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백악관 성명과 `노무현 돌풍`-한호석 2002/08/30 364

4.30 백악관 성명과 ‘노무현 돌풍’, 그리고 수구파의 책동

한 호 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부시 행정부의 대북전략부재의 상황과 4.30 백악관 성명

(2) 조·미 협상과 ‘노무현 돌풍’의 함수관계

(3)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는 수구파의 책동

(4) 민족민주운동의 전략과 전술

(1) 부시 행정부의 대북전략부재의 상황과 4.30 백악관 성명

미 국방부는 자기들이 작성한 ‘핵전쟁태세보고서(NPR)’를 미국 언론(『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2년 3월 9일자)에 유출시키면서 미국이 북(조선)을 비롯한 몇몇 반미국가들의 심장부에 전략핵무기를 조준하고 있다는 핵공격계획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이러한 협박소동에 대응하여 북(조선)의 『로동신문』은 2002년 3월 18일자 논평에서 조·미 대화의 근본기초가 허물어졌다고 지적하였다. 부시의 ‘악의 축’ 폭언으로 발생한 조·미 두 나라 사이의 강성기류는 날로 싸늘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2002년 4월 30일에 발표한 백악관 성명에서 대북협상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는 문제를 결정하고 곧 조·미 협상에 나서겠다고 언명하였다. 이튿날 미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는 언론설명회에 나와서 “우리는 방북 시기와 회담의 구체적인 사항 등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2002년 5월 1일자는 잭 프리처드 대북협상 특사가 5월 안에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조·미 두 나라 사이에 싸늘한 강성기류가 흐르고 있는 와중에 부시 행정부가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조·미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백악관 성명을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조·미 관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발표는 결코 뜻밖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부시 행정부가 북(조선)에게 일련의 협박소동을 일으키고 있으면서도 왜 조·미 협상을 재개하려는가 하는 것이다. 북(조선)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협박소동과 협상요구는 분명히 모순되는 것이다. 그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협박소동과 협상요구는 상호모순되는 것이지만, 부시 행정부의 주관적 의사의 산물이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상호모순되는 요소들 가운데 어느 것이 규정적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모순되는 요소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규정적인 요소인가 하는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주관적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정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조·미 관계를 결정짓는 최대의 문제, 곧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는데, 핵문제와 미사일문제가 대두되기 이전에 미국은 정치협상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북(조선)에 대한 고립·압살전략을 추진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가 대두된 이후 종래의 고립·압살전략은 차츰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무려 반세기 이상 동안이나 집요하게 추진하여 왔던 북(조선)에 대한 고립·압살전략은 일종의 파선선고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와 관하여 어떠한 대응전략을 가질 수 있을까? 북(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해체하는 강압전략일까? 그러한 강압전략의 수행은 전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데, 과연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전쟁을 도발할 수 있을까? 미국은 조·미 전쟁을 회피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하려고 덤벼들 경우 자기의 심장부부터 먼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압전략이 아니라면, 이른바 대북경제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유화전술을 동원하여 북(조선)이 자진하여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을 해체하도록 하는 유인전략일까? 그러나 미국의 유인전략이 효력을 발생하여 북(조선)이 ‘달러’와 전략무기를 맞바꿀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페리 보고서’에서 제시된 조·미 평화공존전략은 무엇인가? 그 전략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조·미 평화공존전략을 추진한다고 해서 북(조선)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자진하여 해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페리 보고서’의 조·미 평화공존전략은 핵문제와 미사일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전략이 아니라,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에 의하여 조·미 관계에 발생한 전략균형의 변동을 수습해보겠다는 피동적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부시 행정부에게는 북(조선)에 대응할 전략이 없다. 이것이 워싱턴의 대북전략가들을 괴롭히고 있는 고민거리다. 그들이 조·미 관계에서 궁지에 빠져 있다고 보는 근거는,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 없다는 데 있다.

‘페리 보고서’가 나온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정치협상으로 해결하겠다고 종종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대응전략이 없는 조건에서 협상전술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조·미 관계에서 전략부재의 궁지에 빠져 있는 미국은 정치협상 이외에 다른 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협박소동과 협상요구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정국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협상재개를 전제로 하면서 협박소동을 벌일 수밖에 없는 궁색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미 관계에서 규정적인 요소는 협박소동이 아니라 협상요구다. 부시 행정부는 조·미 정치협상에 끌려나온 뒤에 앞으로도 때때로 협박소동을 벌이곤 하겠지만, 그것은 고립·압살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기들의 협상전술의 기조를 파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4월 30일에 백악관 성명을 발표한 것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인 협상전술을 불가피하게 선택하였음을 보여주었다.

(2) 조·미 협상과 ‘노무현 돌풍’의 함수관계

지금 남(한국)에서는 노무현 개혁파와 이회창 수구파가 집권문제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세력이 선거국면에서 분투하겠지만, 그 분투가 지금 형성되어 있는 노무현-이회창 양자구도를 깨뜨릴 만큼 위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른바 ‘노무현 돌풍’이 갑자기 불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집권의 가능성은 이회창 수구파에게 기우는 것으로 보였다. 만일 부시 행정부가 이회창 수구파의 집권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조·미 관계의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회창 수구파의 집권은 미국이 조·미 협상전술을 내던지고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이회창 수구파가 집권하는 경우, 조·미 관계에서는 협상전술이 규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게 된다. 부시 행정부의 고립·압살전략의 연장기도에 대하여 북(조선)은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에 발생했던 ‘노무현 돌풍’과 ‘박근혜 독자행보’는 ‘이회창 대세론’을 좌절시켰다. ‘노무현 돌풍’은 수구파의 허를 찌른 개혁파의 기습공격이었으며, ‘박근혜 독자행보’는 수구파의 분열과 약화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돌풍’과 ‘박근혜 독자행보’는 노무현 개혁파와 박근혜 수구파가 각각 독자적으로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미국이 남(한국)의 집권문제를 좌우하는 사실상의 결정권을 행사해왔다는 견지에서 볼 때, 독자적으로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50년 동안 남(한국)에서 정권교체의 중대 고비마다 ‘정계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돌출하곤 했던 그러한 종류의 급변현상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흑막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미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종래의 고립·압살전략이 파산선고를 받은 조건에서 조·미 협상을 재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자기의 협상전술에 잘 길들여진 개혁세력에게 차기 정권을 허락할 것이다. 그래서 선발된 것이 노무현 개혁파다. ‘노무현 돌풍’은 참된 개혁을 바라는 남(한국) 민중의 정치적 요구에 의하여 발생한 측면도 있겠으나,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발생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조·미 관계의 측면에서 ‘노무현 돌풍’을 분석하고 있으므로, 남(한국)의 민중의 정치적 요구와 ‘노무현 돌풍’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생략한다.

조·미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노무현 돌풍’과 ‘박근혜 독자행보’는 부시 행정부가 파산선고를 받은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 하지 않고 협상전술로 나오려고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노무현 돌풍’과 ‘박근혜 독립행보’라는 급변현상을 분석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협상전술로 나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북(조선)은 마침내 부시 행정부의 협상요구를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조·미 협상재개에 관한 백악관 성명이 4월 30일에 나오게 된 배경이다.

‘노무현 돌풍’이 일어나자 남북관계와 조·미 관계에는 강성기류가 잦아들고 돌연 연성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남북관계에서는 4월 3일 임동원의 방북과 5월 11일 박근혜의 방북이 성사되었고, 조·미 관계에서는 프리처드의 방북계획이 진전을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에 연동되어 3월 29일과 30일에 북경에서 조·일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5월 7일 일본 외상은 일본이 대북 수교협상을 재개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3)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는 수구파의 책동

임동원과 박근혜의 방북이 차례로 성사되고 프리처드의 방북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자, 반발하는 세력이 있으니, 그들은 미국의 고립·압살전략을 계속 연장하려고 날뛰고 있는 수구파다. 그들은 남북관계와 조·미 관계에서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이다. 수구파는 워싱턴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다. 수구파는 서울과 워싱턴의 정치권은 물론이고, 관료집단, 군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는 수구파의 책동은 조·미 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적대감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고조시키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1998년 9월의 ‘금창리 사건’과 1999년 6월의 ‘서해교전’은 수구파가 조·미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반발하여 저질렀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닷없이 불거져 나온 ‘금강산댐 붕괴설 유포사건’과 ‘주적론 발표사건’, 그리고 ‘탈북자의 외국공관 연쇄진입사건’의 배후에도 수구파의 마수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1월 하순 금강산 지구의 언제(댐)들 가운데 하나인 임남언제에서 몇 일 동안 물을 방류했던 적이 있었는데, 수구파는 그로부터 석달이 지난 4월 하순에 와서 미국의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이른바 ‘금강산댐 붕괴설’을 조작·유포한 것이다. 또한 수구파는 북(조선)을 ‘주적’이라고 규정한 ‘국방백서’라는 것을 발표하여 남북관계개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수구파는 그것과 때를 맞춰 ‘탈북자’들을 심양에 있는 미국, 일본, 캐나다 영사관에 연쇄적으로 진입시켜 한(조선)반도의 외교문제로 비화시키는 한편, ‘탈북자’들을 남(한국)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한때 일정에 올랐던 남북 당국자 회담은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구파의 책동은 맥을 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 꽃샘추위가 봄기운을 잠깐 움츠러들게 만들 수는 있으나 봄이 오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구파의 책동은 정국을 일시적으로 싸늘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한(조선)반도의 대세를 가로막을 수 없다. 한(조선)반도의 대세는 남북관계를 6.15 공동선언의 이행으로 진척시킬 것이며, 조·미 관계를 조·미 공동성명의 이행으로 진척시킬 것이다. 파산선고를 받은 고립·압살전략을 연장하려는 수구파의 책동은 대세의 흐름에 떠밀려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4) 민족민주운동의 전략과 전술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조·미 정치협상이 전략무기를 보유한 ‘위험한 북(조선)’을 길들여서 ‘국제사회’에 끌어내기 위한 협상전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그 정치협상은 반미자주화전략에 복무하는 대미 협상전술을 수행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대미 정치협상을 추진하는 근본목적은 북(조선)이 미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고립·압살전략을 파탄시키고 남(한국)을 자주화하는 반미자주화전략을 수행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조·미 정치협상은 반미자주화전략의 수정 또는 포기가 아니라 그 전략에 복무하는 전술을 수행하는 것이다.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수행하고 있는 중심전략도 또한 반미자주화전략이다. 반미자주화전략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과 북(조선)의 전략은 일치한다. 그러나 그 전략에 복무하는 전술은 완전히 다르다. 북(조선)은 미국에 대하여 협상전술을 동원할 수 있으나,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오직 투쟁전술밖에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대미관계에서 유일무이한 전술인 반미투쟁전술을 포기하는 것은 곧 반미자주화전략 자체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 된다.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반미투쟁전술을 포기한 상태에서 반미자주화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조·미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기간에 반미투쟁전술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조·미 사이에 혹시 ‘평화적 협상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해도,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덩달아 반미투쟁전술을 포기하거나 일시적으로 유보해서는 안 된다.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반미자주화전략이 승리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조·미 정치협상의 진행여부와는 무관하게 반미투쟁전술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적 지위와 역할이 강화되고, 또한 조·미 정치협상이 반미자주화전략의 수행에 유리하게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5월 22일 작성)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자주민보』 2002년 6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