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 강화모임-흥왕리에서2004/04/28
4월20일 흥왕리에서 있었던 일
집 앞 마당에 흰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먼산으로부터 발치까지 연두빛 물결이 사태지듯 밀려온다. 무너진 돌담너머로 어린 고라니가 관객의 응시도 잊은 채 한참 풀을 뜯다 훌쩍 두어걸음을 뛰어 무대에서 사라진다. 사방에서 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한나절 책상을 맴돌던 햇빛이 돌아간지 오래고, 책속으로 점점 파묻히던 눈이 창호문에 기울어진 노을빛을 보고서야 오늘 회의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달았다. 흥왕리 김용림 선생님댁에서 회의하기로 한날이다. 김정택목사님 댁에 전화를 거니 쌀 배달하고 남은 것을 내려놓은 길이시란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올라가보니 임정숙선생님께선 식전이셔서 저녁을 대신할 토스트를 만들고 계셨다. 목사님은 오늘 모판작업 끝내는 날이라서 회의 참석이 어려우시겠다고 한다. 그럼 목사님과는 길거리 회의를 하면 된다. 부엌에서 토스트가 되는 동안 오늘 회의의 구상을 말씀드리고 의견을 어쭸더니 그게 괜챦겠네 하신다. 목사님과의 회의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5분만에 끝났다. 올 겨울 도장리의 벌판에 등장한 유기농공장에 이르니 덕명이 형과 이동천이장님등이 일을 끝내고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농사군이 아니라 농업 노동자가 되시는 건가? 전이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다리를 주무르며 농을 건다. ‘아니 다리 안 아퍼. 맨날 걸으면… 난 보기만 하면 다리 주물러주구 싶더라” 덕명이 형은 껄껄 웃기만 할 뿐 회의 얘긴 안한다. 상황이 안되면 길바닥 회의라도 하면 되는데 이러면 할 수가 없지. 목사님은 남기고 우리는 흥왕리로 향한다. 김용림 선생님 댁은 화가의 집답게 벽마다 그림이 걸려 있었다. 집은 정갈하고 벽의 그림들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뭔가 모를 평화로운 긴장이 어려 있었다. 수줍어하시며 안내한 이층작업실에서 김선생님은 우리가 두번의 회의를 하면서 논의했던 내용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몇점의 그림을 보여주셨다. 지난 회의 때 스케치로 보여주셨던 이산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만나는 장면은 이제 완성된 작품으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하나는 김목사님의 유기농과 통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 아이들이 철조망을 끊고 대기의 기운과 하나가 되어 노니는 작품,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평화의 종이배 띄우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아니 이것은 지난주 회의에서 처음 이야기 한 내용이 아닌가? 김선생님은 속도전을 하고 계셨다. 전혀 조급하지 않은 속도전, 영감의 분출에 이끌려 손으로 옮겨 그리기만 한 듯한 자연스러운 속도전. 임선생님과 나는 연신 탄성을 지르며 감탄, 또 감탄하고 있었다. 두 번의 회의를 통해 나타난 이 일의 진정한 주인공은 김선생님임이 명백했다. 회의 때의 침묵이 고스란히 창작을 위한 내면으로의 되새김질이었음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작품도 연이어 보자는 제안에 일단 지금의 감동과, 이어질 감상간에 잠시 매듭이 필요할 것 같아 우리는 준비해 간 토스트를 먹겠다고 해서 시간을 벌었다. 김선생님은 회의가 너무 재미있었노라고 답하셨다. 잠시 뒤 갤러리나 다름없는 옆방으로 안내되었다. 김선생님의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화력을 살필 수 있는 방이었다. “정신대문제, 환경문제, 통일문제 처음 작품들은 너무 어두웠어요. 그땐 저항은 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마음에 병이 든 것 같아요. 그런데 강화에 내려와서 이 빛과 갯벌을 보고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지금와서 보니까 어둡더라구요.” 김선생님의 화두가 밝음임을, 그러나 어둠으로부터의 승화임을 알 수 있었다. 최근작인 나무시리즈들은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력에 더해, 대기마저 기운생동하는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들이었다.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방법이 나로서는 부러웠다. 회의를 위해 준비된 구들방으로 돌아와서야 오늘이 회의였음을 알았다. 제법 시간이 지났을텐데 더 이상 도착한 분은 없었다. 이럴 땐 아쉬움보다 즐거움을 독점한 미안함이 더 큰 법이다. 단 세명. 이전에 모이던 인원에 비하면 극소수이지만 우리는 기꺼이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의 공부주제였던 한강하구의 유라시아체계1-고인돌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기울어진 고인돌의 원리를 배우기 위해 민요도 부르고 태견의 기본동작도 배우고 수박치기라는 무예도 해 보았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야 그 방에 시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오늘의 회의를 할 차례다. “벌써 사람들이 이렇게 빠지기 시작해서 어쩌나” 하는 우려의 일성으로부터 조심스럽게 회의는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회의는 한번 많아야 두번 정도면 충분한 회의였는지 모릅니다. 함께 할 일에 대한 목표와 일정 없이 토론만 한다는 것은 활동가들의 특기적성이 아니지요.
이렇게 했으면 합니다. 우선 모든 일정을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해 정한다는 원칙과, 새로운 일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조직과 일정에 흡수되어 들어간다 원칙을 확인하고 올해는 그 준비 정도에 맞게 사이버상의 배 띄우기나, 종이 배띄우기 정도를 현실적인 목표로도 고려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요 조직 대상을 청소년층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이 움직이면 부모들도 움직이고 부모인 농부와 노동자들이 움직여야 스스로의 이해관계와 배띄우기를 주인의 입장에서 고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기획팀에서 사이버공간상의 운동을 1차 목표로 잡아 지역의 열기를 북돋는 구조로 가게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4가지 일을 추진해 갔으면 합니다. 첫째는, 한달에 한 번 정도 어린이 청소년 부모가 함께하는 야단법석운동(한강하구와 관련된 걷기 야외 학습)과 둘째는, 예술가들의 한강하구 종합 전시회 기획, 셋째는 격주 한번 정도의 한강하구 공부모임, 넷째는 한강하구 학술행사입니다.”
“그런데 그 조직대상이 서로 다 겹치지 않을까요? 강화에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왜 이번회의가 안된건지 원인부터 분석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점도 고려되야겠지만, 우선 겹치더라도 공부모임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내용을 계속 깊이 있게 가져갈 수 있쟎아요.”
“야단법석운동과 공부모임에 동시 참여하는 사람의 경우는 한달에 세번꼴로 이일에 관계하는 셈입니다. 예술가일 경우는 전시회 기획단 이외에는 공부모임에 같이 결합하는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니 격주에 한번정도 모임이 될 것입니다. 야단법석, 공부모임, 전시회에 모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한달에 4번 정도 이일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활동은 따로 진행되고, 같이 모일 필요없이 활동의 정황을 사이버 상에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하며, 무엇인가를 공동으로 결정해야 할 때는 비정기적으로 한두번 모임을 소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그 정도를 생각하며 조직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집에 돌아와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 20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회의였다. 이제 수요모임은 일단 종료되고 4개의 일을 추진하면서 모임이 진행되면 될 듯 하다. 밤하늘이 깊어 별이 더욱 총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