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공판까지의 기록

[펌: 통일뉴스] 주인공 없는 `이시우 사진전` 개막 [2] 김은옥 2007/07/01 970

주인공 없는 ‘이시우 사진전’ 개막
평화박물관서 7월 14일까지, “증류수보다 맑은 순수 증류수”

▲ 27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 이시우 사진전 개막식이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진작에 국가보안법을 없앴더라면 이런 주인공 없는 사진 전시를 할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같이 우리에게 설명드리는 사진전을 가질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주인공 없는 사진 전시회가 또다시 열렸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평화사진가 이시우 석방 대책위’는 6월 27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 ‘이시우 사진전’ 개막식을 갖고 7월 14일까지 전시회를 계속한다.

평화박물관을 대표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는 말에서 “이런 사진들이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처벌받는 것은 요즘 개그 코너에서 유행하는 ‘민주화가 된 것도 아니고 안 된 것도 아닌 것 같은’, ‘같기도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시우 작가의 사진작품의 내용은 “온 국민이 모두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시장 한 켠에는 ‘이시우 사건’을 알리는 게시판 글모음집과 슬라이드가 선보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한홍구 교수는 최근 전교조 교사들과 인터넷 중고서점 주인, 이른바 ‘한총련 배후’ 인사 등에 대한 잇따른 국가보안법 혐의 적용에 대해 “경찰 보안대 직원 2000명이 국가보안법으로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해 밥값한다는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서, 전체 정세변화 속에서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해석했다.

한 교수는 “작은 전시회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투쟁에 좀더 힘을 모아야 한다”며 “장소가 좁아 이시우 작가의 좋은 작품을 다 걸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더 좋은 데서 이시우 작가가 풀려났을 때 더 좋은 전시회를 할 것을 다짐한다”고 인사했다.

▲ 노순택 씨는 사진가들의 이시우 작가 석방 노력을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사진가 노순택 씨는 “이 땅에서 사진 찍는 사람 중에 국가보안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찾아보니까 별로 없더라. 이시우 작가가 구속되어야 한다면 이 땅의 특히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많은 사진가들이 다 철창 속으로 가야 한다”며 “비단 사진가뿐만 아니라 화가나 소설가나 시인이, 이 땅에서 창작과 표현하는 사람들이 철창 신세를 져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노순택 작가는 “현재 대학교수를 비롯해서 많은 사진가와 학생들까지 120여명이 이시우 선생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보다는 가족과 사회 품에서 창작과 표현활동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훨씬 바람직하다고 서명했다”고 전하고 사진 전문매체들의 후원으로 전면광고를 게재하고 모금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사진가들의 소식을 전했다.

노순택 작가는 “이시우 선생 사진을 보면 굉장히 서정적이다”며 이렇게 예쁘고 아름답고 이런 것들 통해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한 사람을 가둬두는 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 이정희 변호사가 재판 준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시우 작가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이정희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보고 가장 충격을 받은 것 중의 하나가 2004년 초부터 굉장히 광범위한 감청과 미행이 너무나 많은 수사보고를 양산할 만큼 행해졌다는 것”이라며 “2004년 초면 국가보안법 폐지 얘기가 수면에 올랐던 때인데도 불구하고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한 작가에게 대단히 많은 수사력을 동원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 한 작가를 구금상태에 이르게 했다”고 말했다.

이정희 변호사는 “이시우 작가의 모든 행동이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한 것이라고 포장되는, 지금도 이런 수식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단히 놀랍다”며 변호인단 15명이 역할을 분담해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이시우 작가가 열심히 공판을 준비중이고 검사와 싸우는 대단히 치열한 공판이 될 것이다”고 전망하고 “재판을 통해 이시우 작가의 면모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활동의 정당성을 알리려 한다”며 7월 4일 오전 11시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될 첫 공판을 주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시우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처음에는 많이 울고 두서도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기쁘고 행복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남편이 정말 외롭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고 남편이 전하려고 하는 뜻이 밖에서 많이 전해지려고 하는 움직임을 많이 느낀다”고 인사했다.

▲ 부인 김은옥 씨가 감청 통보서를 내보이며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빨간 딱지가 붙은 전시사진은 검찰이 문제삼은 사진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김은옥 씨는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전기통신 감청’에 관한 통보서를 내보이며 “저의 아들 핸드폰까지 도청했다”고 분개했다.

김 씨는 자택 전화에 대한 감청 기간이 올해 3.22-4.30 사이이고 아들 핸드폰에 관한 감청이 올해 1.1-4.10, 4.11-6.8일인 점을 지적하며 이 기간 이전부터 불법 도청과 미행 등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시우 작가의 단식기간 중 검찰청 앞에서 매일 밤 진행된 촛불문화제가 집시법 위반이라며 국가보안법폐지연대 박래군 정책팀장에 대해 소환장이 발부된 사실도 전했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는 음악.미술 평론가 김제영 씨와 한국대인지뢰대책위 문은영 사무국장의 이시우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소설가 남정현 씨와 민족정기선양회 곽태영 회장 등이 발언에 나섰다.

80노구를 이끌고 전시장을 찾은 김제영 평론가는 “그의 작품은 증류수보다 더 맑은 순수 중의 순수 증류수이다”며 “영상적인 감성, 사진기술, 카메라 앵글 모든 것이 최고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문은영 국장은 2002년부터 이시우 작가가 대인지뢰 피해자들을 만나며 작품 활동을 해온 과정을 소개하며 “마음이 굳게 닫힌 분들이 의족을 벗어 옆에 놔둘 정도로 찾아가서 손잡고 얘기를 들어주었다”며 이 작가의 사진작품 속에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초의 반미소설로 평가받는 ‘분지(糞地)’의 작가 남정현 씨는 “사생결단으로 국가보안법을 붙잡고 한 달, 두 달, 밥을 굶어가며 투쟁하기는 예술가로서는 이시우 작가가 처음”이라며 “국가보안법의 입장에서는 예술가의 주먹이 이렇게 치명적인 것인가 떨고 있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 전시장에는 이시우 작가에게 보내는 격려의 글들이 나붙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구호를 합창하고 이수효 평화박물관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을 마무리한 뒤 다과를 나누며 이시우 작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주최측은 이시우 작가의 대표작인 ‘민통선 평화기행’(창비, 2005)과 재출간한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인간사랑 1999)을 이시우 작가의 서명을 담아 판매하고 있으며, 이시우 작가 사건 경과와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사진들, 네티즌의 반응 등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통일뉴스 / 김치관 기자

사진 / 곽명우

고려산 [2007/06/28] ::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곳 – 바로 비무장지대(DMZ)가 아닐까요? 전 국토를 휩쓴 모진 전쟁의 참화에서 성한 곳이 어디 있었겠습니까만, 비무장지대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는 보존성 때문에 그 참화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시우작가는 그 비무장지대를 발로 누비며 그 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지요. 그런데 작가가 담은 그 곳의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설적으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극적인 느낌이 가득하면서도 아름답고, 알 수 없는 아픔과 한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분단의 아픔을 승화시켜 사진으로 표현하고, 아픔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담는 이시우작가의 사진전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왕림을 바랍니다. 전쟁과 분단으로 생긴 상처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만드는, 더 큰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길 바라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김은옥 [2007/06/28] :: 사람관계에 있어 거리보다는 마음이 중요한듯 합니다. 멀리 속초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시우작가 홈피를 늘 관리해주시고 예쁘게 꾸며주시는 고려산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죽식8일째^^면회다녀왔어요^^ [1] 김은옥 2007/06/28 861
금일(6/27(수)) 오전11시30분 강화민주평통 김영애회장님과 퀘이커모임 오철근선생님, 그리고 저 이렇게 특별면회하였습니다.

이시우작가가 면회실로 들어 오자 모두 악수를 하고 환한 미소로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김영애회장님; 아이구, 너무 많이 마르셨어요. 빨리 기운차리셔서 법정공방을 준비하셔야지요. 이렇게 감옥에 계시지만 밖에서 움직이시는것 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시우; 아 별말씀을 요. 밖에서 일하시는분들이 준비가 되어 있으시니 이루어진 일들이지요. 오철근 선생님도 애 많이 써주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철근선생님; 장자가 말하기를 ‘시거이용현(尸居而龍見; 시체처럼 가만이 있어도 용처럼 살아움직인다.)이요,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 연못처럼 조용하지만 우뢰소리와 같이 표호한다)이며, 신동이천수(神動而天隨; 혼신이 움직이니 하늘이 함께한다.)라’ 했듯이 바로 이시우님이 감옥에 계시지만 그 영향력이 온나라에 퍼지고 있는듯 합니다.
저는 이시우님을 보면서 함석헌선생님 이후에 가장 실천적인 삶을 사시느분을 처음봅니다.

이시우; 아 별말씀을요. 앞으로 그렇게 살아라는 뜻으로 잘 새겨듣겠습니다.

김은옥; 이번에 김영애선생님께서 북한에 고구마 2만여개를 북한농민들과 심고오는 아주 좋은일들을 하시고 오셨데요. 통일을 앞두고 실질적인 일들을 잘 하시고 있는것 같아요.

이시우; 아 그러셨군요. 늘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있지만, 정말 필요한 일들을 하시고 계시군요. 한강하구관련 행사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김영애; 한강하구관련 행사들도 이번에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이제 통일시대에 맞는 통일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땅굴견학하는 시대를 마감하고, 모든 국민들과 학생들이 한강하구와 민통선을 견학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그런 시대에 맞는 통일교육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한강하구 견학 체험 사례집’이 곧 발간될 예정입니다.

교도관; 이제 시간이 2-3분 남았으니, 정리해 주세요

김은옥; 저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오늘은 면회나올때 휠체어도 타지 않고, 걷는모습도 많이 좋아보여요. 미음을 이제 좀더 양을 늘리도록 하고 묽은 미음에서 조금 된미음으로 먹도록 해요.

이시우; 구치소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통일뉴스쪽에 전달해서 1차 재판 모두진술때 필요한 자료들을 양이 좀 많겠지만 넣어달라고 해 주시면 고맙겠소.

김은옥; 네 그렇게 할께요. 그리고 친구분이 죽식이후에 생식할때 필요한 좋은 선식을 준비해 주셨고, 김정택목사 사모님이 유기농5곡잡곡 선식도 준비를 해 주셨으니, 다음 면회때 가지고 올께요. 죽식이후에 생식선식이 회복식에 매우 좋다고 하니 잘 먹고 빨리 회복해야지요.

이시우; 너무 많은 분들께 신세를 져서 구치소생활을 하면서도 너무 호강을 하고 있는것 같아 죄송합니다.

교도관이 자꾸 마무리를 하라고 하여 서둘러 인사들을 나누고 그날의 면회를 마쳤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인사동 평화박물관 사진전 개막식때 판매하려고 미리 구치소로 보내온 이시우작가 저서 ‘민통선평화기행 100권’과 ‘비무장지대 사색 사진시집 200′부를 김영애선생님 차에 싣고 행사장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습니다.
오철근 선생님도 함께 행사장으로 가면서 저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영애선생님, 오철근선생님 감사합니다.

[펌: 한겨레21] 이시우의 투쟁 김은옥 2007/07/08 1086
이시우의 투쟁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시우. 올해 마흔 살인 그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찍은 사진으로 짐작건대 마음 따뜻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뢰에 기댄 채 피어난 흰 들꽃 한 송이, 지뢰를 밟은 뒤 그야말로 지뢰밭 같은 인생을 사는 피해자의 다리가 돼준 의족 하나, 90여 년 동안 철로를 부여안고 자신을 박아놓은 경원선 철원역의 철못, 녹슨 철마와 개똥풀….

△ (사진/ 이시우)

그가 2003년 펴낸 <민통선 평화기행>의 사진들에는 가슴 밑바닥이 저려오는 아련함이 있습니다.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비무장지대 접경지대에서 목울대를 세우지 않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로 조곤조곤 아픔을 말합니다. 50여 년이 흘러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정전(停戰)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그런 그가, 지금 스스로 온몸을 갉아가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상대는 국가보안법.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된 뒤 구치소에서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6월22일 현재 64일째 단식 중입니다. 4월20일부터 6월6일까진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그 뒤엔 하루에 쌀물 3잔과 된장국물 3잔을 먹는 준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부인 김은옥씨는 “65kg까지 나갔던 체중이 20kg가량 빠지고, 뼈에 얇게 살을 발라놓은 몰골이 되었다”고 모습을 전합니다.

공안당국은 유엔사령부, 대인지뢰, 주한미군 부대의 화학무기 보유 등 안보 문제와 관련된 그의 글과 사진이 보안법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관련된 알 권리의 대상이고, 이에 대한 의견 표시는 언론과 창작의 자유에 해당합니다. 보안법을 두고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안법은 유령처럼 우리의 일상을 배회하며 불쑥 칼날을 들이댑니다. 6월3일엔 경찰이 이적표현물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인터넷 헌책방 미르북을 압수수색했는데, 이적표현물 리스트에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해방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같은 책도 포함됐습니다. 대형서점에서 흔히 판매되는 책까지 문제 삼다니 명백한 군사정권 시절로의 퇴행입니다.

이시우는 <민통선 평화기행>에서 얘기합니다. “자유의 반대가 구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었다. 저항하고 꿈꿀 자유까지 막는 것은, 놀랍게도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분단 의식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듯이, 보안법이라는 굴레를 불편해하지 않는 타성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를 옥죄는 가장 큰 장벽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온몸이 화살이 되어 어느샌가 보안법에 무신경해진 우리의 의식 한복판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6월항쟁 20돌의 열기와 대선가도의 검증 공방 속에서 우리가 이시우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첫 재판은 7월4일 열립니다.

한겨레21 / 정재권

이시우작가에게 전자서신 보내기^^ 김은옥 2007/06/28 1011

인터넷검색창에 ‘서울구치소’라고 치고 검색을 누른다 ->

서울구치소홈이 나오면 좌측에 ‘전자서신’클릭 ->

법무부에 홈페이지나오면 회원가입 ->

다시 좌측에 ‘인터넷서신’클릭->

구치소 지정하기와 61번 이승구(이시우본명) 라고 등록 ->

제목을 쓰고 서신내용을 칩니다.

내용은 하루에 한번 A4 한장분량만 신청가능합니다. 내용을 너무 많이 적으면 초과되었다고 화면에 나옵니다. 첨부파일 안됩니다.

이시우작가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를 부탁합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문화제 준비중^^ [1] 국가보안법 2007/07/03 946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 증언대회 및 문화제 『더 이상 가두지 마라!』(가)

* 취지
- 최근 늘어나고 있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힘 다지는 장
- 국가보안법 악용사례 증언과 무리한 법 적용의 공안기관에 대한 규탄의 장
-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무관심한 언론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의 장
- 국가보안법폐지 국회의원 모임 재가동을 위한 계기와 국회 압박의 장
- 국가보안법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변호인단에 대한 감사의 장
-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논의에 따른 법, 제도 개선에 대한 호소의 장

* 형식
-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들의 주체적 참여와 문화공연이 어우러진 문화제 형식
- 가족들의 피해증언과 아이들의 편지글 낭독, 애창곡 노래, 시 낭송 등
- 문예일꾼들의 노래, 율동 그리고 이시우 사진전 등이 함께하는 문화제
- 참여정부에서의 국가보안법 통계 발표와 문제점 지적 (민가협 또는 민변)
-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대표자, 국회의원들의 결의 발언 등
-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신문 등 언론 노출을 최대한 조직화

* 참가 대상
- 국가보안법 피해자 및 가족 : 강정구교수 사건, 일심회 사건, 전교조 사건, 강순정선생님 사건, 이시우작가 사건, 이재춘씨 사건, 한총련, 한청 사건 등등 가족 및 관계자
-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대표단, 민가협, 장기수 선생님, 민변, 문화예술인
- 국회의원 약간 명, 언론사 기자
- 규모 : 240여명

* 일시와 장소
- 일시 : 7월 23일 (월) 늦은 4시 (약 2시간 진행)
- 장소 :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 프로그램 (가안)
- 영상을 통한 각종 국가보안법 사건 소개
- 편지글 낭독 :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수배중인 자식에게, 옥방 남편이 아내에게등
- 시 낭독 : 강정구 교수
- 뮤직비디오 : 이시우작가의 사진으로 제작
- 연주 : 바이올린과 하모니카 (피해가족 자녀들)
- 합창 : 중고등 학생들(전교조), 장기수 선생님들
- 대합창 : 피해자 가족들 모두
- 연극 : 문예패와 가족들이 함께 만든 연극
- 사례발표 : 참여정부에서의 국가보안법 통계 등
- 인사말 : 민변, 국가보안법페지연대 대표자, 국회의원 등
- 노래/율동 : 전문 문예패
- 국가보안법 풍자만화 전시

* 주최와 후원
- 주최, 주관 :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 모임
- 후원 :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민변, 민가협, 국회의원 등

면회다녀왔어요^^ 김은옥 2007/07/03 1098

7.2(월) 오전일찍 이작가를 보러 구치소를 향했습니다. 일주일정도 죽식을 더하고 생식을 준비중에 있는데, 낼모레가 첫재판이라 이것저것 확인할것도 있고, 무언가 더 필요한 것들이 있을것 같아 가는길인데, 오늘따라 비가 억수로 퍼부어대고 강화에서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안양.과천 그리고 인덕원사거리로 가야하는데, 고속도로위에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1시간을 그냥 서있다시피 하였습니다.
아들녀석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시험인데도 제대로 신경도 쓰지 못하고 남편을 먼저 챙길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을 아들이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들녀석이 사춘기인지 부쩍 우울해하는 모습이 보이고, 하루하루를 너무 똑같이 사는게 재미가 없다는둥, 엄마는 내마음을 몰라준다는둥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여 저는 그냥 면박을 주고 행복에 겨운소리라며 대화를 잘랐는데, 그럴일이 아닌가 봅니다. 이런때 이작가가 있었으면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많은 대화를 해서 아들녀석의 고민도 들어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도 해줄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습니다. 남편의 일로 아들의 마음을 차분히 헤아려 다독여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제자신이 답답하였습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과 함께 구치소에 도착하여 이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작가가 또 전면단식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갖게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먼저 그 상황을 알리고, 향후 모든 면회를 거부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낼모레 재판준비애기와 선식얘기를 하려갔다가 너무도 황당하여 왜 그런 결심을 다시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신문때문이었습니다. 그간 이작가가 신문이나 소내 tv방송을 접할기회들이 없었는데, 최근 죽식이후에 운동도 좀 할 수 있고, 감옥밖 외부의 소식들을 접할 기회들이 생기면서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본인이외에의도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으며, 정당한 집회나 촛불문화제행사등을 이유로 집시법위반이다 뭐다 하면서 소환장이 발부되고 각시민단체 대표 어르신들이 체포영장이 발부되는등 앞으로 대선국면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지 불을 보듯 뻔하여 그냥 감옥안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쉽지않은 결단을 또 다시 했다는 겁니다. 저는 너무 기가 막히고 또 숨이 막혔습니다. 이시우작가는 어떤일을 할때 쉽게 결정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또한 그 결정한 일에 쉽게 포기하고 자신의 뜻을 꺽는 사람도 아니기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작가는 조만간 두번째 전면단식 돌입을 결심하게 된 경위를 편지로 내 보낼터이니 그 뜻을 홈피를 통해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같은날 12시에 이시우대책위 6차회의가 잡혀있었고, 저는 바로 면회를 끝내고 ‘통일맞이’사무실로 길을 재촉했습니다.

대책위에 도착하였을때 이미 여러분의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중에 있었고,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시우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고정호 간사는 지난번 한상렬목사님의 특별면회로 다행히 전면단식을 종료하고 재판ㅌ쟁을 위해 보호식을 잘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가 이번 두번째 전면단식은 절때 안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비록 이작가는 ‘나는 죽기위해서가 살기위해서 단식을 선택하는 것이니 그런 부분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작가가 부인에게 말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시우작가는 예술가로서 맑은 영혼을 갖고있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죽어도 그것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냥 놔둘수는 없는 문제다라도 하였습니다. 또한, 통일뉴스 김치관 국장님도 “이시우작가라면 능히 가능한한 일이며, 부인에게 편지를 써 내보낸다면 그땐 이미 늦는다. 사람이 좀더 나은 세상에 살기위해 선택한것이 단식이 될 수 있으며, 단식을 한다고해서 바로 무슨일이 발생하는것은 아니나, 사람이 밥을 안먹으면 결국 죽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동안 48일간의 단식명상으로도 이작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할만큼 하였는데, 앞으로는 단식이 아닌 옥방에서의 집필과 기고활동, 그리고 대선후보들의 잘못된 공약에 대한 반박글, 유엔사해체.전시작전통제권 이양문제.미군기지철지철수문제등에 대한 여러가지 기고투쟁이 이후에 진행되어져야 하고 할일이 너무 많은데, 이제 단식명상은 접어야할때다. 본인이 이미 결심한 이상 쉽게 접지 않겠지만 지금 바로 우리 대책위 관계자들이 모두 구치소를 방문을 하여 설득을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대책위 관계자들은 바로 회의를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였고, 이시우작가를 다시 특별면회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구치소와 또 조금의 문제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오전에 부인이 특별면회를 해서 안된다고 하였던 관계자들이 이시우단식을 중지하러 가는길인데, 그 면회를 막는다면 구치소에서 단식를 좀 막아달라고 하자 그는 더욱 어려운일지라 결국은 면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작가를 만난 대책위 관계자들은 6차회의 내용과 함께 앞으로 이작가의 감옥싸움을 기고.집필싸움과 재판투쟁에 최선을 다해 줄것과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접어달라는 간곡한 당부와 함께 이작가의 심중을 헤아려 밖에서 이러저러한 움직임들을 상세히 알렸고, 민가협 한지연 간사는 “이작가님의 감옥명상과 투쟁에 대해 지지를 하고 같은 마음이나 지금의 대선국면시기에 그런 큰 싸움들 조차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여, 보다 좋은 때를 기다리고 그때까지 건강을 지키고 좀더 이작가의 무기인 글과 작품들로 그리고 철저한 재판준비투쟁으로 함께 하자고 당부하였습니다.

다행히 오전에 저 혼자 어찌할 수 없었을때 보다 이작가는 대책위 관계자들의 입장에 어느정도 의견을 함께 하는듯한 모습을 보였고, 또한 대책위관계자들도 이제 개인의 일이 아니니 대책위와 논의하지 않고 혼자 정하여 싸움에 돌입한다면 석방대책위를 해체하고 본인과 가족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작가도 낼까지 좀더 고민하여 확답을 주기로 하였고, 대책위 특별면회가 끝난후 이정희 변호사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최종적으로 이작를 접견하고 대책위의 뜻에 따라 앞으로 하겠다는 심중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대책위는 이날 ‘이작가에게 만일 이작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들이 밖에서 발생한다면 그 땐 이작가 혼자만 단식을 하는것이 아니라, 구치소내 모든 시국사범들과 그리고 밖에 있는 가족, 그리고 국가보안법철페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다 함께 진행을 준비하겠다’라고 하고 재판ㅌ쟁을 위해 몸건강을 더욱 신경써 줄것을 당부하고 돌아왔습니다.

힘겨운 하루였습니다.

광고가 나왔습니다. n…. 2007/07/03 909

그동안 시각예술 전문지에서 이시우 님 관련소식이 뜸했는데, 이번 7월에는 여러 소식이 담겼습니다.

먼저, [월간 포토넷]과 [월간사진]에 1면짜리 전면 의견광고가 사진인 서명과 함께 실렸습니다.

아울러 [포토넷]에는 사진평론가 박평종 박사의 컬럼 ‘심미안을 잃어버린 시대’가 2면에 걸쳐 실렸고요. [사진예술] 7월호에도 이시우 님 관련기사가 실릴 예정입니다.

또한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쳐]의 권두컬럼에도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최금수 대표의 글이 실릴 예정입니다.

사진을 여러장 올릴 수 없어서 1장만 올립니다. 더 보고 싶으시면
[이시우 구명 사진인 커뮤니티] http://cafe.naver.com/ppittak
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펌] 이시우 첫 공판, 국보법 성토장 된 이시우 재판정 [1] 고려산 2007/07/05 1189


국보법 성토장 된 이시우 재판정
이시우 첫 공판, 검찰.변호인단 모두진술서 시각차 뚜렷

▲ 사진작가 이시우 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4일 오전 10시 고법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최병모, 이정희 변호사, 조재국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사건의 논점은 국가보안법이고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라는 불명확한 명분아래 사상을 검열하여 헌법이 보장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이라는 점이다.”

지난 4월 22일 국가보안법과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돼 48일간 단식하며 묵비권을 행사해온 이시우 사진작가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변했다.

7월 4일 오전 10시 푸른 수의에 오랜 단식의 흔적인 덥수룩한 수염의 초췌한 모습으로 이시우 작가가 법정에 들어서자 100여명의 방청객은 박수를 보냈다. 제22형사부 재판장 김용석 판사는 장내 박수를 제지했으며, 방청석 앞자리를 차지한 10여명의 극우단체 회원들이 “박수치지 말라”는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이시우 작가는 피고인 인정신문에서 지난 4월 19일 검거이후 지켜온 묵비권을 처음으로 깨고 생년월일과 직업, 주소, 본적 등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답했다.

검사, “대한민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였다”

▲ 이시우(본명 이승구) 사건에 대한 공판안내문. 검찰은 이날 금품수수 관련 혐의는 기소요지에서 슬그머니 제외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어 이영재 검사가 기소요지 진술을 통해 “피고인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분단의 문제를 ‘민족 대 미국’의 대립구도로 인식하고 오로지 한반도에 전쟁을 발발시킬 세력은 미국만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의 주의 주장을 선전.선동하는 문건을 작성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민.군갈등을 유발시킬 목적으로…”라는 전제하에 ‘각종 군사상 기밀을 탐지.수집’하고 이를 ‘북한이나 조총련, 한통련 등 반국가단체에 누설’했다는 혐의를 주요하게 제시했다.

이외에도 ‘회합.통신’, ‘통일뉴스, 홈페이지에 유엔사 설치의 불법.부당성, 유엔사 해체 당위성 등을 주장하는 이적표현물을 약 30회 게재’한 점과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선동’한 점, 그리고 ‘북한원전 및 국내 복제본 수십권을 소지’한 점 등의 혐의를 제기했다.

검찰 측이 제시한 공소사실에는 “통일뉴스에 피고인이 기고한 인터넷 글 아래에 임원재와 댓글을 주고 받는 등 통신하고”라는 대목까지 포함돼 인터넷신문 기사에 댓글을 단 것조차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를 적용돼 있어 논란을 예고했다.

이 검사는 “공소사실은 물론 기소하지 않은 피고인의 수 많은 행동들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였다”고 단죄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들은 수년간에 걸쳐 수사당국이 수집한 증거에 의해 충분히 입증이 되고도 남는다”고 공소유지에 자신감을 보였다.

최병모, “검찰 공소장 20년 전과 완전히 동일”

이에 맞서 13명의 변호인단 중 출석한 9명의 변호인을 대표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전 회장인 최병모 변호사가 모두진술에 나서 국가보안법 자체와 공안기관에 대한 신랄한 반론을 제기했다. [최병모 변호사 모두진술 전문 보기]

최병모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해석 적용에 있어서 검찰이나 법원이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나 태도는 과거와 조금도 달라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검찰의 공소장을 보아도 극히 지엽적인 부분에서 수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20년 또는 그 이전의 공소장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미 남과 북이 유엔에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였고 정상회담과 장관급회담, 장성급회담을 수시로 개최할 뿐만 아니라 연간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남북을 왕래하는 마당에야 북을 반국가단체로 지목하는 것은 통상인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난다”며 “한미관계, 북미관계, 국제관계의 진실을 직시한다면, 유엔사 해체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이 북의 지령과 사주를 받아 북의 무력적화통일노선에 동조하거나 찬양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내면화된 자발적 노예근성의 발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검찰측 기소논리를 강력히 성토했다.

최 변호사는 “북이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한다는 이유로 우리 국민 중 누군가가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면 그것이 곧 북한의 활동을 찬양하거나 그에 동조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더 이상 많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점만으로도 이 사건은 기소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며, 결코 유죄로 판단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지었다.

최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당초 제정되어서는 안 되었던 법률이며, 벌써 폐지되었어야 할 법률이지만, 지금 이 법률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이제는 국가보안법 역시 정치적 악용의 어두운 역사를 일소하고 일반의 다른 법률과 동일하게 정확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그 토대 위에서 엄정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거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에서는 이 사건의 사실심리와 증거조사 및 법률의 해석적용과정에서 사법부가 지켜야만 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예술가인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을 정확히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정희, “피고인의 창작방법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

이정희 변호사는 주요쟁점에 대한 모두진술에 앞서 “검사의 기소요지 진술 가운데, ‘기소하지 않은 피고인의 수많은 행동들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였다’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한다”며 “기소도 되지 않은 사실은 이 사건에 어떤 고려요소도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정희 변호사 모두진술 전문 보기]

또한 “검사는 피고인의 진술거부와 단식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진술거부는 피고인에게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고, 단식은 양심의 결정에 따른 행동일 뿐이다”며 “이것이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요소로 고려될 수 없고, 검사는 이에 대해 논평할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검찰측의 기소요지를 5가지 분류한 뒤 “이 공소사실은 모두 사진예술과 피고인의 창작방법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미 널리 공개되어 더 이상 기밀이라고 볼 수 없는 것 또는 군사상 기밀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을 기밀이라고 주장하거나, 공인된 평화감시활동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 등의 정당행위로서 죄가 될 수 없음을 간과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비무장지대 촬영 △미군기지지도 등 군사상 기밀 누설 △공군 방공포대와 미군기지 조사 촬영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무기 보유 관련 촬영 및 보도 △유엔사 관련 기고 △조총련, 한통련 관계자들과 회합 통신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와 관련한 쟁점들에 대해 반박해 향후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이 변호사는 “국회는 이미 여러 해 전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적어도 오남용을 막기 위해 개정해야한다는 논의를 벌였지만, 그대로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은 3년여가 넘는 기간의 감청과 미행, 2천장이 넘는 필름 원본에 대한 무분별한 압수수색에 이어 피고인을 구금하는 근거가 되어 사진작가인 피고인의 창작물을 국가기밀누설로 몰아세워 피고인의 예술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피고인의 예술의 자유, 취재 보도의 자유, 학문 연구의 자유가 더 이상 부당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심도 깊은 심리를 통해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어제 보석청구서를 제출하였다”며 “신중한 심리와 방어권 보장을 위해, 피고인에게 보석을 허가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검찰 ‘추가기소’ 발언 물의, 극우단체 회원들 법정안 소란도

이날 첫 공판에서 피고인 이시우 작가는 재판장으로부터 모두진술을 권유받았으나 “사진가로 꼭 강조해야 될,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맥락이 존재한다”며 “모두진술은 2시간 분량으로 프리젠테이션을 2,30장 준비했다. 같이 보고 느끼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용석 판사는 “재판부에서는 변호사 심문과정에서 프리젠테이션 기회를 충분히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음 재판 일정을 7월 10일 오후 2시 417호 법정에서 열겠다고 공지했다. 417호 법정은 대법정으로 이날 재판이 열린 311호 중법정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음 재판에서는 피고인 이시우 작가가 모두진술에 나설 예정이다.

이후 공판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이영재 검사는 “구속기간이 짧아 피고인 심문을 못했고 변명을 못 들었다”며 “증거목록이 아직 작성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가 심재환 변호사로부터 “입증자료도 안 됐는데 어떻게 기소를 했느냐”는 반박을 받고 “공소장 변경을 통해 추가 기소를 할 것이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공판이 끝난 뒤 심재환 변호사는 검찰의 증거목록 미작성에 대해 “일상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소한 검찰 내규에 저촉되는 것으로서 입증미비 상태의 기소, 무리한 기소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하고 추가기소 발언에 대해서는 “기소단계에 이르러 추가 수사는 못하게 돼 있다”며 “추가기소 발언은 피고인을 완전히 심리적 위축 상태로 몰아넣어 방어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문제삼았다.

▲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등 극우단체 회원들이 방청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재판이 끝나자마자 변호인 모두진술에 불만을 가진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과 라이트코리아 회원 등 10여명 중 일부가 법정 안에서 “대한민국 변호사 맞느냐”며 고함을 치고 소란을 피웠으나 법원 정리는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인원주(68)씨는 “변호인단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부정하고 북한 위주로 말했다”며 “정당한 작가를 변호하는데 왜 변호인단이 9명이나 되느냐”고 분개해 했으며, 신분을 밝히지 않은 다른 이는 “특별검사까지 한 사람(최병모 변호사)의 논점과 사상이 저렇다니 앞으로도 방청을 계속 안 하면 안 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통일뉴스지, 갈겨서 너네 맘대로 쓰라”고 적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법정을 나서서도 고함을 치고 방청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시우대책위.변호인단, 기자회견과 간담회 가져

▲ 재판 방청에 앞서 고등법원 기자실에서 가진 변호인단과 이시우대책위의 기자회견에는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평화사진가 이시우 석방대책위’와 변호인단은 서울고법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건의 개요와 대응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 집행위원장 조재국 연세대 교수는 1997년 KCBL 창립 당시부터의 이시우 작가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2001년부터 2002년 사이 후방지역 방공포부대 36곳과 전국 주한미군기지 관련 조사작업에서 이시우 작가는 실태조사 단장을 맡았으며, 이 작업은 공공기관도 협조, 후원한 공적 작업으로서 지뢰실태보고서로 발간돼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례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이시우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남편 건강이 48일간의 단식과 이후의 준단식으로 굉장히 안 좋다”며 “건강도 좋지 않고, 증거도 이미 압수된 상황에서 남편이 감옥이 아니라 가족의 곁에서, 안정적으로 건강을 돌보며 재판에 임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며 보석석방을 눈물로 호소했다.

▲ 공판을 마치고 민변 사무실에서 개최된 간담회에서 부인 김은옥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또한 재판을 마친 방청객들은 법원 인근에 있는 민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민변 사무처장 조영선 변호사의 사회로 이날 재판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향후 대책을 모색했으며, 조 변호사는 “앞으로도 매번 재판 뒤에 이같은 간담회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과 공판, 간담회에는 최병모, 이정희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과 문정현 신부,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천주교인권위 변연식 위원장, 한국대인지뢰대책위 조재국 연세대 교수,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상임집행위원장, 임기란 민가협 고문, 음악.미술 평론가 김제영, 이기형 시인, 통일연대 전창일 상임고문 등이 참석했다.

ⓒ 통일뉴스 / 김치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