던 사람들은 백 명 중 10명 정도도 안되고, 나머지 90명은 그 장교 밑에서 근무했던 부하장교들이 본인들의 상급자에 대해서 얘기한 것을 들은 내용이었다.
통상 만나면 “자네 지금 어디 근무해?” “예, 어디 근무합니다.” “그래? 과장은 누군데? 대대장은 누군데? 어때?” “아주 훌륭하십니다.” “배울 것이 없는 상급자입니다.” 이렇게 주고받은 대화가 본인의 머리 속에 나도 모르게 남은 것이었다. 그걸 가지고 평정표를 보았더니 부하장교가 얘기한 내용과 100% 일치되었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것이 바로 진급은 부하가 시키는 것이지 상급자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여담이지만 진급이 여러분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진급이 되면 좋지만 진급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과 자기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을 비교해 보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사람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진급을 위해서 일을 할 때는 인간성을 버리게 되고 어느 특정한 상급자한테는 잘 보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부하나 동료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 총장의 복무 주안 : 장교단 정신의 개혁
본인이 총장으로서 다른 것은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운용을 잘못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시대적 발전에 따라서 제도 자체를 점진적으로 꾸준히 보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옛말에도 日新又日新이라는 얘기가 있다. 사람 몸에서도 하루에 십여 만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조직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적응해가면서 꾸준히 변화돼 가는 것은 그 조직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선과 발전이라고 표현하며,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개선과 발전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적응을 거부해서는 안되며 모든 조직과 과업은 이에 따라 점진적으로 보완 발전시켜야 한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것은 혁명이며, 총장은 여러분들에게 혁명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혁명을 요구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육군 장교단의 정신혁명이다.
올바른 대부분의 장교들은 자기임무에 전념하다 보니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관심이 없었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민간의 친구가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도 말이 안되니까 웃고 넘어가면서 “말 같지 않은 얘기하지도 마”라고 이야기하고 넘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장교들이 자기의 무능함을 변명하고 감추기 위해서 자기가 유능하며, 억울한 희생양이라고 하는 얘기를 입증하기 위해서 군을 매도했던 그런 사람들을 방치했던 결과로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결코 명예스럽지 못하고 또한 그러한 안일한 정신자세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여러분들의 명예는 다른 사람이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여러분들 동료 간에도 그런 장교가 있으면 切磋琢磨할 수 있어야 되고, 밖에 나가서도 적극적으로 여러분들이 조국을 위해서 얼마나 당당하게 스스로를 희생해가면서 복무하고 있는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하나를 위해서 집단을 매도하는 그러한 장교들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은 눈에 불을 켜야 되며, 그런 것을 다른 사람의 책임처럼 방치하면 안 된다.

○ 상급자, 동료, 부하에 대한 올바른 대인관 형성
본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게임을 해 본 일이 없다. 내가 정구시합을 한번도 해 본 일도 없고, 고스톱을 쳐 본 일도 없고, 누구하고 승부내기를 해 본 일도 없다. 승부 욕이 없다 보니 게임에 대한 흥미가 없고, 그러다 보니 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본인이 해야 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 동료는 경쟁상대가 아니며, 여러분의 부하들은 군림하는 상대가 아니고, 여러분들의 상급자들은 아부할 상대가 아니다.
총장이 세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제의하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신적 혁신을 하여 당당한 장교단을 만들고, 장교단의 일원으로서 명예스럽게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 상관 = 배움의 대상
공자님도 “三人去 必有師”라 하여,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그 중에 스승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不恥下問”이라 하여,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도 그에게서 물어서 배우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여러분들의 상관 중에는 존경할만한 상관과 결코 존경할 수 없는 상관의 두 가지 종류의 상관이 있을 것이다. 존경할만한 상관은 여러분들이 따라서 배우는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여러분들이 결코 존경할 수 없는 상관은 “나는 내 부하들한테 절대 저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反面 敎師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모든 상관은 여러분들의 스승이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상관을 대할 때는 나한테 불리하냐 유리하냐 이런 관점에서 보지말고, 군인으로써 그리고 인간으로써 내 삶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내 스승인데, 장점을 배울 수 있는 스승인지 아니면 절대 따라 하지 않아야 될 反面 敎師인지를 구분해서 스승으로 섬겨야 한다.
잠깐 다른 얘기를 좀 하자면, 역사상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며, 심지어 소설 속의 제갈공명도 한번은 가정전투에서 패배하여 “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여러분들은 줄타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상급자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면, 십 년 전, 이십 년 전 사람이 찾아와서 인사하고, 만약 그 상급자가 잘못 되면, “역시 네가 그럴 줄 알았어”하고 발길을 딱 끊어버린다.
윗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행위는 명확하게 눈에 보인다. 우선 상관을 보는 눈을 나한테 유리하냐 불리하냐 하는 관점에서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내 스승이다, 저분은 이런 게 훌륭하니까 나도 반드시 보고 따라서 배워야지, 저분은 이게 아주 엉망이니까 나는 절대 내 부하들한테 저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지”라고 여러분들의 상관을 보는 눈은 여러분들의 스승을 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아하는 상급자가 총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러분에게 그렇게 유리한 게 많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상관을 대할 때는 그런 것을 계산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상관이냐, 배워서는 안될 상관이냐를 판단하게 해주는 여러분들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 육군 장교단이 상급자를 보았을 때는 “내 자신의 거울로서, 잘하는 것은 내가 저 분처럼 따라서 배우고 잘못한 것은 절대 내 부하들에게 저런 추한 모습 보이지 말아야지”하고 모든 상관을 여러분의 스승으로 보아주기 바란다.

○ 동료 = 인생과 군복무의 동반자이자 선의의 경쟁자
다음은 바람직한 동료관에 대해서 얘기 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동료들은 선의의 경쟁자들이지, 너 죽으면 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악의의 경쟁자 내지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동료는 완전군장 구보를 할 때 서로를 부추겨 가면서, 격려해가면서, 끌고 가면서 일․이등을 다투는 그러한 선의의 경쟁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혹시 여기 있는 장교들 중에서 총장하고 제일 친한 동기생이 누구인지 혹시 아는 장교가 있는 지 모르겠다. 아마 육군에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며, 40년 동안 서로 좋아했던 ○○○ 장군이다.
○○○ 장군은 내 마음속의 우상이자 영웅으로서, 내가 늘 따라 배우려고 노력했으며, ○○○ 장군에게도 영웅은 나였다. 서로 상대방을 따라 배우려고 노력했고, 격려하고 충고했었다. 같이 진급 경쟁대상이 네 번 된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한번도 다투어 본 일이 없었다.
내가 대장까지 된 것은 총장의 특기가 작전이다 보니까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겸 지상구성군사령관은 작전직능이 요구되어 본인이 진급한 것이지 내가 ○○○ 장군보다 우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은 ○○○ 장군이 ○○으로 보임 되었을 때 내가 저 보직에 갈 수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했다.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여러분들 마음의 영웅이지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설사 내가 진급을 못할지라도 “내 영웅이 내 길을 대신 가주는데 무슨 문제될 것이 있겠는가”하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농담을 한마디하면 소령 때 보충대에 대기하면서 전역을 앞두고 있었는데, 전역하는 것은 괜찮은데 나도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니까 내 부인에게는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여러분들 ‘불모지대’라고 하는 소설에 이끼다다시라고 하는 성공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소령시절 전역을 눈앞에 두고도 “나도 나가면 이끼다다시처럼 할 수 있어, 아마 멋있게 할거다”라고 부인에게 말했더니, “우리나라 풍토 속에서 육군 소령을 그렇게 막중한 일을 하게 해주지는 안잖아요?”라고 하며, 우리의 현실은 일본과 틀리지 않느냐는 말에 할말이 없었다.
의기 소침해 가지고 그 다음날 또 술 한 잔 마시면서 부인에게 어떤 얘기를 하면 가장의 체통이 설까 싶어서 고민을 하다 그 다음날 집에 들어가서 “내가 학교 선생님을 하면 참 잘 할거야”라고 하니, 아내가 “당신 교사 자격증이 없지 않느냐”라고 했으며, 다시 할말이 없어 고민하다가 삼일 째에는 농사를 짓자고 했더니, “당신 땅이 없는데 무슨 농사를 짓느냐”라고 다시 반박했다.
좀 화가 난 상태에서, 그럼 도대체 내가 무슨 직업으로 당신을 부양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니, “아직은 군복을 입고 있으니 군을 떠날 때까지는 군대 생활 열심히 하고, 전역후의 일은 군에서 나간 다음에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얘기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말밖에는 대안이 없었다.
총장이 중령 때 진급이 되지 않아서 취직하려고 국방부 동원국에서 근무하면서 안양에서 살았었는데, 안양 전철역 앞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자본이 없으니까 전역 후 포장마차는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퇴근할 때 술 한잔 먹으면서 경영 탐색을 해 보았다. 자본은 얼마 투자하면 되고, 하루에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수입이 많아서, 월 300만원은 벌고 있었다. 당시 내가 50~60만원 받을 때였으니 상당한 수입이었다.
내가 준장으로 진급하여 국방대학원에 장군 진급반 교육받을 때의 이야기이다. 교통량이 증가하여 차가 서행하거나 지체시 도로에 오징어 장사가 나타나는데, 오징어 장사 한 명이 서있을 때는 시속 25km 정도였으며, 두 명이 있을 때는 시속 한 7-8km의 속도였고, 오징어 장사 세 명이 모이면 그 때의 교통상황은 도로상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징어 장수들의 출현은 속도계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오징어 장수들의 수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하고 질문하였더니, “이백 만원도 벌고 삼백 만원도 벌어요”라고 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이 사람이 동그라미를 하나 잘못 붙였나 싶어서 다시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 당시 내 봉급이 백만 원이 채 안 됐다.
여러분들이 단순히 먹고살기에 치중한다면, 여러분들의 능력에 현재 여러분들 봉급보다 열 배는 벌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밤잠 안자고 노력하듯이 자기를 희생해가면서 일 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현재 봉급의 두 배는 벌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잘먹고 잘사는 것을 목표로 한 사람들이 아니라,『조국을 위한 복무』라는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장교단의 일원이다. 따라서 선의의 경쟁은 명예의 영역이지만 상대방을 모함하고 타도하는 것은 명예의 분야가 아니다.
여러분이 동료들을 보는 눈은 동료들을 마음속에 평생 간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우상으로 생각해야지 泥田鬪狗의 상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총장이 지금 크게 고상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대령 때 동기생 다섯 명이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 장군하고 나하고 사이가 좋으니까 다른 동기들과도 싸울 일이 없었으며, 항상 어울려서 같이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 네 명이 장군이 되었다.
싸운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 서로가 서로를 북돋우고 격려하고, 상대를 따라 배우는 우상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이 시간 이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동료들 가운데서 앞으로 남은 군 생활 기간 동안에, 아니면 죽을 때까지 마음속으로 떠받들고 따라 배울 수 있는 내 마음의 우상을 하나씩 정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동료를 보는 눈이다.

○ 부하 = 애정과 지도의 대상이자 베풀어주어야 할 상대
이며, 같은 Team의 일원.
이어서 여러분들의 부하들을 보는 눈에 대해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먼저 객담을 하나 한다면, 여러분들 다 육군대학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교육시간동안에 계속 입에 침을 튀겨가며, 흑판에 빽빽하게 글자를 써가면서, 휴식시간 깎아 먹는 교관은 학생장교들 사이에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이다. 어제 밤중에 동료들하고 어울려서 술 한 잔 먹고 졸린데 아침부터 슬슬 웃기는 얘기해가면서 수업시간 내내 편안하게 해주는 교관이 명교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정반대로 바뀌게 될 것이다. 농담이나 해가면서 가르친 게 없는 교관은 형편없는 교관이 되고, 학생장교들에게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안 줬던 그 교관은 명교관으로 남게 된다.
여러분들 부하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러분들의 관점에서 여러분들의 부하는 애정과 지도의 대상이며 베풀어주어야 할 상대이고 과업을 함께 同苦同樂하며 수행해야 할 한 Team의 Member이다. 결코 멸시와 군림의 대상이 아니다.
총장 재직기간 중 여러분들에게 업무외적으로 대접을 받는다면 내가 전역한 후 여러분들의 태도변화에 배신감을 느낄 것이나 본인은 여러분들에게 사적으로 군림할 일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한테 섭섭할 게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부하들에게 군림하지 말아야 한다. 부하들에게 군림한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을 스스로 망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부하들은 여러분들이 베풀어주고 여러분들이 가르쳐줘야 할 대상이며, 부하들한테 인기를 얻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총장도 존경은 받고 싶지만 여러분들한테 인기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관으로 따진다면 여러분들의 휴식시간을 뺏으면서 한자라도 더 가르치려는 교관이 되고 싶지, 수업시간에 조크로 여러분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교관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다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역시 그런 상급자가 마음에 남는 것이 사실이다. 총장이 평생 고마워하는 것은 내가 중위 로서 사단 작전장교근무 시절 나의 작전참모 하셨던 분이다. 그 분이 얼마나 나에게 지독하게 일을 시키셨던지 새벽 5시까지 잠을 못 자게 해서, OAC 갔을 때는 체력이 약해져서 산을 못 올라갈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군에 보너스가 없을 때인데, 그 작전참모는 가정을 등한시하여 부인하고 사이가 무척 나빴지만, 부인이 약사라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인지 봉급을 받으면 그 봉급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줬다.
내가 월남 파병 복귀 후 ○사단에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한 부대인데도 한번도 출퇴근을 못해 봤다. 예비사단이니까 BOQ도 없어서 책상에서 숙식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일요일날 아침에 내보내주는데 그 날이 봉급날이다. 당시 작전참모는 봉급 받는 주 일요일에 자기 봉급을 나누어줘 가면서 우리들에게 실컷 놀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매일 나가서 놀 수 있는 사람을 한 달 내내 붙들어 놓고, 그것도 일요일날 아침에 내보내면서 실컷 놀다오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분의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두 마디만 나가면 심하게 화를 냈다. 그 분한테 야단 안 맞는 방법은 교범을 참고하고 인용하는 것이었다. “야전교범 0-0, 제 0페이지, 몇 0항, 몇 0절, 몇 0항목에 이렇게 돼있으니 보십시오”라고 얘기하면, 아무리 엉터리 내용을 인용해도 군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즉, 부하 장교들의 공부를 시키려고 화를 내고 야근을 시킨 거지 다른 것을 가지고는 하나도 괴롭힌 것이 없었다. 그 분이야말로 내 평생의 스승이다. 요즘 상급자들은 부하들의 인격을 모독하고 군림은 하면서도, 인기를 의식해서 부하들에게 잘못된 것들을 시정시키고 가르쳐주려고 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었으며,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처럼 여러분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분들의 부하들을 따뜻하게 지도해야 한다. 회식과 관련해서도 부하들에게 사줄 돈이 있으면 회식하자고 하고 사줄 돈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지금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세 가지가 있다. 나는 여태껏 부하들한테 식사대접이나 큰 선물하나 받은 적이 없고, 보직 부탁한 경우도 없으며, 더더군다나 진급을 청탁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후배장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하들과 같이 회식하고도 부하들이 돈 내고 자기는 돈 안내는 상급자들이 일부 있다고 들었는데, 장교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 돈 있으면 나가서 사주고, 없으면 나가지 말아야 한다. 그 상급자를 부하들이 뭐라고 평가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상급자가 부하보다는 돈을 더 받을 것이다.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적게 받는 사람한테 주는 것은 사랑인데 많이 받는 사람이 적게 받는 사람으로부터 얻어먹는 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인격을 모독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가르쳐 주려고 한다면 밤새도록 붙들고 있어도 여러분들 부하들도 그때는 힘들겠지만 지난 다음에 “그분이 참 훌륭했었다. 많이 배웠다”라고 평가하지, “나쁜 상관이었다”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하들한테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하들을 볼 때는 인기를 얻으려고 하지말고 본인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존경의 대상으로 부하를 보라는 얘기다. 여러분들이 존경받는 상관이 되기 위해서는 베풀고 가르쳐줘야 한다. 부하가 나하고 틀린 얘기를 했을 때 화를 내는 상급자는 스스로 아는 것이 없어서 화를 내는 것이다.

내가 많이 알고 있는 데 부하가 엉뚱한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기분 좋아할 것이다. 왜냐 하면 상급자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야! 이 사람아 그건 그게 아니고, 과거의 전례가 이런 게 있지, 어떻게 생각해? 교범 어디를 봐봐, 여기 이렇게 돼있지, 이거 맞잖아”라고 말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나를 과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상관은 엉뚱한 소리하는 부하들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런 반면에 내가 아는 게 없는데 부하가 유식한 소리를 하면, “아 저 녀석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하고 모멸감을 느끼게되며,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다. 앞으로 부하들이 당당하게 이견을 제기할 때 화가 나거든 화 내지 말고 빨리 가서 책보고 공부하기 바란다.
요약하자면, 지금부터는 사람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 상관은 스승으로, 따라 배워야 할 상관인지 절대 저렇게 해서는 안 되는 反面敎師로서의 스승인지, 자신의 스승으로 봐야 하며,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동료를 볼 때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로서 보되 그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자기 마음속의 우상을 삼고, 부하를 볼 때는 존경을 받도록 노력하는 존경의 대상과 베풀고 지도해야 할 상대, 한 팀의 일원으로 볼 것을 제의한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제안한다면 우리가 서로 어떠한 의사결정을 위해서 난상토론을 할 때는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내가 준장, 소장으로 진급이 된 것은 당시 상급지휘관과의 토의시 그분들의 뇌리에 남아서 진급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난상토론시에는 눈치보느라 아무 말 않고 있다가, 결론 났을 때는 그제야 자기의 생각이 다르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 안된다. 토의를 할 때는 당당하게 얘기를 해야 하지만 일단 결론이 났을 때는 결론에 승복해야 한다.
명령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합법적인 명령과 불법적인 명령이며, 명령의 합법성은 따져야 한다. 불법적인 명령에 여러분이 복종한다면 그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다. 명령권한은 법에 의해서 나오는데 법을 어기는 것은 이미 명령이 아니다. 따라서 명령에서 합법성을 따질 수는 있지만 당위성을 논란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들이 대대장을 하는데 내가 사단을 철수시키기 위해서 일개대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가정하면, 사단장인 나에게 그 명령은 당연한 것이지만, 수행하는 대대장인 여러분들에게 그 명령은 부당한 것이다. 명령에 대해서 합법성을 따질 수는 있지만 당위성을 논란해서는 그건 군인이 아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단 결론이 난 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개인으로서의 소감이 아니고 총장으로써의 소감을 얘기하겠다. 그 다음에 군인들의 가치 기준에 대한 몇 가지 정의를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제시하려고 한다.
총장은 취임식이 끝난 다음 날부터 전역사를 쓰고 있다. 내가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 우리 아버님께서 평소에는 희로애락을 말씀 안 하시는 분인데도 손을 잡고 “정말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소장으로 진급 후 인사드리러 갔을 때는 별로 좋아하시는 기색 없이 “더 높아지려고 하지 말아라”고 말씀 하셨고, 중장 진급 후 가서 인사를 드리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행여라도 군인 이외의 다른 것 하지말고, 책 쓰려고 하지 말아라”고 하셨다.
내가 대장이 되었을 때는 보직에 연연하지 말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우리 아버님의 가르침이었다. 총장은 절대 비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두 번 다시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 모두 명예로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 명예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갖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친구보다 못살아도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소중한 명예가 있는 것이다.
장교는 장교다워야 한다. 내 군 생활 중에 부하들의 지휘책임에 대해서 가혹하게 처벌한 일은 없었다. 그것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지만 인간이다 보니 잘못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순간적으로 나태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일 때도 있다. 지휘책임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휘책임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책임 추궁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금전문제가 지저분한 사람, 하극상, 장교로서 허위 보고하는 사람은 한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총장은 군에서 통상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관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가치 중에서 많이 혼동하고 있는 승부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승부욕은 운동선수에 필수자질이나 군인에게는 절대 승부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승부욕이 군인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면 운동선수 데려다 참모총장을 시키면 될 것이다. 옛 병법에 “무릇 장수라 함은 전장에 임해서 그 가족을 잊고 전쟁터에 도착해서는 그 승부를 잊고, 접전을 하면서는 그 생사를 잊는다”라고 나와 있다.
승부를 생각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구호가 “항상 임무를 생각하라”이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보면, 항상 승부욕을 버리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에는 “장수가 승부에 집착해서 무리하게 성을 공격하면 자기 부하들을 희생시키게 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옛날부터 모든 병법에서 승부욕을 경계했으며, 군인들은 절대 승부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승부욕에 집착하면 결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명예를 버리게 되어 있으며, 구차하게 인생을 살게 된다. 승부욕은 장교의 도가 절대로 아니다.
둘째, 군 간부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보스기질이다. 총장의 개인적 경험을 얘기하면 내가 소위 좋은 보직으로만 옮기면 쫓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책이라고 한 자 더 보는 것이 유익하지, 찾아온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아야 뻔한 이야기이다. “아주 훌륭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번에 보직이…” 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탁한 상관의 차후 보직이 잘못되면 “역시 내 저럴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총장이 인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나 6개월 동안 한 사람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자 “저 사람은 사람이 차고 보스기질이 없다”고 말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여러분들은 “지휘통솔의 목적은 조직 능률의 극대화에 있다”라고 참모업무 교범에 정의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직 중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조직이 있으면 안되며, 모든 조직이 자기 위치에서 자기역할을 100%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휘통솔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 보스기질이 있으면 전 조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조직 속에서의 일부분을 자기 계파로 만들게 된다. 그것은 마피아나 깡패 두목들에게 필요한 기질이며 군인에게는 필요한 자질이 아니다. 군 장교는 조직의 관리자이며 조직 구성원의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모임이 하나도 없다. 내가 사단장 하면 사단의 부하이고, 군단장이면 군단의 팀원이다. 같이 근무한 인원으로 육사단파, 수방사파 같은 사조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들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은 관리자의 자질이지 여러분들이 계파를 만들어서 보스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보스기질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여러분들 학연, 혈연, 지연의 대부들과 어느 동기의 대표주자들은 보스기질 때문에 일그러진 군의 모습을 만들었다. 만일 여러분들이 스스로 보스기질이 있다고 생각되면 빨리 반성하기 바란다.
셋째,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융통성이다. 왜냐하면 전장 상황은 항상 불확실하며 전쟁이라는 것은 위험이 수반되는 마찰의 연속이다. 그리고 역사상에서 항상 모든 전장 상황을 예측해서 자기 식대로 싸워서 이긴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굳이 예를 든다면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사람이 소설 속의 제갈공명인데 제갈공명도 한번 전투에서 패해서 “泣斬馬謖”이란 이야기가 나왔듯이 제갈공명 조차도 전장상황을 100% 알 수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 융통성이다.
총장이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부임하자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신문에 보도하였다. 나는 그걸 엄청나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진급 발표 후 어느 기자가 나에게 “앞으로 계획이 뭐냐”고 물어서 나는 “앞으로 보다 더 융통성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군에서 이야기하는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처세의 요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의 참모가 나폴레옹에게 아첨을 했는데 “어떻게 황제폐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고 앉아 계시다가 마치 준비되었듯이 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니까 나폴레옹은 “내 머리 속은 도서관의 캐비넷처럼 늘 생각한 다음 차곡차곡 정리하여 필요할 때 그것을 꺼내어 쓸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융통성이란 모든 상황을 다 생각해서 이 상황이면 이 방책을, 저 상황이면 저 방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급변하는 상황에 바로 최선의 방책을 적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코 여러분들이 생각하듯 처세의 요령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통상 얘기하는 의미의 융통성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한번 비교해 보겠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 한 그루를 달라는 상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서 십 년 동안 혼나고 변방으로 쫓겨다녔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12척으로 적선 300여 척을 상대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와 같이 전쟁은 지휘관의 싸움이며, 오직 우군에게는 고지식할 만큼 정직한 사람만이 적을 속일 수가 있다. 서양의 명장을 볼 때 롬멜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생일날 부인이 이탈리아에 오면 자기는 전사책 보고 있고 부인은 오페라를 보았던 아주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적이 붙여준 별명은 사막의 여우이다. 우군에게 정직하고 고지식한 사람만이 적을 속일 수가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처세의 요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처세술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버릴 수가 없으며,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면 군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며, 유리한 쪽으로 따라가므로 그런 사람은 죽을 수가 없고, 죽을 수 없는 사람은 전투를 할 수 없으며, 전투를 할 수 없다면 군인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지식한 것이 바로 정신적 도덕적 용기라는 사실이다. 부인이 2000만원이 없어 빨리 치료 못하면 당장 죽게 생겼는데, 길을 가다 2000만원을 주웠을 때 아무도 안 보았는데도 그 돈을 파출소에 갖다 주면 고지식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정신적 도덕적 용기가 없는 사람은 갖다 줄 수가 없고 그 돈을 들고 병원으로 가게 돼 있다.
여러분들,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정신적 도덕적 용기이지 요령있는 처세를 의미하는 융통성이 아니다. 융통성은 방책의 다양성으로 군인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가 다같이 육군을 이끌어 가는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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