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대활동(1)창작활동6)새예술형태2.생활풍물굿2002/09/09
제4장 자주문예운동의 4대활동
(1) 창작활동에 대하여
1) 문예에 대한 견해 (예술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의 체계)
2) 문예의 본성
3) 문예에 대한 관점
4) 문예관
5) 예술작품의 구조
1. 외적형식
2. 내적형식
3. 내적형식과 외적 형식을 연결하는 요소들
4. 작품의 내용
6)새로운예술형태창조의 예
1.대화술
2.생활풍물굿
ㄱ. 풍물굿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ㄴ. 풍물굿의 갈래적 특성에 대하여
㉠ 풍물춤
㉡ 풍물시
㉢ 풍물이야기
㉣ 풍물극
ㄷ. 풍물굿의 핵심으로 풍물굿을 대중화 할 때 가져야 할 세가지 확신
2. 생활 풍물굿(풍물형태론)
ㄱ. 풍물굿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끈질기게 남아있는 풍물굿에 대한 미련은 풍물굿이 음악이나 춤이라는 편견인것 같습니다. 말로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하면서도 현실적으론 악기치는것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몇 지역에서 재정사업을 겸해서 해본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에서는 악기치는것만이 아닌 생생한 현장성을 느낀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합니다.바로 여기에 핵이 있습니다. 지신밟기 하는 장면을 녹음기에 담았다고 해봅시다. 풍물치는 소리, 사설하는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등이 합쳐져 소음처럼 들리고 그나마 들을만한게 있다면 악 소리뿐일겁니다. 이걸 다시 비디오에 담았다고 해봅시다. 녹음기보단 훨씬 생생할것입니다.풍물패의 신명, 보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악과 춤등 갖가지 요소가 다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디오를 잘찍어도 외상값 많은 집에 어쩔수없이 액맥이 해줄때 서로 뒤끝이 구린 분위기와 단골집에 쳐들어 갈때의 심정을 다 읽어주진 못합니다. 왜 이런 얘길 장황하게 하는가 하면 풍물은 듣거나 보는것으로만은 도저히 파악할수 없다는, 다 아는 사실을 꼬집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풍물분과의 풍물굿에 대한 연구와 정리는 전국노동자 풍물패들의 실천성과를 귀중한 재산으로 하나씩하나씩 축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리를 맡은 저의 여러가지 부족함으로 풍물패전체의 고민을 정확히 반영하고 풀수있는 힘있는 이론을 만들어 내진 못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풍물굿 창작에대한 강조와 풍물굿 대중화 사업에 대한 강조가 긴밀하게 연결되기보다는 서로 동떨어진 듯한 정리가 되어 약간의 혼란과 편향을 야기시켰던 것에 대해 겸허한 반성을 합니다.현재의 고민은 풍물굿이 놀기위해서나 취미생활을 위해서 풍물강습을 받는 단계로 부터, 정치적내용을 담아 공연하기위한 질높은 풍물창작의 단계까지 무수히많은 형식으로 발전되어 있는데 내 운명을 걸어 볼만큼 뚜렷한 전망이 안잡힌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해답을 주기위해서는 풍물패들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 풍물굿이라는 갈래의 본질적인 특성을 밝히고, 다양하게 발전되고 있는 풍물굿의 발전전망을 밝히고,각각의 풍물굿형식을 어떻게 창작 할 것인가 하는 실제 풍물굿 창작방법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풍물굿은 현장예술입니다. 현장을 통해서만 제대로 배울수있고 느낄수 있는게 풍물입니다. 변명과 해설이 필요없는, 현실에서의 느낌으로만 승부 할 수 있는 본성 때문에 풍물패는 풍물친다 사실 하나만 으로도 사람들을 변화 시켜 온것입니다. 대중들이 어색한 억지와 포장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성공적인 풍물한판이 되기위해선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읽고, 파고 들어 갈수있는 사실성,현장성이 있어야만하고 그러기위해서는 부처님이 불법을 펼때 8만4천가지 방법으로 했다고 하듯 다양한 표현방식을 찾게됩니다. 따라서 풍물굿이 악만 치는게 아니라 이야기,사설,노래, 춤,놀이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창작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성이 풍부하다는 한증거입니다. 이 사실적 창작표현이야말로 풍물을 통해 사람이 키워지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상창작이다,문선 창작이다 ,하면서 창작이란 말을 많이 쓰기도 하고 많이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창작이란 말을 들으면 어렵게만 느껴졌고 이제는 특별한 계기가없으면 대충 포기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 스스로도 고백하건데 창작을 한다고 하면 장단 하나정도는 만들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이야기풍물굿을 많이 만들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창작,창작 얘기할수록 사람들은 창작을 어려워 하고 포기하는일이 많아지는 걸 발견했습니다.뭔가 잘못됐다는걸 느껴 갈때 우연히 풍물 강습하는걸 구경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똑같은 2채를 치는데 강사는 덩..덩..쿵.따쿵.. 하며 리듬의맛을 살려 가르치는데 학동들은 덩.덩.쿵따쿵 하며 리듬없이 빨리 몰아 치기만 하는 겁니다. 강사는 이걸보고 리듬을 살려 쳐야 되는데 왜 이렇게 안될까요 하면서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분위기는 신나게 쳐보는게 바램이었던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강사 눈치 봐가면서 흉내를 내는 척 하다가 자기들끼리 신명이 오르니까 눈치 볼 것 없이 리듬도 없이 신나게 몰아 치는 것입니다. 강사도 체념한듯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 흐름에 따라가 버렸습니다.
얼핏보면,별거아닌 흔하게 겪어봤던 일이 내게 크게 다가온 이유는 풍물에서의 창작은 어떤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결론은 이런 것 이었습니다. ” 풍물은 신나게 쳐야한다. 신나는 풍물 한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우리 사회처럼 살기 힘들고 찌그러들기 쉬운 생활에서 신명을 낼 수 있다는건 삶 자체를 적극적으로 개조 변화 시키기 때문이다. 또하나 신명은 억지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쌓인 크고 작은 한을 풀기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 지기 때문에 한두 사람이 억지로 분위기를 끌고 간다고 해서 이러한 집중이 만들어지지 않고 풍물치는 사람들의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장단을 쳐도
신날때가 있고,이상하게 힘들기만 할때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치는 사람이 우선 신이나야한다. 정통대로 치고 못치고는 이 단계에서 중요한게 아니다. 시나 소설은 사람들이 감동을 가져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지지만, 풍물은 그 과정을 느끼기 어렵고 결과로만 보여 진다. 때문에 풍물패 활동을 오래 해본사람만이 짬밥수로 신명나는 한판을 치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잔신경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는지를 안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장단은 이렇게 치는게 맞고 저렇게 치면 틀린다는 말이 중요한게 아닌것은 당연하다.
장단이 정통적인가 아닌가가 문제 되는 시점은 사람들이 그렇게 제대로 치지 않으면 신나지 않는 상황에서 입니다. 예를들면,실내에서 우리 패 끼리만 칠때는 장단이 잘못 쳐져도 문제될게 없지만 실력도 좀늘고 자신감도 생겨서 밖에 나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한판을 신나게 친다고 합시다. 그럼 풍물을 칠때 사람들속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들려옵니다.”그놈들 참 지들 끼리는 신나게 치는디 원 저렇게 빨리 쳐가지고 우리같은 사람 끼어 들기나 하겋어.사설도없고,소리도없이,장단만 후려까는구만 푸진맞이 솔찬히 없어” 이런 소리 한번들으면 괜히 주눅이 들고 조심스러워져 신명이고 뭐고가 없어지지요.이럴때 옛날 같으면 상쇠를 뺕기고 판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이런 경험은 무대나 앞에 나가서 공연을 할때 더 심각하게 경험합니다. 풍물패가 사람들 사이로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하면 사람들이 흥분되며 잔뜩 기대가 모아지는데 풍물패들은 올라가자마자 신명이 안생기니까 서서히 달궈 간단 말여, 근디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앞에서 뭘 하자는 건지 지루해져만 가고 풍물패가 막상 신나게 쳐댈때 쯤이면 사람들은 시끄러워서 자리를 떠 버린다 이말여. 보여주는 판에선 정확히 준비해서 보여줘야 하는디말여 우리끼리만 신명나면 될때와 다른사람을 상대로 같이 신명을 만들어 가야할때는 거기 모인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해소 시켜가면서 전체를 신명나게할수있는 지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디 이것은 준비과정이 필요한것이여. 이 준비과정에서 필요한 한 부분으로 옛날에는 이런상황에서 어떻게 풍물굿을 벌였는가를 이해 해보는게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통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생기는 것이지. 이런 전제없이위에서 얘기한 강사처럼 무조건 이렇게 해야 맞다라는 입장은 도식적으로 전통을 이해하여 전통을 지키기위해 전통을 지키는 복고주의가 되어 버린다 이거지.
좀 정리를 할까요? 우리는 그동안 창작 하면 없던것을 눈에보이게 만들어 내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읍니다.그러나 이것은 시나 소설 그림같은 예술형태에는 맞지만 풍물이나 마당굿 같은 연행예술에는 협소한 개념입니다. 마당굿 대본을 짜는 것도 창작이지만 똑같은 대본이라도 배우에 따라 연기되는게 다르기 때문에 연기도 창작인 것입니다. 실제로 안성기씨는 짜장배달부를 연기해 내기 위해 대본에는 안나와있는 짜장배달부의 성격특징을 파악 하려고 시내 중국집을 뒤지고 다녔답니다.이것은 배우에게 인식의 폭을 넓게 하고 자기도 그런사람의 모범을 따라배울수있는 역활을 해줍니다.마찬가지로 풍물굿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장단이라도 어떤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그맛이 확 달라 집니다.
ㄴ. 풍물굿의 갈래적 특성에 대하여
뭐니 뭐니 해도 풍물의 중심은 장단 입니다.풍물에는 춤,사설 잡색등 여러가지요소가 있지만 장단이 중심에 서있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풍물굿이 아닙니다. 풍물굿의 중심이 장단이란것은 장단을 중심으로 창작을하고,장단을 중심으로 표현을하고,장단을 중심으로 감동을 받게되는 예술형식 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장단이 뭐 그렇게 중요하길래 장단 장단이요 ? ” 예 그러면 장단의 특징이 어떤건지 알아 볼까요! 장단의 특징을 이해하면 풍물굿의 90%는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장단은 풍물굿에서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선 장단은, 문학류처럼 어느 한사람의 구체적인 생활묘사를 통해서 그걸 따라 배우게 하는 방식과 달리, 일반적인 사람의 보편적인 삶의 리듬을 표현하고 그리듬에 익숙하게 젖어 들게 함으로써 정서적인 흐름을 배우게 합니다.우리의 생활을 표현할때 그림이나 문학은 생각을 표현하는데 구체적이라면, 음악이나 춤은 정서를 표현하는데 구체적입니다. 즉 장단은 정서적흐름 (리듬)을 통해 인생배우기를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어떤일을 추진할때 미적미적 시작해서 미적미적 끝내는 두리뭉실형이 있고 확실하게 시작해서 확실하게 끝내는 맺고 끊는형이 있습니다.이같은 차이는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니라 기질과 성격의 차이 때문인데, 우리 풍물굿장단은 전자보다 후자에 맞습니다.우리 장단의 첫박은 무조건 가장 강하게 칩니다.그리고 약하게 쳤다가 중간으로 맺습니다.이것은 일을 할려면 맘잡고 확실하게 하는 정서와 일맥상통 하는 것입니다.마치 자전거 타는걸 처음 배울때 핸들을 잡은게 똑바로 잡힌건지 안잡힌건지 불안 하더라도 어쨌든 패달을 힘껏 밟아서 바퀴가 굴러 봐야지 빙글돌며 꺼꾸러 지든, 굴러 나가든 그 다음에 할때 감이 생기는것이다. 그래서 우리 장단의 첫박은 강하게 치라는것과 자전거페달은 힘껏 밟으라는 것은 정서의 흐름상으로는 같은것입니다.그다음에는핸들을 요렇게 조렇게 조절해가며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려 하다가도 다시 바로 잡아 굴러 가듯 쿵과 따는 섬세한 리듬입니다. 이것을 섬세하게 하지않고 폐달 밟듯이 핸들을 팍팍 꺽으면 자전거가 균형있게 굴러가질 못합니다. 자전거를 배울때 추진력과 균형감각이 있어야 하듯 사람관계에서도 이처럼 추진력과 균형감각이 있어야합니다. 여기에서 일을 할때 더 중요한 것은 추진력 입니다.추진력의 폭이 클수록 균형감각의 폭도 커지고 사람이 대범하게 클 수있기 때문입니다.사실 강습을 해보면 가장 어려운 장단이 뒤에 섬세하게 오는 ‘끼닥’보다 천둥소리처럼 강하게 쳐야하는 첫박의 ‘덩’ 입니다. 이와같은 사람관계의 원리는 오랜동안 우리민족이 자연과 사회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일체가 되어 정착된 흐름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풍물장단은 우리민족이 자주성을 쟁취해온 과정에서 터득된 우리 민족만의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진취적인 독특한 생활리듬 (정서적흐름)을 가르쳐 줍니다.우리 조상님들은 이것을 내고 달고 맺고 풀기 라는 말로 일목요연하고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여러번 얘기 한것이라 길게 부연하진 않겠습니다만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운명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변증법적 원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풍물을 전문적으로 하지않을 사람이라도 반드시 풍물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다음엔 풍물굿 형상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풍물장단은 글이나 그림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심적,정신적 과정을 형상화 합니다.풍물굿을 통한 형상화는 이처럼 그중심이되는 장단의 특성을 떠나 문학중심적으로,이야기중심적으로 이루어 질순없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발생되는 문제가 장단이 중심이되고 다른것이 결합되는 풍물굿에서 이 결합의 원리를 잘 알지못하고 임의적으로 창작했을때 는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 중심의 풍물굿이 된다는 점입니다.그래서 다음으로는 풍물굿의 각요소들이 풍물굿 답게 결합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지를 얘기 해보도록 합시다.
풍물은 장단이 중심이된 종합예술입니다.풍물이란 갈래는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식혜나 수정과는 투명한 그릇이나 사기그릇에 담아야 제맛이 나고 커피는커피잔에,콜라는 컵에담듯이 담는 형식과 담기는 내용에는 밀접한 연관이 맺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커피잔에 식헤를 담는다면 맞이 달라지지야 않겠지만 제맛이 안나고 커피를 사기 대접에에 담으면 쓴약처럼보여 제맛이 안나듯 풍물에는 풍물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는것입니다. 그럼 장단이 중심이된 풍물굿이란 어떤 것일까요 ? 풍물굿은 사설 ,잡색, 춤등 여러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마구잡이 짬뽕으로 혼합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샘에서 샘굿을 칠때 상쇠가 물한번 마시고 “아따 그물 맛있다 꿀떡꿀떡 마시고 아들낳고 딸낳고 미역국에 밥먹세”하고 걸판지게 사설을 한마디 하면 악이 신나게 쳐지고 그신명을 더 자글자글 볶아치기위해 잡색인 대포수가 이를잡는 시늉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동작을 다하며 사람들을 놀린다. 부엌에 가서는 솥뚜껑에 쌀퍼담어 초꽂고 “바깥차지는 대주 차지요 안방차지는 가모 차진디 —– 그저 만복이 물묻은 바가지에 깨달라 붙듯이, 액이란 액은 장마비에 수채구멍 뚤리듯이, 액은 뚤리고 복은 다갈다갈 붙게 하소서” 하고 풍물치고 사설한뒤 성주풀이 노래를 한판 해 제낀다. 이처럼 장단과 사설과춤과 잡색은 임의 대로가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게 융합되어 있는것입니다.이것은 장단 만으로는 표현 될수없는 현실의,생생하고 풍부한 사실성을 을 담기위해 새롭게 창안해낸 장단중심의 종합예술 인것입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예술 양식입니다.
( 모든 종합예술이 그렇듯이 서로 결합되는 여러가지 예술요소들은 서로의 영역을 파괴 하는 결합이되어서는 안됩니다.예를들어 노래는 원래 민요의발생을 생각해보면 문학과 음악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갈래 입니다. 문학에는 서정시 서사시 희곡 이세가지 종류가 있지만 이중에서 노래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것은 서정시 입니다. 서사시는 산문으로 읽기에 좋고 희곡은 대사하기에 좋습니다.시가 음악과 결합될수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것은 운율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는 풍물굿의 독창성에 대해 깊이 이해 해야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풍물은 자연과 사회와의 투쟁을 거치면서 새롭고 다양한 요소가 많이 결합되어 풍성한 민족예술로 발전되어 있습니다.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풍물굿을 발전 시킨 힘은 역사발전의원동력인 해당시기 민중들의 자주적인 이해와 요구이며 다양한 예술형식도 구체적인 당시 사람들의 상황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오게 됩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풍물굿의 전망을 고민하며 사물놀이를 성공적인 정착으로 인정합니다.우리도 많이 솔직해지고 인정할것은 인정하는 겸허함이 생긴것은 예술을 바라보는데 긍정적인 면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장단으로만 국한시킴으로서 풍물굿의 변혁적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작품이후로 단한번도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지못했다는 것은 그와 무관 하지않습니다.풍물굿은 우선 어느 지방것이든 앉아치는것이 없었습니다.관객을 앉히고 치배를 앉힌것은 대단한 유의할 대목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앉은 뱅이를 만들어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끔가다 앉을수도 있지만 수년동안 앉아만 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하기보다는 밀려들어온 제국주의문화에 유리한것이었습니다. 풍물굿을 제대로 계승하여 혁신적으로 발전시킬수있는길은 대중속에서 거대한 풍물바람을 일으키는것이며 대중 전체가 일보씩 전진해 갈수있는 강습과 창작의 10년지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선 풍물 강습 첫날부터 일으켜 세우고 손,발,머리,다쓰고 입으로 말하고 소리치고,노래할수있도록 그에맞는 교안을 만들어 내고 창작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그러면 강습과 창작을 어떤틀로 할것인가가 문제입니다.장단을 중심으로하는 종합예술인 풍물굿은 크게 네가지의 예술류와 융합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장단과같이 정서의 흐름을 표현하는 춤으로서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한몸을 이룬 경우이며, 둘째는 서정적구조인 시적인 요소가 결합된 경우 , 세째는 서사적구조인 이야기적 요소가 결합된 경우, 네째는 희곡적구조인 극적요소가 결합된경우입니다. 그럼 풍물내에서 분화된 갈래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우선 살펴봅시다.
㉠ 풍물춤
풍물은 양반들의 문화처럼 방안에 앉아서 하는것이 아니라 동네 마당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뛰고,춤추며,소리지르는 진취적이며 아름답고 고상한 문화 였습니다. 이것은 풍물굿을 특징짖는 중요한 징표가 됩니다. 즉 서서악기를 메거나 들고 친다는 상황은 장단의 박자가 몸짖과 불가분하게 연결될수밖에 없는 조건을 마련해줍니다. 때문에 서서 선반 풍물을 칠라치면 첫박의 ‘덩’에 몸이 붕 치켜 올라갔다가 도끼 내려치듯 궁편을 울리게됩니다.이러한 몸동작은 일반적인 춤동작과는 다른 것입니다. 악기를 메거나 들고 있어서 손끝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짖과, 고개짖을 이용한 상모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풍물춤은 한계가 있다고 하여 악기를 들지않고 리본체조 하듯이 리본춤을 추면 훨씬 풍부한 표현은 할수 있겠지만 뛰며 치는 장단과 일체가 되어 돌아가는 그 독특한 맛은 전혀 흉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기를 들지않은 잡색들은 리본춤처럼 하는것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풍물춤은 처음엔 장단치는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정서가 무르익고 발전될수록 악기치는것을 줄여가며 춤이 중심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상쇠가 악이 절정에 이를렀을때 악기치기를 그만두고 허튼춤을 추게되는데 춤을 얼마나 푸짐하게 추는가가 상쇠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춤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 제멋에 겨워 춤을 추워본 사람은 압니다. 춤추는 맛을… 하보경 옹의 북춤을 한번 보십시오. 천근이나 나갈 법한 바위처럼 육중하게 눈에 띌듯 말듯 움직이다가 학이 슬쩍 날개짖을 하고 날아 오르기라도 하듯 어깨가 툭 솟아오를때 그것은 어떤 고난도 뚫고 일어 날수있는 낙관주의 라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또한 박병천옹의 진도 쌍북춤을 보십시오. 이 얼마나 진취적이고 낙천적입니까.디스코장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추고나서 뭔가 허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디스코가 무조건 외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깊은 정서를 표현할수없고 콜라처럼 자극적이고 일회적인 정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디스코 음악이라도 느리고 깊게 우리춤식으로 추어 보십시오. 진흙속에서도 깨끗하고 고고히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식의정서를 참으로 멋있게 펼칠수있습니다. 풍물춤은 서서악기를 친다는조건으로부터 연유하며,손끝을 쓸수없는 제약으로하여 일반춤에선 볼수없는 독특한 맛을 가진 풍물춤이 만들어 집니다. 풍물춤은 우리민족의 낙천적이고 진취적이며 아름다운 생활정서를 표현하고있어 장단만 치는것보다 훨씬 풍부한 생활정서의 흐름을 체득 할수 있다는데 풍물춤 배우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 풍물시
‘별따세 별따세 하늘잡고 별따세’ 쿵따쿵 쿵따쿵 쿵따쿵따 쿵따쿵
풍물굿에는 이처럼 장단과 시가 결합된 형태가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풍물굿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짧은 문구를 시라고 할 수있는가라고 반문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로서의 완결성은 길이와 분량이 아니라 얼마나 생생 하게 현실을 묘사 하는가와, 하나를 통해서 전체를 표현할 수있는가, 운율이 얼마나 풍부하게 살아있는가에 의해 결정 되는것입니다. 여기에 풍물시는 한가지중요한 특징을 더 갖습니다.현장시라는 것입니다.보통시처럼 뭔가 경험을 하고 집에와서 회상하며 다듬은 시가 아니라 바로 그장소 그사람들을 향해 불려진다는 점에서 민요처럼 다른 시와 구별됩니다. 여기서 이짧은 시구는 이러한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별은 별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은유적으로 뭔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봉건 혁명의 길에 떨쳐나선 민중들에게 별이 의미하는것은 최고높은 권좌 즉 왕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별따자는 이 문구는 반봉건 혁명으로 민중들을 불러일으키는 일목요연한 예술적 선동문 이었습니다. 또 이런 시구는 어떻습니까 ? ‘ 물묻은 바가지에 깨달라 붙듯이, 화로에 엿 달라붙듯이 처녀가슴에 총각 달라붙듯이 만복이 다갈다갈 달라붙게 하소서 ‘복을 빌어주는데 세상에 이보다더 생생한 표현이 어디있단 말입니까 이 시구는 언제부터 불리워 졌는지모르지만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시에 대해 교육받지않거나 시구절하나 못외우는 사람에게도 풍물을칠때 너무나 재밌고 자연스럽게 읊어 지고 있습니다.김소월의 시보다도 더 많이 말입니다. 그런데 풍물시의 현장성 즉 그자리에서 직접 얘기되어 진다는 특성이 구호가 갖는 성격과 비슷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에 내용을 집어넣기 위해 풍물치다가 구호를 집어 넣어 외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표현요구였습니다. 어떤사람은 이것이 풍물적 어법이 아니라고 맹렬히 비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풍물과 시가 결합될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구호가 위에서 말한 시로서 의 세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즉 구호의 내용이 문제지 구호와 풍물이 결합되는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것입니다.사실 ‘노동자가 앞장서서 민족문화 꽃피우자’는 물묻은 바가지에 깨달라 붙듯이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재미가 없습니다. 기막힌 현실비유를 통한 감동보다는 일방적 주장의 주입이 있을뿐입니다. 이것은 창작방법상의 문제입니다. 구호는 사실의 전형적묘사가 아니라 개념의 설명입니다. 때문에 정서의 공감을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누가더 절규하는가 하는 정서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구호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정서의 공감이 없이는 감동이 있을수없고 감동이 없는것은 예술이 아닙니다.풍물굿에 등장하는 풍물시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사실주의적 창작 방법에 도달한 것입니다.그것은 창작을 통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나서게 되는 거대한 역사이기도 합니다.지난 여름 수련회 자료집에 실었던 사례를 다시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세지역풍물굿 중 우물굿만을 비교해본것입니다.창작방법의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됩니다. 먼저 이천 대월리 굿에서는 우물굿 사설을 이렇게 합니다.
“동방청제 용왕님 / 서방적제용왕님 / 남방적제 용완님 / 북방홍제 용왕님 / 중앙황제 용왕님…”
하며 주문을 외우는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방향을 일컫는 다섯가지방향과 색을 연결시킨 음양오행사상과 우물을 다스리는 신격으로 용왕을 모셔야 된다는 생각이 그바탕에 깔려 있습니다.그러나 이 주문에는 생활과 관련된 묘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음양사상을 현실에 그저 대입시킨것일뿐 예술과 인연이 없습니다.아멘이나 나무아비타불처럼 집단내의 동일의식은 형성시키지만 생활적 감동은 전혀 존재하질 않습니다. 두번째사례는 여주 정동면의 우물굿 사설입니다.
“누르세 누르세 / 용왕님을 누르세 / 아랫말 우물 / 윗말 우물 /동구밖 우물 / 이즈러진머리 비단결로 감는 우물 / 뚫으세 뚤으세 펑펑 뚫으세 / 수정같이 맑은 우물 /펑펑 뚫으세 /오상대대 년년손손 / 먹고살고/ 먹고 살고 / 뚫으세 뚫으세 물을 축여 생명주고 / 물이넘쳐 식량주고 / 아랫말우물 위말우물 동구밖우물…”
여기에서는 우물을 용왕이 지배하고 관장한다는 미신적 요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우물의 생활속에서의 묘사가 이모저모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인 형상화를 해내진 못하고 있습니다.설명을 통해서는 감동이 크게 전달되지 않습니다.이 사설에서는 그점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60년대식 선전광고가 이와 비슷합니다. 이보일러는 뭐가좋고 뭐가 더 좋고 식의 광고와 리복,동원식품의 바다가 좋다,쵸코파이 의 정 시리즈광고를 비교해보십시오. 전자가 설명식이라면 후자는 형상적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것은 사실주의창작에서 전형을 창조하는것과 함께 가장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런 사례를 남원 보절면 에서 봅시다.
” 아따 그물 맛있다. / 꿀떡 꿀떡 마시고 /
아들낳고 딸낳고 /미역국에 밥먹자.”
여기엔 용왕이란 관념에 가려 우물을 설명하지도 않고 사실적이다 못해 생생할 정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상쇠가 물바가지로 물을 꿀떡꿀떡 퍼 마실때 입가로 물이 주르룩 흘러 내리는 것이 잡힐듯이 생생한 묘사 인것입니다. 또한 이우물이 어떻게 아들 딸 낳는 것까지 비약이 될수 있겠습니까?
아마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라면 우물의 의미를 이렇게 까지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마을에서 대대 손손 난세풍란을 다겪으며 우물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시원 스럽고 올바른 의미를 담지못할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전형성입니다. 여기에는 우물이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맺어지는 가장 깊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것입니다. 풍물시도 처음에는 앞서얘기한 구호 외치기식 처럼 여러 편향의 길을 거쳐 사실주의적 창작으로 튼튼하게 무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풍물시는 장단의 운율에 의해 제약되면서 어떤시보다도 강한 리듬이 가미된 시어를 갖게되며 현장에서 느끼고 표현되는 생활언어란 점에서 다른 시가 갖는 사실성,전형성이란 규정을 한단계 뛰어넘는 독창성이 있음을 인식해 둡시다. 풍물시의 이러한점이, 사람이 현실 예술체험을 통해 자주성을 획득해 갈수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 풍물이야기
“아 이집이 시우네 집인디, 옛부터 이르기를 바깥차지는 대주차지요. 안방차지는 조항 차진디 말이여.이집대주님,안방님,식솔 모두 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물묻은 바가지에 깨달라 붙듯이 복많이 충만 하시고 나쁜액들이 있거들랑 저 섬진강물에 내던져 버리고 좋은것만 충만 하여라 ”
구수한 덕담이 들어가야지 풍물판은 푸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하면 흥이깨집니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장단의 흐름에 복무하여야 합니다. 판소리를 예로들면 판소리의 중심은 소리입니다.
그리고 한마당과 한마당을 이어가는데 사설을 집어넣어 소리로 하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한다.판소리에서는 소리보다 이 사설을 잘해야 명창인것으로 인정받을만큼 중요한 훈련기가 되지만 판소리의 구조로 볼때는 소리가 중심이된다 왜냐하면 소리는 곡이나 가사가 변치 않지만 사설은 모인사람들의 구성에따라 춘향이를 열녀로 표현 했다가,요사스런 기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가 하면서 사람들을 심각하게 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그래서 사설은 일관된 줄거리가 있기보다는 앞뒤가 앉맞는 모순성이 자주 나타난다.그러나 소리는 배운대로 준비한 대로 부르면 되지만 사설은 상황과 조건에 맞게 양반도 웃겨야 하고 일본순사도 배꼽을 죄게 하면서 뒤통수를 칠려면 능숙한 인생경험과 문학성이 있어야 하기에 소리꾼을 판에 내보내기 전에 이러한 사설을 먼저 중요하게 훈련 시켰을 듯 합니다. 풍물의 사설도 마찬가지로 이걸 제대로 못하면 사람들의 가려운데를 긁어 신명진 판으로 끌어내는데 애로가 많다.그래서 장단은 누구나 칠수 있지만 사설은 경험많은 상쇠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쇠가 말심이 좋다하여 제멋대로 해서는 않되는것이며 기준과 목표가 있어야 할텐데 그것이 바로 장단이라는 것입니다. 사설은 풍물장단만으로는 신명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심사를 조직하여 장단이 들어갈땐 같이 신명을 낼수있도록 하는 역할인 것입니다.그래서 사설은 서사적 구조, 즉 이야기식의 구조를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풍물시와 다른 점입니다.
㉣ 풍물극
언젠가 저의 선배가 이제막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한 아들에게 꽹가리를 놓고 이렇게 가르치는것을 보았습니다.” 마루야 이게 뭐지 “” 꽹가리요” 그러고는 꽹가리를 뒤집어 재를 털며 ” 마루야 그럼 지금은 이게 뭐지 ” 라고물으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재떨이요”하고서도 금방 꽹가리라고 말한 자기말과 모순되는 걸 느끼기라도 하듯 계속 아버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를 기다렸다. “그래 맞다 꽹가리도 쓰임새가 달라지면 이름이 달라 지는 거다 “그제야 뭔가 중요한걸 하나 배운듯 고개를 그덕였다. 유아용 변증법교육으로는 일품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꽹가리는 연주를 하면 악기지만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되고 머리에 이면 광주리가 됩니다. 상쇠가 괭가리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처럼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가게 될것이고 관객의 폭소를 자아 낼것입니다. 꽹가리는 악기가 아니라 마당극의 소도구가 된것입니다. 그러다가 잡색으로 일본순사가 나타나 겁탈할려고 한다. 그러자 꽹가리를 머리에서 내려 잡귀 쫒듯 난타를 쳐대다가 진오방진 을 치며 순사에게 쫒기는 춤ㅂ을 춘다. 이장면을 보면서 누가 저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마당극 지기가지는 풍물판 ㅣ라고 따져가며 보겠습니까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것은 풍물굿과 마당극이 서로 벼증법적으로 넘나들수있는 물질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중요한것은연기력입니다. 연기력이 뛰어날수록 이러한 갈래의 변화가 갖는 감동의 폭은 커집니다. 풍물극이 가능할수있는것은 풍물굿을 중심으로 연기력이 융합되어 지는 구조일 때입니다. 이처럼 풍물은 연기력을 자체내로 흡수하면서 풍물극이라는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풍물극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활을 하는 연기력을 규정하는 것은 주인공의 성격입니다.따라서 풍물극에서는 주인공의 역활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갖습니다.그런데 어떤 풍물굿 하시는 분은 풍물굿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갈래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구체적인 인물의 성격이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계신걸 보았는데 이는 구데기 무서워 장못 담그는 발상 입니다.풍물굿을 중심으로 연기력이 융합된다고 하는 것과 주인공의 성격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별개의 문제입니다.전자는 형식의 문제이고 후자는 내용의 문제이며, 주인공의 성격이 확실할수록 뛰어난 연기력으로 풍물굿과 극을 더 용이하게 넘나들수 있는것입니다.대우조선 풍물패에서 했던 추모식 공연이나,광주4개매체회의 산하 풍물패 연합이 5월 가두굿에서 보여 줬던 풍물굿에는 현장에 살아 있는 생생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변화과정 을 지켜본 관객들로 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주인공을 제대로 그릴때는 마치 자신이 그 주인공이된듯 똑같이 생각하고,똑같이 행동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이전에 청계피복노조 합법성쟁취 싸움을 할때 공청회를 위해 마당극을 준비하는데 연습하는집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대문을 드러서는데 연습하는 방에서 극에 출연하는 우리 동지들이 엉엉 울어 대는것이었다. 들어가보니 극중에 미싱일을 졸며하다가 손가락이 미싱바늘에 찔려 얼른 재봉기름에 손가락을 담가주는 대목을 연기하다가 손가락이 찔려도 재봉기름으로 치료를 땜빵할수 밖에 없는 동료의 일상 생활이 너무 서러워 연습하다 말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그 날밤 호일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새벽까지 연습을 했는데도 잠을 자지않고 눈빛을 똘망똘망 뜨고 있길래 왜 안자냐고 묻자 ” 형! 극을 하다보니 노동 해방이란 말이 이해가 갈것도 같아요 “하는것이었다. 그 이후로 호일이는 무서울정도로 성실하게 일하는 조합일꾼이 되었다.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지는 주인공일수록 감동의 폭은 커지며 감동의 폭이 커질수록 풍물에서 극으로의 넘나듦은 더 용이해지기 마련입니다. 풍물극에서 사실적인 주인공의 연기는 연기자나 관객의 인생을 바꾸어 버립니다. 주인공 중심의 연기훈련이 갖는 의미는 이처럼 지대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풍물굿의 갈래특성이 어떻게 창작되어지는가 창작방법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ㄷ. 풍물굿의 핵심으로 풍물굿을 대중화 할 때 가져야 할 세가지 확신
첫번째 확신. 풍물치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변한다. 풍물을 신나게 치는 그순간부터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발견하고 남의 삶을 이해하며 그것을 조화 시키고 통일 시킬수있는 삶의 전형적인 원리를 이해해 나가는 것입니다.
풍물강습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풍물치기 == 인생배우기라는 느낌을 같게 해야 합니다. 예를들면 2채를 칠때 덩..덩..쿵.따쿵.. 에서 ‘쿵’은 약하고 ‘따’는 물찬제비처럼 치켜올립니다. 그런데 ‘쿵’을 약하게 치라고만 하면 치는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쿵’은 약하게 칠게 아니라 짖눌러 쳐야, 소리는 약하게 들리면서도 힘이 용수철 처럼 긴장 되어 있다가 ‘따’에서 비약적으로 튀어 오를수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듣는 사람에게 전달될 때 어떤느낌 일까요
‘쿵’을 약하게 치는것은 앞에’ 덩..덩..’을 힘차게 치고나서 전진적이고 확 밀어 붙이는 느낌이다가 후퇴하거나 머뭇거리는 느낌으로 들려서 줏대없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똑같은 힘을 ‘쿵’에서 눌러 친다면 우리가 누군가와 싸울때도 강하게만 나가는게 아니라 참을때 참았다가 밀어 붙일때 밀어붙이는 진취적이고 변혁적인 느낌을 들게 합니다. 풍물을 오래 쳐보면 치는 사람의 장단과 품세를 보고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볼수가 있답니다. 이것은 한장단을 신나게 쳐보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쳐보면 금방 확인 됩니다.
이처럼 부족하나마 대중들은 풍물치는것 자체에 자기의 혼을 담고 있다는, 따라서 그것은 작은 창작 표현 활동임을 확실히 인식 하는것으로 부터 출발 합시다.장단을 치며 말로 하면 쉬울것을 글로 풀어 쓸려니까 몹시 번거로운것 같습니다. 어쨌건 풍물패에 들어와서 성격이 변화된 사람의 이야기 속엔, 뒷풀이에서의 인간적 교류와 같은 집단 생활과 여러집회에 불려다니면서 보고 들은 경험만 있는게 아니라, 풍물치기 == 인생배우기 라는 풍물의 본성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앞굿의 역활을 하는 풍물치기가 후련하게 되어야만 뒷굿인 뒷풀이에서 서로 마음이 열릴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확신. 풍물은 발로 친다. 이말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까지의 창작표현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을 찾아 다니는 것이 현시기 대중화 사업의 중요한 실천과제 라는 것입니다.직장내에서 동료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집들이,생일잔치등에 풍물을 둘러 매고 가서 한판 신나게 놀아준적이 있읍니까? 이런 생활 풍물은 풍물패가 직장동료들로 부터 그 존재를 인정받을수 있어 좋고, 조합의 대중적 토대를 넓혀 나가는데도 좋고 해서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고 실천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봉사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이런 풍물을 하면서 얻은 이익은 이런것 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풍물패의 실력이 늘어 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중요한것은 풍물치는 품세가 자기 나름대로 그럴듯해지고 사물놀이보다 훨씬 신나고 감동적이란 것을 느껴가는 것이며, 직장동료들도 부터 인정받고 대중적 토대가 넓어 지는것은 이런 결과로 얻어지는 성과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속의 풍물을 칠때 좀더 좋은 효과를 얻기위해 어떻게 하면 잘할까 고민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것을 가미 시킬려고 합니다. 이처럼 틀에 박혀서 관성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맞게 새로운 풍물굿을 준비해가는 이마음 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위해 봉사 하는데 이왕이면 더 잘 짜자 라는는 생각만으로는 이런 성과를 지속적이고 일관된 것으로 하기엔 부족합니다.
새로운 현장에서는 새로운 풍물을!!! 이것은 풍물을 가장 사실적으로 창작해나가는 원리이며,이것은 풍물이 뭔가 다른 것을 잘 수행하기위한 도구가 아니라 창작과 표현 그 자체가 바로 우리 풍물패를 성장시키는 본성임을 자각하라는 구호입니다.따라서 이런 원칙이 서면 우리는 어떤 현장을 찿아 풍물굿을 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얻을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풍물은 현장예술입니다. 마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장소를 찾아 좋은 장면을 포착 할수있어야 하듯 좋은 풍물판을 만들려면 좋은 장소 좋은 조건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 좋은 풍물판이란 감동적인 판이란 뜻입니다. 우리끼리의 신명보다는 많은 사람이 어우러지는 신명이 감동적이고,마냥 즐겁기만한 신명보다는 가슴에 사무치는 한을 품고있는 신명이 더 찡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야유회나 정기연습같은 풍물패 끼리의 풍물판에서, / 직장동료들의 경사에 찾아가는 결혼식풍물, 회갑연풍물, 생산직이라면 공장을 순회하는 안전 기원제 처럼 우리의 생활터전을 강화하는 현장 풍물판으로, / 그다음엔 사회 구석구석에 우리 처럼 살기어려운 사람들과 공감대를 함께하는 양로원 풍물, 고아원풍물,봉천동같은빈민촌 풍물, 시장에서 많이해본 지신밟기 풍물, 농촌 활동 풍물처럼 사회에 대한 생생한 구조적인식을 심화시켜 나갈수있고, 헌신하고 모범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민족의 지도자요 간부로서 단련 받을수 있는 사회 풍물로, / 현장풍물의 영역을 체계적으로 발전 시켜 나가야 겠습니다.
풍물치는 조건을 확대해 나가는 문제는 특히 풍물패에겐 관건적인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시나 노래처럼 어디서나 할수없는 풍물의 충동성 때문에 확실히 신명나는 판 아니면, 소음과 불협화음의 개판이 될 가능성 두가지 밖엔 없다는 것과 다양한 현실 판에서만이 풍물치기 == 인생배우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건 창작,표현을 할 수 있는 실천의 장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세번째 확신.발로 치는 풍물이 많아 질수록 가슴으로 풍물을 치게 됩니다.
창작 실천의 장으로 내몰아 지면 처음에 생각 햇던의도와 달리 새로운 현실감각이 생기게 됩니다.대중들로 부터 한 수 배우는 거지요.풍물굿의 사실적 표현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솔직히 내보이고 껍데기를 벗는 자세를 갖출때 발로치는 부지런함이 가슴으로 치는 감동으로 비약 할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마다 껍데기를 버리고 현실을 정확히 틀어 쥐려는 자세야말로 신명나는 한판을 만드는데서 풍물꾼이 가져야 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자세입니다.이때 비로소 풍물꾼은 사는방법을 터득하고,치는방법을 터득하고 ,기교를 터득하게 됩니다.전통 풍물굿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주의 원리가 봉건 지배층이 만들어 놓은 형식틀을 깨고 사람들의 생활을 투박하지만 정확하게 발전 시키고 있슴을 알수 있습니다. 대별되는 세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천 대월리의 샘굿에서 하는 사설 입니다.
” 동방청제 용왕님 / 서방백제 용왕님 / 남방적제 용왕님 / 북방홍제 용왕님 /
중앙황제 용왕님…. ”
이 사설에는 샘의 근원이 바다에 있고 바다는 용왕이 다스리고 다섯가지 방향에 용왕이 살고 있어서 이 용왕님들에게 이런 한문식 주문을 받쳐올려야 용왕님이 내리는 화를 누를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용왕이라는 신화적 존재에 사고가 속박되어 있는 이상 사는방법, 치는방법,기교는 한치도 발전할수 없습니다. 샘에 물이 마르거나 전염병이 돌면 다른 지하수를 찾아 샘을 파거나 약을 치지않고 고사를 하고 푸닥거리를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때 다시 읊어질 주문과 풍물은 정말 푸닥거리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못합니다.이처럼 신화나 권위,공포에 예속된 상태에서 사는 방법은 비자주적이며, 치는방법,즉 예술창작방법에서 고전주의적입니다.
다음은 여주 정동면의 샘굿 사설 입니다.
” 누르세 누르세 / 용왕님을 누르세 /
아랫말 우물 / 윗말 우물 /동구밖 우물 / 이즈러진 머리 비단결로 감는 우물 /
뚫으세 뚫으세 / 펑 펑 뚫으세/
오상데대 년년손손 / 먹고살고 먹고살고 /
뚫으세 뚫으세 / 물을축여 생명주고 / 물이넘쳐 식량주고/
아랫말 우물/ 윗말 우물 /동구밖 우물…..”
이 사설에는 용왕님을 누르자는 개혁적인 생각도 들어 있고 샘이 주는 고마움을 칭송에 가깝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분명히 사는 방법에서 미신과 권위를 벗어던지고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자주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슴을 볼수 있습니다.그러나 치는방법, 즉 예술창작방법에서는 설명을 통한 이해는 이루어 지나, 예술적 형상을 통한 감동은 주지 못합니다.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흥청거릴수는 있지만 무릎을 치며 ‘그렇지 ~’ 하는 탄성이 터지고 그흥으로 어깨가 들썩 올라가진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런 신명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터져 나옵니다.
남원 보절면 것은
” 아따 그물 맛있다 / 꿀떡꿀떡 마시고 /
아들 낳고 딸낳고 / 미역국에 밥먹세 / ”
샘에 도착해서 그냥 바가지로 함빢 물을 퍼 담아서 꿀꺾 꿀꺽 마시고 입술을 쓱 흠치면서 제 얘긴지 사설인지 모르게 내 뱉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사설과 현실의 거리가 없어졌습니다.사설하는 상쇠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엄숙을 강요하거나,설명하느게 아니라 사람과하나가 되어 그 현실속에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꿀떡꿀떡 마시는 것만으로 끝나면, 현실을 제 끌리는데로만 표현하는 자연주의가 됩니다.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아들낳고 딸낳고…”가 투박함에 고상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므로서 이 사설은 무릎을 치고 가슴을 뛰게하는 사실주의적 형상의 감동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사설은 공원의 수도꼭지를 지나가다가 그냥 갈증이 나서 한모금 틀어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을 이 샘물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자연 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생활 현장에서의 가슴으로 치는 풍물은 예술 창작표현의 최고 경지인 사실주의를 얘기 하는 것입니다. 풍물을 말로만 설명 하려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실감이 덜할것 같습니다. 정리 해 볼까요. 현재는 과거처럼 미신적 권위는 많지 않지만 누구말을 들으니까 이게 정통 이래더라 누구는 그장단을 저렇게 치더라와 같은 새로운 권위주의가 있습니다. 현실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형식만을 놓고 왈가왈부 하는것은 한문주문을 외는것 같은 교조적이고 복고적인 자세이며, 풍물을 십자진은 단결 미지기는 투쟁.뭐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잔머리 굴려 설명 하려는 것은 형상적 감동이 아니라 설득의 도구로 삼는것입니다.그러나 껍데기를 벗고 소박하고 고상하며 아름답게 현실을 껴안으려는 자세를 갖고 판에 몸을 던진다면 2채 하나만 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판이 될것입니다. 다음은 이런 창작 방법에 따라 기굿과 당산굿의 창작 원리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기굿입니다.
행사나 집회가 있을 때 우리는 자기조직의 깃발을 들고 등장하며 풍물을 치거나 깃발세우기 같은걸 해본적이 있습니다. 예날에 이것을 기굿이라고 했습니다.정월초 마당 밟이 할때 사흘전에는 굿소리를 내지 않다가 나흘날 이후로 택일하여 마당밟이를 시작합니다. 아침에 나발 3초를 신호로 동청마당에 치배들이 풍물과 복색을 갖추고 모이면 우선 용기를 세우고 기굿을 칩니다. 마을굿에서 용기나 농기는 신대로서의 의미를 가지므로 당산굿이나 마당밟이 같은 큰굿을 치기 전에는 동청마당에 만들어 놓은 기 확 (주춧돌 같이 큰돌을 땅에 묻고 돌위에 구멍을 파서 기를 꽂도록 만든것) 에 용기를 꽂고 치배들이 둘러서서 어느 한사람이 기확에 술을 세번 부으면 굿가락을 이루어 일제히 절하는 기굿의 절차를 빼놓지 않습니다.
기굿은 깃발을 세우고 깃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굿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깃발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정월초가 되면 도끼를 둘러메고 산에가서 제일 키가크고 튼튼한놈을 썩뚝 잘라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그러고는 잔가지를 낫으로 쳐내고 맨꼭대기엔 빗자루를 달고 한해복을 비는 운수대통풍년농사문을 정성되고 멋드러지게 써서 매답니다. 그리고 새벽이되길 기다렸다가 남보다 먼저 그 깃발을 세웁니다.그러고는 흐뭇하게 한번 씩웃고 올한해 막히는 일없이 그저그저 모든게 잘되게 해달라고 주문같지않은 주문이지만 정성스레 기원을 합니다. 그렇게 깃발을 세우므로써 하늘의 천기가 깃발을 타고 자기집마당에 내려와 앉는다고 생각한것이지요. 깃발은 자기집에 세우는 장원기도 있지만 마을을 수호 하는 의미의 마을 깃발이 있습니다.마을 깃발은 대충만들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다른마을과 경쟁이라도 하듯 크고 멋있게 만듭니다. 자기마을에 깃발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이없으면 다른 마을의 유면한 그림쟁이를 불러다가 용이비상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이심이의형상을 주로 그려넣엏습니다.마을을 상징하는 이깃발에 대해서는 마치 사람을 대하듯 했습니다 정월이 되면 기세배라하여 주 마을 에서 농사도 잘짓고 마을간 대동놀이에서 이긴 마을을 형님마을이라 하여 마른 동생마을 들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풍물을 치며 기세배를 옵니다 우리 생각에는 장난같지만 이의식은 매우 엄격해서 조금이라도 장난기가있거나 예의에 벗어나면 형님마을 에서 이의를달고 혼줄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세배는 당시 농민 조직이 자주적으로 규율과 위계를세워 나간 사례로 국난에 처했을 때 농민 혁명궁의 지도내용이 담긴 사발통문만 한번 뜨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할수있었던 문화적 장치였다고 볼수있습니다. 깃발은 당시의 사회적인간관계를 짜는데있어 상징물로서 기능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깃발에 이런 상징성이 부여되다보니 깃발을 범상하게 다룰수가 없었겠죠. 기고사란것이 있습니다. 깃발이 비바람에 풍화되어 자연적수명을 다하거나 외침이나 부정한 무리에 의해 찢겨지거나 불태워 졌을때는 땅을 파서 깃발을 묻고 사람죽은듯이 슬퍼하고,뭔가 잘못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기투합으로 풍물을치고 결의를 다져나가는 것이 바로 기고사 입니다. 깃발에 인격이 부여 된것이지요. 이러한 전통은 전쟁에서도 상대편 깃발을 빼았으면 아무리 우리편에 부상자와 사상자가 많더라도 기세를 제압하고 적이 백기를 들고 나오게 한다든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애들이 하는 동네 패싸움 놀이에서도 기쌀만 빼앗으면 이긴다는 원칙이 만들어 지게 된것입니다. 마음의 상징물이 외세문화로 많이 교체된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느낌이지요 ? 그렇습니다 깃발은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지배자든 백성이든간에 공통으로 존재했던 민족문화의 상징인것입니다 깃발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민족에게있어서 깃발의 상징성을 더 잘알수있습니다.
깃발은 이처럼 사람이 사는 근거지를 상징하며 자기가 속한 조직을 대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주변엔 여러 깃발이 있습니다. 태극기도 있고 학교마다 있는 교기도 있습니다. 동회마다 샌마을기도 있지요 조합이 있는데는 조합기있고요. 자기가 신념과 애정을 쏟은 만큼, 또 그 조직이 자신에게 이로움을 준만큼, 자기는 그조직의 깃발에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까지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쉽진 않지만 좀더 과감하게 자기조직의 깃발과 일체감을 높여 나가기 위해서 기굿을 치게 된것입니다.
다음은 당산굿입니다.
우리는 조합사무실에 입주 할때나 새로 옮겼을때 어려운 일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고사에서는 가락이야 특별날게 많이 없지만 뭔가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되는것이 보통입니다. 옛날에는 이와 유사한 것으로 당산굿이 있었습니다.
당산이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성소 인데 보통 윗당산, 아랫당산 둘이 있습니다. 윗당산은 당산 할머니를 모신 당으로 마을 윗쪽 언덕에 있고 아랫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라 하여 마을 입구언덕에 있으며 큰 당나무 아래 평평하게 터를 닦놓고 터 아래에는 넓은 길이 있어 당마당으로 쓰입니다.당산제는 보통 유교식 마을 제사로 정초에 날을 잡아 지내는데 젯날이 다가오면 먼저 궃은 일없고 부정끼지않은 이를 골라 밑집(제를 지낼집) 한집을 정하고 섣달 그믐날 매굿을 치면서 거두었던 쌀을 주어 제수를 장만하게 합니다.진도같은 경우는 인구전이라 하여 자치적인 주민세금을 따로 받습니다.밑집양주(제주와 부인)는 3일전부터 당산에 금줄을치고 목욕재개하여 지성으로 제수와 제물을 장만한다. 당사네는 윗당산을 먼저 지낸다. 윗당산의 당산할머니는 매우 까다로워서 음식을 가리기 때문에 고기나 생선등 비린것은 안쓰며 궂은 사람은 근처에 가지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동청마당에 모이면 굿가락을 이루고 밑집에 가서 제물을 앞세우고 길굿을 치며 윗당산으로 가는데 윗당산에는 영기를 안가지고 갑니다.제물.허두잽이.꽹과리3.징1.장구3.동네사람 순으로 가며 소고는 딸리지않고 치배들은 평복을 깨끗하게 입습니다.윗당산에 이르면 굿가락을 자진가락(삼채류)으로 바꾸고 제물을 차린후 굿을 어루면서 제주가 세번절하고 “지신밥”(쌀로 지은 멧밥)을 묻습니다. 묻는곳은 정해져 있어서 눌림돌을 떠들고 지신밥을 묻습니다.지신밥을 묻을때 작년에 묻엇던 지신밥이 잘 삭았으면 올해는 풍년이 든다고 기뻐하고 잘 삭지 않았으면 흉년이 든다고 걱정합니다. 지신밥을 묻으면 굿을 한바탕 푸지게 친다음 제물을 거두어 들고 길굿을 치며 다시 밑집으로 갑니다.밑집에 당도하면 굿가락을 맺고 치배들이 잠깐 쉬는동안 제주는 아랫당산에쓸 제물을 차립니다.치배들은 쉬면서 제대로 된 굿복색을 차려입고 영기를 챙깁니다. 제주가 제물을 갖추어 들고 나오면 영기를 앞세우고 길굿을 치며 아랫당산으로 갑니다.아랫당산에 이르면 당산마당에서 당나무를 향하여 일렬횡대로 서서 계속 길굿을치고 영기잽이는 당나무 양편에 영기를 단단히 꼽습니다. 혹시라도 영기가 쓰러지면 불길하다하여 조심하지요. 제주가 당나무 밑에 제물을 겅ㅢ 차렸다 싶으면 상쇠는 자진가락으로 굿가락을 돌리고 제물을 다차리면 가락을 그친다.제물은 고기,어물,채소,나물, 백설기,멧밥등으로 차립니다.제물을 차려 제주는 술잔을 올리고 축관은 축문을 읽은후 다시 굿가락을 이루면서 당나무 밑에 술을 붓고 지신밥을 묻습니다.쇠를 그치고 제관과 치배들이 음복 한다음 당마당에서 판굿을 한마탕 칩니다.판굿을 마치면 영기를 앞세우고 길굿을 치며 마을로 돌아옵니다.밑집에 와서 가락을 맺고 쉬엇다가 다시 길굿을 치며 풍물고로 와서 가락을 자진가락으로 몰고 맺은 다음 풍물을 풍물고에 넣습니다.
당산굿은 우리나라의 어느 마을에서나 볼수있는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는 굿입니다. 풍물굿을 하든, 대동집회나 놀이를 하든 무얼 한번 하려면 일단 당산나무에 들러 굿을 하고 해야하는게 저차요 순서였습니다. 당산은 마을공간의 중심이요 정신과 신앙의 지주였습니다. 느티나무가 됐든 은행나무가됐든 당산으로 설정된 나무는 조상대대로 보호받고 키워지면서 그마을사람들의 가슴과 피부에 끊임없이 호흡과 핏줄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것입니다. 당산나무는 그누가 기념식수를 해서 심어진것이 아니라 땅의 기운을 따라 가장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였습니다. 때문에 이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나고 커져갔습니다. 인간의 목적에따라 불도저로 도시와마을 생기는 자본주의시대의 산물이아니라 자연의 형세를 따라 가장적합한 곳을 골라 적응해나가는 봉건시대의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산나무를 통해 배울수있는것은 제나라 땅을 단순히 이윤을 올릴수있는 대상으로 보지않고, 사람의 호흡을 느끼듯 땅의호흡을 느낄 정도로 국토를 사랑하고 지키려 했던 애국심입니다. 당산굿을 하다보면 당시 백성들의 배움수준으로는 이해도못할 유세차 모년모월로 시작되는 제사문과 주문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봉건적인 유교제례의식은 우리 백성들에게 아무런 감동이나 변화를 줄수없는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벼타작을 하고 개구장이같은 놈들이 기어올라가 그네를타고 놀던 한갖 나무에 금줄이 쳐지면 신성공간이되고 자기마을을 수백년 지켜보던 나무에 존경심이 생겨나서 절을하고 소원을빌고 천년만년 이마을을 지켜주길바라는 그절절한 마음만큼은 도통 알아듣지못하는 제문따위를 뛰어넘어 마음에서 우러나는 조국애를 길렀고 외적의 침입앞에 전민봉기로 나아갈수있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떠받쳐온 지주역할을 했습니다.이것이 바로 당산굿을 모든 마을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지위를 갖게한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산굿에서 버려야 할것은 번잡한 유교제례의식이며 이어가야 할 것은 신토불이의 나라사랑 정신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발 좋던 당산굿의 위력은 지금은 찾앚볼수없습니다.요즘은 동네에서 지신밟기나 판굿을 칠려면 당산나무대신 어디에 알려야 합니까 ? 구청이나 경찰서에 알려서 집회신고서를 받아내야 합니다. 전주대사습놀이와 같은 경연 대회에서는 인간문화제 심사위원앞에가서 인사굿을 칩니다. 예전에는 민속경연대회에 이승만대통령이 참석한적이 어떤풍물패가 어깨를 올라탄 무동의손에서 이승만각하 만수무강 하옵소서라는 글이 적힌두루마리를 펼쳐내려 장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일이지만 그렇게 합니다. 당산의 대상이 바뀐것입니다. 봉건시대사람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와 법칙이었다면 당산나무옆에코카콜라 자판기가 서있는 국제화시대에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관계이며 인간관계의 확장된 형태인 민족관계입니다. 그래서 봉건시대의왕은 국가적차원의 고사를 지낼때도 왕이 나라 당산에 절을 해야 했다면 외국차관에의한 자본주의시대의 대통령인 박정희는 미국식 경제구조의 편입과정이었던 바둑판모양의 농지정리를 하는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산나무를 싹뚝잘라버릴수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성격이 바뀌다보니 당산굿도 자연물에서 사람으로 실질적내용이 바뀌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자체가 문제일것은 없습니다. 풍물굿만 역사를 거스를순 없는 것이니까요 정말 우리를 걱정되게 하는것은 구청장이나 경찰이나 대통령을 당산으로 삼았던 풍물쟁이들은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이기보다는 출세와 명예의 도구로 풍물을 전락시키고 박제화 시키는데 있습니다. 사람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을뿐더러 문화재 심사위원이 2~3일씩 놀던 풍물굿을 20분으로 줄여라 하면 줄이고,이래서 되겠습니까 차라리 속편하게 이건 전통이 아니라 창작이요하면 창작풍물의 발전에도 이바지가 될텐데 이것만이 정통이다 라고 히면서 문화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게 우리 풍물의 현실인것입니다. 이러한 변질과 왜곡은 당산을 제대로 이해하지못함으로서 생겨난 일입니다. 첫단추를 잘못끼니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마지막 결론은 채울수 없는 단추 구멍하나가 남더라는 것입니다. 그허전함을 메꾸기위해 보여주기식의 사물놀이가 기세 당당하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가 이룬 성과에 흠집을 내기위해 이런 평가를 하는것은 아닙니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촛점이 있습니다.뿌리를 내려야할데가 대중과 함께하는 신명이 아니라 히로뽕기운으로 유지되는 신명이다보니 꽃을 피우긴 피웠는데 질경이꽃이 아니라 서양 장미꽃이더라는겁니다. 그러한 증거는 급속하게 대중화된 풍물패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즉 보여주기식의 기량훈련으로 운영된 풍물패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다 깨졌다는게 그것입니다.옛날처럼 농민사회의 자치적단결과 정서적 통일을갖는 풍물패가 사물놀이 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산의 정신을 서로 다르게 이어받아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처럼 긴가민가 하다가도 결국은 다르다는것을 몸으로 느낀것이죠.당산의 정신은 억지로 강요되거나 세뇌된 조국애가 아니라 내나라 내땅에살면서 내민족을 사랑하면서 자주적으로 얻어진 조국애인 것입니다.정부를 사랑하는것과 조국을 사랑하는것이 일치하진 않습니다.오히려 조국사랑을 실현하기위해 정부를 교체해야 할때도 있는것입니다. 결국 조국애란 내나라 내민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인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직장동료와 가족,친구와 단군의 한핏줄인 전민족에대한 사랑과 의리의 실천이고 우리는 직장에서 팽생동지계나 사회발전적노동조합 등으로 새로운 조국애를 만들어가고 있는과정에 있습니다.그리고 풍물패는 이러한 흐름속에서 사람들의 생활과 함께하는 생활풍물굿 활동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당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그래서 풍물굿을 하기전에 풍물패끼리 한바탕 얼른다거나,자신들의 자치조직인 노조나 시민회사무실에서 먼저 시작을 알립니다.당산이 풍물패 자신들이되거나 자주적인 조직으로 전화가 된것입니다. 처음 쓰려고 했던것과는 달리 말이많아진것 같군요.당산굿은 풍물가락이 복잡하거나 특별한 멋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물굿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당산굿 형식에서 중요한 것
당산굿의 중심은 어떤 당산인가와 고사의식입니다. 마을굿을 할 때는 마을에 있는 당산나무가 당연히 당산이 됩니다. 그러나 인근마을끼리 연합해서 다리를 놓는다거나 저수지를 만든다거나 집회를 한다거나 할 때는 가장오래된 당산나무가있고 가장 터가 넓은 당산마당이 있는 곳이 선택됩니다. 예를들면 전봉준이 농민군을 일으킬때 처음모인 장소가 지금도 고부장터가 있는 당산나무였는데 여기는 인근에서 가장 오래됐을 뿐아니라 넓은 장터가 그앞으로 있어 집회하기에 좋은 장소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을굿에서는 지신밥을 파보고 묻고하므로서 그해의 농업생산성을 점쳐보고 기원하는게 중요한 목적이지만 연합집회형식의 당산굿에서는 그목적이 다분히 정치적인데 있었습니다.이처럼 어떤 목적의 당산굿인가가 그뒤에 따르는 모든형식을 결정한다는것을 잊지맙시다.그다음 중요한것은 우리말로 비나리라고 하는 고사문입니다.우리의 모든 염원을 담고 같이 공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좋은 비나리문은 사람을 웃기다가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하는등 사람의 정서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안좋은 비나리는 엄숙하게만 하거나 지루하게합니다.비나리가 일반 문학작품과 다른것은 읽을때 낭독이 아니라 창하듯 읊어야 하기때문에 독특한 전달력을 갖습니다. 세번째로 중요한것은 절입니다.절이란 형식은 서양의 기도와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절은 예절치례 형식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체조에 등장하는 홉단련법의 하나였습니다.절을 제대로 하면 절하는동안 호흡이 조절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것을 느낀적이 계실 겁니다. 국선도에서는 기를 운행하는 호흡훈련으로 절을 서서히 끊이지 않고 합니다. 결국 절은 조상신이나 당산을 향한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향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지요.고사나 당산굿에서 절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걸 헛되이 하고 장단이고 굿이고 제대로 울릴리 만무합니다.
풍물장단도 이러한 상황에 이바지하는 장단일때 의미가 있습니다. 절하는 분위기가 후련하고 경쾌할 때가 있고 비장하고 결의에 찬 분위기일때가 있습니다.그러면 똑같은 인사굿 장단이라도 장쾌한 맛이 나고 슬프고 비장한 맛이 나야 합니다.고사문과 절하는 분위기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북돋워 내지못하는 장단은 칠필요가 없습니다. 소음밖엔 안되니까요.마음의 준비가 없는 형식뿐인 장단은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풍물을 혐오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차라리 안치는게 낳습니다. 그럼 절하는 법은 말로 배울수 없으니까 나중에 직접 배워보기로 하고 고사문 쓰는법을 배워 봅시다.
고사문하면 글 잘쓰는 사람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해 합니다. 무슨 특별난 양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양식이 있긴 있습니다.첫번째로 유세차 모년모월 모시 .. 한문으로 된 정통 유교식 고사문인데 이것은 영어로 고사문을 읊는 것 만큼이나 무의미 하기에 언급을 피하기로 하고,두번째로는 거의 정착된 새로운 고사문 양식이라고 볼수도 있는데 다음과 갘다.
언 제:계유년 정월 초하루날
누 가: ————— 에서
————— 한,
————— 학생 일동이
누구 에게: ————— 했던,
————— 조상(선배영령)님께 비옵나이다.
무 엇 을 현재의 문제점 )
————— 귀신 물러가고 (물러가라 – 합창)
————— 귀신 물러가고 ( // )
————— 귀신 무러가게 하옵시고.
어 떻 게 소 원 )
————— 하도록 도와 주소서
다 짐 : ————— 우리 학생회 하나로 뭉쳐 평생을 책임지는 평
생 동지되어 이 어려운 길 헤쳐나가겠습니다.
물론 이형식에 맞아야만 한다는건 아니다. 능숙하지않을때 최소한의 도움이 되라고 한것이고 형식이 어떻든 글의 순서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댓거리 구조로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웃는가운데서도 가슴을 치는 찡한 감동이다.순서와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고사상을 차린다.
2. 무릎꿇고 술을 따라 오린다.
3. 절을 한다.( * 산사람에겐 1번,죽은이에겐 2번반, 당산같은신성한 대상
은 3번 )
4. 고사문 낭독
5. 소지 — 고사문을 태워 하능로 올린다.
6. 음복 — 술과 안주를 돌려마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