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동아지중해의 신환경과 한강의 미래적 의미-윤명철2001/11/30 626

21세기 동아지중해의 신환경과 한강의 미래적 의미
윤명철 / 동국대 사학과 겸임교수. 해양문화연구소장

1. 머리말
2. 동아시아의 질서재편 시도
3. 신모델로서의 동아지중해론의 설정
4. 한강의 성격과 미래적 의미
5. 맺음말

1. 머리말
우리는 지금 21세기라는 새로운 밀레니움을 맞아 엄청난 대 변혁의 폭풍 가운데서 휩쓸려 다니고 있다. 강대국들은 민족주의 시대를 넘었으며,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국가 혹은 자기민족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집단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세계의 각국들은 지금 지역의 공통성이나 문화의 유사성, 현재의 이익을 중심으로 뭉치는 이른바 광범위한 블록화의 실험을 숨가쁘게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진 EC EU NAFTA 등은 그 효용성이 한창 저울질되고 있다. 얼마전에 유럽의 국가들은 EU(유럽연합)를 뛰어넘는 보다 강제력을 지닌 유럽연방공화국을 창설하자는 논의까지 나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두에 걸쳐 개편된 세계질서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진동과 큰 진폭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한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는 20세기 질서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적으로는 실질적인 힘의 변동이 생기고, 조절의 진통이 예상되며, 협력체의 모색이라는 주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내적으로는 통일의 실현과 주체적인 역사운용의 계기를 잡을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이 모든 문제에 치열한 관심을 기울이고, 진지하게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 신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델이 필요하다. 필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동아지중해중핵조정론을 설정하고 있다. 동아지중해중핵조정론에서 모델에서의 실제 기능이나 상징물로서 한강이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은 매우 크다. 이 글에서는 동아지중해 모델을 설정하고, 한강의 성격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동아시아의 질서재편 시도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세계 여타 강력한 블록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협력체 내지 블록을 결성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각 나라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것은 가능한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최근에는 경제나 교역, 문화교류 등 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협력체의 결성과 파트너쉽의 가능성들을 시험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전쟁 전에 대동아 공영권을 구상하고, 군사력을 통해서 실천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탈아론(脫亞論)의 전통을 이어받아 한동안 아시아를 등한시 했던 일본은 점차 아시아 태평양경제라는 보다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원하고 있으며 동남아를 포함한 거대한 엔화경제권의 구축에 힘써 왔다. 따라서 그동안 동북아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경제 외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일본의 직접적인 관심대상은 언제나 동북아시아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아시아 경제지도를 작성하여 왔다. 정치적 문제가 덜한 지역에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강화시켜 배후를 안정시킨 후에 정치 군사적 이익이 걸린 본래의 전선을 전진배치를 하려는 시간차전략이다.
일본은 1988년에 환일본해(동해)경제권을 주장하여 남 북한과 러시아를 자국의 경제영역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최근에는 풍부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동해와 연변한 니이가타(新瀉) 도야마(富山) 등 각 도시들이 남북한의 도시들, 중국과 러시아 등의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등소평의 정책으로 뒤늦게 출발한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현재로서는 가장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국지경제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넓은 영토, 풍부한 원료공급지의 확보, 노동력과 소비자로서 구매력을 지닌 거대한 인구때문에 어느나라도 갖지 못한 단일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이 풍부하다. 거기에 전세계에 포진하고 있는 화교의 자본과 기술력,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 등은 향후 주도권을 잡기에 단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홍콩을 반환받은 이후에 大中華경제권의 몸체와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화교경제권을 비롯하여 환발해경제권, 복건성과 대만을 연결하는 양안경제권, 화남경제권 등 다양한 이론 및 국지경제권과 함께 산동성 요녕성 한국의 서해안을 연결하는 환황해경제권(1989년), 동북삼성 내몽고 산동반도 몽골 시베리아 요동지역 한반도 일본열도를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동북아경제권의 구상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일본 등 지방자치단체와도 개별적인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199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해 90′을 개최한 이후 동아시아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후 고르바초프가 1991년에 불라디보스톡 연설을 한후에는 태평양에 대한 관심을 공식적으로 표명했고, 1992년 1,1에는 군사항인 불라디보스토크를 개방하였다. 그 외에도 일본과 환동해경제권에 참여하고 유엔개발기구(UNDP)가 주도하여 러시아 북한 중국이 공동으로 참여한 동북아지역 협력프로젝트가 있다. 이 계획은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등 핫산(KHASAN)지구와 중국의 훈춘, 북한의 나진 선봉 등 두만강 하구 지역을 자유무역경제지구로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국내사정으로 인하여 아직은 동아시아지역의 이익과 활동에는 소극적인 편이다.
북한도 1991, 12월에 나진 선봉지역을 자유무역경제지구로 선포하고, 1993년에는 자유경제 무역지대법을 제정하여 동해를 활용한 경제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권력승계를 둘러싼 내부문제가 많고,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개방과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KEDO,식량난문제 등이 겹쳐 조만간 공동의 테이블로 나올 전망이다. 더구나 최근에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성명내용 그리고 추진과정을 보면 개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서해만 개발계획, 중국과의 황해경제권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2년전 부터는 동경과 서울 북경을 잇는 베세토(BESETO) 이론, 동해 중부와 일본의 쓰루가 나아가타 등을 연결하는 동해경제권 등 여러가지 이론을 구상하고 있다. 그 외에 영종도 신공항 건설, 부산항만의 확장 건설 등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역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을 겨냥한 남북협력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 처럼 동아시아 각국은 넓게는 국가간, 좁게는 지역간 도시간의 협력체를 결성하는 것을 전제로 많은 구상과 이론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검증단계에 있으며 동아시아 각국은 산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까지 나온 이론들은 정교하지 못한데다가 선언적 성격이 강하므로 실제적으로 국지경제권은 말할것도 없고,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불록의 형성은 어렵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고 성사가 여려운 동아지역에서의 협력체구성은 각국간의 이익추구라는 기본적인 동기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외에도 동아시아 전체의 이익, EU NAFTA 등 기타 다른 불록에 대한 방어 내지 자구책, 공동 전선의 구축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도 담고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각 국지경제권을 설정하기 전에 먼저 동아시아 각 지역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동아전체의 이익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동아의 이익이라는 큰 원을 설정하고, 그 원 속에 소속된 적은 원들이 형성되면서 각 권들간의 연결을 유기적이고, 원활하게 이루어야 한다. 구속력은 없지만 억제력을 갖추고 그 테두리 안에서 지역간의 발전을 도모하는 하나의 공동권을 설정해야 한다.

3. 신모델로서의 동아지중해론의 설정
주목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동아시아의 각국들은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및 제도들에 둘러싸인 황해 남해 동해 동중국해 등을 포함하고 있어 지중해적 형태와 성격을 띠고 있다.
지중해는 몇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중해는 해양문화의 성격을 구비하고 있는 만큼 이동성(mobility)이 강하다. 각 나라들이 내해(inland-sea)를 공유하고, 긴 沿岸이 여러나라로 갈라져 있으므로 국경이 불분명하고 변화가 심하다. 때문에 해양에 대한 利害도 대립되기 쉬워서 海域支配權의 對立을 둘러싸고 국가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 해양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다. 지중해에서는 지속적인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 질서구축의 軸이 된다. 균형자의 역할이 항상 필요한 것이다.
한편 지중해는 정치 군사적인 것 보다는 교역 문화 등 구체적인 利害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개방적이고 여러가지의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자기문화의 차별성을 강화시키기고, 교역의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문화창조활동을 활발히 하여왔다. 따라서 국경이나 종족 보다는 문화나 경제개념이 질서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완전한 의미의 지중해는 아니지만 바로 다국간 지중해의 형태로서 모든 나라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의 대다수 종족이 모여있다. 한민족과 한족 그리고 일본열도의 교섭은 물론 북방족과의 교섭도 모두 이 지역의 해양을 통해서 교류를 하였다. 황해는 동이족이 개척하였으나, 고조선과 전한이 첫 대결을 벌인 이후 한민족과 한족은 계속해서 갈등을 벌이면서 황해를 공유하였다. 반면에 동아지중해에서 비교적 외곽인 남해와 동해는 한민족의 바다이었다. 우리는 해양력을 바탕으로 일본열도를 개척하고 식민(settlement)하며 곳곳에 나라를 세웠다. 마치 그리이스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의 연안을 따라가거나 바다를 건너 교역을 하면서 점차 식민지를 세우고, 도시국가(police)들을 건설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도 지중해적 성격을 띠었다.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 연결되는 수렵삼림문화, 몽골과 알타이에서 내려온 유목문화, 화북의 농경문화, 그리고 남방에서 올라오는 해양문화 등 지구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자연현상과 다양한 문화가 만나 상호교류하고 혼재하면서 발전하였다.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경제형태나 교역방식 역시 다양할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것들은 해양을 통해서 교류되어 왔으며, 여기서 형성되는 문화는 다양성이라는 지중해 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정착성(stability)문화와 이동성(mobility)문화가 이곳에서 만나 상호보완한 것이다.

< 동아지중해의 특성>
여기서 필자는 과거 동아시아 역사의 지중해적인 성격을 빌어 향후에 바람직한 공동권을 설정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동아지중해(EastAsian-mediterrean-sea)란 모델을 제시한다. 이 모델을 적용하여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성격을 규명할 경우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동아시아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동아시아라는 범주 속에서 역동적인 동북아경제권(Dynamic North-East Asian Economies)은 중심부인 동아지중해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중심부를 대륙과 반도와 섬, 즉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따로 따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질서와 육지질서를 공유하고 연결된 하나의 권역으로 본다. 그러므로써 동아시아 역학관계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도가 쉽게 그려지니까 지역의 특성이 분명해지고, 그에따라 국가간 지역간의 역할분담이라는 도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둘째, 이 동아지중해 개념은 구성국들간의 공질성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동아시아 3국은 서로에 대한 정서적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다. 다른 권역과 효과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해야한다. 사실 이 지역은 수천년동안 지정학적(geo-politics)으로 협력과 경쟁, 갈등과 정복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역사활동권을 이루어왔다.
예를들면 한 국가나 왕조의 흥망은 그 당사국가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의 국제질서 재편과 맞물려 일어났다. 고조선과 한의 전쟁, 고구려 백제 등의 갈등이 그러하며, 고구려와 수 당간의 전쟁은 동아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국제대전이었다. 그 결과로 발해와 일본국이 탄생한 사실은 이 지역의 질서를 이해하는데 의미심장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실은 임진왜란 역시 지중해적 질서와 관련된 국제전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전쟁 외에는 실질적으로 국가간, 민족간의 대결은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었다. 지중해국가들, 그리고 유럽대륙 내의 국가들이 심각하게 대결한 사실에 비하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온 편이다.
한편 이 지역은 지경학적(geo-economic)으로는 경제교류나 교역 등을 하면서 상호필요한 존재로 인식하여 왔다. 왜냐하면 자연환경이 워낙 다르므로 생산물의 종류가 색달랐기 때문이었다. 농경문화권에서는 삼림문화나 유목문화 해양문화권의 생산물이 필요했고, 상대적으로 유목이나 삼림문화권에서는 농경문화의 생산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는 적대관계에 있더라도 교역을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북안의 카르타고와 그리이스 본토 그리고 흑해연안은 생산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교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리문화적(geo-cultural)으로도 이 지역의 국가들은 의외로 문화의 공유범위가 넓었다. 유교 불교 등 종교현상뿐 만 아니라 정치제도 경제양식 한자 생활습관 등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사실은 종족과 언어의 유사성도 적지 않았다. 비농경문화권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의외로 중국도 유목문화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문화의 유사성 때문에 외부세계에서는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공동체로 보기도 하였다.
셋째, 이렇게 동아지중해 개념을 설정하여 동아시아의 역사를 볼 경우, 이 지역은 과거에도 절박하게 현실성을 가진 공동의 활동범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질적인 지역에 대응하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갖을 수도 있다. 물론 각 국가 사이에, 민족들 사이에는 씻어버리기 힘든 경험들이 축적되어있고, 역사의 잿빛앙금이 두껍게 깔려 있다. 특히 우리는 뼈아픈 식민지생활을 경험하고 민족적 패배를 당했으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1500여년만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러나 이젠 역사적 환경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활동단위가 조그만 지역이나 국가가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지방시대, 국가시대에 겪었던 사실들은 철저히 반성하고,감정을 풀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익의 종류도 달라졌고, 경제행위도 달라졌다. 농경 유목 등 땅을 매개로한 생산양식의 시대가 흘러갔고, 영토의 크기가 전 처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됬다.
이제는 여러나라들이 국경의 제약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 혹은 무역권을 중시하는 NET(NATIONAL-ECONOMIC-TERITORIES)-’자연스런 경제적 영토’개념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예전 처럼 영토 쟁탈전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인식을 세계로 확대하면서 동아시아 외에도 다른 종족들과 문화가 있으며, 그것들에 비하면 동아시아 내에서의 차이점은 이질성이 아니라 동질성내에서의 고유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넷째, 이외에도 동아지중해 개념은 동아시아의 현실적인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는데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현재 국지 경제권들이 한결같이 해양을 매개로 설정된 것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동아시아는 결국 해양을 통해서만이 전체가 연결되며 교섭과 교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냉전질서로 인하여 유일한 연결통로인 바다마져 막혀버린 폐쇄회로였다. 세계질서속에서 쏘비에트를 맹주로 하는 대륙질서(continental-order)와 미국을 대형으로하는 해양질서(marine-order)가 격돌하는 폭발점이었다. 때문에 동아시아는 지중해적 성격을 가질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체제의 변화로 인하여 바다가 개방되므로서 모든 지역이 연결될 수 있다. 각국의 해안도시와 항구도시들 간의 물류체계도 내해를 중심으로 원활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중해 개념의 설정은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교류의 유일한 통로가 해양임을 명확히 해주고, 특히 경제교역에는 해양의 역할이 절대적이란 사실을 각인시켜줄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세계사적 규모로 확대되고, 지역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이젠 동아시아가 하나로 뭉쳐야할 시기가 절박하게 도래했다. 사실 역사적 필요성으로 보아 동아시아는 이미 19세기 말에 협력체를 추진했어야 하는데 실기한 것이다. 그 결과로 가해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 동아제국들 모두가 피해자가 된 비극을 맞게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동아시아는 공존하며 협력을 해야할 시기가 된것이다. 결국 동아시아가 협력체 내지 연합체, 혹은 불록을 구성한다면 해양을 매개로한 지중해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유럽지중해와 카리브 및 걸프지중해, 동남아지중해 등과 경쟁하고 대결하는 동아지중해의 형성이 절실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지중해적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떠하며, 어떠한 역할을 해야할까?
중국 일본 러시아 남북한은 신질서의 재편과정에서 각각 자기의 역할을 극대화시키고 가능한한 자국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질서의 재편과 유도를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통일이 불투명하며, 주변국의 방해로 인하여 민족힘의 결집 또한 매우 어렵다. 남북통일이 이루진다해도 향후 경제 정치 군사력에서 우리의 힘이 주변강국들에 비해 열세를 면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지극히 회의적인 처지이다. 그러나 신질서의 편성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하나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동해 남해 황해 동중국해로 이어진 동아지중해의 중핵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분단시대, 냉전시대에는 적대적인 양대 힘이 격돌할 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우리에게 풀어버릴수 없는 굴레를 씌웠었다. 러시아나 중국과는 육로는 물론 해로로도 교섭이 불가능했다. 일본 역시 소비에트나 북한 중국과는 바다가 아니면 교섭이 불가능했고, 또 바다로도 교섭할 수가 없었다. 한국은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외국과의 교섭이 전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결과 협력의 시대이다. 남북이 긍정적으로 통일될 경우,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공히 활용하며, 동해 남해 황해 동중국해 전체를 연결시켜줄 수 잇는 유일한 나라이다. 특히 모든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다. 우리 바다를 통해서만이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교류할 수가 있다.
중요한 해로를 장악하고, 해양조정력을 가질 경우 각국 간의 해양충돌 및 정치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인프라의 효율적인 건설과 활용만 뒷받침 된다면 동아시아에서 하나뿐인 물류체계의 핵심로타리로서 교통정리가 가능하고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경제구조나 교역형태를 조정하는 가교역할까지 할 수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D-N-U(D는 선진일본, N은 신흥한국, U는 중국 북한) 즉 橫向聯合은 한반도의 그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해양의 비중을 높히고 중핵연결지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경우 동아시아에서 정치 군사적인 비중이 상승함은 물론 경제적이나 교역상에서도 이익이 높아진다. 군사적 경제적 열세를 극복하면서 최소한 중핵조정 역할은 가능해진다.

4. 한강의 성격과 미래적 의미
동아지중해 중핵조정론을 설정하고, 그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한강은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역사적 미래적 공간이다. 필자가 설정한 동아지중해에서 가장 의미있는 역학관계의 核이고, 실제로 힘의 충돌과 각축전이 벌어진 곳이 경기만이다. 경기만은 황해도와 충청도 사이에 있는 한반도 최대의 만으로서 동아지중해에서 일본열도를 출발하여 압록강 하구와 요동반도를 경유하여 산동까지 이어지는 남북연근해항로의 중간깃점이고, 동시에 한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동서횡단항로와 마주치는 해양교통의 結節点이다. 또한 한반도내에서도 경기만은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입장에서 보아 필연적으로 분열된 각 국간의 질서와 힘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대중국교통로를 확보하거나 저지하기위하여 이 지역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그 경기만의 가운데 있으면서, 그 특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해주는 것이 바로 한강이다. 한강은 사서에서 ‘帶水’ ‘漢水’ ‘阿利水(광개토대왕릉비)’등으로 불리워졌는데, 그 의미는 모두 큰 강이라는 뜻이다. 한강은 지리적 위치와 지형으로 보아 한반도 중부의 전체지방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백두대간이 민족의 정신을 세워주는 이 땅의 등이었다면, 한강은 생활을 담아주는 배요, 배꼽역할을 한 곳이었다.
백두대간의 크고 작은 산과 수없는 골짜기에서 출발한 물길들은 크게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모여 흘러오다가 서울근처의 양수리에서 만나 한강 본류를 이룬다. 그리고 계속 흘러가다가 연천, 파주 등 경기도의 이북을 흐르는 임진강과 김포반도에서 만난다. 바다와 만나 황해도 지역을 아우르며 특히 개성과 이어진 예성강과 최종적으로 만나 서해와 합쳐진다. 예성강은 연안군 등을 통하면 재령강과 연결되고, 대동강과도 이어질 수가 있다. 결국은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경기도 황해남도 서울을 한 물줄기 속에 포함하는 한반도 최대의 강이다.
이렇게 한강하류로 직접 간접으로 이어진 그물같은 하계망을 활용하면 한반도 중부 지역 전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 때문에 한강은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강할뿐 아니라 통일의 상징성이 강하다.
한강이 가진 또 하나의 잇점은 바다와의 관련성이다. 한강이 끝나는 지점은 경기만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경기만은 한반도 중부에서 가장 큰 만으로서 남북종단항로와 동서횡단 항로가 마주치는 해양교통의 십자로이다.
한강은 거대한 경기만의 한가운데를 막고 있으며, 경기도의 서쪽 지역과 옛 경기도의 일부인 개성 남쪽의 풍덕과 옹진, 해주 등 황해도의 남부해안 일대가 마주치는 북부경기만의 입구를 꽉 채우고 있다. 한강 하류를 장악하면 경기만을 장악하고, 경기만을 장악하게 되면 하계망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한강하류는 이른바 水陸교통과 海陸교통이 교차되면서 상호호환성을 지닌 중계지역이다. 이곳에 설치된 서울은 이른바 河港도시와 海港도시의 성격을 이중적으로 가진 것이다.
이러한 지리지형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정치세력들이 일찍부터 태동하였고, 강력하게 발전하였다. 양평 가평 등에서 구석기유적이, 미사동 암사동 풍납동에서 신석기유적지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강변에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또 가장 오래된 벼농사유적이 김포 고양 일산 등 한강변에서 발견되었고, 고인돌들도 한강변에 다수가 분포되어 있다.
한강유역은 특히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무대가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溫祖가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명 신하의 보좌를 받아 나라이름을 十濟라고 하였다.’하여 한강변에 건국했음을 아릴고 있다. 이후에 백제는 서해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해양활동을 하였다. 특히 중국지역과 외교교섭을 하고, 교역을 하기위하여 한강하구와 경기만을 본격적으로 장악하였다. 백제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약 500여년 동안 발전을 하였다.

고구려는 4세기 들어서면서 남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고, 경기만을 빼앗고자 하였다.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고, 정치적인 통일을 실천하고, 대외교섭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이른바 동아지중해 중핵국가로서 받돋음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은 등극하자 한강하류의 관미성을 함락시켰고, 이어 6년(396)에는 대규모의 水軍을 투입하여 백제의 58성과 700 촌을 탈취하였다. 이때 대왕군은 아리수를 건너 한성을 직접 공격하였다. 475년에는 장수왕이 한성을 전면적으로 공격하였다. 양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개로왕이 전사하면서 수도가 함락당하고, 결국은 황급하게 남천하였다. 그 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던 한강 하류지역은 553년 2차나제동맹이 깨지면서 다시 신라의 소유로 바뀌었다. 진흥왕은 이 지역에다 北漢山州를 설치하였고, 신라는 한강변이 가진 전략적인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가발전은 물론 통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후 고려시대에도 한강유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긴요한 역할을 하였다. 수도인 개경의 바로 앞은 내해(INLAND-SEA)로서 한강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소지중해 같은 지역이다. 고려는 이 해역을 장악하므로써 한강 예성강 황강 등의 하계망을 이용해서 한성,김포, 파주, 고양, 부천, 황해도의 연백군 일대와 개경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른바 수도권의 물류체계를 장악할 수 있었다. 또한 대외무역의 발착항구로 삼아 강남의 송나라 서역(아라비아)일본 유국(오끼나와)등과 교섭하면서 세계로 열린 나라가 되었다.
한편 개방을 포기하고, 자주를 담보로 주고 쇄국정책을 썼던 조선조에도 한강은 조운체계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해를 북상해온 조운선은 한강하류를 거슬러 올라왔고, 남한강 북한강을 타고 내려온 조운선들도 역시 한강하류로 모여들었다. 한강이 조선을 먹여살렸던 것이다.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전근대에는 수로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이동하고 문화를 교류하는 비중이 높았다. 서울의 광나루 송파

마포 노량진 등은 그러한 만남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시장이 발달하고, 민중의식이 성장하였으며, 신문화가 발달한 문화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가장 생명력이 흘러 넘치던 한강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죽음의 강, 막힌 공간, 단절의 시간으로 변질된 역사의 강이 되버렸다.
냉전 구도가 정착되면서 세게에서 가장 단단하게 얼어붙은 곳이 바로 한강하류와 경기만해역이었다. 특히 한강하구는 정치 외교적인 장소로서뿐 만 아니라 남북의 해군과 육군이 충돌하는 군사지역이었다. 작년에 벌어진 연평해전은 그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강하류는 간첩이 오고가는 치안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통행이 제한되어 사람은 물론 접근이 불가능했고, 배들도 통과할수 없었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붕괴하면서, 러시아가 개방되었고,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 개방을 본격화하여 동아지중해, 특히 황해가 다시 열린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남북이 만나 통일을 지향하려는 몸짓들이 어느때보다도 구체적이고 현실성이 강해지고 있다.
동아지중해는 원래가 열린 질서, 공존의 질서, 평화구도였다. 냉전구조와 분단대결속에서 경기만은 막힌 바다, 폐쇄된 공간이 되었으나 이제 다시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한강은 동아지중해의 중핵중에서도 핵에 해당하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강은 한반도를 통일하는 강이고, 서울은 바다로 이어진 하항도시이다. 즉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로 열려진 입구이며 출구이다. 한강이 열릴 때 한반도가 통일되고, 황해가 실제적으로 살아나며 명실공히 동아지중해가 제역할을 할 수 있다. 동아지중해질서 속에서 통일한민족은 중핵조정역할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동아시아 3국은 균형과 조화속에 제역할을 담당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할수 있다. 그렇게 되면 초강대국화 불록화가 되가는 엄연한 지구의 현실 속에서 유럽합중국, 미주세력 등과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관계를 연출하는 동아시아가 될 수 있다.

5 맺음말
20세기에 들어와 동아지중해는 유일한 연결통로인 바다가 막혀서 단절의 바다로 변질되었으며, 열린공간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제 다시 동아지중해는 갈등과 폐쇄를 극복하여 모든 지역과 국가를 유지적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네트워크가 되었다. 경 기만에 평화가 깃들면 동아지중해도 평화로워지고, 경기만이 열려 있으면 동아지중해의 전 지역이 열린다. 이처럼 경기만은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동아지중해의 상징적인 중심지역이다. 그리고 평화지역(PEACE ZONE)이다.
경기만의 입구이면서 동시에 출구역할을 한 곳이 바로 한강하구이고, 한강하구의 하항도시가 서울이다. 결국 서울은 동아지중해의 중핵으로서, 한강하구를 통해서 세계로 열린 도시이고, 세계의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는 항구도시이다. 한강이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
뗏목은 합일과 조화의 정신성을 상징한다. 행위자인 인간과 대상체인 물(자연)은 필연적으로 갈등관계이다. 그러나 뗏목이라는 수단이 중간을 이어줌으로 인간과 물 그리고 뗏목은 하나가 된다. 즉 인간은 자연 그 자체가 되어 갈등이 무화된다. 이것은 삼위일체, 변증법, 즉 우리민족이 줄기차게 추구해왔던 3의 논리를 상징한다. 또한 뗏목은 원시성이 있으므로 인류가 잃어버린 원향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속력을 느리게 흘러가면서 효율성만을 중시하여 속도전에 매몰된 현대문명에게 느림의 미학과 어수룩함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뗏목을 한강에 띄우므로서 ‘만남’과 ‘아우름’의 정신성을 구현할 수 있고, 분단된 조국에게는 통일의 의미를, 대결구도에 있는 동아시아에는 평화의 멧세지를,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하고 분열된 인류에게는 자아의 회복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체득시킬수 있다. 이제 한강은 생명의 강, 만남의 강으로 변화되어 민족의 강, 인류의 강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