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까지의기록
이시우사진작가 전시회및 기타일정 [4] 대책위 2007/07/19 1382
■ 이시우사진작가 사진전 및 기타일정
- 7월 22일(일) 임진각 평화의 달(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외)
- 7월 23일(월) 국가보안법 가족문화제(오후4시,국회 헌정기념관)
- 7월 23일(월) ~ 7월27일(금) 마산,창원,진해 순회전시회(경남진보연합(준))
- 7월 26일(목) 이시우사진작가 3차 재판
- 7월 26일(목) 충남 홍성(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 정동석외)
- 7월 27일(금) 강화도 외포리 한강하구의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비폭력평화물결외)
[펌] 정전협정 54주년 맞아 강화도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고려산 2007/07/30 1265
“한강을 평화의 강으로, 한강하구를 생명평화지대로”
세번째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열려
“우리의 미래는 어머니 한강이 살아남에 달려있다.”
“한강하구, 조강에 연둣빛 평화의 물결이 넘실대게 하자.”
“평화의 배띄우기로 인류화해의 길을 열어 가자.”
27일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에서는 정전 54주년을 맞아 2005년과 2006년에 이어 세번째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김포·인천·강화 ·고양서울지역의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오후 3시 30분경 외포리와 오후 4시경 창후리 포구를 각각 출발한 평화의 배는 북쪽을 향해 올라가 창후리 어로한계선 북방 800미터 지점에 도달해 ‘평화의 깃 발 휘날리며’라는 선상행사를 갖고 각각 외포리와 창후리 항구로 회항했다. 항해 도중 평화의 배 안에서는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발언과 음악공연, 시 낭독 등이 공연됐고, 평화의 갈잎배 만들어 띄우기, 평화의 노래 함께 하기 등의 이벤트와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박종렬 한강하구 평화의 배띄우기 공동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6.15 선언 이후의 화해와 평화의 새 기운을 통해 막혀 고립된 한강하구를 열어 화해상생의 문명 을 흐르게 하고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잉태하기 위해 비폭력 평화의 물결의 파도를 타고 나갈 평화의 배를 우리가 함께 띄운다”며 “이제는 ▲정전협정이 평 화협정으로 ▲분단의 한강이 평화의 강으로 ▲한강하구지역이 남북화해교류와 생태평화지역으로 ▲이 생명평화의 물결이 지구상의 갈등지역으로 서로가 얼싸안고 평화의 춤을 추며 나아가는 신명의 역사를 출항시키자”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전 식전행사로 외포리에서는 ▲드럼서클 ▲이시우 사진전 ▲퍼즐맞추기 ▲목판도장 찍어주기 ▲평화타일 만들기 ▲천연염색 및 나 무목걸이 만들기 ▲평화나눔 떡메치기 등 평화공동한마당 ‘평화의 울림’이란 제목의 문화행사와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했다.
행사 참가자 일동은 김영애·김정택·박성준·박종렬·석지관·진봉수·최태봉 공동대표들이 낭독한 ‘우리의 다짐 ’을 통해 “▲남북과 UN이 공동참여하는 평화관리위원회의 설치 ▲한강하구를 실향민의 아픔이 치유되고 미래세대와 뭇 생명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역으 로 조성할 것 ▲한강하구를 둘러싼 수많은 개발정책에 대한 정당성과 효율성, 지속가능성을 일관성있게 검토할 당사자·전문가·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강하 구정책협의회를 시급히 구성할 것 ▲남북주민들이 직접 인적·물적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교류의 다변화와 지역화를 제안 및 촉구하고 ▲한강하구가 생명평화지 대로 설정돼 동북아 인류의 평화에 공헌할 수 있도록 인류의 보편가치인 생명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 공동대표들이 ‘우리의 다짐’을 낭독하고 있다.
▲ 실향민이 한강 건너 고향 연배 땅을 가리키며 통일의 당위성을 얘기하고 있다.
▲ 참가한 어린이들이 만든 평화타일
김포뉴스 / 강재석 기자
선식22일째^^성금모금현황(2) – 7/6 이후 [1] 김은옥 2007/08/01 1125
7.10 민노당(광진)
문화연대(20)
7.17 조영민
7. 18 인사동 ‘평화박물관’전시회때
책 판매대금(200)
7.19 평화의 물
7.20 사단법인(대전)
다함께(서경석)-고려대 ’2007 맑시즘’행사때
책판매성금외 다함께에서 정성껏 모아주신
성금은 ‘한총련’수배자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7.23 사회포럼(황순원)
개척자들
김삼옥
7.24 가족문화제때 책판매 성금은
‘양심수 후원회’로 기증합니다.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행사 때
책판매대금
이상 입니다.
강화 후원회 통장은 아직 확인전입니다.
확인되는대로 추가 하여 올리도록 하겟습니다.
<<지출 현황>>
창작과 비평사 ; 1,560,000원 (민통선평화기행 200권값)
인간사랑 ; 1,300,000원 (비무장지대의사색 200권값)
김은옥생활비 ; 1,000,000원 (7,8월)
변호사비 현재 ; 4,000,000원
현재잔액 ; 3,000,000원 정도가 있습니다.
김은옥 [2007/07/31] :: [강화 후원회통장] 7.23 고려산
사진가들의 서명운동 확산 [1] 김은옥 2007/07/31 1599
이. 시. 우
-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이시우인지도 모릅니다 -
그는 사진가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시대의 그늘과 상처를 정면에서 바라본 것이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필름과 수첩에 담아 세상과 대화하려 했던 것이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거대한 폭력에 맞서려 했던 것이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그것이 정녕 죄일까요?
사진가 이시우가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의 필름들은 압수되어, 국가보안법이라는 ‘고무줄 자’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의 삶과 영혼이, 그가 말하고 표현했던 모든 것이 심판대 위에 올려 있습니다.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는 그의 책 ‘민통선 평화기행’을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하고, 외국어 번역과 전시를 추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안당국은 이러한 그의 책을 ‘이적표현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몰상식’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는데 놀라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건이 “이 시대의 위기를 예고하는 사건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의 우려를 우리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시우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시우의 모든 표현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시우의 생각과 표현을 억누르는 모든 억압에 반대합니다. 그의 몸과 마음을 철창에 가두기보다는 그와 마주하며 토론하고 함께 해야 할 일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사진가 이시우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그를 우리사회의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그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기보다 마음껏 펼치게 해 주십시오. 생각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눌렀던 권력의 말로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잊지 말아 주십시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이시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사진가 이시우의 석방을 단호하게 촉구합니다.
ㄱ
강병욱(월간 사진예술 디자인실장)
강재훈(사진가, 전 한겨레 사진부장)
강제욱(사진가)
강창광(한겨레 사진기자)
곽명우(사진가)
구경우(사진가)
권영삼(사진가)
권우성(오마이뉴스 사진팀장)
권철(사진가, 일본)
김대식(사진가)
김미선(사진가, 또하나의문화)
김봉규(한겨레 사진기자)
김석환(사진가)
김영식(학생, 대학생다큐연합 회장)
김윤섭(사진가)
김오달(사진가)
김재일(사진가)
김종수(한겨레 사진기자)
김주예(사진가)
김주원(사진가)
김지연(사진가)
김진석(여의도통신 사진기자)
김태현(사진비평)
김태형(한겨레 사진기자)
김현호(사진가, 퍼슨웹 편집장)
김홍희(사진가)
김흥구(사진가)
ㄴ, ㅁ
남경숙(사진가)
노순택(사진가)
노익상(사진가)
마틴 파(사진가, 영국)
목진영
ㅂ
박규진
박근태(사진가)
박김형준(사진가)
박노해(시인, 사진가)
박미향(한겨레 사진기자)
박덕수(사진가)
박세진(사진가)
박시영(사진가)
박영민
박영숙(사진가,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재순(사진가, 활동가)
박정민(사진가)
박종우(사진가)
박평종(사진평론가)
박하선(사진가)
박항구(사진가)
백경운(사진가)
ㅅ
석재현(사진가)
성남훈(사진가, 전주대 겸임교수)
손승현(사진가)
송수정(사진디렉터, 전 월간 <지오> 편집장)
신소영(한겨레 사진기자)
신장호(사진가)
심환근(사진가, 시몽포토에이전시 대표)
ㅇ
안유진(사진가)
안창규
안창한(사진인)
양혜리(학생)
엄효용(사진가)
염중호(사진가, 구름프로젝트 대표)
오대일(노컷뉴스 사진기자)
유 수(민족21 사진기자)
육영혜(월간 포토넷 편집장)
윤경욱(사진가)
윤성진(사진가)
윤운식(한겨레 사진기자)
윤종현(사진가)
이갑철(사진가)
이경수(사진가)
이규철(사진가, 아자포토 대표)
이기태(사진가)
이명국(학생)
이상엽(사진가, 이미지프레스 대표)
이상현(사진가)
이성은(사진가)
이용태(학생)
이윤환(사진가)
이인호(사진가)
이재각(학생)
이재갑(사진가)
이정아(한겨레 사진기자)
이정우(한겨레 사진기자)
이정환(사진가, 한국독서교육신문 편집장)
이종호(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종화(월간사진 기자)
이종훈(사진가)
이 진(사진가)
이진우(사진가)
이창길(미디어오늘 사진기자)
이창준(사진가)
이치열(사진가)
이홍석(사진가)
이흥렬(사진가, 남서울대학교 겸임교수)
임영균(사진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임재천(사진가)
임정현(문화일보 사진기자)
임종선(사진가)
임종진(사진가)
Area. Park(사진가)
ㅈ
장공순(사진가)
장규봉(사진가)
장대군(사진가)
장주희
장철규(한겨레 사진기자)
전인식(사진가)
정규현(사진가)
정동재
정유석(사진가)
정은정(월간 포토넷 기자)
정택용(민중의 소리 사진기자)
조경국(사진가)
조대연(사진가, 광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조태종(사진가)
조현지(사진가, 활동가)
진동선(사진평론가)
ㅊ,ㅎ
채승우(조선일보 사진기자)
채희윤(사진가)
최성운(사진가)
최연하(전시기획자, 환경재단 큐레이터)
최윤석(사진가)
최항영(사진가)
최현주(사진가)
하지윤(사진가)
한금선(사진가)
한승호(여의도통신 사진기자)
한용덕
한재호(사진가)
화덕헌(사진가)
허성진(헤드라인뉴스 사진기자)
허태주(사진가)
황승해(사진가)
- 2007년 7월 18일 현재까지 사진인 133명 서명
* 이 서명작업이 재판과정에서 참작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명확한 정체성(?)의 명기가 필요합니다. 댓글을 통해 서명에 참여해주시는 사진인 여러분, 이름과 함께, 하시는 일과 소속 직위도 함께 명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큐 위 정유석씨도 사진가입니다. 자주 봤죠. 성남훈씨 후배로 강남 스튜디오 운영하는 머리 긴 멋진 친구. 05/31 00:22
다큐 아 경욱이도 역시 사진가. 박규진씨는 뭐라해야 하나? 퇴역 군인은 좀, 그렇고 사진가들의 친구… ^^
정동재씨만 잘 모르겠군. 05/31 00:24
푸르스트 개인적인 일로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곳에 시선을 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흥구 (사진가) 06/01 00:03
김현호 함께하겠습니다. 김현호(사진가, 웹진<퍼슨웹>편집장) 라고 합니다. 06/01 11:29
mipaseok 전부터 사진과 책으로 도움을 많이 얻었으면서, 늦었습니다. 동참하고 싶습니다. 정택용 (사진가) 06/01 13:09
기피울 누가 그를 용공분자 라 하는가? 내가 아는 이시우 는 순수한 사진가 이기을 바랬다 .함께 하겠읍니다 06/02 14:35
기피울 제 이름은 이종훈(사진가)입니다. 06/02 14:43
yoosoophoto 민족21 유수입니다. 이전에 이미지프레스를 보고 메일을 보넸는데 잘 안 갔나봅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06/03 00:12
다큐 김홍희 선생과 사진집단 일우에게도 도움 요청했습니다. 좋은 결과 있을 듯 합니다. 수고! 06/04 00:36
김홍희 사진가 김홍희 입니다.
저와 사진 집단 일우도 적극 참여 할 것 입니다.
06/04 02:39
심금 사진가 김석환, 사진집단 [일우]서울지역 회장입니다. 서울지역 회원들의 동참을 약속드립니다. 06/04 08:36
한벌 사진집단 일우에서 왔습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자영업 채희윤..부산입니다.. 06/04 08:41
구비 부산일우 장규봉입니다. 석방활동에 동참합니다.
작은 정성이 힘을 얻는데 도움이 되셨으면합니다. 전 회사원입니다. 06/04 09:07
김주원 일우의 사진가 김주원입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빠른 석방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06/04 10:35
카피최 일우 사진가 최현주,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4 10:46
비너스 사진집단 일우의 사진가 구경우, 석방활동에 동참합니다.
힘내시고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4 10:49
이윤환 일우의 이윤환입니다.
석방의 그날까지 같이 한걸음 내딛겠습니다~ 아~자!! 06/04 11:48
jayousiwoo 와 진짜로 멋지다 일우!!! 다시한번 불러봅니다. 김홍희 김석환 채희윤 장규봉 김주원 최현주 구경우 이윤환!!!
06/04 12:37
jayousiwoo 느슨님 명단 추가해주셔요 조선일보 채승우기자님 서명하셨습니다 06/04 12:38
햇살 일우 사진가 최성운 함께 합니다
힘내시고 빠른 석방 기원합니다 06/04 12:53
wskwon21 오마이뉴스 사진팀 권우성입니다. 국보법 이제 그만 사라질 때도 된 것은데… 참 찔깁니다. 힘내세요. 06/04 13:18
긴 여행 일우의 김주예 입니다.
좋은 결과 기원합니다. 06/04 13:47
작은악마 일우 사진가 박덕수 입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빠른석방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힘내시고 또 힘을 내십시요.! 06/04 14:26
jayousiwoo 또 하나의 문화 사무국장 김미선님 동참하십니다 사진가이시기도 합니다 06/04 15:49
보리 일우 커뮤니티 회원, 아마추어사진가, 이인호. 동참합니다. 힘 내십시오. 06/04 16:54
theos5256 문화일보 임정현입니다.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니 황당하기만 합니다. 건강히 빠른 석방을 위해 모두 애씁시다. 06/04 17:22
큰배낭 일우 커뮤니티 회원, 백경운 동참합니다. 힘내십시오! 06/04 23:07
허수아비 일우의 권영삼입니다.. 이시우님의 건강과 조속한 석방을 기원합니다.
힘 내십시요. 06/05 00:13
jayousiwoo 오마이뉴스의 권우성 기자님. 문화일보 임정현님. 그리고 다시한번 불러봅니다 멋진 일우님들. 최성운.김주예. 박덕수. 이인호.백경운.권영삼님!!! 06/05 01:20
느슨 따뜻한 관심과 참여,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왼쪽상단의 배너도 여러곳에 나누어 주시고, 주변 사진쟁이들께도 함께하자고 권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말하자면, 회원배가 운동인 셈이죠. ^^
자, 자…. 피라미드식으로 퍼져서 1인3회원 배가운동을… 아시죠? ^^ 06/05 09:50
kang64007 월간 사진예술 강병욱 실장입니다. 저도 적극 동참합니다. 이시우님의 빠른 석방 기원합니다.
이시우님 힘내세요. 06/05 13:20
세지니 일우의 박세진 입니다…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5 14:01
씨티 일우 이진우(사진가)입니다. 동참합니다. 06/05 14:23
sowhat2 오마이뉴스 사진팀 이종호 기자입니다. 이시우 님의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5 19:48
최윤석 이시우 님의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사진집단 일우 최윤석 06/05 23:14
콩 일우, 전인식(사진가) 입니다. 이시우님의 건강과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6 02:08
미친박군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사진집단 일우 박근태 06/06 02:59
아자 일우의 하지윤입니다. 동참합니다 06/06 11:17
hearock77 일우에서 보고 왔습니다..조태종이라고 합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이시우님의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06/06 17:29
negat30 ‘작은 조각배’에 늦게 올라탑니다. 동참합니다. 허태주(사진가) 06/06 22:46
빠다 일우 커뮤니티 회원 김재일(회사원, 아마추어 사진가)입니다. 이시우님의 건강과 빠른 석방,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실 날을 기원합니다. 06/07 10:37
수다렉스 여럿 매체에서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빠른 석방을 기원합니다. (일우 커뮤티티 회원 이창준) 06/07 14:15
다큐 와우! 월요일에 요청한 것이 이렇게 까지… 좀 무섭다 ^^;; 06/08 03:20
오프러브 동참합니다.일우 사진가 윤종현입니다. 06/10 00:18
이상현 일우 사진가 이상현입니다 동참하겠습니다 06/10 19:09
시영이 줌인세상에 박시영 입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06/11 02:08
photo774 월간사진 이종화 기자입니다. 늦었습니다. 이곳에 의견을 남긴 많은 분들과 아직 몰라 동참하지 못한 더 많은 분들과 뜻을 같이 합니다. 석방되는 날까지 하루 한번씩은 되새기고 고민토록 하겠습니다. 06/12 11:34
느슨 사진평론가 진동선, 사진가 박하선, 손승현 님도 동참의 뜻을 밝혀 주셨습니다. 06/12 17:48
느슨 사진가 이갑철 선배께서도 동참의사를 밝혀주셨고요…. 06/12 21:15
사진기계 박진영입니다. 서명에 동참합니다. 06/13 08:29
느슨 사진가 김대식 님 동참의사 밝혀주셨습니다. 06/13 12:00
노마드 사진가이자 언론인으로서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고 계신 이시우님의 석방과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촉구하는 여러분들의 뜻에 적극 동참합니다. – 미디어오늘 이창길 기자 06/13 13:51
김오달 김오달 (사진기자) 동참합니다 06/13 17:50
why_kali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몽둥이를 들고 대추리 들녘을 누비는 ‘군경’의 사진을 ‘인터넷 매체’에 올린 적이 있는 잠재적 국보법 위반자 한재호입니다. 이시우님의 석방을 촉구합니다.
06/13 20:41
느슨 한겨레 박미향 기자께서 동참의사 밝혀주셨습니다. 06/14 11:59
한판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입니다. 지난 2005년 여름, 이시우 선배님과 휴전선 155마일 기행을 함께하며 민통선을 들락날락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한 쪽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메고요… 이시우 선배님의 투쟁을 지지하며 건강과 조속한 석방을 촉구합니다. “진심은 통하고, 결국 진실이 승리합니다.” 06/14 13:14
zootaa 이것 저것 여러 가지 하면서 사는 김태현입니다. 서명은 여기다 하는건가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06/14 17:20
truth710 한겨레 사진부로부터 윤운식, 김봉규, 신소영, 강창광 사진기자 동참연락왔습니다. 한겨레 사진부에서는 석방대책위에 전 사진기자명단작성해서 제출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06/15 11:16
한판 박항구 동참합니다. 속히 석방되시어 현장에서 뵙기를…간절히 바랍니다. 06/15 15:16
느슨 한겨레 사진부 이정우, 장철규, 김종수, 김태형, 이정아 님께서 서명에 동참하셨습니다. 06/18 17:16
니오타니 사진을 배우는 학생입니다. 서명에 동참합니다. 이명국 06/18 21:22
jayousiwoo 108인 서명!!!
1948년의 남북회담 지지를 위한 문화인 서명도 108인이었는데…
멋진 숫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시우 작가 평화박물관에서 사진전 오픈시 발표하면 어떨까요?
느슨님이 사진잡지 광고를 위해 만든 기본안에 108인 서명자 추가해서,
보내주시면 제가 프린트 해가지고 가겠습니다 06/20 11:10
jayousiwoo 발표에 부담가지지 마시고 서명받는 곳 한편에 놓아도 좋을 듯합니다
방문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되면 두어깨에 힘이 솟지 않을까 합니다 06/20 11:12
영욱아빠 여의도통신 사진기자 김진석입니다. 늦게 서명하게되서 죄송합니다. 건강한 몸으로 우리곁으로 돌아오기 기원합니다. 여의도통신에서는 의견광고를 무료로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꾸벅 06/22 12:40
또봐 일우소속의 남경숙입니다.
빠른 석방과 건겅 기도드립니다.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06/28 01:04
나비잠 일우 서울 14기 이진입니다
건강과 빠른 석방 바랍니다. 힘내세요 06/28 10:46
사진세계 일우에서 소식듣고 넘어왔습니다. 아마추어 사진가 윤성진입니다. 서명에 동참합니다 06/29 17:42
고비아 사진집단 일우의 신장호입니다. 아직도 한 사람의 생각을 법의 잣대로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함께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힘내시고
건강지키시기를 기원합니다. 06/30 00:47
대방 동참합니다.
이정환(사진가/한국독서교육신문 편집장) 06/30 08:46
kyuongsu 이경수입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하루 빨리 석방되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서명에 동참합니다. 06/30 11:39
아스피린™ 저도 동참합니다. 한용덕. 어서빨리 이시우님이 석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06/30 12:53
놀이 동참합니다.
박영민. 하루 빨리 석방 되시길 기원합니다. 06/30 13:53
느슨 광주대 사진영상학과 조대연 선생님께서 참여의사를 밝혀 주셨습니다. 07/01 10:52
keo1984 이시우작가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편의 일로 너무도 많은 분들께 폐를끼쳐 어찌해야 할지 정말 고맙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는제가 정말 싫습니다. 그런데, 아직 다른 방법을 못찾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07/03 15:11
유랑단자 동참하고자 합니다. 상식의 승리를 희망합니다. 박정민(사진가, 시몽포토에이전시 소속)이라고 합니다. 07/05 20:01
polo2972 늦었지만 동참합니다. 하루 빨리 석방되시길 바랍니다. 허성진(헤드라인뉴스 사진기자) 07/06 09:50
느슨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법이라는 옛말을 떠올립니다. 이시우를 바로 보려는 모든 시선이 소중합니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려는 모든 참여가 소중합니다. Better late than never !!! 07/06 11:17
jayousiwoo 천천히 모아지는 우리의 힘입니다
07/08 23:40
안창한 사진인 안창한입니다. 요즘도 이런 일이 있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이시우님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합니다. 07/09 00:38
dioplus ‘가장 아픈 상처를 가장 아름답게 찍는다’…꼬박 5년 전 한 강연에서 뵈었던 이시우 선배님의 푸근한 외모와 단호한 음성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노컷뉴스 사진팀 오대일) 07/09 01:44
목진영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될런지요…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07/09 11:13
안창규 이시우 작가의 빠른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 서명합니다….안창규 (전주 다큐 워크샵 참가자입니다.) 07/09 12:39
황승해 늦었습니다….미약한 힘이지만 함께하겠습니다….황승해 (전주 다큐 워크샵 참가자입니다.) 07/09 18:37
jayousiwoo 멋지십니다 다큐멘터리 워크샵 팀들!!!
안창한 목진영 안창규 황승해… 함께 가는길 행복합니다 07/11 00:32
주희 동참합니다. 장주희. 다큐멘터리 워크샵 멤버
/ 작디작은 제가 도움이나 될까라는 생각에 차일피일미뤄왔더랬는데..
함께하는 마음을 전하는것부터가 먼저인것 같아 늦게지만.. 동참의사를 밝힙니다. 07/13 20:29
swswswa 아직 사진가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고자 노력하고있는
이용태(학생) 입니다 늦었지만 이렇게 동참합니다 07/14 10:59
느슨 여성사진가의 길을 개척하신 분이자, 트렁크 갤러리 대표이신 박영숙 선생님께서도 서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07/15 08:07
이홍석 사진가 이홍석입니다. 이시우님의 빠른 석방을 촉구하며 이 시대의 지성과 예술에 충격을 던져준 국가보안법의 맹랑함에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끝까지 눈과 귀를 열고 함께 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07/16 13:12
포토리 사진가 이흥렬입니다.
서명에 동참합니다. 빠른 석방을 촉구합니다. (포토그룹 대표, 남서울대학교 겸임) 07/16 16:09
냥냥 양혜리입니다. 다큐멘터리 워크샵 함께 했고요. 학생으로 공부중에 있습니다. 작지만 큰 마음으로 동참합니다. 07/17 12:31
뷰화인더 분단된 고성군의 남쪽에서 삽니다.
저 또한 시린 풍경들을 좋아하는 사진가입니다…
108인 용기있는 멋진 분들이었죠. 함께 동참합니다…. 07/24 22:17
keo1984 여러분들의 힘이 모아져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07/31 13:29
박성은 [2007/08/06] ::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진담당자 박성은입니다.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시우님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날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선식30일째^^낼 5차 공판 있는 날입니다 [1] 김은옥 2007/08/08 1174
5차 공판에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펌]반전.평화운동가 이시우와 한국 사법부의 고민-참말로 김은옥 2007/08/18 1424
http://www.chammalo.com/sub_read.html?uid=7741§ion=section1
치열한 작가정신의 수난시대
반전 평화 운동가 이시우와 한국 사법부의 고민
김제영 기자
인류의 행복 실현을 위한 이상주의적 반전 평화운동과 인류가 지구상에 잔존할 수 있느냐, 지구와 함께 영영 우주공간에서 사라지느냐의 위급한 상황에서 전쟁을 막으려는 안간힘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오늘의 반전 평화운동은 과거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전쟁의 빈도와 온실가스 상승은 정비례한다. 지구의 수몰을 촉구하는 게 전쟁이다.
KBS는 이제야 해변 도시의 수몰을 그리고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진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뉴스 시간 사이사이에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무기 장사꾼들은 어느 개가 짖느냐이다. 맷돌을 돌릴 때마다 쏟아지는 금화에 황홀한 나머지 ‘돈 나와라 돈 나와라’ 주문을 외우다가 금화에 묻혀 숨이 끊기는 그러한 어리석음이 군수산업의 본질이다.
2007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는 일면 머리기사로 ‘한국 美 무기 구매 더 쉽게’라는 제목으로 미국 공화당 미주리 출신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이 더 많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한미 군사협력 개선 법안을 지난달 23일 미 의회에 제출했음을 기사로 다루면서 “…….법안 제출자인 본드 의원은 지역구에 보잉사의 군수 부문 공장이 위치한 탓에 한국을 자주 방문했던 인물이다. 그동안 보잉사는 한국에 F-15K전투기 40대를 판매해 왔고 2006년 2조 원대의 조기경보기(EX) 사업자로 선정됐다. 법안의 제안 설명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산 무기를 69억 달러 어치 구매한 5대 무기 구매국이다.”라고 밝혔다.
시인이요, 사진작가요, 해박한 군사문제 지식인이요, 반전평화운동가인 이시우는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한국에 언론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의 메이저 신문은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고 있다.
모 여인의 머리모양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느니, 모씨가 즐기는 음식 메뉴는 어떻다느니 등 뒤쫓아 다루면서도 문화관광부가 우수도서로 선정 독일 출판물 전시에서 세계인의 절찬을 받은 바 있는 한국의 자랑인 이시우를 한국 사법부가 가두었음은 문화관광부에 대한 지독한 모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은 유명인의 머리모양이나 기호 음식보다는 보도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 일언반구도 없다.(몇몇 신문의 구속사실의 기사를 내보냈을 뿐.)
하지만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이시우의 저서<민통선 평화이야기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은 불티나듯 팔리고 있으니 이시우를 사랑하는 그의 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분노하고 있다. 이시우를 가둔 자들을 저주하고 싶도록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피고의 모두 진술 재판 때에 깊숙이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검사의 모습이 처절하도록 아름다웠다.
‘왜 우리가 재능 있는 예술인의 예술작업을 막기 위해 인신까지 구속해가면서 외국(미국)의 세계군사전략기지 보호에 관여해야 하는가…’
한숨지으며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판부에 넘기기는 했어도 분명한 기소 이유를 천명할 수 없는 법률적용의 현실적 문제가 가슴을 찍어 누르고 있을 것이다.
교육은 학교나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전체가 교육적 환경이다. 요즈음 어린이들의 지각은 20대보다 높다. 모 재벌의 폭행사건은 신문, TV에서 매일 매시 보도되었다. 그의 구속이 정지, 병원으로 모셔졌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한 예술인이 젊음을 다 바쳐 거기에 관한 예술작업을 했을 뿐이다. 그런 이시우의 구속적부심은 기각되었다. 한국사법부가 무슨 낯으로 어린이들에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재판부의 고민 또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시우는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주둔한 UN사 해체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곧 답변을 주마고 약속한 버시바우는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약속을 어겼다. 집요한 이시우의 추궁에 버시바우가 궁리해 낸 도피로가 이시우 구속이 아니었을까….. 내 짐작이다.
세계를 한손에 틀어 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얕잡아 보았던 한국의 시인 이시우이다. 이시우의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직접대면에서 우러난 인간에 대한 긍휼과 지구사랑의 뜨거운 가슴이 까딱했다가는 미국 군수산업의 존폐를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시우의 저서 <민통선 평화이야기>를 읽게 되면 금세 파악이 될 것이다. 세계의 어느 군사 전문가, 군사 평론가보다도 탁월하고 면밀하게 미국의 군사전략을 정확히 해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는 발뒤꿈치를 핥아주는 개보다 짖고 무는 개에게 값을 매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영원히 그대들을 섬기겠노라고 추태를 부릴 때 나약한(얼굴은 백지장 같이 하얗고 피골이 상접한 듯 몸은 말랐다) 한국의 한 예술인은 치열한 예술혼으로 작품을 하여 민족의 명예를 세웠다. 이시우 사건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해결함으로서 한국 사법부가 굴욕적 한미관계에서 지구가족으로서의 우호적이고 평등한 한미관계 위상정립에 기여의 계기가 되기를 합장한다.
강화 휴전선 근처에 사는 이시우는 우연히 지뢰피해자(전쟁 목적이 아니고 미군이 무작위로 버린)를 만나게 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그들의 처참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시우가 지뢰제거에 천착하게 된 동기이다. 그의 저서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에서 몇 작품 뽑아 소개한다. 인적이 끊긴 휴전선에 외로이 미소 짓고 있는 넝쿨꽃 한 송이도 소개한다. 철조망을 닮아가는 넝쿨의 발견은 사진작가로서의 예리한 감각이요 이시우 서정의 진수이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연상케 하는 하늘과 구름의 이동 색채의 변화 그리고 왜소한 지상의 풍경과 인위의 구조물을 통해서 광활한 우주의 신비와 장엄함을 포착한 이시우의 동일계통의 작품을 여러 장 내보냄은 이시우를 구속한 검찰 확보의 국가 보안법 위반 증거 작품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숨은 그림 찾기로 더위를 식히는 셈치고 독자 여러분 이 중의 어느 작품이 국가보안법 위반 작품인지 찾아보십시오.
<김제영 기자(80)는 충남 조치원에 거주하는 원로 소설가이자 미술칼럼리스트이다. 1946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석려'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민국일보 문화부기자, 무용한국 편집고문, 음악저널 편집고문, 미술21 편집고문, 미술세계 객원편집인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아트코리아와 음악저널에서 고정필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소설작품집 '거지발싸개 같은 것'(1981), '라흐마니 노프의 피아노 협주곡'(1990) 등의 저서가 있다. >
선식58일째^^ 8/31현재 성금모금현황^^ [2] 김은옥 2007/09/04 1415
8/6 철원민중연대
8/7 김은주
KYC평화길라
8/8 명동향린
8/9 손세만(한신대민주동문)
8/14 경남진보연합
사단법인대전
8/22 대전퀘커
8/24 홍성평통사
8/25 고려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서울구치소 이시우작가 면회시 영치금이나 책을 넣어주신분들께도 감사인사가 늦었습니다.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9월의 탄원] 대한민국, 이시우씨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한국앰네스 2007/09/07 1820
안녕하세요!!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입니다.
알고계시겠지만 국제앰네스티는 이시우님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구금된 양심수로 규정하고 전세계 앰네스티 회원들을 대상으로한 9월 캠페인사례로 선정하였습니다.
저도 방금 법무부 장관에서 이시우님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과 국가보안법폐지를 요청하는 탄원편지를 작성하고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국제적으로도 모호하고 국제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악법으로 규정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이시우님과 같은 양심수들과 많은 수배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시우님의 석방과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원하는 분들이라면 앰네스티 회원이 아니라고 다함께 이번 탄원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이곳에 올릴려고 했는데, 캠페인 내용을 복사해 올렸더니 뭔가 잘못됬는지 “바른발을 쓰자”는 팝업창이 자꾸 뜨면서 게시판에 글이 올라가지 않네요…
그래서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다음카페와 한국지부 홈피, 그리고 국제앰네스티의 이시우님 탄원 사이트 주소를 올립니다.
이시우님의 석방과 국보법의 폐지를 원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 앰네스티 한국지부 38그룹 카페 :
http://cafe.daum.net/amnesty38
* 앰네스티 한국지부 :
http://www.amnesty.or.kr
* 앰네스티 국제사무국 이시우님 탄원 :
http://web.amnesty.org/appeals/index/kor-010907-wwa-eng
펌]강정구 교수와 사진작가 이시우의 법정 참말로 2007/09/10 1594
강정구 교수와 사진작가 이시우의 법정
더 이상 국가보안법으로 사상 표현의 자유 가둘 수 없다
김제영 기자
모 재벌 전자회사와 해고된 직원 사이에서 발생한 고발 소송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난 직원은 자신을 고발한 회사 측을 무고로 고소했지만 검찰이 재벌사주 봐주기 수사로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 배상소송을 냈다.
본 사건 담당 중앙지법 민사 48단독 최남식 판사는 “원고가 제기한 내용에 대해 소명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의 불성실에 일침을 놓았다.
“법원이 언제까지나 국가의 편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2007.9.3. 한겨레 노현웅 기자. 기사제목 법원 “검찰, 재벌회장 수사 태만 소명해야”)
법 집행의 존엄성을 시사한 좌우명으로 받아들여지는 최남식 판사의 명언이다. 과거 사법부가 최남식 판사의 사려 깊은 지적 자세로 재판에 임했다면 가차 없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살인도구로 제거해 버린 죽산 조봉암(제헌국회 부의장, 초대농림부장관) 사건 조용수(민족일보 사장) 사건, 신향식(민학련) 및 인혁당 사건 등 국가적 범죄를 저질렀을까?
요즘 국내외 정세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일촉즉발의 재앙을 몰고 올 것 같이 이북을 향해 악의 축이니 불량국가니 길길이 날뛰던 부시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원인을 이라크 전 패배, 부시 임기 내 북한의 비핵화 등 세계인의 입방아가 구구하지만 어쨌든 이북의 핵실험이 있고나서 부시진영의 돌변이다.
북미관계의 해빙무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무리가 한나라당이다. 국가보안법을 사수한다는 힘을 과시하여 사법부로 하여금 한국의 지성인을 구속 내지 법적타격을 가하게 하여 민족의 인적자원인 그들의 에너지를 소진케 한 한나라당이 이북에 회유의 손짓을 하며 2005년부터 계획한 당 방침의 대북 정책이란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개성공단을 폐쇄하라,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라, 미국의 PSI(대량살상무지확산방지구상)에 동참하라고 참여정부를 압박한 그들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과 북이 실질적 이해에 도달했음을,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이 성공할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유수한 학자 강정구 교수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국가보안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충복이었던 검사가 강정구 교수에게 실형을 구형하자 방청석에 진을 치고 위협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던 보수진영의 한패들이 일제히 환호의 빛으로 검사에게 달려가 고맙다고 치하하던 진풍경은 (물론 검사는 약간 일그러진 미소로 응답하는 듯 보이며 곧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퇴장했지만) 아마도 내 뇌리에 징그러운 찰거머리처럼 늘어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1948년 말께였던가? 나는 국회 방청석 계단에 앉아서(방청권이 동이나 이승만 대통령의 김종회 비서관의 특별 안내로)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계획을 질타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국방부에 대한 분노의 성토를 들었다. 카이젤 수염의 노일환 의원의 사자후는 상기 내 귓전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자유당 정부는 북진통일을 반대하는 그들( 김약수 이문언 김옥주 노일환 등)을 일괄 이북의 공작원으로 몰아붙였다.
북진통일론 시비의 그 현장을 목도하였기에 나는 단언을 한다. 6.25 전쟁은 이북이 이남을 침공했지만 이남이 먼저 도발한 것이라고. 이와 같이 6.25를 진단하는 견해가 보수진의 욕망(이북이 느닷없이 쳐들어 왔다)대로 일치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의 역사 국제정치학적 역학관계 등 전문적 양식을 갖춘 학자의 학문적 견해는 사법부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 학자들 간에 논의,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몸으로 막아 강정구 교수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한나라당은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는지 묘한 세상이다.
신정아 감싸기로 시민의 눈총을 받고 있는 동국대는 강정구 교수를 단 한 번이라도 감쌌는지, 부당한 사법부의 처사에 대학 당국이 학문의 자유, 학자의 학문적 양심을 유린하는 가장 무식한 폭거라고 항의 한 번 해 보았는지, 동국대가 과연 학문의 상아탑인지 묻고 싶다.
2007.9.3일자 미국의 메이저 신문들은 일제히 「코 빠진 콘디」「스텐퍼드大로 복귀한다고? 제발 꺼져, 라이스!」라며 부시정부의 막강한 국무장관 라이스 콘드라스를 조롱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행정관서에서 대학으로 복귀하려는 이라크전 전범자 라이스를 학생들이 “우리는 한 나라를 통째로 학살한 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거부한 것이다.
강정구 교수에게 실형 3년에 2년 집행유예를 내린 법정과는 전혀 상이한, 다시 말해서 이시우의 법정분위기는 라이스 국무장관을 거부한 스텐퍼드 대학 학생들의 지적 저항의 이미지였다고 할까? 최남식 판사의 법관으로서의 품위라고 할까? 어쨌든 검사가 소장에 언급한 대로 진지하게 속내를 호소하고 싶은 그런 분위기였다. 북미관계의 교류협력체제에 수반된 국내 보수진의 변화도, 그리고 그들이 막무가내로 국가보안법의 파수꾼 역할도 더 이상 지속하지는 못하리라 믿는다.
9월 초 일부 언론에 보도된 <스웨덴에서의 ‘무하마드 만평 사태’>는 예술인의 작업과 인권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7/09/05 [11:05] ⓒ참말로
이시우사진작가 보석허가 결정!! [2] 대책위 2007/09/14 1285
오늘 14일(금) 오전 법원에서 이시우사진작가 보석허가 결정!!
이시우사진작가석방대책위원회에 참가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재판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해주신 문정현신부님과 오두희선생님, 권오헌회장님 그리고 언제나 우리곁에 함께하시는 민가협어머님들, 이시우사진작가의 석방을 위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애쓰셨던 최병모변호사님과 이정희변호사님을 비롯한 공동변호인단 여러분께도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평화운동가 이시우사진작가 석방 환영식 ◆
– 일시 : 2007년 9월 18일(화) 오전11시
– 장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지하철1,2호선 10번출구 100M 우회전)
– 회비 : 1만원(점심식사)
김두현 [2007/09/14] :: 너무 고생했습니다. 석방 환영식때 함께 하지 못해 아쉽네요…
windFlower [2007/09/14] :: 살아있는 시대의 예술가 이시우님 긴시간동안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싸움은 끝난것이 아니지만 나오시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건강을!
[펌: 통일뉴스] 오종렬, 정광훈 대표 보석 석방 – “진보연대, 만난 헤치고 평화통일 세계로 나갈 것”
고려산 2007/09/15 1442
오종렬 “진보연대, 만난 헤치고 평화통일 세계로 나갈 것”
오종렬.정광훈 보석석방, 서울구치소 앞에서 환영식
<2신> 오종렬 “진보연대, 만난 헤치고 평화통일 세계로 나갈 것”
- 정광훈 “진보연대, 남한사회의 희망을 주는 조직으로”
▲ 14일 오후 서울구치소 앞에서 오종렬.정광훈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위원장의 석방 환영식이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여러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한국진보연대는 만난을 헤치고 모든 파도를 헤치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그 검은 파도를 다 헤쳐내고 그리고 피안의 세계, 자주평등의 세계, 평화통일의 세계로 나갈 것입니 다.”
14일 오후 7시 30분경 서울구치소에서 정광훈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과 함께 보석으로 석방된 오종렬 공동준비위원장은 한미FAT범국본과 한국진보연대가 주최한 환영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차량으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온 오종렬.정광훈 공동준비위원장은 서울구치소 앞 대기실에서 몇 시간 먼저 보석 석방된 이시우 사진가를 비롯해 한상렬 공동준비위원장,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 표 등 환영객 30여명과 뜨거운 포웅과 악수를 나눴다.
▲ 두 시간여 앞서 출옥한 이시우 작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오종렬.정광훈 공동준비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오종렬 공동위원장은 “마음 속으로는 감옥에서 한미FTA를 판갈이 해버리려고 그렇게 작심했었다”며 “먼저 나오게 돼서 아직 감옥에 있는 수많은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밖에서 새롭게 투쟁해야겠다”고 인사했다.
오 위원장은 “한미FTA와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농민.농업 퇴출 문제는 이 시대 우리가 안고 갈 최악의 그리고 최고의 짐이다”고 규정하고 “우리는 피터지는 민중의 투쟁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그 자리 에 서서, 조국통일 과업도 자주평등 세상도, 그 자리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한다”고 투쟁의지를 다졌다.
오 위원장은 “이제 대망을 안고 한국진보연대가 드디어 본 조직 출범한다”며 “건강하게 더 힘차게 손 마주잡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호소했다.
▲ 오종렬 공동위원장(가운데)은 출옥 일성으로 한미FTA 저지와 한국진보연대의 발전을 다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광훈 공동위원장은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자고, 대한민국 주권을 지키자고 투쟁한 것인데, 이 사람들이 지금 미국의 요구에 의해서 진행하고 있는 한미FTA, 요게 우리 민중들의 재앙”이라며 “앞 으로 EU도 있고 한미FTA국회 비준으로 공이 넘어갔는데, 요걸 우리가 어떻게 잘 할 것이냐 그게 우리 과제로 남아 있다”고 FTA저지 투쟁에 방점을 찍었다.
정 위원장은 “한국진보연대가 남한사회 변혁운동의 메인 탈렌트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전선체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기층 민중이 주인이 되는 그런 전선체가 되어 멋진 남한사 회의 변혁을, 희망을 주는 조직으로 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에 앞서 한상렬 공동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두분 의장님이 나오시니 너무나 신바람이 난다”며 “한국진보연대 출범이 왔는데, 민주노총이 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여러 아픈 현실속에서 결정적으로 우리 두 분 의장님이 나오심으로써 그야말로 우리 한국진보연대의 서광이 비치고 더 확실하게 역사의 책임지고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여겨진다”고 반겼다.
한 공동위원장은 “그동안에 일해오는 과정에서 정말 두 분이 안 계신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해왔다”며 “두 분과 더불어서 한국진보연대 새로운 깃발로 새롭게 전진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두분 의장님 수고하셨다”고 인사했다.
▲ 오종렬.정광훈 공동위원장의 출옥으로 한국진보연대 출범식이 더욱 힘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이시우 작가. 오종렬, 정광훈, 한상렬 공동위원장. [사진 - 통일 뉴스 김치관 기자]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한.EU FTA 3차 협상을 앞두고 내일 벨기에로 원정을 떠난다”며 “많은 동지들이 한미FTA 반대투쟁와 관련해서 아직도 조사받고, 아직도 소환 대상이 돼 있는, 그리고 발이 묶여있는 이런 상태”라고 말했다.
허 부위원장은 “두 분 대표께서 나오셨으니까 좀더 조직을 추스르고 현장을 조직해서 그야말로 비준 반드시 막아내고 한.EU FTA를 비롯해서 확대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FTA를 막아내 는 투쟁에 항상 앞장서시기를 바란다”며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오늘 석방을 축하드린다”고 인사했다.
두 시간여 먼저 역시 보석으로 출옥한 이시우 사진가는 “밖에서 한창 활동하셔야할 두 의장님을 감옥에서 뵙게 돼 마음 아팠다”며 “밖에서 두분을 만나 너무 기쁘다”고 인사했다.
한충목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간략한 환영식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구호제창으로 마무리됐으며, 오종렬.정광훈 공동준비위원장은 서울 영등포 소재 한국진보연대(준) 사무실로 옮겨 환영의 자리 를 이어갔다.
<1신> 오종렬.정광훈 공동대표, 보석석방… 서울구치소에서 환영식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오종렬, 정광훈 공동대표가 14일 저녁 중 보석으로 석방된다.
7월 3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된지 3개월여 만이다. 공식 출범하는 한국진보연대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 두 대표는 16일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되는 출범식에 모습을 보일수 있게 됐다.
두 대표는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없”는 것으로 법원이 판단해 앞으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된다. 변호인 측은 “보석 허가 결정문에는 없지만, 고령인 것과 건강상태 등을 재판부가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음 공판은 9월 20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한편, 범국본 측은 서울 구치소로 모여 오종렬, 정광훈 공동대표 환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 통일뉴스 / 김치관, 박현범 기자
[펌: 통일뉴스] 이시우 작가 보석 석방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어”
고려산 2007/09/16 3171
이시우 작가 보석 석방, 대책위 18일 석방 환영식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어”
▲ 14일 오후 5시경 이시우 작가가 보 석 석방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나마 이렇게 빨리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힘을 써주신 것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4일 오후 5시경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평화 활동가이자 통일뉴스 전문기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그립던 가족과 지인들의 뜨거운 포옹을 받으며 보석으로 석방됐다.
▲ 부인 김은옥 씨와의 포옹.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1월 강화도 자택과 작업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후해 집을 떠난지 8개월여, 4월 19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검거된 지 5개월여 만에 남편을 품에 안은 부인 김은옥 씨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그러 나 48일간의 생사를 넘나든 단식투쟁과 아직도 복식중인 탓인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은 아직 초췌해보였다. 여느 출소자와 달리 6박스에 달하는 책이 그나마 그의 마음의 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주교인권위 변연식 위원장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 등의 환영을 받으며 출소한 이시우 작가는 서울구치소 인근 식당에서 환담을 나누던 중 한국진보연대(준) 오종렬, 정광훈 공동준비위원장의 보석석방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밥을 끓 여 만든 죽을 앞에 두고도 연신 원로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로 출소 인사를 나누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한 이 작가는 집으로 돌아가 쉬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시 서울구치소 정문 앞 대기실에서 오종렬.정광훈 공동위원장의 출소를 기다렸다.
이 작가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보석 석방에 대해 “재판부가 바뀌면 서 판사님께서 상당히 전향적으로 검토를 해줬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또 하나는 정상회담이 되고 하는 분위기가 아무리 없다 없다 하더라도, 교도소 담벼락을 넘 어오지 못한다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48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에 대해 “단식 42,43일째 가니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구속 때문에 내가 옥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 인근 식당에서 환영나온 지인들과 환담의 자리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또한 진 행중인 1심 재판에 대해 “창작의 문제로 초점이 잘 잡혀가면 국가보안법과 창작의 자유문제로 연관되면서 쟁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예측하고 “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 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참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법정에서의 본격 공방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 다.
정상회담 의제로 평소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온 유엔사와 NLL(서해상 북방한계선) 문제등이 포함된 평화체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대해 “역시 대세가 그리로 갈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라고 평했다.
두 공동위원장의 출소 소식에 더욱 많은 축하객들이 서울구치소 앞에 모이 자 즉석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황순원 상황실장의 사회로 간단한 이시우 작가 출소 환영식이 열렸다.
▲ 서울구치소 앞 대기실에서 석방 환영식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환영식에서 이시우 작가는 “국가 보안법으로 제가 갇힐 줄을 전혀 몰랐는데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에 보면 해방직후의 상황을 ‘한국은 거대한 걸어다니는 시대착오증’이라는 말이 있 는데 제가 보니까 지금까지 그 상황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며 “아직도 우리의 상식이나 뇌리 속에 해방직후의 그 잔재가 계속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보석으로 빨리 풀려나 다행스럽다며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참가자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너무 기 쁘다”며 “국보연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밖에서 도와주셔서 아마 이런 좋은 소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의를 표하고 “국가보안법이 마지막 폐지될 때까지 남편 과 함께 열심히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 48일간의 단식을 마 무리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과 함께 한 이시우 작가 부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시우 작가는 출소한 오종렬.정광훈 공동위원장과 만나 석방 환영식에 참석한 뒤 부인과 함께 강화도 자택으로 향했다.
‘평화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 대책위’(간사 고정호)는 오는 18일 오전 11시 민 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공식 출소환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인터뷰> “평화체제 논의,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
□ 먼저 출소 소감은?
■ 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을 있을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뜻밖의 소식이었고, 이렇게까지 된 것은 밖에서 힘써주신 변호사님들과 원로 어르신들, 가족, 대책위 분들의 전적인 공 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감사드린다.
□ 일반적으로 국가보안법 사범들에 대한 보석이 많지 않고, 혐의 내용도 상당히 무거웠는데 이렇게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 저도 검찰에 서 걸었던 형량이라든가 이런 걸로 봤을 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예상했는데 재판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재판부가 바뀌면서 판사님께서 상당히 전향적으로 검토 를 해줬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그 공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상회담이 되고 하는 분 위기가 아무리 없다 없다 하더라도, 교도소 담벼락을 넘어오지 못한다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 특히 48일 간의 오랜 단식 과정 등을 겪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전해준다면?
■ 뜻밖에 구속이 되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확 느낌으로 다가와서, 분노라든가 저항이라기 보다도 슬픔 같은 것이 크게 다가와서 단식하게 됐는데, 단식하면서 오히려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불투명했던, 산만했던 생각들이 많이 정리됐던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국가 보안법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밖에서 많이들 했는데, 재판을 하면서 보니까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는 검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속돼 있는 것은 크게 불편하거나 하지 않고 많이 익숙해져가고 있는 상태였었는데, 재판하면서 검사하고 대화를 하고 신문하는 과정에서 같은 세상을 살면서 정말 너무 다른 상식과 기준을 가지고 있구 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관성에 묶여있는 검사님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관성의 울타리에 묶여있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단식 기간이 길었고 지금도 복식 중인데 한 인간으로서 극한적인 과정을 겪고 난 느낌이나 깨달음이 있다면?
■ 단식 42,43일째 가니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국가보 안법이라고 하는 구속 때문에 내가 옥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홀가분 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상렬 목사님이 오셔서 허세옥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 저한테 전해주시면서 간 곡하게 끝까지 살아가지고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도록 싸워야 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 말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일리가 있고 지금부터의 싸움은 구속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안의 관성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복식을 하면서 오히려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재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순간 순간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이 오히려 구속보다도 더 큰 질곡이 아닌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구속보다도 단식으로 인한 고통보다도 더한 것은 끊임없이 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성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나오기 직전 까지 들었던 생각이었다.
□ 밖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투쟁라든지 이시우 작가 석방 움직임이 많았는데 그런 소식을 듣고 있었는지? 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밖에서 면회 오신 분들을 통해서 바깥 움직임들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들었는데 역시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상황을 잘 이해 못하듯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도 얘기를 끊임없이 듣지만 역시 감옥 밖의 상황을 실감나게 이해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전혀 낯선 분들이 면 회와 찾아주시고 감동스런 말씀을 전해주실 때 큰 힘이 됐었고, 저의 어떤 힘이나 이런 것과 전혀 관계없이 밖에서 활동해주시고 밖에서 준비돼 있었던 어떤 역량, 그런 정성과 힘들이 모아져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환기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역시 이것은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신념이 모아졌기 때문에 전적으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 재판 과정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상당히 특이한 재판이었다. 1 심 재판이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재판과정을 평가한다면?
■ 저도 검사가 상당히 이성적 인 사람이라고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순간순간에 개인적으로 이성적인 분이라는 것과 관계없이 국가보안법을 다루고 있는 검사의 어쩔 수 없는 비이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변호사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준비에 제가 무척 감동을 많이 받았다.
이번 재판에서 검사는 스스로 너무 방대하게 혐의를 걸어놨고 방대함 때문에 준비하는 것도 벅차했고 아마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보기엔 너무 단순한 사건이다. 검사는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혐의를 씌우려고 하는 아주 간단한 초점을 계속 못잡고 우왕좌왕 헤맸던 것 같다.
변론과정에서 그 전과 다르게 프리젠테이션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보면서 재판을 하니 까 저도 그 장면 자체가 무척 감동스러웠고, 판사님이나 다른 분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훨씬 수월했었고, 인상 깊게 변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 재판 과정에서 보면 검찰 측이 기소한 내용이 기초사실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 보였는데, 아직 재 판이 진행 중이지만 흐름을 어떻게 보나? 이번 보석 석방도 좋은 징조로 보인다.
■ 섣불리 예측하거나 할 수는 없는데, 아마 차츰차츰 검사님도 이것이 창작의 문제라고 하는 쪽으로 초점을 잡아가는 것 같다. 검사님이 마지막에 제시한 증거자료도 밖에서 끊임없이 작가들 이나 사진가들이 창작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많은 글들을 썼던 것에 대해서 그것을 반론하기 위해서 무척 고심을 많이 했더라.
아마 그래서 역시 창작의 문제로 초점이 잘 잡혀가면 국가보안법과 창작의 자유문제로 연관되면서 쟁점이 되지 않을까. 저는 형량이라든가 이런 것 과는 관계없이 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참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담장 안에서도 유엔사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든지 정상회담에 NLL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든지 이런 소식을 많이 들었을텐 데, 물론 부분적인 기고활동도 했지만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런 소식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 역시 정상회담 소식을 접해듣고, 정상회담 의제가 평화체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는 소식까지 접해듣고 하니까 아, 이것이 역시 대세가 그리로 갈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유엔사 문제를 제기했던 것도 이런 대세가 잡혀나가기를 바랬던 것인데, 이젠 뭐 제가 그걸 주장했다 말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큰 흐름 속에서 방향이 잡혀질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다라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 밖에서 이 작가의 사진전도 열리고 사진집도 재판을 찍고,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작가가 알려졌다고 하거나 부각됐다고 보는데, 개인적 소감은?
■ 저는 완전히 무명작가였었는데 이 사건 때문에 굉장히 과장돼 가지고 알려지게 된 것 같고, 하여튼 공안 당국 덕분에 제가 유명작가인 것처럼 뻥튀기가 된 것 같다. 이 공은 전적으로 공안당국에 있는 것 같다.(웃음)
□ 부인께서 석방활동을 열심히 했고 아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가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저도 이번에 제 처나 아들한테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했는데, 평상시였으면 전혀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놀라운 잠재력이 처한테 있었던 것 같다 . 아마 이 사건이 이렇게 많은 분들한테 알려질 수 있었고, 감옥 안까지 제 귀에, 가슴에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마 김은옥 씨의 역량이었던 것 같고, 그 역 할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도 이번에 인간 김은옥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 아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 우리 아들도 아빠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었어도 그냥 뭐 그냥 아빠니 까, 아빠가 하는 것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재판도 와서 참관하고 문화제도 참관하고 그 과정에서 읽었던 글이라든가를 제가 안에서 전해 들었다.
항상 우리 아들을 안아주고 마주해줄 기회가 없었는데, 항상 위안으로 삼았던 말이 아들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자라는 것 이 아니라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었다. 아빠가 가는 길을 아들은 그 등을 보고 따라 온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이시우 작가 보석 석방”
촬영 민중의소리 / 윤보중 기자
<속보> 이시우 작가 서울구치소서 보석 석방
14일 국 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평화운동가이자 통일뉴스 전문기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보석 석방된다.
이 사건을 담 당하고 있는 이정희 변호사는 14일 낮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주에 보석청구서를 냈고 오늘 점심 때쯤 보석 결정이 났다”며 “절차가 완료되고 짐을 정리한 뒤 오늘 오후에 출소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성실하게 심리해주고 있고, 공소제기와 구속이 예술에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라는 점을 고 려해준 것으로 생각돼 일단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재판부에 사의를 표한 뒤 “이시우 작가가 나와서 건강을 잘 회복하면 이 사건에 대해 더 풍부하고 많은 주장 과 자료를 제시하고 재판을 충실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너무 기쁘다.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잘 된 것 같다. 재판부에도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그동안 어머님과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된 것 같다. 그동안 아들이 아빠가 없어 우울해 해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아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부인 김 씨는 “특히 이시우 사건에 작가 분들이 많은 애를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도 묘하게 작가 분들 면회오신 날 소식을 듣게 됐다”며 “보석으로 나온 것이니까 나와서 재판을 잘해서 무죄가 될 때까지 마무리를 잘 해야할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 4월 19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돼 서울 옥인동대공분실에서 경찰조사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감돼 검찰 조사를 받고 1심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이시우 작가의 보석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지인들은 서울구치소 앞으로 환영나간 것으 로 알려졌다.
ⓒ 통일뉴스 / 김치관 기자
“체포되는 순간, 분노·저항 아닌 슬픔”
[인터뷰]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 돼 14일 석방된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씨는 지난 4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 지난 14일 5개월여만에 보석으로 풀려 났다. 15일 서울역 광장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서 만난 이시우씨의 모습. ⓒ 오마이뉴스 선대식
“역사가 나를 관통한 느낌이 었다.”
지난 14일 보석으로 풀려난 사진작가 이시우(40)씨는 자신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씌워진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보석 석 방에 대해 “뜻밖의 결과였기에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다”면서 “바깥에서 많은 분들이 애써주셔서 나오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잠재되어 있던 국가보 안법 폐지가 떠오르게 됐다”며 자신의 구속·석방의 의미를 전했다.
이씨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민통선 평화기행> 등의 사진집·책을 내고, ‘한강에서 서 해로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기획하는 등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이씨에게 국가보안법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 4월 19일. 그가 찍은 한강 하구, 미군 기지 관련 사진이 발단이 됐다. 이씨는 “그때 국가보안법이 아직까지 남아서 망령처럼 돌아다니다 길바닥에서 나를 덮친 느낌이었다”고 떠올렸 다.
구속 직후 이씨는 옥 안에서 48일간의 단식을 이어갔다. 옥 밖에서는 ‘이시우 사진작가 석방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석방을 기원했다 . 이씨는 “단식으로 죽을 고비를 두, 세 차례 넘겼다”면서 “밖에 계신 분들을 애타게 해서 죄송하다”고 전했다.
14일 갑작스레 보석 석방된 이씨는 “남북정상회 담이 이뤄져 재판부가 전향적인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한강 하구, UN사 문제 등에 관련된 글을 쓸 것이다”는 이씨는 “1~2달 안에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씨를 만난 건 15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역 광장에서다.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된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 참석 차 강화도 집에서 서울에 나온 이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이씨와의 일문일답.
“이번 사건으로 제 삶의 중심으로 역사가 관통한 느낌이었 다”
▲ 이시우씨가 아내 김은옥씨와 함께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팻말을 들 고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 보석으로 나오게 된 소감을 말해 달라.
“뜻밖의 결과였다. 기대 를 못했다. 우선 이는 재판부의 전향적인 결정이다. 또한 바깥에서 저를 위해 애쓴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직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사실 출소할 때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죽을 고생했었던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그 안에 있는 분들 놔두고 먼저 나와 마음이 무겁고 죄송스러웠다.
14일에 오종렬·정광훈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우연찮게 이번에 같이 나오게 됐다. 두 분과 같이 환영식을 거창하게 했다. 거기서 죽만 먹고 있는 회복 단계라 식사만 간단히 했다.”
- 국가보안법 사건으로서 이번 보석 석방은 이례적인데.
“국가보안법 사건과 관련해 보석 석방은 드문 경우라고 알고 있 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구속 판결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남북정상회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재판부에서시대의 큰 흐름과 변화를 도외시하면서 재판을 끌 고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검찰도 민감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 현재 재판 과정은?
“검찰과 변호인의 심문이 끝났다. 지난주에 증거 채택 과정이 있었다. 원래 10월 19일이 구속 만기이기 때문에 그전에 판결이 날 예정이었는데, 구속에서 풀려나 판결이 늦춰지게 됐다. 현재 재판부가 제 입장을 긍정적으로 경청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그렇지 않은데, 지난 7월 중순 3차 재판 이후 재판부가 바뀌고 나서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있 다.”
- 많은 사람들이 석방을 위해 도왔다.
“우선 아내에 대해 놀랬다. 이런 잠재력이 있는지 몰랐다.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밖에서 아내가 움직였던 성과다.
또한 저는 사람 관계 맺는 걸 잘 못하는데, 이런 과정 겪으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됐다. 제 석방은 땀 흘린 분들의 노고가 100%였다. 잠재돼 있었던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가 이번 사건을 통해 터진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제 삶의 중심으로 역사가 관통한 느 낌이었다.”
“국가보안법이 망령처럼 돌아다니다 길바닥에서 나를 덮친 느낌”
- 48일간의 단식을 어떻게 견 디었나?
“사실 뜻하지 않게 단식에 들어갔다.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에 분노·저항이 아닌 슬픔이 몰려왔다. 국가보안법이 아직까지 남아서 망령처럼 돌아다니 다 길바닥에서 나를 덮친 느낌이었다.
그 순간 입을 닫고 말도 닫고 먹지도 않았다. 단식 하다보니까 두, 세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그때 ‘이게 죽음이구나’하 고 느꼈다. 그 순간을 넘기니 견디게 되더라.”
-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는데.
안에서는 밖의 일을 정확히 몰랐다. 재판 과정 등을 통해 제가 얼마나 걱정을 끼쳤는지 알게 됐다. 그분들을 인질로 붙잡고 단식했던 것 같다. 애타게 해서 죄송하다.
- 감옥에서 무 슨 생각을 했나?
“단식을 접을 때쯤 구속돼있다는 게 제 마음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제 맘속에서 반성이 일었다. 정반대편의 우익단체 여러분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전쟁과 분단으로 비롯된 문제로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틀로 묶여 있다고 생각했다.
6월 6일 현충일이기도해서 단식을 접었다. 정상적인 상 태가 아니었는데, 108배를 했다. 전쟁에서 비롯된 상처들을 내안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가 실험해 보고 싶었다.”
- 감옥에서는 어떤 일을 했 나?
“책을 보고 글을 썼다. 전쟁과 관련된 책들을 서너 번씩 읽었다. 기소이유인 한강하구 문제, UN사 등과 관련해 출판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원고를 정리했다. 또한 재판에 필요한 것들을 썼다. 풀려날 때 보니까 수사 자료가 내 키만 하더라. 저에 대한 모든 부분이다. 제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모든 것들이 기 소가 됐으니까. 거의 자서전 수준이었다.”
- 정상회담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언젠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정말 되 는구나’하는 느낌이었다. 평화체제를 의제로 삼는다는 발표를 봤는데, 저에 대한 기소 내용이 다 들어간 것이다. 평화체제는 국가보안법,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 UN사, 미군기지, 한강하구 문제와 연관해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발표 후 재판할 때 검사에게 ‘절 기소한 내용들이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정해졌는데, 이 지루하고 복잡한 재판이 무의미하고 쓸모없게 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검사는 답이 없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책을 쓸 계획 이다. 한강하구 관련 책은 지금 탈고 중이다. UN사 관련 책도 멀지 않았다. 1, 2달 내에 출간할 것이다. 이렇게 책을 써서 한강하구, UN사 문제, 미군 문제 등이 진척이 되고 현실에서 변화가 생기면 사진을 찍어야 할 대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 석방 환영식 열려
“구속된 5개월이 저 자신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18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의 석방 환영식이 열렸다. 사 진은 환영식을 마치고 후원자를 비롯한 지인들과 함께 기념촬영 모습. [사진제공-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준) 이재각 조직국장]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의 석방 환 영식이 열렸다.
이시우 작가가 구속되어 있을 때 음양으로 돕던 후원자와 지인들 30여명은 18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수염은 길렀지만 비 교적 건강한 상태로 환한 표정을 짓고 나온 이시우 작가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시우 작가는 감사의 말을 통해 감옥에서 느낀 생각 등을 잔잔히 이어나가면 서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 [사진제공-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준) 이재각 조직국장]
이 작가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다”고 밝히고는 “지난 2004년 12월 대대적인 보안법 철폐 단식투쟁을 할 때도 ‘이미 지나간 것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치부했었는데 그러나 막상 보안법으로 구속되고 보니 1950, 60년대 망령이 떠도는 느낌을 받았다.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며 48일간의 기나긴 단식투쟁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를 밝혔다.
단순한 단식투쟁이라기보다는 보안법에 관심을 못 갖고 있다가 일신상 구속되면서 이 문제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구속되어 단식중에 있을 때 면회를 온 사람들의 인상적인 조언과 덕담을 소개하면서 그로 인해 ‘함께 한다는 것’을 느꼈고 , 단식의 의미도 되새길 수 있었고 또 그래서 단식도 풀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작가는 “나는 널리 알려지지도 유명하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으 로 감당할 수 없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면서 “구속된 5개월이 저 자신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나름대로는 항상 역사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사 실 한번도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역사 속에 산다는 걸 느꼈다”면서 깨달음을 전했다.
이시우 작가가 보석 석방된 것에 내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부인 김은옥 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걸 느꼈다”면서 특히 이시우 작가에 대해 “나도 남편인 이 작가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 건이 터지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내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빙산의 일각임을 알았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두 부부는 구속되어 있을 때 도와준 많은 사람들, 특히 이시우사진작가 석방대책위원회와 국가보안법철폐국민연대에 감사를 전했다. [사진제공-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준) 이재각 조직국장]
두 부부는 구속되어 있을 때 도와준 많은 사람들, 특히 이시우사진작가석방대책위원회와 국가보안법철폐국민연대에 감사를 전했다.
이에 앞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같은 자 리가 얼마나 기쁜 자리인가”고 흥을 북돋고는 “감옥도 투쟁의 장이지만 인신을 구속하기에 불편한데 이렇게 나왔으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축하했다.
권 회장은 특히 ‘법정투쟁’과 관련 “이시우 작가의 재판에서의 모두진술, 직접진술은 책으로 엮는다 해도 국가보안법 철폐, 악법 철폐 투쟁의 훌륭한 사례가 될 것 ”이라며 “무죄가 아니라 아직 재판 중이므로 법정투쟁을 통해 이시우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임을 통일문제와 연결해 투쟁해 나가야 한다”면서 한 편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과 다른 한편으로 부탁의 말을 전했다.
이날 환영식에는 전창일, 권오헌 회장, 최병모 겨레하나 이사장을 비롯해 평화박물관, 비폭력평화물결,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통일 관련 단체들, 대학생다큐멘타리사진연합(준) 그리고 개인적 후원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해 이 작가의 폭넓은 활동을 반영했다.
한편 이시우 작가는 지난 4월 19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구속돼 1심 재판을 진행 중에 있다가, 지난 14일 보석 허가로 석방되었다.
ⓒ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