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28일까지의 기록

금강산토론회-이시우발표 김은옥 2009/10/10 572

http://www.bbsi.co.kr/news/news_view.asp?nIdx=417583

8일 신계사 복원불사 2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남북불교계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회향 2주년을 맞아
기념 토론회가 열립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오는 8일 오후 2시
서울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3층에서
‘금강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제로
복원불사 2주년 기념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스님이
‘불교와 금강산’을 주제로 기조발표하고,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가 ‘금강산과 통일미학’을
정영철 서강대 교수가 ‘남북관계와 금강산’을 각각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일 평화기행 동행 취재 김은옥 2009/10/12 577

http://www.womennews.co.kr/news/39313

한·일 평화기행 동행 취재
‘역사의 진실규명’ 앞장서는 ‘Grandma’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착공식 참여 등 통해 시대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 제시

살아있음 자체로 희망을 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이 땅의 할머니(Grandma)들이다. 나이 듦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시대적 과제에 대해 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준다. 때론 청년보다 더 젊고 생생한 마인드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여성신문>은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증언, 영상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새롭게 역사를 써가는 한·일 할머니들을 만났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착공식 행사에 참여하고 철원평화기행을 떠나는 등 올바른 역사를 쓰는 길 위에 선 그녀들과의 동행 길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 활동가들은 ‘박물관착공식참석투어단’을 구성해 한국을 찾고 착공식 행사, 철원평화기행 등에 동참하며 올바른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 사진 왼쪽부터 승리전망대, 양징자 투어단 단장, 금강산철교, 착공식 현장 모습.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독립유공자 관련 단체들의 반대활동으로 건립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착공식 행사를 통해 모금과 건립을 위한 닻을 올린 것이다.

이날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는 일본 참가자들의 지원금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60여 명의 일본인으로 구성된 ‘박물관착공식참석투어단’이 자비를 들여 한국을 방문, 박물관 건립을 위한 후원금까지 전달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도 110만 엔이 넘는 성금을 모은 일본분들의 손길을 생각하니 다시 희망이 생긴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자리에는 유독 할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증언을 통해 정신대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힘겨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할머니부터 이들과 동행해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일본 할머니들이 대다수였다.

일본 투어단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했지만, 50대 이상 여성들이 주를 이뤘다. ‘재일조선인위안부를지원하는모임’ ‘재일한국민주여성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일본건설위원회’ 등 참여 단체도 다양했다.

참가자들은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나이 있는 여성들 중심으로 여성인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 사무국장인 와타나베 미나씨는 착공식 현장에서 “정치인, 연예인 등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일본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나씨가 일하고 있는 박물관은 전시 성폭력 피해 자료를 모은 일본 최초의 자료관으로 지난 2005년 8월 1일 문을 열었으며 신주쿠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착공식 다음날인 9일, 철원으로 평화기행을 떠났다. 참가자들은 노동당사, 금강산철교, 승리전망대 등 한반도 분단 현실을 담고 있는 현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끊어진 철길, 화재로 인해 구조물만 남은 건물 등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일본 여성들의 모습은 되레 분단 현실에 관심이 없는 한국인들의 고개를 숙어지게 했다. 거동이 편치 않은 가운데서도 투어단 모집에 가장 먼저 신청서를 낸 다카하시 기쿠에(78) 전시폭력문제연락협의회 회원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해국인 일본에서 진실기록을 반대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며 “착공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 왔고 앞으로도 일본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시우 평화사진작가가 가이드를 맡아 투어단을 이끌면서 언어소통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재일교포 여성 양징자(52) 투어단장 덕분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재판과 투쟁을 다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일본에서 한일통역 강사로도 활동하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1991년부터 위안부 문제를 학습하면서 ‘우리여성네트워크’를 발족해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회와 캠페인 등 다양한 행사를 주도해왔다.

현재 박물관 해외공동건립위원장을 맡아 모금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영화 주인공인 송신도 할머니가 “지원모임 계집애들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믿지 않은 것이 생존방식이었던 할머니의 재판 과정에 10년간 함께하면서 영상물로 기록한 그는 더욱 ‘희망’을 다짐하게 됐다고 한다. 양씨는 “영화 개봉 후 ‘위안부는 위안부가 아니라 한 인간이었다’는 한 관객의 감상평이,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을 만나 여성인권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전했다.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친 투어단은 지난 11일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뿌린 희망의 홀씨는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록했다.

1022호 [특집/기획] (2009-03-13)

이시우인터뷰-농민신문 김은옥 2009/10/12 565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62829&subMenu=articletotal

“비무장지대 의미·실체 알리며 평화기원”

잠깐 /비무장지대 사진가 이시우씨

“비무장지대에 가 보면 전쟁 당시 쓰다 버린 무기들이 대지의 품에 안겨 잠자고 있습니다. 예리하던 철조망 날도 녹슬어 무디어지는 것을 보면 세월은 진리의 편입니다.”

이시우씨(43·인천 강화군 선원면)는 비무장지대 사진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가다. 그가 찍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의 사진만도 수만장. 신구대학 사진과에 재학 시절 이른바 운동권이란 명목으로 제적당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이씨는 우연히 친구와 강원도 철원평야를 찾았다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인 비무장지대에 한마디로 ‘꽂혔다’. 철조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철새들을 보며 마음의 풍경과 바깥의 풍경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다시 사진기를 잡은 이씨는 2000년 강화도로 이주해 우리 민족의 숙제인 분단에 눈을 떠, 이후 비무장지대에 관한 각종 사진전을 열고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이라는 사진시집을 발간하는 등 비무장지대의 의미와 실체를 알리는 데 주력해 왔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비무장지대 사진은 사실 대부분 민통선지역의 사진입니다. 우리 땅이기는 하나 비무장지대는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기에 출입이 거의 불가능해요.”

그가 본 비무장지대는 사실 완벽한 생태 낙원은 아니다. 시야 확보 차원에서 남북 어느 한쪽에서 불을 놓으면 상대쪽에서 맞불을 놓아 삼림이 사라지고 초지만 남은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훼손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조사를 거쳐 보존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어떠한 연구도 진행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하루빨리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무장하지 않은 공간인데, 우리 머릿속에는 여전히 총칼이 대치하고 있는 중무장지대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분단과 냉전으로 몸에 밴 이러한 생각부터 빨리 바꿔야 합니다. 저의 사진 작업이 이 땅의 평화에 조금이나마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화=이승환 기자 ish@nongmin.com

가을입니다… [1] 황교욱 2009/10/13 561
안녕하십니까?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 전 지난 9월 28일 민주노총 주최의 강좌를 위해 선생님이 창원에 오신다기에 제 옆지기랑 같이 들어러 갔는데… 사정상(?) 미처 잘 올라가시라 인사도 못하고 가버린 게 아쉬웠었습니다.

사실 저희 겨레하나 일로 멀리계신 선생님 불러낸 적은 많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집중한 적은 없었는 데, 이번엔 선생님의 화두(?)가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보게 된 좋은 계기였습니다^^

유라시아적 상상력… 제가 이번에 여름휴가를 도라산역과 파주를 다녀왔는데 인천과 경기 지역에서 무한한 미래 잠재력, 가능성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애기를 들으면서 역사적 맥락이나 상상력을 더 구체화하는 데서 좋은 시간이 되었구요.

질문이라기보다 경남에 존재하는 저에게 활동상 고민을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접경지역(?)이 아닌 지역—북한과 정책적,지리적 이해관계가 다소 떨어지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지역사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의제가 없을까? 전국적 의제, 획일적 의제가 아니라 경남과 같은 지방에서 찾을 수 있는 한반도 통합에 대비한 (유라시아적)의제로 좋은 것이 없을까? 입니다.

접경지역인 경기도,파주,철원,인천 등에서는 dmz 유엔기구 설치, 평화시 조성, 제2 남북합작공단 조성 등 다양한 문제들이 검토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이제 일교차가 심해지고 나뭇잎들이 붉어지기 시작한 완연한 가을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다음에 또 연락 드릴께요^^ 안녕히 계십시!

이시우 [2009/10/13] :: 그렇지 않아도 그때 갑자기 안보이셔서 따라나갔더니 안계셔서 제가 죄송했습니다. 돌아와서 전화한번 드린다는 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선생님이 소개해서 저를 부른줄 알았지 뭡니까? 경남의제는 사실 강의 때 한가지를 말씀드렸는데…. 핵문제였습니다.

58주기 강화민간인학살희생자 고유제 및 위령제에 [1] 김은옥 2009/10/23 770


초대합니다.

<경과보고>
1993년 서영선회장님이 강화유족회활동 시작. 강화특공대장 최중석, 특공대원 김동환 만남
1996년 ‘말’지 기자가 김동환(특공대원)을 취재, 보도함
2000년 제1회(49주기) 강화 양민학살희생자위령미사 진행.
CBS시사자키오늘과내일에서 강화양민학살에 대해 40분간 생방송대담.
제4회 동아시아 인권평화세미나에 참석 강화양민학살사건 발표
강화양민학살희생자진상규명과명예회복에 관한 청원서 제출(법무부,행자부등)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을 위한 전국 유족회 및 범국민위원회 발족
2001년 학살사건현장인 강화구대교 앞에 학살사건 알림표지만 세움
2001.4. 제2회(50주기)강화양민학살위령제 봉행
2001.6.5 제1차강화양민학살진상규명 명예회복 추모비 건립촉구 강화군청 앞 집회시작 지금까지 계속
2001.10. 민간인학살 특별법제정 전국공동대책위 발족식
2002.2.1 영국 BBC방송의 <다 죽여버려> 방영에 즈음한 통합특별법제정촉구 기자회견
2002.4. 제3회(51주기) 강화양민학살 희생자 위령제
2003.1. 통합특별법제정서류면접신청(정부종합청사)
2003.1.27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
2003.3.21 강화양민학살지 온수리 사슬재에서 유해 발굴 작업 진행
2003.4.12 제4회(52주기)강화양민학살 희생자 위령제
2003.5.5 강화유족회 정식 출범
2004.6.8 국회 헌정기념관서 특별법 공청회
2004.7.8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법안심의 지연 항의 기자회견
2004.9.16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발족식
2004.12. 국회행정자치위원회 간담회
2005.1.21 강화양민학살연구자모임주최로 강화제노사이드 필드워크 진행
2005.2.1 제대로 된 과거청산법 2월 입법실현 공동기자회견
2005.4.13 국회과거사법 청원의 날 집회
2005.4.23 제6회(54주기)강화양민학살위령제 봉행
2005 과거사법 제정되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발족되면서 2006년 강화민간인학살사건 조사결정이 내려짐.
2006.4. 제7회(55주기) 강화양민학살위령제 봉행
2007.4. 제8회(56주기) 강화양민학살위령제 봉행
2008.7.17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강화지역민긴인희생사건진실규명결정되어 강화향토방위특공대가 군,경 지원하에 민간인을 살해한 것에 대해 국가에 지휘책임이 있음을 확인하고 명예회복을 위하여 국가의 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등의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역사기록을 정정하고 평화인권교육을 강화하며 접경지역주민의 상황에 맞는 유사시 대책수립 홍보 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하였음.
2008.8.16 제9회(57주기) 강화양민학살위령제 봉행
2008.11.10 한국전쟁전후 강화민간인희생사건추모비건립을 위한 준비모임 시작
2008.12.15 강화민예총주최 추모비건립을 위한 포럼 개최와 추모비건립예상지 답사
2009.3.6 한국전쟁전후강화지역민간인희생사건 추모비건립위원회 발기인대회
2009.3.20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교동면민간인희생진상규명 결정서 발표
2009.10.17 제10회(58주기) 한국전쟁전후 강화.교동 민간인희생자 고유제 및 추모제 봉행

고유문

영령들이시여
목매이게 불러도 대답 없는 영령들이시여.
피눈물 뿌리며 몸부림쳐도 끝내 대답 없는 영령들이시여.

얼마나 한이 깊으시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럽게 구천을 떠돌고 계시면,
또 얼마나 산사람들의 세상을 믿을 수가 없으셨으면,
미혹한 저희들을 훤히 내려다 보시면서도 답하지 않는 것이옵니까?

영령들이시여,
저희들을 항상 굽어보시는 영령들이시여,
소리 높여 답하지 않으셔도, 낮은 음성으로 다가와 희미한 숨결로 스치어가도 저희들을 지켜보는 당신들의 사랑을 압니다.

눈앞에서 당신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서도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어 어리석고 답답한 가슴을 치며 눈보라 속을 눈감은 채 한걸음씩 더듬어 헤쳐 왔습니다.
한걸음을 내디딜 때 옆에 또 한사람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다시 한걸음을 내딜 때 그 사람 곁에 또 한사람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무런 성과도, 아무런 대가도 바랄 수 없는 암흑과 절망에서도 미흡한 정성, 부족한 능력이나마 저희들은 쉬지 않고 그렇게 헤쳐 왔습니다.

긴 겨울 동토의 역사를 지나오는 사이 언 땅이 녹고 온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땅위에 우리가 흘린 눈물이 싹을 틔우고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참으로 다행히도 2005년 과거사법이 제정되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발족되면서, 2006년 강화민간인학살사건조사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조사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천 길을 달려가 증언을 채록하고 조사가 벽에 막히면 추리력을 동원하여서라도 길을 찾았습니다. 진리를 향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과학의 냉정으로 마침내 진실을 증명해주셨습니다. 유족들의 겪었던 사건이 조사관들에 의해 역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국가는 강화민간인희생사건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2009년에는 교동민간인희생사건 역시 진실이었음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겐 눈에 집어넣을 만큼 생생했던 그 참혹한 순간들이, 한낱 무시해도 될 것처럼 무시당했던 사건들이, “화해가 중요하니 미래를 위해 이제 과거는 묻자”고 교묘히 협박당해야 했던 진실이 이제야 비로소 ‘사실’이 ‘사실’로 ‘진실’이 ‘진실’로 기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실에 무게와 부피가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이 엄청난 진실의 규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점잖게 무시하고, 결정을 왜곡하고, 화해를 갈등으로 몰아가는 현실 앞에 우리의 진실은 참으로 왜소하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진실의 규명으로 기뻐서 춤을 출 줄 알았던 영령들이 여전히 침묵하고 우리의 간청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영령들이시여 아직 구천에서 동토의 칼바람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해도 마음풀고 빗장을 열어 저희와 함께 해 주십시오.
미흡한 정성 부족한 능력이지만 오늘 국가가 당신들께 국가에 의한 희생의 진실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 고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의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 뿐아니라 구천을 떠도는 국민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고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천부인권이 전쟁범죄에 의해 털끝하나라도 침해될 수 없음을 확인한 제네바협약의 정신이 바로 당신들에 의해 확인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역사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화해로 나아갈 준비와 힘이 필요합니다. 갈등을 부추겨 진실마저 흔들려는 헛된 노력을 부질없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끌어안아야겠습니다.

영령들이시여
정성 다해 제수를 마련하고 향을 피워 헌화공양하오니 모두 이리로 강림하시여 즐거이 흠향하시고 해원승천하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가소서

강화도와 교동도 영령 제 신위께 옷깃을 여미고 간절한 마음으로 삼가 고유하나이다.

2009년 10월 17일

김은옥 [2009/10/23] :: 행사에 함께 하여준 많은분들께 감사드리며, 당일 행사를 위해 애쓰신 강화추모비위원회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가을추수하는 우성이^^ 김은옥 2009/10/23 753

http://www.sanmaeul.org/

6월6일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함께 모내기를 한게 며칠전인것 같은데 벌써 추수를 하네요. 감래무량^^

우리아들 추수하는 솜씨를 보니 굶지는 않겠네요 (ㅋㅋㅋ)

민주노총전북본부 평화통일기행 강사요청 [1] 정관영 2009/10/27 600
민주노총전북본부 대협부장 정관영입니다. 다름아니라 전북지역 노동자 통일역사기행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파주일대의 통일역사기행과 무건리투쟁에 결합하려고 하는데요.
구체적인 일정이 잡힌것은 아니고 11월 20일경에 하려고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역사기행강사를 부탁드렸으면 합니다.
확인하시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010-4945-4057 정관영입니다. 수고하세요

김은옥 [2009/11/02] :: 20일 또는 27일 날짜 확정되시면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전교조 경남지부 통일위원회입니다. 강연 부탁을 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2] 정헌민 2009/10/30 571 전교조 경남지부 통일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정헌민이라고합니다.

다음달 11월 21일 전교조 경남지부에서 참교육 실천대회를 엽니다. 현장의 교사들이 분과별로 나뉘어서 참교육 실천 사례를 공유하고, 참교육을 위한 토론회 등을 여는 자리랍니다.

우리 통일위원회에서도 통일교육분과를 열려고 합니다. 올해 통일교육분과에서는 간디학교의 최보경 선생님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한창이기도 해서, 국가보안법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간디학교 학생 대책위의 그 동안의 대책위 활동 및 투쟁 과정을 공유하고,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 국가보안법, 통일, 평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보다, 소박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11월 21일(토) (장소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 오후에 강연이 가능하실지, 그리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앞서 간단히 말씀드린 내용들로 강연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메일(sinmyung21@hanmail.net) 또는 손전화(010-5554-9402)로 연락주시거나 댓글로 남겨주시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시우 [2009/11/05] ::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진주에 꼭가고 싶은데 너무나 아쉽게 되었습니다. 통일위원회 선생님들 참으로 고생많으셨고 분투에 지지를 ㅂ내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도 선생님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은옥 [2009/11/02] :: 죄송합니다. 다른단체 기행일정이 잡혀있네요. 감사합니다.

간디학교 최보경입니다 최보경 2009/11/02 592
안녕하십니까?
간디학교 교사 최보경입니다.

이번주 금요일(11월 6일 늦은 6시30분) 잡혀있는 간디학교 초청강연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어 글 올립니다.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연락부탁드립니다. 017-530-2015 입니다.

간디학교 강연 때 보겠습니다 [1] 김종세 2009/11/04 556
제 아이가 간디학교 3학년입니다;
이 선생 뵌 지도 꽤 되었고 하여
마누라랑 산청에 갈려 합니다.
모래 6일날 즐거운 해후를…

이시우 [2009/11/05] :: 그러시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뵙겠네요. 어찌지내셨는지요. 내일이 기다려지는군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이동국 2009/11/12 560
우연히 들어와서 군생활 하던 연천의 태풍전망대도 보면서
읽은 작은 글들이 왜그리 제 마음을 울리는지요.

국경을 넘어, 분단을 넘어,
벽을 넘어갈 힘이 사진에 있어보입니다.

2010년 이시우작가 탁상용달력이요^^ [7] 김은옥 2009/12/21 961

달력보기<-이곳을 클릭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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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사진가가 몇년동안 '유라시아차원에서 통일상상하기'란 화두로 사진작업을 해왔습니다.

6.15선언에 포함된 남북철도연결은 '유라시아철도'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유라시아철도'란 제목으로 사진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상상력은 빛을 발합니다.

상상이 역사를 만나면 희망이 되고

희망이 전략을 만나면 전망이 되기때문입니다.

이시우사진달력과 함께

빛나는 상상과 근거있는 희망과 신념에 찬 전망을 예감하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사진달력화일을 첨부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달력단가 및 디자인비, 단체명인쇄 택배비 포함가격을 아래와 같이 보내드리니

궁금하신 점 김은옥(010-7737-1674)에게 상담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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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가 : \5,000/1매 (50부이상 단체명 인쇄가능)

* 1차 주문 : 11월 21일(토)까지

* 2차 주문 : 11월 30일(토)까지

* 3차 주문 : 12월 12일(토)까지

*** 단체주문 19일(토)까지 연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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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주문시 단체명, 단체로고,전화번호, 주소, 홈피주소등을 정확히 적어 보내주세요.

(김은옥 010-7737-1674 / keo1984@daum.net)

(이시우(본명:이승구)계좌 우리 112-07-183653)

김은옥 [2009/12/21] :: 연장주문요청해주신 단체에도 감사드리며, 최대한 빠른시일내에 작업완료하여 배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은옥 [2009/12/12] :: 3차주문과 함께 그간 달력주문하여주신 단체와 개인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새해에도 모든가정의 행복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김은옥 [2009/12/12] :: 2차주문 감사합니다. 12얼14일(월)쯤발송예정입니다.

김은옥 [2009/11/25] :: 1차주문 감사합니다. 인쇄소가 많은물량으로 12월5일보다 조금더 늦어질 수 있으니 이점 양해 바랍니다.

김은옥 [2009/11/19] :: 1차주문 11/21(토)까지 연락주세요. 12월 5일정도 발송해드리겠습니다.

황교욱 [2009/11/18] :: 빛나는 상상, 근거있는 희망, 신념에 찬 전망... 팍팍 와 닿네요^^ 작지만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김은옥 [2009/11/17] :: 주문후 달력인쇄시간 2주정도후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달력주문] ^_^ 저도 달력좀 사려고요.. [1] 정호선 2009/11/29 591
호선입니다..^^

방금 형수님하고는 통화했는데..달력좀 살까해서요.

연말에 부산내려와서 만난 지인들에게 선물로 할까 합니다.

많은 개수는 아니지만서도 조금사서 이렇게 보내려고요.

부산에서의 생활은 안정이 되고 있습니다.

요새는 낙동강 하구에 찾아온 반가운 큰고니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내녀 3월달쯤 만들 환경교육센터 준비를 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어떤 내용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소주한잔에 말씀드릴꼐요^^

그럼 건강하시고 통일기행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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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수량 : 20개(많이 못사서 죄송해요.^^;;;)

금액은 어디로 입금해야하는지 문자로 알려주세요~~

이시우 [2009/11/29] :: 반갑구나. 고니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이젠 자연스럽게 연상되는걸 보니 정착?이 된 모양이구나. 괜히 고맙다. 센터준비 잘 하시길...개인정보는 따로 보관했어요.

전교조 양산지회 겨울기행 답사 관련 [2] 황교욱 2009/12/02 574
<<전교조 양산지회 겨울역사기행>>

* 주최 : 전교조 양산지회
* 답사지 : 강화도~파주~서울
* 시기 : 2010년 1월 25~29일 사이 (2박3일)
* 규모 : 40여명
* 담당자 : 박한승 (경남겨레하나 교육위원,전교조 양산지회)
010-7220-1803
parkddung67@hanmail.net

** 비고 : 다음주부터 홍보,모집을 들어가며, 만일 신청자 수가 적을경우에는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 요청사항 : 강화도(첫날)~파주(둘째날) 답사지 코스와 내용에 대해 ‘담당자’ 님과 연락 부탁드립니다.

— 늘 좋은 날 되세요~! —

김은옥 [2009/12/30] :: 1/26,27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변동사항있으시면 연락주세요

김은옥 [2009/12/03] :: 날짜가 확정되시면 연락주세요. 010-7737-1674

이시우작가님께 부탁드립니다. 615울산본 2009/12/08 493
저희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울산본부라는 단체입니다. 이곳에 이런 글을 남겨서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울산지역에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논의끝에 6.15/10.4관련 사진20여점과 이시우 선생님의 평화관련 사진 20여점을 함께 전시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시우 선생님의 작품중에 20여점을 대여할 수 없는지에 대해 문의드리고자 합니다. 딱히 연락을 취할 수 없어서 이렇게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혹, 이글을 보시면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연락처 010-6568-7656 입니다.

강성갑 목사를 기억하며… [1] 솔향 2009/12/08 690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강성갑이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노무현대통령의 고향인 진영에서 불꽃같은 삶을 사시다 군경에 의해 처형당하신 목사님이시다.

그는 1912년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연희전문과 일본 동지사대학을 졸업한 초량교회, 진영읍 진영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이후 그는 농촌의 현장에 투신하여 야간공민학교(복음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이후 한얼중학교가 된다.

강성갑 목사는 농촌의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는 철저한 자급자족과 공동체생활을 주장햇고 그것을 현실화시켰다. 그리고 당시 가장 빈곤한 마을에 학교를 설립하여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학교가 없으면 학생들과 함께 교사를 손수 지었고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밥을 먹지못하면, 성냥공장을 만들어 가난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노동과 교육을 철저히 병행시키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과 노동을 배우게 하였다.

그는 해방기 좌우갈등이 심화될 때 이 민족에겐 좌와 우가 있을 수 없고 분단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전평’에 관계했고 5.30선거에는 민전 소속 안00 집사의 선거사무소장이 되기도 했었다.

그는 경찰과 관이 구호품을 부정하게 사용하면 이것에 대해 항의하고 바로 잡았다.

전쟁 당시 경찰과 군이 학생들을 부당하게 징집할 때 경찰서장이 보내온 공문서를 찢어 버리며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 몰수 없음을 명백히 했다.

그는 1950년 8월 38세의 젊은 나이로 낙동강에서 군경에게 집단 학살되었다.

총살당하기 직전 그는 가해자에게 “나는 목사이니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그리고 대단히 큰 목소리로 “주여 이 죄인들을 용서하옵소서. 이겨레 이 나라를 가난과 재앙에서 건져주옵시고 한얼을 축복하옵소서. 이제 이죄인은 주의 뜻을 받들어 주의 품에 육신과 혼을 기탁하오니 주여 남기고 가는 저들을 축복하옵소서”라고 하며 최후를 맞이했다고 당시 현장 생존자 최00이 말했다.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이 몰려와 교사로 쓰여지던 창고가 부족할 때 돈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교사를 신축한 사람, 학교에서 생산하는 성냥곽에 괭이(농기구)를 그려 논 사람, 교사에 태극기를 걸지 않은 사람, 좌우보다 ‘한얼’, ‘동지’를 강조한 사람, 부산대학 교수직과 초량교회 목사직을 포기하고 가난과 입맞춤한 사람, 성경의 공동체를 가난한 농촌에서 건설하려 했던 사람, 그 분이 강성갑목사님이다.

이시우 [2009/12/10] :: 목사님 반갑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궁금했습니다. 여전히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김해에 갔더니 학살후 매장지위로 도로가 났는데 그 위치에서만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더군요. 작업실로 연락한번 주세요. 032 933-2308입니다.

옛날을 기약하며.. 전치균 2009/12/22 474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한 15년전 쯤일까 선생님과 철원지역 평화기행을 다녀온 기역이 납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교직에 임하고 있는데…
제가 있는 학교는 북한에서 온 새터민 청소년들만 교육하는 국내 유일의 학교입니다.

올해 초 잠시 이 아이들을 데리고 휴전선 155마일 종단을 계획했었고, 이 과정에 군 부대의 협조도 구해져 있었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막연하더라구요

내년에는 꼭 실행해 보려구요
같은 민족이면서 갈라진 우리 현실을 이념과 사상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선생님의 간절한 도움이 필요하고
내년에는 꼭 실행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울산 이시우전시회 관련기사 김은옥 2009/12/29 531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946#

‘평화 그리고 통일’을 기다리며…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남북교류협력 사진전

2009년 12월 23일 (수) 20:38:26 권아주 기자 1105kaj@hanmail.net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울산본부가 오는 28일과 29일까지 현대자동차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남북교류협력 사진전 ‘평화 그리고 통일’을 갖는다. 개막식은 28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올해는 6·15공동선언이 있은 지 9주년, 10·4 정상선언이 있은지 2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두 선언을 진행했던 故 김대중과 故 노무현 前대통령이 서거한 해이다.

이를 맞아 ‘평화 그리고 통일’는 6·15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이 활발했던 시기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된다.

작품을 통해 금강산과 평양, 개성 등 북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진작가 이시우씨의 작품 20여점도 전시된다. 이시우씨는 DMZ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곳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6·15울산본부 관계자는 “사진전을 통해 시민들이 평소 생각하지 않은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울산본부는 故 김대중 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남한과 북한, 해외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 권아주 기자

이시우와 함께한 강화도 평화기행 김은옥 2010/01/22 785

http://dobongn.tistory.com/30

민통선평화기행’의 저자 이시우와 함께한 강화도 평화기행

기행에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이 함께한다. 강화도 평화기행에서도 학창시절 느껴보고 추억속에 묻어두었던 그 설렘과 기대감이 먼지를 툴툴 털고 함께하였다.
8시 5분에 도봉구민회관 앞에 도착하니 ‘강화도 평화기행(마을신문 동봉N)’이라는 푯말을 이고 있는 관광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8시 45분에 일행이 다모이자 살짝 흥분된 관광차는 출발하고 이와 함께 마을신문 도봉N의 강화도 평화기행이 시작되었다.
서울외곽 순환도로를 따라 1시간 20분 정도 달려 강화도 역사관 앞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이시우 선생을 만났다. 곱슬머리를 길게 길러 고무줄로 묶고 낭자한 수염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주는 모습이 척 보아도 예술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첫 기행은 강화도 역사관 옆에 서있는 자칫 무관심하기 쉬운 비석 두 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였다. ‘순국열사 연기우 의병장 공적비’와 ‘죽산조봉암선생추모비’가 그것이다.
‘순국열사 연기우 의병장 공적비’ 안내판에 나오는 이동휘 선생의 리더십과 죽산 조봉암선생의 정세를 간파하는 의제선택의 능력에 대해 해설하면서 세계 속의 유라시아대륙, 그리고 그 속에서의 한반도의 강화도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독창적으로 해설해 주었다.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적 사실들의 틈 사이에서 새로운 역사를 배운 것에 대한 묘한 성취감을 가지고 버스에 올라 ‘연미정’으로 향하였다.
‘연미정’은 제비꼬리모양의 정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시우 선생은 강화도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적지가 바로 이곳 ‘연미정’이라며 시간이 없어 딱 한곳만 사람들을 안내할 때는 주저 없이 이곳 ‘연미정’으로 안내한다고 하였다.
언덕위의 자그마한 성곽 안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와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멀리 북쪽으로는 황해도 개풍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김포시가 보이며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들어오는 한강하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777년 전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략으로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많은 이주민을 먹여 살릴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개간한 간척지에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었다. 조선 인조 정묘호란 시기에는 이곳 ‘연미정’에서 인조가 누르와치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고 한다. 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기라도 하듯 가슴이 아린 곳이 바로 이곳 연미정이 아닌가 한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배꼽시계가 꼬르륵 알람을 울리기 시작하자 관광버스는 맛있는 시골밥상이 기다리는 밥집으로 향하였다. 강화군청 후문에 있는 가건물로 지어진 한정식집인데 음식이 어떻게나 맛난지 아이들과 경쟁을 하며 먹다 보니 반찬그릇이 깨끗해졌다.

점심을 먹고 ‘부근리 고인돌’로 향하였다. 수천 평 남짓한 넓은 구릉에 잔디가 곱게 깔려 있고 그 중앙에 고인돌 하나가 위용을 뽐내고 서 있었다. 굄돌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그 위에 큰 너럭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큰 돌이 고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고인돌의 튀어 나온 앞머리 부분은 현세와 사후세계를 연결하는 문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풍부한 지식과 독창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이시우 선생의 고인돌 해설의 주된 내용은 ‘기울어진 고인돌의 통일미학’이었다. 굄돌의 기울어짐을 윗돌의 또 다른 기울임으로 무게중심을 유지시키는 독특한 건축미학, 즉 억지로 바로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기울어짐이 조화를 이루어 결국 바로 서게 되는 것이 바로 ‘부근리 고인돌’의 통일 미학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분포되어있는데 그 중 70%가 한반도에 있다고 하니 이 또한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관광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평화전망대로 향하였다. 지하1층 지상4층의 원통형 건물인데 2층과 3층이 전망대였다. 이곳은 조국이 분단되어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 멀리 강 건너에 북한 땅과 마을이 보이는데 왠지 자욱한 안개 속에 잠겨있는 듯 아득하기만 하였다. 정전협정 그 어디에도 한강과 서해에 대한 군사분계선이 없다고 한다. 정전협정 그 어디에도 군사분계선에 철조망을 쳐야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한다. 주한미군에 의해 쳐진 저 철조망 너머 또 다른 조국이 있다는 현실이 참 개탄스러웠다. 저 멀리 강 건너 북녘 땅을 보고 또 보며 평화의 배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오고가며 통일조국의 물길을 열어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바쁜 발걸음으로 차에 올라 광성보(광성돈대)로 향하는데 이시우 선생의 차안 설명이 다시 시작되었다. 바람이 차고 기행에 피곤했는지 선생의 목소리가 자장가로 들려 선생의 코밑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관광버스가 광성돈대에 도착하였다.
역사책을 통해 알게 된 병인양요, 신미양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제국주의 확장시기의 유라시아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이 곳 강화도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광성보에는 ‘신미순의총’이라는 7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에 맞서 용맹하게 싸운 어재연장군과 59명의 이름 없는 전사들의 묘지라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 우리 일행 중의 꼬마아이가 무덤에 절을 하고는 오랫동안 엎드려 있더니 무덤이 패인 곳에 흙을 넣어 다듬었다. 아마도 이름 없는 반제전사들의 정신과 혼이 오늘의 우리 아이들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화도 평화기행의 마지막 순서로 광성보 아래 한강하구로 나가 평화의 갈댓잎 배 띄우기를 하였다. 하루 종일 어른들 따라 다니면서 지루했을 아이들이 배 띄우기 놀이에서는 너도나도 제가 먼저 하겠다고 키를 돋우며 이시우 선생의 배 만들기 설명을 들었다. 평화의 갈댓잎 배가 하나둘 한강하구에 던져지고 바다인 듯 강인듯 여울인 듯 물결인 듯 강물을 타고 출렁이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강화도의 역사만큼이나 긴 세월동안 수많은 강화도 아이들이 이렇게 갈댓잎 배를 띄워 보내며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광성보를 벗어나 서울로 향하고 중간에 이시우 선생이 내렸다. 서쪽으로 해가 져 개구쟁이 노을이 변색놀이를 하는데 동쪽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올라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배웅한다. 이시우 선생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애써 서운함을 감추는 듯하였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보람된 강화도 평화기행은 끝을 맺었다.

엄경순님의 시 이시우 2010/01/25 740
이시우의 통일이야기

엄경순
겨울 보릿잎이 짚더미를 비집고 빼꼼히
고개 내밀어보니
마악 달려간 군용트럭의 배기가스에
한숨을 쉬며 푸욱 꺼지는
땅덩어리

보릿잎들이 흙더미를 뒤집고
분분히 일어나
꺼진 땅덩어리를 깨우며
우리 어매아베는 자식새끼들때매 산다고
수다스런 싹들이 결을 맞추고 있을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초봄
임진강 버들강아지
‘피 ㄹ 히’ 소리 들린다.

우연히 편지를 정리하다 낯선 이름이 있어 열어보니 시가 한편 적혀있었습니다.
99년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첫번째 개인전에 왔던 동국문학회원이었고 98년에는 서문연의장을 했던 엄경순이라고 자기 소개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기억이 납니다.
10여년 전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사회생활도 오래하시고 결혼도 하셨을만한 나이시군요. 한참을 잊고 있던 편지의 시를 감사의 마음과 함께 올려보았습니다.

* 이시우의 `동백꽃 눈물`전을 기획하며 * [7] 김은옥 2010/03/26 2200

동백꽃눈물 전을 기획하며

사진가 이시우는 2007년 한국의 비무장지대와 오키나와 미군기지등을 촬영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구속된다. 한국 사진계 최초의 국가보안법구속자였다. 이시우사진가는
구속기간 중 48일간의 단식과정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사색하게 되었고
그 뿌리가 제주4.3에 있음을 새삼 자각케 되었다. 그는 최후진술문에서 4.3항쟁에 대한 학살과
진압으로부터 유래한 국가보안법이 아직 유지되고 있는 현실의 구조를 슬라보에 지젝등의
철학이론으로 예리하게 지적했고, 어쨌든 결국에는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서 국가보안법을 이긴
예술가가 되었다.

그 후 사진가 이시우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콜롬비아등 유엔참전국들의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차원의 냉전이 각국의 내전과
겹쳐 진행되다가 한국전쟁이란 꼭지점으로 수렴되는 형상이다. 제주4.3은 제주만이 아닌
세계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보편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시우는 제주4.3을 세계차원에서
상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첫 작업으로 오키나와와
제주에 흐르고 있는 보편의 고리를 찾고자 시도했다. 이번 ‘동백꽃 눈물’전은 미흡하나마
그 성과의 반영물이다. 이 작업에 김환태감독이 참가하여
‘국경은 없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타리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미 인디다큐페스티발, 국제인권영화제등에서 여러차례
상영되었다.

제주4.3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상처이자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이다. 4.3이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헌법의 정신, 국가의 정통성에서 의문부호를 지울 수 없다.

이시우의 4.3작업은 객관의 기록이기보다는 서정적자아의 역사체화로 봄이 적당하다.
그것은 작가가 역사와 대화하고 역사를 호흡하며 자기안에 체화시킴으로서만 역사를
제대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키나와의 요미탄마을에 있는 격납고와 특공정동굴진지를 모슬포에 있는 격납고와
송악산 황우지등에 있는 특공정동굴진지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일본군에 의해 강요된
오키나와인 집단자결지의 유물들과 동굴에 피신했던 제주도민들이 남긴 유물등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사진집을 대신하여 두껍지 않은 두께의 책을 만들고자 한다. 창작배경에 대한 해설이자
제주-오키나와의 연대에 던지는 미학, 예술적 화두이기도 하다.

<사진전관련 문의>

김은옥 010-7737-1674
keo1984@daum.net
siwoophoto@hanmail.net

렌즈 [2010/03/03] :: 부산가서 도장찍고 와야겠내요..ㅋㅋ^^:

이시우 [2010/03/02] :: 부산민주공원의 사정으로 전시회는 연기되었습니다. 아쉽게 되었네요.

들풀 [2010/03/02] :: 부산에서!! 진짜 머네요^^

주나 [2010/02/25] :: 네~답변 감사합니다. 멀어서 가보긴 어렵겠군요. 서울에서도 전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은옥 [2010/02/23] :: 3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부산민주공원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어요. 아직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네요. 정해지는대로 공지하겠습니다.

주나 [2010/02/22] :: 그런데, 사진전 날짜와 장소가 없군요. 꼭 보고 싶은데요…

주나 [2010/02/22]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한도숙님의 시- 두사람 김은옥 2010/01/31 828

두사람

한도속
국가보안법으로 경친 자가
휴전선 철조망을
낡아빠진 인화지 위에
옮겨 놓는다.
녹물 떨어질까
이끼 달아날까
기억의 한계 때문에
떨리는 손가락을 하나씩
놀러
시대의 부러진 통증을
확인한다.

구가보안법으로 경친 자가
평창 어린골에서
갈라터진 화폭에
물을댄다
소리치고 싶은 격정을
붓끝에 실어
배추값이 똥값 된
아비의 사연을
붉고 검은 화폭으로
천착하였다.

국가보안법2,,4,5조
한사람은 간첩죄
국가보안법 7조
한사람은 고무찬양죄
경을 쳤다.

두사람은 이시우 사진가와 정설교 농민시인이다. 한도숙시인은 전농회장이면서 평택민예총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출처는 ‘개불알 꽃’(한도숙,도서출판 한국농정,2009,p16-17)

봄 인사. 성주 2010/02/04 484

立春大吉
建陽多慶

和神養素
光風動春

부디부디
萬壽無疆

펌]이정희 의원 출판기념회 대성황…500여명 빼곡 김은옥 2010/02/05 555

“이정희처럼 가슴으로 정치하는 사람이 소중하다”
이정희 의원 출판기념회 대성황…500여명 행사장 빼곡
박상희 기자 psh@vop.co.kr 이정희 의원 인기 실감

김태환 기자

’18대 국회 아이돌’, ‘정치계 김연아’로 불리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의 첫 자서전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 출판기념회가 4일 대성황리에 열렸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4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이 쓴 글 중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을 읽으며 소개하고 있다.ⓒ 이정희 의원실

이날 저녁 7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이정희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곽정숙 의원, 이수호, 이영순, 최순영 최고위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치인들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진관스님 등 시민사회원로, 이정희 의원의 팬클럽 회원 등 약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정희 의원은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 책을 출판한 이유에 대해 “국회에서 활동을 해보니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았다”면서 “특히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옥쇄 투쟁 등 그곳에서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들, 또 국회에서 밤을 새워가며 회의장에서 썼던 글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책 내용 중 ‘아프다’라는 구절이 많은 이유도 설명했다. 이 의원은 유복했던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일부 친구들이 산동네에서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과 기억들, 책임감과 빚진 마음들이 있다”면서 “그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고 아픔을 더 느끼게 된 듯하다. 이제는 아픔은 이것으로 충분하고 2010년에는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 출판기념회 대성황ⓒ 이정희 의원실

이 의원이 자신의 첫 책을 가장 먼저 주고 싶은 사람은 현재 옥중에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 한상균 지부장이었다. 그는 “쌍용차 파업 현장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노동자들을 들어가서 만나고 싶었다. 경찰에 막히고 한국 사회에 다시 있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정말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며 “한상균 지부장이 가장 보고 싶고 또 이 책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정희 의원은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그동안 숨겨놓았던 장기도 선보였다. 특히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한 존 레논의 ‘Imagine’은 참석한 모든 이들이 넋놓고 바라볼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피아노 연주 중인 이정희 의원ⓒ 이정희 의원실

출판기념회는 시간이 지날 수록 웃음꽃이 피어났다. 극단 ‘걸판’과 공연단 ‘아리수’ 등의 공연과 이정희 의원의 가까운 친구 이시우 작가와 진선미 변호사가 전하는 ‘내가 아는 이정희’ 시간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주목하게 했다.

진선미 변호사는 “이정희 의원이 동생이지만, 언제나 동생같은 느낌이 없고, 무언가 물어봐야할 것 같고, 또 혼나야할 것 같은 인간적인 빈틈이 없다. 그것이 단점”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 의원의 일관성, 순수함, 열정이 그를 구성하는 모습들이고 그 모습들이 현실 속에서 부서지거나 상처받지 않고 유지되어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정희 의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진선미 변호사와 이시우 작가.ⓒ 이정희 의원실

이시우 작가도 “(이정희 의원이 쓴) 책을 읽어보니, 발로도 쓰고 머리로도 쓰고 가슴으로도 쓴 책이었다”고 18대 국회 들어와 이 의원이 선보인 정치활동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서평을 통해 이 의원이 ‘예상하지 못했던 치욕스런 대우를 받으면서, 이제 그 고상한 생활은 내 것이 아니구나…길바닥에서 뒹굴고 모욕도 삼키며 오체투지하듯 낮게낮게 세상을 몸으로 살아 내야 하는구나 비로소 뼈저리게 알았습니다’라고 적은 부분을 감명깊은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이정희 의원이 정치가 얼마나 더럽고 험한 것인지 몸으로 깨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정치란 고상한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매우 절실하고 절박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희 의원처럼 가슴으로 정치하는 사람이 소중한 것”이라고 극찬했다.

한편 이정희 의원은 출판기념회를 마치며 “경찰의 민주노동당 투표 사이트 서버의 일방적인 압수수색으로 인해 즐거운 출판기념회이긴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당에 많은 지지와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http://www.vop.co.kr/A00000281344.html

진선미,이시우가 말하는 이정희의원-동영상 김은옥 2010/02/05 330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sort=wtime&clipid=21538530&searchType=0&svcid=&svctype=1&q=%EC%9D%B4%EC%A0%95%ED%9D%AC&lu=v_search_03

이시우사건이정희의놀라운변호실력-동영상 김은옥 2010/02/05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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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의원장단점,책에 대해-동영상 김은옥 2010/02/06 361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sort=wtime&clipid=21537820&searchType=0&svcid=&svctype=1&q=%EC%9D%B4%EC%A0%95%ED%9D%AC&lu=v_search_05

한국사회는어디로가나 책소개 김은옥 2010/02/07 619

한국사회는 어디로가나?란 책은 일본어로 출판된 책입니다. 이시우작가도 이책의 공동저자로 주한미군의 현재에 대해 집필하였습니다.

http://www.vop.co.kr/outlink/http://ngo.vop.co.kr/go/9777

[한겨레신문 - 이사람] ‘먹거리·빈곤…’ 한일 사회문제 닮은꼴

‘촛불집회’ 책 펴낸 문경수 일 리쓰메이칸대 교수
재일동포 2세…촛불시위 체험기 등 번역
“사회적기업 설립 등 시민운동 교류해야”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는 닮았어요. 젊은 세대의 빈곤, 고령화 사회가 낳은 노인 부양의 문제, 교육의 위기 등 직면하는 문제가 같고, 시민운동도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일본 사회에 알리는 게 두 나라가 새로운 차원의 교류를 여는 길일 것 같아 책을 펴냈습니다.”

문경수(60·사진·국제관계학)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한국의 촛불시위 현장과 촛불시위가 한국 시민운동에 끼친 영향 등을 담아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나>를 묶어냈다. 책 표지는 2008년 5월, 광화문과 시청 일대를 꽉 메운 촛불 물결의 사진이다.
책에는 당시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던 스나미 케스케(현 <교도통신> 기자)가 담아낸 촛불 현장, 박원석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 감옥 안에서 쓴 편지, 안진걸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촛불 체험기 등을 번역해 실었다.

촛불 집회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알리고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도 짚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의 민영화 문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반전·평화 운동, 김달수 환경운동연합 홍보팀장의 환경운동,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의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글도 소개했다. “<아사히신문>은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동아일보>를, <마이니치신문>은 <조선일보> 보도를 받아 전하는 바람에, 촛불집회의 진짜 의미가 일본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 역동성과 의미, 이 운동이 일본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문 교수는 이달초, ‘촛불집회 이후 한국 시민운동의 현재’를 취재하고자 서울을 방문했다. 제주 출신 부모를 둔 재일동포 2세인 그는 1998년부터 ‘제주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오사카 지부에서 오사카에 살고 있는 4·3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지내는 등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원래는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동안 4·3사건과 관련한 활동에 집중했었요. 이제 다시 시민운동 진영으로 돌아가 한·일 두 나라의 시민운동 교류에 힘쓸 생각입니다.”

문 교수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2000년대 중반까지 감시·이의제기·시민 대리의 성격을 지녔던 시민사회운동 또한 전환점에 이르러 이제 젊은 세대의 빈곤, 교육, 먹거리 문제 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만들기 등으로 두 나라가 교류하며 시민운동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 정권은 시민사회의 자율의 영역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모든 것을 ‘국가’가 하려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저항’과 ‘변화’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한국 시민운동의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솔향님 죄송합니다. [2] 이시우 2010/02/27 453
솔향님의 글을
스팸글을 지우다가 실수로 지워버린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귀중한 글을 소홀히 다루어 죄송,죄송합니다.

지난번에도 그런일이 있었는데…. 한번 지워지면 복구할 길이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솔향 [2010/03/01] :: 괜찮습니다.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렇게 홈페이지에 가끔 글을 올리고 선생님의 댓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6월에 서울에서 전쟁과 기독교에 대한 잛은 글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때 기회가 되시면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솔향 [2010/03/01] :: 괜찮습니다. 1월에 강화를 갔었습니다. 오랜만이라 참 반갑더군요.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렇게 홈페이지로 가끔 글을 올리고 선생님의 댓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6월에 전쟁과 기독교에 대한 잛은 글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때 기회가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렌즈로 보는 이시우선생님의 모습.. [2] 렌즈로 보 2010/03/02 385

사진강좌중 수강생들의 사진을 강평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렌즈 [2010/03/11] :: 아…강의시간은 아니고 쉬는시간이었습니다. 강의중에는 사진을 찍을수가 없거든요..^^:

들풀 [2010/03/09] :: 저 뒤에 주무시는 분은 누구실까요? ㅎㅎ 그만큼 선생님께서 편하신 분이셔서 그런게 아닐까요

렌즈로 보는 이시우선생님의 모습..2 [3] 렌즈로 보 2010/03/02 450

함께 즐겁게 웃는 강의……^^:

이시우 [2010/03/08] :: 보내주신 필름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120미리필름도 사용합니다. 카파책도 함께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렌즈 [2010/03/03] :: 실습시간에 저도 실습해봤습니다..^^:

이시우 [2010/03/02] :: 렌즈님 강의도 도와주시고 사진도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언제 이렇게 찍으셨나요?

무대의상 만들다가 실밥깨나 흘렸습니다. [9] 들풀 2010/03/02 427

안녕하세요 선생님!
용산참사를 주제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금은 용산범대위에 전달된다기에 무대의상을 맡게 되었습니다.
공연이틀전에 갑자기 옷이 열두벌이 추가되어 곤혹을 치뤄야했지요.
그래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니 기뻤습니다.
3월 7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우석레퍼토리극장에서 공연합니다.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4시,7시. 일요일은 오후 4시에 공연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와주신다면 무한한 영광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들풀 [2010/03/08] :: 가을에 박이 주렁주렁 벌개미취들이 일렁이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신부님도 꽃씨를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해마다 보내드렸거든요^^

이시우 [2010/03/08] :: 공연 잘 보았습니다. 고생이 많으셨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주신 박씨와 벌개미취씨앗은 오자마자 마당에 심었습니다. 잘자라길 빌어봅니다.

들풀 [2010/03/08] :: 선생님 어제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자상복,남자상복,철거민들옷을 만들면서 맘도 몸도 많이 힘들었는데 어제 선생님 얼굴을 뵈니 한꺼번에 날아갔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차한잔도 대접못해드렸네요. 정말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이시우 [2010/03/06] :: 일요일 오후4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나 [2010/03/04] :: (선생님 인기 폭발 ㅋ)

어머나 [2010/03/04] :: 선생님 서울오시면 연락주세요..^^; 시간만 되면 저도 뵙고싶어서요~

렌즈 [2010/03/04] :: 선생님 서울오시면 연락주세요..^^: 시간만 되면 뵙고싶어서요~

들풀 [2010/03/03] ::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시는날 연락주세요. 가서 뵙게요^^

이시우 [2010/03/02] :: 수고가 많으셨군요 들풀님. 공연이 기대됩니다. 가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시우 작가님께 부탁드립니다. 6.15대구경 2010/03/05 416
안녕하세요, 작가님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장미정이라고 합니다.

6.15실천 대경본부에서는 6.15 공동선언 발표 10돌을 기념하여 ‘평화’와 ‘통일’ 문제 전반을 다루고, 올바르고 균형잡힌 통일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대구경북 시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통일아카데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통일아카데미는 특강을 포함해 총 7차례의 강연을 진행한 후 참가자들과 함께 평화기행을 떠나는 순서로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아카데미의 마지막을 장식할 6월 6일(일) 파주 민통선 일대 평화기행에 작가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기행 일정과 세부내용은 작가님의 일정에 따라 조정 가능하니 꼭 함께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메일(615peace@hanmail.net) 또는 손전화(010-2088-8480)로 연락주시거나 댓글로 남겨주시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영이 일본에서 왔음 [1] 배숙영 2010/03/10 393
사람들이 보고싶어 하고 궁금해 한다.
연락해줘
이시우 [2010/03/10] :: 와! 환영… 그동안 공부하신 내공을 우리에게 펼쳐주시길…..

작업실구하기 이시우 2010/03/13 592
어제 연리 작업실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4월 초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돌아보면 2000년 제가 처음 빈털털이로 강화에 들어와 보증금없는 월세10만원에 살았던 건평리작업실은 ‘민통선평화기행’을 낳은 곳이었고, 강화학파의 이건창선생의 부친인 이상학선생의 묘를 바로 옆에 하고 있던 유서깊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심어놓은 복사꽃이 제법 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형편만 되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곳입니다. 2년정도를 살다가 집주인의 사정으로 다시 집을 구해야 했고 도장리에 많이 허물어져버린 100년된 한옥에서 아무런 세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한옥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이 따랐지만 익숙해지고나니 집이 저를 성숙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그곳에서 강화에서 고성,고성에서 부산, 부산에서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유엔사해체걷기명상’을 했고 정전체제와 유엔사문제에 대한 깊은 화두를 안게 되었습니다. 뒤란의 감나무와 뒤뜰의 밤나무에서 밤떨어지는 소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2-3년정도 뒤엔 옮겨야했고, 천우신조 끝에 지금의 연리작업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장리작업실이 동네주민들과의 친밀한 교감이 만들어졌던 곳이라면 연리작업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벽을치고 작업에만 몰입했던 장소입니다. 연리에 있는동안 수배와 투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곳엔 강화의 지인들이 저의 투옥기간동안 리본에 국가보안법철폐의 소원을 제각각 적어 매어 심은 ‘평화의 나무’가 커가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또한번의 큰 가르침을 얻은 곳이었으며 출옥 후 네번째 저작인 ‘한강하구’가 완성된 곳이었습니다. 유라시아체계에 대한 구상이 틀을잡은 곳도 이곳입니다. 한강하구이후에 곧이어 시작된 유엔군사령부작업이 이곳에서 마무리 되길 바랐는데 저의 게으름과 무능 탓에 결국 작업의 절정에서 다시 집을 구하러 나서게 되었습니다. 강화에 들어와서 살았던 세 작업실 주인분들의 호의와 배려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저의 작업은 모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모두 감사하지만 그분들도 어찌할 수없는 현실은, 역시 현실인지라 또 유랑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달만에 집을 구해야 할 상황이라 시간이 촉박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분들의 정보와 도움을 청합니다. 연리작업실이 아마 돈없이 얻을 수 있었던 마지막 작업실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강화도조차 저같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틈을 찾기가 여의치 않아졌습니다. 이제 또 어디로 가게 될지, 아니면 강화안에서 작업실을 결국 못찾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봐야 겠습니다.

작업실 구했음 [8] 이시우 2010/03/15 596
작업실이 구해졌습니다. 이렇게 빨리 구해질지는 몰랐는데 여러분이 백방으로 힘써주신 덕분입니다. 말을 꺼내놓고 제가 미처 거두지 못한 분들께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됨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건평리옛집을 다시 내어주신 주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화학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지원, 이희원과 이면백, 이건창등 덕천군파의 묘와 한국전쟁기 양민학살을 막고 자신은 죽어야 했던 안순의 이야기가 있는 건평리포구가 살아있는 곳이지요. 이사는 3월말경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시우 [2010/03/21] :: 이사는 26일 금요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렌즈님, 헛걸음을 하시게 되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실 내용이 있으면 전화로 통화하시지요.

렌즈로 보 [2010/03/20] :: 선생님..오늘 찾아뵈니까 출타하시고 안계시더라구요..^^: 이사짐싸시는것좀 도와드리고 말씀드릴것도 있고 해서 … 전화를 미리 드릴걸 그랬나봅니다..^^:

김태훈 [2010/03/19] :: 이사는 언제 하시나요? 시간이 되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

정택용 [2010/03/19] :: 당치않은 `선생님`이라니요;; 마음은 4대강과 환경에 가 있는데, 몸은 정치에 묶여있습니다-_- 민예총전시소식 또 올려놓으시면 화전부치러 가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시우 [2010/03/18] :: 정선생님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작업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올해는 강화에 안오시나요. 고려산 호담갤러리에서 강화민예총전시회를 또 합니다. 친구분과 놀러오세요.

정택용 [2010/03/17] :: 축하드립니다. 여기 와보지 못한 새 그런 일이 있었네요.

이시우 [2010/03/17] :: 감사합니다. 짐이야 제가 쉬엄쉬엄 싸면 됩니다.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할 뿐입니다.

렌즈로 보 [2010/03/16] :: 선생님 한시름 놓으셔서 다행입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이삿짐 싸는거 도와드릴께요,,,

카톨릭대.성공회대 DMZ수업특강 [3] 이시우 2010/03/22 447
성공회대와 카톨릭대가 비무장지대수업을 올해 부터 공동으로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일(23일화)은 카톨릭대 국제관234호에서 오후3시부터 6시까지 이시우특강이 있습니다.
제목은 ‘정전체제와 유엔군사령부’입니다.

이시우 [2010/03/24] :: 매우 긴강의였을텐데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홍구교수께서 어제강의를 개괄할 자료를 부탁하셨는데 이 홈페이지의 `역사강의실` `유라시아체계와 통일`( http://www.siwoo.pe.kr/ez2000/ezboard.cgi?db=lec_history&action=read&dbf=1127&page=0&depth=1)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참고되시길 바랍니다.

성공회대학 [2010/03/24] :: 수업 잘들었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주한미군에 대해 발제를 해야하는데 선생님의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제의 특강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렌즈 [2010/03/23] :: 선생님 반가웠습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남…^^: 빨리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리했는대 선생님을 뵙게 되었내요…^^:

늦봄통일상시상식에 초대합니다. 김은옥 2010/03/24 294

선생님..아파치헬기가 맞답니다.. 렌즈로 보 2010/03/26 388
선생님..죄송합니다..–:
평소에 보던 모습하고 달라서 다른 헬기인줄 알았는대..
아무래도 미심적어서 고화질 스캐너로 책을 스캔해서
확대인화해서 지인인 전문가에게 문의결과….

초기형 구형 아파치 AH-64A로 판명되었습니다..
현재 미군은 운용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된 모델을 운용중이라고
합니다..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이사는 잘하셨는지요…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승만과 장석윤(1) [2] 솔향 2010/03/28 494

해방 전 이승만에 의해 OSS대원이 된 대표적인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는 김강 (Kimm Diamond 1902년 10월 5일 평북 용천생. 기혼. 1928.7.6 미국 도착. 연합신학(1921~26))일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이승만 정권 때 내무부 장관이었던 장석윤이다. 그는 현재 불교도이지만 이승만과 함께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0년 11월 28일에 발행된 신한민보에는 장석윤이 몬타나한인교회의 교회 기성위원으로 나와 있고, 1940년 11월 07일 신한민보에는 몬타나 재류동포들이 경남-성경학교를 위해 천 四백 여원의 헌금을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장석윤의 이름도 있다. 1941년 01월 23일 신한민보에는 ‘각지 한인교회 성탄축하’라는 기사를 게제하였는데 장석윤이 12월 25일 몬타나 뷰트 트리마일회관에서 성탄절 축하식 사회를 본 것으로 나와 있다.

“12월 25일 하오 3시 가량인대 …몬타나 한인교회 축하식을 장석윤씨의 사회로 창가, 성경암송, 축사 등 재미로운 순서를 진행한 다음… ”

장석윤은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의 지리학과를 나왔고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가 이승만을 처음 만난 것은 1924년 3.1절날 안정수씨가 후원하는 뉴욕의 감리교회에서 였다. 이후 그는 이승만을 철저하게 따르는 청년이 되었다.

(중략)

일본의 진주만 습격 후 이승만은 OSS의 전신인 COI(Coordinater of Information 정보조정국)에 장석윤을 추천하였고 그는 이 기관의 제 1기생으로 선발되엇다. 이 때 이 부대는 중경을 경유 한국에 전진할 계획으로 101부대를 편성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942년 6월에 미국을 출발한 101부대는 인도의 뉴델리에 도착한 후 전황과 중국내의 사정때문에 우선 버마작전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42~43년). 이후 그는 한국에 직행할 신부대편성을 위해 1944년 7월에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 기간 중 작전수행과 함께 이박사의 지시에 따라 김구주석과의 통신연락을 담당하였으며 드디어 1944년 4월에는 미14공군기지가 곤명에 설치됨에 따라 그곳에 가서 중경을 드나들며 임정의 정책수행상 둘 사이의 연락임무를 맡았었다. 44~45년에는 LA연안 산타카타리나 섬에서 아이플러(Eifler) 대령이 지휘한 OSS 한국 침투작전인 NAPKO project에 가담하였다. 그는 첩보활동의 전문가였고 이승만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이승만이 정권 내부의 가장 핵심적인 부서를 맏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승만은 1948년 7월 미 제 24군단 G-2 의 토마스 와싱톤 대령과 한국 경무부 미 고문 에릭손 대령과 몇 차례 회담 후 971CIC를 모방하여 남한의 CIC를 조직하였다. 이것을 가리켜 한국수사국, 또는 대한관찰부(Korea Reserch Bureau)라고 하였다. 이 조직체는 비밀리에 운여되었으나 정부조직법에 부가 존재할 수 없다는 1949년 1월에 사정국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러나 이름만 바꾼 것이지 역할은 같았다. 이 사정국의 수장이 바로 장석윤이었다.

이승만은 국회에게 대한관찰부를 정부 기관으로 입법화 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거부되었다. 결국 이를 대체하기 위해 한국군 내에 CIC를 설치하기에 이르었다. 그런데 관찰부가 1948~1949년 1년간 사용한 돈이 2억 3백만원 이었다. 이는 대통령령에 의해 재정이 지출되었는데 당시 상공부 1년 예산이 이 불과 2억원이었다는 것을 보면 가히 관찰부의 권력의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육군정보국 내에 방첩과(SIS, 이후 CIC)가 설치되고,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함과 아울러 재정적 지원이 끊기면서 사정국은 약회되었다. 이후 장석윤은 내무부의 치안국장 (1950.6.17~1950.7.17)으로 재직했다. 전쟁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5일에 내무부 치안국장 장석윤은 전국 각 도의 경찰국장에게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경비의 건」이라는 비상통첩을 전언통신문으로 내려 보냈다. (참조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김해국민보도연맹원 희생사건’, 2008.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매원사건’,2008. ‘부산경남지역형무소재소자희생사건’, 2008)

1950년 6월 25일 내무부 치안국은 전국 도 경찰국에 치안국장 명의로「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城署査 제1799호)이라는 제목의 비상통첩을 전국 도 경찰국에 경찰 무선전보로 보냈다. 그 주요내용은 “전국 요시찰인 전원을 경찰에서 구금할 것”이다. 치안국은 이 무선전보 추신에서, 인원 수용관계를 고려하여 ‘각 지서에서는 요시찰인 중 특히 의식계급으로써 사찰대상이 된 자에 한하여 우선 구속하고 성명, 연령, 주소를 명기하여 보고할 것’을 아울러 지시하였다. 치안국은 다시 6월 29일 「불순분자 구속의 건」 , 6월 30일 「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 을 각 도 경찰국에 내려보냈다. 「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의 내용은 ‘보도연맹 및 기타 불순분자를 구속, 본관 지시가 있을때까지 석방을 금한다’는 것이다. 이어 7월 11일에는 「불순분자 검거의 건」 이라는 제목의 치안국장 통첩을 잇따라 하달하여 전국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인에 대한 예비검속을 단행하였다.

인천, 한강 이남 경기지역 보도연맹원들이 6월 30일 경 부터, 충청지역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대전.충청도지역 형부소 재소자 들이 7월 2일 경 부터 집단 희생되기 시작했다.

장석윤은 1920년대 부터 이승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행했다. 이것은 OSS추천, 사정국 국장, 치안국장이라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석윤과 이승만의 관계 그리고 국민보도연맹원 사건에 대해 다음에 설명하고자 한다.

솔향 [2010/04/01] :: 건들로 연구실을 옮기셨더군요. 건들, 언덕 너머 떨어지는 햇살이 아름다운 동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과 마음의 보금자리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시우 [2010/04/01] :: COI의 장석윤. 최목사님의 집요한 연구가 아니면 지나쳤을 이름입니다. 제겐 이승만과 COI만 중요했지 그 이상의 인맥을 찾아나설 엄두가 없었는데 참으로 중요한 정보를 찾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서 인맥연구가 본령은 아니지만 역시 생동한 관계의 원천은 인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