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주한미군 철수-한 호 석 2002/08/30 470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주한미군 철수
한 호 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례 >
(1)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조선)반도 정세관의 교훈
(2)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을 담고 있는 ‘국방계획지침’
(3)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
(4)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한 미군 수뇌부의 견해
(5) 주한미군은 전투수단이 아니라 지배수단이다
(6) 지배수단의 전략적 가치는 상실되고 있는가?
(7) 두 개의 조·미 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1)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조선)반도 정세관의 교훈
제국주의 세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순진한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되새겨보아야 할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6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Saadam Hussein)의 초청을 받은 미국 경제사절단이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이란-이라크 8년 전쟁이 1988년에 끝나자, 이라크는 미국에게 전후 경제복구 지원을 요청하였고, 그 요청에 따라 미국 경제사절단이 바그다드에 나타난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사절단은 투자자문회사 ‘키신저 협회’와 트러스트 뱅크, 모빌 오일 같은 미국의 거대기업과 은행 중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 경제사절단은 이라크에 투자하기에 앞서서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이라크가 대외채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과 채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라크의 국영 석유산업을 민영화하라는 조건이었다.
8년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이라크로서는 대외채무를 해결할 길이 없었고, 더욱이 국영 석유산업을 민영화하여 미국 석유회사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라크의 국영 석유산업을 민영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미국이 투자해주겠다는 구실을 내걸고 이라크의 석유산업을 장악하려는 야욕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라크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미국은 이라크가 자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라크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했던 23억 달러의 차관마저 동결했다.
이라크는 경제위기에 빠져 들어갔다. 경제위기에 몰린 이라크에게 미국이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길은 이라크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마지막 버팀목인 원유수출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이 방해공작에 일종의 ‘미끼’로 동원된 나라는 이라크에 인접한 작은 나라 쿠웨이트였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쿠웨이트는 갑자기 원유수출을 늘렸다. 산유국들의 국제기구인 석유수출기구(OPEC)는 국제시장에서 원유값이 폭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유국들의 원유수출량을 제한하는 국제적인 합의조치를 취해 왔는데, 쿠웨이트가 그 합의조치를 파기하면서 원유수출을 갑자기 증가시킨 것이었다. 그러자 1990년 7월에는 국제시장에서 원유값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의 원유수출 증대조치로 이라크가 순식간에 1천4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라크를 비롯한 석유수출기구 회원국들이 쿠웨이트의 합의파기행위를 비난했지만, 쿠웨이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석유수출기구와 이라크는 쿠웨이트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그 협상제안마저 거부했다. 영토와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소왕국인 쿠웨이트가 이처럼 안하무인 식의 돌출행동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힘의 정체가 미국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라크-쿠웨이트의 원유분쟁은 이렇게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수출을 방해하는 공작을 숨겨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이라크는 미국으로부터 차관도 얻지 못하게 되었고, 원유수출도 힘들게 되자 대외채무를 갚기는커녕 차츰 식량마저 수입하기 힘든 경제파탄에 몰렸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된 이라크에게 남아있었던 타개책은,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원유를 적정가격으로 다시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직전인 7월 27일에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글래스피는 사담 후세인과 비밀회담을 하였다. 그 회담에서 글래스피는 이라크-쿠웨이트 원유분쟁이 미국의 국익과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묵인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후세인은 엿새 뒤에 쿠웨이트를 침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결국 미국의 교활한 ‘침공유도작전’에 속아넘어가 사면초가의 궁지에 빠진 꼴이 되고 말았다.
첫째,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기습적으로 침공하여 쿠웨이트 왕족을 인질로 잡겠다는 군사작전을 전개했지만, 쿠웨이트 왕족은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침공 정보를 미리 전달받고 이미 나라 밖으로 도피한 뒤였다.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점령작전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둘째,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기습적으로 침공하던 때에 맞춰 1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이라크의 해외자산을 압류하였다.
셋째,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점령했으나 점령작전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침략자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다.
넷째, 이라크는 이른바 ‘다국적군’을 동원한 미국의 집중적인 군사공격으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었고 전 국토가 파괴되었다. 미국은 1990년 11월 29일 유엔을 동원하여 쿠웨이트 점령군을 철수하라는 통첩을 이라크에게 전달했고, 이듬해 1월 18일에 이라크에 쳐들어갔다.
1991년 당시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던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작전 직전에 있었던 미국과의 비밀회담 기록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침공을 유도한 미국의 기만전술에 넘어간 실책이었음을 폭로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는 그 문서가 날조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로부터 1년 뒤에 미국 연방의회는 그 문서가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부시의 부인발언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전면적인 공격 앞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자,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두 가지 조건을 미국에게 제시하였다. 퇴각하는 이라크군을 미군이 공격하지 말라는 것과 이라크를 침략자로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상의 항복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의 항복선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소녀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조산아 보육기(incubator)에 들어있는 갓난아이들을 집단 살해하는 만행현장을 목격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라크의 항복선언은 무효화된 것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항복선언과는 무관하게 계속되었고, 1991년 2월 28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전을 선포하기까지 이라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 훨씬 뒤에야 세상에 밝혀진 것은, 갓난아이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라크의 항복선언을 무력화시켰던 그 소녀는 쿠웨이트에 주재하였던 미국 대사의 딸이었으며, 그 소녀가 언론에 폭로하였다는 것도 날조극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이라크 인민들이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은, 제국주의 세력의 본성은 침략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제국주의 세력의 공격은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포악하고 야만적이며 집요하고 교활하다. 제국주의 세력이 일단 어떤 대상을 침략하기로 정하면, 무슨 구실을 내세우고서라도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도발할 때는 기만, 사기, 협잡, 날조가 동원된다. 저들의 침략은 정치적 압박, 외교적 고립, 경제적 수탈, 군사적 공격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사상·문화적 침탈이 가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라크의 고통과 비극은 미국의 일방적인 정전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봉쇄·압살정책으로 이어졌다. 미군 공군은 이라크 영공에 이른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였고, 미군 해군은 이라크 영해에서 해상봉쇄작전을 전개하였으며, 미군 육군은 이라크 접경지대에 2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1993년, 1998년, 1999년에는 이라크에 폭격을 퍼부었다. 미군의 공습은 지금까지도 때때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이상 이어진 봉쇄·압살정책으로 기진맥진한 이라크의 앞날에는 불행하게도 더 처참한 파국적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부시 정부는 봉쇄·압살정책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는 이라크에게 이번에 쳐들어가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히 점령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이라크는 미국의 제2차 침략전쟁을 피해보기 위해서 미국에게 정치협상을 재개하자고 간청했으나, 2002년 8월 3일 미국 대통령 부시와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lin L. Powel)은 “그 동안 이라크의 태도에서 변한 게 없으므로 정치협상은 필요 없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은 이라크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거듭 밝히면서 이라크의 간청을 일축하였다. 오늘 이라크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재앙은 제국주의 침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피의 교훈이다.
그런데 이라크의 고통과 비극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오판은 미국의 군사전략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무지의 소산이다.
원래 미국의 침략전쟁은 중동과 한(조선)반도 두 개의 전선에서 수행되도록 정해진 것이었다. 지난 1990년대에 중동지역과 한(조선)반도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두 개의 전쟁 전략(Win-Win Strategy)’은 공개된 비밀이었다. ‘두 개의 전쟁 전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뒤에는 북(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도발하게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라크를 만신창이로 만든 미국은 북(조선)을 그 다음 대상으로 정하고 전쟁도발책동에 달라붙었다. 이라크가 미국에게 무릎을 끓었던 뒤로 1999년까지 파상적으로 밀어닥쳤던 한(조선)반도의 급박한 전쟁위기는 미국의 침략전쟁도발책동에 의해서 조성된 것이었다.
지난 1980년대의 냉전시기에 미국의 한(조선)반도 핵전쟁계획은 1983년에 공개된 종심타격 작전계획인 ‘공지전(Airland Battle) 작전’으로 구체화되어 있었는데, B-52 전략 폭격기를 동원한 ‘팀 스피리트 군사훈련’은 ‘공지전 작전’을 실행하려는 전쟁연습이었다. 이 핵전쟁계획은 199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끝난 뒤에 ’5027 작전계획(Operation Plan 5027)’으로 보완되었는데, 신형 전략 폭격기 B1-B를 동원하여 북(조선)에게 선제핵공격을 가하겠다는 것이 그 작전계획의 내용이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문가인 셀릭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최근에 펴낸 자신의 책 『코리아의 종반(Korean Endgame)』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 개시 1시간 안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상정한 전쟁계획을 세워두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다. 강력한 힘에 의하여 저들의 전쟁도발책동은 번번이 저지되었으며,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을 저지시킨 강력한 억제력은 북(조선)의 정치·군사적 역량이었다.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대의 시련기를 거치면서도 자기의 단독적인 정치·군사적 역량으로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전을 선포한 이후 10 여 년 동안 미국의 전쟁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북(조선)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도발책동을 저지하였음에도 미국의 전쟁도발위험은 그대로 남아 있다. 조·미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미국의 전쟁도발위험은 상존한다. 중·미 국교 수립 이후에도 미국은 중국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의 전쟁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조·미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하는 경우 조·미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일정한 수준에서 완화되겠지만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전쟁도발위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세력이 지구 위에 존재하고 있는 한,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전쟁도발위험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조선)에 관해서 기만과 왜곡을 일삼고 있는 내외 언론들이나 분석가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구태여 지적할 필요가 없으나, 놀라운 것은 민족민주운동단체에서 정세를 분석한 문건들에서도 심각한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오류는 약소국인 북(조선)이 강대한 제국주의 세력인 미국의 전면공세를 받으며 국가존망의 위기에 몰려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정세인식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포악성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조선)을 나약한 존재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치명적 오류’라는 말로써 그 심각한 폐해를 지적하는 까닭은, 그러한 인식의 오류가 정세를 올바르게 전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2차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켜 바그다드를 점령하면, 승전의 기세를 몰아 북(조선)을 침략함으로써 한(조선)반도 전체가 파괴되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정세관을 갖게 되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시급하게 되며, 따라서 조국통일운동이 아니라 평화운동을 당면과업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북(조선)이 미국의 전면공세를 받아 국가존망의 위기에 몰려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하루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주체적 정세관의 오류다. 북(조선)은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강대한 미국에게 당당하게 맞선 투쟁에서 여러 차례 전술적 승리를 얻어내고 바야흐로 전략적 승리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지금 조·미 대결의 실상은 이러하다.
1930년대에 신흥 제국주의 세력으로 등장했던 일본은 동아시아 전체를 점령할 만큼 강대하였던 것에 비하여, 우리 나라 항일무장투쟁세력은 다른 나라 영토인 만주에서 더욱이 후방도, 지원세력도 없이 간고한 유격전을 벌였다. 일제의 집요한 전면공격에 맞서 싸우던 시기에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시련과 역경은 얼마나 많았으며, 피눈물 나는 희생은 또 얼마나 컸던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일무장투쟁세력이 존망의 위기에 몰려 악전고투하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존망의 위기에 처한 악전고투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주체적 역사관의 오류다. 항일무장투쟁세력은 희생을 무릅쓰고 강대·포악한 일제 침략자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겹겹이 쌓인 시련과 역경을 뚫고 나아가 조선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자주독립을 성취하는 투쟁의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역사가 증언하는 것은, 일제는 결국 패망하였고 항일무장투쟁은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 북(조선)은 항일무장투쟁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정치·군사·경제역량을 갖추고 있는 국가체제를 동원하여 강대·포악한 미국과 당당히 맞서 싸우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북(조선)은 강대·포악한 미국의 전면공세 앞에서 존망의 위기에 몰려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90년대에 북(조선)은 시련과 역경을 뚫고 민족자주화위업, 조국통일위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2000년에는 조·미 대결의 전세를 역전시켜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예봉을 꺾어놓았다. 북(조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노선에 의거한 반제자주화전략을 더욱 진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의 공세를 대응공세로 차츰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승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북(조선)은 2000년대의 머지 않은 시점에 조·미 대결을 전략적 승리로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조·미 대결의 어제, 오늘, 내일이다.
민족주체의 관점에서 한(조선)반도 정세를 바라보면,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전략목표가 침략전쟁을 일으켜 북(조선)을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분단체제를 합법화·영구화하여 남(한국)을 계속 지배하려는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므로 민족주체의 관점에 의하면 미국이 남(한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 한(조선)반도의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며, 따라서 평화운동이 아니라 반미자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이 당면과업으로 나서게 된다.
남(한국)에서 일부 평화운동가들은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분쟁과 평화에 관한 이론을 한(조선)반도의 정세에 대입시킴으로써 생겨난 인식의 착오다. 미국이 남(한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조선)반도에서 정치·군사적 대결이 지속되고 있으며 따라서 평화와 평화통일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논외로 치고, 남북 사이의 분쟁상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평화이론을 가지고서는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절대로 해명할 수 없다.
한(조선)반도의 평화는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조국이 통일되어야 실현가능한 것이다. 민족자주화와 조국통일이 실현됨으로써 한(조선)반도에 평화가 실현될 것이다.
주체의 정세관을 떠나서 오늘의 조·미 관계를 바라보면, 미국의 공갈, 협박, 엄포만이 들리게 되며, 당장 미국의 핵공격을 받고 우리 민족 전체가 몰살될 것 같은 파멸의 공포가 스며들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제국주의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주체의 정세관에 확고하게 설 때, 미국의 공갈, 협박, 엄포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한(조선)반도 전략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2)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을 담고 있는 ‘국방계획지침’
2002년 5월 3일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의 5개년 계획인 ‘국방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라는 비공개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21세기의 변화된 전략환경에 대응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방계획지침’에 담겨져 있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부시 정부가 지금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에서 핵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2002년 6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W. Bush)는 대량파괴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개발하려는 국가나 테러집단을 먼저 타격하는 선제공격전략을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의 기본으로 삼으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의 해설에 따르면,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지난 냉전시기에 소련의 ‘팽창’에 맞서 ‘봉쇄’와 ‘억지’를 수행하였던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꾼 새로운 전략이다. 부시가 “새로운 교리(new doctrine)”라고 부른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2002년 8월 안으로 완성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윌리엄 아킨(William M. Arkin)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군 수뇌부에게만 전달된 군사전략에 관한 비공개 문서인 ‘국방계획지침’은 2001년 9월 11일의 테러사건 이후 미국 군사전략가들의 생각이 어떻게 전환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윌리엄 아킨이 말하는 미국 군부의 전략적 사고의 전환이란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군사전략적 사고의 전환이란,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하는 전략과 같이 적대국의 군사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방어 위주의 전략개념보다는, 적대국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든지 군사공격을 가하려고 준비하는 도발 위주의 전략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의 집권 직후에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미사일방어체계와 군사정보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에 비중을 두었다가, 9.11 테러사건 이후에는 적대국의 대량파괴무기에 의한 위협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전략에 비중을 두었고, 이태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적대국의 위협을 억지하는 방어 위주의 전략이 아니라 적대국을 선제공격하는 도발 위주의 전략에 비중을 두게 된 것이다. 럼스펠드가 5월 3일에 서명한 ‘방어계획지침’은 그러한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을 담고 있다.
2002년 3월에 미국 언론에 그 일부 내용이 흘러나왔던 ‘핵전쟁태세 검토(Nuclear Posture Review)’라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 문서에서 드러난 미국의 핵전쟁전략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은 2002년 6월 2일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있었던 부시의 연설에서 윤곽을 드러낸 바 있었다. 그는 그 연설에서 미군은 주둔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즉각 공격할 수 있는 선제타격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새로운 군사전략에 관하여 보도하면서 미국의 군사전략이 지난 시기에 있었던 ‘전쟁위협 위주의 전략(threat-based strategy)’으로부터 ‘전쟁수행력 위주의 전략(capabilities-based strategy)’으로 전환되었다고 논평하였다.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에서 핵심개념은 이른바 ‘전진 억지(forward deterrence)’와 ‘불의의 타격(unwarned attack)’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다. 적대국에게 예상치 못한 기습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그러한 기습타격을 가할 수 있는 군사력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습적인 ‘대량 정밀타격(high-volume precision strike)’라고 부른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어떤 적대국을 무력으로 침략하는 경우 전면전을 도발하려 하면, 적대국이 미국의 전쟁도발준비를 미리 간파하고 대응하기 때문에 불의의 타격을 가하기 힘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은 장기화된 전면전의 수행이 아니라 기습적인 대량 정밀타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새로운 전략이다.
미국 언론들의 최근 보도내용을 분석해보면, 미군 수뇌부는 새로운 군사전략인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에 따라서 제2차 이라크 침략전쟁을 위한 작전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작전계획은 5개 육군사단 20만 명 병력, 2개 해병사단, 15개 전폭기 편대를 동원한 대규모 침략전쟁을 도발할 계획이었는데, 그러한 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병력과 군사장비를 전선에 배치하는 데만 3개월이 걸리게 된다. 최근 미군 수뇌부는 종전의 작전계획을 포기하고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에 의한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새로운 작전계획은 미군 공군이 이라크군의 전략거점들을 기습적인 공습으로 파괴하는 가운데, 기갑부대와 경보병부대 5만-8만 명이 이라크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한다는 내용이다.
미군 수뇌부가 채택한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은 두 가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미국이 1950년대의 한국(조선)전쟁에서 경험하였듯이 대규모의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여 맞붙는 동류급 전쟁(peer-to-peer-war)이 아니라, 미국이 200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경험하였듯이 비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전쟁수행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군사전략이라는 사실에 있다. 비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전쟁이란 이른바 ‘반테러전쟁’을 의미한다.
두 번째 특징은 재래식 전쟁에서처럼 전쟁수행단계를 설정해놓고 적대국을 단계별로 파괴·소멸해 들어가는 지구전(attrition warfare)이 아니라, 적대국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이른바 ‘효율전(effects-based warfare)’을 추진하는 군사전략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로써 다섯 단계를 설정해놓고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하겠다는 미군 태평양사령부의 전쟁계획인 ’5027 작전계획’은 의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새로운 군사전략은 다음의 다섯 가지 부문에 집중적으로 힘을 넣게 되어 있다. 테러와 대량파괴무기 공격에 대한 대응수단 개발, 군사정보기술 개발, 미군의 ‘핵심 능력(core competency)’이라고 부르는 사이버전쟁수단 개발, 공중타격수단 개발, 우주전쟁수단 개발이다.
둘째, 군사전략적 사고의 전환이란, 지난 냉전시기의 군사전략이었던 ‘두 개의 전쟁 전략(Win-Win Strategy)’을 ‘원 플러스 전략(One-Plus Strategy)’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종류의 적’을 첨단기술 군사력(high-tech force)으로 제압하는 전략을 수립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새로운 종류의 적’이라는 것과 ‘첨단기술 군사력’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다.
부시 정부가 대결하고 있는 이른바 ‘새로운 종류의 적’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그것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경험하였던 테러집단이며, 미국이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하고 자기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적대국들을 의미한다.
부시 정부가 새로운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첨단기술 군사력은 어떠한 것들인가? 세 가지 대표적인 무기가 등장한다.
첫 번째 첨단무기는 무인전투기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무인전투기의 성능을 이미 실험한 바 있다. 미국은 적대국 영공에 침투하여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12대의 무인전투기로 편성된 비행대대를 2013년까지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두 번째 첨단무기는 2009년까지 개발하는 마하 10의 극초음속 미사일(supersonic missile)이다. 적대국의 미사일 발사체계가 작동되는 순간, 이를 재빨리 포착한 미군은 마하 10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여 적대국의 미사일을 요격·파괴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 예산국(CBO)이 2002년 1월 31일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극초음속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오는 2025년까지 560억-680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2002년 6월 26일 미국 연방의회 상원은 미사일방어체계 개발사업이 최우선적인 국가사업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사업을 위하여 8억1천4백만 달러의 추가예산을 배정하였다.
부시 정부는 2001년 7월 미국 국방부 산하기관인 기존의 탄도미사일방어실(Ballistic Missile Defense Office)을 재정비하면서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2002년 1월초 기존의 탄도미사일방어실은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으로 승격되었다. 2002년 2월 27일 연방의회 상원 국방비지출 소위원회에 출석한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는 미국은 적대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는 요격미사일 원형(prototype) 4기를 2004년 9월에 개발하여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에 있는 미사일 격납고에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미사일방어국의 책임자인 현역 공군 중장 로널드 캐디쉬(Ronald T. Kadish)는 2002년 6월 25일 국방부의 대언론 설명회에서 미국은 2004년쯤에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대처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디펜스 데일리(Defense Daily)』 2002년 5월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사일방어국은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요격미사일 실험사업에 관한 내용을 군사기밀로 취급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부분은 ‘지상배치 외기권 방어체계(Ground-Based Midcourse Defense system)’인데, 미사일방어국은 바로 그 핵심부분에 관해서는 앞으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미사일방어국 대변인 리처드 레너(Richard Lehner)는 지상배치 외기권 미사일 방어체계 실험은 2002년 7월말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 실험결과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지상배치 외기권 방어체계는 가동실험단계에 들어가기 이전에 개발실험단계에서 약 20 차례의 실험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개발실험단계에서는 실전에서 사용되는 요격미사일과 유인물체와는 매우 다르게 제작된 요격미사일과 유인물체를 사용하므로, 개발실험의 결과를 공개해도 별로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2002년 1월초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탄도미사일방어실을 미사일방어국으로 승격시킨다고 발표하면서, 미사일방어체계의 수립은 앞으로 성능 위주의 관련기술을 개발하는 필수공정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성능 위주의 필수공정이라는 것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작동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실험을 모두 마친 뒤에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이른 시기에 미사일방어의 기본체계를 개발하여 서둘러 배치한다는 의미다. 일단 기본체계를 배치해놓고 나서, 새로운 기술이 더 개발되는 대로 기본체계의 기술적 한계를 보완·개량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러한 개발사업공정을 이른바 ‘나선형 개발(spiral development)’이라고 부른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4월 11일자 기사는 나선형 개발의 기본체계가 완성되는 시점을 2004년 가을로 예견하였다.
부시 정부는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에 핵무기를 도입하려는 연구를 재개하였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부(Defense Science Board) 부장인 윌리엄 슈나이더 2세(William Schneider, Jr)는 2002년 4월 11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대담에서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핵탄두를 장착한 요격미사일을 개발하는 문제를 연구하라고 지시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적대국의 미사일 탄두 가운데는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가 섞여 있으므로, 미국이 발사한 요격미사일이 진짜 탄두를 구별하여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외기권에서 움직이는 핵탄두 장착 요격미사일(exoatmospheric kinetic, nuclear-tipped interceptor)을 발사하여 적대국의 미사일 탄두가 날아오는 외기권에서 핵탄두를 폭발시키면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핵탄두를 장착한 요격미사일은 적대국이 미국을 향해 발사한 생물학 탄두도 외기권에서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들은 요격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외기권에서 핵탄두가 폭발하는 경우, 미국의 군사위성과 민간 통신위성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핵폭발로 인하여 구름이 이온화되고 전자장 충격파가 발생하면 미군의 레이더 장치와 전자장비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30 여 년 전에도 핵탄두를 장착한 요격미사일을 개발하려고 했다가 중단한 바 있었다. 미국이 4 메가톤의 핵탄두를 장착한 요격미사일 ‘스파르탄’의 개발실험을 마지막으로 실시했던 때는 1971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부시 정부는 30여 년 전에 중단했던 위험한 핵탄두 요격미사일 개발사업을 다시 꺼내어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첨단무기는 적대국의 지하엄폐시설을 파괴하기 위하여 개발되는, 고성능 레이저 유도장치를 장착한 소형 핵탄두다.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과학부의 고성능 레이저무기체계 개발사업단(Task Force on High Energy Laser Weapon Systems Applications)이 고성능 레이저무기에 관한 연구를 마쳤던 때는 2001년 6월이었다.
2002년 3월에 미국 언론에 그 일부 내용이 흘러나왔던 보고서 ‘핵전쟁태세 검토(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겠다고 했을 때, 그 핵무기는 고성능 레이저 유도장치가 장착된 전술 핵무기를 의미한다.
얼마 전에 기밀해제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전쟁 중이었던 1951년 말에 B-29 전략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평양 상공에서 모의 핵폭탄을 투하하였다고 한다. 당시 모의 핵폭탄을 평양에 투하하는 연습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전략 핵무기를 투하하는 연습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은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은 1 킬로톤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전술 핵무기를 만들었다. 1945년 8월초에 히로시마를 공격한 미국의 구형 원자폭탄은 10-15 킬로톤의 파괴력을 가진 전략 핵무기였는데, 1 킬로톤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전술 핵무기라면 매우 소형화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 냉전시기에 한(조선)반도와 유럽에 소형화된 전술 핵무기들을 실전배치해 두었다. 대만 국방부가 2002년에 해제한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1961년에 대만에 설치한 200mm 포에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여 중국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핵공격에 동원될 소형 핵탄두는 히로시마 핵폭탄 파괴력의 20분의 1정도가 되는 전술 핵무기였는데, 미국은 그러한 전술 핵탄두를 여러 개 발사하려고 하였다. 미국이 대구경포를 사용한 전술 핵무기로 적대국을 공격하려고 했던 전쟁계획을 중국보다 북(조선)에 대해서 더 집요하게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금 부시 정부가 개발하고 있는 소형 핵무기는 냉전시기에 실전배치했던 전술 핵무기와 다르다. 새로운 소형 핵무기는 1 킬로톤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진 작은 핵무기(mini-nuke)다. 이 새로운 전술 핵무기는 적대국의 도시 전체를 날려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적대국의 지하엄폐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핵전쟁태세 검토’라는 보고서는 부시 정부가 지하엄폐시설을 파괴하는 새로운 전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 5월 31일 미국 동력자원부는 핵탄두 제조에 요구되는 중요한 부품인 ‘플루토늄 피트(plutonium peat)’의 생산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1989년에 ‘플루토늄 피트’ 생산을 중단한 바 있었다. ‘플루토늄 피트’ 생산이 재개되면 202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지하엄폐시설을 파괴하는 새로운 전술 핵무기를 앞으로 18년 동안 개발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미국 연방의회가 1993년에 채택한 법안에 따르면, 미국은 5 킬로톤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부시 정부는 현행 법조항의 제약을 피해 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냉전시기에 개발하였던 전술 핵무기들을 5 킬로톤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소형 핵무기로 개조하려고 하고 있다.
부시 정부가 2003년 회계연도에 책정해놓은 정부예산에는 새로운 지하엄폐시설 파괴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지하엄폐시설을 파괴하는 열기압 폭탄 BLU-118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 폭탄보다 파괴력이 6배나 큰 대형 BLU 폭탄을 제조하고 있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지하엄폐시설 파괴폭탄(bunker buster)’이라고 부르고 있는 기존의 폭탄은 부피가 크고 무겁다. 그래서 부시 정부는 파괴력과 타격 정확도를 크게 개량한 소형 핵폭탄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강력한 지하관통 핵무기(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라고 불린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이와 유사한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오고 있으며, ‘B61-11′라고 부르는 지하엄폐시설 파괴용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그 핵무기는 핵중력폭탄(nuclear gravity bomb)이다.
미국은 이미 지하엄폐시설 파괴용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왜 또 다른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기존의 핵중력폭탄은 지하 6m밖에 뚫고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이른바 ‘스마트 폭탄(smart bomb)’ 기술과 결합되지 않아서 타격 정밀도가 떨어진다. 새로운 소형 핵무기는 6m 이상 깊은 땅 속에 자리잡고 있는 지하 목표물을 찾아 들어가서 정확히 파괴할 수 있는 타격 정밀도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개발되는 것이다.
둘째, 기존의 핵중력폭탄은 지하엄폐시설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함으로써 지상의 민간인과 민간시설도 파괴하게 된다. 기존의 핵중력폭탄이 폭발하면 엄청난 크기의 폭탄구멍이 생겨나면서 방사능 낙진이 반경 수 십km의 지역에 퍼져나가고 결국 수 만 명의 민간인이 죽게 된다. 이것을 부가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한다.
미국의 핵공격이 민간인과 민간시설에게 부가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 국제사회와 미국 내부에서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게 매우 불리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부담을 예상하였던 까닭에 미국 정부는 기존의 소형 핵무기인 핵중력폭탄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런데 새로운 소형 핵무기는 타격 정밀도를 높이고 땅 속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파괴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는 새로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걸려있다. 기술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부가적 피해를 입히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는 그러한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을 소형 핵무기로 선제공격하겠다는 핵전쟁전략은 비핵국가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미국이 소형 핵무기로 선제공격한다는 군사전략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억제하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결국 핵확산을 촉진시키게 될 것이다.
새로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핵폭발실험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1993년에 핵폭발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유예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자기가 발표했던 유예조치를 팽개치고 핵폭발실험을 재개할 것이다. 미국이 핵폭발실험 유예조치를 스스로 파기하는 것은 다른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폭발실험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은 무너질 것이다.
(3)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21세기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이라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다. 그 군사전략은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모든 적대국들에게 적용된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군사전략도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조선)반도는 물론이고, 중동지역, 중국, 러시아에 대한 군사전략도 새로운 군사전략에 의해서 규정된다.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은 구별된다. 군사전략만 가지고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군사전략에 기초한 전술단위의 작전계획이 있어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선제공격 위주의 군사전략이므로, 미국이 북(조선)을 곧 선제공격하려는 전쟁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데 그것은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을 구별하지 못하는 오류다. 미국이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하려면,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에 조응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침략하는 전술단위의 작전계획까지 세워두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조선)반도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미국은 ’5027 작전계획’을 폐기한 이후, 한(조선)반도의 새로운 작전계획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미군 수뇌부는 미군 태평양사령부에게 새로운 한(조선)반도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임무를 부여할 것이다. 미군 태평양군 총사령관 토머스 파고(Thomas B. Fargo)의 지휘 아래, 미군 태평양함대사령관 월터 도란, 한미연합사령관 리온 라포트, 미8군사령관 대니얼 자니니, 주한미보병 제2사단장 존 우드 등이 한(조선)반도 전쟁계획 수립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미국이 새로운 군사전략을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에 적용하여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힘들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쟁보다는 반테러전쟁에 비중을 두고 있는데, 한(조선)반도의 전쟁은 반테러전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전쟁은 쌍방이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모두 동원하는 전면전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서 미국의 반테러전쟁은 미국이 이른바 ‘깡패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 다시 말해서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수단, 아프가니스탄, 쿠바 같은 반미국가들에 대하여 도발하려는 전쟁이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대로,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하여 통일전쟁을 일으킬 경우를 예상해서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중국을 반테러전쟁의 대상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깡패국가’들과 달리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조선)을 이른바 ‘깡패국가’의 대열 속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조선)을 반테러전쟁의 대상으로 규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북(조선)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5027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1990년대 전반기에 북(조선)은 아직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했으므로 미국 전략가들의 눈에는 군사강국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북(조선)의 군사력을 평가하는 미국 전략가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군사강국인 북(조선)과의 전쟁 가능성을 검토하는 경우, 대량파괴무기가 동원되는 대규모 전면전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미국이 적대적인 군사강국과 벌이는 대규모 전면전은 반테러전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쟁이다. 반테러전쟁에 비중을 두고 있는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이 임전태세에 들어가 있는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에 대해서는 전략적 불일치성을 보이고 있다.
만일 미국과 다른 군사강국이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여 전면전으로 맞붙을 경우, 그러한 전쟁을 수행하는 쌍방은 모두 재앙적 파괴(apocalyptic destruction)로 공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자기 자신을 재앙적으로 파괴하는 공멸의 전쟁은 회피한다.
지난 냉전시기에 미국의 전략가들은 사회주의 진영의 중심역량이었던 소련을 이른바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소련을 파괴·소멸하기 위한 군사전략을 개발하기 위하여 부단히 고심한 바 있다. 냉전시기에 미국의 군사전략으로 등장한 것들은 이른바 예방전쟁(preventive war), 선제 우선 타격(preemptive first strike), 대응타격보복에 의한 전쟁억지(deterrence based on second-strike retaliation) 따위의 개념으로 수립된 전략들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대량파괴무기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여 소련을 파괴·소멸하려는 군사전략을 세워놓고 있었지만, 결국 소련에 대한 전면전을 도발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미국이 소련에 대한 전면전을 도발할 경우, 쌍방이 모두 재앙적 파괴로 공멸할 수 있다는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대한 공포가 미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냉전시기에 미국의 군사전략이 소련과의 전면전을 도발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북(조선)이 군사강국으로 등장한 오늘,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클린턴 정부의 ‘두 개의 전쟁 전략’보다도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에 적용되기 더 힘들어졌다.
둘째, 부시 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전쟁을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지구전이 아니라 불의의 타격을 가하는 전격전에 비중을 두고 있는데, 한(조선)반도에서 전격전을 수행하는데 유리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조선)이다. 부시 정부는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을 첨단기술로 한층 강화한 ‘신속배치군(Rapid Deployment Force)’ 체계로 재편성, 재배치하고 있지만, 미국 ‘신속배치군’의 공격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조선인민군의 공격속도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신속배치군’ 체계보다 훨씬 신속하게 전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독특한 군사체계를 수립하였다.
만일 조·미 두 군사강국이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여 상대에게 서로 기습공격을 가하는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쪽은 미국이다. 북(조선)은 미국이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여 기습적으로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여 전방은 물론 후방에까지 산악지대의 발달된 화강암층을 이용하여 견고한 지하엄폐시설을 무수히 만들어놓고 군대와 민간인을 모두 대량파괴무기에 의한 기습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군민 합동 방어전 훈련을 끊임없이 실시하여 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2년 3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이 산악지대의 화강암층을 깊은 곳에 견고한 지하요새를 많이 건설하였다는 사실은 미국 군부가 작성한 보고서 ‘핵전쟁태세 검토’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은 워싱턴의 전쟁지휘부와 콜로라도주의 전략사령부만을 지하엄폐시설로 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의 전략거점인 워싱턴을 비롯한 대도시들과 미국 본토에 산재해 있는 군사시설들은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에 의한 기습공격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미국의 브르킹스 연구소가 2002년 4월 30일에 발표한 보고서 「미국 본토 보호」에 따르면, 만일 미국의 대도시 한 곳이 생물학 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공격을 받을 경우, 핵탄두에 의한 공격을 받는 것보다 10배 이상이 많은 100백만 명이 죽고, 수 천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전략은 대량파괴무기와 재래식 군사력을 불시에 총동원하여 미국의 전략거점들을 기습적으로 집중타격하는 고속기동전을 전개함으로써 미국의 전쟁수행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전격전을 기본으로 하여 수립된 전략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전략에 따라 미국에 대한 전격전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력을 끊임없이 강화해왔다.
부시 정부는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략과 첨단기술로 보강된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는 전략을 구분하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비중을 두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노련한 군사전략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배합하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부시 정부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략에 대한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자기들의 재래식 군사력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방대한 재래식 군사력을 전선으로 동원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매우 신속하게 전선에 동원할 수 있는 전투체계를 세워두었으므로,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략과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는 전략을 배합할 수 있었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 대하여 불의의 타격을 가하는 전격전을 수행하는 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것은, 놀랍게도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 3만7천 명은 북(조선)에게 불의의 타격을 가하는 전투단위가 아니라, 조선인민군으로부터 불의의 타격을 받게 될 ‘인질’로 전락하였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주한미군이라는 ‘인질’을 ‘인계철선(tripwire)’이라고 부른다. 주한미군 전체병력과 그 기지들은 모조리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와 다연장 로켓포, 그리고 단거리 전술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와 다연장 로켓포는 1분에 1만 발 이상의 포탄을 주한미군의 머리 위에 퍼부으면서 불의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무기다.
1만 발 이상의 포탄이 한꺼번에 발사되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게 되는데, 그러한 ‘포탄구름’을 막아낼 길은 없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조선인민군이 발사한 포탄을 첨단레이더로 역추적하여 포진지를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약 30분이 걸리는데, 그 30분 동안 주한미군 기지들은 30만 발의 포탄을 맞아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는 그러한 기습공격의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일찍이 1990년에 주한미군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Robert W. Riscassi)가 주한미군을 한강 계선까지 끌어내려 후방에 재배치하려는 궁여지책을 내놓았던 것은, 주한미군사령부가 1만 문 이상의 대구경 장거리포, 다연장 로켓포를 동원하는 조선인민군의 불의의 타격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미군 병사들이 적대국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해외 미군기지에 배치되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인데, 특히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불의의 타격목표로 노출되어 ‘인질’로 전락한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되는 것을 가장 기피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이후 3년 동안 주한미군기지 배치명령을 받은 미군 병사들 가운데 6만 명이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1998년은 북(조선)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함으로써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를 암시했던 시점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연방의회 조사단은 미군 병사들이 해외 어느 지역에 주둔하는 것을 가장 불만족스럽고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해외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조사결과를 보면 주한미군은 중동지역 주둔 미군(2위), 코소보 주둔 미군(3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4)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한 미군 수뇌부의 견해
2000년 9월 29일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호놀룰루에서 발송된 『워싱턴 타임스』 기사는, 워싱턴의 미국 국방부와 하와이의 미군 태평양사령부, 그리고 서울의 주한미군사령부에 있는 미군 수뇌부가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약 5년에 걸쳐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이 보도가 나가자 워싱턴의 미국 국방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그러한 지상군 감축 또는 철수에 관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즉각 부인하였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미군 고위관계자는 그러한 전략적 검토가 진행되어 왔음을 솔직히 시인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가지다.
첫째,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전략적 문제가 이미 2000년도에 미군 수뇌부 사이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었다는 것이다. 2000년도에 미군 수뇌부 사이에서 검토되었던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는 남(한국)의 군부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3월에 남(한국) 국방부가 펴낸 「21세기의 국가안보와 국방비」라는 자료에서는 처음으로 남(한국)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이라고 하면,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말한다. 주한미군은 제2보병사단(Second Infantry Division)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지상군이므로, 동북아시아에서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는 말은 곧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는 의미가 된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제3해병원정군(Third Marine Expeditionary Force)인데, 이들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조선)에 상륙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배치된 미군병력이다.
2000년도에 미군 수뇌부는 주한미군을 알래스카나 괌으로 재배치하는 한편, 오키나와의 제3해병원정군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지역에 재배치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는 것은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전략이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음을 의미한다.
『워싱턴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군 수뇌부가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지상군의 감축 또는 철수에 관하여 전략적 검토에 착수하게 된 것은, 미국이 장거리 항행력이 강화된 해군력과 공군력, 그리고 미군을 신속하게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장거리 수송력을 보유하게 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군 수뇌부는 해군력과 공군력, 그리고 ‘신속배치군’을 동원해서도 얼마든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전략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어떤 지점에 고착된 미군기지를 적진 가까운 최전선에 배치하는 이른바 ‘전진배치 전략’으로 적대국의 군사력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았던 미국의 군사전략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전략으로 되었다. 미군기지를 적진 가까운 최전선에 배치하는 것은, 미군을 적대국의 기습공격에 인질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일종의 자해행위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진배치 전략’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주한미군은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진배치 전략’의 낡은 유물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적대국의 군사력을 제압하는 새로운 전략은 미군기지를 전진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을 가하는 전략이다. 미군기지를 적진 가까운 최전선에 배치하지 않고 첨단기술로 강화된 대량파괴무기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불의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준비태세만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적대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이번에 부시 정부에 의해서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정립되었다.
둘째, 미군 수뇌부는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할 경우 약 5년에 걸쳐 진행하는 시기문제를 검토하였다는 것이다. 즉시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약 5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의미다. 주한미군 철수기간을 약 5년으로 예상한 것은 이미 지난 1970년대 말부터 워싱턴에서 제기되었던 방안이다.
1977년에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추진하려 했던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4년에 걸친 철수계획이었다. 197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카터는 대통령직에 취임한 지 몇 일 뒤인 1977년 1월에 ‘대통령 검토각서 제13호(Presidential Review Memorandum Number 13)’라는 극비문서를 미군 합동참모본부에 보냈다. 이 문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 안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군부의 의견을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제1안은 즉시 철군이었고, 제2안은 2년에 걸친 철군이었으며, 제3안은 4년에 걸친 철군이었다. 국방장관 해럴드 브라운(Harold Brown)은 합참과 몇 차례 협의한 뒤에 제3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백악관에 보고했다.
1989년 11월 2일 미국 상하양원 합동위원회에서 채택된 이른바 ‘넌·워너 수정안’은 주한미군 감축을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할 것임을 지적하였다.
1990년 4월 19일 미국 국방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아시아·태평양 연안에 대한 전략구조: 21세기 전망(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th Century)」은 주한미군 3단계 철수안을 제시했는데, 제3단계 일정에 따라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도 5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안이 제기될 때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오고 있는 것이다.
셋째, 2000년이라는 시점에서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한 것은 백악관이 아니라 미군 수뇌부였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 미국 수뇌부는 미군의 현대화된 무기체계가 감축 또는 철수 이후에도 군사적 전략균형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군사전략적 측면만을 생각하였다.
『워싱턴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 고위관계자는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해병부대의 감축 또는 철수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만일 주한미군을 철수할 경우 북(조선)은 군사분계선에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그 보도기사는 “이것은 주한미군이 북(조선)과의 협상에서 협상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제안이라”고 지적하였다. 주한미군이 장차 조·미 협상이 진행될 때 대북협상의 수단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군 수뇌부가 예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문제를 북(조선)이 군사분계선에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문제와 맞바꿀 수 있다고 보는 미국 수뇌부의 생각은 군사전략의 한 측면만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01년 6월초에 부시는 앞으로 조·미 고위급 협상이 재개되면, 북(조선)이 군사분계선에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부시의 발언은 조·미 협상에 임하는 부시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 고작 미군사령관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아주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말았다.
조·미 협상은 군사령관들이 진행하는 군사회담이 아니라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진행하는 정치회담이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진행되었다가 부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금은 일시적으로 중단상태에 있는 조·미 미사일 협상은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군사문제의 핵으로 등장한 미사일 문제에 관한 협상이므로 군수뇌부가 미사일 협상을 진행해야 할텐데, 조·미 미사일 협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두 나라 정부의 고위관리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조·미 미사일 협상은 단지 군사전략의 범위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정치·외교전략의 범위로 확대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는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변경하는 문제이므로, 그 문제는 군사전략문제이며 동시에 정치·외교전략문제다.
(5) 주한미군은 전투수단이 아니라 지배수단이다
미군 수뇌부의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 주한미군은 군사전략적 가치를 잃어버린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다. 군사전략적 가치가 없는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미국에게 손실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미국은 이미 오래 전에 철수했어야 하는 주한미군을 그대로 남겨두고 해마다 엄청난 유지비를 지출함으로써 재정손실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군 수뇌부가 재정손실을 무릅쓰면서도 군사전략적 가치가 없는 주한미군을 아직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언급할 사건들의 표면만 살펴보아서는 매우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던 때마다 주한미군 증강안이 아니라 철수안을 검토하였다. 이를테면,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전쟁위기수준에 이르렀던 시기인 1977년 1월에 지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안을 검토하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 검토각서 제13호’를 미군 수뇌부에 보냈고, 미군 수뇌부는 4년에 걸친 주한미군 철수안을 백악관에 보고하였다.
‘핵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로워졌던 조·미 관계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1994년 4월 11일 미국의 의회조사국은 군사전략가 존 콜린스(John M. Collins)가 작성한 보고서 「1994년의 코리아의 위기-군사지형, 군사균형, 군사대안(Korean Crisis 1994-Military Geography, Military Balance, Military Options)」을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8개의 대안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주한미군 철수, 군사적 현상유지, 군사력 증강, 전진방어 수행, 북(조선) 해상 봉쇄, 북(조선) 핵시설 파괴, 북(조선)에 대한 선제공격, 북(조선)에 대한 핵무기 사용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총평’에서 내린 결론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유익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총평’은 주한미군 철수를 대안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 보고서가 제1안으로 제시한 주한미군 철수안에 관한 설명은 이렇게 되어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미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의 지상 전투의 가능성을 일체 없애거나 크게 완화시킬 것이다. 북(조선)이 약속을 어긴다 할지라도 대규모 미군 지상군이 남(한국)에 재배치될 가능성은 낮다. 만약 제2보병사단이 미국으로 귀환하여 곧바로 해체된다면 그 결과 상당한 예산이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파기와 그 오랜 동맹관계의 포기는 미국의 대외정책 수단으로서의 군사력의 중요성을 크게 격하시키고 미국의 국가신뢰도를 갉아먹을 것이며, 나아가 세계 도처에서 미국의 다른 우방국들에 대한 공격을 고무시킬 것이다.”
이처럼 지난 시기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주한미군 철수안을 검토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자기의 군대를 남(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느냐 아니면 철수하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 미국의 군사전략보다는 정치·외교전략에 의해서 결정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난 시기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더 고조되고 있었는데도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미군을 남(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정치적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군을 남(한국)에 주둔시킴으로써 남(한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데 그 근본목적이 있다. 정치적 지배는 군사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주한미군은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한미군은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수단이라기 보다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보장하는 지배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6) 지배수단의 전략적 가치는 상실되고 있는가?
앞으로 미국이 남(한국)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되면, 주한미군은 지배수단으로서의 전략적 가치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즉각 철군할 것이다.
미국이 남(한국)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두 가지의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첫째,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미국의 지배력에 정치적 타격을 가하는 경우다. 남(한국)에서 반미자주역량이 강화되면 될 수록, 당연히 주한미군을 철거하기 위한 투쟁을 완강하게 전개할 것이며, 미국은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과 맞붙은 정치·외교적 대결에서 패하게 될 것이다.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의 지배력을 압도하는 수준에 올라서려면 비약적으로 강화·발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은 미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격파해야 하며, 친미예속세력과의 치열한 정치적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남(한국)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
2002년 6월에 주한미군 장갑차가 길을 가던 여학생 두 사람을 깔아 죽인 사건을 도화선으로 하여 지금 남(한국)에서는 반미투쟁이 각계각층 대중들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남(한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범죄를 규탄하며 철군을 요구하는 대중적 반미투쟁은 북(조선)과 해외동포사회에서도 힘있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 남, 북, 해외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중적 반미투쟁의 동원규모와 투쟁열기, 그리고 지속성과 다발성을 생각한다면, 한(조선)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끈질긴 대중적 반미투쟁을 전개하는 위대한 자주민족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남(한국)에서 반미투쟁의 대중화 추세는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은 아직은 민족민주운동권 안에 국한된 역량밖에 되지 못하지만, 남(한국) 민중 전체의 반미자주역량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전략가들도 이 점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남(한국) 운동권의 반미자주역량이 민중 전체의 반미자주역량으로 확대되면, 반미자주역량은 친미예속세력과의 정치적 대결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남(한국) 민중의 반미자주역량이 집권하는 경로와 방도는 내외 정세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집권의 기본원리는 남(한국) 민중이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전민중적인 조직적 단결을 실현하고,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주되는 통로인 진보적 대중정당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과 대미예속세력의 지배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장성하여 집권할 수 있는 정세로 변화·발전할 때, 미국은 자기의 지배수단인 주한미군을 서둘러 철수하게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이 북(조선)과 맞붙은 대결에서 패하는 경우다. 이것은 북(조선)의 반미자주역량이 주한미군 철거전략을 완강하게 밀고 나가면서 미국과의 정치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과의 대결은 정치·군사적 대결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가고 있는 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에 따라 한층 강화된 군민일치의 단결력과 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치·군사력이다. 북(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군민일치의 단결력에 의하여 마련된 반미자주역량의 위력적인 정치·군사적 수단이다.
이미 위에서 지적한대로, 북(조선)은 한층 강화된 군민일치의 단결력과 위력적인 정치·군사적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과 맞붙은 대결에서 여러 차례 전술적 승리를 얻어냈다. 북(조선)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를 암시하는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발사하기 두 달 전인 1998년 6월 16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조선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고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면, 우리는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는 문제를 미국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한다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 조·미 미사일 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군을 기어이 철거하리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조·미 미사일 협상을 연계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주화전략은 그로부터 석 달 위인 1998년 8월에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의 발사를 명령함으로써 마침내 현실화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2000년 10월에는 클린턴 정부로 하여금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조·미 대결에서 얻어낸 또 하나의 전술적 승리였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악의 축’이니 뭐니 하는 폭언을 토해내면서 허둥대는 부시 정부를 조·미 미사일 협상에 다시 끌어내고 결국 그 협정문에 조인하게 함으로써 주한미군을 앞으로 5년에 걸쳐 철거하는 전략적 승리를 앞당기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의 지배력을 압도할 만큼 강화·발전되어 가는 속도와 북(조선)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전략적 승리로 이끌어 가는 속도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빠를까? 1990년대 이후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변화·발전되고 있는 추세를 보면, 전자의 속도보다 후자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주한미군 철수가 시작되고, 남(한국)의 반미자주역량이 더욱 강화되어 집권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더욱 촉진되면서 철수를 개시한 때로부터 약 5년 뒤에는 철수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7) 두 개의 조·미 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지난 10년 동안 조·미 두 나라 사이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행되어 왔던 일련의 정치협상은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었고, 그 정치협상에서 체결되었던 또는 체결될 협정 역시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다.
조·미 사이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은 1994년 10월에 고비를 넘기면서 마무리되어 조·미 기본합의서로 채택되었다. 한편, 조·미 사이에서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은 2000년 10월에 고비를 넘기면서 일단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단계에까지 전진하였다.
우리가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은, 조·미 두 나라 사이에서 진행되어오고 있는 정치협상을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라고 보는 시각은 미국의 일방적인 시각이라는 사실이다.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정치협상을 추진해왔다고 주장하는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러나 그러한 미국의 주장은 일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조·미 정치협상을 보면, 그것은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협상이 된다.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하여 미국을 상대로 하는 어렵고 복잡한 정치협상을 추진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조선)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근본목적이 미국의 전쟁위협에 대응하려는 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북(조선)의 대미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북(조선)의 대미전략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막론하고 모든 부문에서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북(조선)의 대미전략은 주체사상에 의거한 전략인데, 주체사상은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대미전략은 미국의 전쟁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응전략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자주화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북(조선)의 자주화전략은 남(한국)을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추진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결정적인 조치가 된다. 북(조선)이 지금까지 10년 동안 온갖 난관과 역경을 물리치면서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해온 근본목적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남(한국)을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북(조선)의 자주화전략의 시각에서 조·미 정치협상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첫째, 조·미 정치협상의 제1단계는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서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서는 북(조선)의 핵문제와 조·미 관계정상화 문제를 일괄하여 타결한 문서이므로, 그 문서 자체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주화전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북(조선)의 자주화전략은 조·미 기본합의서와 함께 채택된 조·미 비공개 각서(confidential minute)에 명백하게 담겨있다. 그 비공개 각서에서 두 나라는 북(조선)이 영변지역 핵시설을 포함하여 모든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비밀협약을 체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그 협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조·미 정치협상의 제1단계는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거쳐야 하는 수세적 국면에서 추진하였던 반면에, 미국은 이른바 ‘핵사찰 문제’를 제기하면서 압박하는 공세적 국면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때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둘째, 조·미 정치협상의 제2단계는 2000년의 조·미 공동성명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2000년의 조·미 공동성명은 북(조선)의 미사일문제와 조·미 관계정상화 문제를 일괄하여 타결한 문서다. 이 공동성명은 조·미 미사일 협정과 그에 따른 비공개 합의서를 채택하기 위한 준비단계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조·미 미사일 협정과 그에 따른 비공개 합의서 초안은 클린턴 정부 말기에 이미 마련되었다. 클린턴의 평양 방문으로 개최될 예정이었던 조·미 정상회담에서 조인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었다.
조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미사일 협상의 비공개 각서에서는 북(조선)이 인공위성 ‘광명성’을 쏘아올린 우주발사체 ‘백두산’을 포함하여 모든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철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북(조선)이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인공위성 발사체의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북(조선)은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 발사체를 이용하여 우주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하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조·미 정치협상의 제1단계는 북(조선)이 수세적 국면에서, 미국은 공세적 국면에서 진행되었던 것에 비하여, 2000년에 있었던 조·미 정치협상의 제2단계는 북(조선)이 공세적 국면에서, 미국은 수세적 국면에서 진행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조·미 정치협상의 제2단계는 부시 정부가 들어선 뒤로 그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있지만, 올해 8월 이후에는 협상이 재개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2003년 후반기에는 조·미 정치협상의 제2단계가 마무리될 것이다.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조·미 미사일 협정문과 비공개 각서가 조인되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면, 철군을 반대하는 여론을 진압하여야 한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는 미국 대통령의 철군명령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연방의회와 사회여론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 철군명령 자체가 실종될 수도 있다. 카터의 철군명령이 집행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사정을 말해주는 뚜렷한 사례다.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여론을 사전에 진압하려면 두 가지 방책을 동원하여야 한다.
첫째, 남북으로부터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고, 이것을 가지고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미국의 여론을 진압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남(한국)을 미사일기술통제협약(MTCR)에 가입하도록 조치하였다. 북(조선)과는 조·미 미사일 협정을 체결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장애요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남북 사이의 다방면적인 교류·협력이 적극 추진되면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어야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미국의 여론이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남북 사이의 다방면적인 교류·협력은 6.15 공동선언에 의하여 계속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장애요인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 사이의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이 적극 추진되는 가운데, 조·미 미사일 협정이 체결되면 그것은 곧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조선)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21세기의 대사변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2002년 8월 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