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想的 基盤으로서의 「平等主義 -일본경제 2003/10/15 231

思想的 基盤으로서의 「平等主義」

 

☆ 戰後의 思想基盤으로서의「平等主義」000

전후 일본의 기본적 사상기반은「평등주의」였다. 이는 전후 일본의 평등한 소득분배에 잘나타나 있는데 구미와 비교할 때 어느모로나 일본의 소득분배가 두드러지게 평등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평사원과 사장의 소득차를 보더라도 일본의 경영자의 소득은 현저히 낮게 나타나며 회사에서 평등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기준이 되고 있다.

입사동기는 모두가 같은 급여를 받게 되고 그 후에도 동기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어느 연령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차를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소위말해 「늦은 승진」제도인 것이다.

평등주의는 또한 일본기업의 공동체적성격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계약에 의해 고용하여 불경기 때는 해고한다고 하는 戰前型의 노사관계가 아니라, 종업원이 기업에 일생을 맡기고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때 그러한 조직을 떠받치는 구조로서의 평등주의, 연공서열제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기업 특유의 愛社정신과 라이벌 기업에 대한 심한 경쟁심 등은 일본기업의 평등주의, 그 공동체적 성격에 의한 것이 크다. 또한 기업내 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양호한 노사관계는 종업원의 多能工化, 블루 칼라의 화이트 칼라化, 훌륭한 팀 웍을 만들어내어 그것이 일본기업의 국제경쟁력의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평등한 소득분배는 평균가정의 구매력을 높여 자동차화와 가전제품의 보급을 촉진시켰다. 전후의 경제발전 속에서 관료가 수행했던 역할의 매우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구체적인 산업정책이 아니라 급속한 경제발전에 의해 생겨난 소득분배 불평등화의 진전을 막는데 있었다는 견해조차 있다.

☆ 細部에「平等主義」의 흔적

일본의 稅制나 보조금정책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하나의 정책에 세밀하게 약자보호정책과 평등주의 관점이 관철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득세제는 최저과세한도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높게 설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누진세가 극히 높은 것이 일본의 특징이다.

주택대부의 잔고에 대한 減稅나 아동수당의 지급에 대한 소득상한이 존재하고, 부모의 수입이 일정금액을 넘으면 일본육영회의 장학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또한 금융행정에 있어서「護送船?方式 」은 파탄하는 금융기관을 만들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해 왔다. 이는 명백한 경쟁부정·평등주의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식량관리법, 운송분야에서의 엄격한 참여규제 등 敗者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가 무수히 존재한다. 일본의 엄격한 규제체계는 대부분 평등주의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국제화·자유화·성숙화가 진전된 현재, 평등주의·경쟁부정을 전제로 한 일본의 제도는 여기저기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사상기반으로서의 평등주의가 시대적 요청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평등주의적 사상은 지금까지 일본경제의 발전, 일본사회의 안정성의 정신적지주였다. 그러나 전후 일본의 평등주의는「기회의 평등」에서 「결과의 평등」으로 중점이 옮아가고 대부분의 경우 도가 지나친 평등주의 혹은 악평등이 만연하게 되었다. 노력한 만큼의 댓가가 정당하게 돌아오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생활을 보장받게 된다면 국민의 도덕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러한 평등주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규제체질의 온상이 되었고 약자보호라는 목적으로 일본의 모든 제도는 극히 세부에 이르는 예외규정이 정해져 있어서 이것이 경쟁부정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럼 보다 구체적으로 교육문제와 기업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知識普及型」의 日本의 교육제도

일본의 교육제도는 구미의 선진적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발달해 왔다. 구미와 일본사이에 과학기술과 근대사상 등에서 큰 지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를 한시라도 빨리 메꾸기 위해 지식을 흡수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캣치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캣치업을 끝낸 지금에 와서는, 외래의 지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분명 독창적인 지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지식 흡수를 서두른 나머지 청소년들의 창의성, 원리에 대한 사고를 키우는 또 하나의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 다소 등한시되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 요구되는 시대에 와서도 교육 시스템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학생의 능력차나 흥미등을 무시한 채 교사가 큰 교실에서 칠판에 지식을 나열하고 자신의 머리에서 생각한 독자적인 의견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험에서는 교사가 정답이라고 인정한 답만을 쓰는 것이 상책이고 교사의 머리속에 없는 독특한 답을 존중하는 풍조는 좀처럼 없다. 학생은 일정한 틀 안에서 발상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 버리고 소위 우수하다고 하는 학생도 몇차례의 시험을 거쳐 완벽하게 지식흡수형의 틀에 짜여진 대답밖에 낼 수 없는 수동적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 競爭否定의 日本의 學校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교사의 질적문제, 더욱이 大人數교육에 문제가 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지식을 쓰고 설명하는 일률적인 교육이 아닌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교육이 40여명 남짓한 교실에서 이루어지기란 다소 무리라고 하겠다. 또한 일본교직원조합의 악평등주의가 그러한 능력별지도를 지금까지 저지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 데 여기에도 전후의 사상기반으로서의 뿌리깊은 평등주의가 침투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평등주의는 그 도가 지나쳐 최근 소학교의 운동회등에서는 일등상의 상품이란 존재하지 않고 공부면에서도 열등생이 상처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우등상도 사라져버린 듯 하다. 이렇듯 경쟁부정은 학교에서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다.

경쟁이 부정되는 곳에서는 활기를 띌 수 없으며 오히려 이지메 현상등을 일으키곤 한다.

잘하는 아이들은 사설학원에서 활발한 경쟁을 즐기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학교교육의 페단에서 나온 불행한 현상이다. 일본의 학교가 어디서부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단지 일본교직원조합의 책임으로 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전후 일본의 지나친 평등주의에서 나온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個性化敎育 中心의 미국 교육

미국의 교육제도는 마을과 도시의 수준에 따라 예산과 교육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의무교육이 크게 흩으러져 있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할렘가에서는 예산이 없어서 좋은 교사를 고용하기도 힘든 데 반해 고급주택지에서는 훌륭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평균수준이상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활기있는 소수정예교육을 하고 있다. 십수명정도의 작은 교실에서 학생 개개인의 능력에 맞는 진도로 학습이 진행된다. 이것이 미국적 의미의 평등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시간이 토론을 위해 할당되어 있는 것도 한 특징이라 하겠다.

자신의 의견이 다른 학생과 어떻게 다르고 어째서 자신의 의견이 옳은가를 사람들 앞에서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발표하는 훈련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도 소학교이래의 주입식 교육이 초래한 결과라 하겠다.

☆ 無感動,無關心한 大學生

요즈음의 대학생들은 무감동하고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이 배운 것을 시험전에 암기해 놓아야 한다는 의식속에 그 이상의 적극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고교시절까지는 입시공부라고 하는 목적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할 지라도 어쨌든 여러 가지 지식을 주입해 왔을 것이다. 대학에서는 그것을 기초로 한층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대학은 휴게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도 그런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던 대학에 들어온 이상,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점수를 잘 주는 수업을 듣고 동호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고등학교 때 쌓아온 귀중한 지식을 완전히 녹슬게 해버린다.

☆ 부모의 소득을 기준으로 해서 「奬學金」을 주지마라.

소득 파악이 정확하다해도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부여하는 기준으로 부모의 소득만을 근거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학생을 자립한 성인이라고 고려한다면 부모의 소득수준과는 별개로 자신이 학비를 버는 것이 가능한 제도로 만들어야한다.

예) 하버드 대학: 위에서 3분의 1의 성적은 수업료가 면제이며, 더 좋은 성적은 생활비도 부여됨.

→장학금을 받기위해 필사적으로 학생들은 예습,복습을 하며, 질문이 쇄도.

이에 비해 일본의 대학은 학생들의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고 예습하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학문에 무관심한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된 이유: 일본의 대학에는 적절한 인센티브 시스템(유도,장려하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학생–공부를 해도 안해도 장학금은 받을 리도 없고, 아주 성적이 나쁘지 않는 한 취직은 할 수 있는 현실 /교사–좋은 수업이든 아니든 연구업적이 있던지 없던지 그걸로 인해 급료 인상이나 해고와는 관계가 없음= 일률주의,평등주의의 정책하의 현실

과도한 평등주의·일률주의는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知力」보다「?力」중시의 기업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젊은이의 풍부한 발상과 감성, 전문적 지식이 아닌 잡일이라도 싫은 기색하지 않고 장시간 근무하며 순종적이고 운동부에서 다져진 듯한 체력을 가진 젊은이이다. 대학에서 문제의식을 높이고 전문분야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해도, 일본사회에는 그것을 평가할 제도가 없다.

인간의 능력은 활용하기에 따라 몇배로도 늘려갈수 있는 것이지만 일본형 시스템에서는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위험이 있다. 일본의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동시에, 사회전체의 인재활용, 능력개발에 관한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일본사회에 강하게 뿌리박혀진 평등주의를 재검토해야만 한다. (*평등주의는 교육, 회사 ,정치적 의사결정 등의 일본사회에서 강한힘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나,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에서 선두주자가 되엇고 지적 창조성의 면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이 시점에서 평등주의를 재검토해야 한다.)

☆ 再考가 요구되고 있는 「平等主義」

평등주의의 장점: 회사의 공동체의식을 높여, 사원들에게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되어 돌진하게끔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일본기업의 ‘전원 경영체계’

이에 종신고용, 연공서열제를 더하면 한 번 입사한 회사는 그 일생을 받아주는 곳으로 운명공동체화 된다.

평등주의의 단점: 사원 간의 차를 두지 않는다는 점은 우수한 인재의 능력을 누르고 그것을 평균적인 사원들에게 배분하는 것과 같다. 전체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컨셉의 개발에 도전해야 하는 일본기업에 있어서 우수한 인재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평등주의는 해가 된다.

일할 맘이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그러한 인재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일본기업의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꾸기위한 제1단계이며, 일본기업의 경영자도 확실히 이러한 상황을 자각하고 있다. 새로운 컨셉과 혁신적 이노베이션을 창출해낼 수 있는 기업문화와 장려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일본기업에 평등주의적 평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재고가 요구되고 있다.

☆ 없어지나? 新卒일괄채용

일본기업을 혁신적 체질로 바꾸기 위해, 新卒을 일괄채용(동일임금제도)하고 동기입사시에는 전원같은 봉급을 주는 평등주의를 상징하는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

일괄채용은 기업의 성장이 예측 가능 했을 때에는 장래의 간부의 확보라는 의미에서 정당화되었지만, 현재의 성숙경제에서는 거시적 경제에 있어서도 각 기업에 있어서도 자명한 것이 아니다. 성숙경제(국제화된 경제, 정보화 된 경제)에서는 二極分化(같은 업계에서도 옳은 전략에 의해 우위성을 확립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에는 극단적인 차가 생김)가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하에서 10년, 20년 후의 人事構成을 확보해 놓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일본적인 일괄채용(동일임금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 뿐이며, 개인 개인이 능력을 닦고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일이 기업경영의 전제가 되는 선진국에서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 就職의 희생제물이된 대학교육

원칙적으로는 취직을 희망하는 학생의 회사방문은 7월 1일까지 금지 되어왔지만 실제로 이른 봄부터 여름에 걸처 많은 대학 4학년학생은 취직을 이유로 수업에 빠지는 것이 통용되어 원칙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대학생이 5월부터 7월에 걸처 2.3개월간 대학교육을 받고있지 못한다고 한다면 국가적 손실이 막대한 것이다. 이뿐만아니라 대학측도 많이 곤란하다. 학생들에게 기업의 갑작스런 호출로 발표수업이나 세미나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취직시즌에 발생하는 현상은 일본사회가 교육이라는 것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가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就職協定」도 폐지를

앞에서 언급한 곤란의 근본원인은 일괄채용의 습관과 집단주의적 취직협정에 있다. 기업은 타 기업간의 경쟁에 지지않기위해, 우수한 학생을 ‘연금상태’ 로하고 타 기업방문을 저지하는 행동을 한다. 학생측은 이를 재빨리 빠져나가 조금이라도 志望에 가까운 회사를 찾으려고 필사적이다.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 진다.

이정도의 희생을 낳고서까지 취직협정은 필요한것이가. 우수한 학생을 얻고 싶은 개개의 기업과 좋은 곳에 취직하고 싶은 학생이 개인이, 좋아하는 기간에 좋아하는 시간을 들여 차분히 의논하고 취직할 곳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취직협정과 같은 인위적인 규칙이 필요하게 된 근거는 협정이 없다면 소위 ‘靑田買い’가 횡행하여지고 학생의 공부에 지장을 초래하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靑田買い’는 기업에 있어서도 학생에게 있어서도 위험이 큼에 틀림 없다. 취직이 빨리 결정 되어버린 학생은 안심해 버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게 되며, 학생측도 후에 다른 회사에 가지 못함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일본이 성숙한 사회단계로 들어갈려면, 고도 성장시대의 유물인 취직협정을 폐지하고 기업과 개인이, 개인의 자질에 따라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취직을 결정하는 방식을 이제 진지하게 검토 해야 되야 할 것이다.

☆ 변하는 기업과 종업원의 관계

결국,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개인의 관계는 크게 변해간다고 생각된다. 여러번 강조했듯이 명치유신 이후부터 최근까지 일본 혹은 일본인이 추구해왔던 것은 구미제국을 어떻게하면 빨리 효율적으로 따라 잡는가 하는 것이었다.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목표를 향해 기업이 노사일체가되어 달려왔다. 오리지날 컨셉은 구미로부터 빌려오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개선, 개량을 가함으로써 경쟁력을 배양한다고하는 패턴(유형)이다. 일본이 강하다고 하는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제품 등의 산업을 보아도, 기본 기술과 기본적 상품 컨셉이 거의 구미로부터 유입돼 일본기업이 맡았던 것은 상품화, 개선과 개량, 생산의 효율화라고 하는 부분이다.

전후의 경제 민주화 이 후, 이러한 개선, 개량형의 작업을 소화해 내는 데 무엇보다도 중시된 것은 노사협조였다. 그 결과 일본기업에 나타난 것이 직장의 팀뚺이고, 또한 종업원과 기업과의 긴밀한 일체감이었다.

그러나 선진국 경제에 있어서는 회사와의 일체감, 愛社정신만으로는 성공의 요소로서 불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지혜를 짜내어, 아직 타인이 생각해내지 못한 독특한 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진정한 프로패셔널한 정신과 잘 다듬어진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사람 한사람이 다른 누구와도 대체될수 없는 존재가되기 위한 노력과 선명한 의식을 갖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무언가를 지님으로써 사회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선진국경제에서 지적 노동자가 살아남는 조건인 것이다.

☆ 21세기를 개척하는 人材像

명치이래, 혹은 전후기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뒷받침한 일본인의 놀랄 만한 노동력, 즉 조직에서의 충성심, 좋은 팀뚺, 그리고 평등주의의 철저함이 지금까지 국제적에도 높은 평가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런것들이 일본 기업을 빠르게 진보하게한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이 21세기의 경제사회에 있어서도 종전과 같이 크게 평가될 것인가 아닌가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회사에서 충성을 다 하기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철학과 이념을 버리고, 단지 맹렬하게 근무하면 좋다고하는 사람이 20년전에는 ‘열심히 일하고, 융통성이 뛰어나고, 협조성이 있는 조직인 이다.’라고 평가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개성이 없고, 지성이 없고, 아이덴티티가 확립되어 있지않고 독창성이없다’고 부정적으로 평가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결국, 新世紀를 개척해 나가는 인재가 일본사회에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과 기업 등, 모든 부문에서 커다란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 앞서 일본적 의미에서의 ‘평등주의’가 본격적으로 재고찰 되어야 할 것이다.

☆ 결 말

본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이 선진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평등주의’가 앞으로의 일본사회에 미칠 마이너스 영향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잠정적인 결론이지만 일본적인 ‘평등주의’하에서는 일본인이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획기적인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많은 일본 시스템에 대한 옹호론이 존재하는 가운데도 이러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선진국의 임무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그것을 계속적으로 세계에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게을리 하는 나라는 선진국의 지위를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역사적 발전단계에 어울리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 중에서도 이제까지 일본사회발전의 큰 요인이었던 ‘평등주의’본연의 모습을 재검토하는 일은 필연적이다. 물론 사회가 평등한 것 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은 아니다. 물론 결과 평등주의에 대해서도 일정한 배려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효율(efficiency)과 공정(eguity)의 사이의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의 문제로서, 별도로 논의 되야할 사항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netscape의 회장 짐 클라크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말을 맺고자 한다.

‘일본은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지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개인은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되겠지요. 문화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다른 독특한 사람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있으면 누구나 독특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모두와 똑같이 행동하려 하게 되는 법입니다.’(「日經비지니스」1995년 11월 20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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