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와 대응원칙 – 황장엽. 탈북자2001/11/06 417

북한의 변화와 대응원칙 – 황장엽.

————————————————————————–
- 목차 –
1. 북한의 1995년-1998년 위기와 대북한전략
1) 북한의 위기의 심각성
2) 북한 경제위기의 기본 원인
3) 북한의 위기와 우리의 대응전략

2. 북한의 소생과 대북전략
(1)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데 대한 문제
(2) 남북간의 평화적 경쟁을 강화할 데 대한 문제
(3)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한 운동을 강화할 데 대한 문제
——————————————————————————–

1. 북한의 1995년-1998년 위기와 대북한전략

1) 북한의 위기의 심각성

1995년에 이르러 북한은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경제전반에서 부문간의 연계와 균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경제적 파국이 전국을 휩쓸게 되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는 보통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북한은 1년 계획도 세우지 못하여 국가계획위원회가 매달 기업소들에 생산지령을 내려보내는 형편이었다.

북한의 전력생산 능력은 약 600만㎾라고 하지만 1995년-1996년에는 연간 약 190만㎾밖에 생산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도중손실 38만㎾와 발전소 자체소비 7만㎾를 제하고 나면 145만㎾가 남는다. 북한에는 24시간 단 1분간도 전기공급이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특수대상이 있는데 이러한 특수대상이 사용하는 전력이 80만㎾이다. 이것을 제하고 나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65만㎾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에는 1급 공장으로부터 7급 공장에 이르기까지 대소규모의 공장이 모두 약 1만5천 개 가량 된다. 이러한 공장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도시와 농촌의 모든 대상들에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려면 1.000만㎾가 필요하다. 200만㎾의 전력으로는 10%의 공장이나 겨우 돌리고 나머지는 농촌경리에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 통치자들은 생산설비에 대한 점검보수와 갱신에는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고 그저 만부하로 돌릴 것만 요구하다보니 생산설비들이 다 노후하게 되어 제 능력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수준이 낮다보니 단위당 전력소비량이 크다.

당면하여 전력생산을 늘이기 위해서는 석탄생산을 늘여야 하겠는데 탄광들의 생산조건이 말이 아니다. 1997년 1월에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우리는 평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요한 채탄기지인 덕천 탄광연합기업소를 찾아가 석탄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사업을 도와주었다.

이 탄광은 수도 평양에서 가깝고 이름난 탄광으로서 당적으로 중요시하고 있는 대상 이였으나 생산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안전등을 가지지 못한 탄부가 절반 이상이었으며 탄을 운반하는데 쓰는 벨트콘베아는 300M 가량 다 낡아빠져 쓸 수 없게 되었다. 전력이 약하기 때문에 탄광갱내에서 석탄을 실은 탄차를 갱 밖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며 동발을 대주지 못하여 낙반사고가 빈번했다. 화물자동차는 약 300대 가량 있었으나 그 대부분이 타이어가 없어서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석탄이 제대로 생산될 수 없으며 석탄이 생산되지 않다 보니 화력발전소들을 돌릴 수 없으며 석탄을 쓰는 모든 산업시설들에서 생산을 할 수 없었다.

강철 생산능력은 월간 20만 톤 수준이라고 하지만 1개월에 평균 1만 톤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1955년도 수준이라고 한다.

1996년 여름에 강철생산 정형이 궁금하여 국가계획위원장을 만난 기회에 강철생산정형을 물어보았더니 그 달에는 생산이 잘되어 1만 8천 톤을 생산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 5천 톤은 외국에 팔아야 다음 달에 필요한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는데 인민군대에서 큰 별을 단 사람들(장성)이 와서 무조건 다 내라고 하여 다 주고 나니 다음달 강철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막막하다고 걱정하였다.

그해 개천에 있는 원유정제공장에서 생산된 나프타가 저장탱크를 넘어나 유실되고 있다는 보고가 김정일에게 올라갔다. 귀중한 나프타가 유실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한 김정일은 중앙당 경제담당비서를 비서국에서 비판하라고 지시하였다. 우리 비서들이 모여 경제담당비서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하자 그는 『사정은 내가 더 잘 알고 무진 애를 쓰고 있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나프타를 운반하는 탱크 차가 다 낡아서 기름이 샌다. 탱크 차를 수리하자면 강판이 있어야 하겠는데 강판은 생산하는 대로 군대가 가져가다 보니 강판을 구할 재간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996년 겨울에는 수도 평양시에 있는 화력발전소를 돌리지 못하여 중앙당 청사에서까지 스팀이 돌지 않아 국제부의 외국손님 면담실에 있는 어항의 금붕어가 다 얼어죽었다.

공업생산이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자 비료를 비롯한 영농물자와 농기계 부속품 같은 것을 농촌에 공급할 수 없게 되어 농업생산이 급격히 감퇴되었으며 1990년에 들어가서는 매년 식량을 50만 톤∼100만 톤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94년 12월에도 중앙당 농업담당비서와 도당책임비서들 사이에서 1995년도 식량이 100만 톤 이상 부족하기 때문에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문제가 심각히 논의되었다. 중앙당 농업비서의 주장은 각 도당 책임비서가 제출한 양곡생산보고에 기초하여 식량계획을 짰는데 각도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면 중앙당에 허위보고를 한 도당책임비서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 도당 책임비서들은 군당에서 올라온 보고가 잘못되었는데 현실적으로 식량이 모자라는 만큼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994년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한 다음 김정일은 온 나라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어 놓고 이러한 추모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데만 전력을 다하였으며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김일성이 생존시에는 그가 최고 고문격으로 경제부문사업을 지도하여 왔지만 그가 사망하자 경제간부들이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경제문제가 제기되어도 하소연할 중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1994년 말에 1995년도 식량문제를 놓고 경제담당 간부들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똑똑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1995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1995년 여름에 평안북도에서 큰 홍수로 인하여 많은 수재민들이 나왔으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식량예비를 깡그리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북한 통치자들은 속수무책으로 1995년의 최악의 식량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군수공장 노동자는 약 50만 명이 있었는데 가족까지 합치면 약 200만 명 가량 되었다. 군수공장은 행정적으로는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제2경제위원회가 관리하지만 당적으로는 중앙당 군수공업부가 직접 장악지도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그러므로 일반 공장들에 비하여 생산조건도 월등하고 대우도 좋았다. 그러나 1995년에는 군수공장에도 9개월 이상 식량배급이 중단되어 공장 노동자들이 대부분 출근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 누워있었으며 아사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중앙당 군수공업 담당비서가 중앙당 책임일군들 협의회에서 보고한데 의하면 전국 군수공장들에서 기술기능이 뛰어난 공장의 보배로 불리 워 오던 고급기술기능공만 하여도 2.000여명이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중앙당 군수공업부에서는 기아사태가 엄중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직접 간부들을 각 공장들에 파견하여 고급기술기능공만이라도 구원해보려고 긴급대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기아로 인하여 퉁퉁 부은 것을 일단 가라앉게 하였으나 다시 붓기 시작하게 되자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어 가장 아끼던 고급기술기능공마저 2.000여명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군수공장이 이 지경이었으니 다른 일반 공장이나 비생산기관들의 참상은 이루 말할 형편이 못된다.

1996년 가을에 중앙당 비서국에서는 식량사정이 걱정되어 그해 양곡생산 정형을 검토해 보았더니 평년작의 절반도 안되는 210만 톤(겉곡으로)밖에 생산되지 못하였다. 이것 가지고서는 군량미도 안될 것이라고 모두 걱정하였다. 사실 그해 12월에는 군량미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어 농민들이 자기 식량으로 남겨두었던 양곡가운데서 3개월 분을 무조건 군대에 바치는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우리들 중앙당 비서들도 시장에 나가 쌀을 200㎏씩 사서 군대에 헌납하였다.

우리는 평양시민들이 겪고 있는 심한 식량난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끔찍한 보고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고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 걱정이 되어 식량사정과 아사자 통계를 직접 장악하여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와 만나 주민들의 아사상태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조직부 책임간부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는 당원 5만 명을 포함하여 50만 명이 아사하였으며 1996년에는 11월 중순까지 벌써 아사자수가 100만 명에 도달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1996년에 양곡생산이 210만 톤밖에 안되기 때문에 긴급히 대책을 세우지 않고 이대로 나간다면 1997년에는 200만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식량배급으로 살아나가는 북한제도에서 식량배급까지 중단되다보니 사회적 혼란 상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2) 북한 경제위기의 기본 원인

북한 경제위기의 기본 원인은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와 군국주의라고 볼 수 있다.

(1)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는 소련의 스탈린 식 독재로부터 출발하였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더욱 개악한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독재는 김일성이 권력을 자기 아들에게 세습적으로 물려주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수령절대주의는 김정일에 의하여 수립되었다.

김일성은 40년대에 소련 극동군 특수여단에 입대하여 해방 전까지 소련 식 정치군사훈련을 받은 스탈린 주의자였으며 스탈린 식 독재자였다. 그도 자기의 정적들에 대하여 무자비한 독재자였지만 그래도 그는 풍파를 많이 겪은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계몽군주 적인 일면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고생을 전혀 모르고 아버지의 독재적 권력의 혜택만을 받으면서 독재만능주의자로 자라났다.

스탈린주의의 독재 이론은 노동계급 독재론에서 출발한다. 노동계급은 가장 선진계급이기 때문에 온 사회의 이익을 대표하여 독재하는 것이 정당하며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부대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여 독재하는 것이 정당하며 수령은 가장 탁월한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공산당의 이익을 대표하여 독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이론이다.

이와는 달리 김정일은 수령의 영도의 필요성을 절대화하는 데로부터 출발하는 독재론을 주장한다. 즉 수령의 영도가 있고서야 혁명적 노동계급의 당인 공산당이 있을 수 있고 공산당의 영도가 있고서야 혁명적 노동계급이 있을 수 있고 노동계급의 영도가 있고서야 혁명적 인민대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수령이야말로 공산당과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의 존재의 근거이며 그들을 대표하는 절대적인 독재자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소련 식 사회주의 붕괴의 기본원인을 민주주의를 무시한 수령독재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수령의 개인독재를 약화시킨 데서 찾았다. 그러므로 그는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 수령에 대한 개인우상화와 수령의 개인독재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는 수령의 유일 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고 수령의 유일 적 명령지시에 따라 전국이 한사람과 같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 열쇠로 간주하였다. 수령절대주의 독재란 곡 수령의 유일 사상과 유일 적 영도를 철저히 구현하는 수령개인의 독재라는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① 수령절대주의 독재는 북한 인민들로부터 막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수령개인의 독재이다.
북한에서 수령은 국가와 법의 위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당과 군대, 국가와 인민은 다 수령의 소유물과 같은 예속된 존재로 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 수령이 인민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가장 이상적으로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인민은 수령에게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수령의 사상과 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지 각자가 자기의 운명과 자기 개인의 이익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낳아주지만 사회, 정치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생명은 수령이 주기 때문에 수령은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어버이인 만큼 인민들은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할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사람들이 수령의 유일 사상으로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당의 유일 사상체계를 세운다는 것은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수령님의 사상으로 숨쉬고 행동하며 수령님의 사상밖에는 그 어떤 사상도 모르며 수령님을 목숨으로 옹호보위하고 수령님의 명령과 지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생명까지 다 바쳐 투쟁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령절대주의는 수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것을 인간의 삶의 목적으로, 최고의 도덕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수령에 대한 그 어떤 불만이나 비판이란 있을 수 없고 수령에 의한 인권유린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령이 남의 유부녀를 빼앗아가도 죄로 되지 않으며 여성들이 수령에게 몸을 바치는 것은 응당할 뿐 아니라 커다란 영광으로 간주된다.

수령이 있고서야 인민이 있다는 논리에 따라 수령을 인민이 선출한다는 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선거의 방법으로 수령을 선출할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추대하는 형식으로 수령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인민의 운명과 행복에 대해서는 수령이 다 책임지고 돌보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기 운명과 행복에 대하여 스스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수령의 명령지시를 충성으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들의 가장 큰 임무는 수령을 최상의 수준에서 극진히 모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 인민들은 죽도록 일하여 번 것을 수령을 잘 모시고 수령을 더 우상화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낭비하고 있다.

김일성은 간부들을 모여놓고 『국가의 돈을 여러 사람이 주인이 되어 쓰게 되면 공평하게 쓸 수 없다. 국가의 돈은 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 쓰도록 하여야 한다. 내가 혼자서 먹으면 얼마나 먹겠는가. 그러니 안심하고 국가의 돈을 쓰는 것을 나에게 맡겨두면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북한에서 수령을 위하여 쓰는 돈은 적은 것이 아니며 인민들에게 주는 부담은 매우 크다.

우선 직접 수령과 그의 가족을 경호하고 살림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호위총국은 인민무력성과는 관계없이 전적으로 수령에게 직속되어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신장비로 무장한 군대만 15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총국산하에는 수령과 그 가족들을 위한 특수제품(1호 제품이라고 함)을 생산하기 위한 식료품공장과 목장, 과수원, 양어장 등과 각종 편의 봉사시설들이 있다. 또 전국도처에 조금이라도 경치 좋은 곳에는 김일성, 김정일이 전용하는 특별별장이 건설되어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간의 전쟁이 꼭 한번은 더 있게 된다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전시에 수령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건설공사를 특수공병부대를 동원하여 다년간 추진시켜왔다. 평양의 지하철도도 전쟁을 예견하고 지하 80m∼100m깊이로 주로 암반 층을 뚫고 건설하였지만 김일성, 김정일을 위한 지하도로는 지하철도보다도 훨씬 더 깊이 파고 건설하였다.

이러한 지하도로가 수도와 부근의 주요 별장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평양시로부터 약 40㎞ 떨어진 순천군 자모산(약 600m고지) 별장까지 연결되어 있다. 자모산 별장은 별장이라기보다 전시 하에 쓸 수 있는 수령의 별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자모산 별장으로부터 약 50㎞ 떨어진 북부산악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영원별장(이것도 전시별궁이라고 볼 수 있음)까지 가는 지하도로가 1996년 말경 완공되었다고 한다. 김정일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간부들과 연일 협의회를 하다가 사망한 묘향산 별장의 의료시설이 평양에 있는 중앙정부병원 시설보다 못하지 않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김일성, 김정일을 위한 별장들의 수준이 얼마나 훌륭한가에 대하여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는 수령의 동상과 사적비, 사적관과 박물관, 혁명역사연구실 등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건설물들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각도 소재지에는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주변은 인민들이 모여 주요행사를 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정중하게 잘 꾸려져 있으며 전시에 폭격으로부터 동상을 대피시키기 위한 견고한 지하시설까지 잘 건설되어 있다. 심지어 김일성, 김정일이 외국손님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진열보관하고 있는 전람관을 묘향산에 건설하여 놓았는데 지상건물이 웅장할 뿐 아니라 지하 궁전이 규모도 더 크고 화려하여 볼만하다.

수령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려는 시도는 소련의 창건자인 레닌묘 건설로부터 시작되어 모택동, 호지명 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묘가 건설되었다. 이 묘들은 다 크지 않은 건설물이며 그것을 건설하는 것이 국가와 인민의 부담으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김일성의 경우에는 생전에 국가주석궁전으로 쓰고 있던 거대한 건물 전체를 그의 시신 보관궁전으로 전환시켰으며 북한 인민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고 있는 상황에서 주석궁을 시신궁전으로 개건 확장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금과 자재를 투하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것이다. 이때 김일성의 시신궁전을 꾸리는데 쓴 자금으로 양곡을 사다가 인민들에게 배급하였더라면 식량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이에 대하여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가와 인민은 오직 수령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수령우상화건설에 국가재산을 물쓰듯해 온 김정일로서는 응당한 일일뿐 아니라 긍지 높은 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독재는 북한 인민들에게 막대한 물질적 부담을 줄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다.

북한 인민들에게는 개인을 위한 생활은 원칙상 허용되지 않고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의 생활만이 인정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다 일정한 조직에 망라되어 있으며 조직의 사상적 및 조직적 통제 밑에서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모든 조직이란 결국 수령의 유일 사상과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정치조직이다.

북한 주민들은 매주 한번씩 조직별로 모여 1주일간 어떻게 수령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했는가를 조직 앞에 고백하고 참석한 조직성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이것이 생활총화 회의이다.

북한에서는 수령의 유일 사상만을 신봉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당원이건 비당원이건 관계없이 다 수령의 사상을 학습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수령의 사상과 배치되는 다른 사상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사상의 자유,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헌법에 신앙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지만 그것은 다 대외선전용이다. 헌법자체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은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며 그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수령의 명령지시이다.

북한에서는 거짓말을 믿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며 양심을 속이고 수령과 그 측근자들에게 아부아첨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수령우상화를 위하여 만들어낸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활동역사라는 것이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허위 날조한 것이라 하여도 북한 인민들은 무조건 그것이 진실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학습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일이 소련의 하바롭스크에서 출생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백두산 밀영에서 낳았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야 하며 김일성은 물론 그의 동료들도 붉은 군대가 북조선에 진주할 때에는 한 명도 참가한 사실이 없는데도 북조선을 김일성이 해방하였다고 주장하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북한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지만 『북한은 지상낙원이고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로서 사람 못살 땅』이라고 하면 그대로 믿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은 1992년에 김정일 탄생 50돐에 즈음하여 자기 아들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시(詩)라는 것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김정일을 칭송하는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한다』고 썼다. 우리는 그 『시』를 생각할 때마다 김일성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민망스러웠고 특히 외국손님들 앞에서 그 시를 소개할 때에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치원 어린이들로부터 중앙당 비서들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다 암송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니고 자기의 희망을 꽃피워나가야 사람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운명은 수령에게 맡기고 수령의 사상의지대로만 살고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데서만 삶의 보람을 찾을 것을 강요당하고 있으니 그 인간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이러한 북한 인민들로부터 경제건설에서 창조적 적극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실상 협동농장의 농민들은 농사를 잘 지어 양곡을 많이 생산할수록 이익이 돌아오는 것은 없고 노고만이 늘어난다고 노골적으로 불평을 한다.

농사를 해 놓으면 농민들에게 식량만 빳빳하게 남겨 놓고 나머지는 국가가, 어떤 때는 군대가 직접 다 빼앗아간다. 그러니 양곡을 많이 생산하면 그것을 담을 가마니를 짜야 하며 그것을 수매소까지 운반해갈 일감이 늘어날 뿐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②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의 개인독재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적 소유를 수령의 개인소유제로 개변시켰다.

1974년에 김정일은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때부터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의 공동정권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우선 자기를 『당중앙』 또는 『당』으로 내세우면서 국가경제로부터 당 경제의 명목으로 떼 내어 자기 개인의 경제를 만들었다. 당 경제에는 없는 것이 없지만 특히 외화벌이에 필요한 기업소들이 집중되어 있다. 당 경제는 생산설비가 좋을 뿐 아니라 생산조건도 우선적으로 보장된다. 예컨대 평양근교인 상원에 있는 시멘트공장은 서구라파에서 수입한 공장인데 전국의 모든 시멘트공장들이 전력부족과 생산조건이 보장되지 않아 조업을 중단하여도 이 공장만은 정상적으로 가동한다. 국가(정부)는 당 경제가 제기하는 요구를 해결해줄 의무만을 지닐 뿐 그 관리에 간섭하거나 통제할 권한은 전혀 가지지 못한다.

김정일은 또한 군대경제를 국가경제로부터 분리시켜 수령직속경제로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기부터 북한 통치자들은 소련과 중국이 다 좌우경적 과오를 범하여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남한을 군사적으로 해방할 데 대한 전략을 세우고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키는 노선을 채택하였다. 이때부터 군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대되었다. 김정일은 군대경제도 당 경제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는 일체 간섭하지 못하고 군대경제의 요구를 보장해 줄 의무만 지게 하였다. 당과 군대가 수령개인의 것인 만큼 당 경제와 군대경제가 수령개인의 경제로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 경제와 군대경제가 국가경제와 완전히 독립하여 자체의 힘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을 우선적으로 가져가며 당 경제와 군대경제에서 걸린 문제가 있으면 국가경제는 전력을 다하여 그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경제규모의 비중은 당 경제와 군대경제, 국가경제가 20% : 50% : 30% 정도라고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될수록 원자재의 공급과 생산조건을 당 경제와 군대경제에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다보니 상대적으로 국가경제에 돌아가는 몫은 더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민생활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설사 당과 군대에서 자금과 자재를 많이 쓴다 하더라도 명목상 내각 총리 산하의 경제를 총리나 국가계획위원장과 같은 경제전문가들이 자기 결심에 따라 합리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면 북한 경제를 완전한 파탄상태에 까지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은 국가경제는 내각총리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지만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 자기비준을 받아 처리하는 엄격한 제도를 세우고 있다. 예컨대 평양시에 새로 주택을 몇 동 건설하였다고 하면 그것을 정부에서 각 기관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기관들이 저마다 김정일에게 자기 기관에 우선적으로 배정해 줄 것을 탄원하는 제의서를 올려 비준 받게 된다. 이리하여 김정일은 내각총리에게 실정에 맞지 않는 명령과 지시를 내려 먹여 경제관리에서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 경제나 군대경제 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 대해서도 소유권은 완전히 수령개인에게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1996년에 전력사정이 매우 어렵게 되자 특수권력기관들에서는 총리와 협의도 하지 않고 저마다 직접 김정일에게 자기기관에 전력을 우선적으로 공급해 줄데 대한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았다. 김정일의 비준문건은 곧 법이기 때문에 특수권력기관들에서는 이 비준문건을 가지고 내각의 전력공업성을 찾아가 전력을 내라고 강요하였다. 전력공업성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김정일의 비준문건을 집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김정일에게 상소하였다. 원래 수령의 비준문건은 무조건 집행해야 하지만 김정일도 이번만은 상소가 일리 있다고 판단하고 전력공업성의 상소문건을 중앙당 비서들이 협의하여 처리하도록 지시를 주었다. 우리가 조사해보았더니 특수권력기관들이 전력을 우선적으로 공급받도록 김정일의 비준을 받은 문건은 190개나 되었다.

바로 사태가 이러하다보니 일부 경제일군들은 차라리 지주가 소작인에게 타작비률을 정해주는 것처럼 당(김정일)에서 내각에 당 경제, 군대경제에 바치는 물자비률을 미리 정해주고 내각총리 산하에 있는 경제는 총리와 경제전문가들이 창발성을 발휘하여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뒷소리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수령제도보다는 입헌군주제가 훨씬 우월하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③ 수령독재체제는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체제이다.
수령절대주의 독재하에서는 일하는 사람은 죽도록 일만하고 일이 잘못되면 책임은 혼자 진다. 독재자는 명령과 지시만 내릴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수령의 개인독재는 당 조직을 통하여 실현된다.

북한에서는 모든 단위에서 국가의 행정책임자가 최고책임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당 위원회가 최고 지도기관으로 된다.

당 위원회는 전임 당 일군들과 행정경제 일군들, 독재기관 일군들(경찰, 비밀정보일군, 검찰소, 재판소 일군들), 각종 사회단체 책임자들로 구성된 집체적 지도기관이다. 명목상은 집체적 지도기관이지만 사실상은 당 책임자의 독재기관이다. 당 책임자는 행정경제일군들을 지도통제할 권한을 가지며 행정경제일군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다. 독재기관 일군들과 사회단체 일군들은 당 책임자와만 관계를 가지며 행정경제 책임일군들과는 아무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원래 공식적으로는 해당 단위에서 당 책임자와 행정책임자는 동급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당 책임자에게 행정책임자가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다. 말단 행정단위인 어느 리(里)에서 당비서가 행정책임자인 관리위원장을 네 번이나 갈아치우며 전횡을 부리기 때문에 관리위원장이 상급당인 군당위원회에 상소를 하였다. 상소를 받은 군당책임비서는 해당 리당비서와 관리위원장을 불러다 놓고 관리위원장은 리당비서의 머슴이나 같기 때문에 리당비서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결론 한 바 있다. 리당비서의 관료주의적 작풍을 비판하지 않고 관리위원장에게 절대 복종할 것만 강조하였다는 비난은 받았지만 이것은 행정경제 일군들에 대한 당 일군들의 세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로 된다.

내각총리는 행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당적으로도 정치국 위원이라는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당 조직의 지도통제 밑에서만 사업한다.

전국의 모든 당 조직은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유일적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중앙당 조직부만은 특별히 『조직지도부』라는 명칭을 쓴다. 중앙당의 다른 부서들은 『지도』라는 이름을 쓰지 못한다. 당 일군들에 대한 인사사업은 당 조직부에서만 할 수 있다. 내각총리는 자기 산하에 있는 공장지배인이나 기사장에 대하여 지시할 권한이 있지만 공장의 최고지도기관인 공장당위원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실제적인 공장의 주인은 공장 당비서이지 공장지배인이 아니다. 지배인은 공장 당비서의 신임을 잃으면 지배인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지만 내각총리가 신임하지 않는다고 하여 철직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공장지배인은 총리의 지시보다도 공장 당비서의 지시를 더 중요시한다. 만일 내각총리가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 공장지배인과 지배인을 옹호하는 공장 당비서에 대하여 문제를 세우려면 중앙당 조직부에 제기하여 중앙당 조직부가 해당 공장 당 위원회의 사업정형을 알아보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내각총리가 경제관리의 총책임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산하 공장사업을 자기 결심대로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공장에서 생산계획을 미달하거나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공장사업을 좌지우지하는 공장 당비서는 책임지지 않고 공장 당비서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공장 지배인이나 기사장이 책임진다. 해당 단위에서 당 일군들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책임추궁을 하게 되면 수령의 유일 적 영도를 충실히 받들어 나가는 당 일군들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되며 이것은 결국 수령의 권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 일군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오직 한 급 더 높은 당 위원회만이 할 수 있으며 종국적으로는 수령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행정경제일군들은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당 조직의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 속에서만 일하게 되며 창발성을 발휘하여 일할 권리는 가지지 못하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억울하게 책임만 진다. 이와는 달리 당 일군들은 일이 잘되면 그것을 수령의 영도의 현명성과 수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간 당 일군들의 공적으로 내세우며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는 수령의 영도는 옳았지만 그것을 집행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하며 책임을 행정경제일군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결국 수령과 그의 수족들인 당 일군들은 실정도 모르며 일을 책임적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행정경제일군들 까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경제를 망친 근본책임은 행정경제 일군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경제 일군들이 해야 할 사업을 가로타고 이래라 저래라 하며 실정에 맞지 않는 지시와 명령만 내림으로써 행정경제일군들이 경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없게 만든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인 당 일군들에게 있는 것이다.

(2) 군국주의

마르크스주의는 무산계급독재와 폭력혁명을 주장한다.
독재는 곧 폭력이며 폭력은 군대에 의하여 대표된다. 독재를 지탱하는 종국적인 힘은 군사력이다. 그러므로 독재와 군국주의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소련 식 사회주의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군국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독재의 면에서나 군국주의의 면에서 일반적인 소련식 사회주의 나라들과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소련에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와 그의 개인독재가 심했다고 하지만 스탈린의 독재를 수령절대주의 독재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스탈린은 정권을 자기 아들에게 세습적으로 물러줄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간판을 걸고 정권을 자기 아들에게 세습적으로 물러준 수령절대주의는 오직 북한에서만 볼 수 있다.

또 소련에서 군국주의적 경향이 농후하였다고 하지만 군사독재를 실시하지는 않았다. 선군 정치라는 구호를 내걸고 군사독재를 표방한 것은 오직 북한 정권뿐이다. 오늘날 북한 정권은 완전한 군사독재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당의 독재와 군사독재를 결합시킨 수령의 개인 독재체제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직과 인민군 최고 사령관직을 겸하고 있다. 노동당 총비서의 명령지시에도 전국과 전민이 다 복종해야 하며 최고 사령관의 명령지시에도 전국과 전민이 다 복종해야 한다. 기념행사때 당의 깃발과 최고사령관 깃발을 동격에 놓고 계양하고 있다. 김정일은 1991년 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된 다음부터 최고사령관 직위에 대하여 더욱 애착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94년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부터는 당 직위는 쓰지 않고 최고사령관 직위만을 쓰면서 위대한 장군님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믿을 것은 군대밖에 없다고 하면서 더욱 군사독재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북한에서 군대는 하나의 독자적인 왕국을 형성하고 있다. 즉 공화국 안에 또 하나의 공화국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군대는 제2의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군대에는 없는 것이 없다. 군대는 자체의 강력한 경제력과 과학기술 역량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모든 힘이 군대를 강화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국가를 위하여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위하여 국가가 있는 격으로 되어 있다.

노동자 약 50만을 가지고 있는 전문 군수공장들은 생산설비도 일반 공장들에 비하여 월등하게 잘 정비되어 있으며 생산조건도 국가적으로 우선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군수공장들에 대하여 조금도 간섭하지 못하지만 정부산하 공장들은 군대에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산하 공장가운데서 시설이 좀 좋은 공장들에는 다 군수과제가 부과되어 있다.

군대는 전국적으로 가장 위력한 건설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군대는 방대한 군사시설들을 건설하고도 여유가 있어서 수령을 위한 특수건설대상과 발전소를 비롯한 대규모적인 어려운 건설대상들을 맡아서 건설하고 있다.

군대는 많은 대학들과 훌륭한 과학기술연구기지를 가지고 있다. 군대는 자체로 우수한 과학기술인재들을 양성해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우수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뽑아 자기의 연구기관들에 집중시키고 있다. 정부산하 연구기관들에 비하여 군대의 과학기술연구기관은 연구조건도 월등하고 과학기술역량도 훨씬 우수하다.

군대는 양적으로도 대단히 많다. 1990년에 내각의 가장 중요한 부총리이며 당에서 다년간 사업한 간부의 말에 의하면 정규군이 170만과 안전군(경찰무력과 국가보위부 무력) 30만을 합하면 200만이 무장인원들이라고 하였다. 또 중앙당 농업담당비서의 말에 의하면 인민군대가 소비하는 식량과 500만의 농민(가족까지 포함하여)이 소비하는 식량의 양이 같다고 하였다. 북한 인구를 2천300만으로 볼 때 북한의 군대 수는 전시동원 상태와 다름없으며 또 일상생활 자체가 항상 준전시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대량살상무기와 신형무기개발에는 자금과 자재를 아끼지 않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도 오래하고 총리도 한 바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이 전문가를 동원하여 강국의 군사력 상태를 종합적으로 비교해보니 미국, 러시아, 중국 다음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특히 화학무기는 세계적으로 3, 4위를 다투는 상태에 있다고 하였다.

소련이 붕괴된 다음 러시아의 어느 유력한 야당지도자가 북한 당 국제부에 고성능 무기를 팔아줄 수 있다는 것을 제기하여 왔음으로 당 국제부가 무기목록을 첨부하여 이 사실을 김정일에게 보고한바 있다. 그는 무기목록을 보고 『이만한 것은 우리도 다 만든다. 지금 우리의 무력은 지난날 소련의 극동군의 무력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하였다. 북한군의 무장장비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기 실정에 맞는 무기를 다 자체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우점 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약한 작은 나라에서 방대한 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고 국방공업발전에 큰 힘을 기울이다보니 이것이 경제에 주는 부담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일반적으로 국가예산에서 군사예산이 50%정도 차지한다고 하지만 군대에서 필요할 때에는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결정하면 다른 예산집행을 다 중단하고 군대가 요구하는 대로 자금과 자재를 대주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군사예산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북한 전역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고 전 국민을 무장시켰다. 그들은 인민들이 군대의 모범을 따라 배울 것을 요구하면서 사회생활전반을 군사화 해나가고 있다. 이것은 전형적 군국주의이며 이것이 북한의 경제발전에 주는 부담과 장애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3) 북한의 위기와 우리의 대응전략

우리는 북한의 위기가 아무리 심각하여도 50여 년간 다져온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가 단번에 붕괴되어 러시아에서와 같이 자본주의가 복구되지는 않으리라고 보았다.

북한 내부에는 독재체제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반체제역량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최고도로 정밀하게 째여 진 북한 독재체제하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반체제 역량이 크게 자라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 이였다. 중국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정상적인 혼란상태를 10년간 겪으면서도 붕괴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좌경적 독재의 결함으로 하여 북한 체제가 쉽게 무너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북한의 출로의 하나는 최후 발악적으로 무모한 남침전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일과 같이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이 자살적인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다른 하나의 출로는 중국식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 중국은 북한과 같은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모택동의 사망과 함께 등소평의 영도 밑에 수령제를 철폐하는 혁명을 수행한데 기초하여 개혁개방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소련식 수령 제를 몇 배로 더욱 개악한 수령절대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당장 중국식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는 것은 이것 역시 자살의 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김정일이 결코 접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마지막 출로는 김정일이 중국에 가 붙어 중국의 비호 밑에 자기의 수령절대주의 독재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개혁개방을 하는 길이다. 이 길로 나가면 북한 인민은 장기간에 걸쳐 수령절대주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될 것이며 남북한의 통일은 요원한 것으로 멀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록 북한에는 반체제역량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조국의 절반 땅인 남한에 강력한 반 독재역량이 있기 때문에 남한 동포들과 협력하고 미국의 국제적 지원에 의거한다면 능히 김정일의 수령독재체제를 붕괴시키고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하게 되었다.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북한의 경제가 전면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진 조건에서 한. 미. 일이 긴밀히 협조하면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한편 김정일이 궁한 나머지 중국에 가 붙지 않도록 식량과 의약품 같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대대적으로 주게 되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는 유지되지만 5년 이내에 북한의 군수공장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산 설비들이 다 파철로 전환될 것이고 경제적으로 재생할 능력이 없어질 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완전히 제거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것은 곧 북한 통치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 통치자들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한 전략을 전개하는 한편 한. 미. 일과 민주주의적 국제사회가 북한 인민들을 민주주의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내부침투 작전을 벌려나간다면 북한 내부에서 반체제역량이 급속히 자라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개혁개방을 주도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 교체하고 적어도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때 우리는 이러한 대북 전략을 북한 통치자들을 고사(말라 죽이는)시키는 전략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이와 같은 대북 전략은 남한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통치자들의 전쟁도발 위험성에 주되는 관심을 돌리고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사고하고 있었다. 남한은 우리가 예견한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였으며 북한 실정에 너무 어두어 우리가 진실을 말해도 『설마』하고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때는 바야흐로 정권교체 시기였음으로 남한 당국은 자체의 적극적인 대북 전략을 세우려는 것보다도 이른바 국제적인 연착륙노선을 따라가는 것같이 보였다. 정권이 바뀌게 되자 한국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포용정책보다 한 걸음 더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는 대북 햇볕정책을 실시하게 됨으로써 남북간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키고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대북한 포용정책이나 한국의 대북 햇볕정책 자체에 대하여 평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정책의 역사적 의의와 정당성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직 그 결과가 불투명하여 세상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키는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여기에서 북한 문제 또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만 지적하려고 한다.

(1) 북한의 전쟁도발위험성 문제

김정일은 허장성세하기 좋아하며 벼랑 끝 전술로 당장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주변 나라들을 위협하지만 그는 전쟁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늘 측근들에게 외부세계가 자기의 정체를 잘 알 수 없도록 연막을 치고 안개가 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가 자기의 반인민적이며 비인간적인 독재의 정체가 외부세계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허장성세하는 벼랑 끝 전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타산에 밝고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철저한 개인중심주의자이다.

김정일의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는 북한의 수령으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며 최대의 희망은 통일한국의 수령으로 되는 것이다.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여도 이 이상의 지위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에서 실패하는 날에는 북한만의 수령의 지위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 보존할 수 없게 된다.

김정일은 전쟁을 일으키면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어도 종국적으로는 패망 당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자살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모험을 감행할 리가 없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이러한 판단에 기초하여 김정일의 전쟁도발책동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책동에는 강한 타격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던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1993년 핵 문제와 관련하여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미국의 공격을 매우 걱정하였으며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크게 환영하였다. 그리고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 김일성은 미국군대가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한 통일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김정일은 미국만은 대단히 무서운 존재라고 하면서 강경고자세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미국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는 특히 소련과 동구라파 사회주의가 무너진 다음부터는 대외적으로 호전적인 발언을 많이 하면서도 실지로는 자기의 체제유지에 부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만일 1993년에 특수핵사찰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미국이 원칙을 고수하는 확고한 입장에서 북한 통치자들에게 최후통첩을 하였더라면 10중 8-9는 김정일이 굴복하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개인의 권력밖에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없다. 그는 목숨 바쳐 지키려는 그 어떤 고상한 이념이 없으며 자기의 명예를 위해 자살할 인물도 아니다. 개인의 이익과 힘만을 믿는 그는 큰 힘 앞에는 반드시 굴복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김정일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야망을 한시도 버리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군만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벌써 남침전쟁을 일으켰을 수 있다. 이 경우에 그는 미국이 남한을 도와 참전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 중요한 전략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도 이러한 전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그의 성격으로 보나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으로 보아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들의 과학기술문화수준을 높이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북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정상적인 길을 통하여 남한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을 허위선전으로 기만하여 자기에 대한 개인숭배를 조장시키고 테러와 , 전쟁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승리하는 것을 마치 정치의 비결인 것 같이 오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독재를 버릴 수 없으며 테러와 전쟁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 지금은 체제 유지에 급급하여 남침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김정일의 수령독재체제가 존속되는 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은 항시 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비는 절대로 필요하다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

1993년에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조치였다. 북한은 전국이 요새화 되어 있고 전민이 조직사상 적으로, 군사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정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쓰면 엄청난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치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정당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동결시키기 위한 정치적 외교에서 필요이상 양보하지나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의 규정을 어기고 핵무기를 생산한 것은 국제조약을 어긴 범죄행위이며 핵사찰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들이 조인한 국제조약을 무시하는 옳지 않은 행위인 만큼 북한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정치적 공세를 취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하여 북한이 먼저 남침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94년 이후의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북한의 경제형편은 흑연로 발전소건설을 더 추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설사 그 동안에 조잡한 핵무기를 한 두개 더 생산한다하여도 그것이 붕괴에 직면한 북한을 구원하는 수단으로는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소련이 핵무기가 부족하여 붕괴된 것이 아니다. 만일 이때 미국이 국제조약의 원칙에 따라 북한에 대하여 계속 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하며 경제적 봉쇄를 강화하였더라면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명분도 뚜렷이 과시되고 북한의 침략성을 마비시키고 그 붕괴를 촉진하는데 보다 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이러한 뚜렷한 명분 앞에서는 북한을 동정하는 중국도 반대하여 나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핵무기 자체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핵무기라면 미국이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적지 않다. 위험성은 북한과 같은 침략성이 강한 독재국가의 수중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험성을 제거하려면 북한의 독재정권을 제거해야지 핵무기 생산을 일시 중단시킨다고 하여 북한의 위험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붕괴에 직면한 북한 독재정권을 구원하는데는 미국이 제공한 중유 50만톤도 적지 않은 도움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중유 50만 톤을 받지 못하고 계속 핵무기 생산에 몰두하였더라면 쓸데없는 핵무기만 몇 개 더 가지고 망해버렸을 것이다. 제네바협약 체결에서 미국은 마땅히 북한의 위험성의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원대하고도 원칙적인 전략에 의거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북한 통치자들은 이미 생산해놓은 핵무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추궁도 받지 않았으며 또 특수핵사찰 대상에 대한 사찰도 받지 않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개발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핵무기 생산책임자들은 그때에도 벌써 경수로 발전기를 이용하여서도 핵무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언명한 바 있으며 실지로 그들은 제네바협약 체결 이후에도 핵무기 생산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북한의 인권문제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인류공동의 과업이며 인권유린자들은 세계 인민들의 공동의 적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권유린이 가장 혹심한 나라는 북한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북한은 온 나라가 하나의 감옥으로 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마땅히 인류공동의 관심사로 되어야 하며 특히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할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는 유일 초대강국인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문제이다.

미국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침략을 반대하고 인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커다란 힘을 경주하고 있으며 응당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유린의 왕국이라고 볼 수 있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보고도 못 본체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있다.

물론 북한이 호전적인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다루기 쉬운 대상에 대하여서는 강경하게 대처하고 다루기 어려운 대상에 대하여서는 문제가 비할 바 없이 더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보고도 못 본체하고 지나간다면 미국에 대하여 기대를 걸고 있는 세계 인민들의 실망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저지시키는 데 1차 적인 관심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 문제가 미국의 국익과 직접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소련과 같은 초대국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는데 북한이 유치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을 위협하면 얼마나 위협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비하여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이익에 부합된다. 북한의 인권문제에서 구원의 대상은 북한 통치자들이 아니라 독재통치하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수천만 북한 인민이다. 북한 인민들은 미국의 구원의 손길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여주면 북한 인민은 미국의 견결한 동맹자로 될 것이다. 2천300만의 동맹자를 얻는 것이 미국의 이익으로 되는가, 아니면 인민의 반역집단으로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북한의 통치집단의 죄를 내버려 두는 것이 미국의 이익으로 되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의 독재통치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며 설사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미국을 반대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북한의 인권문제를 당장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엄중시하는 입장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문제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북한의 인권문제는 덮어놓고 넘어가는 태도를 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마땅히 북한의 인권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고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북한 통치자들에게 정치적인 , 도덕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큰 물질적 희생을 부담하지 않고서도 자기의 국제적 권위와 지도력에 의거하여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미국은 인권 옹호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북한의 인권문제해결에 적극적인 관심을 세계인민들에게 보여주는 것 만으로서도 북한의 인권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세계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으며 지도적 국가로서의 정치, 도덕적 권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아직 인권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고 오직 평화에 대해서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의 목적도 인권을 수호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총격전을 하여 사람들을 죽여야만 전범자로 되고 적수공권의 인민들을 쏴 죽이고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는 자들은 평화의 적이 아니란 말인가. 북한 독재자들은 수백만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 수십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정치수용소에 넣고 전대미문의 인권유린행위를 강행하며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생명을 빼앗고 있다. 오늘날 북한 통치자들을 국내에서 선전포고 없이 반인민적 전쟁을 항시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흉악한 전범자로 인정하고 비타협적으로 대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4)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 문제

북한의 독재자들과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갈라보아야 한다. 독재통치자들은 인민을 기만하고 억압하는 범죄자들이지만 일반 주민들은 기만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희생자들이다. 독재자들은 가해자들이고 인민들은 희생자들이다. 독재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고 인민들은 자유민주주의의 동맹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독재자들을 도와주는 것은 곧 자유민주주의의 적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 인민들은 독재의 희생자들인 만큼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북한 주민들도 현실적으로 독재자들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독재자와 한패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만당하고 강제 당하고 있기 때문이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희생자는 도와주는 것이 응당하다.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식량과 의약품 등 그들을 기아와 빈궁에서 구원하기 위한 동포애 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은 무조건, 그리고 더 많이 할수록 좋다. 왜냐 하면 북한 인민들은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동맹자로 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을 도와주면 그들이 동포애적 사랑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체험하게 되어 민주주의적으로 각성될 수 있으며 독재자들의 기만과 억압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인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 같은 생활 필수품을 보내주면 북한 통치자들과 군대가 가로 채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원조물자가 들어가면 인민에 대한 통치자들의 약탈이 조금 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원조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물론 원조가 인민들에게 직접 들어가도록 하면 더 좋지만 원조를 많이 주면 그 자체를 인민들에게 감출 수 없으며 결국 북한 인민들을 민주주의적으로 각성시키는데 도움으로 될 수 있다.

북한 인민들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원조와 경제원조 일반은 구별해 보아야 한다. 북한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원조는 어디까지나 식량과 의약품 등 북한 인민들을 극심한 생활고에서 구원하기 위한 생활필수품을 원조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원조 일반은 북한의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식량과 의약품을 주는 것도 경제적 원조의 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직접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자립성을 강화하는데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북한 인민들을 반 독재사상으로 각성시키며 북한 경제를 외부원조에 의존하도록 만드는데 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독재체제가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바로 경제적 위기 때문인 만큼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어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곧 북한의 독재체제를 붕괴의 위기에서 구원해주고 북한의 독재체제가 계속 북한 인민들을 기만하고 억압하며 남침을 위한 군사력 강화를 도와주는 것으로 된다.

경제는 정치의 물질적 기초이다. 북한의 경제를 도와주어 그 자립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은 북한 독재체제를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게 된 근본원인은 북한의 반 인민 적인 정치체제에 있는 만큼 북한 인민을 진심으로 도와주기 위해서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고 북한의 불합리한 경제체제를 합리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바꾸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경제원조를 주는 것이 좋다. 그것은 우선 북한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데 도움으로 되는 조건에서 경제원조를 주며 북한의 독재체제가 붕괴된 다음에는 북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고 강화되도록 경제원조를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수령절대주의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민주주의 정권이 서게 되면 북한을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무조건 대대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의 북한은 통일된 조국의 한 부분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도 다 같은 조선사람들이고 우리동포들이다. 남북이 통일된 다음에 도와주는 것보다 지금부터 도와주는 것이 좋다. 도와주어야 통일이 빨리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남북간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회체제인 수령독재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대립되어 있으며 이것이 남북간의 기본 모순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면 6. 25전쟁 때 인민군대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때의 인민군대는 조선사람이 아니고 다른 민족이었던가 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원조하는 것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여 민주화하는 가장 현명한 전략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과는 싸우는 방법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방법으로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바로 냉전을 승리에로 이끈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탁월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 비타협적이었다. 그들은 군사적 대결과 경제적 경쟁을 배합하여 진행하였다. 소련 사회주의의 독재가 확고할 때 경제적 원조를 준 일이 없으며 오히려 경제적 봉쇄를 백방으로 강화하였다. 스탈린에게 경제적 원조를 주려고 생각한 냉전지도자는 한 명도 없다.

공산독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공산독재를 반대하는 인민들을 고무하기 위한 경제원조는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공산독재가 확고한 조건에서 경제원조를 주는 것은 공산독재를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김정일은 계속 강성대국건설의 기치를 들고 군사력을 강화하며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원조하는 것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강화해주는 것으로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설사 김정일이 자기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조건에서 부분적으로 개혁개방을 하여 자본주의적 경제형태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여 그것이 북한의 독재체제를 약화시키며 조국통일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은 입버릇처럼 자기가 공산주의혁명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한번도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한 적이 없으며 공산주의 사상에 충실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독재자로 변질된 아버지 밑에서 독재자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독재자로서의 우수한 자질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는 스탈린 식 독재와도 큰 차이가 있는 철저한 개인독재체제이다. 김정일은 자기의 독재체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김정일은 수령의 개인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조건에서는 중국식 개혁개방의 모범을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혁개방의 수준이 중국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할 것은 명백하다. 이러한 개혁개방이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약화시킨다고 볼 수 없으며 그것이 조국통일에 유리하다고 속단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히틀러의 파시스트독재도 자본주의에 기초한 것이지 사회주의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지금 적지 않은 개발도상나라들에 남아 있는 독재도 다 자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가 국가 정권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국가자본주의적 형태로서도 얼마든지 자기의 정치적 독재를 유지할 수 있으며 군국주의적 침략정책도 실시할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수령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다. 수령은 당과 국가와 군대의 주인이며 모든 국가 재산의 주인이며 인민의 주인이다. 문제는 수령이 주인으로 되고 있는 경제를 관리하는 방법을 어떻게 고치는가 하는데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공장과 농장을 수령이 소유하고 그것을 수령의 대리인들인 당 일군들이 공장과 농장을 명령식으로 관리 운영하여 왔다. 이러한 경제관리방법을 자본주의적 관리방법으로 고치면 수령을 유일한 독점자본가로 하는 수령독점 자본주의 경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적 관리방법이란 본질상 기업소들 사이의 자유경쟁을 허용하며 사회적 수요를 기준으로 하여 제품의 가치가 평가되도록 하여 기업소별로 이윤이 차례 질 수 있도록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을 확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가와 기업가가 따로 있고 지주와 농장경영자가 따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국가권력을 절대적으로 장악한 수령이 생산수단의 유일한 독점적 소유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의 부하들이며 대리인들이 기업주로 되어 서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수령독점자본주의체제가 북한에 수립된다면 수령독재의 수명이 더 연장되고 독재 받는 인민들의 고통과 불행이 더 장기화 될 뿐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간의 대립인 독재와 민주주의간의 대립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고 통일의 가능성은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개인독재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김정일이 이런 방향에서 개혁개방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어떻게 조국통일을 촉진하는 전략으로 될 수 있단 말인가.

(5) 남북한 문제의 본질

남북한간의 대립과 통일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남북한의 대립과 통일문제를 민족내부의 문제로만 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한의 통일문제를 전적으로 민족내부의 문제로 보면서 통일문제는 외부의 간섭이 없이 남북한의 당국자들이 민족화해의 정신에 따라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남북한의 주민들이 같은 민족이고 남북한의 대립이 한 민족, 한 강토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은 처음부터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제2차대전의 종결로 조선민족은 일본제국주의 기반에서 해방되었으나 남한에 진주한 미군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의하여 한반도는 두 부분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북한은 소련의 영향 밑에 사회주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남한은 미국의 영향 밑에 자본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되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되어 서로 대립하게 되었으며 한반도는 양대 진영의 냉전의 중요한 대결장으로 되었다. 이것은 남북간의 분단과 대결이 처음부터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소련의 붕괴로 국제적 범위에서 냉전은 종식되었으나 냉전시기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북한의 변태적인 독재체제는 그대로 남아있으며 그 결과 남북간의 체제상의 대립은 의연히 남북을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기본 요인으로 되고 있다. 여기에서 남북간의 대립은 민족내부에서 남쪽과 북쪽간의 지역적인 대립인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두 체제간의 모순이며 그것은 의연히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모순이라고는 할 수 없을 수 있어도 독재체제와 민주주의체제 사이의 모순인 것은 틀림없으며 독재와 민주주의간의 모순은 현 시기 국제무대에서 역사적 흐름의 기본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한간의 체제상 대립의 본질을 왜 독재와 민주주의간의 모순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북한의 체제상의 대립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대립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대립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보는 것은 잘못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모순을 계급적 모순으로 보며 사회주의를 새로운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사회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역사발전과정을 계급투쟁 과정으로 잘못 이해한데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사회주의 사상은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는 목적으로부터 제기되었다.

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의 결과 봉건적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새 사회가 건설되었지만 실제로는 빈부의 차이와 경제적 불평등이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인본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더욱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도를 사회주의적 소유제도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사상을 내놓았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의 창시자들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를 계급적 차이로 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의 차이로 보았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즉 인본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제도나 사회주의제도 자체를 귀중한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가진다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된 사회로 본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입장에서 역사발전 과정을 고찰하는데로부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를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적 차이에 귀착시켰다. 즉 노동계급의 이익에 맞고 노동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맞고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질적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 계급이 국가정권과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근로인민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지만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계급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노동계급의 독재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보다 우월하고 사회주의적 공동소유제도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제도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노동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에 자기 자리를 내주는 것이 역사적 필연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자기의 생존과 발전을 실현하는데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진다. 인간은 온갖 지배와 예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창조적 활동을 자유롭게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의 이러한 근본 요구에 맞는 사회는 발전되고 진보적인 사회이며 이런 요구에 배치되는 사회는 뒤떨어지고 불합리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사회제도의 진보성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사람들의 자주적인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어느 제도가 더 잘 보장해 주는가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여야 한다.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사상의 본질이 바로 인민들에게 국가와 사회의 주인의 지위를 보장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보장해 준다는데 있다. 이것은 사회제도의 진보성을 민주주의 원리를 어느 제도가 더 잘 구현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어느 사회가 인민들에게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잘 보장해 주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권은 노동계급의 독재정권 또는 공산당 독재정권이라고 한다. 생산에 종사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다 독재자로서의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 공산당의 독재라고 하지만 각이한 직업을 가진 많은 공산당원들이 독재자로서의 특권을 누린다고 볼 수 없다.

지난시기 소련에는 2천만의 공산당원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독재자로서의 특권을 누린 것은 아니다.독재자로서의 특권을 누린 것은 공산당의 수령과 수령의 독재체제를 직접 관리해나가는 관료들 뿐이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이런 특권층은 당원 총 수의 약 5%정도 된다고 보고 있다. 일반 비당원 근로대중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독재체제를 직접 관리하는 관료를 제외한 공산당원들은 공산독재정권을 지지옹호하는데서 앞장설 의무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적 소유를 사회주의적 소유의 높은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라는 사람은 없다. 결국 국가정권을 독점한 수령과 그의 관료들이 국가적 소유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장이나 농장의 재산을 맘대로 관리하고 처분하는 것은 수령과 그의 관료들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국가재산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고 절대로 침범하지 말데 대한 의무만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수령과 그의 관료들은 국가정권과 국가재산의 주인으로서 인간에 대한 지배권과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다 같이 독점한 막강한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특권에 비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의 특권은 보잘 것 없다. 자본가들은 비교적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전체 국가재산의 한 부분이며 매개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국가재산 전체를 소유한 공산독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국가정권에 대하여서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특권도 가지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권이 자본가계급의 독재정권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독재라는 주장은 말도 되지 않는 계급주의자들의 궤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지도기관을 선거하는데 자본가들만 참가하고 자본가계급 출신만이 선거될 자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민들이 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신분적 평등과 자유는 자본가들 뿐아니라 노동자, 농민, 소자산계층, 사무원 등 모든 사회성원들이 다 향유한다. 뿐만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권재민의 원칙에 의거하여 일반대중이 정권활동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시정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자본주의 정치제도를 자본가계급의 독재라고 하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생활분야에서도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유롭게 기업활동도 할 수 있다. 또 자본가가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게 대할 때에는 파업할 자유도 가진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근로자들이 국가에 고용되어 수령과 그의 관료들의 명령지시에 따라 일할 의무만 지니며 파업할 권한도 없고 사표를 내고 그만둘 자유도 없다.

정신문화 생활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차이는 더 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상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다 누리고 있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인민들이 이러한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사회주의적 독재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를 간단히 비교해 보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보다 비할바 없이 높다는 것이 뚜렷하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발전된 사회인 것이 아니라 뒤떨어진 사회이며 진보적인 새로운 사회인 것이 아니라 퇴보된 낡은 사회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사회주의적 독재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반대하다보니 민주주의 이전 사회인 봉건사회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독재는 봉건적 전제주의를 부활하는 방향에서 후퇴하였다.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와 수령의 개인독재는 봉건 왕을 연상시킨다. 대표적인 실례는 북한의 수령절대주의체제에서 정권을 세습적으로 자기 아들에게 물려준데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민주주의발전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제도의 진보성 여부를 규정하려고 한 사회주의 사상의 창시자들의 사상과도 모순된다. 이러한 명백한 이론적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정권은 다 계급적 독재정권인데 노동계급의 정권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이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정권은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모든 사실은 사회주의 독재야 말로 수령과 그의 관료집단인 소수가 전체 근로인민대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반 인민적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인 만큼 현시대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 이행하는 사회주의혁명의 시대라든가, 미래는 사회주의에 속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도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소유형태는 계속 변화되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를 소유형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무산계급독재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차이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소련 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사이의 경쟁에서 소련의 패배의 본질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비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우월성에서 찾기 전에 소련의 무산계급독재체제에 비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소련의 계획경제가 응당한 생활력을 발휘하지 못한 근본원인도 경제관리에서 민주주의가 결여되고 독재와 관료주의가 지배하게 된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봉건적 전제주의 정치체제로부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로의 이행은 위대한 혁명적 전환이었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체제로부터 소련 식 사회주의 독재체제로의 이행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근본 이유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체제를 더욱 발전 완성시켜야 할 역사적 과업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들이 이 역사적 과업을 외면하고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무산계급독재에 의거하여 새로운 사회제도를 무리하게 창조해보려고 시도하였다는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

바로 여기에 현실보다 이상을 앞세운 공산주의자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근절할 데 대한 이상적인 민주주의 구호를 내걸고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동정을 끌었다. 그들은 적어도 정권을 잡을 때까지는 이러한 이상에 충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권을 잡자마자 독재자로 변질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장악한 새 정권은 노동자, 농민의 정권인 만큼 착취와 억압과는 인연이 없는 정권이기 때문에 모든 근로자가 무조건 지지하고 받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정권을 장악한 자기들의 지배적 지위를 절대화하는 데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권을 잡기 전에는 인민에게 충실하였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인민을 억압하는 독재자로 변질되는 과정을 걷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