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대활동(2)교육활동3.문예교육방법2002/09/09
제4장자주문예운동의 4대활동
(1)문예창작활동
(2)문예교육활동
1.문예교육이란
2.문예교육의 목적과 내용
3.문예교육방법
ㄱ. 토론과 논쟁으로 하는 방법
ㄴ. 발표하고 묻고 답하는 방법
ㄷ. 대화로 하는 방법
ㄹ. 개별적으로 교육하는 방법
ㅁ. 모범을 따라 배우는 방법
ㅂ. 창작을 통해 배우는방법
ㅅ. 일하며 배우는 방법
ㅇ. 대중속에서 배우는 방법
3.문예교육 방법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것에 신명을 가져야 합니다.가르친다는 것은 배운다는 행위를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가르칠수록 풍부 해지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문예교육방법은 시작되어야합니다.신영복선생은 가르치는 것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같이 이야기할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상대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까? 가르치는과정을 통해 자기가 끊임없이 혁신,변혁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관성이고 위선이며, 죽은교육이 아니라 죽이는 교육입니다. 그럴땐 용기있게 가르치는 일을 중지해야합니다. 문예일꾼들이 혼란속에서 대중문예교육사업을 방치하고 있을 때 병원노련, 한총련등에서 스스로 문예학교를 열고 성과있게 결실을 거둘수 있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서로를 믿고 희망만들기를 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할수 있고,나아가서 이상을 함께 그릴수 있다는데에 교육사업의 본질이 아름다움을 찾는활동이라는 근거가 있습니다.
제대로된 문예교육 방법은 교육 목적과 교육 기풍,교육관점과 내용을 다같이 실현할수 있어야합니다.문예교육방법에서 꼭 잊지말아야할 원리가 있습니다.
가르칠것인가? 깨닫게할것인가?
몇해전인가 부산의 잘나가는 민주노조 고려피혁 교육국장이 이런 부탁을 한적이 있습니다. 일방적인 교육보다는 서로간의 요구를 확인하는 분임토의가 훨씬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서로의 관계에 대해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토론에 익숙치 않아서 항상 잘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분임토의를 잘할수 있는 문예를 이용해서 분임토의를 잘할수 있는 방법좀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그때 당장 생각났던 것이 말이어가기 놀이로 촌극짜기였습니다.우선 각각의 분임조에서 한사람씩 돌아가며 현재 조합의 상황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길수 있는지에 대해 문장을 끊이지 않고 이어서 줄거리를 만드는 놀이였습니다.물론 사전준비로 집행간부들이 입장을 맞추고 구석구석에 끼어 있지요.처음엔 장난처럼 여기고 대충대충 넘어 갑니다. 그럼 누군가가 잠깐 집안 얘기좀 자세히 한 번 해주세요라고 요청하기도하고 과연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식당에 다모일수 있을까요라고 구체적이고 예리한 질문을 한마디씩 던집니다. 그럴수록 줄거리는 생동감있게 짜여지기 시작하고 장난이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면서 실전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그려집니다.전술구사에서 막혔을 때 누군가 묘안을 말하면 모두가 무릎을 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그 줄거리를 가지고 총회대신 즉석 촌극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자리에선 각자 분임조에서 짠 즉흥극을 보면서 평가도 하고 질문도하는 과정에서 2~3개정도의 전술이 나옵니다. 이런과정에서 거리시위 대신 거리청소가 태업투쟁대신 한식당에서만 점심먹기(당연히 점심시간이 죽죽 늘어지겠지요)가 참신한 전술로나오고 대부분의 경우 승리의 전술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가 됩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간부들이 그저 도와주었을뿐.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예술교육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르치는 방법은 한두가지지만 깨우치는 방법은 수만가지입니다.
문예교육이 성과를 거둘려면 교육의 당사자인 대중의 적극적 열의와 창조적인 지혜가 남김없이 발휘 되어야 합니다. 원래 예술공부란 인생의 원리와 자연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을 체체득하기 위한 가장높은 형태의 인식활동이며 끊임없는 사색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탐구과정입니다. 이처럼 공부가 가장 높은 정신적 단계에서 벌어지는 활동이기에 여기서 성과를 거두려면 사람들의 사상의식이 남김없이 발휘되고 창조적인 지혜가 밑밭침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문에 누구는 가르치고 누구는 배우기만 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 도와주며 서로의 지혜를 모두 발동하는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이어야 합니다.
ㄱ. 토론과 논쟁으로 하는 방법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서는 사람을 풍부하게 하고 토론은 사람을 유연하게 하며 창작은 사람을 정확하게 한다”
토론과 논쟁은 학습방법의 중요한 형태입니다. 책이나 교육이 서울로 가는 한가지 길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이라면 토론은 서울로 가는 여러 가지 길을 깨닫는 과정이며 사람이 풍부하고 유연할 때 길이 아닌길을 쉽게 발견하는 눈을 줍니다. 넓게 이해할수 있는 능력은 곧 깊고 정확하게 이해할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목표로하는 문예정책에 대해서도 이런 능력이 있을 때 편협함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문예단체의 간부나 회원들의 이론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전체 문예정책을 자기 사업과 연관지어 활발하게 논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논쟁은 종종 쉽게 결론을 내지도 못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소련의 리하초프라는 미학자는 쾌활하게 토론하는 능력에 대해 긴편지로 얘기 한적이 있습니다.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논의하고 자기견해를 주장할 때, 교양의 정도가 가장 잘 나타나게 된다. 논쟁을 하다보면 지성이나 사고의 논리성,정중함,사람을 존경할수 있는 능력,나아가 자존심까지 대뜸 드러난다. 논쟁할 때 당신이 진리의 추구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고, 상대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일 능력을 갖고 있지 않고 상대를 목소리로 압도하며, 비난으로 위협하려 한다면, 당신은 알맹이 없는 사람이 되고 논쟁도 알맹이 없는 것이 된다. 현명하고 예의바른 논쟁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첫째로,그사람은 상대가 하는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 또,상대의 견해에 불분명한데가 있으면 그점을 지적하며,상대의 입장이 아주 명백히 드러난 경우라도,상대방 이야기의 가장 애매한 부분을 골라내어, 상대방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런 뜻인가고 묻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논쟁자는 세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첫째,상대방이 ‘오해되었다’느니’그런말을 하지 않았다’느니하면서 반대 할수 없게 된다.
둘째,상대의견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공감을 얻는다.
셋째,귀기울이고 물음을 거듭함으로서 한창 논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의의견을 음미하거나(이것은 중요한 일이다)자기 자신의견해를더욱 정확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수 있다. 그리고 반박 할 때는 결코 부당한 논쟁 수단에 의존해선 안되며 다음 규칙을 준수해야한다.
첫째,반박은 하지만 비난은 하지 않는다.
둘째,’마음속을 읽거나’상대방 주장의 동기를 탐색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이견해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당신에게 편리하기 때문이다’라든지’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등등)
셋째,논쟁의 주제로 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논쟁은 끝까지-상대방의 주장을 뒤엎거나,상대방의 정당성을 인정할때까지-밀고 나갈 능력을 익히고 있을 필요가 있다. 부연하면,당신이 처음부터 논쟁을 예의바르고 냉정하게 진행하고 있었다면 그 때문에 당신은 기분좋게 냉정히 물러설수도 있다. 논쟁할 때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정당성을 냉정히 인정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주위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또한 그럼으로서 진리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서 당신은 상대에게도 겸양의 미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며, 상대방의 입장을 완화시킬수 있게 된다. 물론 상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당신의 신조나 도덕적 원칙에 저촉되지 않는 경우에 한한다. 사람이 바람개비 같아선 안된다. 하지만 고귀한 자신의 신조를 버리지 않아도 될 문제에 있어서는 기분좋게 양보하거나, 논쟁에 진 사람에게는 득의의 미소를 짖거나 우쭐대지 않으며,상대의 자존심을 부당하게 손상시키지 않는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유능하고 현명한 논쟁자들의 논쟁을 보고 있으면 주위 삶마저 지적으로 풍부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 논거가 결여된 논쟁만큼 어이 없는 것은 없다. 고골리의 죽은 영혼에 나오는 두부인의 대화를 기억하기 바란다.
“부인 그건 얼룩무늬죠.”
“어머 천만에요 얼룩무늬 따위는 아니예요”
“아뇨!얼룩무늬예요”)
토론과 논쟁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깨우쳐 주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자기가 보충할수 있게 해줍니다.
토론과 논쟁을 잘 할려면,
첫재,목적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론과 논쟁은 배운지식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문제를 더많이 더똑똑히 알자는데 있습니다.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말장난만해서는 아무 성과를 낼수 없습니다.같은말만 계속되면서 논리의 진전이 없을때는 서로의 주장을 바꾸어서 이야기 해보는것도 좋습니다. 상대의 의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준비를 잘해야합니다.문제가 제시 되면 그에 관한 원칙을 우선 바로 세우고 자기의 경험과 연관지어 생생한 현실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논리처럼 사람을 풍부하게 하는것도 없습니다.이념과 형상의 통일이란 측면에서,또 생활논리의 순차적 전개라는 측면에서 대화술은 예술적 계기를 갖습니다.한편 한명도 준비를 안해온 토론은 깊이 반성하고 과감히 연기 하는게 낮습니다.
셋째,모든사람이 다 참가 하도록 해야합니다. 처음엔 꼬셔서,나중엔 서로의 약속과 규율로 모든 사람이 참여하도록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토론과 논쟁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모두가 더많은 지식을 얻게하는 학습방법이기 때문입니다.선진적인 몇몇사람이 자꾸 나서 버릇하면 그 그늘밑에서 공부를 잘하지 않는 현상도 자라날 수 있게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대중앞에 내세우기도 해야합니다. 자기가 결의를 하는 만큼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전될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아무데서나 격식에 구애받지 말고 해야합니다. 그래서 생활화 시켜야합니다.
ㄴ.발표하고 묻고 답하는 방법
발표는 연설이 될 때도 있고 강의가 될 때도 있습니다. 발표의 기술은 그만두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만 집고 넘어 가겠습니다. 연설이나 강의는 재미있어야하고 자신도 연설과 강의를 즐기고 있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연설자나 강의자는 자기의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는 일은 재미있게 느끼고 있어야하며 강의의 재료가 본인에게 있어서도 매력적이고 어느정도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연설자나 강의자 스스로가 그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관심을 청중이 느끼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듣는 쪽도 재미있어 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또 연설이나 강의에 있어서는 두가지 동등한 견해만 있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연설이나 하나의 지배적인 견해가 있고 이에 다른 견해가 따르고 있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현실적으로 하나의 선택된 의견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 그사람에게는 살아있는 의견이 됩니다. 그러면 연설이 재미있을 뿐아니라 기억에도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주제에 대한 견해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관점까지 주기 때문입니다.우리식의 연설은 관점과 견해 생생한 형상의 통일이란 측면에서 예술적 계기를 갖습니다. 또한가지 잊지말 것은 언제나 선의를 가지고 연설, 강의해야 합니다. 어떤 견해에 대해 반대할 때 조차도 논쟁상대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는 찬사를 나타내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발표하고 묻고 답하는 방식의 방법의 장점은 교육에서 형식주의 적이거나 편협한 낡은 방법을 철저히 없애고 교육을 내실있게 조직함으로서 하나를 배워도 똑바로 배워 체득하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설사 발표회에 출연한 사람이 주제를 따로 외워 가지고 줄줄 내리 엮는다고 하더라도 보충질문을 통하여 그 약점이 드러나게 되며 청중앞에서 더는 통하지 않게 되고 배겨나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여지껏 대중문예단체에서 서로 이해하고 칭찬을 중심으로 살려주던 방식보다는 매우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ㄷ.대화로 하는 방법
대화는 예술로서의 역할 뿐아니라 교육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합니다.단체에 많이 오시는 아주머니들이 일상적인 수다로 시작해서 의미심장한 사회정치적 결론에 다다르는 것을 보며 대화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대화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와 상황입니다. 대화가 이루어 지는곳이 술집인가?찻집인가? 전시장인가? 서점인가? 영화관인가?에 따라 처음 시작되는 화제가 달라지며 교육적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도 다릅니다.그래서 교육하는 사람이 자기 분위기로 잘 끌어갈 수 있는 장소 몇군데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는 물흐르듯이 정서와 분위기를 타는게 당연히 좋지만 일정한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적용할 때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런 분위기도 좋지만 목적있는 자연스런 분위기는 더욱 좋습니다. 왜냐하면 뭔가 얻는 것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투박함과 조급함이 문제지 목적성이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대화로 교육한다고 해서 항상 상대가 뭔가 질문하기만을 기다린다든지 가르쳐 줄것만을 염두에 두는 것처럼 어색한 것은 없습니다.대화가 교육적 기능을 갖는 것이지 대화 자체가 교육은 아닙니다. 즉 대화는 본질상 자기 얘길 하는 것이지 누굴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가 발견되고 그래서 상대의 의견을 정확히 알기 위해 질문과 대답이 있는 것이기에 토론 논쟁과는 그 형식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이해만 정확히 한다면 우리는 모든 생활을 학습과정으로 전환 시킬수 있으며, 짬만나면 학습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관점을 가져야 대화법을 어디서나 널리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 유명한 철학자들의 ‘대화편’처럼 우리의 대화가 곧 예술과 인생의 지침이 되는 상상도 한 번 해봅시다.
ㄹ.개별적으로 교육하는 방법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도 다르고,조건도 다릅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만 교육이 진행되면 반드시 뒤쳐지는 사람이 생기고 쉽게 포기 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취미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하는 문예교육에서는 ‘내가 이걸루 밥벌어 먹을것도 아니고’하는 체념이 쉽게 생겨납니다.그러나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이 있는 대부분의 대중문예단체 회원들은 신동형이기 보다는 대기만성형에 가깝습니다. 저는 풍물교사였다가 지금은 사진으로 그 대상을 바꿨는데 제가 처음 풍물강습을 했던 분들은 지금까지도 우여곡절을 딛고 여전히 풍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기량의 습득 속도는 여전히 더디지만 풍물의 맛을 낼 줄알고 맛으로 칠려고 합니다.앞으로도 이분들은 평생동안 풍물하리란 확신이 듭니다. 그런 신념이 어디에서 나올까 궁금했는데 풍물강습이 이루지지 않고 있었던 시기에 그분들은 한결 같이 독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채록을 하고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평생문예교육을 책임질 교육 기관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회원들을 여기저기로 내돌린꼴이 되어서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문예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지 않고 발전시키려는 근로민중의 문예에 대한 높은 주인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어쨌든 이분들이 계속 풍물을 잡고 있을수 있었던 것은 각각의 수준에 맞게 자기 활동과 교육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목적의식적으로 수준높은 회원들이 수준낮은 회원들의 문예학습을 일상적으로 도와주는 역할분담을 짜고 조직적으로 총화를 하는 체계를 짜야겠습니다.소련의 교육학자인 그루프 스카야가 지적한바와 같이 사람의 개성은 집단에서만 가장 완전하게 또 전면적으로 발전할수 있습니다.서로 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방법이기에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치는 신명이 나야합니다.그래서 문예교사는 지도하는 회원에게도 나름대로의 학습과제를 주고 끊임없이 발전되도록 위에서 도와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지도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의 개병적인 특성에 대해 다음항목을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의력의 발전 정도,교육중의 태도와 행동의 적극성
-내용에 대한 열성정도.
-교편물과 말에 대한 지각의 속도와 정확성
-교재의 이해와 사고의 성격(특히 자립적사고를 요구하는 숙제의 수행정도)
-지식의 질과 일반적 발전 수준 발표능력등
-배우는 사람이 지난날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
등을 조건에 맞게 차분차분 이해해야 개별지도를 통해 회원간의 단결력과 생각의 통일이 강화됩니다.
ㅁ.모범을 따라 배우는 법
모범을 따라배우는 법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을 통해 교육하는 방법입니다.백가지의 부정적 사례를 아는 것 보다 한가지의 긍정적 사례를 아는 게 사람을 더 힘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좋은 모범을 만들고 그 사업방법이나 경험을 직접보고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모범을 창조하는데서 중요한 것은 문예정책의 요구에 맞게 문제를 똑바로 설정하고 시범단위를 잘 선택 하는 것입니다. 시범단위에서 취급되는 문제는 문예정책을 실현해 나가는데서 제기된 가치있고 긴절한 문제여야 합니다.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모임이나 조직도 문예교육사업에서 회원들을 교육하는데 실천적 의의가 있는 대상으로 선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사업의 핵을 만들어 내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곧 새로운 훈련된 교사가 되어야 하며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들에게 교양이 되고 본보기가 되도록 준비 되어야합니다.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ㅂ.창작을 통해 배우는법
창작자체가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습니다.
여전히 강조 되어야 할 것은 창작 신비주의를 깨자는 것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걸작주의 또한 깨야할 요소 입니다. 갈고 닦아진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딘가에 쳐박혀서 명상을 하며 몸부림 쳐야지만 창작이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진정한 대작이 나오기 위해서도 대중속에서 호흡하며 대중이 당면한문제를 스스로 풀어가는 방식을 터득하는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중적 대작을 만드는 방법일 것입니다. 노가바는 그래서 여전히 중요합니다.수많은 파업과 농성의 현장에서 노가바와 그림놀이와 촌극등이 없었다면 분임토의 내용발표는 건조할뿐아니라 한 번 발표되고 잊혀졌을것이며, 포복절도하면서도 묵직히 결의를 다지는 그런 생생한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결과 우리는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우리식의 노동운동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가바의 가사에 곡을붙여 노동가를 만들었고,그림놀이로 만평과 걸개그림을 만들었으며,현장촌극의 내용을 바탕으로 파업전야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전문창작자들이 절대 왜면해선 안될 것입니다.
ㅅ.일하며 배우는 방법
배운것을 실천해보는 것만큼 확실히 배우는 것은 없습니다.그래서 문예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필연적으로 창작을 하고 싶어지고,문예교사가 되고 싶어지고 비평가가 되고 싶어지며,조직 경영자가 되고 싶어집니다.즉 이일을 자기의 직업으로 까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예술문화사업을 자기 직업으로 삼고자하는 것은 문예교육발전의 필연적 요구입니다.일하며 배우는 것은 교육과 현실을 정확히 결합 시켜주고,예술적 생산과 떨어지지않고 우리의 문예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일하면서 배우는 체계를 잘 세우기 위해 질적인 고민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쓸모있는 산지식은 책에 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일과 창조적 노동속에 있습니다.일하면서 배우는방식이 참된지식을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것은 우선,이미 배운지식을 공고히 다질뿐 아니라 그것을 자기 일에 쓸모있고 값어치 있는 산지식으로 바꿔 내기 때문입니다.그뿐아니라 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치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새지식 창조적인 지식을 얻게 됩니다.원래 사람의 머리는 이미 배운지식을 직접 써보고 제기된 문제를 자기힘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확 트이며 실사구시의 창조적 능력도 쑥쑥 성장하게 됩니다.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업과 임무를 추진력있게 수행할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이 정도가 되면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배우로 일할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예술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될것입니다.
일하면서 배우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사업에 정통하는 것입니다.자기일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통해서 배울뿐아니라 사례발표회,강습,기능전수등 실천적인 기술과 지식을 체계있게 습득해 나가야 합니다. 서울의 동부문화센타나 부산의 남산골 놀이마당 같은데는 빚을 내서라도 사람을 여기저기 내보내 가르치는데 이는 모범으로 배울만 합니다.우리식의 전문가를 만들기란 생각처럼 만만한 사업이 아닙니다.
ㅇ.대중속에서 배우는법
배움의 왕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중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대중은 교사의 선생이며 백과사전입니다. 대중의 지혜만큼 총명한 지혜가 없으며 대중의 지식만큼 정확한 지식은 없습니다. 옛부터 어떤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는 말은 딱 하나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제가 단체에서 일할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까 고민하면서 여러책도 보고 말도 들었지만 “우물을 깊게 팔려면 넓게 파라”는 속담만큼 와 닿은 것이 없었습니다. 몸살 앓듯 고민하고,몸으로 체험하지 않고서야 어디 이런 말이 나올수나 있겟습니까? 쇠를 녹이는것도 대중이고, 시와 노래를 지어내는 것도 대중입니다. 대중에게는 자연과 사회를 개척해 나가는 풍부한 지식과 기술이 있으며, 끝없이 새것을 차조해내는 슬기와 능력이 있습니다.또 5천년을 내려오면서 모든 재부를 창조해온 경험이 있습니다. 새로운 예술문화를 건설하는데서 생기는 문제가 무엇이지를 가장 잘 아는것도 대중이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인지를 아는것도 대중입니다.그러므로 예술에 대한 생생한 지식을 얻으려고해도 대중속에 들어가야하고 예술문화를 완성시키려고 해도 대중속에 들어가야합니다.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자기가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을 꺼리낌없이 묻고 허심하게 배워야 합니다.또 대중에게 물어서 자기 지식의 진리성 여부를 검증해야하며 더욱 심화 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