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관계협회한국보고서 이시우 2001/05/01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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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외관계협의회가 발표한
한(조선)반도 정책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검토함
한 호 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 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1998년 5월 29일 한(조선)반도 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한(조선)반도의 변화를 관리함(Managing Change on the Korean Peninsula)」이라는 제목이 달린, 서른 여섯쪽짜리 보고서가 교정쇄(uncorrected proofs)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보고서의 최종판은 6월 11일에 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보고서의 작성자는 대외관계협의회가 구성한 독자적인 특별연구반(Independent Task Force)이다. 이 특별연구반의 공동의장(Co-Chairs)은 몰튼 애브래모위츠(Morton I. Abramowitz)와 제임스 레이니(James T. Laney), 그리고 실무 책임자(Project Director)는 마이클 그린(Michael J. Green)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요건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보고서’가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대외관계협의회가 연구와 작성을 주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외관계협의회는 미국 정부의 외교 분야, 통상 분야, 군사 분야를 포괄하는 대외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민간 연구기관이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인 1921년에 창립된 이 연구기관은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서 대외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였던 전직 관리들, 연방의회 출신 의원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과 전문가들, 대기업 경영인들과 금융권 대표자들, 법조인들, 언론인들, 비정부단체 대표자들 약 3천 3백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 연구기관은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관한 토론회를 때때로 개최하고, 무게 있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정부에 건의함으로써, 대외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조절하는 데에 실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기관에서 격월간으로 펴내고 있는 전문지 『대외 문제(Foreign Affairs)』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해당 분야 전문지들 가운데 가장 권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이 연구기관의 회장은 레슬리 겔브(Leslie H. Gelb)다.
‘보고서’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작성 과정에 참가한 전문가 37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문가 37명은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다. 친(親)공화당 성향의 보수적 연구기관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에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는 점, 미국의 대외 정책과 관련하여 보수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의 관련자들이 많다는 점이 이 ‘보고서’의 보수적 경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이 원래 보수파 일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한(조선)반도의 정책에 관한 무게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중도적인 견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한(조선)반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균형 감각을 잃어 버리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보고서’ 작성과정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이 글의 끝에 붙인 ‘참고사항’을 읽어 보기 바란다) 국무부에 관련했던 사람 9명, 학계 인사 7명, 연방의회에 관련했던 사람 5명, 국방부에 관련했던 사람 4명,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 3명, 국무부 및 국방부에 관련했던 사람 3명, 국무부 및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 2명, 국무부 및 중앙정보국에 관련했던 사람 1명, 국방부 및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 1명, 정보기관에 관련했던 사람 1명, 언론계 인사 1명, 참관인(Observer)으로 참가한 현직 관리 7명, 후원자(Endorser)로 참가한 사람 3명이다.
‘보고서’가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대외관계협의회와 남(한국)의 관련 인사들이 협의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의 관련 인사들이란 보수적인 정책 전문 집단으로 알려진 ‘국제 문제 서울 포럼(Seoul Forum for International Affairs)’이다. 대외관계협의회 특별연구반 12명은 1998년 4월 23일 청와대를 방문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고, 이어서 24일과 25일에는 서울에서 ‘서울 포럼’과 협의회를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러한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남북통일 후에도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위해 주한미군은 반드시 필요하다. 주한미군 문제는 4자회담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북한을 대화에 응하게 하려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므로 미국의 협력을 기대한다. 한국과 미국 기업이 합작으로 대북 투자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별 연구반의 방문단은 ‘서울 포럼’과 협의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9개 항으로 된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바있다.
1. 우리의 목적은 남북의 대화와 화해를 증진시키고 한(조선)반도의 평화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다.
2. 북(조선)의 침략에 대한 한․미 연합군의 확실하고, 공동적인 억지력은 우리 외교의 안전 장치(backstop)다.
3. 우리는 한․미 두 나라가 북(조선)의 파괴가 아니라 평화적 변화(peaceful transformation)를 추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4. 한․미 안보동맹은 남(한국)의 방위 뿐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5. 남북 화해는 한(조선)반도를 더욱 안정화시키는 열쇠이며, 남(한국)은 남(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을 긴밀히 조정한 바에 기초하여 대북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
6. 북(조선)을 외부 세계에 개방하는 것은 미국과 남(한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
7. 미국과 남(한국)의 대북 정책을 일본, 중국, 러시아와 함께 조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8. 모든 당사자들은 조․미 기본합의서의 조건과 양해사항을 준수해야 하며, 한(조선)반도 에너지 개발기구를 지원해야 한다.
9. 미국은 지금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남(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2) ‘보고서’의 북(조선) 정세 인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보고서’는 「북(조선)의 악화되고 있는 상황(deteriorating situation)」이라는 항목에서 북(조선)의 현 정세를 해설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북(조선)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면서, “마이너스 투자가 8년 동안이나 계속되는데도 살아남은 국가의 역사적 선례는 거의 없지만, 어쨋든 평양 정권은 버티고 있다”고 적었다.
북(조선)이 겪고 있는 경제난의 원인에 대한 ‘보고서’의 견해는 외인론이다. 외인론이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유리한 교역 상대들을 잃어버렸고, 최근 아시아 경제 위기가 거기에 겹쳐짐으로써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북(조선) 경제난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외인론 보다는 내인론을 더 중시하면서, 북(조선)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내적 모순과 파멸의 필연성을 힘주어 말하곤 하는데, ‘보고서’에서는 내인론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① ‘보고서’는 북(조선) 경제난 때문에 생겨난 부정적인 결과들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몇 가지 잘못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테면, ‘2백만 아사설’ 같은 따위가 그것이다. ‘2백만 아사설’은 헛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극우세력들이 대북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에서 날조한 것이거나, 아니면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선 일부 민간 단체들이 식량 지원을 더 많이 이끌어 내려는 얄팍한 생각에서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 ‘2백만 아사설’ 같은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은 황장엽 씨다. 그는 안기부 산하 통일정책연구소에서 비공개 내부자료로 출간했다는 자신의 책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96년 11월에 사태가 너무 걱정되어 이와 관련한 통계를 장악하고 있는 책임자에게 지금 굶어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1995년도에 당원 5만명을 포함하여 약 50만명이 굶어죽었는데, 1996년에는 약 1백만명이 굶어죽을 것이 예견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만일 외부로부터 원조가 없는 경우 1997년에는 2백만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2백만 아사설’은 안기부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며, 황장엽 씨 같은 탈북자들을 동원한 대민선전용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부-황장엽-『월간 조선』으로 연계된 대표적인 보수강경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이런 헛소문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검토할 필요조차 없지만, 이에 대해 굳이 반박한다면 북(조선) 현지에서 식량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유엔 산하 기구 책임자들의 발언을 옮겨 적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까닭은 케네스 퀴노네스의 말대로, “현재 북한 식량사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유엔에 있다. 유엔에서 북한에 파견한 농업전문가들이 수집한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유엔 세계식량계획(UNWFP)의 총무 캐더린 버티니와 유엔 개발계획(UNDP) 북(조선) 주재 대표인 크리스티앙 르메르도 ‘집단 아사설’을 공식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유엔 기구 책임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게 ‘집단 아사설’이다. 만일 정말로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면, 분명히 사회적 동요와 불안정이 생겼을 텐데, 그렇다면 남의 나라에 대한 정보수집에서 으뜸간다는 미국 정보기관들은 왜 침묵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북(조선) 당국은 집단 아사로 인해 사회적 동요와 불안정이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집단 아사 사실을 감추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미국 정보기관들은 무능력 때문에 침묵하고 있고, 북(조선) 당국은 자존심 때문에 숨기고 있다고 강변할 것인가? 그들의 주장대로 만일 헛소문이 사실이라면, 북(조선)은 집단 아사로 인한 동요와 불안정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식량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집단 아사 사실을 발표하고 인도적 지원을 호소했을 것이며, 유엔 기구는 북(조선)을 긴급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황장엽류의 헛소문을 인용함으로써 보고서 전체의 신빙성과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②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보고서’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북(조선)이 경제난 때문에 정치적 불안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하면서도, 현재 체제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보고서’는 “객관적인 경제 현실들은 내란, 군사 반란, 또는 내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북(조선)이 그러한 단계에 처해 있다는 조짐은 없다”고 지적하고, “김정일은 앞으로 오랫동안 확고하게 장악하게 될 것이다”, “북(조선) 정권의 이념적, 정치적 국가 관리는 완벽한 듯하다”고 논평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커다란 의문이 생긴다. 내란이나 군사 반란이 일어날 것처럼 보일 만큼 심한 경제난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정치적으로는 안정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히 형용 모순이 아니면, 서양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불합리한 추론(non se․qui․tur)’이 아닌가.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안정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듯한 두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는 오늘 외부의 관측자들이나 분석가들이 북(조선) 정세를 인식할 때 풀기 힘든 수수께끼로 등장한다. 불행하게도 ‘보고서’는 이 수수께기를 풀기는커녕 ‘불합리한 추론’을 대충 언급하면서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 문제를 해명하는 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난의 정도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다. 분명한 사실은 북(조선)의 경제난이 내란이나 군사 반란 같은 정치적 불안정을 몰고 올 만큼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난이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둘째는 경제 부문과 정치 부문 가운데서 과연 어떤 부문을 좌표로 삼고 북(조선) 정세를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북(조선) 정세를 인식할 때, 경제․산업 부문은 변수(variable)로, 정치․군사 부문은 상수(constant)로 놓고 보아야 한다. 북(조선)은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일차적 원동력을 조선로동당의 정치 사업에서 구하고 있다. 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일관된 노선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 건설의 원동력을 시장에서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데 반해, 북(조선)에서는 정치 사업을 제대로 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특이한 경제 건설 노선은, 저들의 표현을 빌리면, 사상․이념과 생산․기술의 종합, 정치 사업과 경제 건설의 결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정치 사업이란 생산현장에 침투해 있는 각급 당조직들이 근로자의 사상을 움직여 창조력과 적극성을 발양시킴으로써 경제 건설을 추진하는 당의 사상 사업을 말한다. 예컨대 199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지휘관 현실체험’을 들 수 있다. 이 제도는 원래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을 한 해에 한 달씩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 파견하여 세포비서의 책임을 수행하게 하였던 ‘세포비서 현실체험’이라는 제도를 개선․발전시킨 것으로, 당 간부들을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 한 달씩 파견하여 세포비서가 아니라 생산단위의 지휘관인 지배인으로서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노동하고 학습하고 조직정치사업을 전개하게 하는 제도라고 한다. 이 때 당 간부는 제일 뒤떨어진 지방의 생산단위에 파견되며, 해당 생산단위에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당 중앙위원회에 소환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조선)에 상품․화폐 관계에 바탕을 둔 시장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원리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 사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북(조선) 사회의 특이성에 대해서 미 국무부 산하 대외원조처(USAID)가 발표한 북(조선) 실태 평가보고서는 이렇게 적었다.
북한 주민들은 자력갱생의 이념을 바탕으로 활력을 되찾아 온 역사를 갖고 있으며 계속된 위기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이들의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줄임) 북한주민들과 정부가 오랜 기간 고난과 심화돼 온 고립 속에서 이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복합적인 대응체제를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시장 기능은 경제 지표로 나타낼 수 있지만, 경제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당의 정치 사업은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그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외부에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치 사업을 빼놓고 경제 지표만을 헤아리다보면, 북(조선)의 경제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체제는 변함없이 안정되어 있는 ‘불가사의한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로, 북(조선)의 경제 지표는 당, 정, 군 3대 부문 가운데서 정무원이 총괄하는 국가경제 부문만을 나타내주는 것이므로, 경제 활동 전체의 1/3을 보여주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당과 군의 경제 활동은 비밀에 쌓여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알 수 없다. 조선로동당의 경제 활동이란 거대한 당조직을 운영․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조선)의 문헌을 보면, 정무원이 해결하지 못하는 재정 문제가 생겼을 경우, 당의 자금으로 해결하게 하였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의 경제 규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조선인민군도 거대한 자기 조직을 운영․관리하기 위한 경제 활동과 민간부문에 동원되는 경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대외무역부문, 군수공업부문, 민간건설부문, 그 밖의 생산활동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3에 해당하는 지표만을 놓고 북(조선) 경제를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북(조선)의 경제 지표를 산출하는 방식은 자본주의 경제 활동을 파악할 때 사용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북(조선)의 사회주의 경제 활동에는 들어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적어보면 이렇다.
1. 북(조선)의 국민총생산(GNP)에 대해서는 조사기관마다 매우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신빙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두루 알려진 바있다. 북(조선)의 국민총생산에 대한 통계가 얼마나 부정확한 것인가 하는 사실은 영국의 경제연구기관인 EUI가 내놓은 추산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연구기관은 북(조선)의 국민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없어서 한 가구가 4인 가족으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한 뒤, 북(조선)이 발표한 남녀 월평균 노임과 각 가구에 지급하는 각종 보조금을 합산한 다음, 이를 다시 1인 기준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추산했다고 하니 매우 부정확한 통계수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2.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 지표는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을 중심으로 발표되지만, 북(조선)의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상업 부문의 가치창출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생산만을 위주로 한 사회총생산(GSP: Gross Social Product)을 중심으로 하여 파악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사회총생산을 자본주의 사회의 국민총생산으로 환산했을 경우에 그 값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은 동․서유럽의 경험적 비교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있다. 남(한국)의 국민총생산을 사회총생산으로 환산했을 경우, 최저 27%에서 최고 41%까지 줄어들고, 북(조선)의 국민총생산을 사회총생산으로 환산하면 두 배가 늘어난다.
3. 한 사람 당 순물질생산(NNP: Net Material Product)을 비교해 보면, 남(한국)이 1980년에 들어서서 1천62달러 대 1천달러로 북(조선)을 앞선 것으로 분석되며, 1990년대에 와서는 남(한국)이 북(조선)을 약 두 배 앞서고 있다고 추정된다.
4. 한 사람당 사회총생산을 실제구매력 (PPP: Purchasing Power Parity)으로 환산했을 경우, 남(한국)은 2천4백 달러, 북(조선)은 2천 달러지만, 화폐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했을 경우는 상황이 달라져서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다. 북(조선)은 다양한 사회적 혜택을 인민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인민소득의 2차적 분배, 즉 식량, 연료, 주택, 무상교육, 무상치료, 생필품 공급 등의 혜택이 북(조선) 인민의 평균임금과 맞먹는 정도여서 북(조선) 인민의 실질노임은 지금 받고 있는 노임의 두 배가 된다. 1994년 9월 22일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북한 재정의 현황과 추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지난 1991년을 기준으로 북(조선)의 국민총생산에서 개인이 구매력을 직접 행사하는 부분은 16.9%이며, 남(한국)은 69.5%로 나타났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구매력 보상분은 북(조선)은 59.6%나 되는데, 남(한국)은 24.9%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북(조선)에서는 국가가 직접 개인의 구매력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국민총생산의 상당분을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북(조선)의 경제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90년부터 8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은 마이너스 고도 성장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표 상으로는 북(조선)은 벌써 오래 전에 경제 파탄으로 완전히 망해야 하는 결과가 나오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부에서 추정․발표하고 있는 북(조선) 경제 통계라는 것은 내부의 사정을 잘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주먹구구식이나 아전인수격으로 작성하는 추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북(조선) 붕괴설’ 같은 헛소문을 뒷받침하는 데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다.
북(조선)에서는 정치․군사 부문이 사회․경제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사회․경제 부문이 정치․군사 부문에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크며, 또한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치 부문을 맡고 있는 당과 군사 부문을 맡고 있는 군이 다른 부문에 비하여 더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부문들에 대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는 북(조선) 정세를 정치․군사부문은 무시한 채, 경제 부문을 유일한 상수로 설정해 놓고 정세를 읽으려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적인 분석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 분석의 결과는 당연히 잘못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보고서’의 맹점은 북(조선)이 지금 경제난 속에서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게 된 원인을 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보고서’는 경제난의 원인은 나름대로 분석하였지만, 정치적 안정에 관해서 잠깐 언급은 하면서도 그 원인은 분석하지 않고 지나쳤다. 왜 그랬을까? 그 까닭은 현재의 정치적 안정이 종국적으로는 파탄되고 말 것이라는 ‘일관된 공식’을 결론으로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니나 다를까, ‘보고서’는 “정권 변화나 국가 붕괴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북(조선)의 현재 동향이 가져올 종국적인 결과(eventual outcome)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여기서 긍정적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동향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보고서’에 의하면, 그것은 경제 부문의 조정(adjustment)라고 한다. 경제의 비공식 부문을 허용하는 조치라든가, 라진․선봉에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창설하고 원산과 남포에도 자유경제무역지대를 확대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경제 조정책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제 조정책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라진․선봉은 실패작이며, 지하 경제는 공장 노동자들로 하여금 남아 있는 공장 부품과 자재들을 빼내어 식량과 바꾸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조선) 지도부는 광범위한 개혁을 도입함으로써 자기들의 통제가 훼손 당할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조선) 체제는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러한 주장은 사실일까?
③ 이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보고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북(조선) 경제 현실에 관한 분석 내용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가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경제의 비공식 부문을 허용하는 조치’에 관해서다. 여기서 ‘비공식 부문’이란 시장 경제의 발생을 뜻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상품-화폐 경제가 허용되고 있는 농민시장, 그리고 공장이나 기업소들 사이의 거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민시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허용해 오고 있으며, 다만 최근 몇 해 사이에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 기능이 예전보다 확장된 것 뿐이다. 그런데 만일 농민시장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북(조선)에서도 자본가 계급, 또는 중국형 부유층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농민시장은 인민의 생활에서 요구되는 소비품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공급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시장 경제의 발생을 예고하는 조짐은 아니다. 농민시장은 당국의 적절한 통제와 지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시장 경제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한편, 공장과 기업소들 사이의 거래도 상품-화폐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시장 경제의 발생을 예고하는 조짐은 결코 아니며, 특정한 생산단위 안에서 자체로 해결하지 못하는 원료와 자재들을 다른 생산단위와 거래하여 해결하는 불가피한 측면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에 북(조선)이 ‘농업 개혁안’을 유엔 개발계획에 제출하여 서방의 차관을 얻으려고 하였는데, 이 개혁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주의 농촌 경리를 변경하겠다는 의도는 없으며, 분조 관리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북(조선)은 농촌 경리의 사적 부문을 확대해 가고 있는 중국과는 정반대로, 일부 협동농장들을 국영농장을 전환시키면서 집단주의에 바탕을 둔 농촌 경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른바 ‘북한식 시장사회주의’의 가능성은 공허한 언술에 지나지 않는다. 북(조선)에서 시장 경제의 발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명해진다. 이 문제에 관하여 김정일 총비서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비사회주의적 현상은 사회주의 사회를 내부로부터 좀먹고 와해시키는 유해로운 요소입니다. 오늘 비사회주의적 현상은 사회생활의 이모저모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물젖게 되면 계급의식과 민족자주의식이 마비되고 돈밖에 모르는 타락분자, 정신적 불구자로 되며 나중에는 당과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반혁명분자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좀먹는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대하여 절대로 융화묵과하지 말고 강한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북(조선) 안에서 비사회주의적 현상이 일어나서 자본주의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기대 심리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현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현실 인식을 굴절시키는 결과를 불러 오기 마련이다.
둘째는 라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가 실패작이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에 관해서다. 과연 그럴까? 『교토통신』에 의하면, 이 지대에는 이미 세계 1백10개 기업들이 진출 계약을 맺었고, 카지노 호텔이 세워지고 있으며, 1998년 7월 20일부터는 이동전화도 통하기 시작했고 한다. 이 지대에 있는, 북(조선)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라고 하는 승리화학련합기업소는 중국과 홍콩의 대표적인 회사들이 구성한 차관단(consortium)과 위탁가공생산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들어갔으며, 1998년 4월 18일에는 조․중 합작으로 대규모 자유시장인 ‘라진 시장’이 문을 열었다. 유엔 공업개발기구(UNIDO) 서울사무소에 의하면, 북(조선)은 ‘라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산업투자 제안서’에서 모두 9억6천3백74만1천달러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할 계획을 밝혔는데, 1998년 9월 라진․선봉에서 열리는 제2차 투자상담회에 남(한국) 기업 1백개 사를 무더기로 초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지대의 발전 전망이 좋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중국-극동 러시아-몽골의 1억5천만명에 이르는 커다란 시장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고, 중국-러시아-한(조선)반도-일본을 연결하는 환동해권의 중심지이며, 일본 북쪽의 쓰가루 해협을 통해 태평양-미주를 연결하는 항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나진-모스크바-유럽으로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나진-연길-장춘-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만주 횡단철도(TMR)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파리와 런던까지 직행할 수 있는 관문이므로, 자연․지리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경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고서’는 북(조선)이 나름대로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최근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북(조선)은 경제난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동력자원의 부족에서 찾고, 동력자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크게 부족한 동력자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다.
첫째로, 전력 증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안변청년발전소, 월비산발전소 같은 대형 수력발전소들이 세워졌다. 이와 더불어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98년 1월부터 5월 20일까지 중소형 수력발전소 6백85개, 대용연료발전소 5백13개, 풍력 등 기타 발전소 4백44개, 모두 1천6백 40여 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완공했다는 것이다.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은 이미 1979년 당 중앙위원회 제5기 19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제기한 뒤로 꾸준히 지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수력발전소들도 가동율을 더욱 높여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 그 전 같은 기간에 비해 3억5천만 kw-hr의 전력을 더 생산하였다고 한다. 북(조선)이 이용할 수 있는 수력자원은 연간 약 1천만kw로 추정되는데, 세계 평균 포장수력이 1평방km당 28kw인데 비해 북(조선)은 32kw로 풍부한 수력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력발전에 좋은 입지조건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전력 생산과 관련한 대외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Nautilus Institute)와 협력하여 풍력 발전소를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나, 평양에 전력을 공급할 10메가와트급 중유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국제차관단(consortium) 구성을 추진하기로 현대그룹과 합의한 것들이 그것이다.
둘째로, 유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북(조선) 원유공업부 김희영 부장에 의하면, “원유매장 가능성이 높은 안주지역과 서조선만 분지에 대해서는 오는 9월 9일 공화국 창건 50주년까지 탐사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며, “외국과의 합작사업이 순조로울 경우 21세기 초에는 원유생산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발전설비, 정보통신 및 대체에너지 개발 전문회사인 스탠튼 그룹은 북(조선) 유전 개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는데, 이미 1천3백만달러를 투자한 조․미합영합작회사를 설립해 승리화학련합기업소 정유공장에 연간 2백만t 규모의 정유생산 설비를 건설하고 있으며, 유전 개발에 관한 채산성을 조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9월 9일을 앞둔 시점에서 스탠튼 그룹이 북(조선)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한 보도가 나왔는데, 이 대규모 투자는 유전 개발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1998년 6월 11일 남(한국)의 석유개발공사도 북(조선)의 유전 개발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그 밖에도 북(조선)은 경제 건설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코크스와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로, 1998년 4월 서부 시베리아 케메로보에 있는 석탄수출회사인 머큐리사와 코크스탄 공급계약을 체결하였다. 북(조선)은 연간 1백만t 규모의 코크스처리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에 현대그룹이 투자해 줄 것을 제안하였다.
둘째로, 유엔 개발계획을 통하여 식량 자급을 위한 농업 생산력 증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차관을 끌어들이고 있다. 1998년 5월 28일부터 29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개발계획이 주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농업복구, 환경보호(AREP)에 관한 원탁회의’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회의에서 북(조선)은 앞으로 3년 동안 농업생산을 정상화하고 자급자족 체제를 복구하겠다는 1998-2000년 계획을 내놓았는데, 2000년에 알곡 약 6백만t을 생산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이 계획을 수행하려면 총예산 약 17억달러가 요구되는데 그 가운데서 14억달러는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는 몫은 3억달러라고 한다.
④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보고서’가 북(조선)의 정치 정세를 언급한 대목이다.
‘보고서’는 “북(조선) 정권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인민들을 학대하고(abuse) 남(한국)을 위협하는 그 정권의 의도에 대해서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정권은 조용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정권의 절망적 상황은 위험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비록 지금은 북(조선)의 정치 정세가 안정되어 있지만, 앞으로 불안정하게 되면 한(조선)반도를 포함한 전 지역이 위험하게 된다는 ‘경고성 발언’이다. ‘보고서’는 이 발언과 함께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권고한다. 그 권고란 다른 게 아니라 개혁(reform)과 개방(opening)이다. 이러한 논법은 지금은 비록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앞으로 문제가 터지면 큰 일이 날테니 당신들의 태도부터 바꾸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사실 이런 식의 요구는 어제 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고,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오고 있는 상투적인 것이다.
이러한 상투적인 요구가 과연 북(조선)에게 통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보고서’가 정확하게 답변하고 있다. “지금 북(조선)은 중국식, 베트남식 개혁 유형을 거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개혁’이라는 용어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북(조선)이 개혁․개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과 분석가들의 전망적 발언을 듣는 것은 지금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일본 NHK 서울 지국장 키시 토시로는 최근 일본 언론에 발표한 글에서 “미국의 당근정책과 채찍정책이 이룩한 것은 북한의 현상 유지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북한 체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일 체제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혁․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게이오대학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와 『마이니치신붕』논설위원인 시게무라 도시미츠도 언론대담에서 외부에서는 개혁․개방만이 북(조선)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북(조선)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⑤ 그 다음으로 ‘보고서’가 분석하고 있는 북(조선)의 대남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보고서’는 북(조선)이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중립적인 견해(neutral view)를 보였다고 지적하고, 김정일 총비서가 4월 18일자 서한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하여, 그리고 두 개의 다른 이념과 제도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공존과 화합을 촉구한 것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이 서한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남북 관계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새로운 접근에 대해서 조심스럽고 공개적인 반응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말하는 서한이란 김정일 총비서가 1998년 4월 18일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련석회의 50돐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보낸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를 말한다. ‘보고서’가 주목하고 있는 남북 관계 개선에 관한 대목은 이 서한에서 제시된 ‘5대 방침’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것이다. ‘5대 방침’을 요약하면,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위하여서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래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련대련합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서한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중심주제는 민족 단결 사상이다. 이 중심주제의 시각에서 볼 때, 남북의 관계 개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적 단결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략들 가운데 하나며, 민족적 단결을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한이 제시한 남북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 전환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한은 만일 남(한국) 당국이 “정책 전환을 하여 반북대결정책을 련북화해정책으로 바꾼다면 북남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민족적 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서한에서 언급된 남북 관계 개선의 문제를 북(조선) 당국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해석한 것은 빗나간 해석이다. 북(조선)은 김대중 정권이 역대 정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던 시기에 북(조선)은 한때 말을 아끼면서 대남 발언에 조심한 적은 있었지만, 김대중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김대중 정권은 남(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의 정부’이며, 대북정책도 ‘햇볕론’이라는 새로운 기조 위에서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남북관계에서 북(조선)이 이전의 정권들과는 다르게 상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남정책에 일관되어 강조되는 정권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정권의 자주성인데, 현 정권은 이 기준에 의하여 평가한다면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예속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북(조선)의 견해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예속정권은 대화와 협력의 상대가 아니다.
앞으로도 남북 당국 사이에서 대화와 협력은 여전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민간 차원에서 교류와 협력은 계속될 것이며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7월 9일 안기부에서 열린 안보관계 기관장 간담회에서 이종찬 안기부장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취임 초기의 관망자세를 버리고 점차 비난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고 있으며, 햇볕 정책에 대항하여 통일전선 강화에 주력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햇볕 정책은 체제 붕괴를 노리는 전략이므로 말려들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3) ‘보고서’의 남(한국) 정세 인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고서’의 한(조선)반도 정세 인식은 객관적 시각을 잃었다. 북(조선)의 경제난은 ‘악화되는 상황’으로 묘사하였는데 반해, 남(한국)의 경제난에 대해서는 ‘경제적 도전(economic challenge)’으로 묘사하면서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남(한국)의 경제난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경제 위기’, ‘금융 위기’, ‘외환 위기’라는 용어를 구분하지 않고 몇 차례 사용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 용어들도 다른 내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보조적 수식어로 끼어넣은 것이지, ‘위기’의 본질을 해명한 내용은 아무 데도 없다. ‘보고서’는 그 대신 김대중 정권의 구조 조정과 시장 개방에 관련하여 설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지도력을 높히 평가하고, 그의 경제 위기 극복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워싱턴의 정책전문가들의 반응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두 가지다.
① 김대중 정권의 정치 지도력과 경제 정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 성급한 낙관론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 의회 산하 연구 기관인 미국 평화 연구원의 연구원 스캇 스나이더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과 능력을 정치적으로 억제하는 강력한 요인들이 남(한국)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억제 요인 다섯 가지를 열거하였다. 첫째는 김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약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보수 세력인 자민련과 연립 정권을 세워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 연립 정권이 흔들리게 될 때 김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을 제한 받게 된다는 것, 셋째는 한나라당이 원내 다수당으로 존립하면서 강한 견제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넷째는 정부 안에는 김 대통령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가진 수많은 관리들이 있다는 것, 다섯째는 국민회의 안에 있는 자신의 오랜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보복을 진정시켜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② 김대중 정권의 보수적 성격에 대해서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연구기관으로 알려진 헤리티지 재단의 아시아 담당 수석연구원으로, 1984년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정기적으로 만난 것으로 하여 워싱턴에서 이른바 ‘디 제이 사람(DJ man)’으로 알려진 대릴 플렁크는 일간지와 나눈 대담에서 “현재 김 당선자가 추진하고 있는 정부기구 축소와 경제개혁은 미국식 보수주의의 주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미국 정치의 스펙트럼 상 그는 오른쪽(보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대중 정권은 ‘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건 보수적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보고서’가 남(한국)이 경제난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넘어 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미국에서 내로라 하는 한(조선)반도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작성했다는 보고서치고는 엉성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고서’는 “재벌에게 파국적인 빚을 안겨준 뇌물(bribery)과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마감하기 위하여 남(한국) 정부는 기업 운영을 개혁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보고서’가 파악하고 있는 경제난의 원인을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스쳐지나가는 언급이라고 해도, 경제난의 원인에 관한 ‘보고서’의 분석은 너무 심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지금 남(한국) 경제난의 원인을 재벌이 지고 있는 엄청난 빚 때문이라고 보는 분석은 논리적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재벌의 부채가 뇌물과 연고주의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견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일반 상식의 수준에서 파악할 때도, 남(한국)의 경제난은 외환위기에서 시작하여 금융위기로 번져 갔으며, 산업 전반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공황위기로 몰려갔다고 볼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보고서’는 이러한 원인 분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남(한국)의 경제난을 말할 때, 남(한국)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있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가 남(한국)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그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동아시아 전반의 경제위기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해명되어야 한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선진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 거대한 과잉자본이 투기화된 금융자본으로 변신하여 컴퓨터 통신망을 타고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개도국들에게 침투하여 과잉투자를 촉발시켜 두었다가 과잉투자로 생긴 ‘거품’을 한꺼번에 인위적으로 제거하면서 개도국들을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사실, 그리고 외환위기에 밀려간 재벌 경제 체제는 가뜩이나 재무 구조가 허약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금융위기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남(한국) 경제난에 대한 원인 분석에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남(한국) 경제난의 원인을 분석하는 문제를 외면했다는 사실은 ‘보고서’로서 지녀야 할 의무를 망각한 것이며, ‘보고서’의 권위와 의의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 ‘보고서’는 경제난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대신 외채와 내채가 너무 많다, 재벌들과 은행들이 자산 평가를 투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의 직접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엔화와 인민폐의 평가 절하가 남(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심각하다, 미국 의회가 남(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의 추가 차관 제공을 거부하여 금융위기가 재발될지도 모른다는 등 다분히 현상적이고, 주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만 잡다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문제의 핵심은 비켜가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보고서’의 신뢰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있다.
‘보고서’는 남(한국)의 경제난을 남북 관계에 결부시키고 있다. “남(한국)의 강경파들은 이제 더 이상 북(조선)을 흡수통합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모으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과 남(한국)의 금융위기는 앞으로 몇 해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조급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남(한국) 정부에게 평화 공존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고 한다. ‘보고서’는 지금 남(한국)과 북(조선)은 경제난을 함께 겪고 있기 때문에 남북 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보면서, 김정일 총비서의 4월 18일자 서한을 남북 관계 개선을 예고하는 징표로 제시한다. 만일 이 ‘보고서’의 논법대로 한다면, 김정일 총비서의 4월 18일자 서한은 경제난에 빠져 있는 북(조선)이 대남 관계를 개선하여 경제적 실리를 찾기 위하여 발표된 것이라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도 밝힌 바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조선)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경제 교류가 활성화됨으로써 자기들의 경제난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남(한국)이 1988년 ‘7․7선언’ 이후 민간 경제 교류를 허용하는 대북 정책을 추진해 왔고, 우월한 경제력으로 북(조선)을 변질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조선)이 남북 경제 교류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몽상일 것이다. 신뢰 구축을 하기 위해서 교류를 한다고 하지만, 신뢰 구축이 안된 상태에서 교류를 한다고 하여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신뢰 구축은 남북 기본합의서와 조․미 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는대로, 쌍방 사이에서 정치적 적대 관계와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결하는 실천적인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적 적대 관계와 군사적 대치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도 얼마든지 경제․문화적 교류와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이 가능하다. 이것은 이미 지난 시기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고 있는 바다. 그러므로 북(조선)이 경제난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몰이 방북과 옥수수 지원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과 경제 협력 사업들이 구체화되었지만, 이것은 남북 관계 개선이나 신뢰 구축과는 관계없이 쌍방이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해서 추진하는 순수한 영리사업이다. 남(한국) 당국은 현대그룹의 대북 경제 사업을 남북 관계 개선과 북(조선) 경제구조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대북정책의 지렛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북(조선)은 이러한 의도에 반대하며 현대그룹의 대북 경제 사업을 영리사업으로 국한시킬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 남북 관계 개선을 더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남(한국)이다. 북(조선)은 대미 관계와 대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섰고, 대남 관계의 개선은 뒤로 미루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정 기간동안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남(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하여 두 가지 중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북 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그 이익이란 첫째로 남북 관계의 긴장을 일정 정도 완화시켜야 외국자본의 안정된 투자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만일 남북 관계의 긴장이 격화되면, 국제금융자본들은 남(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며, 이미 들어와 있는 자본들도 사회․정치적으로 안정된 투기 지역을 찾아서 남(한국)을 떠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되면 남(한국)은 걷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로 빠져들어가게 될 것이다. 둘째로, 남(한국)의 수출 주도형 산업은 지금 마비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데, 동남아시아, 일본, 러시아의 시장이 붕괴되었거나 붕괴 위기에 몰려 있는 현재의 조건에서 그 재생의 활로를 찾을 길이 막연하다. 남(한국) 기업들은 북(조선)의 노동력과 자원을 이용하면, 무너져가고 있는 산업을 어느 정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쪽이 남(한국)이 아니라 북(조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정세를 거꾸로 읽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조선)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들은 두 가지 방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북(조선)으로서는 자신들의 국시(國是)라고 할 수 있는 자력갱생 노선을 계속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도록 힘쓰고 있다. 북(조선)이 추구하고 있는 자력갱생 노선이란 외부의 지원이나 대외 교류를 거부하는 쇄국주의 노선이 아니며, 외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외부와 경제 교류를 추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세에게 경제적으로 얽매이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 힘을 중심으로 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력갱생 노선에 대한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다. 따라서 자력갱생 노선을 따라 경제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보고서’는 남(한국)의 경제 위기가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 동맹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 정책도 한․미 군사 동맹 체제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보고서’는 남(한국)에 대한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는 전제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12개 항의 권고안(recommendations)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한․미 연합사의 전쟁 억지력과 준비 태세를 유지한다”는 문항이다. 또한 4월 24-25일 서울에서 열렸던 대외관계협의회와 국제 문제 서울 포럼 협의회에서 나온 공동성명에서도 제2항에서 “북(조선)의 침략에 대한 한․미 연합군의 확실하고 공동적인 억지력은 우리 외교의 안전 장치”라고 못을 박았고, 제4항에서는 “한․미 안보동맹은 남(한국)의 방위 뿐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여기서 ‘보고서’가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1998년 3월 미국이 주한 미 8군사령부를 육군구성군사령부(ASCC) 체제로 확대․개편함으로써 이른바 ‘대나무 체제(Bamboo System)’를 수립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나, 최근에는 미8군 병력을 1998년부터 해마다 3백-5백 명씩 단계적으로 증강하여 20001년까지 1천6백 명을 늘리겠다고 발언한 사실은 주한미군의 무력은 되레 증강하면서도 이와 모순되게 남북 관계를 개선하도록 김대중 정권에게 요구하고, 북(조선)의 군사력을 감소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위협은 쌍방의 대치 상태에서 나온 것이지만, 대치 상태와 위협적 현실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대칭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넘겨서는 안된다. 경제난이 악화되고 있는 북(조선)의 무력은 군사적 위협이 되고, 한․미 연합군의 막강한 무력은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는 ‘보고서’의 주장이 과연 성립될 수 있을까? 쌍방의 위협 정도를 비교할 때 더 커다란 위협은 경제난에 처해 있는 북(조선)이 아니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주둔 무력, 그리고 북(조선)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한국)의 군사력에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북(조선)은 자기들을 위협하고 있는 주대상이 주한미군이라고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북(조선)이 가장 최근에 제기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1998년 4월 29일에 발표한 외교부 비망록 「미군의 남조선 강점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에 나타나 있다. 이 비망록은 주한미군 철수는 한(조선)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 열쇠라고 하면서, 주한미군은 “조선을 분열시킨 장본인이며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기본 장애”이며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미군 철수는 “회피할 수 없는 국제법적 의무”임을 강조하면서, “전쟁이 끝난 다음 교전 당사자들 사이에 적대 관계를 없애고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자기 나라 군대를 철수하는 것은 하나의 공인된 국제법적 원칙”이며, 주한미군은 “조선반도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거를 예견한 정전협정에 대한 란폭한 유린”이며, “유엔 총회 결의에도 배치된다”고 말하고, 미군 철수는 “현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주장하였다.
한․미 연합군의 감축 문제를 논의에서 아예 제외해 놓고 북(조선)에 대해서만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킨다는 명분으로 군축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평화를 위한 군축 제안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무장해제의 요구가 된다.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나오는 이른바 상호성(reciprocity)의 원칙은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문제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위협과 긴장을 해소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전체제의 준전시상태를 국제법적으로 청산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평화협정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판문점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선 주한유엔군사령부와 북(조선) 사이에서 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남(한국)과 북(조선) 사이에는 이미 남북 기본합의서의 상호 불가침 조항이 채택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남북 평화 선언’을 채택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의미가 없다. 평화협정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또는 나라와 교전 단체 사이에서 체결되는 국제법이므로 미국과 북(조선) 사이에서 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이 북(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뜻은 국가와 교전 단체 사이의 협정 체결이 아니라 국가들 사이의 협정 체결이며, 이로써 미국이 북(조선)을 ‘국가’로 공인하는 법리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조․미 평화협정 체결은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된다.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는 아직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지만, 1991년 북(조선)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미국이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자신도 북(조선)을 사실상 국가로 공인하였고, 1994년에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서에서 국가적 실체를 상호 인정한 바있으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법리적 문제가 아니며, 워싱턴의 정치적 결정을 요구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경우, 남(한국)은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 수립과정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남(한국)이 평화체제 수립과정에 동등한 한 주체로 참가하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에 남․북․미 3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해야 하며, 남북 기본합의서의 상호불가침 조항을 재확인하는 내용과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내용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평화조치(inclusive peace arrangement)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셀릭 해리슨도 최근 이러한 견해를 주장한 바있지만, 한(조선)반도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는 책임적인 당사자들인 남․북․미 삼자 사이에서 평화회담을 통하여 풀어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 미국은 지금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는 일방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 주한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선행해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정전협정으로 유지되는 체제를 없애고, 평화협정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는 국제법적 조치이므로, 지금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고 있는 주체와 앞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주체가 서로 달라서는 안된다.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고 있는 법리적 주체들 사이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절차를 밟아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이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억지를 펴면서 앞에 내세우고 있는,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주한유엔군사령부는 먼저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평화협정 체결의 진전에 따라서 유엔사령부의 위임은 변경될 수 있다”고 다소 모호하게 표현하였다. 북(조선)은 1998년 3월 9일 유엔 주재 상임대표부 공보를 통해 유엔사령부 해체를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적대 관계, 교전 관계를 국제법적으로 청산하자는 협상조차 시작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무기부터 우선 내려놓으라고 요구한다면 통할 리가 없다. 평화협정 체결이 선행되고 나서, 군축회담이 시작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전쟁과 군사적 위험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공인된 관례이며, 가장 합리적인 평화체제 수립 절차다. 군축은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국제법적 장치가 마련된 뒤에야 시작할 일이지, 그보다 먼저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조선)반도는 정전협정 체제로 유지․관리되고 있는 준전시상태이므로,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선결되어야 마땅하다. 남북 사이에서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되면, 군축을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아무리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다른 한 편에서 여전히 군사적 위협과 긴장이 상존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고서’는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그 책임을 모두 북(조선)에게 있다고 강변하고 있을 뿐아니라,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북(조선)의 일방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할 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에 대해서나, 한(조선)반도의 평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4자회담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조선)에게 회담 자리에 나오라고 그토록 끈질기게 요구해 오던 4자회담의 중요성은 사라졌다는 뜻일까? 이것은 ‘보고서’가 권고하고 있는 이른바 변화관리정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4) 한(조선)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보고서’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함
① ‘보고서’의 관점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면서 미국의 장기적 전략 목표들을 권고하고 있다. 통일문제에 관련하여 ‘보고서’가 바라고 있는 것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통일된 코리아의 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맹 관계란 “한(조선)반도의 안정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상징하고, 한(조선)반도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적 질서를 방지하는 균형을 보장하고,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 두 나라의 긴밀한 정치 협력을 밑받침하는 한․미 동맹 체제”를 뜻한다. 통일 이후에도 존속하게 될 동맹 체제는 “일본을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한․미 동맹 체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한(조선)반도에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체제다. 이러한 체제는 분단시기의 현존 체제와 다르지 않은 것이므로 현존 체제를 통일 이후에까지 연장시키겠다는 것이 ‘보고서’가 권고하는 전략 목표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통일 이후에도 현재의 한․미 동맹 체제와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보고서’의 주장은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되고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다시 확인된 한(조선)반도 통일의 3대 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 이후에도 미군을 한(조선)반도 안에 그대로 주둔시키겠다고 한다면, 그 미군 기지와 병력을 통일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통일된 한(조선)반도의 남부 지역(지금의 휴전선 이남지역)에만 주둔시킨다는 뜻은 아니며,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 지대에까지 미군 기지와 병력을 배치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남(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실현되면서, 미군이 평화적으로 북(조선) 지역에 들어가 주둔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휴전선을 넘어 군사적으로 강점하겠다는 말인가? 이 ‘보고서’가 주장하고 있는 ‘통일 이후 미군 주둔설’은 ‘평화적 북진설’이나 ‘북진 통일 전쟁설’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통일 이후 미군 주둔설’도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평화적 북진설’이나 ‘북진 통일 전쟁설’은 전혀 가능하지도 않은 가설이다. 이렇게 보는 근거는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결사항전태세를 유지하고 있고, 승전사상이 확고하기 때문에 미국은 현실적으로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있다. 북(조선)의 결사항전태세와 승전사상은 김정일 총비서의 다음과 같은 말에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미제와 직접 맞서 싸우면서 사회주의를 지키고 혁명과 건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과 총포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덤벼드는 경우에는 피어린 투쟁을 벌릴 각오를 하여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미제국주의자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전쟁에서 확고한 승산이 없고 되레 반격을 받아 결정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하게 북진명령을 내릴 저돌적인 맹동주의자들은 워싱턴 정가에 없다. ‘통일 이후 미군 주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일 ‘평화적 북진설’이나 ‘북진 통일 전쟁설’ 같은 가설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정보 부족 때문에 생긴 판단 착오라기 보다는 현실을 모르는 공상적 호전론자의 횡설수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고서’가 ‘통일 이후 미군 주둔설’이라는 명분에 담아 내놓고 있는 ‘평화적 북진설’이나 ‘북진 통일 전쟁설’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염원과 배치되며,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고 있는 동아시아 민중의 이익과도 배치된다.
② ‘보고서’는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영구 분단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구 분단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보고서’가 통일을 지지한다는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영구 분단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까닭은 “한(조선)반도의 평화 통일은 장기적 목표지만, 안정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주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평화 통일은 장기 목표인 반면, 미국이 추구해야 할 당면한 목표는 한(조선)반도 분단질서의 안정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첫째로, 분단질서를 안정화한 뒤에 어떤 단계와 경로를 거쳐 평화통일에 이르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보고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은 분단질서의 안정화와 평화공존이 평화통일로 변화․발전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분단질서의 안정화와 평화공존이 분단질서의 영구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것이 평화통일로 이어질 가능성보다 더 많다. 이처럼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을 서로 분리해 놓으려는 논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분단질서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을 이루는 길과 분단질서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놓을 뿐아니라, 통일의 실현은 무기한 연기해놓고 평화의 실현만을 추구하려는 의도다. 이러한 의도를 담고 있는 ‘보고서’의 견해는 결국 안정과 평화의 이름으로 통일을 외면하려 한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90년대에 들어서 새로 나타난 ‘선 평화 후 통일론’은 80년대에 이미 그 오류가 판명되었던 ‘선 민주 후 통일론’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민주화의 과제와 통일의 과제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는 통전적 인식으로 그 논리적 오류를 극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 평화 후 통일론’의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둘째로, 안정된 분단질서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이 물음은 분단질서 아래서 남북의 평화공존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분단질서라는 것은 그 본질이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끊임없는 불안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분단질서가 안정화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일까? 지난 50년 동안 분단질서가 끊임없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통일의지(또는 통합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남(한국)과 북(조선)이 통일의지(통합의지)를 포기하고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서서 공존하기로 합의한다면, 평화공존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평화공존은 분단질서의 평화공존이 아니라, 별개로 갈라선 두 나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 평화공존으로 그 기본성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국)과 북(조선)이 통일의지(통합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분단질서 아래서 평화공존은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남(한국)과 북(조선) 가운데 어느 한 쪽이 통일의지(통합의지)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통일의지(통합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쪽이 끊임없이 상대방을 반통일세력으로 몰아부치면서 통일(통합)하려고 할 것이고, 그 상대방은 이에 대해 저항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질서 아래서의 평화공존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합의에 의해서 대남정책과 대북정책, 그리고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서로 상대방을 별개의 나라로 인정하고, 불가침과 평화에 관한 국제 조약을 맺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국)과 북(조선)이 별개의 나라로 갈라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남(한국)이 흡수통합을 지향하는 대북정책을 포기할 리 없고, 북(조선)이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대남정책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단질서 아래서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실현될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대결과 대치에 의해 긴장된 분단질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통일국가의 수립도 아닌 제3의 중간 질서, 곧 평화로운 분단질서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분단질서의 특수성 때문에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의 수립은 곧 평화적 통일의 실현이지, 그밖에 다른 어떤 중간 단계가 대신할 수 없다. 독일형 통합이나 예맨형 통합은 원래 극단적 대결구조나 전시적(戰時的) 대치상태에 기초한 분단질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화공존으로 들어서기가 쉬웠으며, 평화공존 상태를 오래 지속한 뒤에 합의에 의해서 통일을 실현한 역사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은 그러한 역사적 경로를 밟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의 통일경로가 전시상태의 종식에서 곧 통합으로 이어졌던 것과 유사하게 한(조선)반도의 통일경로는 준전시상태의 종식(정전협정 체제의 종식)이 곧 통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때 실현되는 통합은 체제 단일화의 통일이 아니라, 연방제 수준의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은 분리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연방제적 통일방안이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상호분리하지 않고, 통전적으로 인식하는 유일하고,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단과 통일의 중간단계쯤 된다고 하는 분단질서의 안정화와 평화공존에 관한 담론, 다시 말해서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 단계를 꿈꾸는 담론은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보고서’는 이러한 가상의 안개 속에서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5) ‘보고서’가 권고하고 있는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목표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보고서’가 권고하고 있는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북(조선)의 변화다. ‘보고서’의 권고안 제2항은 “미국도 남(한국)처럼 북(조선)의 파괴나 흡수통합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gradual transformation)를 추구한다”고 명시하였다. 이 문제는 권고안 제5항에서도 또다시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는데,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를 완화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시장 원리를 증진시키고 북(조선)의 정책을 변화로 유인하는 일련의 초기 단계(a series of initial steps)를 이행한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을 ‘변화관리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의 변화관리정책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자기 안에 종속적 계기로 포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서’는 “그러나 남(한국)은 전쟁 억지력(deterrence), 상호성(reciprocity), 변화 유인(inducement)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북(조선)의 위협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임을 결정하였다. 이것이 미국이 포용해야 할 전략”이라고 했다.
여기서 변화 관리 정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흔히 변화관리정책이 여유를 가지고 시행하는 정책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정책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추진하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다놀드 그렉 전 주한미국대사가 언론대담에서 “대(對) 북한 포용정책 기조를 견지하면서 남북 마찰을 줄여나가는 방도 이외에 대안이 없습니다”고 비교적 솔직하게 지적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막다른 상황을 표현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로, ‘보고서’에 나타난 변화관리정책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공존․공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공영을 추구하자고 합의했던 남북 기본합의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둘째로, 변화관리정책은 궁극적으로 북(조선)을 흡수통합하려는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결국 북(조선)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혀 좌초할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로, 미국이 변화관리정책을 추구할 경우, 이 정책은 북(조선)의 체제 수호 정책과 충돌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과 대치 상태가 해소될 가능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넷째로, 변화관리정책은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한(조선)반도의 긴장과 대치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변화 관리 정책을 추진하는 구체적인 방도까지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권고안 제4항에서 “남(한국)은 남(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을 긴밀하게 조정한 바에 기초하여 대북 협상을 주도한다”고 한 내용과 제6항에서 “북(조선)의 대남 관계를 개선하고,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도록 이끌어 주는 데 따라오는 더 광범위한 상호 조치를 담은 일괄 타결 방안이 요구된다”고 한 내용이 그것이다. 전자는 남(한국)의 대북 협상 방안이고, 후자는 일괄 타결 방안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한국)의 대북 협상 방안이란 햇볕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먼저 대북 협상 방안에 대해서 살펴보자. 상식적인 말이지만, 미국의 북(조선)에 대한 변화 관리 정책에서 필수적인 과정은 대북 협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과 남(한국) 가운데서 대북 협상을 누가 주도하느냐 하는 문제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보고서’에 의하면, 대북 협상은 미국이 아니라 남(한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보고서’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관계에서 책임적인 당사자로 앞에 나서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보고서’가 지니고 있는 맹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보고서’가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당사자로 나서지 말 것을 권고하였을 뿐아니라, 조․미 관계의 정상화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는 권고안 제10항에서 “조․미 합의서의 준수”라는 간단한 표현을 집어 넣었는데, 그 항은 이 합의서를 이행하는 문제를 단지 ‘경수로 건설 문제’로 축소하고 있을 뿐, 조․미 기본합의서에서 천명된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 외교적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것은 실수로 생긴 결함으로 보아 넘기기 힘든 것으로, 조․미 관계의 정상화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고의적으로 은폐․축소하기 위하여 한(조선)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KEDO)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조․미 관계의 정상화 문제를 회피하고 있지 않느냐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다루는 문헌에서 조․미 관계의 정상화 문제를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며,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이것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니다. ‘보고서’가 조․미 관계의 정상화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은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형성되고 있는 기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조․미 관계의 정상화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 코리아과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미국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데이빗 브라운은 언론대담에서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대해 이런 ‘비관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와 미군유해 송환 등 몇가지 구체적인 문제에서 매우 제한된 상호협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제한된 문제에서 조차도 북․미 협력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북한에 현재와 같은 지도부가 계속되는 한, 원만한 관계개선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과 북한은 마치 물과 기름과 같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그가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물과 기름의 관계’란 조․미 관계가 정상화 단계에까지 나아가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냉전 시기처럼 적대적인 대립관계로 되돌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제한된 범위의 협상과 교류를 통해서 적어도 겉으로는 긴장상태가 약간 완화된 일종의 정체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물과 기름’의 정체상태에서 미국은 북(조선)을 변화로 유인하려고 하겠지만, 이러한 변화유인책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은 변화유인책에 동원할만한 마땅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북(조선)은 변화유인책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과 기름’의 정체상태에서 변화유인책을 추구하려는 미국과 주체의 혁명노선을 견지하려는 북(조선)은 끊임없는 힘겨루기를 벌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미 관계 개선 정체설’은 두 나라 사이에서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과 더불어 장차 북(조선)의 개방과 개혁이 필연적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세간의 논리가 객관 정세와는 무관하게 자의적 판단에서 나온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조․미 관계 개선 정체설’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북(조선)이 외세가 요구하는 변화(개방과 개혁)를 거부하는 ‘현상 유지’, 곧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변함없이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일괄 타결 방안에 대해서 검토해보자.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일괄 타결 방안이란 북(조선)에게 경제를 지원해 주는 것과 함께 북(조선)이 실행할 사항들을 요구하겠다는 방안이다. ‘보고서’는 미국, 남(한국), 일본 세 나라가 상당한 규모의 차관(loans)과 기술 지원을 국제 금융 시장의 사정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제공할 준비를 하는 것과 더불어 북(조선)은 정치․군사 분야, 특히 군사 분야에서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 북(조선)이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는 문제.
2. 휴전선 부근에 중화기를 배치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남(한국)에 대한 북(조선)의 군사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합의하는 문제.
3. 한국(조선)전쟁 때 실종된 미군들을 책임지는 문제와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북(조선)이 계속 협력하는 문제.
4. 북(조선)이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 핵확산 금지 조약(NPT), 화학무기 협정(CWC), 생물학 무기 협정(BWT)과 같은 국제 협정을 준수하는 문제.
5. 북(조선)이 테러 포기를 천명하는 문제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조건은 지금으로부터 아홉해 전인 1989년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 미국이 내놓은 다섯 개 조항, 곧 남북 회담 진전, 미국 비난 중단, 휴전선 일대 신뢰 구축, 미군 유해 송환, 테러 포기와 거의 같은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국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미사일 통제 체제 같은 국제 협정들을 준수하라는 요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보고서’가 내놓은 일괄타결 방안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 요구조건들을 따져보면 문제점이 눈에 보인다.
① 미국은 북(조선)에게만 일방적으로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지금 이 합의서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책임이 어째서 북(조선)에게만 있다고 보는가? 남(한국)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나오는 이른바 ‘상호성’이라는 개념은 왜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문제에서는 적용되지 않는가?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려면 그것을 지금처럼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약’으로 남겨두지 말고, 법령화하여야 한다. 남(한국)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해야 하며, 법령화된 이 합의서가 다른 법들보다 우선하는 최고의 효력을 발생하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북(조선)은 이 합의서를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는 절차를 이미 오래 전에 밟았다.
② ‘보고서’는 휴전선에 전진배치한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를 후방으로 배치할 것을 요구하면서, 남(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감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보고서’는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가 남(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되기 때문에 후방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미국의 일차적인 관심은 남(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7만5천 명이 이 중화기의 사거리 안에 있다는 위협적인 현실에게 쏠려 있다. 따라서 대구경 장거리포를 후방으로 배치하는 문제는 미국인 7만5천 명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볼 때, 협상의 상대로 나서야 할 쪽은 미국이다.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가 위협적이라고 말하지만, 주한미군은 북(조선) 장거리포의 발사위치를 역추적하여 포착하는 대포(對砲)레이더 AN-TPQ 37을 배치하고 있고, 이 레이더에 포착된 북(조선)의 장거리포 위치를 미 공군에게 알려주는 “정보연계를 통해 정밀공격용 항공기로 북(조선)의 장거리 포대를 초탄 내지 제2탄 발사 이후 거의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주한미군이 배치하고 있는 에이타킴스 지대지 미사일 및 다연장로켓(multiple rocket launcher system) 40기는 화력면에서 북(조선)의 장거리포를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에이타킴스 지대지 미사일은 다연장로켓발사대에서 발사하는데, 이 미사일 한 기에는 9백60-1천개나 되는 자탄(子彈)이 들어있어 1백50여km 떨어져 있는 축구장 2-3개 크기의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다. 이처럼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남(한국) 영토 안에서는 실탄발사훈련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다연장로켓은 지름이 22.7mm지만 수류탄과 같은 위력을 가진 자탄이 6백44개나 들어있어 축구장 1개 크기의 지역을 한번에 쑥밭으로 만들고, 장갑차도 파괴할 수 있다. 다연장로켓 발사차량 1대에는 이러한 로켓이 12발 들어있으며, 이 차량은 시속 52km로 4백80km를 다시 급유하지 않고 이동한다. 남(한국)군도 견인포 4천문, 자주포 5백문, 36개 발사관이 달린 구룡형 1백30mm 다연장 로켓발사기 1백40문 등을 배치해두고 있다. 남(한국)의 한 자료에 의하면, 북(조선)은 자주포 4천5백문, 다연장 로켓 발사기 2천4백문을 배치해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배치한 다연장 로켓은 자탄이 없는 탄두만이 장착되었기 때문에 주한미군과 남(한국)의 다연장 로켓에 비해 위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셀릭 해리슨은 1992년 6월 미국의 에드워드 메이어 전 육군 참모총장과 함께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당시 북(조선)의 참모차장 권정용 소장을 만나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및 미군의 상호철수를 제안하였는데, “그는 지도에서 한․미 공군 기지를 가리키며 ‘당신들쪽의 공군력 우위로 인한 압도적인 이점들을 상쇄시키기 위해 우리가 최대한의 전력을 전진배치해야만 한다는 것이 명백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셀릭 해리슨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중화기, 다연발 로켓, 전진배치된 일부 군대의 실질적 철수 따위 평양쪽의 의미 있는 양보 대가로 미국은 공군력을 포함해 한국 내의 무기와 전력의 일부를 철수하고 재배치하는 것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바있다.
③ 실종 미군과 미군 유해의 발굴 및 송환에 관련된 문제인데, 지금까지 북(조선)과 미국의 공동발굴단이 여러 차례 발굴작업을 벌였고, 발굴된 유해를 송환하였다. 이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④ 북(조선)이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 핵확산 금지 조약(NPT), 화학무기 협정(CWC), 생물학 무기 협정(BWT)과 같은 국제 협정을 준수하는 문제인데, 이러한 협정 준수 문제를 일괄하여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핵확산 금지 조약을 준수하는 문제는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해결되고 있지만, 다른 세 가지 국제 협정은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미사일 회담만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 가운데서도 미사일 문제는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문제와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조치는 북(조선)이 인도적 교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완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남북 이산 가족 상봉 문제와 같은 인도적 사안에 대한 북(조선)의 상응된 반응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다른 한편, 화학무기 협정이나 생물학 무기 협정은 강대국들이 현장을 감시하고 사찰할 수 있는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협정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북(조선)이 그 협약에 가입하는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
⑤ 북(조선)은 이미 1996년에 미국이 테러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치를 취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테러 중단을 선언한 바있다. 1998년 8월 13일 북(조선) 외교부 대변인은 8월 7일 조선중앙통신과 회견하면서 탄자니아와 케냐의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와 관련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북(조선)은 모든 종류의 테러행위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북(조선)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셀릭 해리슨은 자신이 들은 북(조선)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한 바있다. “우리는 미국이 요구한 것들은 다 했다. 핵협정, 미사일회담, 양국관계개선 실무회담, 반테러선언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혹스럽다. 우리들 대부분은 미국인들이 우리 체제와 국가의 전복을 바라고 있다는 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6) 마감하는 말 – 한(조선)반도 정세인식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보고서’에서 드러나 있는 것처럼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한(조선)반도 전략의 목적은 통일실현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분단관리다. 분단질서를 관리하는 미국의 전략은 90년대에 들어서 한(조선)반도 안팎의 정세가 달라짐에 따라 한(조선)반도의 위기를 관리하는 정책에서 변화를 관리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왔다고 볼 수 있다. 위기관리정책(crisis-managing policy)은 이른바 ‘핵위기’에서 시작하여 김일성 주석의 급서, 식량난, 한․미 공조체제의 동요로 이어진 일련의 상황전개에 대응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기관리정책은 이른바 붕괴설-연착륙설에 결부되어 수행되었다. 이 시기 미국의 위기관리정책은 개방이냐 아니면 붕괴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었고, 정세전망도 북(조선)이 개방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이다, 아니면 임박한 붕괴를 피하려면 어차피 개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순환논법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북(조선)이 붕괴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아니면 붕괴하지 못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입씨름을 하면서 전자의 주장은 보수세력의 강경론으로, 후자는 개혁세혁의 온건론으로 갈라서는 촌극도 벌어졌다. 당시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북(조선)의 붕괴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관련국들이 정책을 조율하고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세력이 주도한 북(조선) 식량지원 운동이 북(조선) 붕괴로 인한 민족 공멸을 예방하자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구호를 외치며 나라 안팎에서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은 바로 이 촌극이 빚어낸 한 편의 삽화(episode)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모든 사건들은 이성의 일시적 기능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정세인식의 유치화(infantilization) 현상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결국 위기관리정책과 붕괴설-연착륙설은 북(조선) 체제의 안정화 추세, 남(한국)의 경제난 및 정권교체로 이어진 일련의 상황전개에 대응하는데 아무런 실효를 보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수립가들과 전문가들이 워싱턴에서 붕괴설과 연착륙설을 놓고 입씨름만 하고 있었을 때, 북(조선)은 자기에게 닥친 안팎의 어려움을 뚫고 개방도 붕괴도 아닌 제3의 항로를 따라 유유히 비행하고 있었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되기 까지에는 적어도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일본의 한(조선)반도 전문가인 다케사다 히데시 방위청 방위연구소 연구원이 펴낸 자료 「방위청 교관의 북조선 심층분석」에 나타나있듯이, 지금 각국의 정부기관들은 북(조선)은 개방하지도 붕괴하지도 않는다고 전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중앙정보국이나 일본의 내각조사실 같은 정보기관이 그렇게 전망하고 있음을 밝힌 것은 흥미롭다. ‘2백만 아사설’이라는 헛소문을 아직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외부세계에는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그럼에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북(조선)이 자기들의 미래에 대해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낙관하고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을 여기 옮겨 보자.
비록 령토가 작고 인구수가 많지 않아도 국력이 강하고 나라가 부흥하여 그 위력이 높이 발휘되면 강성대국으로 될 수 있다. (줄임) 욕망만으로는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없다.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튼튼한 토대가 없이 강국을 건설하자는 것은 빈말뿐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백전백승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 있고 우월한 사회주의 제도가 있으며 무적필승의 혁명적 무장력과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가 있다. 비록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정책과 자연재해로 일시적인 경제적 난관을 겪고 있지만 우리 인민은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오늘의 사회주의 강행군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고야 말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외부세계가 보는 북(조선)의 상(像)과 북(조선) 스스로 보는 북(조선)의 상은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양극단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상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이 양극단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북(조선) 스스로 보는 상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외부세계가 보는 북(조선)의 상은 일정하게 흔들리면서 변동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때 미국과 서방세계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고장난 비행기의 추락’이라는 제목의 촌극은 막을 내렸고 이제 객석에서는 가상적 공포감이 가시면서 장내는 다시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붕괴설-연착륙설이 워싱턴 정가에서 벌어진 단막극으로 막을 내린 뒤에, 미국은 하는 수 없이 한(조선)반도의 변화를 관리하겠다는 새로운 정책으로 불가피하게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국에게는 다른 선택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관리정책(change-managing policy)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 정책을 모태로 하고 정권교체라는 난산 끝에 이 땅에 태어난 것이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남(한국) 경제가 한때 잘 나간다고 할 때 태어난 북방정책(Nordpolik)이라는 맏둥이에 이어 90년대도 거의 다 저물어가는 때에, 그것도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로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에 막내둥이로 태어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처럼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모른채 북(조선)이 그럭저럭 한 10년 버티다가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든가, 무너지더라도 유엔이 신탁통치를 하게 될 것이든가, 무너지게 되어 흡수통합을 하면 남북의 공멸이 될 것이므로 분단질서를 안정화시키는 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든가 하는 마구잡이 식의 점괘를 정세전망이라는 포장용기에 담아 내놓고 있는 아둔한 점성술가들이 아직도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은 이 시대의 미개한 장면이다. 이제 워싱턴과 서울의 정책수립가들과 분석가들은 개방도 붕괴도 아닌 제3의 항로를 가고 있는 북(조선)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한층 어려운 과제를 받아 안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분석은 바로 이 과제를 푸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변화관리정책을 남(한국)과 북(조선)에 모두 적용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남(한국)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실현)과 경제구조 개편(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이라는 변화를 관리하는 정책이며, 동시에 북(조선)을 개방․개혁으로 유도해내는 변화를 관리하겠다는 정책이다. 북(조선)을 대상으로 하는 변화관리정책은 ‘화학적 변화’, 곧 체제 변질을 유도하려는 정책인데 비하여 남(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변화관리정책은 ‘물리적 변화’, 곧 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변화관리정책이라는 새로운 실험에서 미국은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변화관리정책은 제3의 항로를 가고 있는 북(조선)을 자기의 지배권 안으로 과연 유인해 낼 수 있을까? 그 유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조선)반도 정세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갈 것인가? 오늘 복잡한 내외 정세는 한(조선)민족에게 이런 물음들을 심사숙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98년 8월)
참고사항
(1) ‘보고서’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간략한 소개는 ‘보고서’에 나온 대로 적었다)을 관련 부처별, 분야별로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1. 국무부에 관련했던 사람들
몰튼 애브래모위츠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회장, 미 국무부 정보․조사 차관보를 지냈으며, 지금은 대외관계협의회의 선임 연구원으로 있다. 제임스 레이니는 1993년부터 지난 해까지 남(한국)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고, 지금은 에머리 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있다. 로버트 갈루치(Robert L. Gallucci)는 조․미 핵협상에 미국 대표로 나왔으며, 지금은 조오지타운 대학의 대외문제 대학원 학장으로 있다. 프랭크 잰누지(Frank S. Jannuzi)는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아시아 담당 정치․군사 분석관으로 8년동안 일했으며, 지금은 미 상원 대외관계위원회의 소수임용직원으로 있다. 윈스턴 로드(Winston Lord)는 미 국무부 차관보, 중국 주재 미국 대사, 대외관계협의회 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제구호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의 부의장이다. 로버트 매닝(Robert A. Manning)은 1989년부터 93년까지 미 국무부 정책자문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대외관계협의회 아시아연구과 선임연구원 겸 과장이다. 케네스 퀴노네스(C. Kenneth Quinones)는 미 국무부 대외 문제 담당관, 미국 평화 연구소(U.S. Institute of Peace)의 초빙 연구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아시아 재단의 코리아 책임자로 있다. 낸시 번코프 터커(Nancy Bernkopf Tucker)는 1986년부터 87년까지 미 국무부 중국과 및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조오지타운 대학교 및 동 대학원 역사학 교수로 있다. 제이슨 새플린(Jason T. Shaplen)은 한(조선)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의 정책 자문관으로, 경수로 건설 사업과 관련하여 한(조선)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KEDO)와 북(조선)의 협상을 추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2. 학계 인사들
에드워드 베이커(Edward J. Baker)는 하버드-예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의 부소장이다. 제롬 코헨(Jerome A. Cohen)은 대외관계협의회 아시아 연구분과의 선임 연구원이며, 국제법률회사의 임원으로서, 뉴욕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골든 플레이크(L. Gordon Flake)는 미국 대서양협의회의 분쟁해결연구분과 부소장이다. 마커스 놀런드(Marcus Noland)는 경제자문관협의회의 국제경제 담당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제경제연구소(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선임 연구원이다. 오공단(동포 여성)은 국방 분석 연구원의 연구원이며, 부르킹스 연구소의 비상임 선임 연구원, 조오지 메이슨 대학교 국제 관계 대학원의 강사로 있다. 스캇 스나이더(Scott Snyder)는 사회과학 연구회(Social Sciencces Research Council)의 에이브 연구 기금을 받아, 1998년부터 한 해 동안 한․미․일의 동북 아시아 정책 조율 문제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다놀드 재고리아(Donald S. Zagoria)는 동아시아 국제 관계 전문가로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과 헌터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있다.
3. 연방의회에 관련했던 사람들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는 18년 동안 미 하원의원으로 있으면서 12년 동안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제 영업 자문회사인 솔라즈 합동회사 사장으로 있다. 대니얼 밥(Daniel E. Bob)은 뉴욕에 있는 일본협회(Japan Society)의 정책연구부 부소장을 지냈고, 지금은 미 상원 재정위원회 의장인 상원의원 윌리엄 로스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있다. 피터 브룩스(Peter T. R. Brooks)는 미 하원 대외문제위원회의 동아시아 담당 선임 자문관이다. 리처드 케슬러(Richard Kessler)는 미 하원 대외문제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의 민주당 전문위원이다. 샘 넌(Sam Nunn)은 미 상원 4선 의원의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법률회사 경영인으로 있다.
4. 국방부에 관련했던 사람들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는 미 국방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지금은 아미티지 협회 회장으로 있다. 윌리엄 드렌넌(William M. Drennan)은 현직 미 공군대령으로 주한미공군사령부의 전략․정책 참모장, 국립전쟁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국방대학교의 국가전략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조오지 플린(George J. Flynn)은 현직 미 해병대 대령이며, 외교관계협의회의 군사문제 연구원이다. 마이클 그린은 대외관계협의회의 아시아 안보연구 담당 연구원이며, 존스 합킨스 대학교 국제문제 대학원의 전담강사, 미 국방장관실 자문관으로 있다.
5.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들
리처드 앨런(Richard V. Allen)은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스탠퍼드 대학의 전쟁․혁명․평화문제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의 선임 연구원, 국제전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회원,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아시아 연구소 자문회의 의장으로 있다. 더글러스 팔(Douglas Paal)은 부시 정권, 레이건 정권 시절 국가 안보 담당 특별 보좌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를 지냈으며, 지금은 아시아․태평양 정책 연구소(Asia-Pacific Policy Center) 이사장으로 있다. 윌리엄 와츠(William Watts)는 남(한국), 독일, 소련에서 외교 요원으로 일했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지금은 포토맥 합동회사 사장으로 있다.
6. 국무부 및 국방부에 관련했던 사람들
아널드 캔터(Arnold Kanter)는 1989년부터 91년까지 미 국방부 정책․군비통제국 특별보좌관, 1991년부터 93년까지 미 국무부 정치담당 차관을 지냈으며, 1992년 1월에 뉴욕에서 열렸던 조․미 고위급 회담에 미국 대표로 참석하였고, 지금은 국제정책포럼(Forum for International Policy)의 선임 연구원으로 있다. 제임스 프르지스텁(James Przystup)은 1987년부터 91년까지 미 국무부 정책 기획관, 1991년부터 94년까지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전략 기획국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헤리티지 재단 아시아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는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 미 국방부 정책 담당 부차관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존스 합킨스 대학교 국제 대학원 국제 관계학 교수 겸 학장으로 있다.
7. 국무부 및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들
헬뭇 손넨펠트(Helmut Sonnenfeldt)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 상근 요원, 미 국무부 자문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부르킹스 연구소의 대외 정책 담당 초빙 연구원으로 있다. 리처드 솔로몬(Richard H. Solomon)은 1989년부터 92년까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냈으며, 1971년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상근 요원으로 코리아 정책 문제를 다룬 바있다.
8. 국무부 및 중앙정보국에 관련했던 사람들
다놀드 그렉(Donald P. Gregg)은 1989년부터 93년까지 남(한국)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뉴욕의 코리아협회(Korea Society) 의장이다.
9. 국방부 및 국가안보회의에 관련했던 사람들
몰튼 핼퍼린(Morton H. Halperin)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 국방부에서 관리로 일했으며, 지금은 대외관계협의회 선임 연구원이며, 세기 재단/21세기 기금(Century Foundation/Twentieth Century Fund)의 제1부회장으로 있다.
10. 정보기관에 관련했던 사람들
제임스 딜래니(James Delaney)는 20년이 넘게 아시아에서 정보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국방연구원(Institute for Defense Analysis)의 자문위원이다.
12. 언론계 인사들
다놀드 오버도퍼(Donald Oberdorfer)는 『워싱턴 포스트』 도쿄 특파원, 외교 전문 특파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존스 합킨스 대학교 국제관계 대학원 대외 정책 연구소의 상임 연구원으로 있다.
13. 참관인으로 참가한 현직 관리들
이 특별연구반의 토의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는 현직 관리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현재 관직에 있기 때문에 참관인(Observer) 자격으로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국무부 관리들인 커트 캠벨(Kurt Campbell), 로버트 칼린(Robert Calin), 토머스 하비(Thoma Harvey), 찰스 카트먼(Charles Kartman), 존 메릴(John Merrill), 마크 민튼(Mark Minton),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소속 찰스 프릿처드(Charles Pritchard)가 참가하였다.
14. 후원자로 참가한 사람들
이 특별연구반에 후원자(Endorser)로 참가한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월리엄 클락 2세(William Clark, Jr)는 일본에서 14년 동안 외교요원으로 일했으며, 인도 주재 미국 대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지금은 뉴욕의 일본협회 회장으로 있다. 패트릭 크로닌(Patrick M. Cronin)은 미 국방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전략 및 정책 분석관으로 일했다. 개리 럭(Gary Luck)은 1996년까지 주한유엔군 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이었다.
(2) ‘보고서’의 작성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토론을 위하여 발표된 논문과 비망록들은 아래와 같다.
1. 오공단, 「북(조선)과 북(조선)의 선택(North Korea an Its Options)」
2. 윌리엄 드렌넌, 「북(조선)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Responding to North Korean Instability)」
3. 케네스 퀴노네스, 「한(조선)반도는 과거를 보존할 것인가 화해를 지향할 것인가(The Korean Peninsula: Preserve the Past or Move toward Reconcilation)」
4. 로버트 매닝, 제임스 프르지스텁, 「강대국들과 코리아의 미래(The Great Powers and the Future of Korea)」
5. 로버트 매닝, 제임스 프르지스텁, 「코리아의 통일: 동북 아시아의 미래를 형상하여(Korean Unification: Shaping the Future of Northeast Asia)」
6. 돈 오버도퍼, 「미․한 관계(U.S.-ROK Relations)」
7. 리처드 앨런이 작성한 남(한국)의 정치 발전를 평가하는 비망록
8. 프랭크 잰누지의 비망록, 「미국은 북(조선)을 붕괴시킬 수 있는가?(Can the United States Cause the Collapse of North Korea?)」
9. 몰튼 핼퍼린의 비망록, 「코리아 통일 이후의 안보 목표들(Security Objectives after Korean Unif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