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위한조건원칙 방안-한호석 이시우 2002/08/30 324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 원칙, 방안에 대하여
한 호 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례 >
(1) 민족적 통일성과 국가적 통합, 그리고 민족적 자주성
(2)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하는 문제
(3) 3단계 통일방안과 국가연합 방안
(4) 국가연합 방안과 한(조선)반도 양국론
(5) 6.15 공동선언에서 말하고 있는 통일방안의 공통성
(6) 6.15 공동선언이 인정·지향하고 있는 것
(7)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근본원칙과 방도
(1) 민족동질성과 국가적 통합, 그리고 민족적 자주성
한(조선)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근거는 민족동질성입니다. 민족동질성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국가를 형성하여 생활하여 오는 사회·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민족동질성은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밝혀지는 생물학적 혈통의 산물이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은 민족동질성에 기초하여 성립됩니다. 한(조선)민족에게 있어서 민족동질성은 곧 민족국가의 존립근거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 혈통이 동일하다고 해서 반드시 민족국가로 통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일한 생물학적 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민족국가로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져서 살아가는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민족이지만, 민족국가로 통합되지 않고 각각 별개의 나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두 나라를 통합하자는 국가통합을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한 편, 모든 국가가 민족동질성에 기반을 두고 존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 위에는 다민족국가들이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여러 민족들이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조선)민족은 민족동질성과 국가적 통합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는 단일민족국가를 창설하고 살아왔습니다. 고려의 건국 이후 1천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민족동질성과 국가적 통합은 하나로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세기에 이르러 한(조선)반도의 국가적 통합은 식민지체제와 분단체제에 의하여 단절·파괴되었으며, 분단체제가 50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차츰 민족동질성까지 훼손 당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남북 사이에서 민족동질성 자체가 실종되는 게 아니냐 하는 위기감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조국통일은 민족동질성을 실종위기에서 구하고, 민족동질성에 근거하여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민족사 최대의 위업입니다.
다음으로, 민족적 자주성에 대하여 논하겠습니다. 민족적 자주성을 파괴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식민지체제였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체제가 붕괴된 이후 한(조선)민족의 역사는 한(조선)민족의 의사와 요구에 반하여 분단체제로 끌려갔고, 민족적 자주성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남아있습니다.
분단체제는 한(조선)민족의 요구에 의하여 수립된 체제가 아니라, 순전히 외세의 강압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수립된 체제입니다. 분단체제는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겨놓은 가장 불행한 유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전후처리과정에서 분단된 나라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베트남, 그리고 우리 나라입니다. 독일은 파시스트 전범국이었고, 오스트리아는 1938년에 파시스트 독일 제3제국의 일부로 자진하여 병합되었으므로, 종전되면서 그 두 나라가 전승국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각각 분할·점령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1954년에 열렸던 제네바 국제회담에서 프랑스 식민지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을 종식시키고 베트남을 북위 17도선으로 분할하는 문제를 결정할 때, 그 결정과정에 베트남 민족대표들을 정식으로 참가시켰습니다. 베트남의 국토분할은 외세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전범국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였으므로 전승국들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분할·점령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한(조선)반도를 북위 38도선으로 분할하는 결정은 우리 민족의 대표를 참가시키지 않은 채 외세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서 강제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에 영세중립국을 창설하는 방식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하였고, 베트남은 1975년에 무력통합의 방식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고 1976년에 분단체제를 극복하였으며, 독일은 1989년에 동독이 와해되면서 1990년에 흡수통합의 방식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세에 의하여 분할·점령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 데도 외세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서 국토를 강제분할 당했던 우리 나라는 6.25 전쟁으로 피를 흘렸으며 그 전쟁 이후 50년이 된 오늘까지도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겨놓은 가장 불행한 유물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 한(조선)민족밖에 없습니다. 한(조선)민족은 아직 20세기의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토분할은 국가적 통합성을 파괴하였으며, 민족분열은 민족동질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통합성이 파괴되고, 민족동질성이 위협을 받고 있는 조건에서 민족적 자주성이 온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가장 포괄적인 사회적 집단인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인 자주성은 분단체제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으며,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민족의 요구는 분단체제에 의하여 짓밟히고 있습니다. 분단을 민족이 겪고 있는 불행과 고통의 근원으로 보아야 할 논리적 근거가 여기에 있으며, 5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분단체제를 민족사 최대의 재앙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단체제와 민족적 자주성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남북관계를 분단 이전의 원상태로 복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겨놓은 가장 불행한 유물을 청산하고 민족적 자주성을 완성하는 역사창조의 과업이며, 7천만 한(조선)민족의 21세기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 문제입니다. 조국통일은 외세의 강제적 국토분할로 파괴된 국가적 통합성을 회복하고, 민족분열이 장기화되면서 실종위기에 처해 있는 민족동질성을 수호함으로써 민족적 자주성을 완성하는 민족사 최대의 위업입니다.
(2)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하는 문제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닙니다. 남측과 북측 어느 쪽도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남북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므로, 한(조선)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거나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분단체제는 국제법상 국가의 분열, 또는 국가의 분리가 아닙니다. 남북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고 하는 말은, 현재 한(조선)반도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한다는 ‘한(조선)반도 유일국가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조선)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측 정부당국의 견해에 의하면, 현재 한(조선)반도에는 대한민국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이북은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로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특수지역인 ‘북한’으로 규정됩니다. 반면에 북측 정부당국의 견해에 의하면, 현재 한(조선)반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이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특수지역인 ‘남조선’으로 규정됩니다.
남측 정부당국은 대한민국이 민족사의 정통성과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유일한 나라라고 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북측 정부당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족사의 정통성과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유일한 나라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족국가의 법통 문제는 역사가들의 학술문제가 아니라, 조국통일의 전도를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정치문제입니다. 민족국가의 법통은 남북의 정부당국이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민족국가의 법통이 어느 한 쪽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다른 한 쪽은 국가가 아닌데도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집단 또는 국제법상의 교전단체로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의 대립은 민족국가의 법통을 둘러싸고 발생한 전면적 대립입니다.
민족국가의 법통은 민족사의 정통성에 의하여 계승되어 왔습니다. 한(조선)민족 최초의 고대국가였던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후기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를 거쳐 한(조선)민족 최초의 통일국가인 고려, 그리고 조선으로 계승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체제의 수립에 의하여 한(조선)반도에서 민족국가의 법통의 맥은 단절되었고, 민족을 배반하고 제국주의 세력의 편에 넘어간 반민족적 세력이 출몰하여 민족사의 정통성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식민지체제에 의하여 단절되었던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하는 문제는, 분단시대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족국가의 법통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으므로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체제에 의해서 단절되었던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하는 민족사의 과업은, 제국주의 세력에게 굴종한 반민족세력에 의해서 완수될 수 없으며, 오직 민족해방운동의 주체세력에 의해서 완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분단체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하는 민족사의 과업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반통일세력에 의해서 완수될 수 없으며, 오직 조국통일운동의 주체세력에 의해서 완수되는 것입니다.
식민지체제에서 단절되었고 분단체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민족국가의 법통 문제는, 식민지체제를 반대하여 투쟁하였던 민족해방운동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또한 분단체제를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조국통일운동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자주적 통일국가가 수립되어야 해결될 것입니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므로, 조국통일은 분열 또는 분리된 두 개의 국가를 하나로 만드는 국가통합이 아닙니다. 조국통일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민족사 최대의 과업입니다.
그런데 남북의 정부당국이 각기 민족국가의 법통을 주장하면서 맞서고 있는 한, 남북의 대립관계는 해소되기 힘듭니다. 남북의 대립관계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조국통일위업을 평화적으로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남북의 정부당국이 각기 민족국가의 법통을 주장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에서 한(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방법으로 완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3) 3단계 통일방안과 국가연합 방안
역사적인 평양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채택할 때,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연합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국가연합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내놓은 적은 없지만, 화해·협력단계와 국가연합단계로 나아가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화해·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국가연합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국가연합 방안은 노태우 정부가 처음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김영삼 정부에 의해서 정립되었던 3단계 통일방안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연합 방안은 3단계 통일방안과 동의어입니다.
3단계 통일방안에서 말하는 ’3단계’라는 것은 남북이 화해·협력단계, 평화공존단계, 통일완성단계를 점진적으로 밟아간다는 의미입니다. 3단계 통일방안에서 핵심부분은 제2단계인 평화공존단계입니다. 제1단계인 화해·협력단계는 평화공존단계로 가기 위한 출발단계, 준비단계이고, 제3단계인 통일완성단계는 평화공존에 의하여 도달하게 되는 최종단계, 결말단계입니다.
평화공존단계는 곧 국가연합단계입니다. 남북의 정부당국이 남과 북을 주권국가로 상호승인한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고 국가 대 국가의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국가간의 평화공존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남측 정부당국은 국가연합단계에서 남북 두 국가 사이의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국제법적 장치를 ‘민족공동체 헌장’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연합체제는 통일국가가 아니므로 국가헌법(national constitution)을 가질 수 없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신사협정인 국제헌장(international charter)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평화체제와 그것의 법리적 실체인 국가연합체제의 수립, 이것이 3단계 통일방안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런데 3단계 통일방안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문제점입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만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인 맹점이며, 납득할 수 없는 자의적인 주장입니다.
평화는 반드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만 실현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명시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에서는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남북관계에서도 얼마든지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고, 또 수립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남측 정부당국은 평화체제가 반드시 국가연합체제에서만 수립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남측 정부당국이 주장하는 평화체제의 수립이라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3단계 통일방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남북이 별개의 주권국가로 공존하는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측 정부당국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화가 국가연합체제 안에서만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일 3단계 통일방안에 따라 국가연합체제가 수립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에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커다란 질적 변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만일 남과 북이 두 개의 주권국가로 상호승인하고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면, 남과 북의 법적 지위는 질적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남측 정부당국의 견지에서 보면,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으로부터 북측이 분리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신생국이 창설되는 것이며, 북측 정부당국의 견지에서 보면,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남측이 분리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이 창설되는 것입니다.
만일 국가연합체제가 수립되면,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 정부당국 사이에서 채택되었던 모든 합의들, 곧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은 민족사적 의의를 상실하고 완전히 사문화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남북 정부당국의 통일정책도 존립근거를 박탈당하고 사멸할 것입니다.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를 통합하려는 정책은 국제법상 인정될 수 없는 국가병합을 추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국가연합체제가 수립되면, 1945년 이후 5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무수한 희생을 치르면서 추진해오고 있는 조국통일운동은 중단될 것입니다. 국가연합체제 안에서 조국통일운동 대신에 국가통합운동을 추진하면 될 게 아니냐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국가통합운동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4) 국가연합 방안과 한(조선)반도 양국론
남측 정부당국의 국가연합 방안은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논점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연합 방안의 논리적 전제는, 남북의 정부당국이 각기 민족국가의 법통을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조국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남북의 정부당국이 민족국가의 법통 문제를 둘러싸고 무한정 대립할 것이 아니라, 쌍방이 서로를 주권국가로 상호인정하고 분단체제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분단체제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하면 분단체제는 자연히 소멸되고, 그 대신 두 개의 주권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국가연합체제가 수립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두 개의 주권국가 사이에 국가연합체제가 수립되면 상호교류와 상호협력이 더욱 심화·발전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국가연합체제 안에서 두 나라가 상호교류와 상호협력을 심화·발전시키면 궁극적으로 국가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국가연합체제를 발전시켜서 결국 자유민주주의체제로 국가통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측 정부당국의 국가연합 방안은 언뜻 보아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분석해 보면 매우 심각한 논리적인 모순과 맹점을 안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남북의 정부당국이 민족국가의 법통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고 해서 조국통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민족국가의 법통 문제를 둘러싼 남북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업이 어렵다는 사실이 조국통일운동을 폐기시키고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는 근거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국가의 법통을 계승한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남북의 정부당국이 남과 북을 주권국가로 상호승인하여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분단체제를 합법화·영구화하는 것이며, 따라서 조국통일과 모순됩니다. 국가연합 방안을 가지고서는 화해·협력은 추진할 수 있어도 평화통일은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연합 방안은 통일방안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셋째, 국가연합체제는 두 국가 사이의 평화체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해·협력단계를 거쳐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한다고 해도 두 국가 사이의 체제대립은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해·협력은 일정한 한계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연합체제는 여전히 체제의 대립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국가로 갈라지면 평화체제가 수립될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입니다.
넷째, 국가연합을 발전시키면 국가통합이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도 역시 허구입니다. 국가연합을 아무리 발전시킨다 해도 국가통합을 실현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과 캐나다가 사실상의 국가연합체제로 결합되어 있지만, 국가통합은 실현될 수 없으며, 다국연합체제인 유럽연합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국가연합에서는 국가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발견할 수 없으며, 영구분단의 근거만이 존재합니다.
국가통합은 인류역사상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무력으로 통합하였던 무력통합의 경험이 있고, 한 국가가 와해되면서 다른 국가에게 통합된 흡수통합의 경험밖에 없습니다. 한(조선)반도에서 무력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곧 전쟁을 도발한다는 의미이므로 평화통일의 원칙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한(조선)반도에서 흡수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이른바 ‘북한 붕괴설’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북한 붕괴설’은 체제의 붕괴를 획책하는 반북론자들의 궤변으로서 그 허구성이 입증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다섯째, 국가연합 방안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이한 체제를 상호인정하는 평화통일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국가연합 방안은 겉으로는 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제통합을 지향함으로써 대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국가연합 방안은 1970년대 후반기에 미국의 전략가 키신저가 내놓았던 한(조선)반도 영구분단책략인 이른바 ‘두 개의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을 따르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정치·군사적 패배, 석유파동과 달러화 체제의 붕괴에 따른 자본주의 경제의 전반적 위기, 비동맹운동의 성장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곤경 등으로 궁지에 몰려있었으므로 한(조선)반도 전체를 장악하려는 종래의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조선)반도의 유일한 주권국가는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해왔던 미국이 유일국가론의 전략을 수정하고 양국론의 전략을 내놓은 것입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양국론’은 분단체제를 영구화·합법화하려는 반통일정책의 이론적 기초입니다.
그런데 남측 정부당국의 국가연합 방안은 미국의 반통일정책의 이론적 기초인 ‘한(조선)반도 양국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가연합 방안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는 미국의 대외전략이 낳아놓은 산물이라는 점에서 조국통일의 근본원칙인 자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자주의 원칙은 1948년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이후, 2000년의 6.15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50년 이상의 세월동안 일관되게, 변함없이 견지되고 있는 근본원칙입니다. 1948년 4월 23일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발표되었던 ‘전 조선동포에게 보내는 격문’은 “우리 조국강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하고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시하였으며, 1972년 7월 4일에 발표된 7.4 공동성명에서는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고, 2000년 6월 15일 채택된 6.15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남측의 역대 정부 가운데서 국가연합 방안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노태우 정부였는데,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워싱턴발 ‘북한 붕괴설’이 나돌게 되자 남측 정부당국은 붕괴위기에 몰린 북측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포기하고 국가연합 방안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에 서명한 일방인 김대중 정부도 국가연합 방안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는 선행 정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국가연합 방안을 끈질기게 주장하였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주체를 명기할 때도 남측과 북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국호를 사용하자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한(조선)반도 양국론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한(조선)반도 양국론과 남측 정부당국의 국가연합 방안은 조국통일 3대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므로 6.15 공동선언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5) 6.15 공동선언에서 말하고 있는 통일방안의 공통성
6.15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국가연합 방안과 연방제 통일방안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국가연합 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 사이에는 공통성이 있습니다. 그 공통성은 상호교류와 상호협력입니다. 남북 사이의 상호교류와 상호협력이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된다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의 7.4 공동성명에서 확인된 바 있었고, 1990년대의 남북기본합의서 제3장에서도 명시되었으며, 2000년대의 6.15 공동선언에 의하여 실천적으로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7.4 공동성명은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 사이의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고, 남북기본합의서 제3장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다방면적인 합의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호교류의 합의는 이행되지 못했고, 7.4 공동성명 발표로부터 28년이 지나서, 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부터 9년이 지나서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야 이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북 사이의 상호교류와 상호협력을 추진하려는 의사는 남측 정부당국이나 북측 정부당국이나 한결같습니다. 남측 정부당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북측에서도 교류와 협력의 문제를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발표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분야에서 북과 남 사이의 단결과 합작을 실현하여야 할 것”이라고 명시하였으며, 1993년 4월 6일에 발표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에서도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대립관계에서 이끌어내어 화해·협력의 관계로 진입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국가연합 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연결해주고 있는 공통성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이 공통성을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하나의 지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6) 6.15 공동선언이 인정·지향하고 있는 것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에서 통일방안을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통일방안을 합의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상반된 통일방안이 내포하고 있는 공통성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인정하고 있는 공통성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화해·협력이라는 공통성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해·협력단계를 통하여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는 3단계 통일방안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도 남측 정부당국은 6.15 공동선언에서 화해·협력의 공통성을 인정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그것이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는 3단계 통일방안의 제1단계인 화해·협력단계를 인정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며 오류입니다.
6.15 공동선언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통일방안 가운데서 어느 한 방안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이 통일방안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평화통일의 실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논리적 근거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 6.15 공동선언의 전문에서는 그 선언을 채택한 평양회담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열렸음을 명시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은 평양회담을 성사시킨 목적이 국가연합의 수립이 아니라 평화통일의 실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6.15 공동선언의 전문에서는 그 선언을 채택한 평양회담이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였음을 명시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도 또한 평양회담의 의의가 국가연합의 수립이 아니라 평화통일의 실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셋째, 6.15 공동선언의 제1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도 또한 그 선언이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선언임을 명시적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넷째, 6.15 공동선언의 제2항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나라의 통일을 위한” 방안이며, 그 두 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은 두 방안의 공통성이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채택한 평양회담의 목적도 평화통일의 실현에 있고, 그 회담의 의의도 평화통일의 실현에 있으며, 그 선언의 성격과 임무도 역시 평화통일의 실현을 위한 것이며, 그 선언에서 합의된 공통성도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지향점입니다. 6.15 공동선언 그 어디에도 국가연합체제를 간접적, 암시적으로나마 인정하였다고 해석할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이 국가연합의 수립을 위한 선언이 아니라 평화통일의 실현을 위한 선언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위에서 논한 대로 국가연합체제는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가 아니므로, 6.15 공동선언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선언이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일방안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간접적, 암시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6.15 공동선언은 비록 연방제 통일방안을 인정한다고 직접적, 명시적으로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연합 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이 공유하고 있는 화해·협력의 과업을 추진하여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간접적, 암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7)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근본원칙과 방도
통일국가를 창설하기 위한 근본원칙과 방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먼저,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근본원칙에 관하여 논하겠습니다.
첫째, 민주주의적인 원칙입니다. 민주주의적 원칙으로 창설하는 것은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과업을 남북의 정부당국이 주도하되 독단적으로 추진하지 말고, 전민족적인 의사와 요구를 민주주의적으로 수렴하면서 추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체제 공존의 원칙입니다. 상대방에게 자기의 체제를 수용할 것을 강요하거나 체제의 단일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적 원칙과 체제 공존의 원칙에 의하여 창설되는 새로운 통일국가는 연방제 형식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적 원칙과 체제 공존의 원칙은 연방통일국가를 창설하는 원칙과 일치합니다. 연방제 통일방안을 추진하는 원칙은 민주주의적 원칙과 체제 공존의 원칙입니다.
다음으로,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방도에 관하여 논하겠습니다.
첫째, 전민족적인 정치협상의 방도입니다. 전민족적인 정치협상의 방도는 전민족적인 의사와 요구를 수렴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원칙에 근거하고 있는 방도입니다. 민주주의적 원칙은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전민족적인 의사와 요구를 수렴한다는 의미에서 자주의 원칙과 상통합니다.
민주주의적 원칙은 당연히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의 절차를 요구합니다. 조국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적 원칙과 방도는 일관되게 수행되어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므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정치협상이 일시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추진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협상은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전민족적인 정치협상의 진행을 지속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협상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정치협상기구를 설치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남북의 정부당국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발표되었던 7.4 공동성명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협상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를 이미 합의한 바 있습니다.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쌍방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 사이의 제반문제를 개선·해결하며 또 합의된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하였던 ‘남북조절위원회’가 정치협상기구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뒤에, 북측에서는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족통일기구’를 설치할 것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습니다. 북측이 ‘민족통일기구’ 설치방안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서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6.15 공동선언을 이행함으로써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정치협상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972년에 남북 정부당국이 합의했던 정치협상기구의 효시가 30년 뒤에는 ‘민족통일기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남측 정부당국도 조국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정부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면서 “통일을 촉진할 이 과정을 제도화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헌장에 따라 남북이 연합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둘째, 국가적 권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는 방도입니다.
통일국가는 주권국가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주권국가의 권능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통일국가의 권능 문제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정치문제이지만, 남북의 정부당국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국가적 권능을 새로운 통일정부에게 점진적으로 이양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남북의 정부당국이 자기의 국가적 권능을 통일정부에게 이양하는 것에 따라, 통일정부는 국가적 권능을 행사하는 중앙연방정부로 차츰 강화·발전될 것이며, 남북에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정부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지방자치정부로 전화될 것입니다. (2002년 6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