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대활동(2)교육활동1.문예교육이란2002/09/09
제4장 자주문예운동의 4대활동
(1)문예창작활동
(2) 문예교육활동
1.문예교육이란
(2) 문예교육활동
장자에 나무닭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성자라는 투계의 명인이 있었습니다.왕의 명령으로 싸움닭을 훈련시키고 있엇습니다. 10일쯤이 지나 왕이 이제 싸움시켜도 되겠느냐고 묻자 기성자 왈
‘ 지금은 닭이 살기가 등등해서 적을 열심히 찾고 있기 때문에 아직 싸울 쭌비가 않되어 있습니다.’ 라고 했씁니다.
또 10일이 지나 왕이 묻자,
“아직도 멀었습니다.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낌새를 느끼면 곧 쌍울 준비를 하므로 좀더 훈련이 필요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일이 지난 뒤 왕이 묻자,
“이제 됐습니다. 다른 닭이 옆에서 소리치며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마치 나무로 만든 닭(목계木鷄)와 같습니다. 이젠 다른 닭들이 그모양만 보고도 모두 도망치고 맙니다.”
기성자라는 사람은 전쟁터 같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떻게 싸워야 승리할수 있는가를 가르쳐준 교사였습니다. 사회와 역사를 개조하는 사업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개조할수 있는 사람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맞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이 자기개조를 완성 할순 없습니다.이처럼 복잡하고 장기간 인내를 요구하는 이 사업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또 사람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길을 밝혀준다는 면에서 가장 심각한 혁명이기도 합니다. 기성자는 투계를 통해 했지만 우리는 예술을 통해 하자는 것입니다. 예술은 사람에 따라 투계처럼 취미오락의 의미 일수도 있고,싸움에서 이길수 있는 무기로서의 의미 일수도 있으며, 인생철학의 교과서 일수도 있습니다. 예술교육은 어느것 하나 버려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취미오락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철학과 깨달음의 문으로 나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87년 6월항쟁과 7, 8, 9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결성운동은 전 사회적으로 문예교육의 전성기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89년 전노협문화국 통계조사로는 1∼2년 사이 10만명의 풍물인구가 생겼다. 풍물을 시작으로한 민족문화부흥운동은 이전의 탈출부흥운동, 판소리 등 모든 민족예술 유산이 음지에서 양지로 쏟아져 나오게했다. 이때의 주요형태가 풍물강습, 풍물교육이 있다. 새로운 문예운동은 사실 문예교육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셈이었다. 풍물강습, 노래강습 등은 전문적 기량보다도 새로운 세계관을 심어주는 장이었다. 풍물이나 노래강습의 이런 성과에 힘입어 모든 대중소집에는 문예소모임이 가장 인기있는 모임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서 관과 기업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벌인 문화운동은 통일노래한마당을 열린음악회로 민족문화보급운동의 성과를 서편제와 국악의 해로 소유권을 등기이전해 버렸다.
엄청난 물량과 제도적 지원 속에 벌어지는 각종 문화사업, 언론사들의 문화쎈타 강좌 등은 우리의 주도권에 큰 도전이 되었다.
왜 초기의 건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문예교육사업이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됐는가로 원칙적이고 전망적으로 고민해보자 하는게 이 장의 주제이다. 우선 문예교육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는가 정의내리고 목적, 내용, 체계, 방법, 수단, 교사, 지도 등 7가지 요소에 대해 체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원칙적 전망이 현재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실천되어야 할지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문예교육이란
문예교육은 교육일반에 대해서 문예가 갖는 교육적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므로 교육에 대해서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한마디로 사람을 사회적 인간으로 키우는 사업이다. 교육은 사회 발전을 위해 인간이 벌이는 자연과의 사업, 사회와의 사업, 인간 스스로와의 사업중에서 인간 스스로 변화 발전 시키기 위한 사업을 담당한다.
교육은 주인의식과 창조적인 능력을 배양하여 사회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힘있는 사회적 존재로 키운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떤 기능이 교육과 만나서 교육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가.
기능이란 하나의 체계가 다른 체계에 대해 끼치는 능력을 말한다. 결국 예술의 교육적 기능은 예술의 체계와 속성으로부터 온다.
우선 예술은 교육을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풍물강습을 처음 시작할 때 복채나 장구채를 잡는 법이 서툴러서 열심히 치다보면 필히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까진다. 그러면 강사는 기다렸다는듯이 이렇게 얘기한다. `삽자루로 처음치건 장구채로 처음치건 이렇게 뭔가와 처음 만나 친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이 아물어지는 고통과 보람의 과정입니다. 죽은 장구채와 친해지는데도 이러니 산사람끼리 만날 때야 오죽하겠습니까 서로에게 쉽게 상처 받거나, 실망하지 말고, 친해질수록 더 조심해서 우리 관계를 가져가 봅시다.’
서로간의 관계가 서먹한 강습생들에게 설득력있게 들리고 모임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런 경우는 예술적인 비유나 사례가 교육적 작용을 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다.
역시 풍물교육용 비유중에 하나다. 처음 배우는 가락이 보통 그쳐 휘몰이장단이다. 쉽게 배우고 신나게 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2채를 신나게 치다 보면 처음이라 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이 생긴다. 대부분은 신명과 깡다구로 끝까지 치는데 간혹 중간에 장구채를 놓는 사람이 있으면 강사는 또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한다.
`풍물은 집단적 신명이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조금 힘든다고 중간에 저렇게 포기해 버리면 풍물은 신명이 깨져 버립니다.’
그러면 강습생들은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도 그만두는 사람없이 끝날 때까지 친다. 풍물치기를 사례로 한 집단주의 정신에 대한 교양이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는 강습생들이 전혀 흥없이 풍물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된다고 했죠하고 강사가 흥을 내면서 법석스럽게 풍물을 치는데도 전혀 분위기가 뜨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강습생중에 한 사람이 선생한테 미안했는지 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날 노조에서 오랜동안 임금협상을 해오다가 단식도하고 삭발도 하면서 헌신적으로 노력했는데 막판에 만족치 못한 결과로 끝나서 풍물하러 오기 싫은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왔다는 것이었다. 진작 얘기하시지……
그래서 그 다음엔 도저히 풍물칠 기본이 아니니 술이나 먹으러 갑시다 하는 사람도 생기고 어수선해졌다.
판을 수습하고 오늘은 예정에 없던 장단을 배워봅시다 하며 중모리 장단의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새세상 찾아가세라는 신민요로 배웠다.
처음엔 배우기 싫어하다가 자기들의 지금 정서에 맞으니까 점점 빠져들어왔다. 나중엔 이 처절한 장단의 민요에 눈물그렁이며 밤이가는 줄 모르고 부르다가 뒷풀이, 2차, 3차를 가서야 신명이 터지며, 다시 시작해보자는 결의로 끝났다.
예술은 교육에 의한 좋은 재료로만 쓰일 수도 있지만 예술의 속성 그 자체는 더 크게 교육적이다. 만약 계속해서 신나게 집단적으로 끝까지 치라고 강요했으면 이런 풍물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리고 풍물을 떠났을 것이다.
흔히 예술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훌륭한 만화만평 예술을 설명조의 만평으로 만들런지, 광고홍보영화로만, 정치선동주의로만 전락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교육적 효과도 상쇄되고 예술도 후회하게 된다.
예술은 모든 의식활동을 완성하고 발달시키기 위한 가장 영향력있는 수단이다.
과학이론은 읽는 사람의 사유에 호소한다. 예술작품은 이와달리 사유와 동시에 감정에 호소한다. 또한 예술작품은 생생한 삶과 유사한 체험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예술의 교육적인 힘은 사람에게 체험을 추동시킨다는데 있다. 어떤 일이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체험되면 이것은 그의 의식에 깊숙히 파고 들어가 삶과의 정서적이고 매우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활동의 자극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예술은 인간의 의식을 감성이나 이성 등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형성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단지 예술을 교육수단이나 소통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일면적인 것이다.
또한 예술은 사람의 삶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예술은 남의 경험을 내 것으로 삼게하여 자신에 의해 그것은 획득하도록 자극한다. 이것이 예술의 따라 배우기적 기능이다. 장기수들의 과소에 찬 삶을 그린 소설을 읽으면 독방, 고독, 사상전향의 힘든 시련속에서도 사람의 고상한 인격을 잃지 않는 영웅적 풍모를 내가 체험하듯이 생생하게 체험하며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자극한다. 물론 이러한 간접체험이 실제의 개인적 경험에 의한 교육을 대치할 순 없다.
그러나 사람의 실제 삶의 경험은 예술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개인적 경험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전쟁의 아픔이 땅속까지 서려있는 철원에 사진촬영기행을 갔을 때 일이다. 따뜻한 관광버스안에서 내다보는 철원평야보다, 중간에 내려서 눈내린 젖은 흙을 딛고 바람맞아가며 걸어가는게 나았고 그렇게 걸어가는 것보다 `엉겅퀴야 엉겅퀴야/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잃고 홀로사는 엉겅퀴야. 떠벅머리 수건쓰고 갈퀴손에 호미잡고 나를 두고 어딜 갔소. 쑥국새만 슬피우네’를 차안에서 배워 비장하게 중엉거리면서 걸어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예술은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와 후손들이 경험하도록 해준다.
둘째, 개인적 경험은 우연적 상황들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술은 변덕스러운 우연을 극복하고 예술가가 예견하고 목적의식적으로 계획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체홉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훌륭한 작가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들은 어디론가 가서 우리를 그곳으로 오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그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 전체로 느낀다.’
이 목적이 어떤 것인가? 어떤 요구와 이해관계로 반영하고 있는가는 작가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관 자체만으로 전달되지 않으며 아주 은밀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모두가 모이는 광장으로 이끌어낸다. 그 과정을 도식화시켜 보면 이렇다.
사회에 대한 인식을 거쳐 그것이 자기와의 관계속에서 어떤 가치로 갖는가 계급적이거나 민족적이라는 관계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하며 자각된 요구에 따라 그것을 실행할 준비태세 즉, 각오를 하도록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적 체험은 보편적인 세계관으로서 승화된다.
예술은 인간의 의식에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교육에서 큰 역할은 수행하게 된다.
문예교육은 사람의 체험을 추동시킴으로써 생생한 세계관을 형성케하고, 그를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다.
문예교육의 이러한 본성은 문예교육의 그 목적, 내용, 체계, 방법, 수단, 교사의 역할, 지도관리의 모든 요소에 일관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