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기-김정택,임정숙선생님부부2005/04/28
밤늦게 임정숙선생님과 김정택목사사님 내외분이 다른 손님 한분과 집에 방문하셨다. 식사중에 모내기 하고 나서 보름쯤 뒤에 이루어지는 청동오리입식행사 이야기를 하다가 평화의배이야기가 언뜻 나와서 임선생님의 재촉으로 부랴부랴 목사님을 모셔왔다는 것이다.
“내가 고민을 해봤는데… 오리입식 행사때 도시에서 아이들이 많이 오거든, 그러니까 소비자들이 오는거지. 그래서 유기농 오리농법의 청동오리를 직접 논에 입수시킨단 말야. 그러면 우리 생산자들이 그 오리로 쌀을 잘 키워서 제초제 쓰지 않고 환경오염 없이 맛있는 쌀을 생산한다는 거야. 그리고 이 오리를 북에 유기농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식사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차원에서 보내려고 하는데, 문제는 이게 한강하구에 막혀서 지금은 갈 수가 없다. 생명은 나눔인데 나누려다 보니까 나누고 싶어도 평화가 없으니까 못 나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배를 띄울 수는 없지만 종이배에 소원을 실어서 보낸다면 머지않아 배를 띄울 수 있을 거다. 이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결론은 오리입식 행사만으로는 하루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여차리에 갯벌센타를 가든, 곤충박물관을 가든 뭔가 다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평화의 배 띄우기도 그중의 하나의 선택 사양으로 도시의 단체들에 보내서 그중의 하나로 선택하도록 하자는 거지”
“에이 그러면 안되구요. 아예 오리입식행사와 평화의 배띄우기를 한다고 해서 딱 보내야지요”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너무 좋은 생각을 주셨습니다. 목사님.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6월 초순, 그러니까 6월5일부터 한 12일 정도까지 이게 계속되거든,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그리고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만약 기금을 받으면 식사와 버스는 다 해결되지. 그리고 안되면 돈을 얼마씩 내서 동네에서 밥을 해서 내오면 되니까. 그건 뭐 걱정 할게 없고.”
“정말 좋습니다. 이 생각을 키워서 제대로 판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서울의 기획단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생명과 평화와 나눔이 이 한 행사에 다 들어있네요”
“그래서 이제 구체적으로 배를 어디에서 띄울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애 그걸 좀 조사하고 고민해 보자고“
“제가 작년에 걷기명상할 때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황청리 해안길로 접어든 적이 있었는데 느낌이 굉장히 좋던걸요. 철책도 없고 북도 보이구요”
“황청리가 북이 보이긴 하는데 좀 멀지… 그런데 황청리서 하게 되면 우리 작목반도 있고…”
“거기 시선뱃노래 하시는 분도 있쟎아요. 돈대도 있구요”
“아 그렇네. 하여튼 한번 답사를 좀 해보자고”
“이제 이시우씨 얘기도 좀 들어봐요. 지금까지 당신 이야기만 했쟎아요”
“아 그런가”
“아뇨 저는 목사님 말씀을 듣고 뭔가 탁 풀리는 것 같은데요. 오늘 장선배 허선배를 만나 말씀을 들었는데 돌아오며 들었던 생각이 있었어요. 음 우리 모임을 이제 전체가 모이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적당치 않은 것 같애요. 작지만 평화의 배띄우기와 연결될 수 있는 꺼리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서로 그것을 바라보면서 상승되어 갈 수 있게 하는 거죠. 조직은 벌써 무거워지는 느낌이쟎아요. 가볍고 재미있게 자발적인 흐름을 먼저 만드는데 주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번의 모임은 너무 무거웠어요. 할일도 없고 논의만 하게되니까…”
“그건 아니지. 우선 이시우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던져진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어요. 자기하고 어떻게 연결 시킬건가 하는 고민의 싹을 안고 갔다고 봐야 되는 거지. 아마 지금 다들 생각을 무르익혀 가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시우가 이런 큰 이야기를 반복되긴 하겠지만 계속 해주고 돌아다니는게, 이게 중요하다고. 새로운 사람이 자꾸 오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해야하니까 그래서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더 넓게 모였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거지. 할 수 없이 한사람 한사람 만나고 다니면서, 아니면 소모임 별로 설명을 해야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분한분 정성을 다해 만나고 경청하다보면 회의에서 나올 수 없는 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을 제가 일일이 정리해서 메일로 올리겠습니다. 중계방송을 하는 셈이지요.”
목사님 내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것저것 재밌는 상상력이 발동된다.
사이버 상으로는 오리입식 후 오리가 커서 북에 보내질 때까지의 과정을 게임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이 이 과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사령관 아저씨에게 배가 띄워질 수 있도록 편지쓰기, 이메일 하기도 하고.
강화도에서의 회의 과정을 놓고 볼 때 사람들의 상상력을 막았던 것은 첫날의 ‘7월27일’ 이란 말이었다. 행사일정을 언제로 잡는가라는 윤여군목사의 질문에 서울팀에서 대략 7월27일로 잡았다라고 하자 모든 논의가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이미 다 정해서 짜진 판을 내려 꽂는 것으로 오해된 말이 바로 ‘7월27일’이었다. 반대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종이배’였다. 실제 배가 아니라 종이배를 띄워도 된다는 안이 제시되자 행사가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상상력의 장애가 없어졌다. 종이배는 일정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나 가능했고 즐거웠다. 주인공이 생각할 수 있는 적절한 형식이 주어지면 주인공은 스스로 싹을 틔워서 꽃피운다는 목사님의 비유야말로 내 가슴속에 남긴 어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