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기-김진원,이승숙선생님부부2005/04/28
겨우내 묵은 빨래를 한다. 아직 물은 차지만 빨래는 겨울 때를 벗고 빨래줄에 널리고 화창한 봄볕에 내맡겨지고 나서야 봄이 된다. 빨래줄에 넌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도 볕과 바람이 스치고 간 이불호청 냄새가 영락없는 봄냄새다.
이렇게 봄의 유혹에 못이겨 사람들이 봄과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일을 하자고 해도 쉽게 안움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통일연대의 한충목형이 일본 평화단체연합인 ‘2005행동’에서 강화 기행을 오게됐는데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수소문해서 전화를 건 것이란다. 작년에 일본에서 걷기명상을 했을 때 나를 아는 사람도 있으니 시간을 좀 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오늘은 몸이 무거워 쉬었으면 했는데 부랴부랴 읍내로 나간다.
나가는 길에 탑재에서 차를 타고 가는 이승숙 선생님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오늘밤에 김진원선생님과 한강하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는가 하고 청했더니 금새 김선생님께 연락해보고 좋으시단다.
김진원선생님은 강남중학교 교사이시고 이승숙선생님은 역시 같은 학교의 사서이시다.
두분은 강화군 양도면 조산리에 한옥을 이쁘게 개조한 아름다운 집에 사신다.
먼저 간단한 설명을 시작하자 김진원 선생님이 이야기를 넘겨받아 구수한 입담을 풀어내신다.
김진원: 98년도에 섬에 철책이 쳐졌어요. 내가 그때 그러니까 99년에 교동에 전근갔다가 들었거든요. 철책이 쳐지게 된 이유는…
연백염전 아래쪽 교동위쪽 불음도 위쪽 갯벌에 조개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는거예요. 심지어 군인들이 판초우의 가지고 나가서 삽으로 조개를 하나 가득 퍼 담아 올 정도였데요. 그리고 물이 빠지면 교동 서쪽 바다는 갯벌이 높이 쌓여있기 때문에 배가 다닐 수 없었고, 어떨 때는 물길 폭이 50m밖에 되지 않아 걸어서 교동으로 넘어올 수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개잡으러 나왔다가 해가 구름에 가려지고 없으면 갯벌이란데가 어디가 남인지 북인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다가 갑자기 물이 들이치기 시작하니까 이 북한사람이 교동으로 그냥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교동 대륭리란데서 몇일을 살다가, 여기에 또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거든요. 밥 먹여주고 잠재워주고 호강하며 이사 온 주민처럼 살았는데 당시에 면대장 그러니까 예비군대장을 면대장이라고 했어요. 그때 면대장이면 군이 거의 주름잡는 때니까… 면대장 생일이 되서 마을사람이 다 모이는데 이 사람도 거기 끼인거예요. 그래 면대장이 이레 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요 하니까 북에 서 왔다 그러는 거예요. 면대장이 그 즉시로 김포 2사단 본부로 신고해서 호송됐죠. 그러니까… 교동의 중대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중대장이 어떻게 됐겠어요. 북한사람이 넘어온 것 몰랐다 이게 말이 되겠어요. 그대로 목 날라갔죠. 그러고 나서 교동에 철책이 쳐졌어요. 그리고 북한사람은 당신 어디로 갈거요. 하니까 북한으로 간다고 했데요. 그래서 판문점으로 해서 북으로 간거죠. 그때 사람들이 해준 옷이며 선물 다 버리고 와 그때 사람들이 되게 서운했다 하데요.
제가 학교 근무하면서 보니까 물이 서검도로 해서 석모도와 교동남쪽사이로 흘러요. 그러니까 한강물은 교동아래 쪽으로 흘러나오고 예성강물은 교동북쪽으로 흘러나가요. 숭어가 잡히는데 얘들이 기름기를 좋아한데요. 한강물 이거 오염된 물을 먹고 자라서 얘들은 잡으면 기름냄새가 풍겨요. 그런데 교동위쪽에서 잡힌 거는 좋아요. 예성강물이 흐르거든요. 그래서 숭어를 잡아도 어디서 잡은거냐고 먼저 물어보는 거예요.
이시우: 그럼 한강물은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거네요
김진원: 교동사람들은 한강에서 내려오는 물은 똥물이라고 그래요.
전쟁 직후에는 인하리가 포구였고 창후리는 없었어요. 그런데 안개가 여긴 심하쟎아요 퍽하면 배들이 북으로 가고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창후리쪽으로 포구를 옮겼다고 그러더라구요. 고려 때 기록에 의하면 창후리와 인화리 사이에 기생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데요.
이승숙: 와 당신 오늘 마.. 완전히 사람이 달리 뵈쁜다. 이 선생님 저녁때마다 우리집에 좀 와 주소. 우리 왜 이런 얘기 한번도 해본 적이 없노. 나는 지금 당신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소설하나 쓰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기라. 안그래요.
김진원: 마 내가 교동에 살았으니까. 그리고 고려천도시에 개성귀족들이 예성강에서 교동으로 가재도구를 싣고 넘어오는데 교동위쪽 바다가 가득 차 들어설 곳이 없었다는 거예요. 내가도 딱보면 예성강 아래쪽은 진짜 바다같이 넓거든요. 그리고 강화읍에서 찬우물까지도 기와집들이 가득했다는 거예요. 지붕밑으로만 다녀도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말이 잇을 정도니까요.
이시우: 정말 재밌네요.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김진원: 교동 화개산에 올라가보면 인근 바다하고 강화도 연백이 한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옛날 관미성전투라는거 있쟎아요. 이병도박사가 관미성은 화개산이다 이랬다는거예요.
이시우: 관미성에 대한 공식기록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지금 자유로에 있는 오두산이라고 했고, 몇년전엔 가천역사박물관장이 별립산이거나 화개산일 가능성을 주장한 견해가 있고 북의 조선통사인가에는 예성강부근의 산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진원: 아 그래요. 어쨌든 화개산을 올라가보면 그 위에 산성도 있고 당시 전투의 상황과
대조해 봐도 여기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교동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있어서 요충지는 요충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교동사람들은 교동과 연백사이의 뻘이 얕아서 연백과 연결된 육지다, 반도의 일부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강화 본도 사람들을 섬 촌놈들이라고 비하했다는 거예요. 오히려말이죠.
이시우: 한강하구는 원래 이름이 조강이었습니다. 정전협정에 의해 한강하구라고 명명된 것입니다. 정전협정 1조5항에는 민간인의 항행에 한강하구를 개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띄울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와 달리 유엔사령관의 허가같은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유엔사의 눈치를 보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배가 상설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한달에 한번 한강하구를 걸으면서 공부도 하고 하는 그런 행사를 가졌으면 어떨까 하구요.
김진원: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와 가슴이 막 벌렁벌렁 뛰네. 나는 항상 교동바다를 보면서 통일이 되면 여기에 배가 다니고 어쩌고 이런 상상을 막 한건데 그게 아니라 거꾸로 여기에 배가 다녀야 통일이 된다는 거 아니예요. 와 이거 이거..
야 이거 내가 올초만 알았어도, 애들 서클을 걷기 서클로 하는 건데 이거 정말 아깝네.
이시우: 올해만 할게 아니니까 내년에 하시면 되겠네요.
김진원: 아 그렇지. 맞어. 내년에는 꼭 해야지.
이시우: 그리고 아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진원: 우선 제가 아이들에게 설명할려면 흐름은 정확히 알았고 정확한 용어를 익혀야 하니까 공부를 먼저 해야 되겠네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카페에 들어가서 찾아보도록 소개하는게 일단 제가 할 일이구요. 그리고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잘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