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을 이겨낸 기다림2006/05/20
현대차사보6월호
민통선 평화기행 – 관성을 이겨낸 기다림
이시우
생각해보면 기행은 여행의 기록인데 왜 우리는 ‘느끼는’ 감행도, ‘함께하는’ 동행도 아닌 고작 ‘기록하는’ 기행이란 개념을 고안해 냈을까? ‘관광’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춤추는 전세버스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여행’이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레저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지한 답사나 기행쪽에서 새로운 개념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기행은 어색하다. 여행은 갑골문에 많은 사람이 군기를 앞세우고 가는 형상으로 새겨져 있다. 갑골문이후의 금문이나 전문에도 그러한 형상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니, 여(旅)는 나그네를 뜻하게 되었지만 군대의 의미가 아직 남아 있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행진할 때는 그 모습이 깃발을 앞세운 군대 같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는 나그네가 된다면, 이말에 담긴 군대와 나그네 사이의 역사적 간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애초에 군대는 성을 넘어 낯선 세계를 찾아나서는 자들이다. 그러나 점령자가 된 군대는 그곳에 성을 쌓고 보수화되었다. 박연암의 비유에 의하면 ‘천지에 천둥번개가 쳐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온 산하에 단풍이 들어 찬란해도 소경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관성이 그들을 농맹聾盲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지배와 권력의 관성에 항거해야 했던 새로운 인물들은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가 되었다. 이들은 외로이 세상의 밖을 돌며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고 그 각성과 개안으로 역사의 새로운 주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중국 옛 시는 그 풍경을 이렇게 그린다.
何處秋風之 차가운 가을바람이 어디쯤 불어오고 있는지
孤客最先聞 외로운 나그네가 제일 먼저 듣네
군대가 주체가 되건 외로운 나그네가 주체가 되건 여행은 세상의 그늘을 찾아나선 길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역사의 주체인 그들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 선 여행을 그쳤을 때, 관성의 벽이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벽의 그늘에 가리워진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다. 여행은 이처럼 그 본질에 있어서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며, 자신의 관성에 대한 반성이었다. 사과란 말을 들으면 사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라야지 정상인이다. 사과란 말은 듣고 배나 바나나를 연상한다면 이것은 정신분열증이다. 비무장지대란 단어가 있다. 비무장지대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군인, 철조망, 대포 아마도 이런 형상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비무장이란 말의 뜻은 ‘무장되지 않은’ 이란 뜻이지만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중무장 된’ 형상들이다.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란 사실을 우리는 50년간 의심없이 받아들여 왔다. 집단적인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참으로 무서운 관성이다. 우리는 무기를 든 상대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관성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다. 민통선과 비무장지대로의 여행은 매마른 땅 위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우리의 관성에 단비가 되어줄 것이다. 잃어버린 반쪽의 풍경을 보다, 그만 들키듯 내안의 잃어버렸던 절반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이제 여행을 떠나자. 연천 태풍전망대는 2백여 미터밖에 안되는 야산이지만 근처 산들중에선 가장 높아 눈맛 시원하기로 이만한 곳이 없다. 양구의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산은 웅장하나 막막하고, 철원의 철의 삼각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광할하나 쓸슬하지만, 태풍전망대는 우아하고 장엄하다. 화려강산이라기 보다 원융의 강산이란 표현이 어울릴게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임진강은 능청맞게 구렁이 담넘듯 철책선을 희롱하며 산태극 수태극의 장관을 연출한다. 이 강을 따라 가면 문산에 있는 이율곡의 화석정을 지나 황희의 반구정에 이르고, 조금더 내려가면 비무장지대의 끝인 북쪽의 관산반도가 나타난다. 자유로 건너편이다. 나는 분명히 사회과부도에서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동해의 고성에서 시작되어 서해의 백령도까지 붉은 점선으로 찍혀진 것으로 배웠다. 사회생활을 할 때 쯤 강화도의 끝 말도가 비무장지대의 서쪽 끝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의 서쪽 끝은 자유로의 오두산 통일전망대 지나 아쿠아랜드라는 곳의 건너편에 펼쳐진 임진강건너 민둥산이다. 비무장지대는 육지에만 있는 것이다. 강이나 바다엔 군사분계선도 비무장지대도 없다.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한강하구는 지금도 남북의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이다. 서해에서 북방한계선이란 것을 넘어 꽃게잡이를 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과는 무관하기에 정전협정 위반이 아닌 것이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창으로 한강하구를 바라본다. 그 옛날 강화의 시선배들이 능청능청 배를 끌고 마포나루를 오가던 광경을 그려본다. 철원은 전쟁 전 남과 북을 연결하던 수많은 하천과 오솔길과 기차길이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긴장속에 묻혀있는 곳이다. 노동당사와 승일교를 비롯한 전쟁 전 유적이 야외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어 역사의 흔적을 상상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의 풍경들이 아름다운 것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철원을 평화여행의 1번지로 추천한다. 철원을 기준으로 비무장지대의 동쪽은 높고 험한 산악이며 서쪽은 완만한 구릉이 이어진다. 동행길은 낙관과 이상을, 서행길은 서사와 비장을 느끼게 한다. 철원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파로호와 소양호를 거쳐 양구 해안면의 일명 펀치볼을 만난다. 누군가 펀치볼이 하늘을 담기위해 둥근 것 같다고 하였으나 구석구석의 전흔을 알고 나면, 눈물을 담기 위해 둥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양구에서 진부령을 넘으면 고성이다.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이산가족들이 이젠 눈에 띄지 않는다. 동해선을 따라 이어지는 금강산 육로관광이 바꿔놓은 풍경이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채 50년을 무성영화처럼 제자리를 지킨 비무장지대의 긴 기다림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제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 것이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초기 기독교 수도서의 경구가 귀를 울린다. 형제를 변화시키려 하지말라. 기다려라. 기다리는 중에 내가 변화된다. 그러면 변화된 나로 인하여 형제가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