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생물무기-서재정 이시우 2002/08/30 520

<기고>미국과 생물무기(65매)-서재정 2001-12-15
“나는 지난 날 미국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

서재정 (코넬대학 정치학 교수)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19일 수석대표인 존 볼튼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의 기조연설을 통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 알-카에다는 물론 북한 등이 생물무기를 개발 또는 확보한 것으로 공개 지목한 바 있다. 이어서 26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테러리즘에 연결지으며 “다른 국가들을 위협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의 한 부분은 테러리스트들이 무기를 획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중인 전쟁이 대량살상무기 개발국가로 확산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이 이미 미국 국무부의 테러리스트 국가명단에 올라가 있고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사태발전은 한반도가 다음의 전쟁터가 될 수 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 살상하는 대량살상무기이므로 이러한 반인도적인 무기는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9.11 테러사건의 여파로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고 이들 무기의 확산금지와 제거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단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금지와 제거를 위한 조치는 합리적으로 모든 국가에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합리성이 있다면, 미국도 이러한 조치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글은 이러한 전제 밑에 지금까지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밝혀놓은 미국의 생물무기개발 프로그램들의 일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미국도 이러한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므로 북한이나 다른 국가들도 이를 개발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거도 불확실한 북한 생물무기 개발설을 흘리며 북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기에 앞서 생물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밝혀진 미국부터 솔선수범해서 생물무기를 폐기하고 생물무기시설 사찰에 응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탄저균은 “미제”

9월 11일 테러사건이후 미국은 거의 두 달 이상을 탄저균 공포에 떨었다. 우편으로 일부 언론사와 정부 기관에 탄저균이 배달되고, 이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미국인이 늘어나면서 전 미국인이 백색가루 공포증에 시달렸다. 사건초기에는 이러한 탄저균 공격이 9.11테러사건의 주범으로 의심되고 있는 알-카에다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지금까지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의 출처는 미국 정부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생물무기 전문가인 바바라 로센버그 뉴욕주립대 교수가 생물무기협약 평가회의가 열린 제네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편으로 배달된 탄저균은 미국 생물무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에임즈 계열의 탄저균이다. 에임즈 계열의 탄저균은 탄저균 중에서도 특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1925년 발견된 이래 미국 생물무기 개발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예방주사 테스트 등 미국 생물무기 방어프로그램에서도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계열의 탄저균은 모두 생물무기 부대인 디트릭 기지에서 통제하고 있으며, 디트릭 기지에서 에임즈 계열 탄저균을 공급받은 연구소는 20개소가 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에서도 탄저균을 무기화할 수 있는 곳은 4개 연구소에 불과하며 이들은 모두 미국 정부 연구소이거나 정부의 하청을 받는 연구소들이다. 따라서 상원 정보위원회의 그래햄 위원장이 밝힌 바와 같이 지금까지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의 DNA구조를 밝혀내면 어느 연구소에서 이 균을 만들어 냈는지를 거의 확실하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탄저균 자체가 미국내의 연구소에서 생산된 것이 거의 확실할 뿐만 아니라 이 탄저균을 무기화한 기술 또한 미국산임이 거의 확실하다. 탄저균을 무기화하기 위해서는 배양된 탄저균을 우선 아주 가는 가루로 만들어야 하고 이 가루가 덩어리로 엉기지 않도록 정전기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은 미국기술로 제조한 탄조균과 같이 매우 높은 농도 (그램당 포자 1조)와 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을 전자현미경으로 검사한 연구소들에 따르면 이 균들은 분마기를 이용해 가루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화학물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육군병리학연구소의 검사결과에서도 이 탄저균들에 미량의 화학물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탄저균을 무기화하는 과정에서 분마기를 사용하지 않고 화학물을 사용하는 기술은 빌 패트릭이 개발했으며 미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비밀이다. 더군다나 미 상원으로 배달된 탄저균에서는 미국의 무기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실리카가 발견된 반면 이라크가 사용하는 벤토나이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탄저균의 출처가 미국 정부 연구소이거나 미 국방부의 하청을 받는 연구소가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탄저균이 미국정부 생물무기 프로그램의 산물이라는 아이러니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탄저균의 출처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게놈연구소 등의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가 탄저균 공격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을 제안했을 때도 이를 거부해 이 같은 의혹을 확대시키고 있다.

미국의 생물무기 프로그램

이 같은 사실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사실을 확인해 준다. 즉 미국도 탄저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즈와 타임즈 지의 기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까지 생명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보다 치명적인 계열의 탄저균을 생산하는 작업과 세균을 퍼뜨리는데 사용될 수 있는 폭발물 등을 개발해왔다.

주디스 밀러와 스티븐 잉글버그, 윌리암 브로드 등이 수년간의 조사 끝에 발간한 저서 `세균: 생물무기와 미국의 비밀전쟁`은 구 소련이나 이라크뿐만 아니라 미국도 광범위한 생물무기 개발작업을 해왔음을 폭로하고 있다. 탄저균만 하더라도 미국은 매년 탄저균을 900kg씩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에는 `제퍼슨계획`이라는 암호명 아래 보다 치명적인 탄저균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은 1997년경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의 탄저균을 만들었으며 미군이 사용하는 예방주사가 이 탄저균에는 효과가 없다는 의혹이 일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CIA등 정보기구가 동원되어 러시아가 개발했다는 탄저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 성과가 없자 자체적으로 이 탄저균을 만들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1년에는 이 작업이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국으로 이관되었으며, 국방정보국은 오하이오주에 소재한 배텔연구소에 이 작업을 하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에서 유전자를 추출하여 탄저균에 이식함으로써 생겨날 새로운 계열의 탄저균은 매우 치명적이어서 생물무기용으로는 최적일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이 계획은 기초작업을 마친 상태에서 부시행정부 국가안보위원회의 최종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거의 동시인 1997년 CIA는 `클리어 비젼`이라는 암호명 아래 생물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무기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CIA에서 장기간 생물무기 연구를 해 온 진 존슨의 책임 하에 생물무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폭발물을 개발, 제조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의 결과로 하나의 모폭탄 안에 소형 자폭탄을 다수 장착하여 자폭탄들이 생물무기를 배포하도록 설계된 무기가 개발되었으며, CIA는 배텔연구소에서 이 무기의 시험까지 마쳤다. 이 시험으로 CIA는 온도와 습도, 풍속이 다른 여러 가지의 환경조건에서 생물무기가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작전은 당시 러시아가 이 같은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었으나 당시 클린턴 행정부 안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국무부와 백악관의 일부 관리들은 이 같은 폭발물 개발과 시험은 생물무기협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대했다. CIA측은 이 폭발물이 뇌관이 없는 실험용에 불과하다고 강변했으나 국무부 관리들은 “폭탄은 폭탄”이라며 이는 생물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생물무기협약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CIA는 이 작전을 강행했으며, 빌 할로우 대변인은 이러한 “실험”이 어떤 조약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국방연구계획국(DARPA)은 인터넷의 모체가 된 기술을 개발했고 스텔스 전투기의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는 등 국방부에서 최첨단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기구이다. 1990년 말부터 국방부는 이 국방연구계획국에 대대적으로 예산을 증액하며 생물무기에 대한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최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수백-수천 개의 조직에서 DNA를 추출하여 이를 분해한 다음 이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유기물질을 만들어 내는 등 공상과학영화에서 볼 만한 작업들이 다수 진행되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인 황당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방연구계획국의 예산은 1998년 5천9백만 달러에서 2001년 1억6천2백만 달러로 거의 세 배 가까이 증액됐고 2005년까지는 예산이 2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1999년경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위협축소국(DTRA)은 네바다 사막에 생물무기공장을 건설하는 `박카스 계획`을 추진했다. 국방위협축소국 연구팀은 1백6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 받아 일반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기자재로 생물무기공장을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 2000년 중반경 모든 시설을 완비하고 탄저균과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일반 가정용 공구상에서 필요한 물품의 일부를 구입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설비인 발효기는 유럽에서 구입하는 등 철저히 상용장비를 이용하여 생물무기공장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은 테러리스트 집단이 상업용 장비와 공개된 기술만으로도 독자적으로 생물무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할 지를 시험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 앞에서 언급한 작전들도 모두 가상 적국이 생물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는 것이 국방부와 CIA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만약에 이라크가 생물무기와 관련된 이 같은 세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했다면 “방어용”이라는 명분이 면죄부가 되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방어용이라면서 정부안에서도 제대로 보고가 되지 않고 비밀리에 이러한 작업들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다른 국가들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며, 특히 생물무기 배달체의 개발과 실험은 생물무기협정에도 위배된다. 미국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생물무기를 개발,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구 소련도, 1990년대 사찰의 결과로 생물무기계획의 존재가 밝혀진 이라크도 모두 자신의 프로그램을 “방어용”이라고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세균전 역사

미국이 자국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방어용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미군의 과거는 그 주장을 잘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자렛 다이아몬드가 `총, 세균, 강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미 대륙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천연두 등의 세균으로 말살된 위에 오늘의 미국이 있다는 사실까지 역사적으로 소급할 필요는 없이 2차대전 이후의 역사에 국한하자. 미군은 2차대전 종결시 세균전 인체실험을 수행한 일본군에 면죄부를 주는 대신 일본군의 연구결과를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을 수행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중국에서 태어나 2차대전 중에는 미국 전쟁홍보국에서 복무했고, 1947년에서 1953년까지는 샹하이에서 `차이나 몬슬리 리뷰`를 발행한 존 파월은 미군의 세균전과 기묘한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세균전을 수행했다며 미군을 비판한 `괘씸죄`로 `차이나 몬슬리 리뷰`의 미국내 배포가 금지되어 할 수 없이 미국으로 귀국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CIA였다. 중국에 대한 간첩역할을 하라는 CIA의 제의를 거부하자 그는 세균전 등에 대해 “고의적으로 허위보도를 한” 혐의로 미국에 대한 반란죄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 증거를 댈 수 없었던 미국은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기는 했으나 그는 오랫동안 직장을 잡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에 대한 기소가 취하된 이후 파월은 미군의 세균전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 미군과 일본군의 세균전 코넥션을 밝혀냈다. 그의 조사결과는 1980년 `참여동양학 연구자 불레틴`에 발표된 바 맥아더 장군과 그의 정보참모였던 찰스 윌로비 장군, 삼성조정위원회 사이에서 교환된 메모를 통해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세균전을 둔 `빅딜`이 있었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만주에서 살아있는 포로들에게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일본 731부대의 부대장 시로 이시이 중장을 전범처벌에서 면죄해주는 대신 미군은 이들이 행한 모든 실험의 결과를 입수했다. 이 빅딜의 결과로 일본은 8백건이 넘는 인간생체실험을 자세히 기록한 슬라이드 8천점을 비롯해서 35종 이상의 보고서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이 보고서 중에는 탄저균과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의 자세한 부검결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자료들은 미국 생물무기연구의 본부격인 디트릭 부대로 이전되었고 미국 과학자들은 이 자료들에 기초하여 20여종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디트릭 부대의 기초과학담당 수석으로 미국의 생물무기 연구를 총괄하고 있던 에드윈 힐 박사는 일본으로부터 얻은 자료가 미국의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보완, 확장했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다른 과학자들도 벼룩을 이용한 병균전파법이나 사기로 만든 세균전용 폭탄, 특히 인간생체실험 결과 등이 유용했다고 추후 인정했다.

한편 731부대를 지휘한 이시이 중장은 일본 패전후 전범재판에 회부될 운명이었으나 미군에 이 같은 자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면죄부를 받았다. 미군 정보부는 이시이에 대한 평가자료에서 그가 “학구적이며 진실되고 관대하고 착하다”고 평가했으며 무엇보다도 그가 “친미적이며 미국의 문화와 자연과학을 존경한다”며 그를 면죄할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미군 화학전부대와 극동사령부, 합동참모본부, 전쟁부, 국무부 등이 고의적으로 이시이의 범죄사실을 은폐했기 때문에 그는 전범처벌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월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를 부인한 반면 일본 정부는 1982년에야 2차대전 당시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이시이 중장이 연금을 받고 퇴역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미 육군이 1977년 작성한 보고서 `미국생물전쟁 프로그램에서 미 육군의 활동`에 따르면 미군은 2차대전 중인 1941년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수개월의 검토 끝에 생물무기가 가능하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처를 서둘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스팀슨 국방장관의 추천에 따라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8월 생물전 프로그램을 전담할 부서로 전쟁예비국을 신설했다.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Merck)사의 조지 머크 사장을 국장으로 한 전쟁예비국은 활동에 들어가자마자 생물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개발 없이는 효율적으로 생물무기에 대응할 수 없다며 육군 소속의 화학전부대에 이러한 연구개발을 의뢰했다. 미 육군은 메릴랜드주 프레데릭에 소재한 디트릭 기지를 생물무기개발 책임부대로 선정하고 1943년 필요한 시설물들을 건설, 본격적으로 생물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축적된 연구성과가 일천했던 미국으로서는 일본 731부대가 넘겨준 자료들이 `노다지`같았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카나다 요크대학 역사학과의 에드워드 해거만 교수와 스티븐 엔디콧 교수가 공저한 `미국과 생물전쟁 : 냉전초기와 한국으로부터의 비밀`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이 단순히 방어용만이 아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생물전 실험을 수행했다고 밝힌다. 미국, 영국, 카나다의 정부기록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서까지도 포함한 방대한 연구결과를 집성한 이 저작에서 저자들은 미국의 생물전 프로그램이 한국전쟁을 기화로 최우선 사업으로 부상되어 생물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됐으며 구체적인 생물전 계획까지 입안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 계획은 적대국에 대한 공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영국과 카나다 정부까지 비밀연구에 참여하여 생물무기를 나토에 도입하는 방안까지 고려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중인 1951년 12월 미 국방장관은 생물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실전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를 내렸으며, 곧 이어 미 공군은 이러한 생물무기전 능력이 “신속히 구체화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1952년 2월 미 합동참모부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대규모 현실적인 실험”을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비밀세균전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문서를 작성했다. 특히 이 문서는 “적군이 밀집해 있을 때” 등 세균전이 유용할 전술적 상황을 명시, 세균전 작전의 지침을 수립했다.

이 같은 교신이 있은 직후인 1952년 초부터 중국과 북의 인민군은 미군이 한국에서 대규모 생물전 실험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의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중국은 특히 세균전에 대한 반응이 민감했다. 중국 보건부와 군 정보부는 세균전 의혹이 있는 지역에 대해 정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기록한 질병발생 지역과 양상은 자연적인 질병발생 양상과 일치하지 않는 반면 미군의 작전 양상과는 일치한다는 것이 해거만 교수와 앤디콧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세균전을 수행했느냐는 전쟁 중에도 국제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던 사안이고 의사들로 구성된 국제조사단이 파견되기도 했다. 당시 이 조사단 등은 한겨울 눈으로 뒤덮인 한국의 산악에서 세균으로 오염된 파리와 벼룩 등을 발견, 세균전에 대한 의혹을 한층 더 높였으나 미국은 의혹을 제기하는 인사들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몰며 완강하게 이를 부인했었다. 앞서 언급한 존 파월도 이러한 “빨갱이 사냥”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두 연구자의 작업으로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과 생물무기협약

지금까지 미국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사실들의 일부를 나열했다. 그러나 미국이 생물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1969년 닉슨 미 대통령은 미국의 모든 공격용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종식시킨다고 선언했으며, 이 선언 직후 소련, 영국 등과 협상을 시작하여 1972년 생물무기협약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물무기의 생산 및 보유를 금지하는 생물무기협약은 현재 140개 이상의 국가들이 이에 가입하고 있고 생물무기의 확산을 막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닉슨 대통령은 생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1925년 제네바조약의 상원 비준을 청원하는 한편 1970년에는 미국이 비축하고 있는 생화학무기의 폐기를 명령했다. 당시 미국은 200파운드 이상의 탄저균을 비롯하여 엄청난 양의 생화학무기를 비축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결정은 두 가지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비동맹권 등 제삼세계 국가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생물무기는 이들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 첫 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생물무기 자체가 강력한 국내의 비판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었던 인간생체 실험이 공개되면서 당시의 반전여론과 맞물려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던 것이다. 당시 보스톤대학 사회학과의 진 쥴레민 교수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미군은 징집을 거부한 제7일안식일교회의 신도들을 의자에 묶어 놓은 채 다른 동물들과 함께 세균을 분사하는 실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의 지하철과 워싱톤 공항 등지에서 일반 시민을 상대로 모의 세균전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외의 여론에 밀려 생물무기협약을 체결하면서도 닉슨 행정부는 방어용 생물무기 연구는 제외로 한다는 예외조항을 잊지 않았고 협약의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들은 거부했다. 따라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의 생물무기 연구작업은 방어용이라는 명분 아래 2001까지도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의 폐기조치에도 불구하고 CIA는 해외요인 암살용으로 탄저균 등 생물무기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았으며 생물무기 개발을 위해 디트릭 기지와 공조하고 있다.

생물무기협약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오늘날까지 변화한 바 없다. 생물무기협약은 협약이행을 감시할 수 있는 검증제도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 보유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의정서 채택을 위한 특별협상기구를 지난 1994년 설치했다. 이 기구에서 작성된 검증의정서 초안을 기초로 하여 올 11월 19일부터 12월 7일까지 열린 5차 평가회의에서 검증의정서를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몽니` 때문에 검증의정서는 물론 최종선언문 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폐회하는 최악의 파국을 맞았다. 미국은 이미 지난 7월 제24차 특별협상기구 회의에서 “검증의정서 초안은 협약에 대한 신뢰를 증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생물무기를 개발하려는 국가들을 저지하지도 못한다”며 검증제도를 일방적으로 거부한 바 있었다.

특별협상기구 회의에 미국 측 대표로 참가했던 도날드 말리 대사는 이후 하원 청문회에서 검증제도를 도입하면 외국의 첩자들이 사찰단에 침투하여 미국 제약업체들의 비밀을 훔쳐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청문회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그는 미국 정부기구가 수행한 활동 중 일부는 생물무기협약을 위배했을 지도 모르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시인, 검증제도에 대한 반대 이유가 상업적 이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방부와 CIA 등이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는 생물무기 연구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내 비쳤다. 그의 이러한 발언이 있은 직후 밀러와 잉글버그, 브로드 등이 `세균`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이 최근까지 탄저균을 생산하고 생물무기 운반체 제조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검증에 대한 미국의 반대 이유가 더욱 확실해 진 것이다.

`구린 구석`이 있는 미국은 제네바에서 열린 생물무기협약 제5차 평가회의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수단 등 6개국을 생물무기개발국으로 공개 지목하며 이들의 협약 위반을 최종선언문에 포함하자는 역공을 펼쳤다. 뚜렷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 미국에 회원국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미국은 회의 마지막 날인 12월 7일 오후 늦게 검증의정서 초안작성을 위해 구성된 특별협상기구의 폐지를 전격적으로 요구, 검증의정서의 백지화를 사실상 주장함으로써 서방진영으로부터 조차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사국들은 최종선언문에 대한 합의조차 불가능하다고 판단, 내년 다시 회의를 속개하는 선에서 회의를 끝냈다. 이제 생물무기협약의 검증조치는 내년 11월 11-22일 속개되는 후속협상에서 다시 논의되겠지만 미국이 입장을 바꾸기 전에는 별다른 돌파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가 현재 전 인류의 안녕과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무기`라는 부시 행정부의 지적은 전적으로 정확하다. 이러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는 국가도 테러리스트”라는 부시 대통령의 지적도 전적으로 정확하다. 이러한 비인도적 테러무기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목적도 정당하다. 대량살상무기로 타국을 `테러`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목적도 정당하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의미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냐다. 생물무기와 관련한 미국의 `엽기적` 역사는 생물무기를 통제·폐기하기 위해서 미국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이 답을 할 차례다.

통일뉴스 200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