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통일사진문화사2001/10/01
2) 통일사진문화사
통일사진의 역사를 서술할 관점을 세우는 일로부터 이일을 시작해야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사진사는 분단극복사진사가 아니라 민족사진회복사여야 한다. 민족사진의 맥을 끊은 것은 분단이지만 분단극복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사진의 발전과 전망에 대한 긍정 속에서 분단사진문화의 부정을 녹여내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사진사의 출발은 분단된 1953년이 아니라 그 이전 민족 사진문화의 체계가 발생발전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1) 분단전 통일사진문화의 시대이념
분단전 통일사진문화사를 얘기하기에 앞서 조선을 찍은 외국인 사진가들의 문제가 해결되어야한다. 이들의 사진작품은 통일사진문화의 대상인가? 대상이다. 민족의 구성원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그의 사진이 우리 민족의 삶을 소재로 민족성의 실현을 위해 당시 민족의 시대정신과 일치한 방향에서 찍혀진 것일 때 그것은 민족사진문화의 대상이 될 수있다. 이는 마치 회암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지공화상(인도승려로 고려에 들어와 불법을 폄)이 불교문화사의 주인공이듯, 체게바라가 쿠바혁명사의 주인이면서 불리비아 혁명사의 주인이듯, 닥터노먼베쑨이 중국 의료사의 주인공이듯 말이다.구한말 의병활동을 찍은 캐나다 출신 메켄지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1906∼1907까지의 의병 다큐멘타리는 단순히 제국주의국의 기자로서 정보염탐의 차원에서가 아닌 민족성 실현의 노력에 대한 존중의 관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매우 측은 하게 보였다. 그들은 전혀 희망이 없는 전쟁에서 이미 죽음이 확실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른쪽에 서있는 군인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 만만한 미소를 보았을때,나는 확연하게 깨달은 바가 있다. 가엾게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아마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표현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자기의 동포에게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자로서의 객관적 한계라는 측면도 엿보이지만 민족 자주정신을 표현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일제 들어서서 3.1 운동을 찍은 보도사진이나, 자주정신과 애국주의적 색채강한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처럼 사진은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민족 자존을 지키기 위한 내용으로 성큼 올라서고 있다. 다른예술에 비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세 가지 창작이념면에서 근대성의 성취를 보여준다. 반외세 자주의식, 반봉건 민주의식, 민족 단결의식이다. 여기에 애국적이고, 변혁적인 (임석제)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분단전 근대민족사진이 도달한 이념적 내용은 자주, 민주, 민족 대단결, 애국, 변혁 등이다. 이러한 근대 민족사진문화의 정신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조건에서 발생 발전한 것으로 다른 나라의 사진정신과 비교된다.
서구의 근대 사진 정신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자유, 평등, 박애와 비교하여 자주, 민주 민족 대단결은 역사상 더 높은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통일이 조건이듯 자유나 평등도 조건이다. 자유는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듯이 자유롭게 욕구를 충족할수 있는 상태, 조건이다. 때문에 완전한 자유는 사람의 자주적 욕구가 완전히 실현되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즉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될 때 자유도 완성된다. 자유가 생활의 조건이라면 자주는 생활의 내용인 것이다.
2) 분단하에서 남한 사진문화의 발전
우선 남의 경우는 임석제에 의해 시도된 사실주의가 당국의 탄압으로 공공연히 얘기하기가어렵자 대신 ‘생활주의’로 그 정신을 잇고자 했다. 그러나 말의 한계는 세계관의 한계이다. 생활의 개념은 모호하여 생생한 역사적 생활의 순간을 찍는 보도사진과 역사적 생활의 이면에 감추어진 개인적인 생활도 있다. 살롱 아루스로부터 발전 되어나간 개인적 직관의 세계,일상성의 주제와 역사적 주제가 교차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일상성의 세계가 서구에서 처럼 반드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격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적 방법이나, 개념적 방법등 외국의 현대사진을 흉내낸 사조들은 모두 개인적 주관과, 해체된 생활로서의 일상성의 주제를 대변한다. 이에 비해 역사적 주제를 다루는 비판적 사실주의 계열이나 민중적, 민족적 사실주의계열은 역사와 구조속에 개인을 함몰시킴으로서 일상성과 괴리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남한 사진문화의 가장 큰 주제는 일상성과 역사성의 통일 이다. 개인의 일상성이 어떻게 역사적 경험의 장엄함으로 승화될것인가? 통일을 주제로 하는 사진에 이산가족의 애잔한 작은 이야기와 주한미국철수, 국가보안법철폐와 같은 큰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화면에서 만날것인가에 대한 주제차원, 형상화차원, 새로운 장르차원에서의 시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은유적 방법의 가능성이다. 개인과 역사의 만남에 대한 속성을 상징적 소재를 통해 표현하는 방법이다. 정동석, 배병우, 이지누등의 시도가 그러하다. 또한 사진의 대중화가 가속화되면서 창작에서의 집단창작 조직창작의 시도가 대중사진모임중심으로 간간히 실험되어왔다. 사람과 사진에서도 조직창작방법을 개발해 가고 있다. 이는 북도 남도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3) 분단하 북한사진문화의 발전
북한사진문화 연구발표회때 언급되었듯이 수령을 중심으로한 주체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북한사진예술은 사진창작 종자를 올바로 형상화 하기위한 숙련도의 문제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보인다. 전쟁복구시기 김일성 형상표현과 배경묘사의 불일치는 완벽한 형상화의 욕구충족을 향해 엉뚱하게도 수령인 김일성의 얼굴에 분칠을 하여 비현실적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겪는다. 그러나 인민과 함께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김일성의 성격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기념사진류의 발전과 인간적 교류에 기반을 둔 자연스러운 연출방법의 향상은 사진 형상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전형적 생활표현에로 발전 시키고 있다. 사진 기교의 발전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반면 사람관계의 개선을 통한 견고한 내용으로의 육박에 현대 북한사진 변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북한사진의 가장 큰 화두는 속도전시대에서 실력전시대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의 문제와 더불어 민족제일주의와 현대적 미감의 결합 문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피바다식 가극에서 춘향전식 가극의 변화에 담긴 고민이 사진에서도 일어나리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풍경사진 장르등의 출현이다. {조선}이나 {천리마} 등의 화보에서 사회주의적 내용과 당정책 선전과 해설에 집중되어 있던 내용구성이 풍경, 고건축 등으로 다양화되는 점이 이런 정책적 변화와 무관치 않으리란 추측이다. 한편 영화나 다른 예술에서는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 소극성에 대한 비판 등 사회주의 건설에서 장애로 나서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서슴없이 이루어지는데 비해 사진은 당정책의 긍정과 해설에 치중되어 있는 점은 사진쟝르 발전의 장애로 되고 있지 않는가 판단된다.
4) 통일사진문화의 발전
통일 사진 문화사는 분단되기 이전 민족사진이 도달한 지점과 성과에 대한 계승과 혁신의 발전사이다. 분단전 민족사진문화의 시대적 과제는 분단으로 인하여 미결 인채로 남아있으며 오히려 더욱 왜곡되어 있다. 현재와 미래의 통일사진문화의 발전은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고 민족 사진 문화의 대화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선 한번도 공식 교류가 없었던 남북 사진계가 직접 만나 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선차적인 과제일 것이다. 사진문화 각분야에서의 설계도를 마련하는 일이 그 다음일 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진문화 공히 추구해야할 통일사진의 공통내용을 발견하고 창작 교류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분단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민족적 역량의 덕분으로 남북 공히 인정하는 공통 주제는 민족과 개인의 운명문제로 좁혀져 있다. 남한 사진 문화의 다양성을 전제로 주요한 흐름을 일상성과 역사성의 통일로 가닥잡는것에 동의한다면 역사적 과제의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한 주제가 개인과 민족이라는데 대해서도 동의 되리라 생각된다. 북의 경우는 김정일이 ‘내사는 내나라 제일로 좋아’를 모태로 제작 지시한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을 통해 현시대 민족예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종자는 “민족의 운명은 나의 운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로서 고민 해봐야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논의 주제는 수령중심적 민족주의일 것이다. 북에서는 수령을 모시고 사는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민족 제일이라는 등식으로 연결된다. 반면 남에서는 민족이란 개념이 여러 차원에서 존재한다. 민족과 개인의 운명 문제에 관한 작품핵에는 민예총 황석영과 조선 문예총 최영하 사이에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주제 내용이 모두 내포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통일사진문화발전사는 마지막이 과제로 끝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배울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려 한것이기에 이는 당연하다. 과제에 대한 고민은 창작에만 머물지 않고 사진문화구조 전반에 대한 고민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