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5일까지의 기록
이시우 대책위, 7월 4일 첫 공판시 기자회견 [2] 고려산 2007/06/28 1071
이시우 대책위, 7월 4일 첫 공판시 기자회견
이시우 작가, 8.15까지 복식하며 ‘준단식’ 중
국가보안법과 군사시설호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중인 이시우 사진작가의 첫 재판이 7월 4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2부에서 열린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6월 5일자 공소장에서 국가보안법 상 자진지원.금품수수, 회합.통신, 찬양.고무 등의 혐의를 적용했으며, 군용항공기지법 위반,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해군기지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시한 바 있다.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는 19일 대책회의를 갖고 공판이 열린는 7월 4일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을 방청한 다음 다시 설명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또한 6월 27일부터 7월 14일까지 평화박물관에서 ‘이시우 사진전’을 개최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기회에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덕수 소속 이정희 변호사 등 이 작가 변호인단은 첫 재판에서 일반적인 모두진술이나 변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색다른 재판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우 작가, 단식 중단 후에도 ‘준단식’ 계속 중
한편 이시우 작가는 지난 4월 19일 검거 직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며 단식에 돌입해 6월 6일까지 48일간의 단식을 진행한 바 있으며, 6월 6일 이후에도 죽물과 된장물 만을 먹으며 사실상 단식에 준하는 ‘준단식’을 진행하 고 있다.
20일 오전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와 서울구치소에서 이 작가를 특별면회하고 ‘준단식’에 대해 협의했다.
한상력 목사는 “8.15까지 준단식은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 단계는 죽을 먹을 단계이다”고 권유했다. 죽을 먹으며 복식하는 과정도 ‘준단식’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앞으로 보름간 죽을 들되 조금씩 시작해 15일 후쯤에는 한 공기 쯤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처음에는 옅게 시작해서 15일 후에는 된 죽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목사의 생수와 효소 음용 방식이나 운동에 대한 조언 등에 대해 이 작가는 “잘 알았다”며 대체로 수긍했고, 한 목사와 부인 김은옥 씨는 교도소 측에도 오곡으로 만든 죽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했다.
한 목사는 이 작가와 부인 김 씨의 손목을 꼭 붙잡고 기도하며 “우리 민족이 진실로 하나되도록, 유엔사가 해체되고 모든 무기를 걷어내 세계 평화의 핵심되는 나라가 되도록, 이시우 작가가 할 일이 많아 기필코 꼭 건강해서 열사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 작가는 수염을 기른 채 푸른 긴팔 줄무늬 수인복에 흰고무신을 신고 스스로 걸어서 접견실에 나타났으며,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하는데 요즘에는 조금 뛸 수도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표정은 비교적 차분하고 맑아 보였다.
그간 단식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치중해온 이 작가는 재판 일정이 확정된 상황에서 복식에 들어가 재판 준비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며, 집필 활동도 계속할 예정이다.
김은옥 씨는 “죽을 먹게 돼 그나마 다행이다”며 “건강을 회복해서 재판과 집필활동에 주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뉴스 / 김치관 기자
대책위 [2007/07/03] :: 오전10시 법원2층 `기자실`에서 기자회견, 11시 311호법정 재판, 재판후 방청인들에대한 변호인단 사건설명회가 있습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내가 본 이시우 [2] 오철근 2007/06/21 899
친우여러분,
그간 평안들 하신지요, 제가 여러분을 친우라 부른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퀘이커들이 서로를 친우라 부르는 것이 좋아서, 즉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그 평등, 평화정신이 좋아서 제가 오랜 기간 퀘이커에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친우라고 부르는 그 연원은 예수님께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하리라” 고 하신 말씀 등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친구로 대하신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처해진 환경과 하는 일은 서로 달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함께하는 마음이 있기에 친우라 부르고 싶고 또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미 언론을 통하여 잘 알고들 계시는 바와 같이 사진작가이며 평화운동가인 이시우님이 국가보안법위반과 군의 기밀누설이라는 죄목으로 지난 4월 19일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현충일인6월 6일 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48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지금도 중간단식을 하며 1회 공판(7월4일 오전11시, 담당재판부: 형사22부)에 대처하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혹여 아직도 이러한 소식을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그간의 정황과 대책위원회활동, 이시우님의 옥중서신 등 그의 사상과 활동의 전모를 알 수 있는 홈페이지 주소는 www.siwoo.pe.kr입니다. 특히 옥중서신은 개략적이나마 그의 예술관과 사상이 담겨있는 품격 있는 글이라 참으로 감동스러워 여러 번 숙독하였습니다.
그가 남북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열망에 한강하구의 汽水域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을 특수어종이 서식할 수 있도록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를 양보했듯이 남과 북이 서로를 양보하는 상징으로 읊었으며, 강화도 부근리의 고인돌에 서려있는 부조화 속에 감춰진 조화, 비정형의 정형을 그의 특유한 감수성으로 읽어 냄으로써 민족혼인 화해와 평화정신을 그의 저작을 통해 통일 미학으로 담아 낸 것은 저의 뇌리에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남북분단의시대적 아픔의 중심에 서서 온 가슴으로 그 아픔을 끌어안은 이시우님! 그가 진정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온 그에게 상(얼마 전 불교인권위가 그에게 제5회 박종철인권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나 그는 수상을 거절하였음) 을 주지는 못할망정 국가보안법의 족쇄를 채우다니요. 소위 진보세력의 대다수가 실세라는 참여 정부는 참으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국민이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마련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국민들의 분노가 풀리지 않을 터인데 게다가 국가보안이라는 미명아래 대낮의 낮도깨비 같은 보안법의 칼날을 휘둘러대다니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간의 소문대로 노무현 정부의 개입 없이 공안당국이 대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 하기위하여 저지른 한심한 작태 인 것 같으며, 그도 아니면 그가 유독 유엔사 해체를 주장한 것을 문제 삼아 문정현신부의 말처럼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간의 정황을 지켜보건대 의외로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미미한데 실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하기야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보수언론이나 방송들이 이 사태를 방관만하고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어찌 이문제가 이시우 한사람의 문제이겠습니까? 국가보안법을 이대로 방치하고서도 이 나라에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이 있다할 수 있습니까, 인권은 과연 있는 것입니까? 권력의 속성 상 정권을 잡은 자 스스로 자유와 인권을 진심으로 개선한 적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나라 역대정권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정도의 자유와 인권도 3‧1, 4‧19, 5‧18, 6‧10항쟁으로 이어온, 그 자유와 인권을 위한 씨(민중)들의 숭고한 희생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역사발전 법칙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 불굴의 민족혼은 낮잠을 자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치의 생리가 늘 그러하듯 애시 당초 그들의 공약을 믿은 것이 잘못입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철새 정치꾼들을 믿은 것 또한 잘못입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 믿을 것은 씨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시우님을 옥에 가둔 책임은 국가보안법을 국민의 힘으로 철폐시키지 못한 우리 씨들에게 있는 것이지, 자칭국민의 공복이라고 말로 만 자기를 낮추는 대통령이나 관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아끼는 제 마음을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두 구절,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을 인용하여 친우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감히 말합니다만 이시우님은 나의 존경하는 스승 함석헌 다음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오직 지극정성의 한 사람, 분단시대의 우리들의 빛이요. 참의 실현을 위해선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는 참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석방서명과 탄원서 쓰기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시위라고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제가 서울검찰청 앞에서 하는 1인시위에 참가한 것도, 어눌한 컴퓨터 실력으로나마 ‘내가 본 이시우’를 파일로 보내드리는 것도 그와 잠시 함께 하였던 평화운동을 통한 사적인 우정보다는 참을 아끼고 사랑하는 본심의 발로라 할 것입니다.
친우님들의 건강과 평안하심을 빌며
퀘이커 서울모임 오 철 근 올림.
도토리한알 [2007/06/21] :: 귀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_()_
고려산 [2007/06/21] :: 그는 그의 저서 `민통선 평화기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의 반대가 구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었다. 저항하고 꿈꿀 자유까지 막는 것은, 놀랍게도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관성은 자유와 구속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살아 있음의 확인조차 막아버린다.” 이시우 작가는 오늘도 자신이 관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자유와 만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펌: 인권그림판] 평화사진가 이시우를 석방하라 고려산 2007/06/24 833
이 만평을 그린 박흥렬 화백은 <경향잡지>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 박흥렬
인사동 평화박물관 사진전 -7/14일까지 연장 김은옥 2007/06/28 1073
6/27 – 7/10일 까지로 안내장이 발송된 후 7/14일까지로 사진전이 연장되었는데, 초청장을 이멜과 우편으로 발송할 에정입니다. 7/14일까지는 세번의 주말을 포함하고 있사오니, 보다 많은 분들의 방문으로 ‘이시우작가의 억울함과 부당한 감옥살이’를 세상에 알리고, 이작가의 법정싸움이 7.4일 처음시작되는것을 지켜보며,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함께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7/4일 오전 10시 법원기자실에서 있을 변호인단 ‘기자회견’과 재판방청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재판이 끝난후 방청인들에 대한 변호인단의 ‘사건설명회’도 있을예정이니, 이시우사건의 보다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시고 하는 많은 관계자분들의 방청을 요청합니다.
홈피에서 초청장 참고하세요. (첨부파일)
국가보안법과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최금수 2007/06/25 905
“사진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 1%의 영감으로 창작됩니다”
국가보안법과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이시우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그의 홈페이지인 www.siwoo.pe.kr에 들어가 보면 평화, 역사, 미학으로 분류된 메뉴들이 범상치 않다. ‘사진이라는 예술행위’에 관심이 있다면 꼭 들러보라고 강추하는 사이트이다. 남한 사회에서 이제 갓 마흔이 넘은 세대들이 고민했던 인간과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요약해 놓은 듯한 강의실과 자료실이 사진작가 이시우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까닭이다.
강화에 사는 이시우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지난 겨울 민족미술인협회 국제교류위원회가 주최한 『아시아의 지금』展을 준비하면서였다. 당시 전시 주제가 “세계화와 지역성”인 탓에 되도록이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섭외하여 서울과 북경에서 전시를 치르기 위함이었다. 넉넉치 못한 예산으로 기획자와 작가들 모두 사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반입이 있던 날 이시우는 부인과 함께 여느 작가들처럼 자가용으로 손수 작품을 가지고 왔다. 한반도 곳곳을 걸어다니며 찾아낸 낡은 지뢰들을 찍은 사진작품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전시행사가 모두 끝나 북경에서 작품이 되돌아왔고 운송을 맡았던 기사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시우의 구속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소 겁에 질린 듯한 기사님의 말로는 경찰들이 집을 지키고 있고 문도 닫혀 있어서 작품을 그냥 집 앞에 놓고 왔다는 것이다.
몇일 후 강화도에 사는 한 조각가로부터 “사진작가 이시우를 즉각 석방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받았다. 강화도 지역사회에서는 이시우가 구속되면서부터 나름의 석방을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역부족이라 미술계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일간지 사회면 또는 인터넷 언론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단식에 들어간 이시우의 핼쑥해진 사진과 각종 성명서 그리고 탄원서들이 발표되고 난 이후였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예술가가 구속된다는 것에 믿기지 않아서인지 연일 발표되는 미술품 옥션가의 달콤함 유혹 때문인지 미술계는 유독 이시우의 구속에 무감했다. 몇해전 탈북자를 취재하던 사진작가 석재현이 중국 공안에 1년 넘게 잡혀있었을 때처럼 말이다. 굳이 쌍팔년 군사정권도 아닌데 뻣뻣하게 이들의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시대의 예술행위가 갖는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시우는 말한다. “사진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 그리고 1%의 영감으로 창작된다”고. 그래서 인간에 대해서 학습하고, 한반도의 상황을 인식하려 했으며, 그 결과 예술행위라는 것에 천착하였던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예술가는 ‘당대의 학문적 성취를 뛰어넘은 독자적 학적세계와 시대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일 뿐 아직 예술일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가 실천을 통해 검증된다 하더라고 그것 또한 운동일 뿐 예술일 수 없다. 물론 이시우의 사진작업은 ‘비무장지대’라는 다분히 의식적인 테마로 출발하여 세계평화를 위한 관심으로 나아가 ‘미군’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시우가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은 학문도 운동도 아닌 확고한 예술로서의 발언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작품에서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이 보인다. 심지어 전쟁의 상처로 자리잡은 강화 고려산 미군통신시설의 일몰을 찍은 사진에서도 ‘전파의 기교도 일몰 하늘빛의 장엄한만 못하다’는 이시우만의 독특한 발상으로 평화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관광은 물론 북한에 공장도 세우고 전기도 보내는 현 시점에서 분열만 조장하는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유독 나약한 예술가들을 표적으로 삼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더구나 예술의 입장에서 이미 국가개념은 낡은 것이 되었고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좀더 통큰 화합들이 모색되고 있는 마당에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의 구속은 부당하며 마땅히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시우의 말처럼 “다시 밤하늘을 보니 빛은 작고 어둠은 크다”. ■ 최금수․이미지올로기연구소장